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지식재산권으로 평생 돈 벌기 - n잡러시대 방구석에서 창업하기
남궁용훈 지음 / 리텍콘텐츠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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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코믹 SF 작품 중에는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책이 있다. SF 팬덤에서 컬트를 만든 최초의 작품이기도 한 이 소설은 1400만 부나 팔린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아이디어는 사실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독일어도 모르는 채 <유럽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한 권을 들고 독일을 여행하던 작가는 인스부르크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길을 물었는데 청각장애자였고, 몇 분 후 다른 길에서 길을 물었던 상대방 역시 청각장애자였다. 마음을 고르느라 맥주를 사서 마신 후 다시 길을 물었는데 그는 청각장애자에 더하여 시각장애자였다. 낯선 곳에서 공포스러운 경험을 겪은 작가가 비틀거리며 길을 걷다가 부딪혀 미안하다고 했던 사람도 청각장애자였다. 알고 보니 근처의 호텔에서 청각장애자 총회가 열리고 있었던 것인데 작가는 그 일을 겪은 후 <유럽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들고 들판에 가서 누웠고, 하늘에 별이 뜨자 작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누군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쓴다면 내가 먼저 총알 같이 떠날 텐데. 그 후 작가의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흐르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 출발은 그처럼 아주 작은 우연이었던 셈이다.


"마흔 살 무렵의 어느 날 집에 있을 때, 아내가 반려견을 목욕시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반려견은 목욕이 싫다고 몸을 비비 꼬고 있었고, 반려견을 잡기 위해 샤워기를 내려놓으면 물줄기는 사방으로 흩뿌려졌습니다. 무릎 사이에 샤워기를 끼워 고정하지만 잠깐뿐이었습니다. 반려견 목욕이 끝났을 때 아내의 옷은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아내의 불편하을 해결해 줄 수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술안주로 내놓은 문어숙회를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샤워기 손잡이에 문어 빨판을 붙여 필요한 곳에 붙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p.15)


두 아이의 아빠이자 아마추어 발명가인 남궁용훈의 저작 <특허, 지식재산권으로 평생 돈 벌기>는 이처럼 필요와 간절함의 결합으로 탄생한 우연의 결과물 덕분에 인생 역전에 성공했던 사람들의 몇몇 사례로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집필 동기와 유사하다. 우연에서 비롯된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점에서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꿈을 구체화하고, 형상화하고, 자신의 사업을 보호하라고 말한다.


"이 책은 그동안 교육이 만들어 낸 벽을 깨고 일어나게 하는 힘을 주기 위해 집필했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변혁의 시대로 정해진 길로 가지 않아도 자신의 성공을 이루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기술혁신이 나라의 미래를 담보하기에 도전하는 청년과 지원자들을 정부지원사업으로 돕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도 학교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p.11 '프롤로그' 중에서)


프롤로그에 이어 제1장 '특허·지식재산으로 인생역전을 이룬 사람들', 제2장 '꿈의 나침판 아이디어부터 발명까지, 비즈니스로 set-up 시키는 방법', 제3장 '지식산업설계도를 그리기 위해 꼭 알아야 할 특허제도', 제4장 '특허를 지키고 지식산업설계도를 완성하기 위한 제도들', 제5장 '꿈과 목표를 이루어주는 특허·지식재산권 상품화 방법'의 총 5장에 이르는 본문이 끝나면 에필로그와 부록으로 예비창업자를 위한 사업계획서가 첨부되어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였던 '특허 및 지식재산권'이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인생역전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그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꼼꼼하고 세밀하게.


"부디 이 책을 읽은 분들은 주식과 가상자산에만 열광하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움직여야지 얻을 수 있습니다. 노력하더라도 실패라는 고배를 마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정을 돌아보면 나에게 더 크게 나아갈 힘을 줍니다. 지금의 아픔은 작은 성장통일 뿐입니다."  (p.278 '에필로그' 중에서)


말하자면 이 책은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외로운 자기계발자를 위한 안내서'인 셈이다. 안내서를 충실히 따른다고 해서 누구나 다 성공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절망의 시간 동안 암울한 기억으로 채우지는 않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다. 도전과 끊임없는 두드림 속에서 절망의 부분 부분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허가 일부 소수인의 특권이 아님을 이 책을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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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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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삶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슴에 품었던 질문 하나로 인생의 전체 행로가 바뀌었던 사례는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돌아올 답변을 전제로 하지 않는 질문은 질문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없다 하겠습니다. 비록 그 시한을 못 박을 수는 없다 할지라도 답변을 구할 수 없는 질문은 참으로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삶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삶은 죽음을 전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없는 삶은 삶이라고 정의할 수 없으며 삶 또한 공허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이란 삶에서 필요한 자질구레한 여러 질문들을 추리고, 그것들에 대한 답변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닐 듯합니다.


"우리가 원자를 쪼개고 최초의 빛을 포착하고 우주의 종말을 예측하는 데는 한 줌의 방정식과 구불구불한 선, 알쏭달쏭한 기호만 있으면 충분하다. 인류의 삶을 지배하는 이 수식들을 일반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조차 더는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p.252)


칠레의 젊은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가 쓴 논픽션소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입증을 요하는 과학의 세계가 결국 추상이나 논리만 존재하는 명상의 세계 혹은 철학적 세계로 이어지는 하나의 과정임을 소설적 허구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책에 담긴 화학자,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은 자신이 발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구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들고, 경쟁자들과 치열한 이론 논쟁을 펼치며, 하나의 완성된 답변을 향해 끝없이 묻고 답합니다. 과학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프리츠 하버,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슈바르츠실트, 그로텐디크 등이 보여주는 인간 정신의 확장과 그 한계에 대한 지적 욕망의 분출은 실로 아름답지만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우리로서는 그들의 삶을 속속들이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들이 내놓은 결과물들(영혼이 담기지 않은 수학적 방정식이나 알쏭달쏭한 기호가 대부분이지만)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작가는 그런 결과물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그들의 치열했던 정신적 향연을 논픽션 소설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슈바르츠실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은 것은 이것이었다. 물질이 이런 종류의 괴물을 낳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정신과도 상관관계가 있을까? 인간 의지가 충분히 집중되면, 수백만 명의 정신이 하나의 정신 공간에 압축되어 하나의 목적에 동원되면 특이점에 비길 만한 일이 벌어질까? 슈바르츠실트는 그런 일이 가능할 뿐 아니라 조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p.71)


책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화려하게 빛났던 지적 활동의 시기를 작가는 아주 빈약한 역사적 기록에 의존하여 작가적 상상력이라는 풍부한 살을 입히는 작업을 가함으로써 독자들은 차갑게만 느꼈던 과학자의 열정을 피와 살이 있는 인간 영혼의 삶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게다가 전혀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던 각각의 인물들을 역사 속 필연으로 한데 묶음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들은 끊이지 않는 장대한 역사의 물결을 느끼게도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찾던 모든 질문의 답변들이 잊히지 않고 영원히 우리 후손들에게 이어지리라는 확실한 믿음을 품게 합니다.


"1907년 하버는 식물 생장에 필요한 주요 영양소인 질소를 사상 최초로 공기 중에서 직접 채취했다. 이렇게 하루하루, 그는 20세기 초에 전례 없는 세계 대기근을 몰고 올 뻔한 비료 부족 사태와 맞섰다. 하버가 아니었다면 구아노와 초석 같은 천연 비료에 의존하여 농사짓던 수억 명이 영양 결핍으로 사망했을 것이다."  (p.35)


책을 첫 페이지부터 읽었던 독자라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역사적 사실들을 가감 없이 기록한, 흔하디 흔한  과학 논픽션 중 하나라는 생각에 시큰둥 외면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페이지 수를 더할수록 시대가 다른 인물들 간의 긴밀한 연관성과 인물들의 지적 성과가 빛나던 시점에 있어서의 생생한 묘사,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는 팽팽한 긴장감 등으로 인해 '과학 논픽션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하며 절로 감탄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작품의 맨 마지막에 실린 '감사의 글'에서 독자들은 무릎을 치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책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과학 논픽션일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읽었는데, 일정 부분 허구라는 작가의 고백은 가히 충격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과학자나 수학자들의 삶에 있어 그들의 성과에 비해 자연인으로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삶의 고뇌와 숱한 질곡의 시간들은 간과되거나 드러나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그들도 어쩌면 젊은 시절에 품었던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쳤을 뿐인데 말입니다. 그와 같은 과정은 다른 이의 삶과 하등 다를 게 없을 듯합니다. 다만 모든 질문은 답변을 전제로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로 인해 우리들 각자의 삶은 재평가되고, 저마다 다른 문장으로 기술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질문은 답변을 전제로 존재하고, 우리의 삶도 죽음을 전제로 존재할 뿐입니다.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좋은 책을 만날 때마다 젊은 시절에 품었던 여러 질문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나는 여전히 그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구하기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하나의 질문조차 가려 뽑지 못한 처지이고 보니 매번 맥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사는 게 바빠서'라는 흔한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듯한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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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 : 내 안의 참나를 만나는 가장 빠른 길 요가 수트라 1
오쇼 지음, 손민규 옮김 / 태일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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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오쇼 라즈니쉬의 인기가 인기 연예인만큼이나 높았던 시절이 있었다. 오쇼 라즈니쉬의 저서는 물론이고 '라즈니쉬'라는 이름만 붙으면 뭐든 잘 팔리거나 인기를 끌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오직 앞만 보고 달려왔던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오쇼는 '이제 자신의 삶을 돌보세요.'라고 말하는 듯했고, '삶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했다. 그것은 물질적인 부가 성공의 척도가 될 수 없음을 알리는 하나의 신호탄이었다.


"요가는 인간의 전 존재와 뿌리를 다룬다. 철학을 다루지 않는다. 파탄잘리가 말하는 요가에서 우리는 생각을 하거나 사색을 하지 않을 거시다. 그 속에서 우리는 궁극의 존재 법칙을 알려고 할 것이다. 변형의 법칙, 죽음의 법칙과 재생의 법칙, 존재의 새로운 질서에 관한 법칙을 알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요가를 과학이라 부른다."  (p.19)


우리나라에 전파된 오쇼 라즈니쉬의 사상과 가르침은 가히 선풍적이었다. 인간 의식의 발전 단계를 규명하고 현대인의 영혼에 진실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설파해 온 그의 명성은 종교 지도자를 넘어 성인의 반열에까지 오르는 듯했다. 인도의 운명을 바꾼 열 명의 인물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그는 미국 작가 탐 로빈스(Tom Robbins)에 의해 "예수 이후로 가장 위험한 인물"로 평가되기도 했다. 우리나에서도 무용가 홍신자를 비롯하여 작가 류시화, 개그맨 장두석 등이 오쇼 라즈니쉬의 제자로 입문하여 그의 사상과 가르침을 전파하였다.


"지켜보라. 식별하라. 동양에서는 이를 비베크(vivek), 즉 식별지(識別智)라 한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식별하라. 계속해서 식별해 나가라. 나 아닌 모든 것을 제거해 나가라. 그러면 어느 순간 처음으로 참나와 대면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참 존재와 만나게 될 것이다. 나 아닌 모든 것을 쳐내라. 가족도 몸도 마음도. 더 이상 쳐낼 수 없는 공의 상태에서 자신의 참 존재가 드러난다."  (p.235)


오쇼 라즈니쉬의 저서 『비움: 내 안의 참나를 만나는 가장 빠른 길』은 우리가 영혼의 중심으로 파고들어 궁극의 행복에 도달하도록 하는 요가 수트라의 방법을 소개한다. 이를 통하여 요가의 진정한 목적이 마음으로 하여금 주체의 말에 따르도록 하고,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영혼이 하라는 대로 하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마음이 미래나 과거를 향하지 않으면 내면으로 향할 수 있으며 우리의 참 존재는 지금 여기에 있지 미래나 과거에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들을 모두 비움으로써 참다운 나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요가에서는 모든 것이 방편이다. 요가의 목적은 인간의 의식을 완전히 깨우는 데 있다. 가슴에 한 조각의 어둠도 남기지 않고 온 집안을 빛으로 환하게 밝히는 일이다.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의 식별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면 무명은 흩어진다.' 여기에서 보듯 요가의 핵심은 무명을 없애는 것이다."  (p.410)


1990년대 어떤 동기나 유인도 없이 유행에 쫓기듯 오쇼 라즈니쉬의 책을 몇 권 읽었던 나는 책등에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오쇼 라즈니쉬의 책을 아득한 추억과 함께 바라보고 있다. 그때의 나는 2022년의 나를 과연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오늘 그의 또 다른 저서 『비움: 내 안의 참나를 만나는 가장 빠른 길』를 읽으면서 지난 과거로, 과거로만 빠져드는 것을 보니 그가 말하는 참 나를 만나는 것은 애저녁에 포기해야 하겠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내 마음에도 봄이 찾아오면, 봄날의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명상에 들어 참다운 나를 대면한 채, 불변의 행복을 맞볼 날이 찾아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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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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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이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400쪽이 넘는 긴 이야기를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같은 호흡으로 써 내려간다는 건 웬만한 내공으로는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작가도 감정이 있고, 자신의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까닭에 기쁨과 슬픔, 격정과 좌절의 파고에 흔들리지 않을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감정의 파고에 휩쓸려가며 정신없이 써 내려가다 보면 현실에서 작품을 쓰는 '나'는 사라지고 자신이 구축한 소설의 세계 한 귀퉁이에 깊이 자리를 잡은 소설 속의 '무명 씨'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가가 1인칭 소설을 기피하는 이유도 어쩌면 소설의 세계와 나의 현실을 착각하거나 동일시하는 오류에 빠져들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지도 모른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장편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호흡으로 써 내려간 수작 중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건축이라는 전문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개개인의 삶과 사랑, 자연과의 조화 등을 잔잔하고 평온하게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페이지를 넘겨갈수록 담담하고 밋밋한 매력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만다. 우리가 슴슴한 육수와 담백한 메밀면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평양냉면의 깊은 맛에 시나브로 중독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건축을 전문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지나치게 많다고 느끼는 독자들도 있을 테지만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는 소설이니만큼 이 참에 건축 분야에 대해 어깨너머 지식을 쌓는다 생각하면 불만은 조금 사그라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비는 한 시간 남짓해서 그쳤다. 유리창을 열자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가 흘러 들어왔다. 비에 씻긴 초록에서 솟구치는 냄새. 서쪽 하늘이 이상할 정도로 밝아지면서 일몰 직전의 광선을 숲에 던진다. 완전히 황혼에 가라앉아가던 나무들의 잎사귀 가장자리가 오렌지색으로 빛난다. 매미는 이제 암놈 부르기를 단념했는지 지짓 하고 짧게 울고는 계수나무에서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p.151~p.152)


소설 속에서 '선생님'으로 등장하는 무라이 슌스케는 일본의 건축가 '요시무라 준조'가 모델이었다. 또한 요시무라 준조는 우리나라 건축가 승효상의 스승인 김수근의 스승이기도 하다. 무라이 건축설계사무소의 소장인 무라이. 그는 수줍고 부드러운 성격이지만 건축 설계에 있어서만큼은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면을 견지하고 있다. 건축학도로서 무라이 슌스케의 비범함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던 '나'는 별 기대감 없이 무라인 건축설계사무소에 지원하였고, 오랫동안 신규 채용을 하지 않았던 무라이 건축 설계사무소가 '휠체어 타는 식구가 있는 가족을 위한 집 설계' 플랜을 제출한 '나'(사카니시 도오루)를 채용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카니시 군은 그렇게 무라이 건축 설계사무소의 일원이 된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기분이 좋아서 주절주절 말할 때와, 멍하니 혼자 있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거릴 때, 여러 가지 상황에 놓이는 것이 인간이니까, 방도 거기에 맞춰 역할을 분담하는 데 좋다, 고."  (p.271)


무라이 건축설계사무소는 도쿄의 기타아오야마에 위치해 있지만 매년 여름이면 고지대의 화산 기슭에 있는 아오쿠리 마을의 사무실에서 생활한다. 국립 현대 도서관의 설계 경합을 앞두고 있는 무라이 설계사무소 직원들은 무라이 건축 설계사무소의 여름 별장인 아오쿠리 마을의 사무실에서 도서관의 설계에 매진하는 한편 '선생님'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아오쿠리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설계사무소의 직원은 대부분이 남자였지만 선생님의 조카인 마리코와 직원인 유키코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물론 신입사원인 사카니시 군에 비하면 마리코나 유키코는 둘 다 연상의 여인이었지만 말이다.


설계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무라이 선생은 뇌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지고, 경합에서는 패하게 되어 매일 아침 설계실을 채우던 연필 깎는 사각사각하는 소리의 겹침은 옅어져 갔다.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고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선생님'의 건축 철학을 간직해 온 '나'는 숲 속 여름 별장으로 운명처럼 다시 들어선다. 별장 안에 그대로 놓여 있는 국립도서관의 하얀 모형을 손으로 만져보면서 무언가 억누를 수 없는 것이 쓰러져가는 여름 별장을 향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렇게 한 세대가 저물고 자신도 역시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의 일몰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내가 건축가로서의 걸음을 시작한 이 건물은 그 이전의 긴 증개축 역사를 포함하여 선생님과 그 주변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함께 여기까지 생명을 이어온 것이다. 오랫동안 잠든 채였지만 각인된 것은 상실되지 않았다. 숨이 끊어진 것도 아니다. 이 여름 별장은 다시 한 번 자네가 새롭게 만들면 돼. 탁해져서 움직이지 않게 된 현실에 숨결을 불어넣으면 되네. 건축은 예술이 아니야. 현실 그 자체지. 선생님이 언젠가 하신 말씀이 그때의 음성 그대로 내 귀에 되살아난다."  (p.416)


숲을 통과하여 불어오는 바람처럼 소설은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진행된다. 작가는 독자들의 마음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 가볍게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가면서 닫혔던 커튼 사이로 한 뼘 진리의 햇살을 전해주고 있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름다웠던 건축물도 언젠가 그 쓰임을 다하고 스러지는 것처럼. 그러나 푸르렀던 여름날의 추억은 각인된 채로 상실되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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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아도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영 지음,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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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소설의 장점은 작가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가슴이 한 뼘 넓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이 일천하여 상상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삶의 모습도 무척이나 제한적일 것이라며 지레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고 정해진 틀 안에 자신의 생각을 가두곤 했었는데, 최은영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세상 어떤 사람의 삶이든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폭넓은 가슴의 소유자로 변해가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험은 독서를 통해 작가가 펼쳐 보이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겪어볼 수 있기 때문이지만, 적어도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 조건이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바로 소설을 쓰는 작가의 태도입니다. 소설이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만으로 독자를 변화시키고, 큰 감동을 주기도 한다고 우리는 믿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작가가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삶을 진심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현실감의 차원에서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게 느끼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소설을 현실 속 누군가의 실제 삶으로 인식하느냐 혹은 작가가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소설을 읽는 독자의 감동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소설을 쓰는 작가의 태도는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작가의 상상력과 동일한 힘을 발휘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리는 늘 자신의 문제로부터 도망쳤고 그것은 그녀의 유일한 생존 방법이었다. 자신의 분노로부터, 불안으로부터, 슬픔으로부터 도망쳤고 최대한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 대신 미리는 일에 몰두했다. 동료들은 그녀가 일중독자에 가깝다고 말했는데 그건 일견 사실이었다. 일이 좋기도 했지만 일을 하지 않을 때면 공허함을 느꼈고 불안해졌으니까."  (p.213 '무급휴가' 중에서)


<애쓰지 않아도>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던 유나를 선망한 나머지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던 나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엄마를 비롯한 자신의 비밀을 유나에게 고백하기에 이르는데 그 비밀은 곧 학교 친구들에게 퍼져나갔고, 배신감과 분노를 느낀 나는 유나를 멀리하게 됩니다. 세월이 지나 데면데면한 관계가 된 유나에 대해 반추하면서 모든 게 미숙했던 그 시절의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하게 된다는 내용의 표제작 '애쓰지 않아도'를 비롯하여 '데비 책', '꿈결', '숲의 끝' 등 13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단편집입니다.


"우리에겐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을지도 모르죠.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을지도.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다는 걸, 이렇게 눈치 없는 저도 알아요. 제가 덜 미숙했더라면, 조금이라도 당신의 마음을 알 수 있었더라면, 같은 가정도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죠.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흐른다면, 더 많은 시간이 흘러 우리가 서로를 기억한다면, 그때는 슬픔보다도 그리움이 더 큰 감정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겠지요."  (p.164 '손편지' 중에서)


'학대받은 아이가 자라서 학대하는 어른이 된다'는 식의 지하철 공익광고를 보고 상처받는 사람을 다룬 '손 편지'와 '우리가 그네를 타며 나눴던 말'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것처럼 작가는 우리 사회의 아동과 약자,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폭력에 대해 고발하고 점점 교묘하게 은폐되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폭력성에 분개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단지 우월한 쪽에 서 있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약자를 괴롭히면서도 그것이 마치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특권이라도 되는 양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영원히 용서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유나에 대한 나의 마음은 그게 어떤 모습이든 늘 과하고 넘친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이제 애쓰지 않아도 별다른 감정 없이 기억할 수 있다. 아마 영원히 그 애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알고 싶다. 유나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 애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P.32 '애쓰지 않아도' 중에서)


마지막에 실린 단편 '무급휴가'에는 그림을 전공한 두 여성이 등장합니다. 친구 사이인 미리와 현주. 비행기 승무원으로 근무하던 미리는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시골에서 그림을 그리는 현주와 재회하게 됩니다. 마음 넓고 푸근한 현주를 보면서 미리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합니다.


"미리는 현주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은 엄연히 드러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을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 네 발로 기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P.220 '무급휴가' 중에서)


비가 그친 하늘은 쏟아지는 햇살로 가득합니다. 먹장구름에 막혔던 하늘이 답답했었다는 듯 그야말로 마음껏 쏟아지는 햇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것들뿐인데, 나란히 앉아서 그네를 탈 수 있는 시간, 우리가 우리의 타고난 빛으로 마음껏 빛날 수 있는 시간, 서로에게 커다란 귀가 되어줄 수 있는 시간 말이야.'(p.127 '우리가 그네를 타며 나눴던 말' 중에서)라고 썼던 작가의 대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합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커다란 귀가 되어주는 시간을 필요한 만큼 내어 줄 수 있는 가슴 넓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하는 시간. 오늘은 금요일. 그리고 이어지는 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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