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다의 일기
심윤서 지음 / 가하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싫어하는 말들 중의 하나가 '미치겠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자주 쓰는 말들 중의 하나가 '미치겠다'이다. <난다의 일기> 이 책을 읽으면서, 다 읽고나서도 연신 뱉어내는 말이 '미치겠다'였다. 그래, 이 책은 정말 나를 '미치겠다'라고 외치고 싶게 만든다. 건PD가 진솔에게 고백하던 그 장면이 뜬금없이 생각난다. "미치겠어, 그럴 땐 꼭 사랑이 전부 같잖아.." 건PD의 그 '미치겠어' 이후로 이런 미친 감정은 다시 못만날 줄 알았는데...

이 책과의 인연이 이리 되려고 그렇게 애를 태웠나 싶다. 출간되었을 그즈음에, 새책으로 구입하기를 세번 정도, 자꾸 파본이 와서 반품하기를 세번 정도... 나랑 인연이 아닌 책이구나 싶어 리스트에 반년 동안 담겨 있던 녀석이 다시 한번 새책으로의 도전으로 나에게 왔다. 그리고 나를 미치게 만든다. 단 한번의 생에서 이런 치열함으로 살아갈 순간이 몇번이 될까 싶어서.

스물 세살의 윤난다. 세상에 안계신 부모님, 부모가 남기고간 빚덩어리와 어린 두 동생. 알음알음으로 그녀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한남자의 아이를 낳아주기로 하고 그 집에 들어간다. 빅토리 여사(여사님 이름이 이기자씨 ^^)의 아들 현무의 아이를 낳아주는 조건으로 빚을 청산해주고, 두 동생들의 생활을 돌봐주고... 조건은 그것뿐이다. 서로의 감정이 얽히지 않게 인공수정으로 그의 아이만 낳아주고 바이바이 하면 된다. 쿨하게... 하지만 우리의 난다, 그냥 아이를 낳아주는게 아니고 그에게 남겨져 있다는 10개월의 시간동안 현무 곁에 함께 있게 해달라는 조건을 추가한다.
의도하지 않게 시작된 세 사람의 동거, 빅토리 여사, 현무, 난다... 이들 세 사람의 10개월이 어떻게 흘러갈지...

'치사빤쓰, 유치뽕짝'이다 싶었다.
'뭐야, 이런 신파극을 보려고 나에게 세번의 반품을 하는 중노동을 시켰던 것이야?' 하는 말도 안되는 선입견으로 읽기 시작한 책에서, 나는 또 한번 세상에서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다양한 삶 속에서 같이 녹아내려있는 이런 사랑도 만나게 된다. 한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새롭게 시작된 생명에서 안도를 느끼게 해주고, 한 사람에게는 다시 한번 살아보고자 하는 욕심을 부리게 만드는...

빅토리여사의 욕심으로, 곧 죽을 아들을 대신할 하나의 손주를 보고 싶은 욕심에 불러들인 난다가 그런 역할로 자신의 삶까지 휘저어놓을 줄은 몰랐겠지. 더이상의 목숨을 포기한 당신의 아들에게 또한번 살아보고자 하는 욕심을 만들어줄 아이가 될 줄 몰랐겠지. 불쌍하다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이었는데, 차마 그렇게 이어질 운명인 줄도 몰랐겠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자꾸만 공기처럼 스며드는 난다의 향기에 익숙해져가는 현무. 사랑 같은게 아니고, 그저 익숙해져가는 일상 중의 하나라고, 곧 자신의 임무만 완수하면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시작은...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루는 그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조금씩 조금씩 한 손을 내밀고, 서로의 이야기를 조금씩 드러내놓게 되고, 서로의 향기가 스며들게 되면서... 따뜻한 온실의 포근함이 좋아서 온실을 만드는 남자 현무와 그런 온실의 포근함을 알아주는 그녀 난다와 함께 만들어갈 10개월의 시간... 하루만 더, 일년만 더, '조금만, 조금만 더' 라고 자꾸 바라게 되고 욕심나게 만드는 감정을 뭐라고 불러줘야 할까... 

어느 책에서인지 누군가의 말에서인지 기억이 희미한데, 함께 죽는 것만큼의 인연도 없을 것이고 축복도 없을 것이라고... 세상에 태어나 인연을 만나서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다가도, '영원히'라는 말을 쓸 수 없는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태어난 시간은 달라도, 서로가 만나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함께 죽는 것만큼의 운명도 없을 것이라고...

각자의 아픔이 전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서로에게 안녕을 고해야 하는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 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는 것 같다. 먼저 가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또 그 사람을 보내고 남겨져야 하는 사람은 남겨진 사람대로의 입장이 있고 역할이 있다. 각자의 슬픔 역시 비슷하게지만 각자의 몫으로 또 감당해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또 이기적인 사람인지라, 먼저 이 세상과 안녕한 사람의 마음은 알지 못한다. 그저, 남겨진 사람의 슬픔만을 가득 채운 가슴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간들이 겁난다는 것 뿐...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누군가를 두고 먼저 가는 발걸음 역시 무거울 것이라는 것을... 현무가 슬퍼할 것을 보면서 느껴지는 많은 감정들이 더이상의 어떤 표현도 쓸 수 없게 만든다. 그저 '미치겠다' 하는 말만 반복하게 만들어서. 난다와 남겨진 그 밖의 것들에 대한 애착이 시간이 흐를수록, 남겨진 시간이 부족할수록 더 애가 탈테니까... 전지현을 닮은 머릿결, 김태희를 닮은 눈, 송혜교를 닮은 코, 안젤리나 졸리를 닮았다는 그 입술을 끝까지 못봤다면 혹시 괜찮았을까?. 조금은 덜 슬펐을까?.

어리석은 질문이고, 바보 같은 가정이네... 'If...'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고, 헤어져야 할 사람은 또 그렇게 헤어진다.
가야할 사람은 가고, 남은 사람은 또 남게 되는 것이다.
남겨진 사람은 묵묵히 그 시간을 살아내고, 그리워할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아프면 아픈대로, 추억으로 꺼내볼 수 있으면 추억하는대로 그렇게 또 살아질테니까...


먹먹한 가슴이 진정이 잘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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