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자들
김초엽 지음 / 퍼블리온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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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말살한 존재 범람체.
지상의 거의 대부분을 잠식해버린 미지의 존재로 지하세계로 떠밀려 들어온 생존 인류들의 이야기 인줄만 알았는데,
범람체로 인해 실재한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지상을 갈망하다 파견자의 길을 걷게 되는 주인공 태린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 일부만 남아있고, 뒤늦게 한 뉴로브릭 시술에도 적응을 실패했지만 뛰어난 광증 저항성을 가진 소녀.

파견자 테스트에 합격한 후 불완전하게 연결되어 있는 줄로만 알았던 뉴로브릭의 폭주로 추방형에 다름없는 임무를 맡아 지상으로 나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과거의 청산기.

동경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고 싶었던 이제프와의 인연은 사랑이었을까,
다음 세대의 생존방식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너무 늦어지고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저런 상념들이 생겨난다.

공존이 전 지구적 위기의 상황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 오류에 이름을 붙이니, 어쩐지 그 문제가 좀 더 실체를 지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전까지는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고, 그저 불가해한 재난에 휘말린 것 같았다면 지금은 적어도 문제의 형태를 파악할 수는 있었다. 곤란한 문제 덩어리라는 것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 77

- 잘 생각해 봐. 네가 정말로 하나의 존재인지... - 183

- 어떤 사람들은 눈빛이 반짝이고, 얼마 후 자스완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묻기도 한다. 지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특별한 조건이 있냐고. 그러면 자스완은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그야 당신이 오직 당신 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환상을 버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 420


2024. may.

#파견자들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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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책 - 금서기행
김유태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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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한 신형철 평론가와 글항아리 출판사를 믿고 고른 책.

금서에 대한 이야기들.

아는 책, 읽은 책이 많았고, 엄청 새로운 시각이 담겨있지는 않다.

술술 읽혔다.

- 금서는 세상이 온통 뿌연 땡 뜻밖의 색조를 띠며 세상의 불온함을 고발하는 초월적 문장의 합이었다. 그 책들은 한 시대와 불화했다. 금서라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불화의 방향은 소수의 권력자가 탈취한 이념이었다. 금서의 작가들은 복종하지 않음으로써 세ㅖ와 독자에게 자유를 선물하고자 했다. 독자는 문장으로 적힌 지옥의 창문을 열어보면서 자유의 물결 속에 자신을 위치시킬 수 있다. 편협한 생각, 작가에 대한 권능자의 질투와 조바심이 금서를 만든다. 금서의 작가는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고자 힘썼던 초극적인 존재들이다. 그들은 안전하지 못한 책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었다. 금서를 읽으며 여행하는 일은 곤경에 처했던 책들의 광휘 가득한 복권이다. 금서를 선택하여 읽는 다는 것은 잊힐 뻔했던 인류의 가치와 미래 지향적인 진의를 제자리에 위치시키는 독자적 행위다. 독자는 망각의 물결에서 의식적으로 책의 불온함을 제거해 준다. 이 위대한 일은 독자만이 해낼 수 있는 과업이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결론 지을 수 있다. '위험한 책만이 위대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안전한 책만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우위에 서서 교훈처럼 자신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 14

2024. may.

#나쁜책 #김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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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운 것들
앨러스데어 그레이 지음, 이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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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읽을 접점이 없는 책이었는데, 영화리뷰를 보다가 관심이 생겼다.
프랑켄슈타인의 여성 버전인가? 하는 궁금증에 읽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메리 셰리의 영향을 엄청나게 흡수한 이야기이고, 학습하고 발전하는 인류애를 지닌 프랑켄슈타인 시점의 이야기다.

인간의 유해를 사용하여 25세의 여성을 재생? 한다는 설정부터, 죽음 이전의 삶과 이어지는 이야기 등등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

벨라는 자신의 창조주를 갓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실상 그 갓은 벨라가 하는 어떤 행동에도 제재를 가하지 않는 완벽한 관찰자와 지지자의 입장을 보여주어, 벨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과, 벨라가 던지는 어려운 질문들, 삶에 대한 질문들에 진지하게 대면하는 점이 함부로 시신을 되살린 죄?를 어느 정도 감면해주는 느낌.

세상을 만나고 삶을 직시한 벨라가 기생하는 삶이 아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부분은 인류가 지향할 지점을 말해주며, 결국 벨라가 가난한 여성들을 위한 의사의 삶을 살아가는 점이 인상깊다.

이야기 속 완벽한 셔터맨 역할의 맥캔들리스 박사도 재밌는 캐릭터... 역시 남성 캐릭터는 유하고 순종적이어야 호감인가 생각해 본다. ㅋ


- 잠을 자는 벨라를 보면 왜 그런지 알게 될 걸세. 잠든 벨라의 얼굴은 시체안치소 판자 위에 누워 있던 열정적이고 지혜롭고 비탄에 잠긴 여인의 얼굴이야. 나는 그녀가 버린 삶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네. 그녀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만큼 그 삶을 증오했다는 것 외엔! - 74

- 나는 어떤 똑똑한 남자와 이에 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가 그러는데 그 소중한 것은 많은 이름으로 불린대요.
가난한 사람은 그것을 돈이라고 부르고, 성직자는 영혼이라고 불러요.
독일인은 그것을 의지라고 부르고, 시인은 사랑이라고 부르죠. 그는 그것을 자유라고 불렀어요. - 199

- 그들은 무력하고 병들고 작은 사람들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어요. 종교와 정치를 이용하여 아주 수월하게 그 모든 고통에 대한 우월함을 유지해요. 그들은 종교와 정치를 불과 칼을 이용해 고통을 퍼뜨린 구실로 삼죠.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 276


2024. apr.

#가여운것들 #앨러스데어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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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5 - 2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5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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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위해 애쓰는 이들이 도처에 있으나, 구심점이 없달까, 규합을 위한 에너지 자체가 너무 약하달까.
망국의 비애 그 자체겠지만...

길상의 내면의 갈등이 깊어지고 고뇌하지만 딱히 타개할 방법이 없는 현실은 결국 여전히 존재하는 신분제의 그림자 때문인데 지켜보자면 그것도 몹시 우울하다.

공노인과 길상의 도움으로 용정에서 성공해 자리를 잡은 서희지만, 기본적으로 막대한 부가 축적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고...

암울한 시대의 메마른 정서가 그득하다.

- 국제정세는 그렇다 치고 좁은 간도 땅 안에서 조선인들은 어떠한가? 몇 가닥으로 분열하여 일본 관헌의 입김이 닿는 곳엔 친일파 밀정으로 전신하는 무리들이 속출하는 판국에 상현은 과연 조선이 독립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늘 비관적이었다. 아니 절망적 기분이었다. - 52

- 김 훈장은 이르기를 의병은 이 나라의 얼이요 꽃이라, 그러나 얼이요 꽃인 그네들 대부분은 황량한 산천의 객귀가 되었고 장정들을 이끌고 분투한 윤보도 골짜기에 피를 뿌리며 숨졌다 하지 않던가.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 김 훈장과 영팔이와 용이, 그리고 길상이 이역 수천 리 남의 땅에서 지금 구차스런 명을 잇고 있는 것이다. - 355

2024. may.

#토지 #2부1권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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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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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것이 쓸모 있다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말에는 동의.
그러나 읽을 책이 너무나 많고, 재독을 하려고 모셔놓은 책들은 그저 먼지만 쌓여가는 게 현실이지 않은지.

재독이 여러 면에서 심리 상담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도 동의한다. 과거의 좋았던 책들, 심지어는 인생의 책이라고까지 여겼던 책들이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했을 때 실망감과 헛헛함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왕왕 했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좋았던 책은 그냥 좋았던 책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름답지 않나 싶기 때문이다.

다시 읽어 경멸스러운 감정까지 느껴지는 후진 성인지 감수성을 마주할 때 그런 생각이 유독 든다.

그러나 읽었던 작품에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삶의 정수를 느낄 수도 있다.
경험의 깊이가 달라서, 미처 알지 못했어서, 읽는 시점의 내면이 달라져서.... 어떤 경우든지 과거의 좋았던 책이 더 좋아지는 경험도 충분히 있었다.

작가도 그런 지점들을 이야기하고, 그 책들 안의 좋은 점을 보존하려는 마음이 느껴지는 글들이다.

역자 후기에서 말하는 '80대의 읽기가 20대의 읽기를 무화하지 않는다는 사실' 점이 와닿았다.

언급된 많은 작가들 중 엘리자베스 보엔, 엘리자베스 스텐턴이 궁금해졌다. 영미문학은 번역을 거쳐야 제대로 읽어볼 수 있다는 점이 아쉽다고 늘 생각한다.

- 문학작품에는 일관성을 갈구하는 열망과 어설프고 미숙한 것들에 형태를 부여하려는 비상한 시도가 각인되어 있어, 우리는 거기서 평화와 흥분, 안온과 위로를 얻는다. 무엇보다 독서는 머릿속 가득한 혼돈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며 순수하고 온전한 안식을 허한다. 이따금, 책 읽기만이 내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 10

- 내 독서의 목적은 한결같이, 오로지 단 하나였다. 나는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얽혀드는 주인공의 행보를 통해 (짜릿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대문자 L로 쓰인 Life, 그 삶의 압력을 느끼려고 책을 읽었다. - 13

- 손가락 말단까지 철저히 정치적 동물이었던 스탠턴은 이 사유를 여성을 위한 정치적 평등의 필요성과 연결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에게 행동 반경을 확장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로 그가 아는 한 가장 강력한 것은 모든 삶은 궁극적으로 고독하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그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여자들에게 시민의 권리를 허락지 않은 결과에 직접 호소한다.
인생의 사나운 풍파에서 여자들을 보호한다는 얘기는 순전히 조롱일 따름입니다. 삶의 폭풍은 남자들에게 불어치듯 여자들에게도 나침반의 전 방위에서 불어 칠 뿐만 아니라 더 치명적인 피해를 초래합니다. 남자들은 자기를 보호하며 저항하고 승리하는 훈련을 받기 때문입니다. 인간 경험에 있어선 사실이 그러합니다.(...) 부자와 빈자, 지식인과 무지렁이, 현자와 바보, 선한 자와 악한 자, 여자와 남자를 막론하고, 언제나 똑같습니다. 그 모든 영혼은 각자 혼자서 다만 자기 자신만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 길고 따분한 행진을 각자 혼자서 해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항상 짊어지고 살아온 고독입니다. 그것은 차디찬 얼음산보다 더 접근하기 어렵고, 한밤의 바다보다 더 심오하지요. 그것이 바로 자아의 고독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라 일컫는 내면의 존재는 그 어떤 인간이나 천사의 눈길, 손길로도 꿰뚫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개인의 삶입니다. 나는 묻습니다. 누가 감히, 그 누가 감히 다른 인간 영혼의 권리와 의무와 책임을 대신 떠맡을 수 있단 말입니까?
유대계 미국인의 그 어떤 글도 <자아의 고독> 만큼 정곡을 꿰찌르는 자아 감각을 내게 돌려주지 못했다. 자연과 역사라는 이중의 덫에 갇힌 내 자아의 감각 말이다. 내게 그 연설문은 시처럼 읽혔다. 그만큼 존재의 본질 자체로 느껴졌다. - 145

2024.may.

#끝나지않은일 #비비언고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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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4-05-31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재독을 좋아하는데 인생책이었던 책이 더이상 인생책이 아니게 되면 진짜 헛헛할 것 같아요. 얼마전 이동진님 책을 읽었는데 이동진님은 다른 이유로 재독을 안하시더라고요. 일단 지식에 대한 열망이 강하셔서 다독을 하시고 세상에 읽을 책이 넘나 많잖아요. 인간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고요. 한 사람이 일생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은 유한하니까 재독은 안하신다고. 저는 그래도 재독이 좋아요. 심리적 안정감 ㅎㅎㅎㅎ

2024-06-01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