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이 끝나는 곳 동화 보물창고 34
셸 실버스타인 지음, 이순미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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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상상 뿐이다. 죽음과 삶까지 자유 왕래가능하다. 절대로 쉘 실버스타인처럼 상상할 수 없는 나같은 사람이 있기에 시인은 꼭 존재해야 한다. 그의 상상은 자유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날카롭고, 웃기고, 또 무엇보다도 따뜻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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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에게 - 2006 제5회 이수문학상 수상작
최영미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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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지를 주지 않고 내려꽂히는 화살처럼, 문득문득 김수영이 비치기도 하고, 오랜만에 갸우뚱하지 않아도 되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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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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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한다는 마음이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전문

 

 나는 왜 시를 읽는가 혼자 물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고 말 할 수 있는지, 불어터진 건빵처럼 치덕거리며 사는 나는 이런 문장을 만났을 때 딱딱했던 건빵의 '간결'을 기억해낸다. 대답하자면 내가 시를 읽는 이유는 이런 팽팽한 긴장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가 아닌 어떤 글에서 이런 순도 높은 긴장의 순간과 마주칠 수 있는지 나는 모른다.

 

시인 당신처럼 문장이 내 손목을 잡았던 적은 없지만 그 순간의 홀림을 나는 알겠다. 내일 날씨를 점쳐본다는 것은 얼마나 일상적인 일인가. 그런데 당신은 어쩌자고 그런 사람 조차 없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람의 자서전을 쓰고 있는가. 그 외롭고 쓸쓸하고 간결한 생계를 가진 당신이 쓰는 시는 그래서 아주 느릿한 읽음새로 읽고 되새김하게 된다.

 

 이 시의 세 번째 연은 너무 쓸쓸하고 간곡해서 내가 이 연을 만나기 위해 이 시집을 읽게 되었는가 싶다.

 그러니까 당신의 시는 빗물에 외투가 젖어드는 속도, 외투의 내피까지 빗물이 도달하고 그 빗물이 외투의 색을 이끌어 이제 흰 속옷에 스며드는 속도, 혹은 그 만큼의 감각으로 읽어야 할 듯하다.

 몹시 느리며 몹시 예민하게!

 그러다보면 간결한 생계의 주름 마다 빼곡하게 들어 있는 당신의 숨을 거두어 들이게 된다. 그 숨의 결이 하도 뜨거워 당신의 시를 읽는 일은 쉽지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랬으니까.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 묵은 두통이 서서히 잦아드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결국 당신이 여러 편의 시에서 호명한 미인은 아름다웠고, 당신도 아름다웠다. 그리하여 나에게 당신은 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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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염바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55
이세기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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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시를 읽지 못했다. <먹염바다>도 여름 끝무렵에 사놓고는 가을 끝에야 읽는다.

바다 가까이 살았지만 강릉 바다는 바라보기 좋은 곳이지, 생활의 바다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잘 모른다. 태생이 강원도 산골이라 고등어 자반을 생선으로 알고 자랐다.

강릉 바다는 바라보기에도 벅찬 대상이었다.

 

그런데 "허옇게 물살 이는 소리" 가 들렸다.

굴봉 쪼는 소리도 들릴 것만 같고, 검은 바다 위에 쏟아지는 눈도 보이는 것 같다.

바다 곁에 사는 사람들이 쓰는 말은 낯설지만 몰라도 그만이다.

한반도 서쪽 어느 곳 거기 안도현 시인의 <북항>에 눈이 내리고 있다.

 

시를 읽으니 때가 낀 유리를 빡빡 닦아낸 기분이 들어 좋다.

맑아졌다.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해 보았다.

 

최원식의 해설은 시같다고 생각하며 이런 해설도 있구나 감동하며 읽었다.

최두석 시인과 박영근 시인의 표지 해설은 읽어 본 해설 가운데서도 가장 정확하다.

시인을 잘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인과 시를 사랑하지 않고서야 그런 속깊은 글을 쓰지 못하리라.

 

그 맨 처음이 시들이다.

시와 해설과 표지 글이 있어 비로소 <먹염바다>가 되었다.

외우고 싶은 시 한편을 얻었다.

 

 이번 겨울만큼은 부디 사그라들지 말거라 개오동나무야 하니

 

 그러마 한다.

 

 할머니 감자탕집 뒷간 지키는 강아지도 그러마 하고 이마를 스치는 바람도 그러마 한다

 

 꾸벅꾸벅 조는 할매야 미안타 영하까지 내려온 이 한밤 녹아내리는 한밤인데

 

 한 잔 더 묵자 할매야 하니

 

 그러마 한다

 

 흐릿한 유리창 밖 네거리 싸락눈만 내리고

 

<싸락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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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항 문학동네 시인선 20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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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폭이 얼마나 되나 재보려고 수평선은 귓등에 등대 같은 연필을 꽂고 수십억 년 전부터 팽팽하다

 

사랑이여

나하고 너 사이 허공의 폭을

자로 재기만 할 것인가  

                                              - <폭> 전문

 

 

주부로 살면서 절실한 것은 내 말을 하고 싶은 상대다.

남편 흉 말고, 아이 비교 말고, 시댁 갈등 말고 오로지 지금의 나와 너 얘기를 할 사람이 필요하다. 주부의 사회적 관계망은 학교와 같은 반 엄마들, 혹은 학원에서 더 이상 확대되지 않는다. 그 핵심에는 아이와 엄마 혹은 학(부)모가 있을 뿐, '나'는 늘 흐릿하다.

 

그래서 '등대 연필'로 수십억 년이나  팽팽하게 바다의 폭을 재고 있는 수평선의 시적 허용을 공감할 상대를 만난다는 일이 더없이 감사할 일이 되는 것이다.  이 시집은 내가 한없이 흐릿해져 가던 시절, 그야말로 우연히 내게 온 그녀가 선물로 주었다. 안도현의 목소리와 그녀의 목소리가 이중주로 들려오는 책읽기가 되었다.  

 

 이 시집을 내게 준 그녀와 아직 이 시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 시간을 갖지 못하였다. 아줌마의 무딤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그녀를 만나면서 내가 얼마나 감동했는지, 그녀를 통해 늘어진 내 삶의 고무줄이 한줌은 당겨졌음을,  안도현의 시집을 함께 읽을 책 동무로 나를 초대해 준 그녀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 이글을 쓴다.

 

 손으로 만든 것 같다는 안도현의 이번 시집은 그래서 조금 힘주어 펼치면 책장이 후루룩 떨어질 것 같이 위태롭다. 하여 더 조심하게되는데, 투박한 느낌이 말만큼이나 새롭다. 20년 전, 열심히 시집을 사보던 젊은 시절의 책을 다시 만나는 것 같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나는 여러번 웃었다. 여러번 눈을 비볐고, 여러번 놀랐고, 여러번 기뻤고, 여러번 미안했고, 여러번 민망했고,  여러번 좋았다. 잠시 결별했던 것 같은 시를 다시 만난 것이 가장 크게 기뻤다.

 

눈이 밝지 못한 나같은 독자에게 시는 좋은 것과 모르는 것 두 가지다. 시인이 하는 말을 알것 같으면 좋은 것이고, 도무지 잡히지 않는 시는 모르는 것이다. 표제작인 <북항>은 그래서 여러번 읽어야했으나 여전히 '부강'이라고 말하는 '너'의 존재를 알 수 없었다. 그 시의 속살을 전혀 보지못해서 시집을 덮고 나서 가장 낯선 시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 시집을 읽고 나서 감히 한동안 다른 시들은 좀 싱거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시적 상상의 폭이 넓고 깊었다.  크고 작은 것 사이의 넒나듦은 자유롭고 날카로웠다.

 

바다의 폭과 너와 나 사이의 폭을 가늠해 보거나(<폭>), 옥수수 한 알을 심는 행위에서 시작해 드디어 옥수수 그림자를 경작하는 사람으로의 확대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파종의 힘>), 얼갈이배추 씨에서 나비가 울타리를 치고 돌아오는 안쪽까지 내 소유로 만드는 발견(<재테크)>, 박쥐똥을 쓸면서 박쥐의 배변주기를 생각하는 서생의 양심(<박쥐똥을 쓸며>)을 따라가다 보면 시 읽기는 재미와 함께 발견의 기쁨까지 얻게 된다.

 

이번 시집에서 비교적 짧은 시들(<등> <폭> <찔레꽃> <비켜준다는 것> <문경옛길> 등)의 시적  표현들은 왜 시를 읽어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언어를 다루는 일이 어디까지 기쁨을 줄 수 있는지도 함께. 응축된 몸집 안에 담긴 사유의 힘이 시의 외형임을 잘 보여주는 시들이었다.

 

이미지 보다는 이야기의 기능이 강한 긴 시들은 그만큼 사유가 더 확장된 시들이다. 시인의 목소리가 조금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고 느껴지는데, 역시 더 큰 힘이 느껴진다. (<설국><말뚝> <연륜><영산홍>) 

 팽팽해진 긴장을 나긋나긋하게 풀어주는 것 또한 이번 시집을 읽는 또하나의 재미다. 유머나 위트가 아니라 연륜이 느껴지는 여유라고 말하고 싶다.

 

 시는 시인의 일상에서 길어올린 발견이고 깨달음이다. 당연히 사적일 수 있는데, 그의 사생활을 살짝 엿보는 일도 나쁘지 않다. <송찬호 형네 풀밭에서>나 <백석학교>가 특히 드러나게 사생활을 보여주는 시들이다. 시인 송찬호의 풀밭을 독자가 언제 볼 수 있겠는가 싶으니 그의 집에 마실을 가서 한나절 놀다 왔을 시인의 모습 또한 시만큼 발랄하고 좋을 뿐이다.

 백석을 좋아하는 시인들을 모아 백석학교라 이름지을 만하니, 올해 100주년 기념 동창회에 모인 그들의 수다가 궁금하다.

 

 시는 언어가 빚어내는 '잘 만들어진 그릇'이다. 그의 진면목을 보는 것은 보는 이의 내공에 따라 다를 것이다. 결국 발견하고 읽어야 그것이 나에게 시로 다가오는 것일터.

 온전하지는 못해도 어쩌다 '화안하게' 내 마음에 들어오는 시를 만나는 일이 즐거워서 아마 나는 시를 읽는 모양이다. 가령 이런 시!

 

         어제 저녁 영하 이십 도의 혹한을 도끼로 찍어 처마 끝에

      걸어두었소

         꾸덕꾸덕하게 마를 때쯤 와서 화롯불에 구워 먹읍시다

      구부러지지 않고 요동 없는 아침 공기가 심히 꼿꼿한 수

     염 같소

        당신이 오는 길을 내려고 쌓인 눈을 넉가래로 밀고 적설

     량을 재보았더니 세 뼘 반이 조금 넘었소

       간밤에 저 앞산 골짜기와 골짜기 사이가 숨깨나 찼을 것

    이오

     좁쌀 한줌 마당에 뿌려놓았으니 당신이 기르는 붉은가슴

   딱새 몇 마리 먼저 이리로 날려 보내주시오

     또 기별 전하리다, 총총

                                             <일월의 서한(書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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