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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부터 헬로라이프 스토리콜렉터 29
무라카미 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내년부터는 정년 60세가 의무화되면서 공공기관과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인 사업장의 경우 정년이 만 55세에서 만 60세로 바뀐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럼 전까지는 만 55세가 정년이었다는 건데, 알다시피 55세는 아직 너무도 정정하고, 멀쩡한 나이 대이다. 55세는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쉬기에는 아직 많이 아까운 나이라는 말이다. 대부분 정년 퇴직을 타의로 하게 되면서 퇴직금으로 새 사업을 시작해서 그 돈 마저 날려버리거나, 혹은 퇴직 후에 우울해하며 소일거리를 하며 갑자기 늙어버리거나 그럴 것이다. 아예 새로운 일을 찾아 다시 시작하는 경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우리 아빠도 정년 퇴직 후, 그러니까 잘 나가던 회사의 이사 자리에서 내려와 평범한 아저씨의 위치에 오게 되고 나서 몇 년, 계속 직장 생활을 하던 시기에 비해 금방 늙으셨다. 그런 아빠를 보면서 '정년'이라는 것이 꼭 필요한 가에 대한 의문을 나는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었고, 55세가 되기 전에는 꼭 그 이후 노년의 삶에 대해 대비를 별도로 해두어야 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뭐 인생이 마음 먹은 대로 되겠냐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무라카미 류의 <55세부터 헬로라이프>는 그렇게 사회에서 밀려난 4050세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신문 에 연재했던 중편소설 다섯 편인데 모두 중, 장년인 주인공이 인생의 전환점을 지나 새 출발 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년 퇴직 후에 찾아오는 어려움은 경제적인 격차에 따라 다양할 텐데, 이 작품집 속의 다섯 인물들의 스토리를 읽다 보니 나에겐 아직 한참 먼 미래의 이야기이면서도 어딘지 공감이 되어 쓸쓸해지기도 했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기존의 무라카미 류의 작품을 꽤 읽었던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이 작품이 색다르게도 느껴질 수 있을 거라는 점이다. 인물들의 내면을 따스하고 부드럽게 바라보는 시선은 이들의 현실과는 다르게 꽤 희망적이라 포근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겠죠?"

"그게 실은, 스스로 인생의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결혼 상담소>의 나카고메 시즈코는 정년 퇴직한 남편이 재취업을 하려다 번번히 실패하자 온종일 텔레비전 앞에 대고 불평불만만 늘어놓기 시작하자, 함께 있는 것이 견딜 수 없어서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30년 가까이 함께한 사람과 이렇게 간단히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이 어처구니없을 만큼 이혼이 순식간에 결정이 되었지만, 그녀는 혼자 살게 된 적막감과 해방감을 느끼며 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결혼 상담소에 등록을 하고 남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가 재혼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경제적인 부분도 있지만, 평생 남편 외에 다른 남자를 접해본 적이 없었기에 다른 남자를 한번 사귀어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녀가 선을 보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취향과 성격의 남자들은 그녀를 수치스럽게 만들기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는데, 어쩌면 그것이 늦은 나이에 재혼하려는 그녀의 냉정한 현실이기도 할 것이다.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의 인도 시게오는 쉰네 살에 작은 출판사에서 정리 해고를 당한 뒤로 노숙자를 볼 때마다 불안감이 엄습한다. 자신도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무리에 끼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날이 커져 차량 안전 요원으로 일을 한다. <캠핑카>의 토미히로 타로는 회사의 조기퇴직제도에 응하는 형태로 정년퇴직을 하게 된다. 회사의 영업 방침이 바뀌면서 한직으로 밀려난데다, 조기퇴직우대제도에 따른 특별 가산금 때문이었다. 그는 퇴직 후 한 달이 되어 갈 때 즈음 그 동안 꿈꿔왔던 일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바로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돌아보는 것. 그러나 아내는 앞으로의 노후도 있는데 캠핑카에 들이는 지출은 안 했으면 하고, 휴가를 길게 내기도 어렵다고 말하고, 그는 뭔가 소중한 것이 산산조각 난 듯한 기분이 든다.

"좋은 재취업 자리라도 있으면 모를까, 체력은 나날이 떨어지고 저금도 나날이 줄어들기만 하지. , 장년층 자살이 많은 것도 당연해.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앞으로 좋은 일 같은 건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말이야, 그래도 내게는 이런 좋은 일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희망이잖아. 뭔가 희망이 필요한 거야."

정년 후에도 대부분은 재취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는데, 정년퇴직이라는 제도는 오로지 회사의 입장만 고려해 만들어낸 냉정한 제도라는 생각도 든다. <펫로스>의 다카마시 요시코의 남편은 전형적인 외향형 인간으로 밖에서는 쾌활하고 화제도 풍부하지만, 집에서는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볼 뿐 그다지 말이 없는 편이다. 그런 그가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는 인터넷 블로그를 시작해 거의 하루 종일 서재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 부부 간의 대화는 더욱 없어졌다. 정년퇴직 후 시간이 많아지면 그 동안 함께 못한 시간들을 더 많이 공유할 수도 있을 텐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쉽지 만은 않을 것도 같다. 그런 그녀를 위로해주는 것은 애견 보비, 그녀는 애견 모임을 통해 친구를 만나고 산책을 시키고 하면서 소소한 즐거움을 만들지만, 나이 든 보비가 병에 걸리게 되자 하루하루가 슬프고, 우울하기만 하다. <여행 도우미>에서 트럭 운전사로 일하던 시모후사 겐치이는 예순 살이 되자 회사에서 해고된다. 표면적으로는 건강상의 이유를 내세웠지만, 취직을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운전사가 남아도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헌책방에서 추리소설을 즐겨 읽던 그는 비슷한 취향의 유부녀를 만나게 되고, 결국 그녀에게 고백을 하지만 그녀는 병든 남편을 떠날 수 없다며 거절한다.

죽겠다고 결심하고 죽는 사람은 없다. 무언가에 끌어당겨지듯이,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그렇게 결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행선지가 정해진 트럭을 담담하게 몰고 가듯이, 어떤 장소로 피해 옮겨 가려 할 뿐이다. 하지만 내 인생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구나. 단 하나 분명한 사실은 이런저런 물건들을 트럭으로 운반하는 내 일은 나름의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55세라는 나이는 많은 것 같으면서도 아직 늦지 않은, 그러니까 더 이상 젊지는 않지만 늙었다고 말하기엔 어딘지 아까운 그런 나이이다. 수십 년을 한 가지 일을 하며 살았던 이들이라면, 정년퇴직 후에 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막막할 것이다.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어린 사람이나 나이 먹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쉽지 않은 일이니까 말이다. 특히나 절만이나 실의를 겪고 나서, 용기도 없어지고, 자신감도 줄어들었을 때는 더욱 힘이 들 것이다. 하지만 무라카미 류는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건 후회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차피 한번뿐인 내 인생 아닌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하루는 지나가고, 매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내도 내일은 온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 동안 당신의 인생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지난 일을 후회하고 막막해하기보다,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시간들에 감사해보자.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해보지 못하던 것들을 이제는 실컷 해볼 수 있지 않은가. 용기를 가지면 당신의 인생은 이전보다 훨씬 더 행복해 질 수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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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4-25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두 문장에 씽긋~ 웃으며 ^^ 잘 읽었습니다. 필요한 책이네요.

피오나 2015-04-26 12:32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이 나이때가 되었을 무렵에..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