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판나 - Navie 219
진양 지음 / 신영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사랑 앞에서도 권력이 존재한다.
어떤 글에선가 본 기억을 떠올려보면, '먼저 고백하는 사람이 약자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다.'라고 했다.
이 말에 대해 감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해보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누군가를 마음에 두더라도 먼저 고백해봤던 기억은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 중에서 딱 한번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했던 그 고백의 교훈 역시 단 하나였다. '가슴이 터질 것 같더라도 먼저 고백하지는 말자...' 고백하기 전보다 마음이 더 아팠으니까. 사랑 앞에서 평등을 원했지 약자가 되길 원했던 것은 아니니까.

스물아홉의 동갑내기 윤서진과 이언조.
바리스타인 서진에게는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언조가 있다. 물론 십년동안 언조를 마음에 두고 짝사랑하긴 했지만, 그동안 소식도 모르고 살아왔다. 그저, 자신이 짝사랑하던 언조가 아니라, 사랑하는 그 감정 자체를 더 사랑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십년 만에 동창회에 참석하게 된 서진과 지영(서진의 동거녀이자 친구). 항상 외모에서 강한 포스를 풍기는 지영과 같이 다니던 서진에게 눈길 주는 남자는 드물다. 지영에게 가기 위한 길로 서진을 이용하는 남자들이 있었을 뿐……. 동창회 자리에서 만나게 된 서진과 언조, 지영, 그리고 서진의 친구들. 일명 개차반 개망나니로 불리던 언조 일행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그리고 그들만의 내기가 시작된 것. 누가 지영에게 먼저 연락을 받느냐 하는. 언조는 그 수단으로 서진을 택하고, 서진은 그런 언조에게 폭탄 같은 고백은 한다.
"나는 이제 너 아니면 안 돼"
서진이 언조에게 고백하던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외쳤다.
"안 돼 서진아~~"
이 언니가 격하게 충고하는데 그 녀석은 안 된다. 그 녀석은 너에게 올 놈이 아니고, 너에게 오더라도 네 속을 시커멓게 태우고 나타날 것이며, 결국 네 눈에서 눈물을 한가득 뽑아내고 뒤돌아설 놈이야. 안 돼. ㅠㅠ

그러면서도 서진이 부러웠다. 서진이 부린 용기에 합승하고 싶었다, 어렸을 적 한때 그랬던 것처럼…….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는 남자. 언조.
가진 돈으로 바를 하나 차려놓고 친구를 매니저로 심어놓고 자유로운 사람. 누군가에게 "뭐하시는 분이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명함 한 장 내밀어주려고 차린 일터. 하루하루가 무심할 뿐더러, 인생에 진심이 있을까 싶은…….
그럼에도 서진의 마음은 언조에게 흐른다. 끝까지 한번 가볼 테냐? 하고 물어보고 싶다, 서진에게. 끝까지 가보고 그 쓴맛을 보면 흔히 하는 인생의 그 쓴맛이 알아지려나…….

Espresso Cafe Con Panna
"에스프레스 위에 휘핑크림을 올려 달콤하게 즐기는 커피로, 첫맛은 달콤하고 끝맛은 씁쓸하다"
커피에 대해서 잘 모른다. 보통 때는 아메리카노 기본으로 마시다가, 조금 달콤한 맛을 보고 싶다고 생각될 때는 카페모카 정도로 마신다. 가끔 다방커피라 불리는 자판기커피나 믹스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오래전 어느 날, 그 이름마저 근사한 에스프레소 한잔 마시기에 도전했다가, 한 모금 마시고 그 속쓰림에 병원으로 달려간 적이 있다. 내가 즐길 수 없는 커피였으나, 한 가지는 알게 되었지. 에스프레소, 참 쓰. 구. 나.
서진이 언조를 떠올리며 콘판나 같다고 했을 때, 이미 서진은 예상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달콤한 그 크림 밑에 숨겨있는 그 쓴맛을 몰랐다고는 못할 테니까. 알고 있으면서 덤벼볼테니까...
"기대라는 걸 하면 원래 모든 게 기대에 못 미치는 거야."
"기대 이상인 것들도 많아."
"굉장히 낮은 기대겠지. 그건 포기라고 물러도 상관없는 것들이야. 포기했었는데 생각보다 낫다, 그렇게."
"설사 그렇다 해도 포기부터 하는 것보다, 기대하며 잠시나마 기쁘고 즐거운 것도 괜찮지 않아?"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보다, 포기 했다가 의외의 기쁨을 발견하는 것도 괜찮지 않아?"
"난 기대할래. 난 기대하면서 그 기대감으로 기쁜 쪽을 선택할래."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도 닮지 않았다.
한 가지를 놓고 생각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자세도, 사랑을 대하는 마음도…….

음악, 책, 커피, 호수공원, 느리게 걷기를 좋아하는 서진과 하나도 닮지 않은 언조.
그런데, 여자 윤서진은 이것마저도 언조와 닮지 않은 사람이다.
기대하며 잠시나마 기쁘고 즐거운 것을 맛보고 싶은 용감한 사람.
아마 그런 사람이 그 사랑이 끝이 났을 때도 후회가 적을 것 같다. 알면서 덤볐으니, 그 순간 최선을 다했으니, 진심으로 다가갔으니, 그 사랑이 끝이 났어도 더 잘하지 못함을 후회하는 시간이 적을 거라고...

한약을 참 싫어하는데, 가끔 몸에 좋다는 것은 한약으로 둔갑해서 나타날 때가 있다. 양약보다 더 신뢰감 있는 모습으로. 하얀 대접에, 거기에 상반되는 검은색에 가까운 물약으로 출렁이면서.
쓰다고 하면서도 코를 막으면서까지 먹는 이유는(몸에 좋다는 이유 빼고), 아마 그 한약을 다 마시고 나면 입안에 넣어질 달콤한 사탕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이 마지막 쓴맛까지 넘기고 나면 입안에서 행복감을 줄 달콤한 그 맛이 대기하고 있다는…….

사랑을 하면서도, 또 그 사랑이 끝났는데도, 다시 또 사랑을 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마음이 아플 테지만 또 한 번 서진처럼 용기 내어 보고 싶은 이유는, 아마도 목으로 넘겼던 그 쓴맛보다 조금 더 나중에 만났던 단맛에 대한 기억이 강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 속의 민경의 말처럼,
"남자도 여자도, 현실에서는 로맨스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라고 말해도 우리는 여전히 로맨스를 꿈꾸고 싶어진다.
극중의 캐릭터 하나하나에서 배우고,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한번 들어갔다 온 것이 아닐까 싶게 하는 일들이 활자로 보이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로맨스는 아마도 현실과 환상의 그 중간쯤에서 우리를 설레게도 하고, 현실을 보여주는 부분에서는 두렵게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결코 환상에서만 멈추지 않을…….

솔직히, 로맨스소설을 읽어도 작가후기까지는 잘 읽지 않는다.
그런데 휘리릭 넘기면서 작가후기 한 부분에서 멈췄다. 이 책속에 들어있는 세 가지를 작가는 그대로 드러낸다.
'소설적 허구, 나의 마음적 경험, 그리고 나의 바람' 이라고 했다.
이언조라는 캐릭터는 소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의 수혜자이며(소설에서나 나올 수 있는 캐릭터 ^^), 서진이 십년동안 품어온 언조에 대한 짝사랑은 우리 모두의 추억 속에 한번쯤은 등장할만한 끄집어낼 만한 기억이며, 그리고 마지막에 작가가 그려준 서진과 언조의 해피엔딩은 우리가 바라던 판타지였다.
소설이기에 그런 결말이 가능한.
그래서 작가는, 이 이야기로 그 모든 삼박자를 이루어내면서, 자신만의 판타지를 만났는지 궁금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오래전에 봤던 영화 <와니와 준하>의 한 부분이 내내 생각났다.
"오빠가 언니를 더 많이 좋아하는 거 같아요. 너무 잘해주지 말아요. 너무 잘해주면.. 잘해준 만큼 그 사람은 멀어지더라고요. 딱 그만큼..."
와니와 준하에서 두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으로 나온 소양(최강희)의 대사다. 영화 자체가 예뻐서(재미와는 별개로) 볼만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봤던 기억이 나는데, 유독 소양이 읊는 대사는 가슴을 콕콕 찌른다.
연애에서도 전략전술이 필요한가보다. 알면서도 늘 제대로 배운 대로 못하는 나는 바보 같지만, 어떻게 연습문제와 실전문제가 같을 수 있어~~~~?!

사랑도, 연애도, 인생도...
늘 쓴맛과 단맛이 공존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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