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 십이국기 8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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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의 장군 아센이 모반을 일으키고 기린의 뿔을 잘라버린다. 위기의 기린은 명식을 일으켜 다시 봉래로 돌아가버리고, 큰 부상을 당한 리사이는 경왕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목숨을 걸고 경국으로 간다.

함부로 타국에 진군할 수 없다는 천계의 법칙 때문에, 고심하던 십이국 중 여러 나라의 이들은 다이키를 찾아 봉래에 수색대를 보내기로 한다.

한 번도 힘을 모아 본 적 없는 십이국 세계관 속에서 태과인 경왕이 나서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천계의 뜻에 아무 의심이 없던 이들의 마음속에 작은 파문을 던지는 일.

새로운 십이국의 세계관이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 어째서 요마가 있는지, 어째서 왕에게는 수명이 없는지, 어째서 생명은 나무에서 탄생하고 무엇으로 기린은 왕을 고르는지. 당연시해온 모든 것을 이상하게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굳이 말하자면 기분 나쁜 위화감이다. - 308

- "이토록 비싼 대가를...... 심지어 이유 없이 요구하면서, 하늘은 그렇게 고른 왕에게 아무 도움도 주시지 않아요. 교소 님이 왕으로서 무슨 잘못이 있었다는 겁니까. 물론 결점 없는 왕은 없겠지요. 하늘이 보기에 포기할 만한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아센을 묵인하십니까? 이렇게나 백성이 죽고 괴로워하는데 어찌하여 정당한 왕을 돕고, 위왕을 벌하시지 않는 것입니까!"
"리사이......"
"하늘에게 왕은, 우리는 대체 뭡니까?"
요시는 당돌하게 생각했다. 신의 정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 세계는 천제가 다스리는 국토인지도 모른다.
(....)
요시는 일찍이 이와 비슷한 절규를 경국 도시에서 들었다. 
"리사이......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어. 하지만 딱 하나, 지금 깨달은 바가 있어."\
"깨달은 바요?"
"하늘이 있다면 완벽하지 않다. 존재하지 않는 하늘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지만, 만약 존재한다면 반드시 잘못을 저지르겠지."
리사이는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늘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하늘이 사람을 구할 리가 없어. 하늘이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반드시 잘못을 저지른다."
"그게...... 무슨......"
"사람은 스스로를 구하는 수밖에 없다는 소리야, 리사이." - 403

2023. mar.

#십이국기 #오노후유미 #황혼의기슭새벽의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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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아 만든 천국
심너울 지음 / 래빗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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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 적용된 세상.
그 안에서 창조된 캐릭터들의 연작.

결국 모든 건 자본에 의한 계급 이야기라는 것.
그 안에 윤리가 조금 있으면 다행이고...
현실적인 이야기에 마법 한 스푼.

다 읽고 나서야 생각났는데... 서영락 교수, 그 서영락 대리 그건가? ㅋㅋㅋ

- "네가 혼자 서울에서 산다니까 걱정이 돼서 그러지. 도시 사람들이 얼마나 계산적이고, 응, 자기밖에 모르는데."
"엄마, 걱정 마. 당연히 가서 잘하지. 내가 누구야. 허무한이잖아, 수재. 나는 앞으로 기득권이 될 거라구."
허무한의 마지막 한마디를 들은 그녀의 얼굴에 알 듯 말 듯한 쓸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들떠 있던 허무한은 그런 소소한 부분까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 15

- 상관이 있지, 왜 없냐? 봐, 네가 말한 품위가 뭐냐, 콤플렉스가 없다는 거 아니냐. 자기 인생에 흠잡을 게 없으면 남이랑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지. 비교할 필요가 없으니까 남한테도 관대하고. 그런데 지현이는 딱히 꿀리는 거 없이 좋은 환경에서 살아왔으니까 콤플렉스가 없는 거지. - 29

- 서영락 교수는 틈만 나면 말했다. 마력은 인간 세상을 훨씬 더 낫게 할 수 있는 힘이지만, 너무나 비합리적인 존재, 즉 인간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문제라고. 인간은 필연적으로 생물학적인 욕망과 한계에 매여 사는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이 그런 욕망을 채우는 데 쓸데없이 낭비되고 있다고. - 156


2024. mar.

#갈아만든천국 #심너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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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도박 페이지터너스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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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의 횡령 자금을 빌려주기 위해 가볍게 생각하고 뛰어든 도박판.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자만한 자의 심리가 한밤의 도박판에서 어떻게 흘러가고, 비극의 최후를 맞이하는지 보여주는 소극.

몇 번이나 도박판을 벗어날 기회가 있었지만, 하찮은 호승심과 욕심이 인간을 어떤 모습으로 잠식해가는지 잘 보여준다.

애초에 반성과 성찰이 없는 가볍고 속물적인 인물인 소위는 결국 망하겠다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돈을 모두 잃고 전날 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빚더미에 앉고나서도 수치심을 못 느끼지만, 이제는 돈 많은 숙모가 된 레오폴디네를 만나 하룻밤을 보내고 금전적 도움을 바라고 그것이 결국 몸을 파는 일이었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굴욕과 수치심을 느끼는 지점이 여러 생각이 들게 한다.
돌아보면 과거에 자신의 행동을 그대로 돌려받았을 뿐인데.

세상살이에 자만하는 어리석은 젊은 남자의 전형을 주인공 삼아 몰락을 그린 이야기.


- 아, 아무런 망설임 없이 돈을 펑펑 쓰는 희열을 만끽하고 싶다. 하지만, 빌리, 조심해라. 조심해야 한다. 그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노름에서 딴 돈을 전부 베팅하지 않고 절반 정도만 걸기로 굳게 결심했다. - 45

- 이겼다. 이런 멍청이! 잃은 돈을 전부 되찾을 기회였는데! 빌리는 대범하게 베팅하지 못한 것을 몸서리치게 후회했다.
"다시 이거 전부 올려!" 이번에도 그가 졌다.
"다시 한번 이거 다 걸어!"
빌리가 큰 금액을 계속 베팅하자, 영사가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다.
"카스다 소위,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야?" 군의관이 큰 소리로 외쳤다.
빌리는 크게 웃었지만,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코냑을 마신 탓에 판단력이 흐려졌나? 맞다. 그는 당연히 실수했다. 1천 굴덴이나 2천 굴덴의 큰돈을 단번에 베팅하는 건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영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원래는......"
그런데 영사가 빌리의 말을 가로채며 이렇게 말했다.
"얼마를 베팅했는지 몰랐다면 베팅 취소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빌리가 이렇게 대꾸했다. " 받아들인다고요? 한번 베팅했으면 그만이지 물릴 수는 없지요."
이렇게 말한 사람이 정말 나였나? 내 목소리가 맞나? - 52

- "그만 중단하지 그래." 빔머 중위가 빌리에게 다시 경고했으며, 이젠 거의 명령하는 말투였다.
군의관도 끼어들었다. "본전은 찾은 듯하군."
군의관의 말에 빌리는 화가 났다. 본전은 찾았다니! 이걸 본전이라고 하다니! 15분 전만 해도 나는 부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알거지가 됐어. 이런 걸 두고 본전이라고! - 56

- "너무 적어? 얼마를 더 줘야 하는 건데? 1천 굴덴이나 줬잖아! 옛날에 너는 나에게 고작 10굴덴 줬어. 기억 안 나니?"
빌리가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레오폴디네는 여전히 차분한 모습으로 방문 앞에 서 있었다. 갑자기 1천 굴덴 지폐를 집어 들어 와락 구긴 빌리는 구겨진 지폐를 그녀의 발밑에다 던져버리겠다는 듯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자 방문 손잡이를 놓고 빌리에게 다가온 레오폴디네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지난 일을 두고 당신을 탓하진 않겠어. 그 당시에 난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하지 못했어. 10굴덴......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니, 오히려 많다고 생각했지."
빌리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더ㅓ 정확하게 말하자면, 10굴덴 받은 것도 과분하다고 생각했던 거야."
레오폴디네를 바라보던 빌리가 눈길을 아래로 떨구었다. 그는 그제야 감이 오기 시작했다.
"내가 그걸 몰랐네." 그의 입에서 힘없이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러자 레오폴디네가 말했다. "이제야 알았구나.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건데." - 136

2024. mar.

#한밤의도박 #아르투어슈니츨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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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서의 꿈 십이국기 7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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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으로 다시 돌아온 태과 기린 다이키.

실도한 부왕을 침탈한 겟케이를 이제는 이해하고 경국의 지지를 전하는 서신을 보내는 쇼케이.

유학 중인 라쿠슌과 서신을 나누는 경왕 요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라쿠슌이 더 자주 등장했으면 좋겠지만... 그건 개인적인 욕심. 그나저나 연호에 라쿠슌의 이름자를 넣은 왕이라니 너무 귀여운 관계.

십이국 여기저기의 작은 에피소드들.


- "쇼케이 님을 본받고 싶군......"
쇼케이가 자신의 죄를 짊어지고 공왕 앞에 나설 용기를 냈으니, 자신만 겁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쇼케이처럼 자신 또한 이 죄를 짊어지고 새로운 봉왕 앞에 나서야만 한다.
겟케이가 쇼케이에게 사죄해야 할 일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대의 아버님 것을 훔치겠다. 부디 용서하시오." - 142

- "고작해야 길에서 주웠을 뿐인데."
길에 쓰러져 있기에 주웠다. 딱히 칭찬받을 만한 일은 아니라고 라쿠슌은 생각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쓰러진 사람을 못 본체 지나갈 수 없다. 데려와서 간병 정도는 누구든 한다. 자신이 한 일 이상의 것을 받았다. - 171

- 이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연호를 적락으로 한다고? 난 몰라. 아무 얘기도 듣지 못했다고. 연호는 왕조를 쇄신할 때 왕이 만민의 행복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새로운 시대를 높이 기리기 위해 붙이는 엄숙한 거야. 사적인 감정으로 시답지 않은 이름을 짓는 게 아니야. 정말 이것만큼은 꼭 충고할게. - 177

- 그래도 결국에는 언제나 이곳으로 돌아온다.
다른 나라를 보면 울적해진다. 나라는 무너지기 쉽고, 백성은 언제나 살얼음 위에 서 있다. 끝나지 않는 왕조는 없다.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이곳은 괜찮다. 적어도 서로 지탱해주는 한은 괜찮다. - 362


2023. mar.

#십이국기 #오노후유미 #화서의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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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남의 날개 십이국기 6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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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국의 부유한 상인의 집안의 막내 딸의 왕도를 향한 여정.

명민하지만 아직 세상의 물정에 밝지는 않은 소녀지만, 봉산을 향한 여정에서 진정한 왕의를 깨닫는 아이 슈쇼.
혼자만 호의호식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자각 자체가 왕의 자격이라고나 할까.
성장하는 모습에 혹시라도 왕으로 선택되지 않는다면 어쩌지 하는 염려가 생기기도 하고,
그렇더라도 뭐든 해낼 인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며 읽었다.

그 여정을 돕는 간큐와 리코도 매력적인 캐릭터다.

- 슈쇼 같은 백성이 있으니 공국도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군.
이런 용기를 어른들도 보고 배웠으면 좋겠어. 온 나라의 어른과 아이가 모두 슈쇼 같다면 나라가 망할 일도 없을 거야. - 128

- 무엇 때문에 봉산에 가는지 잊었어?
잊지 않았어. 그러니까......
왕조의 존속을 위해, 국토의 안녕을 위해, 왕은 피를 흘리도록 명령하지. 설령 왕 자신이 명령하지 않더라도 신하가 왕을 위해 그것을 행하면 유혈의 책임은 왕에게 돌아가. 어떠한 의미로도 옥좌는 피를 흘리지 않고 존속할 수 없어.
슈쇼는 쓰러진 나무 위의 그림자를 응시했다.
자신을 위해 다른 피를 흘리게 한다. 옥좌란 그런 거야.
나는......
슈쇼는 하려던 말을 삼키고 눈을 내리떴다.
그러네...... 그럴지도 몰라. - 174

2024. mar.

#십이국기 #도남의날개 #오노후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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