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 네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연두 지음 / 가하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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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참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건 정말 착한 마음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향한 분노일 수도 있고,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간절한 바람 같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 한다. 그 감정들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옳고 그르다’ 하는 구분이 아닌, ‘다르다’ 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또 그 각각의 감정들을 표출하는 순간도 의미도 모두 다 다를 것이라고…….

한 사람을 두고, 같은 상황을 놓고 수없이 많은 감정들과 생각들, 시선들이 생겨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진심'이란 하나의 단어를 놓고 다양한 의미들이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단순히 동음이의어가 아닌 그 하나하나의 의미가 이렇게나 다르고 다양하게 다가오기도 하는구나 싶어서…….
진심(盡心) : (명사) 마음을 다함.
진심(塵心) : (명사) 속세의 일에 더렵혀진 마음.
진심(嗔心) : (명사) 왈칵 성내는 마음.
진심(眞心) : (명사)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 
               <불교> 심성 : 참되고 변하지 않는 마음의 본체(本體)

전과자의 딸이 아버지의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를 7년만에 우연히 다시 만났다. 그저 반가웠으나 아는 척 할 수 없는 상대. 그래도 이어질 인연이었던지, 두 사람은 연인인 듯 연인이 아닌 듯한 관계가 되었다. 서로의 진심(眞心)은 당분간 가슴에 담은채로... 

법정, 판사.
법의 심판을 받는 공정한 장소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곳이 그려내는 모습은 인간의 욕심과 욕망을 그대로 분출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 그대로가 드러나는 장소의 의미가 더 깊다.(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게 이런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기도 하고, 진실이 무언가에 가려져 드러나지 못하기도 하고, 감정을 주체 못해서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과장된 행동으로 무언가를 감추려하기도 하는 곳이 되기도 하고, 힘이 없는 자는 그런 오류를 바로 잡아놓을 기회 조차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눈을 가졌을거라 생각하는 판사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밖에 없다. 그저 공정하게 그 모든 것의 시시비비를, 누군가의 억울함이 없기를, 먼저 가버린 자의 외침을 들어줄 사람으로 판사를 지목한다. 판사의 임무는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법정이 존재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 아닐까? 오직 정의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눈을 가져야할 사람으로, 정의만이 존재해야할 곳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이 책 속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거의 두 분류다.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가해자와 피해자는 쌍둥이처럼 늘 함께 존재한다. 어느 한쪽이 가해자가 되면 분명 피해자도 있을테니까. (뜬금없이 예전에 들었던 어느 점술가의 말이 생각난다. 형사와 범죄자는 사주가 쌍둥이처럼 비슷하단다. 쫓고 쫓기는 자의 떨어질 수 없는 끈이 있는 듯한 기분이 드네. ^^)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가 만날 수 있는 상황.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혹은 너무 두려워서 침묵해야만 하는 사람의 입장을, 각자의 입장을 최대한으로 솔직하게 그려내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한번 이상은 더 깊게 들여다봤을 그 마음이 전해져 오는 듯 하다. 뉴스에서 한번은 봤음직한 사건들, 보호해야할 것들 앞에서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모든 사람들이 가해자이고 피해자임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들... 안타깝다.

새로운 시선으로 법과 법조계 사람들을 바라보게 만든 계기가 된 책이다. 흔히 법조계 사람들을 ‘법’이라는 무기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쪽으로 관련된 너무 나쁜 것만 보고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안 좋은 인식만 머릿속에 키웠던 건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한다. 사실 그쪽으로 관련된 사람이 아닌 이상 그 어떤 식으로도 그 안을 들여다보거나 진실을 다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것이다’ 하고 배워왔던 의미는 남아있는지라 좋은 것을 보고 싶은 바람도 동시에 갖고 있다. 그 모습을 이 책 안에서 찾았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무언가에 한 겹 씌워진 듯한 선입견을 걷어내어 준 것 같아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정들이 모두 이 곳에 모여있는 듯 하다.

로맨스나 판타지가 아닌 현실 속의 판사?
여기서 남주는 자신의 월급을 쥐꼬리만하다고 한다. 40만원이 넘는 벨벳 구두를 할인된 가격으로, 뒤에 붙은 잔돈은 떼고 할부로 결제해달라고도 한다. 로맨스소설스러운 거창함이나 꿈꾸는 듯한 설정을 최대한 자제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권력과 재력을 가진 남자로 그리는 것이 아닌, 현실 속에서 볼 수 있을 듯한 성격과 배경의 남주를 담아낸 것 같다. 판사라는 직업에 대한 과한 기대감이나 오해를 덜어낼 수 있는 모습도 종종 보여주는 것이. 그리고 판사라는 이미지 속에서의 공정함과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선으로, 그 모든 것을 보는 눈은 오직 법이라는 것 하나로만 판단할 수 있게 그려주고 싶었던 우리의 바람을 담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다양함 속의 단조로움.
기본적인 틀은 로맨스소설이다. 남주와 여주 사이의 달달함과 연결고리가 충분하고 그 마음이 억지스럽지 않게 다가오는 듯 해서 거부감은 없었다. 애틋함도 있고, 가슴 속의 간질거림도 그 매력이 넘친다. 하지만, 모든 상황들과 사람들이 얽혀 있는 설정은 조금 작위적인거 아닌가 싶다. 사건의 연결됨도 이해는 가능하나 충분한 개운함은 없는 듯 하다.
그래도 이야기로의 재미는 좋다. 휘리릭 한번 훑어 넘길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가슴에 새기고 싶은 부분도 많았고, 누군가를 보는 마음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은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가끔은 다시 꺼내보면서 세상 속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진심(塵心) : (명사) 속세의 일에 더렵혀진 마음.
"욕심에 부풀고, 허기를 채우려다, 어리석은 짓만 골라 했으니...... 더없이 아름답구나." (197페이지)

세상의 모든 진심(嗔心) : (명사) 왈칵 성내는 마음.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진심 따위, 보이지 않는 그대로 이제는 내버려두고 싶다.
"진심 따위...... 알 게 뭐야." (302페이지) 

"아무리 암담한 것일지라도 좋은 결과가 되기를......" (58페이지)
그 모든 진심들이 여기 다 모였을 것이다. 진심(盡心)이면, 진심(眞心)을 알아줄 것이니... 

"사람도 껍질이 필요해. 껍질 다 벗긴 과일이 사람들한테 먹기 편한 것처럼. 사람도 껍질 다 멋기고 속살을 너무 많이 보여주면, 만만히 볼 수 있고, 오해를 살 수도 있어." (167페이지)
너무나도 딱 맞는 말.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다.
상대에게 편하다고 말하면서 그 편안함을 가장해서 만만하게 보는 행위는 하지 말라고...
나의 생활 신조로 삼을테다.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누군가를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고 있는 중... 
 

 
덧붙임.
인터넷서점의 책 소개글에 낚이지 말자. 달달한 그 한 부분을 용케도 소개글로 넣어놨더라. 그게 이 책이 말하는 전부가 아닐지니, 그 달달함을 맛보고자 선택한다면 실망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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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1
홍수연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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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뭘까 종종 생각한다. 계절에 상관없이 내가 즐겨듣는 노래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책 속 한 구절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진솔의 고백에 '지나가는 바람일지도 몰라요(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도우)'라고 말하던 건PD의 목소리, 한겨울에도 몸은 중무장을 하고서도 얼굴은 굳이 드러내놓고 맞는 칼바람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내내 궁금했는데 딱히 그 이유가 생각은 잘 안난다.
아마도, 그 단어가 주는 시원함이 좋아던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가장 크다. 봄 가을에 불어주는 그 선선함과 답답한 마음에 불어줄 것 같은 시원함 같은 거... 아마 그 단어에서 그 의미를 가장 많이 두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아이였던 그 여자에게 그 남자는 바람 같은 것.
바람 : [명사]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
어떻게 이어질 인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눈이 마주쳤었던 그 남자. 아빠처럼 오빠처럼 의지했던 그 남자에게 아이는 관심 받고 싶어했다. 조용히 지낼 수도 있었던 일에 사고를 치고 그 남자가 해결하러 와주기를 기다렸다. 한번만 보고 싶어서. 눈빛 하나 마주치지 못하면서, 마주치는 순간 고개를 숙이면서도 그랬다. 그 아이는 그랬다, 그 남자에게... 그러면서도 웃으며 지내면 다시 돌아온다던 그 남자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여자는 이제 아이가 아닌 여자가 되어 그 남자에게 다가간다. 자신을 몰라봐도 좋다고, 잠깐 불어오는 바람이어도 괜찮다고. 다 줄 수 있어서 오히려 고맙다고...
 

지킬 것이 많았던 그 남자에게 그 여자는 바람 같은 것.
바람 : [명사] 기압의 변화 또는 사람이나 기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
몇달 후에 결혼을 한다던 그 남자가 그 여자에게 말한다. "그런데...... 널 원해." 그러한 감정마저 처음이었던 남자가 오직 그 순간만은 솔직하게 말한다. 감추고 참고 기다리고 인내하고 싸우는 법을 익혔던 그 남자에게는 낯설고 생소한 느낌, 해서는 안될 일, 지켜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러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끝이 보일 것을 알지만 늘 익숙하게 그래왔던 것처럼 잘라내고 자신이 책임져야할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강하게 길려저야 하기에 이국 땅에 홀로 남겨진 유원. 엄마의 후배에게 맡겨졌는데, 엄마의 후배 부부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었던 단 하나의 혈육인 제니. 유원 25살 제니 12살때까지 유원은 제니의 후견인이 되어 보살펴분다. 같이 보고 듣고 함께 하면서... 어색한듯 익숙한듯, 따로였다가 하나였다가... 그리고 더이상은 함께 할 수 없을 때 헤어진 두 사람. 그리고 11년 후, 시드니. 유원은 시드니에 있는 호텔에 지사장으로 오게 되고, 서진(제니)은 스물 셋의 나이로 유원의 곁은 맴돈다. 자신을 못알아보는 유원에게 투정 한번 부리지 않고, 그저 어린 그 나이부터 담아온 마음 하나 불어내어보고자... 

"글쎄, 바람......, 같은 것."
약혼자가 있으면서도 서진을 원한다는 유원의 말. 그리고 그 마음을 유원 나름대로 정의한 것이 '바람'이라고 했다.
바람... 바람...... 바람...
어떤 의미로 바람은 긍정적이고 유익한 단어인데, 또 다른 의미로 바람은 불륜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 유원이 말한 '바람'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읽어가는 내내 저절로 알아지지만, 유원이라는 캐릭터의 성격상 절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긍정적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자라왔으니... 너무 조용해서, 너무 원하는게 없어서, 너무 올곧아서 더 위험한 사람. 그래서 정작 원하는 것 한가지를 위해서 모든 것을 미련없이도 내던질 것 같은 사람.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을 위해 왕관을 버렸다는 윈저공이 내내 생각났다. 사람은 돈 앞에서 권력 앞에서 무너지기 쉬운데, 그 사람 평생을 사랑 하나 얻은 걸로 후회없이 살았을까? 소설은 소설일 뿐이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그런데 이만큼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어줍잖게 세상을 본 나는 조금은 알겠더라. 현실에서 더 소설 같고 영화 같은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유원을 보면서 내내 속으로 응원하고 있었나보다.
"유원, 너 한번 터트려봐. 어차피 한번뿐인 인생인데, 그 시간동안 니 맘대로 살아온 거 없잖아.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제발..."
 

그는, 그걸 바람이라 했었다.
사람들의 어깨에 무심히 앉았다가 무심히 떠나 버리는.
휘몰아쳐 불어와 모든 것을 감싸 안고, 다시 휘몰아쳐 모든 것을 빼앗아 가 버리는.
사람은 가끔 안될 일 앞에서도 가능하다 믿는 바보 같은 구석이 있나보다. 두 사람, 괜찮을거다 살짝 내려앉았다가 조용히 소리도 없이 떠나버리는 감정이니 별 것 아닌 거라고 자만하면서 불어가는대로 내버려두었을테니... 보이지도 않고 무게감도 없이 흐르는게 전부인 바람이지만, 그것이 가슴에 내려앉는 그 순간의 무게는 아무도 감당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간과했을테지. 그런데, 그마저도 괜찮다고, 그러니 잠깐이라도 그렇게 불어오라고 간절히 바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느 순간 또, 그 바람 멈출지도 모르겠다고 위로하면서? 기다리면서?
결국에는, 그만 불어달라고 애원할 정도였지만...
...... 이제......, 그만 불어라.
 

이야기의 주인공은 분명 두 사람인데, 내가 보는 방향은 계속 유원의 시선이었던 듯 하다. 유원의 눈으로, 유원의 마음으로, 유원의 웃음과 슬픔으로... 마지막부분에 치달았을 때는, 유원의 그 살기어린 눈빛마저 당연한거라 생각했다. 유원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그래야만 한다고, 그래야 제대로 된 마무리를 할 수 있는거라고. 그래도 뭐, 로맨스의 즐거움은 해피엔딩이지만, 이런 결말 나름 괜찮다. 1권을 읽고나서 지루한 마음과 두께의 압박에 2권을 저리 던져두었는데, 저절로 손이 가더라. 이야기가 흐를수록 마음이 아파서 정말 나중에 얘네들 힘들게 하면 왕회장(유원의 할머니) 내가 가만안두리라 했는데. 이 할머니 참 짓궂게 마무리해주시네. ^^ 생각했던 것보다 이야기 구조가 탄탄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분량이 늘어난 것인지, 그래서 조금은 더 더디고 지루하게 읽혀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옷은 입어보고 사라고 했던 것처럼 책도 끝까지 읽어보고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 책을 다 읽었을 때가 새벽 한시쯤... 다시 이 글을 작성하고 있었을때가 읽은 다음날 새벽 세시 쯤... 여기에도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
 

너는 내가 이루고 싶었던 가장 아름다운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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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판나 - Navie 219
진양 지음 / 신영미디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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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앞에서도 권력이 존재한다.
어떤 글에선가 본 기억을 떠올려보면, '먼저 고백하는 사람이 약자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다.'라고 했다.
이 말에 대해 감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해보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누군가를 마음에 두더라도 먼저 고백해봤던 기억은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 중에서 딱 한번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했던 그 고백의 교훈 역시 단 하나였다. '가슴이 터질 것 같더라도 먼저 고백하지는 말자...' 고백하기 전보다 마음이 더 아팠으니까. 사랑 앞에서 평등을 원했지 약자가 되길 원했던 것은 아니니까.

스물아홉의 동갑내기 윤서진과 이언조.
바리스타인 서진에게는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언조가 있다. 물론 십년동안 언조를 마음에 두고 짝사랑하긴 했지만, 그동안 소식도 모르고 살아왔다. 그저, 자신이 짝사랑하던 언조가 아니라, 사랑하는 그 감정 자체를 더 사랑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십년 만에 동창회에 참석하게 된 서진과 지영(서진의 동거녀이자 친구). 항상 외모에서 강한 포스를 풍기는 지영과 같이 다니던 서진에게 눈길 주는 남자는 드물다. 지영에게 가기 위한 길로 서진을 이용하는 남자들이 있었을 뿐……. 동창회 자리에서 만나게 된 서진과 언조, 지영, 그리고 서진의 친구들. 일명 개차반 개망나니로 불리던 언조 일행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그리고 그들만의 내기가 시작된 것. 누가 지영에게 먼저 연락을 받느냐 하는. 언조는 그 수단으로 서진을 택하고, 서진은 그런 언조에게 폭탄 같은 고백은 한다.
"나는 이제 너 아니면 안 돼"
서진이 언조에게 고백하던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외쳤다.
"안 돼 서진아~~"
이 언니가 격하게 충고하는데 그 녀석은 안 된다. 그 녀석은 너에게 올 놈이 아니고, 너에게 오더라도 네 속을 시커멓게 태우고 나타날 것이며, 결국 네 눈에서 눈물을 한가득 뽑아내고 뒤돌아설 놈이야. 안 돼. ㅠㅠ

그러면서도 서진이 부러웠다. 서진이 부린 용기에 합승하고 싶었다, 어렸을 적 한때 그랬던 것처럼…….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는 남자. 언조.
가진 돈으로 바를 하나 차려놓고 친구를 매니저로 심어놓고 자유로운 사람. 누군가에게 "뭐하시는 분이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명함 한 장 내밀어주려고 차린 일터. 하루하루가 무심할 뿐더러, 인생에 진심이 있을까 싶은…….
그럼에도 서진의 마음은 언조에게 흐른다. 끝까지 한번 가볼 테냐? 하고 물어보고 싶다, 서진에게. 끝까지 가보고 그 쓴맛을 보면 흔히 하는 인생의 그 쓴맛이 알아지려나…….

Espresso Cafe Con Panna
"에스프레스 위에 휘핑크림을 올려 달콤하게 즐기는 커피로, 첫맛은 달콤하고 끝맛은 씁쓸하다"
커피에 대해서 잘 모른다. 보통 때는 아메리카노 기본으로 마시다가, 조금 달콤한 맛을 보고 싶다고 생각될 때는 카페모카 정도로 마신다. 가끔 다방커피라 불리는 자판기커피나 믹스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오래전 어느 날, 그 이름마저 근사한 에스프레소 한잔 마시기에 도전했다가, 한 모금 마시고 그 속쓰림에 병원으로 달려간 적이 있다. 내가 즐길 수 없는 커피였으나, 한 가지는 알게 되었지. 에스프레소, 참 쓰. 구. 나.
서진이 언조를 떠올리며 콘판나 같다고 했을 때, 이미 서진은 예상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달콤한 그 크림 밑에 숨겨있는 그 쓴맛을 몰랐다고는 못할 테니까. 알고 있으면서 덤벼볼테니까...
"기대라는 걸 하면 원래 모든 게 기대에 못 미치는 거야."
"기대 이상인 것들도 많아."
"굉장히 낮은 기대겠지. 그건 포기라고 물러도 상관없는 것들이야. 포기했었는데 생각보다 낫다, 그렇게."
"설사 그렇다 해도 포기부터 하는 것보다, 기대하며 잠시나마 기쁘고 즐거운 것도 괜찮지 않아?"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보다, 포기 했다가 의외의 기쁨을 발견하는 것도 괜찮지 않아?"
"난 기대할래. 난 기대하면서 그 기대감으로 기쁜 쪽을 선택할래."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도 닮지 않았다.
한 가지를 놓고 생각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자세도, 사랑을 대하는 마음도…….

음악, 책, 커피, 호수공원, 느리게 걷기를 좋아하는 서진과 하나도 닮지 않은 언조.
그런데, 여자 윤서진은 이것마저도 언조와 닮지 않은 사람이다.
기대하며 잠시나마 기쁘고 즐거운 것을 맛보고 싶은 용감한 사람.
아마 그런 사람이 그 사랑이 끝이 났을 때도 후회가 적을 것 같다. 알면서 덤볐으니, 그 순간 최선을 다했으니, 진심으로 다가갔으니, 그 사랑이 끝이 났어도 더 잘하지 못함을 후회하는 시간이 적을 거라고...

한약을 참 싫어하는데, 가끔 몸에 좋다는 것은 한약으로 둔갑해서 나타날 때가 있다. 양약보다 더 신뢰감 있는 모습으로. 하얀 대접에, 거기에 상반되는 검은색에 가까운 물약으로 출렁이면서.
쓰다고 하면서도 코를 막으면서까지 먹는 이유는(몸에 좋다는 이유 빼고), 아마 그 한약을 다 마시고 나면 입안에 넣어질 달콤한 사탕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이 마지막 쓴맛까지 넘기고 나면 입안에서 행복감을 줄 달콤한 그 맛이 대기하고 있다는…….

사랑을 하면서도, 또 그 사랑이 끝났는데도, 다시 또 사랑을 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마음이 아플 테지만 또 한 번 서진처럼 용기 내어 보고 싶은 이유는, 아마도 목으로 넘겼던 그 쓴맛보다 조금 더 나중에 만났던 단맛에 대한 기억이 강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 속의 민경의 말처럼,
"남자도 여자도, 현실에서는 로맨스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라고 말해도 우리는 여전히 로맨스를 꿈꾸고 싶어진다.
극중의 캐릭터 하나하나에서 배우고,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한번 들어갔다 온 것이 아닐까 싶게 하는 일들이 활자로 보이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로맨스는 아마도 현실과 환상의 그 중간쯤에서 우리를 설레게도 하고, 현실을 보여주는 부분에서는 두렵게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결코 환상에서만 멈추지 않을…….

솔직히, 로맨스소설을 읽어도 작가후기까지는 잘 읽지 않는다.
그런데 휘리릭 넘기면서 작가후기 한 부분에서 멈췄다. 이 책속에 들어있는 세 가지를 작가는 그대로 드러낸다.
'소설적 허구, 나의 마음적 경험, 그리고 나의 바람' 이라고 했다.
이언조라는 캐릭터는 소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의 수혜자이며(소설에서나 나올 수 있는 캐릭터 ^^), 서진이 십년동안 품어온 언조에 대한 짝사랑은 우리 모두의 추억 속에 한번쯤은 등장할만한 끄집어낼 만한 기억이며, 그리고 마지막에 작가가 그려준 서진과 언조의 해피엔딩은 우리가 바라던 판타지였다.
소설이기에 그런 결말이 가능한.
그래서 작가는, 이 이야기로 그 모든 삼박자를 이루어내면서, 자신만의 판타지를 만났는지 궁금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오래전에 봤던 영화 <와니와 준하>의 한 부분이 내내 생각났다.
"오빠가 언니를 더 많이 좋아하는 거 같아요. 너무 잘해주지 말아요. 너무 잘해주면.. 잘해준 만큼 그 사람은 멀어지더라고요. 딱 그만큼..."
와니와 준하에서 두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으로 나온 소양(최강희)의 대사다. 영화 자체가 예뻐서(재미와는 별개로) 볼만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봤던 기억이 나는데, 유독 소양이 읊는 대사는 가슴을 콕콕 찌른다.
연애에서도 전략전술이 필요한가보다. 알면서도 늘 제대로 배운 대로 못하는 나는 바보 같지만, 어떻게 연습문제와 실전문제가 같을 수 있어~~~~?!

사랑도, 연애도, 인생도...
늘 쓴맛과 단맛이 공존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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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의 일기
심윤서 지음 / 가하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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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싫어하는 말들 중의 하나가 '미치겠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자주 쓰는 말들 중의 하나가 '미치겠다'이다. <난다의 일기> 이 책을 읽으면서, 다 읽고나서도 연신 뱉어내는 말이 '미치겠다'였다. 그래, 이 책은 정말 나를 '미치겠다'라고 외치고 싶게 만든다. 건PD가 진솔에게 고백하던 그 장면이 뜬금없이 생각난다. "미치겠어, 그럴 땐 꼭 사랑이 전부 같잖아.." 건PD의 그 '미치겠어' 이후로 이런 미친 감정은 다시 못만날 줄 알았는데...

이 책과의 인연이 이리 되려고 그렇게 애를 태웠나 싶다. 출간되었을 그즈음에, 새책으로 구입하기를 세번 정도, 자꾸 파본이 와서 반품하기를 세번 정도... 나랑 인연이 아닌 책이구나 싶어 리스트에 반년 동안 담겨 있던 녀석이 다시 한번 새책으로의 도전으로 나에게 왔다. 그리고 나를 미치게 만든다. 단 한번의 생에서 이런 치열함으로 살아갈 순간이 몇번이 될까 싶어서.

스물 세살의 윤난다. 세상에 안계신 부모님, 부모가 남기고간 빚덩어리와 어린 두 동생. 알음알음으로 그녀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한남자의 아이를 낳아주기로 하고 그 집에 들어간다. 빅토리 여사(여사님 이름이 이기자씨 ^^)의 아들 현무의 아이를 낳아주는 조건으로 빚을 청산해주고, 두 동생들의 생활을 돌봐주고... 조건은 그것뿐이다. 서로의 감정이 얽히지 않게 인공수정으로 그의 아이만 낳아주고 바이바이 하면 된다. 쿨하게... 하지만 우리의 난다, 그냥 아이를 낳아주는게 아니고 그에게 남겨져 있다는 10개월의 시간동안 현무 곁에 함께 있게 해달라는 조건을 추가한다.
의도하지 않게 시작된 세 사람의 동거, 빅토리 여사, 현무, 난다... 이들 세 사람의 10개월이 어떻게 흘러갈지...

'치사빤쓰, 유치뽕짝'이다 싶었다.
'뭐야, 이런 신파극을 보려고 나에게 세번의 반품을 하는 중노동을 시켰던 것이야?' 하는 말도 안되는 선입견으로 읽기 시작한 책에서, 나는 또 한번 세상에서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다양한 삶 속에서 같이 녹아내려있는 이런 사랑도 만나게 된다. 한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새롭게 시작된 생명에서 안도를 느끼게 해주고, 한 사람에게는 다시 한번 살아보고자 하는 욕심을 부리게 만드는...

빅토리여사의 욕심으로, 곧 죽을 아들을 대신할 하나의 손주를 보고 싶은 욕심에 불러들인 난다가 그런 역할로 자신의 삶까지 휘저어놓을 줄은 몰랐겠지. 더이상의 목숨을 포기한 당신의 아들에게 또한번 살아보고자 하는 욕심을 만들어줄 아이가 될 줄 몰랐겠지. 불쌍하다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이었는데, 차마 그렇게 이어질 운명인 줄도 몰랐겠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자꾸만 공기처럼 스며드는 난다의 향기에 익숙해져가는 현무. 사랑 같은게 아니고, 그저 익숙해져가는 일상 중의 하나라고, 곧 자신의 임무만 완수하면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시작은...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루는 그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조금씩 조금씩 한 손을 내밀고, 서로의 이야기를 조금씩 드러내놓게 되고, 서로의 향기가 스며들게 되면서... 따뜻한 온실의 포근함이 좋아서 온실을 만드는 남자 현무와 그런 온실의 포근함을 알아주는 그녀 난다와 함께 만들어갈 10개월의 시간... 하루만 더, 일년만 더, '조금만, 조금만 더' 라고 자꾸 바라게 되고 욕심나게 만드는 감정을 뭐라고 불러줘야 할까... 

어느 책에서인지 누군가의 말에서인지 기억이 희미한데, 함께 죽는 것만큼의 인연도 없을 것이고 축복도 없을 것이라고... 세상에 태어나 인연을 만나서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다가도, '영원히'라는 말을 쓸 수 없는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태어난 시간은 달라도, 서로가 만나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함께 죽는 것만큼의 운명도 없을 것이라고...

각자의 아픔이 전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서로에게 안녕을 고해야 하는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 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는 것 같다. 먼저 가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또 그 사람을 보내고 남겨져야 하는 사람은 남겨진 사람대로의 입장이 있고 역할이 있다. 각자의 슬픔 역시 비슷하게지만 각자의 몫으로 또 감당해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또 이기적인 사람인지라, 먼저 이 세상과 안녕한 사람의 마음은 알지 못한다. 그저, 남겨진 사람의 슬픔만을 가득 채운 가슴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간들이 겁난다는 것 뿐...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누군가를 두고 먼저 가는 발걸음 역시 무거울 것이라는 것을... 현무가 슬퍼할 것을 보면서 느껴지는 많은 감정들이 더이상의 어떤 표현도 쓸 수 없게 만든다. 그저 '미치겠다' 하는 말만 반복하게 만들어서. 난다와 남겨진 그 밖의 것들에 대한 애착이 시간이 흐를수록, 남겨진 시간이 부족할수록 더 애가 탈테니까... 전지현을 닮은 머릿결, 김태희를 닮은 눈, 송혜교를 닮은 코, 안젤리나 졸리를 닮았다는 그 입술을 끝까지 못봤다면 혹시 괜찮았을까?. 조금은 덜 슬펐을까?.

어리석은 질문이고, 바보 같은 가정이네... 'If...'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고, 헤어져야 할 사람은 또 그렇게 헤어진다.
가야할 사람은 가고, 남은 사람은 또 남게 되는 것이다.
남겨진 사람은 묵묵히 그 시간을 살아내고, 그리워할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아프면 아픈대로, 추억으로 꺼내볼 수 있으면 추억하는대로 그렇게 또 살아질테니까...


먹먹한 가슴이 진정이 잘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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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 Navie 211
진주 지음 / 신영미디어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내 마음속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네......
 

어떠한 시선으로 봐도 금지된 사랑으로 보이는 스승과 제자의 사랑...
그 금지된 사랑을 향해 나아가려는 이들을 말려야 할까, 아니면 그래도 사랑이니 응원을 해주어야 할까... 

그녀, 서남우. 25세. 영문과 복학생. 지난 사랑의 시끄러운 흔적으로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그녀가, 그녀를 아껴주는 한 남자를 다시 마음에 품으려 한다. 난치병이 있고, 또 한번의 흉문에 휩쓸릴지 모르겠어서 망설이던 그녀의 손을 그가 꽉 잡아준다.
그, 서이현. 35세. 영문과 교수. 결혼이란 것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았던 그에게 좀더 유치해지고, 좀더 솔직해지고, 좀더 인간다워 보이게끔 만드는 그녀 남우가 나타난다. 무엇이 최선인지를 늘 고민하게 만드는 그녀가 그의 인생에 빛이 되는 순간... 

스승...
가끔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금 이 나이를 먹고보니, '흥' 하고 콧방귀 뀌게 만드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진짜 존경의 눈으로 보게 만드는 선생님도 있다. 남우의 눈으로 본 이현이 그랬다. 영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충실하게 강의를 하는 교수로, 그리고 떨림을 가져다주는 남자로...
제자...
가르쳐야하는 학생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흔들게도 만드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현의 눈으로 본 남우를 통해서 알아가게 된다. 수업에 충실하고 작품에 대해 진지해지는 학생으로, 감정을 흔드는 여자로... 

남우와 이현을 보면, 얼핏 불륜이나 금지된 사랑을 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열살이란 나이 차이,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교수라는 직업의 세계, 학교라는 공간에서의 불문율 같은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람에게 향하는 감정은 누구라도 막을 수가 없었겠지. 처음에는 스승과 제자로, 그리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남자와 여자의 마음으로...
둘 사이를 힘들게 했던 학교라는 공간에서의 위치도, 남우의 과거나 환경도 오직 하나의 믿음으로만 그 결과를 보여줬다.  

이야기니까...
이야기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읽는다면 가볍게 읽을만한 이야기지만, 이 나이만큼 살다보니(더 어른이 들으시면 욕하겠지만) 세상에는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소설 같은, 더 영화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더라. 한 사람과 일곱번 만나고 일곱번 헤어지고, 결국 각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친구도 봤고, 학교다닐때 7년이나 사귀었다는 어느 선배 커플의 결혼식장에 갔더니 신부가 바뀌어 있더라 하는 이야기도 있었고...

그리고 더 남우와 이현 같은 이야기...
내가 입학했을때 담당교수님은 오십대 중반을 넘기신 분이었다. 그런데 그분은 얼마전 이혼하고 곧바로 재혼을 하셨는데, 신부가 바로 제자였으며 이십대 중반을 넘긴 나이라고 했다. 이혼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니면 그냥 타이밍이 절묘했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그 스캔들로 시끄러웠으니까... 그런데 곧 잠잠해지더라. 굉장히 실력있고 유명한 교수님이어서 그런 사생활 쯤은 바로 사그라들 정도로... 그땐 내가 어린 나이여서 놀라운 눈으로 그분을 봤던 기억이 나는데... 그 교수님 부부가 불륜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건 두 사람의 사랑일 뿐이니까... 이제는 그걸 알겠으니까...
아마 지금쯤 그런 소식을 듣는다면, 나는 정말 쿨하게 시선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비단 내 일이 아니기에 무관심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기에 그럴 수도 있을까 싶다만. 나이를 먹는건 세상을 보는 눈도 조금은 더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니까... 

이 책을 절반을 조금 넘게 읽었을 때, 나는 책을 덮고 한바탕 눈물을 쏟아냈다. 그래 , 솔직히 이야기가 너무 슬퍼서 울었다고는 말 못한다. 소설이나 영화를 봐도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편이고, 이야기는 이야기로 그 몰입도가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나 혼자 감정이 북받쳐서 울었던 것이 개운하다. 처음부터 나는 이 이야기와 상관없이 한바탕 울 구실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첫페이지를 열기 전부터... 힘든 일들이 감정을 더 다스리나보다. 다른때 같으면 그냥 계속 넘기면서 풀었을 이야기가 괜히 한숨 쉬며 도중에 멈추게 만들고 이야기와 상관없는 눈물까지 뽑아내는 걸 보면... 

진주라는 작가명으로 추천해준 책들을 한권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만난 이번 신간은, 참...
작가 특유의 분위기가 이런가 싶다. 그래서 추천해주었나 싶기도 하고... 나쁘지 않다. 자칫 엉뚱하게 흘러갔을지도 모를 이야기를 가만히 중심 잡아주고,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그 감성의 끈을 조용히 이어주고, 가끔은 그 마음을 조금은 더 흔들어주기도 하고... 감히 현실에서 이런일은 없을테니 이야기로 끝내라 하고 억지부리지 않은 설정들이 담담하게 받아들여지게 한다.

더군다나, 챕터 한장 한장의 제목에 붙여진 영시의 한 구절들, 챕터 한장 한장이 끝날때마다 등장하는 영시들... 이렇게 감성을 흔들어도 되나?. 도대체 '시'라는 것 자체를 접해본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더더군다나 영시라니... 처음 들어본 것도 있고,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있는 그 시들이 이 책을 다 덮고나니 다시 찾아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인터넷검색창을 열고 그 싯구절을 치고 있는걸 보면...^^
이야기 하나하나에 닿을 듯한 그 영시들의 구절들이, 참 이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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