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냄새가 짙어지는 계절입니다. 그렇습니다. 봄은 색이 선명해지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냄새가 도드라지는 계절입니다. 여름과 겨울은 오히려 그 풍성하고 빈약함으로 인해 우리의 오감이 지나치게 부풀거나 묻혀버리곤 합니다. 말하자면 무뎌지는 것이지요. 열대야가 사라지고 아침 기온이 선선해지면서 우리는 멀리서 풍기는 작은 가을꽃의 향기와 도로 곳곳에 위치한 맨홀의 하수구 냄새와 등산로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땀냄새와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어느 여인의 향수 냄새 등 미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냄새들을 감각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가을은 각종 냄새의 향연이자 각축장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른 계절에 비해 과하지 않은 향수를 사용했을지라도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부쩍 예민해진 후각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가벼운 해프닝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절의 변화는 참으로 놀라운 데가 있어서 좀체 물러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이 등을 보이며 서서히 옅어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때가 여러 번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힘들었던 계절을 무사히 버텨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등산로에서 알밤을 줍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벌써?' 하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기도 합니다. 나는 여전히 앤 그리핀의 소설 <그 여름의 항해>를 읽고 있는 까닭입니다. 이 소설을 다 읽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여름 한가운데서 살고 있는 느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있었던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대해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많은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그중 대부분은 대통령의 의견을 존중하는 호의적인 내용이었습니다. 나 역시 그들과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경험한 역대 대통령 중에 순발력 있고 똑똑한 대통령을 꼽자면 노무현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 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있겠습니다. 다만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능력을 순전히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데 썼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연속선상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순발력은 그들에 비해서도 탁월한 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비가 예보되어 있는 오늘, 하늘은 마냥 어둡고 답답합니다. 그리고 바람결에 실려오는 여러 냄새는 가을로 가득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감각기관은 그 기능을 잃고 나날이 쇠퇴하지만 냄새를 감지하는 후각기관은 꽤나 오래도록 그 기능을 유지하는 듯합니다. 그리하여 과학자들이 이르기를 우리는 어떤 냄새를 통하여 과거를 떠올리고 오래된 기억을 추억한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냄새가 뇌의 기억과 감정 처리 과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지요. 가을이 오면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지 싶습니다. 가을은 냄새가 도드라지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