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서의 꿈 십이국기 7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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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으로 다시 돌아온 태과 기린 다이키.

실도한 부왕을 침탈한 겟케이를 이제는 이해하고 경국의 지지를 전하는 서신을 보내는 쇼케이.

유학 중인 라쿠슌과 서신을 나누는 경왕 요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라쿠슌이 더 자주 등장했으면 좋겠지만... 그건 개인적인 욕심. 그나저나 연호에 라쿠슌의 이름자를 넣은 왕이라니 너무 귀여운 관계.

십이국 여기저기의 작은 에피소드들.


- "쇼케이 님을 본받고 싶군......"
쇼케이가 자신의 죄를 짊어지고 공왕 앞에 나설 용기를 냈으니, 자신만 겁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쇼케이처럼 자신 또한 이 죄를 짊어지고 새로운 봉왕 앞에 나서야만 한다.
겟케이가 쇼케이에게 사죄해야 할 일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대의 아버님 것을 훔치겠다. 부디 용서하시오." - 142

- "고작해야 길에서 주웠을 뿐인데."
길에 쓰러져 있기에 주웠다. 딱히 칭찬받을 만한 일은 아니라고 라쿠슌은 생각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쓰러진 사람을 못 본체 지나갈 수 없다. 데려와서 간병 정도는 누구든 한다. 자신이 한 일 이상의 것을 받았다. - 171

- 이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연호를 적락으로 한다고? 난 몰라. 아무 얘기도 듣지 못했다고. 연호는 왕조를 쇄신할 때 왕이 만민의 행복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새로운 시대를 높이 기리기 위해 붙이는 엄숙한 거야. 사적인 감정으로 시답지 않은 이름을 짓는 게 아니야. 정말 이것만큼은 꼭 충고할게. - 177

- 그래도 결국에는 언제나 이곳으로 돌아온다.
다른 나라를 보면 울적해진다. 나라는 무너지기 쉽고, 백성은 언제나 살얼음 위에 서 있다. 끝나지 않는 왕조는 없다.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이곳은 괜찮다. 적어도 서로 지탱해주는 한은 괜찮다. - 362


2023. mar.

#십이국기 #오노후유미 #화서의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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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남의 날개 십이국기 6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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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국의 부유한 상인의 집안의 막내 딸의 왕도를 향한 여정.

명민하지만 아직 세상의 물정에 밝지는 않은 소녀지만, 봉산을 향한 여정에서 진정한 왕의를 깨닫는 아이 슈쇼.
혼자만 호의호식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자각 자체가 왕의 자격이라고나 할까.
성장하는 모습에 혹시라도 왕으로 선택되지 않는다면 어쩌지 하는 염려가 생기기도 하고,
그렇더라도 뭐든 해낼 인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며 읽었다.

그 여정을 돕는 간큐와 리코도 매력적인 캐릭터다.

- 슈쇼 같은 백성이 있으니 공국도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군.
이런 용기를 어른들도 보고 배웠으면 좋겠어. 온 나라의 어른과 아이가 모두 슈쇼 같다면 나라가 망할 일도 없을 거야. - 128

- 무엇 때문에 봉산에 가는지 잊었어?
잊지 않았어. 그러니까......
왕조의 존속을 위해, 국토의 안녕을 위해, 왕은 피를 흘리도록 명령하지. 설령 왕 자신이 명령하지 않더라도 신하가 왕을 위해 그것을 행하면 유혈의 책임은 왕에게 돌아가. 어떠한 의미로도 옥좌는 피를 흘리지 않고 존속할 수 없어.
슈쇼는 쓰러진 나무 위의 그림자를 응시했다.
자신을 위해 다른 피를 흘리게 한다. 옥좌란 그런 거야.
나는......
슈쇼는 하려던 말을 삼키고 눈을 내리떴다.
그러네...... 그럴지도 몰라. - 174

2024. mar.

#십이국기 #도남의날개 #오노후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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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쇼의 새 십이국기 5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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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국기 세계 속 여러 직군의 사람들 이야기.

화살의 과녁이 되는 도자기 새를 만드는 히쇼, 중죄인들을 심판하는 사법관 에이코, 삼림을 관찰하고 생태계의 변화를 감지하는 생태학자 효추, 책력을 만드는 곳에서 소일을 하며 돕는 렌카.

나라의 흥망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소임에 집중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십이국기의 주요 줄거리도 흥미롭지만, 이런 단편들도 몹시 읽는 재미가 있다.

- "...... 미안하군. 일부러 걸음하게 했는데 솔직히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될지 모르겠어. 다만......"
마른침을 삼킨 히쇼를 향해 왕은 말했다.
"...... 가슴이 아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철렁했다. 저도 모르게 쫑긋 세운 히쇼의 귀에 아주 희미한 한숨이 들렸다.
"덕분에 잊지 못할 것을 보았어. ......고맙군."
진지한 목소리를 들은 순간, 무슨 까닭인지 히쇼는 통했다고 생각했다. 도작으로 이야기를 전하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왕은 그것을 만든 히쇼의, 쇼란의, 세이코의 마음을 이해해 주었다. - 76

-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등짐이 한층 무거워진다. 청조가 자라는 통나무 한 개. 고작 그뿐인 짐이지만 그것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얹혀 있었다.
걱정해 준 여관집 소년, 소년을 거두어 기르던 주인장, 효추 같은 나그네를 위해 불을 피우던 노부부. 쓰러질 때까지 혹사한 애마, 그리고 육 년 동안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쉬지도 않으며 약을 찾은 호코와 교케이, 서도(하관)들. - 261


2024. mar.

#히쇼의새 #오노후유미 #십이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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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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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의 죄'를 두고 내내 괴로워했던 사람(파트너 후나하시 유코 선생의 말)인 서경식 선생의 마지막 책이 되었다.


더 나빠지는 세계에 대해, 이미 충분히 나빴던 과거에 대해 늘 마음 속 큰 짐을 지고 살았던 학자.

그 어두운 마음이 선생의 일생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지 충분히 느껴졌다.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가득한 그 마음.


미국 인문기행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세 가지인데, 형들의 구명을 위한 정치적인 방문, 트럼프 당선 직전의 어수선한 시기의 방문, 전 세계적 전염병 시대의 방문이다.

이 세 시기 모두 희망적인 전망을 갖기에는 우울한 시기이고, 냉소와 허무에 빠져있으면서도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는 물어보나 마나 일듯 하다.

재일 조선인으로, 부당한 일을 겪는 가족의 일원으로, 인간에 대한 절망에 괴로워하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온 선생에게 이제는 안식이 찾아온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존경하는 학자의 죽음을 기리는 마음으로 읽었다.


벤 샨,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해 알게 된 점이 소중한 부분.


- '맺음말' 글의 최종판이 도착한 날이 2023년 12월 17일이다. 다음 날 영면하셨으니, 이 책의 맺음말 <'선한 아메리카'를 기억하기 위하여>는 그렇게 선생의 마지막 원고로 남았다. - 여는 글 중


- 그 와중에도 나는 머무르던 도시에서 짬이 나면 혼자서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결사적인 반독재 투쟁이 이어지고 있는 시기였다. 형들은 옥중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걸맞은 바른 처신이었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나를 괴이하다 보았을 것이다. 나는 스물네 시간을 투쟁에 바치는 모범적인 활동가상에서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다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듯, 좋은 미술 작품과 조우하기를 바라며 떠돌아다니는 일이 내 자신의 생존에 필요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 19


- 8월 21일 아키노가 탄 중화항공 비행기가 마닐라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세 명의 군인이 진입하여 그를 밖으로 끌어냈다. 직후 총성이 들렸고 아키노는 머리를 맞고 즉사했다. 동행했던 취재진이 사건의 자초지종을 목격했고 아키노의 죽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렇게 너무나 당당하게 벌어진 살해를 '암살'이라 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여러 사람이 보고 있는 대낮에 공공연히 자행된 살인이었다.

나 역시 일본에서 그 보도를 반복해서 보았다. 세계는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나 자신도 그런 피바다에 빠져 익사할 것만 같았다. 내가 처음 서양 미술 순례를 떠난 것은 1983년 10월. 아키노 살해 사건으로부터 두 달 정도 지난 뒤였다. 일시적이나마 '다른 세계'로 몸을 옮겨가고 싶었고, 어떻게 해서든 숨을 쉬고 싶었다. 하지만 미술 순롓길에서 닿는 곳마다 나를 끌어당긴 작품 역시 역사 속 잔혹한 장면을 그린 피투성이 그림들이었다. - 59


- 당시 여행 일기를 찾아 꺼내 보니, 반복해서 "지쳤다."라고 써놓았다. - 95


-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국가 일본은 근대 이후, '문명화(유럽적 보편주의)'를 구실로 삼아 자기중심적 국가주의(초개별주의)에 입각한 침략을 거듭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일본적 보편주의, 즉 천황제를 최고 가치로 하는 세계 질서를 그들은 '팔굉일우(온 천하가 하나의 집이라는 뜻)'라고 칭했다. 중국과 조선 등 아시아 민족은 이러한 보편주의에 따라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피지배민족의 독립 요구를 '민족주의적 편견'으로 취급하며 탄압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근본적으로 부정당해야 마땅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천황제가 존속되었듯, '일본적 보편주의' 또한 살아남았던 것이다. 코스타리카 대학 강연에서 나는 이 점을 지적했다. - 139


- 나치ㅣ 독일의 잔학함과 냉혹함을 그 증거로 내놓는다 해도 지금은 누구도 진심으로 충격을 받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치 패망 이후에도 이와 동등한 잔혹과 냉혹함이 세계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 145


- 예술에 전쟁을 억제하는 힘이 있는지, 나쁜 권력을 타도하는 힘이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예술은 언제나 어떤 악몽의 시대에도 관용, 연대, 공감을 추구하려는 인문 정신이 살아 있음을 가르쳐준다. 예술에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 157


- "파멸을 향해 갈 운명임을 알고 이"다면서도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거의 승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진실을 말하겠다는 의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한 편의 시와 같다. - 233


- 단절된 미국은 쇠퇴의 길을 차근차근 밟으며 전락하는 중이다. 다만 이 단말마의 고통은 오래 지속되면서 수많은 부패와 파괴를 거듭하며 인류 사회에 심대한 손상을 입힐 것이다. 미국이 (그리고 세계가) 변한다는 것은 그 정도로 멀고 험난한 길이다. - 251


- 한국에서 유학 중이던 나의 두 형이 사상범으로 구속, 투옥되어 한 사람(서승)이 군사재판을 받고 한때 '사형'선고까지 받은 시기 말이다. 그는 이후 '무기징역'이 확정되었고, 다른 형(서준식)은 징역 7년을 선고받았지만 전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기를 채우고도 석방되지 못한 채 20년 가까이 옥중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때 나는 일본에서 정신을 소모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갈피를 못 잡고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밤이 이어졌다. 어두운 방에 누워 '잠을 자야 한다.'라고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귀에선 심장의 고동 소리만 끊임없이 들려왔다. 나는 스스로에게 되뇔 뿐이었다. 아무리 끔찍한 일이라도, 아무리 부조리한 일이라도 이렇게 실제로 일어나버린다고. - 256


- 하루하루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내 경험의 작은 조각이라도 제시하여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 그 자체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 그것이 나의 끝나지 않는 '인문 기행'의 한 페이지다. - 262


2024. mar.


#나의미국인문기행 #서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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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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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에 기반한 과학과 인류의 복잡한 줄다리기 이야기를 본 기분.

사실 초중반까지 뭐 그냥저냥 읽었달까, 그런데 잠자리에 들어 누워 읽으면서 졸음은 몰려오는데도 왜인지 책을 덮지 못하고 끝까지 내달리듯 읽게 된다.

과학적 성취에 대한 열망 앞에 전 지구적 재난이 될 연구를 멈추지 않는 광기랄까.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일이 자명한데도 그 욕망은 과연 무엇인지...

그러다 막바지에 인간과 AI의 대결, 알파고와 이세돌의 이야기는 당시 그 대국을 지켜본 입장으로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이 재밌는가에 대한 것은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렵겠다. 읽기를 멈출 수 없기는 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드: 핵무기와 냉전> 1화에 2차대전 정세와 핵의 등장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에는 언급이 없어 몰랐는데 라스엘라모스의 첫 원폭실험 피해자가 있었다. 60여 킬로미터 근처에서 여학생들의 댄스캠프가 열렸고, 밝게 빛나는 밤하늘에서 뜨거운 눈이 내렸고, 한 명을 제외한 열댓명의 소녀들과 캠프관계자가 30세 이전에 모두 사망했다. 근방 200여 킬로미터 반경에는 50만명의 뉴멕시코, 텍사스, 멕시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 아! 내가 뭘 얼마나 바꿀 수 있었겠는가? 불장난을 하던 게 야노시뿐이 아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의 세대 전체가 지옥의 사냥개들을 풀어놓았다. 그럼에도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는 내가 그의 첫 스승이어서다. (...) 수학이란 신의 정신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숭배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수학에는 진정한 힘이 깃들어 있으며, 그 힘은 손쉽게 악용될 수 있다. 그 힘은 오직 인간만이 소유한 능력에서 탄생했는데, 은혜로운 우리의 신은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과 발톱 대신에, 그만큼 위험하고도 치명적인 힘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 그가 가진 능력이란 참으로 진귀하고 아름다워서 지켜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 나는 그것을 보았지만, 다른 것도 보았다. 우리 모두를 묶어두는 자제력을 상실한, 사악하고 기계 같은 지성. 그런데 왜 침묵했느냐고? 그가 너무 우월했으니까. 나보다도, 우리 모두보다도. - 110

- 대개 수학자들은 자신이 증명할 수 있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폰 노이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증명한다. - 115

- 조니는 내가 미국을 경멸한 만큼이나 미국을 사랑했다. 그 나라가 그에게 무슨 짓인가를 한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의 실성한 듯 무모한 낙관주의와 잔인함을 뒤에 감춘 천진난만함이 조니 내면에서 최악의 모습을 끄집어냈다. 잠들어 있던 악마를, 그가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악몽이 속삭이던 은밀한 욕망을. 그는 유럽에 있을 때와 달라졌다. - 155

-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인간이란 존재는 완벽한 포커 플레이어가 아니다. 대단히 비합리적이기도, 의욕만 앞서기도, 감정에 좌우되어 온갖 모순에 종속되기도 한다. 사방에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유발되는 것은 바로 그래서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이성의 광기 어린 꿈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자비이자 이상한 천사이다. - 177

- 그는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이후에 그는 말했다. ˝알파고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사람들이 기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무력감과 공포감을 느꼈던 거다. 인간이란 존재가 너무나도 나약해 보였으니까. 이 승리는 우리가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증거다. 시간이 지나면 AI를 이기기가 훨씬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한 번의 승리......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한 번으로 충분했다.˝ - 390

- 데이비드 실버는 알파고 시스템으로 대국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려 이세돌과 알파고의 수를 다시 놓으면서 ‘신의 한 수‘를 가치망과 정책망이 과연 어떻게 평가할지 보자고 했다. ˝거기까지 돌려봤어?˝ 컴퓨터가 무한한 연산 능력을 가동해 끝없는 확률의 선을 살피는 동안 데이비드 실버가 팀원들에게 물었다. ˝그 수가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된대?˝
˝0.0001.˝ 주니어 연구원이 대답했다.
침묵이 흘렀다. 만분의 일. 두번째 대국에서 알파고가 획기적인 37수를 두며 바둑계에 존재감을 알렸을 때 자신의 수에 부여한 확률과 정확히 똑같았다. 결국엔 알파고 네트워크도 중국 프로 기사 구리가 이세돌의 수에 붙인 이름을 인정한 셈이었다. 그것은 실로 신들린 움직임. 신의 손길이 닿은 한 수였다. 인간은 만 명 중에 단 한 명만이 떠올릴 수 있었던 수, 이세돌의 끼움 수에 알파고가 허둥댄 것은 그래서였다. 인간의 경험치를 훌쩍 뛰어 넘은 것은 물론, 알파고의 무한해 보이는 능력조차 초월한 수였으므로. - 392

2024. mar.

#매니악 #벵하민라바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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