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온전히 자기가 되는 순간 신성을 경험한다. 자기 안에서 스스로 신이 됨으로써 그는 자기만의 신화를 일구는 주인으로 이 세계에 등장한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라는 첫 구절은 나는 나로 살아야 존재의 완성을 경험한다는 확신을 알려주는 웅변이다. 인간은 흔히 인간으로 완성되는 이 길에서 우왕좌왕하고 좌절한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방황하는 길 위에서 "너는 누구냐?"라는 환청에 시달린다면, 오히려 괴로워 말라. 이는 병이 아니다. 신이 되어가는 고단한 여정에서 스스로 내리는 축복의 성스러운 종소리다.
| 『돈키호테』부터 『노인과 바다』까지, 이 책들의 큰 흐름은 ‘자기를 지키는 사람들, 자기를 함부로 내버려두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모두 끝없이 질문하며 탐험하는 인물들이 책에 등장합니다. 진짜 나를 발견하기 위해 애쓰는 자들이지요. 이전에 읽었던 『데미안』에도 이런 대목이 나오잖아요. "모든 삶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향해 걷는 일이다." 『노인과 바다』도 자기를 향해 걸으며 자기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지키는 자의 이야기입니다.
인생은 자기를 드러내고 단련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저 열심히 사는 것을 치열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진짜 치열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이지요. 자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분명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열심히만 사는 것은 삶에 큰 승리를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현대 장비로 80킬로그램짜리 물고기를 잡고도 3일 동안 손을 오므리지 못했다고 하는데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노고는 정말 어마어마한 것이었겠지요. 소설 속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매일매일은 새로운 날이지.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만 나는 오히려 정확하게 할 테다." 어떤 책에는 "우선은 지금 하려는 일에 집중하겠어"라고 번역되어 있어요. 기회를 잡으려면 그 기회를 잡을 능력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딱 한 가지밖에 없어요. 하루하루 새로운 날인 것처럼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해요.
그런데 낡지 않은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눈빛이에요. 눈빛이 살아 있다는 것은 의지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팔십오 일째 바다로 나가면서 "85는 행운의 숫자지", 85일째 못 잡으면 "86은 행운의 숫자지", 86일째도 못 잡으면 "87은 행운의 숫자지" 하고 진심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기도와 같습니다. 이렇게 하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 거예요. 하루하루 새로운 날처럼 철저히 준비하면 그런 날이 온다는 희망이지요. 청새치를 잡은 할아버지가 지닌 힘은 의지와 희망, 그리고 그 희망을 이루려는 집중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