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세상이 변해야 나도 살기가편한 게 맞지만, 남의 탓을 하거나 사회구조탓만 하는 것은 좀 무책임한 태도라고 봐요.
내가 원하는 사회가 있다면 ‘나부터’실천하는 것이 책임성 있지 않겠어요?다른 말로 하면, 나 속에서 세상을 실현하고싶다는 개념이죠. 내가 살면서 나를 확장한모습이 세상이 되도록 하면 내가 원하는삶이 곧 사회에 구현되는 셈이죠.
그래서 ‘나부터‘ 할 수 있는 만큼해보자는 생각이죠."

"학력 지향 사회에서는 제일 중요한 것과그다음 중요한 것 등등 위계가 있어요.
그래서 얘는 공부는 못해도인성은 착하니까‘라는 식으로 모든 것을위계 속에 두고 아이들을 바라보죠.
그러나 아이들을 각각 하나의 존재라고생각을 하면 그 존재가 가진 모든 역동성이다 옳은 거잖아요.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부러운 거는 프랑스가 갖고 있는 영화제도예요. 그들은 조그마한 영화사들이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게 해주고, 사람들이 자기 동네의 조그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줘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게 다 사라질 동안 온 국민의 관심은 누가 프랑스 칸의 황금종려상이나 미국 아카데미상을 받느냐 마느냐에 쏠려 있죠. 대통령도 그런 거 받으면 축전을 보내고 아이돌과 함께 유엔에 나가고, 국민들은 그걸 보고 기뻐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그러는 동안에 한국 영화는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제일 큰 피해를 보고 있거든요. 정말 십수년 동안 좋은 영화사와 저희 동료들이 다 사라졌어요. 성실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지금은 아무도 돌봐주지 않고 있어요.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죠. (이은)

"하루 세끼 늘 밥을 차리는 사람들은그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며,
재능이 있어서도 아니에요. 밥상 차리는 건누군가를 위해 자기 시간을 들여희생하면서 봉사하는 일이죠.
각 가정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남자들도 집안일을 나눠 하는 게중요하다고 봅니다."

자율수업날인 이날 학생 각자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대강당 한편에 있는 피아노를 치거나,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등등 자기가 하고픈 ‘공부’를 하는 것도신선했습니다. 그 정도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진짜 놀란 것은 6학년 교실에서였습니다. 지면에 쓸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서 교장 선생님이 교내 여기저기를직접 찾아다니면서 "괜찮은 사람은 운동장에서 잠시 같이 사진을 찍자"면서 협조를 구할 때였습니다. ‘제 눈에는’ 놀라운 광경이 있었습니다. 장판 바닥으로 된 교실에서 담요를 대충 걸치고 누워 자는 학생도 있었지만, 교장이 와도 누구도 그를깨우거나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교장도 마찬가지로 ‘쟤는 왜 자느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 교실에서 나오면서 "자율수업도 수업인데 일어나라고 왜안 했어요?"라고 물었더니 "그 학생은 지금 휴식이 필요한지도 모르잖아요. 모든것을 자율적으로 하는 아이들이니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이들 표정이 정말로 밝게 빛나는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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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유리창을 깨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이중요하다.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다. 가난도 아무것도 아니다. 금지된모든 것을 시도하고, 기쁜 마음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 과장하면어떤가. 새로 배우고 알게 되면 또 배워야 한다. 우스꽝스러운 것을창조한다고 해도 부끄러울 필요가 없다. 이젤 앞에서 화가는 과거의노예가 되어서도, 현재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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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실망스러운 일이 생겨도 불평하지 말고지나간 일은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랜마 모지스

꽃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겐어디에나 꽃이 피어 있다.
앙리 마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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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목적(telos) 지향성이 나타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사물은 그 고유의 목적을 갖는다. 하루살이같은 미물조차도 나름의 목적을 갖고 세상에 태어났다. 사물은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변화와 운동을 그 안에 내재하고 있다. 이런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이데아라는 형상 세계를 상상하고, 거기서부터 만물이 모사(模寫)되어 나온다는 플라톤의 철학과 정반대의 세***계관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사람은 몸과 마음의 기를 대기에서 얻어온 존재라고 규정한다. 즉 대기는 사람의 몸 가운데를 뚫고 피부 사이에 스며 두루 퍼지면서 생명을 이룬다. 따라서 만약 그 기가 잠시라도 막히 끊어지면 사람은 더 이상 생존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벗어나서 살 수 없듯이, 사람도 기로 가득 찬 세계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독특한 생물이다. 인간은 동물들 사이에서 구별되는 일련의 특이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풍경 속의 한 형상이 아니라 풍경을 형성하는 주체이다."
인간만이 주변 환경에 갇히지 않는 유일한 존재이며, 인간은 상상력과 이성, 정서적 예민성과 강인함을 가지고 동물과는 달리 환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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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 - 단 하나의 나로 살게 하는 인생의 문장들
최진석 지음 / 열림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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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온전히 자기가 되는 순간 신성을 경험한다. 자기 안에서 스스로 신이 됨으로써 그는 자기만의 신화를 일구는 주인으로 이 세계에 등장한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라는 첫 구절은 나는 나로 살아야 존재의 완성을 경험한다는 확신을 알려주는 웅변이다. 인간은 흔히 인간으로 완성되는 이 길에서 우왕좌왕하고 좌절한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방황하는 길 위에서 "너는 누구냐?"라는 환청에 시달린다면, 오히려 괴로워 말라. 이는 병이 아니다. 신이 되어가는 고단한 여정에서 스스로 내리는 축복의 성스러운 종소리다.

| 『돈키호테』부터 『노인과 바다』까지, 이 책들의 큰 흐름은 ‘자기를 지키는 사람들, 자기를 함부로 내버려두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모두 끝없이 질문하며 탐험하는 인물들이 책에 등장합니다. 진짜 나를 발견하기 위해 애쓰는 자들이지요. 이전에 읽었던 『데미안』에도 이런 대목이 나오잖아요. "모든 삶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향해 걷는 일이다." 『노인과 바다』도 자기를 향해 걸으며 자기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지키는 자의 이야기입니다.

인생은 자기를 드러내고 단련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저 열심히 사는 것을 치열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진짜 치열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이지요. 자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분명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열심히만 사는 것은 삶에 큰 승리를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현대 장비로 80킬로그램짜리 물고기를 잡고도 3일 동안 손을 오므리지 못했다고 하는데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노고는 정말 어마어마한 것이었겠지요. 소설 속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매일매일은 새로운 날이지.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만 나는 오히려 정확하게 할 테다." 어떤 책에는 "우선은 지금 하려는 일에 집중하겠어"라고 번역되어 있어요. 기회를 잡으려면 그 기회를 잡을 능력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딱 한 가지밖에 없어요. 하루하루 새로운 날인 것처럼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해요.

그런데 낡지 않은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눈빛이에요. 눈빛이 살아 있다는 것은 의지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팔십오 일째 바다로 나가면서 "85는 행운의 숫자지", 85일째 못 잡으면 "86은 행운의 숫자지", 86일째도 못 잡으면 "87은 행운의 숫자지" 하고 진심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기도와 같습니다. 이렇게 하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 거예요. 하루하루 새로운 날처럼 철저히 준비하면 그런 날이 온다는 희망이지요. 청새치를 잡은 할아버지가 지닌 힘은 의지와 희망, 그리고 그 희망을 이루려는 집중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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