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모션을 다시 한번 1
카노우 리에 지음, 허윤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문유석 판사는 자신의 저서 <쾌락독서>에 어려서부터 미국 음악을 즐겨 듣고 미국 소설을 즐겨 읽은 탓인지, 미국의 5,60년대 문화를 접할 때마다 그 시절을 살아본 적도 없고 직접 그 문화를 겪어본 적도 없는데도 노스탤지어를 느낀다고 썼다. 이 대목을 읽고 나와 비슷한 사람이 또 있구나 하는 생각에 무릎을 쳤다. 내가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대상은 5,60년대 미국 문화가 아니라 8,90년대 일본 문화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나처럼 버블 경제가 한창이던 80년대 일본 대중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는 만화를 만났다. 바로 카노우 리에의 신작 <슬로모션을 다시 한 번>이다. 주인공은 외모도 준수하고 운동 신경도 발군인 고교 1학년 남학생 오타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지만 아직까지 여자 친구가 없는 건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 때문이다. 그 비밀은 바로 오타키가 1980년대를 주름잡은 '우타히메(歌姬)' 나카모리 아키나의 광팬이자 80년대 아이돌, 게임, 장난감 등에 열광하는 '80년대 덕후'라는 사실이다.






오타키는 최신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80년대 음악을 듣거나 어렵게 구한 80년대 잡지를 읽는 걸 더욱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오타키에게 나카모리 아키나를 쏙 빼닮은 여신이 나타난다. 정체는 바로 오타키의 옆자리에 앉는 여학생 야쿠시마루. 학교에서는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며 하루 종일 책상 위에 엎드려 있는 야쿠시마루가 방과 후만 되면 80년대 아이돌 의상으로 갈아입고 80년대 아이돌 노래를 맹연습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오타키는 생애 처음으로 대화가 통하는 친구를 만난 기쁨에 어쩔 줄 몰라 한다.


나카모리 아키나의 대표곡 중 하나인 <슬로모션>을 그대로 사용한 제목을 보고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만화에는 80년대를 풍미한 아이돌, 가요, 게임, 장난감 등이 줄줄이 나온다. 80년대 아이돌이나 가요는 일본 문화 마니아들이나 알 만한 정보라고 해도, 80년대에 유행한 게임이나 장난감은 한국에서도 유행한 것들이 많아서 기억하는 사람들은 반가울 듯하다. 연애 경험이 없는 오타키와 야쿠시마루가 서로에게 첫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모습도 순수하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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