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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 -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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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를 알게 된 건 순전히 김연수 작가 때문이었다. 그가 어디선가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라는 단편이 10개 실린 책을 추천했고, 제목에서 오는 끌림 때문에 나는 단번에 그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그는 플래너리 오코너의 그림자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들에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그녀의 단편들이 궁금했다고 한다. . 과연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그녀의 단편 10편을 읽고 나서 들었고, 그러다 보니 무려 서른 한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 현대문학의 세계문학단편선 시리즈는 어쩐지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오코너는 처음에는 자신도 무슨 이야기를 쓰는지 모른다는 점에서 이야기란 발견의 서사라고 말했는데, 그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올해에야 플래너리 오코너를 발견했다고 김연수 작가가 소개하는 글 역시 동감한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던 이 작가는 작년에 처음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소개되었는데, (이것 또한 김연수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뒤늦은 발견은, 그만큼 감동적이었다고 할까. 플래너리 오코너는 25세에 홍반성 낭창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오랜 세월 투병 생활을 한 끝에 결국 3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장편소설 2편과 단편소설 32, 여러 권의 평론집과 에세이를 남겼는데, 단편만 쓰던 작가는 아니었지만 분량 면에서 단편이 그녀의 주 장르인 셈이긴 하다. 작가의 길에 막 들어선 20대 중반 무렵 이미 자신이 어떤 글을 써 나갈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그녀는 이후 12년만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잠시도 흔들리지 않고 글을 썼고, 불과 네 권의 책으로 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다.

처음 만난 그녀의 작품인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좋은 사람은 드물다'라고 번역) 는 짧지만 강렬하게 임팩트를 남겨주었던 기억이 난다. 뭐랄까. 평범보다는 한 쪽 방향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는 인물들이 잔뜩 등장해서 읽고 나서 '여운'보다는 '불편함'이 잔뜩 남는다고 할까. 출판사 리뷰에 조이스 캐롤 오츠가 그녀에 대해 평한 문구가 실려 있는데, 마치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을 읽고 나면 섬뜩하고 기괴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처럼 다소의 그로테스크함마저 느껴졌다. 일상을 배경으로 보여주는 그로테스크함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오랜 투병 생활을 했고, 가톨릭계 집안에서 자랐던 것이 작품에 정서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거의 모든 작품에  미국 남부의 위선적인 삶과 기독교적인 삶에 대한 주제가 변주되어 있는데, 너무나도 차갑고, 냉정한 시선으로 신랄하게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기에 가끔은 유머마저도 섬뜩하게 느껴진다. 작품 속 인물들은 종종 미신이나 종교 때문에 편견으로 누군가를 대하거나 폭력을 행사한다. 어디선가 <종교와 법, 윤리가 삶의 테두리가 되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소위지성인들의 환상은 플래너리 오코너의 작품 안에서 완벽하게 깨진다>라는 설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녀의 단편들을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문구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품 속 상황이 블랙유머처럼 그려지지만, 그 속에는 항상 미국 남부인들의 위선적인 삶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작가의 예리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세상이 이렇게 엉망인데 우리가 무언가에 기뻐할 수 있다는 게 기적이야. 바닥이 꼭대기에 갔다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줄리언은 한숨 쉬었다.

"물론 자기 위치를 아는 사람은 어딜 가든 상관없지만." 어머니가 말했다.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중에서

 

줄리언은 의사의 권유에 따라 혈압이 높은 어머니가 체중을 감량할 수 있도록 시내 YMCA의 감량 수업에 모시고 다닌다. 그의 어머니는 버스에 인종차별이 없어졌기 때문에 혼자서 밤에 버스를 타지 않으려고 할 정도로, 여전히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아들에게 네 증조할아버지는 이 주의 주지사였고, 노예가 200명인 대 농장주였다며, 자신은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강조한다. 아들은 사람의 위치는 한 세대밖에 효과가 없다며, 어머니는 지금 자신의 처지도 위치도 전혀 모른다고 거칠게 대꾸하지만 어머니의 귀에 들릴 리 없다. 그는 어머니가 자기 환상 세계의 법칙에 따라 살며, 그 바깥에 발을 내딛는 걸 본 적이 없다. 게다가 그 법칙은 아들을 위해 당신을 희생하는 것이었는데, 그러기 전에 먼저 사태를 엉망으로 만들어서 그럴 필요를 만드는 거였다. 그들 두 모자가 버스를 타고 가면서 흑인 (책에서는 깜둥이로 표기되는) 들을 만나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은 내가 마치 줄리언이 된 듯 낯뜨거운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진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장점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이 아닌가 싶다.

"저 사람은 어제 우리 집에 성경 책을 팔러 온 그 착하고 멍청한 젊은이 같은걸." 호프웰 부인이 눈을 찌푸리고 말했다. "저쪽에 사는 깜둥이들한테 성경을 팔러 갔던 모양이야. 순진하기도 하지. 그래도 우리 모두가 저렇게 순진하다면 세상이 훨씬 좋아질 거야."

프리먼 부인이 앞쪽을 이리저리 찾다가 그가 언덕 아래로 사라지는 모습을 간신히 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땅에 박힌 냄새 고약한 양파 싹으로 관심을 돌리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순진하게 사는 게 불가능해요. 나는 일단 불가능해요."

                                                                                          -좋은 시골 사람들 중에서

 

"내 다리 내놔!" 라는 공포물에서나 등장할 법한 대사가 나오는 이 스토리에서는 한 청년이 소녀를 유혹해서 그녀의 다리를 훔쳐간다는 스토리이다. 다리를 훔친다는 게 무슨 말이냐 싶겠지만, 그녀는 열살 때 사냥터에서 총기 사고로 다리 한쪽을 잃어 의족을 하고 있다. 호프웰 부인은 자신의 딸아이가 춤 한 번 취 보지 못하고 평범한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는 서른두 살의 뚱뚱한 처녀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부인에게는 딸이 아직도 아이처럼만 느껴지는 이유이다. 호프웰 부인이 성경 책을 팔러 온 훌륭한 젊은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자신의 딸을 유혹해서 그녀의 의족에 관심을 가지고, 그녀를 농락하게 된다는 것이 주요 스토리이다. 키스를 하고, 사랑한다고 달콤한 말을 하며 사랑을 증명해 보이라고 그녀의 의족을 보여달라고 하더니, 의족을 어떻게 떼고 붙이는지 보여달라더니 결국 다리를 도로 붙여주지 않고 그걸 가지고 가버리는 것이다. "너는 그냥 좋은 시골 사람 아니었어?"라고 탄식하는 조이의 상황과 같은 단어지만 다른 의미로 읽히는 호프웰 부인의 "좋은 시골 사람은 세상의 소금이에요!"라고 흥분하던 상황은 기묘하게 대치되어 읽힌다. 딸을 농락하고 가는 그의 모습을 멀리서 보던 부인은 "그래도 우리 모두가 저렇게 순진하다면 세상이 훨씬 좋아질 거야." 라고 말한다. 세상은 그렇게 겉으로 보이는 것과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수많은 진실과 거짓말로 뒤덮여 있는 것이다.

플래너리 오코너는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어두운 면을 포착해 감정을 폭발시키고, 그들을 망가뜨린다. 쉽게 말해 우리 모두 사용하고 있는 일상의 가면 뒤에 감춰진 면을 끄집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너무나도 정상적으로 보이는 인물의 속마음이 실제로 어떤지 알게 된다면 세상은 정말 지옥이 될지도 모르겠다. 진실은 때로 모른 척 해야 할 순간들이 생기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들은 대부분 쉽게 읽히지만, 수월하게 넘기긴 힘들다.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마주하게 하고, 불편하게 만드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독선으로 가득 찬 인물들의 위선이 벗겨지는 순간에 통쾌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눈을 감고 살아가라 말하는 세상이지만, 그녀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두 눈 부릅뜨고 세상의 숨겨진 이면을 직시하고 싶어지곤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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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14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현명한 피>라는 소설만 나오면 되겠어요. 오코너의 대표작이라던데 과연 어느 출판사가 낼 건지 궁금하군요. ^^

피오나 2015-02-14 22:05   좋아요 0 | URL
저도 <현명한 피> 궁금해요. 단편을 많이 쓴 작가의 장편이라 더 궁금하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