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같은 자리
강선애 지음 / 마롱 / 2017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익숙한 관계가 무너질까봐 사랑을 망설이는 사이. 그러다가 흐지부지 시간은 자꾸 흐르고, 시간의 흐름이 무색해져도 감정은 무뎌지지 않기도 하는, 뭔가를 결심해야 하는데 그것마저 자꾸 미뤄지고 망설여지면서 또 시간은 흐르고... 어느 순간, 어떤 식으로든 결말은 있을 테지. 그렇게 지나고 보면 망설이던 그 시간이 가장 아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 미친척하고 밀어붙여볼 걸, 어차피 사랑인데 아닌 척하며 숨기는 것도 계속 못할 짓인데 솔직해져보기나 할 걸. 이렇게 우리가 이어질 사이였다면 좀 더 빨리 같은 마음인 걸 확인이라도 할 것을, 이라고 후회면서 말이다.

 

도윤과 재경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물론 가만히 듣고 있자니, 그 마음은 도윤 혼자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던 건지도 모르지만, 마음이 흔들린다고 여기던 그 순간부터 재경도 나서야했던 게 아닐까 살짝 나무라고 싶어지기도 한다. 친구였고, 친구이고, 앞으로도 친구여야만 하는 남자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게 해서는 안 될 일처럼 여겨지더라도 한번쯤은 용기 내어 보아야 할 타이밍이 아니었을까 하고...

 

재벌은 아니지만 나름 배경이 좋은 도윤이다. 재경과는 동갑내기지만, 좋은 회사에 다니고 외모 출중하고 인성까지 좋으니 나무랄 데가 없다. 반면 재경은 백화점 판매사원으로 일하면서 마음은 주저하는 조금은 소심한 성격이다. 오랜 시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지만, 도윤은 이미 한참 전에 마음을 드러낸 거나 다름없다. 주변의 다른 친구들도 둘이 한번 사귀어보라고 노래를 부를 정도였으니까. 소심한 재경이 뒤로 물러나지만 않으면, 도윤의 12년 짝사랑도 더 빨리 빛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어디 이야기가 그렇게만 흐를 수는 없었겠지. ^^ 물론 여기에는 재경이 친구였던 다른 남자와 사귀던 과거가 그 발목을 잡기도 했다. 재경의 기억이 친구와 연인이 될 수 없다는 규칙을 만든 결과가 되기도 했고, 좋은 관계를 깨트리기 싫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언제쯤 두 사람이 아무 걸리는 거 없이 편안하게 마음껏 사랑할까 싶은 바람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이들의 관계는 도윤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러나기만 하는 재경에게 도윤의 한없는 다가감이 없었다면,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불안함이 살짝 자리 잡기도 하지만, 도윤의 끈질긴 노력은 역시 빛을 내기 마련이었나 보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마음껏 사랑하기까지의 과정이 흥미롭기도 하면서, 추운 이 겨울에 부럽기도 하면서... ^^ 왜 내 기억 속에는 남자 사람 친구와의 로맨스가 없었던 건지 후회도 하면서 재밌게 읽었던 소설이다.

 

언제나 화두가 되는, 친구와 연인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를 충분히 전달하면서도, 은근한 설렘까지 한 번에 던져주는 이야기다.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관계의 변화와 마음의 정의까지 한꺼번에 정리하는 개운한 스토리에 이 늙은 여자 사람, 좀 설렜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무채색 결혼
향기바람이 / 로담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마도, 평범하게 사는 부부 대부분의 모습이 이러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두 사람의 시작이 지극히 보편적이지는 않았다. 선을 보고 결혼을 한다는 과정이 이상한 게 아니라, 시한부 환자인 어머니의 안심을 위해서 아내를 찾는 남자가 어디 흔할까. 또 그런 남자의 조건에 선뜻 손을 내민 여자는 어떻고. 주변에서 이런 사람 본다면 누군가는 분명 말리느라 정신없을 텐데, 그런데도 이상하게 평범해 보이지 않은 두 사람의 시작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동네에 작은 빵집을 운영하는 연정은 셀 수도 없을 만큼 선을 봤다. 무슨 일과를 치러내듯 선을 본다고 해도 무방하리. 이번에 만난 남자가 어떨지 기대하기보다는, 이런 과정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향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연애로 이어져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는 자기 사정을 그대로 다 말한다. 시한부 선고받은 어머니가 자기의 결혼을 보고 싶어 하신다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당신 아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신다고, 그 소원을 이뤄드리려고 이런 자리에 나온 거라고. 연정은 이런 사정을 미리 알지 못하고 나온 자리라서 순간 당황하지만, 시후를 한 번 더 만나보고 시후의 어머니를 멀리서 지켜보고 난 후 결심한다. 이 남자와 결혼하겠노라고.

 

그렇게, 서로의 필요(?) 때문에 두 사람은 결혼했다. 펀드매니저로 일하는 시후는 늘 바빴고, 연정도 익숙한 일상을 이어나갔다. 가끔 시후의 어머니를 찾아뵙는 것으로 마음을 다했다. 별일 없는, 무난한 일상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적응 기간이 없을 수 있을까. 두 사람 사이에도 소소한 감정싸움이 일어난다. 지다고 보면 왜 그랬을까 싶은 일들, 별거 아니었는데 말이 앞서나갔다는 후회, 화해하고 나니 괜히 더 유치한 언행이 부끄러워지는 시간.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일상이 공유되고,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고, 오늘이 평온해지는 날들이었다. 그 사이에 시후 부모님의 비밀과 시후의 옛 연인이 등장하면서 두 사람의 시간이 쌓이는 것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우리 사는 모습과 닮아서 오히려 공감되었다. 살면서 그런 바람 한두 번쯤 불어오는 거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

 

서로 맞춰가는 게 결혼이라고, 그렇게 맞춰가기 위해 크고 작은 충돌은 피할 수 없다고, 그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공유하며 '함께'라는 시간 또 만들어가는 모습이 찾아온다고. 그렇게 감정이 스며들고 또 쌓이면서 결혼이란 역사를 같이 쓰고 갈 두 사람일 테지. 그 순간 온전한 '내 편'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을 것 같다. 내가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든 순간의 위로가 되어줄 사람이라고, 이런 평범한 일상 이루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아가는 시간. 사소하고 또 사소해서 그 소중함을 차곡차곡 쌓는 모습이 예쁜,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읽으면서 내내 흐뭇해지는 기분에, 페이지 넘기는 일이 즐거웠다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짝사랑의 타이밍
YUN짱 / 조은세상(북두)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상하다 정말. 유치하기 그지없는 설정인데, 그래서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인데, 중반 이후로 넘어갈수록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대개, 그런 흐름으로 가지 않나? 한쪽의 일방적인 짝사랑이 '앓이'를 하다가 그만두려고 하는데 상대방이 알게 되어 자연스럽게 연애가 시작된다거나, 혹은 그 짝사랑이 알고 보니 서로 말 못 하는 쌍방통행이었다던가... 이제껏 만나왔던, 짝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 대부분이 그러했다. 그러니 이 소설도 당연하게, 짝사랑을 감춰온 여자의 마음이 그 상대에게 가 닿아서, 처음의 등장인물 두 명이 그대로 주인공이 되어 해피엔딩을 이룰 거로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나는 너무 익숙한 선입견으로 이 소설을 대했던가 보다. 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이 소설이 희한하게도, 흥미롭더라는. ^^

 

차희연은 최민규를 짝사랑했다. 오랫동안 친구였고, 부모님끼리도 친구인 관계. 아마 태어나기 전부터 친구로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서로 볼 거 못 볼 거 다 알고 자라는 사이였는데, 어느 순간 희연의 눈에 민규는 남자로 보였다. 한 번도 여자를 안 만난 적이 없는 민규의 화려한 연애사가 어느 순간부터 거슬리기 시작했다. 민규에게 들어오는 선물들로 배를 채우던 희연이었는데, 이제 그런 것들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말 못 할 질투와 표현하지 못한 마음으로 점점 민규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런데 민규 이놈은 그런 희연의 마음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희연이 끝까지 친구로 남아 있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희연의 짝사랑을 모른 척한다. 심지어 희연의 친구와 사귀기까지 하면서 희연의 반응을 살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가장 알 수 없던 게 민규의 마음이었다. 어떤 마음이면 희연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나 싶어서 주리라도 틀고 싶었으나, 또 민규는 민규 나름의 연애관이 있을 터이니 내가 훈수를 둘 수는 없어서 참았다. (뭐, 안 참으면 어쩔 건데?)

 

그러다가 희연은 우연히 알게 된 박승현을 애인 대행으로 꾸준히 이용한다. 승현 역시 희연과 비슷한 이유로 희연을 애인 대행으로 맞이한다. 이루어지지 못하는 마음을 아는, 누군가를 향한 짝사랑 동지로 뭉친 희연과 승현은 그들 나름의 원칙을 지켜가면서 서로가 필요한 순간에 도움이 되는 연기를 하는 거였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흐름이 뻔하게 흘러갈 거로 여기게 된 이유다. 가짜 애인을 하는 사람의 등장으로 원래의 짝사랑 상대가 마음이 흔들리고, 결국은 처음 마음 준 사람에게로 가는 방식. 그런데 이 소설 의외다. 민규라는 인물은 사이코에 가깝게 집착남이 되어버렸고, 승현은 가짜 애인이 아니라 어느 순간 희연에게 스며드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다. 이 순간, 희연과 승현은 쌍방이 되고, 민규는 못된 후회남이 된 것. 게다가 민규의 한심함과 구질구질함은 동정은커녕 잡아다가 감옥에라도 넣고 싶을 정도의 한심한 짓이었으니... 도대체 희연은 민규의 무엇을 보고 좋아했을까 혀를 차고 싶을 정도였다. 하긴, 또 사람을 알아도 끝이 없다는 것을 여기서 또 확인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지.

 

흔히 말하는 그 타이밍의 중요성과 운명을 갈림을 이 소설에서도 어김없이 확인할 수 있다. 혼자만의 짝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 혹은 끝나는 순간.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먹은 순간, 혹은 거절하는 순간. 이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고 상대의 마음도 얻어야겠다고 자각하면서 직진하는 순간까지. 어쩌면 우리 인생에 등장하는 그 많은 타이밍은 꼭 사랑에서만 작용하는 법칙은 아니다. 늘 그랬다. 어떤 일을 선택하거나, 누구를 만나거나 하는 일들에는 그 타이밍이 중요한 순간이 많았다. 살면서 늘 겪는, 언제나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고, 얻는 게 있으면 버려야 할 것도 있기 마련인 게 인생이라서. 그래서 매번 그 타이밍을 잘 잡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게 사람 마음이라면 더 중요한 것 같다.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 테니, 움직이는 게 마음이라서 그 거리가 더 생기기 전에 잡아야 하고, 멀어지는 순간 접어야 하니까. 그런 의미로 보면 승현은 자기 마음 확인한 순간 고백하고 다가가는 것으로 그 타이밍을 잡았다. 민규는 이기적인 계산으로 누군가의 진심을 받아들일 타이밍을 놓쳤다. 그리고 희연은 누군가를 마음에 담고, 내보내고, 다시 마음에 들여놓는 일의 타이밍을 잘 맞췄다. 그녀 인생에 이보다 더한 시험이 있었을까 싶은 순간을 지나고 있다. 희연의 말처럼, 엇나간 타이밍은 힘이 없다. 새롭게 시작하는 사랑 앞에서 지나간 타이밍은 의미가 없다.

 

유치하게만 흘러갈 것 같던 소설이, 인생의 큰 지침을 알려주고 끝을 맺었다. 타이밍은 짝사랑에서뿐만 아니라, 삶 전체에서 작용하는 법칙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애인 있어요
다온향 / 이지콘텐츠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친구애인' 키워드에 충실한 소설. 내용도 뻔하다. 아닌 척하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너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제는 참지 못하겠어서 고백하고 말았다, 관계가 어그러지는 게 싫어서 너를 친구 이상으로 대하지 못하겠다, 등등.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 전개될지 눈앞에서 그려진다. 그런 소재의 소설이 가져야 할 무기는 역시, 뻔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가는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안 봐도 이미 결말 다 아는 걸 굳이 계속 읽을 이유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흥미를 떨어트리지 않고 끝까지 밀고 가는 거, 그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로 보면 이 소설은 알면서도 페이지를 넘기게 되지만, 너무 몰입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분위기였다. 의외로 등장인물이 많아서 각 커플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개취.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할애한 분량 때문에 주인공 커플이 더 돈독해질 수 있는 구석구석의 에피소드가 탄탄하지 못한 느낌도 있다.

 

스물셋. 오총사의 집합은 여전했다. 집합의 이유도 똑같았다. 정원의 실연을 위로하기 위한 자리였으나, 모두가 심드렁했다. 정원이 실연당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더냐. 이번에는 차이는 시간이 좀 빨랐을 뿐이지 뭐, 별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도 그러려니 하고 술이나 마시고 있던 그때. 늦게 나타난 은표는 그런 정원의 상태를 알면서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다만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뻗어버린 정원을 가만히 데려다줄 뿐이었다. 이때부터 감지가 된다. 아, 은표가 정원을 오래전부터 좋아하고 있었군! 아니나 다를까. 은표는 오래전에 이들이 어린 마음으로 우정을 쌓아갈 때부터 정원을 좋아하고 있던 거다. 그게 성인이 되고 이십 대의 중반을 향해가는 지금 마음을 술렁이게 한다. 고백할까? 말까? 술 취한 정원을 업고 가는데 제정신이 아닌 정원과 제정신인 은표는 이야기한다. 서른이 되어서도 각자 짝이 없으면 서로 애인해주자고. 그리고 7년 후. 오총사는 서른이 된다.

 

서른이 되었다고 오총사가 어디 가랴. 동건만 애인이 생기고 나머지 네 명은 여전히 솔로였다. 그게 그들 사이에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은표의 정원을 향한 갈증만 커가고 있을 뿐이다. 밤바다를 보러 갔던 그때, 정원이 갑작스레 응급실을 찾게 되면서 싹이 튼 은표의 마음은 더는 참을 수 없게 된다. 그날 이후로 은표는 정원을 자기 여자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남들 앞에서도 그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이미 게임 끝인데 뭘 더 가리고 말고 할 거야. 그때부터 정원과 은표 싯구싯구하는 장면들이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자고로 어른의 연애란 이런 것이다, 하고 알려주기라고 하고 싶은 건지. 스물셋 그때는 말도 못 하고 가슴앓이 했던 것이, 지금은 노골적으로 표현하면서 누가 봐도 민망한 건 잠시였다. '너네도 알 건 다 알잖아?'라는 눈빛으로 대신 말하며 당당하게 그들의 연애를 즐긴다.

 

이 와중에 어렸을 적에 은표에게 고백했다 거절당한 하정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를 주혁의 관계가 화기애애해지는데, 한번 말 꺼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말을 하고 나면 직선적이고 적나라해지는 게 이들 오총사의 매력인가 보다. ^^ 애들이 거침이 없어. 망설이고, 아프고 슬퍼하고, 후회도 하는 이들이지만, 결국 자기가 한 선택 앞에서는 거리낄 게 없어지잖아. 그에 따른 책임도 알고. 그러니 당연하게 당당해도 되고. 남들 앞에서 '나, 애인 있어요!'라고 우쭐하며 말하는 이들의 표정이 저절로 그려진다. 그래도, 니들 애인 있어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좋겠다... 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SALTY SALTY SALTY(솔티 솔티 솔티)
하얀어둠 / 스칼렛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런 책이 있다. 읽기가 망설여져서 미루고 미루다가, 가끔 궁금하긴 하지만 책 선택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아주 완벽히 잊히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기억될 자리의 불안함을 남겨놓는 책. 하얀어둠의 <솔티 솔티 솔티>는 내게 그런 책이었다. 종이책 출간 당시의 입소문에 내 취향이 아닌 듯하여 저기 멀리 미뤄둔 책이면서, 궁금함은 늘 남아있는 책. 호불호가 심하게 나뉘는 것 같아서 내내 망설였다. 종열이의 걸쭉한 욕사포가 거슬리면 읽기 어려울 것이고, 이 짠내나는 남자를 이해하면 한없이 소중한 책이 될 거라고, 누군가가 그랬다. 그 말이 맞더라. 속내를 들여다보고 나니, 순간순간 치고 들어오는 먹먹함이 문장 곳곳에 스며들더라. 여전히 종열이가 쏟아내는 욕이나 막말은 거북하지만, 그가 진심과는 다르게 거칠게 말하는 걸 알게 된 순간 괜히 눈물이 날 것만 같다는 걸...

 

처음부터 등장하는 종열이의 '씨발' 라임은 많이 거슬렸다. 어디 그것뿐이랴. 종열이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욕 아니면 거친 말이었다. 그냥 모르는 사이로 지내도 옆에 지나가는 것조차 싫은 사람. 나에게 종열이의 첫인상은 그랬다. 중국집 운영하는 종열이는 모든 것을 아끼는 남자였다. 최소한의 생필품을 제외하고는, 그에게 소비라는 건 없었다. 한겨울의 맹추위마저도 그에게는 별것 아닌 일상이었다. 뭐 하러 난방을 돌리냐, 뭐 하러 핸드로션을 따로 사는 거냐, 뭐 하러 오래 씻으면서 낭비를 하냐, 등등. 그의 생활은 아끼고, 안 쓰고, 또 아끼고 안 쓰는 것이다. 내가 힘들게 번 돈 남의 아가리에 처넣어주는 건 죄악이라 여기는 사람 같았다. 그런 종열이 앞에 나타난 정지안은 그의 절약 개념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여자였다.

 

왕따 당하던 남동생의 죽음. 남동생의 죽음을 시작으로 지안의 가정은 무너진다. 곧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안 홀로 남았다. 그런 그녀의 삶이 편할 리 없다. 아르바이트로 대학 생활을 이어가던 중, 호프집에서 운명을 맞이한다. 남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무리, 죄는 무거운데 형벌은 너무 가벼워 일상을 누리는 자들. 그들을 눈앞에서 본 지안은, 그들이 자기 남동생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을 보고,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호프집 주방에서 가져온 칼로 그 무리의 주동자를 찔렀다. 다행히 그의 목숨은 건졌으나 하반신 마비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안은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담담하게 형을 치른다. 그리고 6년이 흘렀다. 교도소 문을 열고 나온 그녀에게 남은 건, 몇십만 원의 돈과 작은 가방 하나. 그녀의 작은 몸 하나 뉠 곳이 없다. 일할 곳도 없었다. 그때 종열이 지안의 앞에 나타난다. 무작정 끌고 그의 집으로 간다. 잠잘 곳, 먹을 것, 누군가의 그늘 같은 안도를 내놓은 종열은 왜 지안에게 손을 내밀었을까.

 

이해가 안 되는 시작이었다. 그렇게 끌고 갔다고 순순히 종열을 따르던 지안이나, 욕과 거친 말을 쏟아내면서도 지안을 놓지 않고 끝까지 데리고 간 종열이나... 생판 모르던 사이였던 두 사람이 왜 그렇게 만나야만 했을까. 알 수 없다고,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읽어 가는데, 문득문득 울컥해져서 혼났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도무지 내 취향이 아닌 이 글을, 이 주인공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데, 왜 자꾸 이들의 삶을 엿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종열이의 짠내는 그럴 수밖에 없는 역사를 가졌다. 지안이의 현재는 종열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돈 때문에 서글펐고, 돈이 분노하게 했고, 돈을 아끼며 살아야 했던 종열의 시간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런 기억을 가진 누구나 종열과 비슷한 생활을 만들지 않았을까. 돈이 없이는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한 세상에서, 그 순간 종열이 선택한 게 죽음이 아니라 짠돌이 생활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흘러 지안이를 만나게 된 게 마치 운명처럼, 서로를 보듬고 살 수밖에 없는 사이가 된 거라고 말이다.

 

방끈 짧은 남자와 전과자 여자가 세상을 살 방법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범한 삶을 이뤄낼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사회의 사각지대에 머문 두 사람을 한가운데로 끌어내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착각이 들 만큼, 절망에서 삶의 의지를 불러오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그들이라고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았을까? 예쁘고 멋있게 차려입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보기에 그럴싸한 집에, 한겨울에도 반소매를 입고 다닐 정도로 난방을 켜고, 구멍 난 운동화를 버리고 새 신발을 사는 일들. 매일 웃고 사는 일상이 그렇게 갖춰진 것들 때문이라면 못할 것도 없겠지.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삶의 목적은 그런 물질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살아야 하는 일, 살아내는 일이 우선이었던 거다. 누군가가 행하는 소비의 일상이, 그들에게는 삶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거다.

 

세상의 바닥을 살던 두 사람이 만난 오늘이, 점점 내일을 그리는 일상이 되어가는 기적을 본 것만 같다. 꼭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지금 가장 울고 싶은 순간에 이 책을 펼쳐 든다면 어김없이 빠져들고 말 것만 같다. 그들의 간절함을 엿보면서 위로받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다만, 종열이의 지독한 츤데레를 예뻐해 줄 수 있다면 말이지.) 종열이의 말투나 지안이에게서 볼 수 없는 자존감에 화가 나다가도,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과 같은 삶을 이어온 이들이 겪는 현실이 그대로 묻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불러올 때면 침묵하게 된다. 전혀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을 확인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싶을지도... 혹시 종열이의 욕이, 거친 말이 그의 삶을 대신 표현하는 걸 알게 되면 그나마 조금은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진심을 드러내는 방식이 그러하여 거슬리더라도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줄 아량이 저절로 생길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