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 - 나태함을 깨우는 철학의 날 선 물음들
안광복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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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라는 책 제목을 보고 내가 떠올린 '불편한 질문'이란 이런 것들이었다. "사귀는 사람 있니?", "왜 결혼 안 하니?", "연봉 얼마니?", "그 회사 언제까지 다닐 수 있니?" 같은, 나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요 배려조차 보이지 않는 질문들. 그런 질문들을 사람들은 왜 항상 나에게 묻고 나는 왜 그때마다 불편함을 느끼는지, 그 이유를 이 책이 알려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이 그런 내 기대를 충족시켜주진 못했다. 다만 현재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들이 얼마나 단순하고 원초적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이를테면 "사귀는 사람 있니?", "왜 결혼 안 하니?" 같은 질문은 인간이 존재하는 의미와 방식을 내포하는 질문이고, 이는 이 책에 나오는 "나는 도대체 왜 살고 있나?", "혼자의 시대, 굳이 친구(애인, 배우자 등)가 필요할까?" 같은 질문과 연결된다. 저자가 인용한 심리학자 매슬로에 따르면 인생을 꾸려가는 힘은 '결핍 욕구'와 '존재 욕구' 두 가지다. 결핍 욕구는 식욕, 수면욕, 안전함, 소속감 등과 관련 있고, 결핍 욕구가 충족되면 인간은 존재 욕구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인간이 '남과의 비교'에 사로잡혀 끊임 없이 결핍 욕구를 확장할 때 발생한다. 충분히 먹고살 만한데도 결핍 욕구가 만족되지 못하면 인간은 존재 욕구를 충족시키는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존재 욕구는 '더 좋은 음식, 더 좋은 옷, '더 좋은 집'이 아닌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인생, 더 좋은 사회, 더 좋은 미래를 추구할 때 비로소 충족된다. 연애나 결혼에 대한 욕구가 스스로의 결핍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존재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인지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연봉 얼마니?", "그 회사 언제까지 다닐 수 있니?" 같은 질문은 이 책에 나오는 "흙수저와 금수저의 삶은 공평할까?", "시키는 대로만 일하는 게 속 편하지 않을까?",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걱정해야 할 일일까?", "도대체 인간은 뭘 잘할까?" 같은 질문과 이어진다. 저자가 인용한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에 따르면 자본 수익률은 항상 경제성장률보다 크다. 이는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본에서 발생하는 이자 소득이 노동을 통해 얻은 소득보다 항상 높다는 것을 뜻한다. 내가 "연봉 얼마니?", "그 회사 언제까지 다닐 수 있니?" 같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는 건, 내 연봉이 또래보다 한참 적고 그조차도 오래 받기 어려울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대한민국에서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 한 푼 없이 오로지 노동 소득만으로 살아가는 내 삶에 대한 불안 내지는 원망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고,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현상이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전투'에서 이기고 싶다면 기계가 넘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에 집중해야 하고, 그 방법은 결국 인간 스스로 자기가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와 이유를 찾는 '철학함'이 될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얼마 전에 읽은 다른 책 한 권이 떠올랐다. 나치 독일 시절, 나치 선전 부장 요제프 괴벨스의 비서로 일했던 한 여자의 삶을 기록한 책이었다. 여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자신의 아버지는 정치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식사 시간에 대화는 금지되었고,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에 대꾸를 하거나 쓸데없는 질문을 하면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학교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을 어른들의 말에 복종하는 존재, 돈밖에 모르는 기계로 키웠다. 여자는 자신이 만약 지금의 독일 젊은이들과 같은 교육을 받았다면, 나치의 만행을 보고도 침묵하고 알고도 동조하는 어른으로 자라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여전히 몇몇 질문들이 불편하고 앞으로도 불편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질문들을 받을 때마다 정중하게 경청할 것이고 성실하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질문하지 않고 대답하지 않으면 대화가 사라지고 토론이 없어지고, 상대방과 소통하고 서로 이해할 기회가 없어지고, 그러면 결국 인간의 자유와 개성, 다양성이 말살되는 사회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도 계속 불편한 질문들을 끌어안고 살아갈 것이다. 다만 그 질문들이 지금처럼 단순하고 배려 없고 원초적이지 않은 수준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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