그래도 고양이는 외출한다
하루노 요이코 지음, 이은주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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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의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이 있다. <구구는 고양이다>를 그린 만화가 오시마 유미코도 그런 사람이었다. 어디선가 길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리면 집으로 데려다가 먹이를 주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 지극정성으로 치료해 주는 모습을 보며 대단함을 넘어 숭고함마저 느꼈다. 생명이 생명을 거두고 보살피는 일은 언제 봐도 아름답고 거룩한 일이다.


<그래도 고양이는 외출한다>를 그린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하루노 요이코도 오시마 유미코와 마찬가지로 고양이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지극한 사람이다. 일본의 사상가 요시모토 타카아키를 아버지로,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를 여동생으로 둔 하루노 요이코는 도쿄 코마고메에 자리한 요시모토 자택에서 8년 넘게 수십 마리의 고양이를 돌봤다.





시작은 시로미였다. 8년 전 여름 늦은 밤, 이웃한 묘지에서 새하얀 아기 고양이를 주웠다. 아기 고양이는 '마미 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꼬리와 연결된 척수를 다쳐서 배설 컨트롤이 안 됐다. 운동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똥오줌을 질질 흘리고 다녔다. 부모님은 키울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때 저자는 큰 결심을 했다. 이 아이를 데리고 집에서 나가자. 그러자 부모님은 집에서 키워도 좋다고 허락했다. 아기 고양이에게는 시로미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마침 아버지를 취재하러 온 <네코비요리> 편집자가 시로미에 대해 글을 써보라는 청탁을 해왔다. "1회로는 어려워요. 연재로는 할 수 있습니다."라는 주제넘는 대답을 했는데, 웬일로 편집자는 연재를 부탁했고 그렇게 8년 동안 연재가 이어졌다. 돌이켜 보면 격동의 8년이었다. 시로미를 비롯해 수많은 고양이들의 병치레와 장례를 치렀고, 부모님이 잇달아 돌아가셨고, 저자 자신도 암 투병을 했다. 생명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동시에 실감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저자가 암 선고를 받았을 당시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암 선고를 받고 나서 부모님 간병인과 고양이를 돌봐줄 사람을 찾느라 수술을 4개월 반이나 미뤘다는 이야기도 그렇지만, 부분 절제를 하면 방사선 치료를 받느라 고양이를 돌보기가 힘들어질 것 같아서 전체 적출을 택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나라면 고양이를 돌보기 위해 부분 절제해도 되는 가슴을 전체 적출해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의 마음은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8년간의 연재분인 만큼 분량이 제법 많고 내용이 자세하다. 고양이의 생태적 습성과 고양이를 키울 때 주의할 점 등도 상세히 나온다. 글과 그림이 번갈아 나오기 때문에 질리지 않고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학자의 딸, 소설가의 언니답게 글도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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