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정호 그림 / 알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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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모자로착각한남자 #올리버색스 #책스타그램

고등학교때였나, 굉장히 기초적인 형태의 뇌신경과학을 접했던 거 같다. 뇌의 특정부위를 절개하면 말을 못하거나 통증을 느끼지 못하거나 운운. 아, 사고를 당해 철근이 머리를 관통했는데도 성격이 조금 바뀌었을 뿐 잘 살아간다던가, 그런 이야기도 티비에서 봤던 거 같다. 그렇게 뇌의 특정 영역은 어딜 담당하고 어떤 기관/기능과 연동되어 있다는 투의 그림그리기는 이제 엄청 식상하고 진부한 소재거리다. 기계적이고 일반화된 1:1 대응.

그런 거 말고. 뇌의 특정부위나 특정작동방식에 에러가 생겼을 때 인지나 기억, 그러니까 사람의 정체성에 변동이 생기는 건 어떨까. 눈앞의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고 모자로 인식한다거나, 육십년전 라디오방송을 그대로 복원해낸다거나, 혹은 사고로 사라진 본인의 신체 일부를 여전히 감각한다거나. 심지어 아예 사고방식이나 사고능력 자체가 통상 인간의 능력이라 불리는 추상화, 범주화가 불가능해진다거나. 그렇게 개별적이고 유니크한 사례들을 통해서는 앞서말한 그런 기계적인 일반화가 불가능하다.

환자들의 증상도, 그 환자들의 사례도 모두 지극히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들이다. 증상의 연원부터 발현형태와 대처까지. 이래서야 하나의 학문으로 세우기도 녹록치 않겠다 싶었지만 저자가 '환자 개개인의 서사'에 집중해 신경의학의 주춧돌을 놓은 게 어언 30년전. 그러고 보면 매트릭스니 13층이니 온갖 SF작품들에 구현된 정체성-혹은 영혼이라 불릴 만한-에 대한 이야기들이 멀거나 가깝거나 이로부터 촉발된 건 분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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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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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책스타그램

이중의 망연함. 그다지 말수가 없는 아내가 문득 변화해버린 모습이 맥을 탁 놓아버린 망연함을 떠올리게 만든다면,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과 주변인들의 당혹스러움과 낯섦은 또 그것대로 망연하다. 채식주의자와 일반인간의 괴리, 내 식습관을 끔찍하게 여길 상대에 대한 불편함이 깊어지면 그런 망연함이 되는 걸까.

아내의 변화는 단순히 채식을 고집하는 그것이 아니라 망상, 편집증, 불면증, 혹은 귀신들림이라고 부름직한 그 무엇일 텐데. 그렇지만 그녀는 그가 고르고 골라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이었단 말이다. 혹시 그에 대한 반발은 아닐까, 난 평범하지 않아, 난 당신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외치고 싶은 뒤늦은 반항.

아닐까. 분명 특이점들은 있었다.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라 할 만한, 채식주의자로의 예비점들. 어려서부터 칼질을 무서워했다거나, 가슴이 답답해 브래지어를 차지 못했다거나. 그렇지만 그녀의 독백은 어디로 전달되지도 발전되지도 못한 채 사그라든다.

그런 망연함들은 이내 폭력으로 비화되고 만다. 남편을 비롯한 주변가족들의 아내에 대한 폭력적인 대응들, 그리고 그녀의 주변에 대한, 그녀 자신에 대한 폭력적인 대응들. 그렇게 지옥도로 말려들어가는 풍경.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다른 이들이 나를 알아낼 수 있을까. 그렇게 이해받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떻게 자신과 상대를 상처내게 되는 걸까. 그런 류의 망연함이 그득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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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미나마타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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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미나마타 #북스타그램 #미나마타병

전후부흥, 경제발전이라는 대의명분 앞에서 인신공양인 양 바쳐진 변두리 어촌의 약자들. 질소공장에서 무방비하게 토해낸 유기수은이 대규모 질병을 퍼뜨렸고, 15년이 지나서야 정부가 원인을 확정짓고 다시 가해기업에 대한 피해보상 요구가 시작된다는 낯설지 않은 이야기가 배경이다. 당연히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는 기업이 필요하다 편드는 여론이나 폭탄돌리기하듯 다른 부처의 소관이라 떠넘기기만 하는 관료들이 등장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피해조사차 나온 국회의원과 고위각료에게 감읍해 아버지어머니라 부르고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는 모습까지도, 버전만 좀 불편할 뿐 사실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모습이다.

그런 것들이 이 책의 배경이다. 분명 미나마타병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바싹 따라가고 있지만, 단순한 기록물이나 병에 대한 보고서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다. 실제 저자가 미나마타병의 사회적 인정 투쟁에 앞장선 인물이었다거나 대체로 역사적 사실과 부합한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굵직한 사실을 대하는 사람들의 속내, 삶의 이야기에 대한 순전한 픽션이란 점에서다. 과연 이 책의 주제는 뭐라 해야 할까. 취재를 바탕으로 한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저 눈높이를 맞추어 읊조린 그네들의 속마음과 환상체험과도 같은 문답이었다니. 저렇게 투병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조차 아름답고 애틋하게 읊조릴 수 있는 작가는 왠지 벚꽃잎이 분분히 낙화하는 비감스런 감성의 화신같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그녀는 미나마타병 자체라기보다는 그걸 하나의 메타포처럼 인지했는지도 모른다. 삶에서 문득 쓰나미처럼 닥쳐온 저항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비극, 그 비극에 맞닥뜨리는 인간군상들이 제각기 드러내는 표정과 감정을 상상해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도록 그녀의 묘사는 집요하고 도착적이다. 두 마리 토끼라고 해야 할까, 사회적인 차원에서 기억하고 짚어져야 할 문제와 함께, 개인들이 이런 거대한 비극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거나 분노하거나 때론 긍정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라면 이 책은 소설로 읽혀야 하는 게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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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민주주의거든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조홍민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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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민주주의거든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안철수

안철수가 19세 노동자 사망에 했던 말,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덜 위험한 일을 했을지 모른다 운운"과 맞물려 읽히는 책의 한대목. 누가 누굴 대표하고 대변하겠단 건가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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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산문집 세트 - 전7권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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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산문집 #문학동네

귀엽고 소녀스러운 이야깃꾼 할머니 무릎베개를 하고서 이야기를 듣는 듯한. 소녓적의 기억과 감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켜켜이 세월과 연륜, 그러니까 진짜 어른스러움을 갖춘 분의 일생에 대한 반추와도 같다. 게다가 신산스럽기 그지없던 해방전후부터 80년대의 풍속과 시사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평가까지 더해지면 그 시대에 대한 귀중하고 생생한 기록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의 글과 생각이 그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성격이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산문전집의 가장 큰 덕목이었다. 그저 요령부득의 아줌마 이야기꾼을 자처하던 그녀가 여성 인권 문제에나 정치적 문제에 대해 좀더 선명하고 적극적인 입장을 개진하면서 다른 남성 주류 지식인이나 작가가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모습. 그건 그녀 특유의 쉼없는 자기반성과 겸손함에 힘입어 더욱 큰 설득력과 울림을 확보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그녀의 소설은 내 취향과는 좀 맞지 않았는데 산문은 기대 이상으로 상큼발랄한데에 깜짝 놀랐다. 연이어 일곱권의 산문집을 붙잡게 된 이유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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