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나고 견디기 힘든 폭염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폭염의 일수가 길어지면서 우리가 느끼고 바라보는 환경은, 그리고 우리가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비단 인간에게 해당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만물의 영장이라고 뻐기는 우리 인간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주변의 생물을 둘러볼 여유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더위 때문에 내가 어젯밤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 한낮의 열기 때문에 외출을 포기했던 것, 더위로 인해 떨어진 식욕을 어떻게 하면 반전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등 인간의 관심은 오직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국한될 뿐 이 더위에 도시를 떠도는 비둘기는 어찌 살까? 혹은 불과 몇 미터도 걷기 힘든 아스팔트 열기 속에서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이 여름을 어떻게 견딜까? 하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런 생각들은 불필요한 것들일 뿐입니다.


나는 새벽 등산로의 풍경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목격하게 됩니다. 요즘 등산로에서 흔히 보게 되는 것은 지렁이의 사체와 참나무의 잔가지입니다. 바람이 불었던 것도 아니요,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쏟아진 것도 아닌데 그와 같은 풍경은 의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피부를 통하여 호흡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지렁이는 살기 위해서는 때때로 땅속이 아닌 지면으로 나와야 하고 물기 하나 없는 등산로를 맨 몸뚱이로 힘겹게 기어가야 합니다. 오직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안간힘을 쓰며 기어가던 지렁이는 제 몸의 수분마저 다 날려버린 후 등산로 한가운데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렇게 죽은 지렁이 사체가 등산로에 가득합니다. 지렁이 사체에는 파리떼가 까맣게 달려들고 등산객의 발길이 스칠 때마다 약속이나 한 듯 웅 하고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곤 합니다. 살기 위해서 죽음으로 향하는 이 아이러니한 지렁이의 여정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생각합니다. 내가 지렁이라면 나는 과연 죽음을 기다리면서 내가 있던 땅속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등산로를 가로질러 어딘가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나는 여전히 답을 하기 어렵습니다.


참나무도 이와 비슷합니다. 열매를 맺고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서는 땅속 수분과 영양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폭염이 지속됨에 따라 뿌리가 있는 땅 안쪽도 잎이 있는 줄기 부분도 수분의 양은 차츰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나무는 스스로 결정을 해야만 합니다. 부실한 열매가 달린 잔가지를 자신의 몸통에서 떼어낼 것인가 아니면 힘들지만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전체 가지를 껴안고 버틸 것이가. 현명하게도 참나무는 자신의 부실한 잔가지를 선제적으로 떼어내어 미리 위험을 대비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립니다. 그리하여 새벽 등산로에는 우듬지에서 떨어진 참나무 잔가지들이 수북합니다. 나는 그중 하나를 골라 잡아 내게 달려드는 모기를 쫓는 데 쓰곤 합니다.


폭염의 기세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우리는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갑니다. 덥다고 툴툴댈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지렁이의 여정처럼 가난한 누군가는 살기 위해서 죽음의 여정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지만 적어도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그들도 여전히 함께 존재한다는 걸 생각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 정도의 인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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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김새너머 2025-08-01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의 제 고민과 맛닿아있는 글을 보게 되서 반갑고 감사합니다.

꼼쥐 2025-08-02 13:14   좋아요 0 | URL
이렇게 댓글 남겨주셔서 제가 더 기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