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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를 다 떠나보낸

노박덩굴의 여유 속으로 봄이 오고 있다.

이토록 한가로우니

여기에 무엇을 더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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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동안 놀기에 적당하지 않은 날이 없고, 한 세상에서 함께 놀기에 적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러나 노는 날은 반드시 좋은 때를 골라야 하고, 함께 놀 사람은 반드시 마음에 맞는 이를 찾아야 한다. 좋은 날에 좋은 사람을 찾았으면, 또 반드시 즐기기에 적당한 장소를 골라서 즐겨야 한다.
좋은 때를 고르자면 늦봄의 화창한 삼짇날보다 더 어울리는 날이 없고,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자면 진솔한 시인 묵객보다 더 어울리는 사람이 없으며, 즐기기에 적합한 곳을 가리자면 호젓하고 툭 트인 울창한 숲과 냇물보다 더 어울리는 장소가 없다. 이 세 가지를 갖춘 뒤에야 그 놀이가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다. 이것이 왕희지의 난정계첩이 오늘날까지 오래도록 일컬어지는 까닭이다.

*조선시대 사람 권상신(1759~1825)이 주도한 대은암의 꽃놀이를 김홍도가 그린 '은암아집도隱巖雅集圖'에 찬贊을 붙인 글의 시작 부분이다.

권상신의 다른 글, '남고춘약南皐春約'에 따르면 젊은 시절 절친들과 과거공부를 핑계로 모여 함께 한바탕 봄놀이를 즐기고자 하여 규약을 정한 것이 있다. 여기에는 "첫째, 밥을 먹기 전에 어떤 장소에서 꽃구경을 할지 의논하여 결정한다. 둘째, 보슬비나 짙은 안개, 사나운 바람이 불어도 가리지 않는다. 셋째, 갈 때 소매를 나란히 하기도 하고 또 걸음걸이를 나란히 하기도 한다. 넷째, 꽃구경을 하는 이 중에 꽃을 꺾는 것을 즐겁게 여기는 이가 있는데, 매우 의미 없는 짓이다. 다섯째, 술잔을 돌릴 때 작은 잔을 나이순으로 돌린다. 여섯째, 운을 내어 시를 지을 때, 하나의 운으로 함께 짓기도 하고 운을 나누어 각자 짓기도 한다." 로 정하고 이를 어길시는 별도로 마련한 규칙에 의해 벌칙을 받아야 한다고 정했다. 벌칙은 정도에 따라 최고로 무거운 것이 술이 다섯잔이다.

우수雨水가 지나며 날이 풀린다는 것을 앞서가는 마음따라 몸도 알아 본다. 눈 속에 핀 꽃을 찾아 꽃놀이를 시작한 이래 한층 가까워진 꽃소식을 접하며 마음은 안달복달이다. 이에 옛사람들의 꽃놀이에 대한 글을 찾아 읽으며 꽃을 대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본받고자 한다. 꽃을 핑개로 벗들과의 교류가 중심이겠다. 하지만 번잡함을 피하는 사람으로 혼자 누리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을 알지 못한다.

한가지에서 난 산수유가 나란히 세상 구경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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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人夜聽木鷄聲 석인야청목계성"

별편지

이 저녁 당신께 물방울 하나만큼의 고요를 드리기 위해

혼자서 진천 보탑사에 다녀왔습니다.

"돌사람이 밤에 나무닭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이 구절을 보려고요.

눈부신 햇볕이 내리는 뜨락에 누군가 돌사람 하나를 앉혀놓았더군요.

'금강경'에 나오는 이 구절의 뜻을 가만히 헤아리노라면,

춥고 그늘진 계곡 속 작은 돌맹이 하나가 아득히 먼 별을 향해 손을 내미는

그 간절함이 떠오르곤 합니다.

서구적인 신학의 문제가 무냐 전체냐를 전제로 한다면

돌사람이 귀 기울이는 나무닭의 울음소리야말로 고요의 경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리산 화엄사 사사자석탑에 갇힌 돌사람도

지금 여전히, 마주한 또 다른 돌사람을 향해

온몸을 내던지고 있겠지요.

우리 만날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 마음 하나 생겨나서 당신을 향했으니 행복했다, 싶습니다.

어느 광년이 지난 후에 당신은 이 편지를 읽고 살짝 미소지을까요.

이만 총총

*손종업의 산문집 "고요도 정치다'에 나오는 글이다. 쉬엄쉬엄 읽어가면서도 되돌아오길 반복하다가 아애 발목을 붙잡히고 말았다.

추위 속에서서도 계절을 봄으로 이끄는 생명, 변산바람꽃이 바위틈을 비집고 올라왔다. 멀리두고서 그리워하는 마음이 이와 닮았을까. '고요'의 경지를 엿보는 중이라고 하면 억지를 부리는 것일지라도 그 고요 속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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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月 망월

未圓常恨就圓遲 미원상한취원지

圓後如何易就虧 원후여하이취휴

三十夜中圓一夜 삼십야중원일야

百年心思摠如斯 백년심사총여사

달을 바라보며

둥글기 전에는 어여 둥굴기만 바라더니

둥근 뒤에는 어찌 그리 쉬이 기우는가

서른 밤 중에 둥글기는 단 하룻 밤인걸

평생에 마음 쓰는 일들 다 이와 같구나

*조선사람 구봉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의 시다.

달을 보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절정의 순간 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시간이 둥근달을 기다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룻밤이면 기우는 것을.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바라는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정점은 만개한 때 만이 아니다. 역경 속에서 꽃을 준비하고 꽃을 피워 열매 맺고 지는 모든 순간이 다 화양연화라 보아야 한다. 생명이 어느 한순간만이 주목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긴 겨울이 만들어 낸 복수초가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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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는 몸보다 마음이 급하다지만

걸음을 끌고가는 것은 문턱을 넘는 발걸음일지도 모른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끼에 맺힌 물방울이 봄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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