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면 필수적으로 비용이 따라붙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사실이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이렇다.

 

1.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돌볼 심적,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찾지 못하여 과다한 의료비 지출을 한다.(과다하다는 것은 소득에 비해 그러함을 의미한다)

 

2. 부자에 비해 외식비 또는 배달시키는 음식에 대한 지출이 심하다.(보통은 '내가 이것 아낀다고 부자되겠냐?'는 식의 자포자기 성향이 강하다)

 

3. 부채로 인한 이자비용이 소득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다.

 

4. 토지 또는 자본을 이용하여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계획하고,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다.(계산할 수 없을 정도의 기회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5.비용이 비용으로 그칠 뿐이고 비용이 생산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부자들은 많은 비용을 지출하지만 대부분 그 비용을 상쇄시키고도 남을만한 생산을 유발함으로써 재투자의 의미가 강하다)

 

6. 의외로 부자보다 씀씀이가 크다.(수도물을 아끼지 않는 것, 불필요한 전기를 낭비하는 것, 친지 방문시 큰 돈을 용돈으로 주는 것 등 스스로 관리를 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생각나는 몇 가지만 적어본 것이지만, 가난비용을 최대한 줄여서 부자가 되든 부자로 살면서 가난 비용을 제거하든 선택할 일이다.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자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될 것이다.  모두 부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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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우리는 시를 읽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시인들은 뉘라 지목할 것도 없이 안 팔리는 시집보다는 여행서나 수필집을 낸다.

그렇다고 시집이 우리에게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세간에 잘 알려진 류시화, 안도현, 신경림 등 몇몇 시인들만이 근근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신통치 않은지 앞다퉈 책의 정가를 낮추고 있다.

그외에 시집이라고 눈에 띄는 목록은  수험생들을 위한, 시험 대비용으로 출판된 명시 모음집이 대부분이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나는 시인도 아니고, 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닌, 순수 독자의 입장에서 시가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것을 슬퍼하는 것이다.

시인의 속내를 낱낱이 알지 못하더라도, 시가 전하는 그 울림만으로 설레이던 시대가 있었다.

맘에 쏙 드는 시구를 연애편지에 인용하며, 제가 쓴 것인 양 얼굴을 붉히던 그리움이 있었다. 

술동무를 옆에 두고, 노래 삼아 시를 읊조리던 젊음이 있었다.

우리는 시를 잃고, 사랑을 잃고, 그 속에 숨겨진 설레임, 그리움, 그리고 젊음의 낭만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시를 모르고 어찌 문학을 논하랴.

시를 모른 채 어찌 사랑을 노래할 것이며, 순수의 아름다움을 어찌 볼 수 있으랴.

시를 제쳐 두고 주옥같은 언어의 향연을 어찌 즐길 수 있으랴.

시는 문학의 태동이자, 끊이지 않는 북소리이다.

시는 언어가 아닌 몸짓이며, 아픔을 위로하는 따뜻한 손길이다.

시는 논리를 따라 흐르는 나의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 흐르는 작은 흔들림이다.

시를 읽지 않는 사회!

그 각박한 현실을 사는 우리는 무엇에서 위로받을 것이며,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그 통로를 무엇에 의지하여 찾을 것인지....

시를 쓰지 못하는 문학가는 한낱 글쟁이에 불과하며, 그 글을 읽는 우리는 영혼을 잃은 로봇에 불과하다. 

사랑은,설레임은, 그리움은,낭만은 언어가 아닌 시에 숨겨진 떨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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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간에 유행하는 신조어 중에 'XX녀' 또는 'XX남'이라는 말이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나의 눈에 거슬리는 말은 '품절녀' 또는 '품절남'이다.

'품절'의 사전적 의미는 '물건이 다 팔리고 없음'을 말한다.

즉, 품절이라는 표현은 물건에 해당하는 것이지 사람을 지칭하여 쓰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이 일상의 언어로 공공연히 쓰이는 데에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하겠다. 

철부지 아이들이 뜻도 모른 채 쓰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사회 순기능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기자들마저 이런 말을 쓴다는 것은 무식하기 그지 없는 짓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권을 무시하고 사람을 물건에 빗대어 지칭한다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만일 이것이 허용된다면 인간의 탄생을 '신상품 출시' 또는 '제품 출시'라고 해야 옳으며, 인간의 죽음은 '폐기 처분'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혼남이나 이혼녀는 '반품남' 또는 '반품녀'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면 재혼남, 재혼녀는 '중고남','중고녀'로 불러야 할까?

신성한 생명이 탄생한 자리에서 신상품이 출시되었다고 말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무리 물질만능의 사회로 변화하여 사회 구성원이 부품화 되어가고 있다 한들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권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이런 한심한 작태마저 용인되는 우리 나라의 국민들은 너그러운 것인지 아니면 무식한 것인지......

그 일차적인 책임은 무식한 정부와 지도층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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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미대에 다니는 친구들과 방배동의 빈 차고를 빌려 겨울방학을 같이 보낸 적이 있었다.  어려서 예체능 학원을 다녀 본 경험이 없었던 나는 내가 과연 어느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 항상 궁금했었기에, 한사코 싫다는 친구들에게 모든 비용을 내가 부담한다는 것과 당시 사진에 미쳐있던 내가 친구들에게 사진을 가르쳐주는 대신 그들은 나에게 그림의 기초를 가르쳐주면서 자신들의 작품활동을 하면 되지 않겠냐는 논리로 간신히 그들을 설득했다.  난방도 되지않고, 골목길 쪽으로 뚫려있는 출입문은 여러 장의 유리문과 셔터가 전부였으니 밤이면 추위가 뼛속 깊이 스며드는 듯했다.  나를 제외한 3명의 친구는 모두 미대생들이라 묘하게도 그들의 생활방식은 공통점이 많았으나 나는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잠자는 습관은 더욱 그러했다.

하나뿐인 연탄난로 근처에 3개의 이젤을 세우고 각자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 나의 침대에는 온기라고는 눈꼽만큼도 전해지지 않았다.  그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밤새 술을 마시며 떠드는 통에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초저녁에 잠시 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조용한 주택가에서 밤새 불을 밝힌 채, 안주도 없이 소주 두 병씩을 마셔야만 잠이 들었던 친구들은 오후 세시는 되어야 일어났다.  잠이 깨면 고양이 세수로 얼굴에 묻은 잠기를 쫓고는 라면으로 간단히 허기를 달랜 후 행선지를 말하지도 않은 채 뿔뿔이 흩어졌다가 아홉 시 무렵이면 약속이나 한 듯 한 손에 소주를 들고 나타났다.  가끔은 숙제를 하듯 내게 데생을 가르치고는 습관처럼 이젤 앞에 앉아 깡소주를 마셔댔다.

새벽녘 그들이 잠들 무렵이면 고요한 밤공기를 울리는 여자의 구두소리가 '또각 또각' 들려왔다.  인적 드문 겨울의 새벽거리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어느 날 친구에게 "너 소리도 그릴 수 있어?"라고 물었더니, 잠시의 고민도 없이, "그럼. 그릴 수 있지."하는 것이었다.  속으로는 반신반의 믿지 못하면서도 내심 궁금했다.  '정말 소리를 그릴 수 있을까?'

그 후 친구들은 소리를 그릴 수 있다는 호언장담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림에는 소질이 없다는 말만 여러 번 들었다.

그렇게 겨울방학을 보내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림에 대한 안목을 조금이나마 넓혀준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지금도 가끔은 묻고싶다.

"정말 소리를 그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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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중한 친구에게

 

 

손잡는다고 넘어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손 내미는 당신이 고맙습니다.

당신은 오늘 내 친구였습니다.

 

응원한다고 힘든 삶이 쉬워지는 건 아니지만

힘 내라는 말 잘 한다는 말 고맙습니다.

당신은 오늘 내 친구였습니다.

 

일으켜준다고 상처가 아무는 건 아니지만

흙 털어주는 당신이 고맙습니다.

당신은 오늘 내 친구였습니다.

 

물 모자란다고 당장 숨 넘어가는 건 아니지만

생명수를 건네주는 당신이 고맙습니다.

당신은 오늘 내 친구였습니다.

 

혼자 간다고 다 길 잃는 건 아니지만

기다려준 당신이 고맙습니다.

당신은 오늘 내 친구였습니다.

 

말 한마디 안 한다고 우울해지는 건 아니지만

말 건네준 당신이 고맙습니다.

당신은 오늘 내 친구였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당신이 나이도 모르는 당신이

친구 하나 없는 내게

 

오늘 가장 소중한 친구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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