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왕국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0
알레호 카르펜티에르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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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어떤 이슈가 있었던 상황에서 식민 상황의 아이티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런 의지가 사라진 후에야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것을 꽤나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심드렁하게 읽게 되었다.

그리고 정작 작가는 아이티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프랑스와 러시아계라는 사실이 조금 더 심드렁함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부두교 사제 마캉달의 봉기, 부크만의 반란, 독립 이후 앙리 크리스토프와 지배층인 물라토의 수탈 등은 식민 역사들이 가지고 있는 비슷한 형태와 흐름을 보여준다.

티 노엘의 삶이 노예해방 후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은 점은 수탈 계층이 존재하는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백인들의 하느님은 범죄를 명령합니다. 우리의 신들은 우리에게 복수를 요구합니다. 우리의 신들이 우리 팔을 이끌어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겁니다. 우리 눈물에 목말라하는 백인들 하느님의 상을 부숴버리세요! 우리, 우리 내부에서 자유를 위한 외침을 들어봅시다! - 64

- 티 노엘은 비록 유산을 다 써버려 최우에는 빈곤에 이르긴 했으나, 자신이 받은 것과 동일한 유산을 남겼다. 참으로 많은 것을 겪은 육신이었다. 이제야 그는, 인간은 자신이 누구를 위해 고통을 받고 희망을 품는지 결코 모른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인간은 자신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고통받고 희망을 품은 채 일하며, 그 모르는 사람들 역시 행복하지 않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고통받고 희망을 품은 채 일을 할 것인데, 그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에게 부여된 행복 저 너머에 있는 행복을 늘 열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위대함은 분명 현재의 것을 개선하고자 하는 데 있다. 스스로에게 여러 과제를 부과하는 데 있다. 하늘의 황국에는 쟁취해야 할 만큼 위대한 것이 없는데, 그곳에는 모든 것의 위계가 정해져 있고, 알 수 없는 것이 없고, 존재가 무한하고, 희생이 불가능하고, 휴식과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온갖 고생과 의무로 힘들어하고 불행을 겪으면서도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재앙을 겪으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인간만이 이 세상의 왕국에서 자신의 위대함, 최상의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 160

- 1804년에 라틴아메리카 최초로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한 아이티는 1492년에 콜럼버스에게 '발견'되어 최초의 식민지가 건설된 이래, 에스파냐와 프랑스의 침탈, 영국,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 온 해적들의 노략질까지 모든 종류의 제국주의적 약탈을 겪음으로써 카리브해 지역이 가진 모든 문제를 대변할 수 있는 상징적인 국가가 된다. 또한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전쟁 등으로 압축되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에 이르는 세계사의 격동기에 라틴아메리카 최초로 독립과 노예해방을 이뤄낸 혁명의 땅이기도 하다. (...) 1834년, 프랑스는 아이티의 독립을 인정하지만 그 대가로 아이티 노예주들에 대한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한다. 아이티는 독립을 인정받기 위해, 그리고 경제적 봉쇄를 풀기 위해 배상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백 년 동안 아이티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아이티의 혁명은 다른 국가의 노예해방에도 영향을 미친다. 많은 국가의 노예들이 아이티 혁명에서 영감을 받아 혁명을 시도하고, 영국은 1807년에 노예무역을, 1834년에 노예제를 폐지한다. 하지만 흑인의 대부분이 농민이고 물라토가 사회적 자본과 토지를 독점하는 식민지의 계층구조는 변하지 않았다는 한계도 있다. 아이티 독립 후에도 이들의 갈등은 지속되어 두 파벌로 나뉘어 싸움을 지속한 것이다. - 해설 중

2024. jan.

#이세상의왕국 #알레호카르펜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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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영양제 - 영양제 먹었니? 아무튼 시리즈 61
오지은 지음 / 위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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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오지은의 에세이를 우연히 접해서 읽게 된 후 꾸준한 팬을 자처하고 있다.
당시 심리적 상태와 딱 맞아떨어졌는지 위로를 많이 받았는데, 사실 이제 다시 읽어보면 조금 많이 감상적이다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여튼, 그렇게 알게 된 그는 또 상당한 유머감각을 지녔기에, 이번 영양제를 통한 인생의 통찰이랄까 하는 지점은 몹시 유쾌하고 그럼말고...라는 정서가 담겨 있어서 복잡한 머리를 쉬게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영양제에 상당부분 의지하는 바쁘다 바뻐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생활인이지만, 그 영양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음을 간과하지 않고 있고, 그럼에도 그를 통한 위안이 일말의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신봉하겠다는 그런 배짱이 있는 글이다.

이집트인이나 그리스인이나 동의보감에서 언급하는거면 솔직히 진심이라 봐야한다는 말이 너무 웃기지만, 사실 그런 정보에 나도 종종 홀리곤 한다. 영양제라는 것의 그런 면을 같이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을 읽는데 즐거운 기분이 드는 포인트.



- 99만 건의 메타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영양제는 사망 위험을 줄이거나
심장질환을 예방하는 데 별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한편, 칼슘과 비타민D를 함께 섭취할 경우
뇌줄중 발병 확률이 높아질 수도 있다. - 존스홉킨스 의대 연구진, 2019년 미국 내과학회 발표 중에서

- 알고 있다. 적절한 운동과 규칙적인 생활, 신선한 재료로 만든 균형 잡힌 식사,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환경, 충분한 휴식, 매일 15분 이상 햇빛을 쬐는 생활을 한다면 영양제 안 먹어도 된다는 것을. 하지만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는 넓은 강이 있다. 그리고 나는 주로 이쪽 강가에 쭈그리고 있다. 어떻게 안 될까...? 저 너머에 어떻게 좀 다다를 수 없을까? - 10

- '아님... 말고...'는 영양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밀크시슬이 '확실히 도움이 된다!'의 영역에 있다면 간 치료제가 되거나 항생제가 되거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되었을 것이고 그럼 화이자가 진작에 특허를 냈을 것이고 주사 한 대에 98만 원 정도 하겠지. 실리마린 그런 기적의 물질이라면 화이자가 아니더라도 다른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200개들이 한 병을 3만 원 정도에 올리브영에서 살 수 없을 것이다. 간단히 살 수 있다는 것은,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라는 뜻이다. 난 그래서 좋아하지만. - 22

- 여행을 갈 때는 영양제를 어떻게 가져가냐는 질문을 들었다. 이렇게 기쁜 질문을 받다니. 나는 할 말이 너무 많고 흥분이 되어 헙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오타쿠답게 우선 콧등의 땀을 닦았다.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 69

- 서민의 욕망은 시대에 따라 바뀐다. 그 이유는 새로운 시대가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두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마른 몸, 어떤 때는 풍만한 몸, 어떤 때는 병약한 아름다움, 어떤 때는 건강한 생기. 누군가가 새롭게 열광할 거리를 만든다. 왜냐하면 새로운 기운으로 새롭게 돈을 써주길 바라니까. 올해는 아무래도 글루타치온인 듯하다. - 103

- 인간은 항사 무언가를 믿고 싶어 한다. 인간은 매력적이고 싶어 한다. 그걸 위해 인간은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한다. 가능하면 살짝, 티가 나지 않게.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누군가는 돈을 번다. 나는 쓰는 쪽이고. - 112

- 원고를 전부 읽은 편집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영양제를...... 먹으라는 거예요, 먹지 말라는 거예요?"
나는 대답했다.
"바로 그것이 영양제의 핵심입니다."
편집자는 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135

2024. jan.

#아무튼영양제 #오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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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3
아모스 오즈 지음, 윤성덕 외 옮김 / 민음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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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문으로 구성된 해체된 가족의 화합? 과정을 그리고 있다.
민음사 유튜브인 세문전월드컵? 을 보고 관심이 생겨 사게 되었는데, 소개 내용의 유쾌한 측면도 담겨 있다.

그 안에 시오니즘에 대한 여러 단면들이 담겨 있어서, 조금 복잡한 마음으로 읽게 된다.
다 읽고서도 요즘처럼 이스라엘과 시오니즘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때에, 정통 이스라엘 작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보아즈를 통해, 꽉 막힌 시오니스트들과는 다른 새로운 세대를 그리고는 있지만, 현재 그 지역의 상황은 정반대이니까.

날이 잔뜩 서있던 초기의 편지들이 서신이 왕래함에 따라 오해가 해소되고, 서로를 이해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담기는 것이 흥미롭다.

이혼가정의 소외된(되었다고 믿는) 반항적인 아들 보아즈, 어딘지 무기력해 보이는 엄마 일라나, 냉정하게만 보이던 아빠 알렉, 꽉 막힌 새아빠 미쉘. 
알렉과 오랜 비지니스 관계인 작하임, 주변인으로 간간이 등장하는 가족들.

- 그리고 너는 알았다. 밤이라는 것을, 나뭇잎조차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도.
오직 내 영혼만 귀를 기울이며 아파한다.
오직 내 위로 네 울음소리가 맹금처럼 올라가고,
오직 나를 잡아먹기로 선택한다.
왜냐하면 나는 갑자기 두려워할 테고 무언가 잃어버린 자처럼 갈 테니
그리고 나를 훑고 지나가는 눈먼 자의 두려움.
사방에서 네 목소리가 나를 부를 그때이니
맹인이 길을 잃게 만드는 소년처럼.
그리고 너는 얼굴을 가렸고 아무 말도 없었다.
그리고 너는 그 깊은 어둠 속에 휩싸였고 너무 멀어서 슬퍼했다.
다 잊힐 때까지, 다 끝날 때까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때까지. - 나탄 알테르만, [그 울음소리], 눈의 행복 중에서

- 자존감, 즉 자기 존재에 대한 정당성과 자기 인생의 본질적인 의미를 잃으면 잃을수록 자신의 종교, 민족, 인종, 신념이나,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집단 활동의 정당성은 동일한 정도로 상승하고 확장되고 미화되고 신성해진다. - 349

- 샬롬,
우리 전통 중 [내 영혼아 송축하라]라는 노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103장)
자애롭고 자비로우시다, 그분께서. 화를 오래 참으시고 은혜가 풍성하시다. 그가 영원히 대적하지 않으시고 끝날까지 진노하지 않으신다. 우리 죄를 그대로 우리에게 갚지 않으시고 우리 악행을 그대로 우리에게 돌려주지 않으신다. 하늘이 땅으로부터 높은 것처럼 그의 은혜가 그르르 두려워하는 자에게 크시다. 동쪽이 서쪽에서 멀리 있는 것처럼 그가 우리 범죄를 자기로부터 멀리 밀어내셨다.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자비로운 것처럼 그분이 그를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그가 우리 됨됨이를 아셨고 우리가 먼지라는 것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의 날들 중 들풀과 같으며 들판의 꽃처럼 꽃을 피운다. 바람이 그 위로 지나가면 사라지니 그가 있던 자리에서 그를 찾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의 은혜는 끝날까지 그를 두려워하는 자들 위에 있을 것이다. 아멘. 
미카엘 쏘모 - 443

2024. jan.

#블랙박스 #아모스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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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절친 - 예술가의 친구, 개 문화사
수지 그린 지음, 박찬원 옮김 / 아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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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문화사에 대한 책은 여럿 읽었는데, 개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 읽어 보았다.

큰 재미는 없고, 애초에 왜 이 책을 구매했는지 한참을 생각해 보다가

좋아하는 작가의 추천이었던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책은.... 되도록 주체적인 결정을 내려 사자.

2024. jan.

#나의절친 #수지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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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곳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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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풍경은 크게 다른 게 없다고 해도.
극한의 현실성이 느껴지면 읽으면서 피로도가 크게 상승한다.
대재앙에 대한 상상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인류에게 딱히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진절머리 내며 읽다가 결국 뭔가 마음속에 남는 것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사랑에 대한 것이 한 줌 남았기 때문이다. 

최진영의 소설은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건조한 정서 그런 것이 있는 것 같다.

너나 나나 몹쓸 인간이라는 자조와 책망이 눈빛에도 말투에도 깃들어 있었다. 안다. 불행해서 그렇다는걸. 죽음에 억눌려 있다는걸.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고 미래를 전망하기도 힘들어서라는 걸. 그래서 난 더더욱 불행을 닮아 가고 싶지 않았다. 삶을 업신여기고 싶지 않았다. 죽음이나 삶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그것을 어떤 잘못이나 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는 엄마의 죽음도 나의 삶도 견뎌 낼 수 없다. - 37 

불행이 바라는 건 내가 나를 홀대하는 거야.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고 망가트리는 거지. 난 절대 이 재앙을 닮아 가진 않을 거야.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을 거야. - 55

봄이 오면 땅과 강이 녹고 세상은 푸르게 변할 것이다. 꽃은 피고 햇볕이 내리쬐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인간끼리 아무리 총을 쏘고 파괴하고 죽이고 죽여도 자연은 변함없이 자신의 일을 할 것이다. 나는 머물러 봄을 맞고 싶었다. 나무와 꽃과 청량한 강이 있는 곳에서 내가 사람인지 바람인지 모른 채 살고 싶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를 만나고 싶었다. - 112

밤의 적막은 낮의 그것과 한참 달라서 한번 무서운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정신병에 걸린 듯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럴 때면 해민을 껴안았다. 해민을 껴안는 방법으로 나를 안았다. 단과 해민이 곁에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두 사람이 아주 먼 우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곁에 있어 걱정과 온기를 나누지만 오직 그뿐, 각자의 두려움과 고통을 껴안을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인 머나먼 우주. - 145 

2024. jan.
#해가지는곳으로 #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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