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기 전 3분, 내 몸 보살피기
이시가키 준지.고이케 고로 지음, 이혁천 옮김 / 북씽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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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스트레스를 일시적으로나마 해소시켜주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즉흥적이고 단시간에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즉석 놀이가 아닐까 싶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노래방에서 실컷 뛰어놀거나 혹 마음껏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간접적인 파괴력을 만끽하면서 억눌린 가슴을 뻥 뚫어보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우리의 파괴력도 덩달아 쌓여간다. 내가 표출한 고통을 타인이나 물체가 공격당하는 것을 보고 잠시나마 스스로 위력을 실감하고, 그래서 일종의 해방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스트레스 해소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표현한 것은 사실이나, 이 스트레스가 제때 해소되지 못하면 충동적 동기로 인해 되돌릴 수 없는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현대인의 삶은 해가 뜨기 전에 시작되고 다시 해가 지고 나면 끝이 난다. 따사로운 햇살을 몸과 마음에 골고루 비추어도 모자랄 최적의 시간은 현대인의 스트레스가 한껏 고조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식물은 내리쬐는 햇빛으로 인해 광합성을 하고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식물에 비해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광합성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옷만 대충 갈아입고 드러눕기 일쑤다. 일부 사람들은 자기계발의 강력한 힘을 믿고 열심히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 사람들은 잠들기 직전까지 오늘과 내일을 걱정하느라, 몸과 마음이 제대로 된 여유를 누리지 못한다.

 

그에 <잠자기 전 3분, 내 몸 보살피기>는 더이상의 스케줄이 존재하지 않는 마지막 시간, 바로 잠자기 전에 주목한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해보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3분은 금방 지나간다. 저자는 잠자기 전 3분을 활용해서 우리의 몸과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고 한다.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행하는 기지개 켜기와 목을 좌우로 움직이는 스트레칭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 더 나아가 이 책에는 피로의 근본적 원인과 외형적으로 스트레스의 영향이 부각되기 쉬운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법, 운동신경발달에 도움이 되는 운동 종목, 체내의 장기를 활성화하는 법, 정신력을 단련시키고 건강하게 장수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기구 없이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건강관리법이 수록되어 있다.

 

「건강관리에도 요령이 있다. 하루의 피곤과 스트레스는 그날그날 풀어야 한다. 즉,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와 대충 씻고 쉰다고 피로와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보살펴야 한다. 우리 몸은 소자연(小自然)이라고 한다. 자연은 말 그대로 계절의 흐름, 스스로의 흐름대로 바라봐주고 보살펴 주어야 자연다운 자연을 느끼고 만끽할 수 있다.」-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을 유용하게 활용하려면 자신에게 필요하고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운동법을 추려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책에 실린 내용의 절반가량은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삼고 제시한 듯하다. 물론, 청소년이나 여성이 활용할 수 있는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러나 긴장과 스트레스로 수축된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스트레칭이 많은 게 특징이기도 하다. 몸의 이상증세에 따른 운동법을 세부적으로 제공하며, 그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이시가키 준지와 고이케 고로라는 저자의 글을 편역했다는 점에서 미루어 볼 때, 저자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글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서 신뢰감이 좀 떨어지는 감이 있다. 의사이면서 건강 전도사로서 활동하는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이루어진 글이라면, 적어도 저자의 이력을 책에 공개하는 것이 독자에게 신뢰성을 부여하는 것임과 동시에 건강 서적이라는 책의 성격에 비추어본다면 기본적으로 실려야 되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건강 서적을 읽을 때에 저자의 기본적인 정보를 확인하는 성격이라서, 차후에 별도로 인터넷에 검색을 하고 나서야 저자에 대한 소개를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아쉬운 부분이 있으나, 책에 실린 내용은 실용적인 것이 대부분인지라 직접 활용한 것을 토대로 그것을 건강한 삶을 위한 습관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단, 운동법을 소개함에 있어 주요동작 한 부분을 그림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실사를 통한 운동법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이해력을 요구하는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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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꾸는 감사 레시피
정지환 지음 / 북카라반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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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낯섦을 향한 동경 혹은 갈망. 수명이 늘어남과 동시에 우리의 기대치는 한층 높아졌다. 그와 더불어 시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던 세계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인간은 소유할 수 없는 것에 심한 애증을 느끼곤 한다. 주어진 현실을 마냥 부정할 수 없을지라도 언젠가는 그 현실을 부수고 상승하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자고 다짐해도 낯설은 것을 향한 마음만은 포기할 수 없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작은 것에 감사함을 느낄 줄 아는 감정표현에 인색해졌다. 나를 찾아온 작은 선물의 가치가 곧 나의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도무지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 하나를 얻으면 둘이 아닌 셋을 생각하는 사람들. 익숙한 것에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곧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찾아온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낯섦을 갈망하는 것은 우리의 열정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주어진 삶마저 등한시하는 사람이 마냥 낯섦을 동경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이상과 현실을 오가면서 마냥 굶주림에 허덕일 수도 없는 법. 그 누가 말해도 진리일 수밖에 없는 유일한 정답이 있다면 아마도 주어진 현실에 감사함을 느끼며 충실히 사는 것이 아닐까. 수백 년이 흘러도 고갈되지 않는 맑은 샘물처럼… 우리의 마음도 정체되지 않고 순환하면서 본분에 충실히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감사 레시피>에는 자신의 본분을 지키면서 평생을 한결같이 살아온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언제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지닌 가치를 몸소 실천하며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변을 둘러보면 참으로 감사할 일이 많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나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함으로써 항상 시기와 질투심에 휩싸인다.

 

 

「다음은 시인의 고백입니다. "60대가 된 지금이라도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을 원망하기보다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감사는 희망의 기초이다. 감사하지 못하면 분노가 생기고 미래를 바라볼 수 없다. 미래를 바라본다 하더라도 하나의 미래밖에 보지 못한다. 미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다.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본문 중에서

 

익숙함에 길들여지는 사람은 현실적이지 않다. 현실적으로 사는 사람의 삶은 겉보기엔 평범할지라도 속내는 온통 비현실적인 갈망으로 가득하다. 차라리 욕구를 표출하고 대범하게 나아가는 사람들이 현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을 인정하란다고 굳이 현실적인 삶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누릴 수 있는 삶의 행복이 얼마나 클 것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삶의 미덕을 이야기하는 <감사 레시피>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속물로 찌든 가면을 아예 벗어던질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당장은 내가 손해를 보는 듯해도 시간이 흐르면 진실은 밝혀지는 법이라고 말해도 소용없는 것이다. 나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라. 그 말이 지닌 깊은 뜻은 알겠으나, 내가 처한 현실과 세상의 현실이 같을 수는 없기에, 우리가 삶의 가치관을 낯선 곳에 두는 것이다. 주어진 현실을 기꺼이 수용한 사람이 보여준 삶의 방식이 유일한 정답은 될 수 없다. 그것은 삶을 보다 이롭게 만드는 하나의 수단이다. 산다는 것에 목적을 부여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수단이라는 어감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서 인간의 삶에서 배제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글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결론을 내릴 순 없을 것 같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이유 때문일까. 그래도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큼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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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E 디어 미 - 사랑하는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데스티니 지음 / 시공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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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향한 관대함이 타인에게는 쉽게 용납되지 않는 것. 그러나 그 관대함이 우리에게 반드시 이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도리어 타인을 냉정하게 대하는 것이 곧 그들에게는 이로운 것이 된다는 모순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타인에게 관대하지 못한 나 자신의 모습은 결국 나를 억압된 공간 속에 가두는 것이 되고 말았다.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평가할 수조차 없게끔… 남의 잘못은 족집게처럼 잘도 뽑아내면서 정작 내가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한 것이 된다. 그 누구도 나라는 사람이 어떤 성향을 가졌으며, 무엇을 추구하는지에 대하여 정확히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매일 보는 가족조차도 서로에 대하여 제대로 아는 경우가 드물다. 우리 엄마, 내 자식들, 내 동생한테 저런 모습이 있었나, 라고 말하면서 새로운 발견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면 아마 공감할 것이다. 그 누구도 타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진실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사람의 몸과 마음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고도의 심리기술을 이용하여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Dear Me>는 일종의 자가진단이 가능한 심리테스트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질문이 골고루 뒤섞여 있는 <Dear Me>

 

「어쩌면 우리는 모두 고리타분한 '어른들'인지도 모릅니다. 사회에서 정해둔 채점표의 항목을 하나하나 채워가는 것이 '인간관계'라고 착각하며 사는. 그래서 소개팅을 할 땐 으레 "사는 곳이 어디에요?"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나요?" "하는 일은 뭐에요?" 등의 뻔한 질문을 하고, 나이와 소속으로 많은 것을 판단해버려요. 듣기만 해도 따분하죠? 하지만 다르게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본문 중에서

 

 

이 책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게끔 구성되어 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하여 점검할 기회가 없었다면 읽어볼 만하다. 질문은 사람에 따라 식상할 수도 있다. 사적인 질문과 공개적인 질문이 동시에 진행되는데, 가급적 진실하게 몰입하여 작성하고 책이 완성되면 남모르게 간직하면 좋을 것 같다. 간혹 양심적인 선언을 유도하는 질문을 만나게 된다. 그 순간에 우리는 인간의 마음이 지닌 양면성을 실감 나게 느끼고야 말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해서도 나는 진실을 왜곡하고 말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직접 기록을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진실성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분위기를 내재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Dear Me>와 같은 책을 제법 접해보았는데, 저마다 한결같이 자기 자신과의 피할 수 없는 만남을 유도하고 있었다. 소설이나 실용서적이 타인에 의해 나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면, 이 책은 나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서 계기를 만들게끔 자극하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질문을 다 채우지 않고 건너뛰어 버린 부분이 제법 많았다. 그냥 이유없이 구구절절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이 책에 집중하는 시간만큼은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Dear Me>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하여 고민하는 1020, 즉 십 대 청소년과 이십 대 청춘이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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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클럽 반올림 6
김혜진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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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전치 3주라는 치명상을 입히고도 멀쩡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윤오. 오히려 그 친구는 바로 자퇴를 하고 모습을 감추어버린다. 죽도록 때린 사람은 나인데, 왜 그 친구가 학교를 떠나야 했는지. 그 애매한 상황 너머에는 자신의 부모와 담임교사의 은밀한 합의가 있었음을 알게 되는 사춘기 소녀 김윤오. 그 이후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윤오를 못마땅하게 여긴 윤오의 부모는 큰아들의 대학교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간다는 핑계를 대면서 윤오를 다른 학교로 전학시킨다. 하지만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소극적인 전학생의 이미지를 지키면서, 그것이 결국은 자신을 지키는 마지막 방법이라도 되는 듯, 윤오는 외톨이처럼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 도서관으로 가는 길목에서 일제 시대에 지어졌음 직한 오래된 집 한 채를 발견하게 된다. 마치 비밀의 화원을 보는 듯한 묘한 이끌림에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곳이 카페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카페, 윤오는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나원이라는 여자애를 만나게 된다. 문득 서가에 꽂힌 마르셀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발견하게 되었고, 윤오를 뒤따라온 듯한 나원이는 그 한 권의 책을 계기로 윤오를 오래된 카페에 초대하게 된다. <프루스트 클럽>은 주인공 윤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단단하게 자신을 지키는 윤오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달리, 윤오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부반장 효원이, 학교에서 더는 배울 것이 없어서 과감히 자퇴를 하고 자유인이 된 나원이까지… 열 여섯 사춘기 소녀 윤오, 효원, 나원이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목을 따라가는 듯,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을 목표로 삼고 독서클럽을 만들게 된다. 겉은 멀쩡해도 속은 곯아서 터지기 직전인 서로의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처받은 영혼의 모임처럼… 카페의 여주인이 마련해준 작은 창고를 아지트 삼아서 학교가 마치면 항상 모여서 '열여섯 청춘이 산다는 것'에 대하여 논하기도 하는데……

 

 

「"상처를 받지 않을 수는 없어. 그런 게 일상이니까. 비가 내리고 얼음이 어는 것처럼, 상처는 생기니까. 그리고 또 흉터가 생겨. 그것도 어쩔 수 없어. 시간이 지나면 지워져 가겠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흉터는 드물지. 그럼 그 흉터를 가지고 잘 살면 돼. 거기 적응하면 돼. 상처를 받았다고, 흉터가 있다고, 그걸로 인생이 끝인 건 아니잖아. 어쩌면 그 상처와 흉터 덕분에 삶이 나아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가끔은…… 그래, 가끔은 그냥 아프기도 해. 후회가 되기도 하고, 막 원망스럽기도 해. 어쩌겠어, 내버려 둬야지. 지나갈 때까지. 다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지금이 좀 그런 땐가 봐, 나."」- 본문 중에서

 

청소년의 이야기로 가득한 소설집을 연이어 읽은 탓일까. 성장소설이라고도 불리는 청소년 문학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내면세계를 다양한 소재를 곁들여 표현한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프루스트 클럽>을 비롯한 청소년 문학은 시작과 끝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것을 읽고 또 다른 시발점을 찾아내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겠지만… 상처를 받은 아이들의 가정환경, 부모의 양육태도는 크게 어긋나는 법이 없었으며, 아이들이 말하는 '나쁜 선생님 표'에 해당하는 선생님의 모습도 전형적인 틀에서 비춰지고 있다. 아이들의 고민거리도 우리가 충분히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그것을 해결하려는 아이들의 노력도 마찬가지라 볼 수 있다.

 

이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중성을 지닌 내용은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통상적인 범주 내에서 해석이 가능한 문제상황을 연출하여 등장인물의 내외적인 갈등을 표출시키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회와 어른의 의식구조를 바꾸고야 마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에 대부분의 성장소설이 집중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그래서 너무나 극단적이고 우리가 미처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청소년의 삶은, 그래서 더욱 대중에게 보여주기가 조심스럽고, 그것이 사회적 파장이 되고 몇몇 청소년들에게 뜻하지 않은 모범사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인해서 평범하게 소설화되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깝기도 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아이들이지만, 결국은 상황정리를 하고 도움을 주는 역할은 어른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작은 통로를 열어주는 역할에 그칠지라도, 아이들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하기에는 아직 힘들다는 분위기가 깊숙이 깔려있기 때문에 성장소설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성장'에 관한 것이지, 아이들 자체가 어떻게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느냐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은 아직 힘들지 않느냐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에 분노를 표출하다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오해를 풀게 되는 진부한 이야기가 언제까지 청소년의 삶을 대변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다양한 작가가 선보인 청소년 작품을 읽어보니, 그들이 생각하고 표현하는 청소년의 전형적인 표본이 존재한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이렇게 혼잣말을 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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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 - 바람단편집 3 반올림 11
김혜진 외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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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속살을 보여주는 것에 관대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감추면 감추었지,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다면 애써 드러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다고 속살을 과대포장하거나 널리 알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게 우리의 현실인데, 그래도 누군가는 나에게 눈길 한 번 더 건내주는 관심을 드러내었으면 하고 바라는 게 우리의 마음이기도 하다. 속살은 우리가 감추고 있는 상처와 같다. 혼자서도 충분히 고통스럽기에, 제발 내버려달라고 애원하면서도 정작 그들이 우리에게서 멀리 사라지면 외로워서 미칠 것만 같은 심정이다. 상처를 가장한 비상식적인 거리의 무법자가 되어버린 사람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그 상처가 어떻게 변장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말한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7명의 작가가 저마다 자신의 단편소설을 뽐내고 있다. 강자 앞에서 비굴하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약자의 마음, 가정과 학교에서 자신의 권리를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약자의 마음, 성적순으로 인생을 결정해야만 하는 위기에 놓인 우리 청소년의 속살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청소년교육을 전공하면서, 내가 이 학과를 선택하기를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람들은 내가 청소년교육과를 다닌다고 하면 이렇게 말한다. "요즘 애들이 워낙 별나서, 애들 상대하기 힘들 텐데…"라고 말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나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답시고 하는 말이었으나, 나는 정작 그 말이 가져올 역효과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성적이 개판이라고 사람이 개가 되는 거예요? 아빠는 그렇대요. …… 아빠가 저한테요, 너는 성적이 개판이니까 앞으로 개 취급을 하겠다, 말 안 들으면 무조건 개처럼 패고 엉터리로 공부하면 개처럼 패겠다, 알겠니? 그래서, 제가, 아빠가 무서우니까, 예, 했거든요. 근데 저보고 개가 무슨 예. 라고 하느냐면서 개처럼 짖으래요. …… 그래서 제가 짖었어요. 멍멍. 정말로 개가 된 기분인 거 있죠? 귀염 받는 개도 아니고 복날 가마솥에 삶기 직전의 개. 이런 저에게도 희망이 있을까요?」- 박정애《정오의 희망곡》중에서

 

어른이 되었다고 과거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진 않는다. 그냥 일과 사람에 치이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까, 과거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조차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고만고만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말 공부밖에 몰랐던 범생이가 아니고서야, 학창시절에 친구와 쌈박질하고 부모 가슴 새카맣게 타들어가게 만들면서까지 사고 치지 않고 성장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 공부밖에 몰랐던 사람도 알고 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억압된 욕구를 해소시켰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막중한 의무감, 아이들을 바른길로 인솔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자신의 학창시절을 외면하면서까지 위선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여전히 자식을 위해서 모든 걸 희생하는 부모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나 이제는 부모라는 역할을 벗어던진, 그저 어른이라는 항목에 분류된 사람들은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 더 깊이 관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역할을 가진 어른도 마찬가지다. '선생으로서의 책임감'을 원칙대로 지켜가고 있으며, 학생에게 진실된 모습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세상이 그들에게 지켜야 할 선을 그어준 것이다.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은 아이들의 속살이 여리고 또 여려서 쉽사리 만질 수조차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그들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있다.

 

속된 말로 "내가 공부 안 하고 사고 치느라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라는 생각으로 아이들만큼은 제대로 살아가기를 돕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아이들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와서 도무지 거부할 수 없는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그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비행을 부추기고 막다른 길로 걸어가게 할지라도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오리라는 희망으로 그 아이들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여전히 우리는 누군가에게 속살을 보여준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것을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아이들은 감추고 또 은폐하려 들 것이다. 그러한 결과의 일례로 현재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제서야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아무쪼록 청소년 문학은 이렇게 현실을 냉정하고 고발함으로써 우리에게 안일한 태도를 반성하게끔 해주는 역할이 크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항상 가까이하고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중의 한 권이 바로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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