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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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부터 시작된 공부모임이 지난 5월 말에 100회를 맞이했다. 참으로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공부모임의 역사를 이어나간 것이다. 나는 작년 11월부터 참석하여 초창기 참석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뜻 깊은 100회를 축하해주었다.
 
100회 기념으로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어 [내 인생의 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나는 이 책 <아리랑>과 황석영씨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그리고 <민중과 지식인>을 선택했다. 세 권 모두 대학 1학년 시절에 읽은 것이다. 이 세 권 이외에도 내 인생에 커다란 깨달음과 소중한 지혜를 안겨다 준 책은 많았다. 굳이 꼽아 보자면, 소설 책으로는 조정래씨의 <태백산맥>과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에세이로는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인문사회과학으로는 이반 일리히의 <성장을 멈춰라>, 자연과학으로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경제학으로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 등이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게 뇌리에 박힌 책은 위 세 권을 필적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세 권의 책은 세상에 대해 아무런 앎이나 지혜를 배우지 못하고 대학에 갓 입학한 나를 이끌어 주었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헤매고 있는 나에게 문자로서 방향을 보여주었다. 내가 그 세 권을 읽고 책 속의 지혜와 철학에 따라 그 이후의 인생을 제대로 살았다고 자부하지는 못한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어느 누구와도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저 가끔씩 가슴으로 느끼고자 노력하고 세상을 알려고 노력하고 아는 만큼 실천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한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국가나 사회에, 주변에 크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온 과정에는 알게 모르게 세 권의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청년의 고뇌와 투쟁을 통해 조선인 혁명가로 거듭난 김산(본명 장지락)의 삶을 벽안의 젊은 여성작가 님 웨일즈가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은 그 시대를 철저하게 호흡해 간 지식인의 생생한 전기이자 숨 가쁜 동아시아 역사의 기록이고 증언이며 역사가 명하는 바에 따라 불화살같이 살아간 한 조선인 독립혁명가의 피어린 발자취이다.
 
내가 읽었던 1985년 당시에 이 책은 ’금서’였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대학생 및 일반인들을 진실과 진리로 안내할 수 있는 대부분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였다. 당시에는 ’금서’ 뿐 아니라 ’금지곡’도 있었고 ’상영금지 영화’도 있었다. 그만큼 사상과 학문의 자유, 진리와 학습의 자유가 박탈되어 있었고 더불어 집회, 시위, 결사, 언론의 자유 등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수 많은 ’금지사항’들이 군화발로 버젓이 강요되었다. 한국에 처음 이 책을 소개한 사람이 고 리영희 교수였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리영희 교수님의 발자취가 한국의 현대사에 깊숙이 남아있음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 김산은 누구인가? ---------------------------
본명은 장지락(張志樂). 평북 용천 출생. 일본, 만주, 상하이, 베이징, 광둥, 옌안 등을 누비며 중국 공산혁명을 통한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신흥무관학교를 최연소로 졸업한 뒤 상하이로 가 이동휘, 안창호 등의 영향을 받았다. 1924년 고려공산당 베이징지부를 설립하고 1925년 중국대혁명에 참가하였다. 1930년과 1933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1937년 중국의 옌안에서 님 웨일즈와 만나게 되었고 님 웨일즈는 이 만남의 성과를 담아 1941년 미국 뉴욕에서 『아리랑의 노래(Song of Ariran)』를 출간했다. 1938년 중국공산당 사회부장 캉성(강생康生)에 의해 ‘일제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됐으나 1983년 중국 공산당은 김산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하고 명예와 당원 자격을 회복시키는 복권을 결의하였다. ---------------------------------------
 

-------------- 님 웨일즈는 누구인가?----------------------------
본명은 헬렌 포스터 스노우. 신문기자이자 시인이며 계보학자로 활동했다. <중국의 붉은 별>을 써낸 에드가 스노우와 결혼하기도 했다. 님 웨일즈라는 필명으로 여러 권의 저서를 내었으며, 오랜 기간을 격변하는 아시아에서 보내면서 중국과 한국에 관한 많은 집필을 하였다. 마오쩌둥에 대한 저술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에드가 스노우를 만나 결혼한 후 남편과 함께 1930∼40년대 중국을 누비며 모택동의 대장정에 참가하였다. 그는 이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두번 오르기도 했다. 저서로는 ’Inside Red China’, ’The Chinese Labor Movement’, ’Red Dust’, ’Sketches and Autobiographies of the Old Guard’ 등이 있다. ------------------------------


 
책은 소설의 형식과 자서전의 형식으로 저술되어 있다.
[서장]에는 님 웨일즈가 처음 김산을 만나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장면을 회상하는 것이다
1. [회상]에는 김산이 자신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돌아보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조선인으로서 자신이 다른 동포들과 함께 아리랑 고개를 몇 고개나 넘었고 앞으로도 넘을 것임을 다짐한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싸움하는 소리 뿐이다. 투쟁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다. 그 밖의 것은 모두 내 세계에서는 하나도 의미가 없다. 바로 그 투쟁의 대립물 속에 나와 인간생활의 일치가, 나와 인간 역사의 통일이 존재하는 것이다."(p.49)
2. [조국에서의 어린 시절]에는 김산이 평안북도 용천에서 9남매 중에서 셋 째로 태어나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큰 형과 작은 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3. [독립선언]에는 어린 김산의 눈으로 본 3.1운동의 구체적인 모습과 개인적인 평가를 담고 있다.
4. [동경유학 시절]에는 3.1 운동 이후 일본 동경으로 넘어가 고학하면서 대학에 다니는 과정을 이야기 한다. 룸펜인텔리겐차의 생활과 학생운동, 1923년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에서 겪은 이야기이다.
5. [압록강을 건너서]에는 만주에서 조선 민족주의자의 군관학교에 가기위해 걸었던 700리의 도보여행, 만주 합니하의 조선 독립군 군관학교 생활을 이야기한다.
6. [상해, 망명자의 어머니]에는 1920년 상해에 도착한 이후 공부하면서 이동휘 장군, 안창호, 이광수를 만나 함께 활동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산은 여기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세 명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한다. 가장 큰 영향은 금강산 승려 출신의 공산주의자인 김충창, 두 번째는 안창호 선생, 세 번째는 해륙풍 소비에트 지도자 팽배이다.
7.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에서 김산은 무정부주의자 그룹에 가입하여 활약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8. [걸출한 테러리스트 : 김약산과 오성륜]에서 김산은 조선인 테러리스트인 김약산(김원봉)과 오성륜과 사귀고 함께 지낸 과정을 이야기한다.
9. [결코 결혼하지 않으리라]에서 김산은 여성과 혁명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논리를 이야기한다. 김산은 이에 대하여 안창호와 톨스토이에게서 영향을 받았음을 말한다.
10. [톨스토이에서 마르크스로]에서 김산은 1921년 이후 자신이 북경에 도착한 후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읽기 시작했고 1923년 경에는 공산주의 운동만이 조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하고도 진정한 희망이라고 단정한다. 김산을 공산주의자로 만든 사람은 김충창이었고 톨스토이의 글과 사상은 김산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11. [중국 대혁명에 참가하여]에는 1924년 손문의 지도 아래 중국혁명이 일어나 좌익으로 급선회한 해였다. 중국대혁명은 1925년 광동에서 일어났고 1927년까지 김산을 비롯한 조선인 테러리스트 800명이 참가하였다.
12. [광동꼬뮨]에는 1927년 12월 10일 김산을 비롯한 20명의 조선인과 엽정 등 중국공산주의자들이 광동을 공격, 점령하여 소비에트 정부를 구성한다. 하지만, 광동꼬뮨은 준비부족과 전략전술의 실패로 인하여 3일 천하로 막을 내린다. 김산은 꼬뮨의 시작부터 백색테러까지의 과정을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13. [해륙풍에서의 삶과 죽음]에는 김산이 광동꼬뮨 실패 이후 혁명 잔존세력과 해륙풍을 거쳐 홍콩으로 탈출하면서 중국 국민당 및 군벌과 싸우는 과정이 묘사된다. 이 과정에서 김산은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었고 건강히 급속도로 약화되었다.
14. [상해에서의 재회]에는 김산이 홍콩에서 상해로 건넌간 뒤 김충창, 오성륜과 재회하고 1929년 북경으로 떠나기까지의 이야기다.
15. [위험한 생각]에는 북경으로 돌아온 김산이 북경 공산당 비서가 된 이후 중국인 아가씨(유령)의 애정 공세에 쩔쩔매는 과정을 담고 있다.
16. [다시 만주로]에는 김산이 중국공산당과 조선공산당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중국공산당에 의해 만주로 파견되어 활동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7. [위대한 첫사랑]에는 1930년 김산이 만주에서 북경으로 돌아온 후 유령의 애정을 받아들여 공식적으로 사귀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의 차이점을 해소하지 못하고 포기한다.
18. [아리랑 고개를 넘다]에는 1930년 11월 북경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고 취조받고 석방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섯 차례의 물고문에도 변절하지 않은 김산은 마침내 석방된 후 고향으로 돌아간다.
19. [당내투쟁과 개인적 투쟁]에는 김산이 북경으로 돌아간 1931년 6월 이후 중국 공산당에 의해 의심받고 스파이로 재판을 받고 혐의가 풀리는 과정을 담고 있다. 김산은 그 이후 인민전선을 내용으로 하는 노선투쟁을 전개한다.
20. [살인... 자살.... 절망]에는 중국 국민당과 군벌에 의해 북경 공산당이 와해되는 가운데 김산이 결핵에 걸리고 좌절한 가운데 과거에 자신을 스파이로 고발한 한씨를 죽이려다고 포기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자살을 시도하고 실패한 후 천천히 의지와 기력을 회복한다. 이 때 김산은 괴테, 테니슨, 키츠, 잭 런던, 업톤 싱클레어, 발자크 등의 책을 섭렵한다.
21. [다시 대중운동으로]에는 1932년 이후 보정부의 제2사범학교에서의 강의와 조직화 등 대중운동으로 복귀한 이후 활동을 담고 있다. 1933년 이후 국민당과 군벌의 토벌에 의해 중국 공산당은 와해의 위기에 빠진다. 
22. [다시 일본에 잡히다] 김산은 1933년 4월 두 번째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조선으로 송환되어 가혹한 수사를 받았지만 김산은 다시 재판에서 무혐의로 풀려난다.
23. [두 여인] 석방 이후 김산은 함께 체포되었던 중국인 여인이 김산에게 애정공세를 퍼부은 끝에 둘은 결혼한다. 그 후에 김산은 다른 활동가 여인과 잠시 동안 3각 관계에 빠지기도 한다.
24. [항일전선] 1935년 상해에서 조선의 제반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조선혁명의 지도자들이 모인다.  1935년 중국공산당 주도로 홍군과 중화소비에트가 국민당과 항일연합전선을 제창하자 조선 혁명가들 역시 중국민중과 협력하기 위해 조선인들의 민족전선-저선민족해방동행과 조선민족연합전선-을 결성한다.
25. [해배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자만이...] 김산은 1936년 8월 조선민족해방동맹과 조선공산당에 의하여 서북에 있는 중화소비에트 지구에 파견될 대표로 선출되어 연안에 도착한다. 김산은 다시 결핵이 발병한 상태였다. 

 

김산은 책의 말미에 작가의 글을 빌려 자신의 세계관을 말한다. "역사의 의지를 알 사람은 누구인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폭력을 뒤엎지 않으면 안되는 피억압자 뿐이다. 패배 속에서도 좌저하지 않는 사람, 일체의 새로운 세계를 최후의 전투에서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 뿐이다. ...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뿐이다. 민중과의 계급관계를 유지하는 것. 왜냐하면 민중의 의지는 역사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 진정한 지도력은 날카로운 귀와 신중한 입을 필요로 한다. .... 소수는 보호되어야 한다. 소수는 변혁의 최소 도구요, 다수의 자식이며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숨통을 막는 것은 단지 괴물을 키우는 것일 뿐이다. ... 주어진 다수의 투표는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나 그 다수가 올바른가 올바르지 않은가는 그와는 별개의 문제다. ...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즉 변증법적인 것이지 기계적인 것이 아니다. ... 다년간의 마음의 고통과 눈물을 통하여 ’오류’가 필수적이며 따라서 선이라는 것을 배웠다. 오류는 인간 발전의 통합적인 일부분이며, 사회변화 과정의 통합적인 일부부인 것이다. ... 자유를 위하여 그리고 자기들이 믿고 있는 것을 위하여 싸우다 의식적으로 죽는 것은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영광이요 장렬함인 것이다. ... 스스로 믿고 있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싸우다 죽는 것은 행복한 죽음인 것이다.... 내 청년시절의 친구나 동지들은 거의 모두가 죽어버렸다. 민족주의자, 기독교신자,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공산주의자 등 수백 명에 이른다... 그들은 눈앞의 승리를 보는데는 실패했지만 역사는 그들을 승리자로 만든다."(p.296)

작가는 한국 내 어느 역사가도, 후손도 밝히지 못한 조선 혁명가 중 한 사람을 발굴하여 전세계에 소개했다. 그럼에도 한국정부는 독립군이자 혁명가였던 김산을 예우하지 못하고 있따. 이런 외국인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젖어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일제 강점기에 조선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 많은 독립군과 혁명가들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껏해야 김구와 김규식 등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공개적이고 공격적인 노선으로 삼지 않은 일부 임시정부 요인들만 다루고 있을 뿐이다. 5,000년 간 이어온 조선의 역사가 단절된 것이다. 민족과 역사 앞에 그깟 이념과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란 말인가? 서구와 미국,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이념을 초월하여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을 발굴하여 후손들에게 역사교육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을 따라 배우지는 못하더라도...
 
작가는 김산을 ’참된 도덕’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김산은 거짓과 허위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고 거짓말 같은 것은 아예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작가가 접한 김산은 진리를 추구하는 순례자였고 시대가ㅏ 낳은 하나의 순교자였다. 다행이 김산은 1980년대에 중국공산당으로부터 1960년에 받은 ’수정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스파이의 누명을 벗었다. 김산이 문화대혁명 시기에 강생에 의해 비밀처형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작가에게 있어 끔찍한 잔악행위이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었다. 
 
작가에게 있어 당시 33세였던 김산은 일본의 억압 아래 있던 동시대 한국인들에게는 영명한 지도자요 사상가였으며, 뜨거운 영혼과 가슴을 소유한 순수한 인도주의자요 더 없이 존귀하고 고귀한 인물이었다. 김산의 삶과 역정은 작가를 통해 전 세계에 조선인(한국인)의 위대함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김산이라는 역사적 존재는 처음 나에게 ’영웅’으로 다가왔다. 그는 바다 건너 핏줄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현실적이지 못한 외국의 영웅도 아니고 수 백년, 수 천년 전의 신화에 쌓인 ’을지문덕’도 아니었다. 고작 50년 전에 한반도에서 태어나 일제의 강점에서 조국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봉건과 압제의 사슬에서 민중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다 바친 선배였던 것이다. 20세기 후반은 일제시대가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에는 여전히 외국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고 외국군을 한국정부가 제어하지 못하고 외국의 경제에 국내경제가 종속되어 있는 현실, 군사정권이 헌법상의 국민의 권리를, 타고난 사람의 권리와 행복을 짓누르고 억압하는 현실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이 책과 김산의 생애를 받아들였다. 우리가 김산처럼 혁명활동을 펼쳐나가지 못할지라도 그 분의 의지와 노력, 그 분의 철학과 열정을 최대한 본받자고 다짐했던 것이다.
 
<아리랑>은 그래도 하루하루 학생운동이 힘들었던 1980년대 중반에 열혈청년학생들이 추위와 배고픔, 억압과 울분, 최루탄과 경찰폭력에 대항하여 굳은 의지를 불태울 수 있도록 하는 산 교과서에 다름 없었다. 물론 교과서만큼 당시 학생들이 실천하고 성과를 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록 우리가 당시 김산의 말과 행동을 제대로 따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따르려는 노력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된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뒤늦게나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싶다. 우리만이라도 그 분을 기억하면서....
 
[ 2011년 6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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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이승환 옮김 / 김영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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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제(10월 26일) 저녁에 독서토론 모임에 나갔다.
집에서, 커피숍에서, 강가에서 나 혼자 앉아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아는 지인들에게 보내주기 시작한 지 벌써 만 3년이 되어간다.
홀로 책을 읽는 데는 장점이 많다.
책 선택을 내 맘대로 할 수 있고 읽는 속도도 조절할 수 있고 느낌과 기억을 몸 속에 조용히 간직하는 등...
하지만, 당연히 그 반대급부도 있다.
가끔 책 선택에 실패하기도 하고 좋은 책을 소개받기가 생각보다 힘들고 혼자만 읽고난 후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점점 희미해진다. 책에서 궁금하거나 '다른 사람 생각은 어떨까?'라는 궁금증도...
그래서 이제는 나 혼자만의 책 읽기와 더불어 여럿이 함께 읽는 것에 대한 장점도 취해보고자 했다.
내가 처음 참여한 독서토론의 대상은 < 행동 경제학 >(도모노 노리오, 2007년 1월, 지형)...
** <행동경제학>은 인터파크 도서에 등록되지 않아 서평을 써도 등록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ㅠ.ㅠ;;
그 책을 1/3 정도 읽다보니 고전경제학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비교하고 검토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2년 전에 구입했다가 읽다가 말았던 이 책 <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가 기억나서 다시 집어들었다.
 
이 책의 영문 초판은 1989년에 출간되었다. 한국에서도 초판이 1999년에 출간되었고 나는 개정판을 읽은 셈이다.
저자는 하버드대학교에서 '최우수강의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듯이 쉽고 일목요연하게 근대 이후의 경제사상사를 설명하고 비교하고 평가한다.
근대 경제사상사에서 족적을 남겼던 15명 전후의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이론을 다루면서도 영리하게도 자신이 칭찬, 칭송하거나 비판, 비난하고 싶은 상대에게는 그 경제학자들의 발언과 글을 이용하기도 한다. 
마치 자신이 아니라 '죽은 경제학자'들의 의견인 것처럼...
'죽은 경제학자'들의 권위를 내세워 자신의 의견을 강조함과 동시에 독자들의 감정과 비난을 피해갈 수 있도록...^^
 
개정판 서문에서 처음 읽은 글이 내 기분을 상하게 했다.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일반이론」중에 "경제학자 및 정치철학자의 아이디어와 힘은 옳고 그름을 떠나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다. 세계는 그 아이디어들이 움직여 나간다……선용되는 악용되든 궁극적으로 위험한 것은 아이디어지 사리(私利)가 아니다." 란 내용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위험한 것'이 '사리'가 아니라 '아이디어'라고? '사리사욕'이 개발과 만악의 근원이 아니라??
저자가 잘 못 쓴 문구인지, 번역자가 잘못 해석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 문구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개정판 서문에서 밝힌 또 다른 저자의 의견 - 1997년 아시아의 붕괴에 대한 - 역시 탐탁치 않다.
저자는 당시 아시아 붕괴의 원인으로 1) 정부의 과도한 개입 2) 정실자본주의 3) 달러화에 대한 미국의 태도 급변을 들고 있는데,
1)은 전혀 이유가 되지 않는 것 같고 2)는 장기적인 구조적 문제점일 수는 있으나 1997년 아시아 위기의 원인은 아니다.
3)이야말로 진정한 핵심 이유인데, 이에 더하여 아시아 지역 정부가 '세계화'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이 책에는 소위 고전경제학의 대부들(?)이 총 망라되어 있다.
그들의 이름은 고전경제학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국부론, 자유방임주의, 분업)부터
인구폭발과 지구멸망의 예언자 맬서스(인구론),
자유무역론의 창시자 데이비드 리카아도(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정치경제원론),
한계적 시야를 일깨운 알프레드 마셜(경제원론),
제도학파를 이끈 베블런과 갤브레이스(유한계급론, 경제학과 공공목적)
정부개입과 재정정책의 선구자이자 풍류도락가 케인스(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통화주의자이자 자유시장주의자인 밀턴 프리드먼(자본주의와 자유, 선택의 자유),
공공선택학파 제임스 뷰캐넌(동의의 계산법),
합리적 기대이론가이자 자유시장주의자 로버트 루카스(합리적 기대와 계량경제학의 실제) 등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근현대사에서 고전경제학을 뿌리째부터 가장 위협했고 고전경제학의 방향을 바꾸어놓은 칼 마르크스(자본론)에게도 경제사상사의 한 자리를 내주었다.
다만, 칼 마르크스는 저자에 의해 인신공격자, 무능력자, 근시안을 가진 자, 학대와 잔학의 뿌리로 '부관참시'되었지만...
 
저자는 영국 태생이자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경제학을 연구하였고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전형적인 앵글로색슨식 인간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주류'경제학자 중의 하나다.
그런 저자의 배경과 시각을 가지고 근현대 경제사상사를 평가하였으니 이 책이 출간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영국과 미국인, 귀화미국인들이 경제사상사의 주역이 될 수 밖에 없고...
'서구 중심주의'와 '서구 우월주의'에서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이 책을 통해 고전경제학의 탄생과 변화과정, 그들이 근현대 정치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그들을 신처럼 받드는 21세기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이론의 뿌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고전경제학의 주된 주제인 욕망, 합리주의자, 공리, 통화, 정부개입, 자유시장, 자유무역 등에 대한 이론적 근거도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경제학이 '선택의 학문'으로서 경제학은 무엇을 선택하라고 지시하지는 않고 다만 선택의 결과를 예측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뿐이라고 말한다.
내 생각에 저자의 경제학의 정의는 잘못되었다.
20세기부터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 아니었다.
경제학은 인간의 본성, 인간의 선택, 인간의 판단과 행동, 생산물과 관련분야, 정치와 문화, 제도 등이 총 망라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문제가 경제학 뿐 아니라 경제학자, 그리고 이들을 '이용'하는 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의 문제는 인간의 본성과 행동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데 있고
경제학자의 문제는 인간에 대한 잘못된 규정을 근거로 애정도 없이, 책임지지 않고 자신들의 이론을 만들어내고 그에 더하여 공명심과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들의 이론을 현실 정치경제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는데 있으며,
어찌보면 그런 '순진한' 경제학자들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들에게 있다.
 
20세기에 들어선 이후 인류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1929년 대공황,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1970년 석유위기, 1997년 아시아발 금융위기,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겪었다.
그 위기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자들은 '가진 자'들이었고 가장 큰 경제적,생물학적 피해를 본 것은 '가지지 못한 자'들과 애꿎은 자연과 생물들이었다.
이 상황에 대한 돌파구는 무엇일까??

[ 2010년 10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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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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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꾸다 히데오는 일본 작가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작품을 읽어본 작가이다. 그동안 <남쪽으로 튀어>, <걸>, <공중그네>를 읽었다. 히데오의 작품은 현대 일본사회의 모습과 일본인들의 문화, 그들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히데오의 작품에는 유머와 풍자가 들어있으며, 동시에 잔잔한 인간으로서의 감동과 울림이 있다. 최근에 나온 작품이라 하여 읽게 되었다.
 
세 개의 작은 군 단위 행정구역이 합병되어 탄생한 인구 12만의 지방 도시 ’유메노’를 배경으로 나이, 직업, 주변 환경, 가치관 등이 전혀 다른 다섯 주인공의 톱니바퀴처럼 얽혀 있는 다섯 가지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다섯 명의 주인공들은 평범하게 우울한 일상을 보내는 인물들이다. 시청 생활보호과에서 생활보조비 수급 대상자를 상대로 일하는 공무원 아이하라 도모노리,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어떻게든 유메노시를 떠나고 싶은 여고 2학년생 구보 후미에, 폭주족 출신으로 노인들만 사는 집을 골라 누전차단기를 교체해주고 엄청난 돈을 받아 사기를 치는 회사의 세일즈맨 가토 유야, 소매치기를 잡아내는 보안 요원이자 신흥 종교에 빠져 있는 중년의 이혼녀 호리베 다에코, 그리고 어떻게든 큰 무대에 진출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는 유메노 시의원 야마모토 준이치가 바로 그들이다. 

1. 아이하라 도모노리,  본청으로 자리를 옮길 날만을 기다리며 무사안일한 공무원 생활을 계속하던 그는 실적에 목말라하는 상관의 지시를 따르다가 정신지체 증상이 있는 청년의 어머니가 추운 겨울에 추위와 배고픔에 죽도록 만들어 청년의 분노를 자아낸다. 그는 직업과 업무에 대한 자부심도 없고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채 도박장 주차장에서 은밀히 진행되는 유부녀들의 ’성매매’를 훔쳐보다가 자신도 ’성매매’를 하게 된다. ’성매매’에 깊숙하게 빠져들다가 이혼한 전부인을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서 발견하게 된다.

2. 구보 후미에, 유메노시를 떠나기 위해 기필코 도쿄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 그녀는 어느 날 밤 학원에서 집으로 가던 중 사회 부적응자이자 게임세계에 빠져있는 청년(가토 유야의 고등학교 동창)에게 납치, 감금된다. 

3. 가토 유야, 고등학생 시절 오토바이 폭주족이었기에 별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가토 유야는 전직 폭주족 두목이 운영하는 사기 세일즈 회사에 근무하게 된다. 폭주족 선배가 회사에서 실적을 올리고 그에 따라 거액의 보너스를 받아가는 것을 보면서 가토 유야는 처음으로 자신의 미래를 그려 본다. 이혼한 아내가 생활보조비를 계속 수령하기 위해 자신에게 떠맡긴 아이를 부모에게 부탁하면서 부모에게도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하게 되면서 가토는 조금씩 일반 직장인이자 사회인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회사의 불합리한 처사에 반발한 폭주족 선배가 사고를 치게 되고 이에 휘말리면서 가토 유야는 흔들린다.

4. 호리베 다에코, 신흥 종교에 가입하여 삶의 활력을 되찾은 다에코는 오히려 신흥 종교 간 갈등에 희생되어 보안회사에서 해고된다. 해고 이후 더욱 신흥 종교 생활에 빠져들려고 노력하지만 여의치만은 않다.

5. 야마모토 준이치, 아버지의 지역구를 이어 시의원에 당선된 준이치. 아내와는 애정 없는 부부생활을 이어가면서 회사의 비서와 ’딴 살림’을 차리고 있고 학교 성적이 좋은 아들을 둔 준이치는 유메노시의 폐기물 처리장 이권에 개입하여 지역 조직 폭력배들과 거래 중이다. 하지만, 전직 의회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와 폐기물 처리장 이권에 뛰어들면서 상황이 복잡해진다. 급기야 지역 조폭이 살인 사건을 저지르고 자신마저 사건에 빠져들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만다.

5명의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사연으로 최악의 상황에 몰리고 있지만, 그들을 구석으로 모는 것은 겉으로는 다르지만 그 이면에 동질성 같은 것이 존재한다.

오쿠다 히데오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불균형적인 경제 발전으로 인해 쇠락해가는 지방 도시는 물론, 가정 폭력, 은둔형 외톨이, 사이비 신흥 종교, 정치권의 세습, 사기 세일즈 등 현대의 부조리한 사회상과 그것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오쿠다 히데오스러운 유머도 곳곳에 배치되어 웃음과 진지함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히데오는 다섯 군상들의 ’우울함’을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전개한다.  
 
-------- 오꾸다 히데오는 누구인가? ------------------------
1959년 일본 기후현 기후시에서 태어나 기후현립기잔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잡지 편집자, 기획자, 구성작가, 카피라이터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1997년 40살이라는 늦은 나이에『우람바나의 숲』(한국어판 서명 :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으로 등단하였다.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일본 사회의 모순과 그 틈바구니 속에서 각자의 사정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는 내용들이 그의 소설의 중심을 이룬다.
시니컬한 유머감각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그는 일본 내에서도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기인작가’이다. 또한 그의 작품이 인기가 높은 한국에서도 수 없이 인터뷰와 한국 방문을 요청했지만 한 번도 응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동네 도서관에 가서 작품 쓰는 것을 매우 즐기는 소박한 품성을 지녔다.
2002년 『인 더 풀』로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으며, 같은 해 『방해』로 제4회 오야부 하루히코상을, 2004년 『공중그네』로 제131회 나오키상을, 2009년 『올림픽의 몸값』으로 제43회 요시타와 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공중그네』『인 더 풀』『남쪽으로 튀어!』『걸 Girl』『면장 선거』『스무 살, 도쿄』『방해자』『오 해피데이』『연장전에 들어갔습니다』 『꿈의 도시』 『올림픽의 몸값』등이 있다. -------------------------------------------------
 
히데오는 이 작품 속에서 <공중그네>와는 다른 현대 일본사회의 칙칙함과 우울함을 이야기 한다. 유메노시는 21세기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와 일본 자본주의에 희생당한 전형적인 소도시다. 대규모 쇼핑시설의 건립으로 지역의 전통 재래시장은 망했고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로 고통받는다. 기성세대와 유력자들은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이권에 집착하고 젊은이들은 도시에서 희망을 상실하였다. 관청과 공무원들은 무사안일과 매너리즘에 빠져 지역주민들에게 아무런 비전과 희망도 제시하지 못하고 지역 주민 대부분들도 희망을 잃은 채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하루하루 살아간다. 도시는 칙칙하고 도박장과 은밀한 ’성매매’가 성행하고 희망 없는 사람들은 블랙홀처럼 빨려든다. 도시에는 새로운 활력과 움직임을 상실했고 은퇴한 노인들이 주된 거주자들이다. 옆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작품의 결말은 충격적이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암시한다. 히데오는 작품 속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작가의 마지막 희망은 시대적이거나 사회적이지 않다. 최악의 상황에서 잠시 벗어날 뿐 여전히 원상태로의 복귀 정도가 아닐까 싶다. 2011년 일본 동북부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은 이러한 일본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소설 속의 지역 모습이 일본의 소도시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와 오피스텔에 사는 사람은 옆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한국은 언제쯤 일본의 노인인구율을 따라잡을까? 최근 한국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 SSM이 지역 상권에 끼칠 피해의 미래 모습은 어떤가?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이권개입은 과연 근절되었는가? 도박과 성매매는 줄어들고 있는가? 한국의 지방 소도시들 역시 ’유메노시’와 다를 바 없다. 한국이 일본의 무기력함을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국가적, 사회적, 공동체적 희망을 함께 만들어 나갈지 여부는 앞으로의 몇 년 안에 드러날 것이다.
 
[ 2011년 6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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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공식 한국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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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7월에 법정스님의 저서 <내가 사랑하는 책들>에 소개된 책 50권 중에 <소로우의 무소유 월든>과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에 이어 세 번째로 읽은 책이다.   

’라다크’는 어떤 곳인가?
라다크는 ’라 다그스 La Dags’라는 티베트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그 뜻은 ’산길의 땅’이라 한다. 히말라야 산맥의 북쪽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거대한 산맥의 그늘에 쌓여 있는 고원지대에 있다.
고도 1만 피트(3,050m)의 고원지대인 이곳에서 1년 중 작물이 자랄 수 있는 기간은 4개월에 불과하다. 대부분 농가 1가구당 5에이커(20,000m²) 정도의 경작지를 가지고 보리, 밀, 콩, 순무를 경작한다.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북부 인도의 몽족과 긹트의 다드족이 처음 이 지역에 거주하였고 기원전 500년 경에 티베트에서 이주해온 몽고 유목민들과 합류하면서 거주민들이 형성되었다.
종교와 문화적인 면에서 티베트의 영향을 많이 받아 종종 ’리틀 티베트’라 불리운다.

  
p.53 농가 1가구당 대개 5에이커 정도의 경작지를 가지고 있는데 여유가 있는 가구는 10에이커 정도를 경작하기도 한다. 적정한 경작지 면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일할 수 있는 가족의 수이다. 대략 한 사람당 1에이커 정도가 그 적정 면적인데 이곳 농부들에게 그 이상의 땅은 소용이 없다. 기본적으로 이곳 사람들은 경작하지 못 하는 농지를 소유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이것은 라다크 사람들이 농지를 재는 단위에 잘 반영되어 있는데 이들은 밭의 면적을 잴 때 그 밭을 가는 데 걸리는 시간에 따라 ’하루치’ 혹은 ’이틀치’라는 식의 단위를 사용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20세기부터 서구를 중심으로 전세계 수십억 인구가 치닫고 있는 글로벌 경제가 인류에게 결코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GNP와  GDP로 수치경제를 지향하는 글로벌 경제는 행복 대신 공동체를 파괴하고 그것을 소비지향적인 획일성 문화로 대체함으로써 건강한 정체성의 근본을 훼손시킨다는 것을 온몸으로 겪은 저자는 라다크의 사례를 통하여 고발하게 된다.
저자는 처음 경제개방에 따른 변화에 혼란스러워 하다가 뒤늦게 이러한 사실들을 깨닫고 라다크를 ’수치’가 아닌 행복으로 되돌리기 위하여 전통을 되살리고 지역에 맞도록 과학을 이용하여 ’지역중심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책의 1부, ’전통에 관하여’는
1975년 언어학자인 저자가 라다크 방언의 연구를 위해 라다크 마을을 방문하여, 자신이 살아왔던 서구세계와는 다른 가치로 살아가던 사람들의 평화롭고 지혜로운 모습을 그리고 있다.
2부, ’변화에 관하여’는
1975년 인도 정부의 개방정책에 따라 개방된 라다크 전통문화의 수도 레(Leh)가 외국 관광객들이 가지고 들어온 서구 문화와 가치관들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3부, ’미래를 향하여’는
저자가 라다크 사회의 회복을 위해 설립한 국제 민간기구인 ‘에콜로지및문화를위한국제협회(ISEC)’의 구체적인 활동과 ‘라다크 프로젝트 (Ladakh Project)’에 대한 소개와 활동 상황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서구식의 소모를 전제로 하는 개발의 폐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그들 토양에 맞는 새로운 가치의 정립과 발전을 이루어나가도록 설득하고 있다. 


 


인도정부가 라다크 지역을 외부에 개방하기 전 라다크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한 긍정적인 자존감이 높았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마을 단위로 자급자족하였고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항상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살았고 조상 대대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였다.
"미국에서 가장 앞서가는 사람들이 먹는 것은 돌로 빻아 만든 통밀 빵이에요. 우리 전통 빵하고 비슷한 것인데 그게 흰 빵보다 훨씬 더 비싸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천연재료로 집을 짓고 있어요. 우리처럼 말이에요. 보통 가난한 사람들이 콘크리트로 만든 집에서 살지요. 또 ’100퍼센트 천연섬유’나 ’순모’라는 표시가 있는 옷을 입는게 유행이에요. 가난한 사람들은 폴리에스테르 섬유로 만든 옷을 입어요."
그곳에서 가장 심한 욕설은 ’숀 찬 schon chan’이라고 하는데, 이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순수한 지역에 자본주의가 침범해 들어오면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되어 버린 것이다. 
인구가 급증하고 그에 따라 도시화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불필요했던 화폐와 용품이 들어오고 영화와 서구음악이 들어왔다. 이 모든 것들은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서구지향적인 의식을 주입하였고 라다크인으로서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빼앗아갔다.
관광과 외부 농산물, 서구식 교육과 물품들은 지역의 자급자족 체계를 무너뜨리고 일하는 사람들을 도시로 내몰았다. 그들은 고향의 넉넉한 품에서 도시의 좁고 더러운 주거지역에서 생필품을 위한 노동자로 전락해간다.
 
이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단호하다.
"문화적 다양성을 부흥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불필요한 무역을 줄이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납세자들이 낸 세금은 운송망을 확충하는 데 쓰이고 실효성을 고려하지 않는 그야말로 무역을 위한 무역을 지원하는 데 쓰이고 있다. 우리는 우유에서 사과 그리고 가구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상품들을 대륙을 가로질러 실어 나르고 있지만 그 상품들은 대부분 현지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가 정말 해야 하는 일은 지역의 경제를 더욱 강화하고 다양화해야 하는 것이다. 운송비용의 감축을 통해 우리는 쓰레기와 오염을 줄이고 농민의 위상을 개선시키고 공동체의 유대를 일거에 강화할 것이다."(p.323) 
 
라다크 지역과 라다크인의 삶이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그들의 변화과정 역시 한반도의 역사와는 크게 다르다.
하지만 지리상, 역사상 과정이 다름에도 둘 사이에는 ’전통문화와 공동체의 해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라다크에서 배울수 있는건 삶 자체에 대한 생각들이다.
한사회 복지의 진정한 지표는 국민총생산이 아니라 ’국민총행복’ 이라는 부탄 국왕의 말을 되새겨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무작정 주어진 삶, 남들이 살아가는 인생을 따라가다 어느 순간 ’인생’과 ’행복’이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닥치게 된다.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 책은 작은 실마리를 준다...









* 지난 8월에 EBS ’테마기행’에서 방영한 [오래된 미래, 라다크] 4부작을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짧게 감상해 보았다.
저자와 달리 그냥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라다크 지역에 머물렀기 때문에 제작진들은 라다크 지역의 진정한 문화와 삶을 담아내지 못하고 그저 ’한국과 다른’, ’독특한 지역과 사람들’이라는 메시지 밖에 전달하지 못한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기획하면서 분명 저자의 책을 읽었을 텐데도 방송국과 제작진들은 그저 ’시청각 자료’를 만드는데 만족하는 것으로 보인다.
4편 내내 감탄과 소감 밖에 들리지 않는다.















[ 2010년 10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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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
노무현 지음 / 학고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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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오연호 기자가 발간한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에 이어 노무현 전대통령이 자신의 생애와 대통령의 역정에 대해 직접 초고를 쓴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노무현 전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쓴 글을 토대로 하여 만들어졌다. 준 회고록 성격의 글로써 노 전대통령은 목차를 포함, 대강의 구성까지만 완성하고 서거했다. 최종 수정은 2009년 5월 20일 오후 5시 5분이었다.  그는 왜 2009년에 회고록을 쓰려 했을까? 직접 그의 말을 빌려본다.

"회고록은 한참 후에 쓰려고 했다. 아직 인생을 정리하개에는 너무 이르고,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봉하마을 바꾸기, 시민광장, 정책연구... 그래서 '우공이산'을 표구하여 붙여놓고 이런저런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여러가지 장애가 생겼다.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마침내 피의자가 되었다. 이제는 일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이야기를 쓰는 일뿐인 것 같다. 왜 써야 할까?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뿐이다. 일은 삶 그 자체이다."

그는 2009년 봄 이후 이명박 정권과 검찰의 비열한 정치적이고 비도덕적인 수사방식과 조,중,동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언론의 포퓰리즘적 보도행태로 인하여 자신이 평생 스스로 지켜오던 원칙과 기준, 도덕성과 명예가 무너짐을 느꼈던 것이다. 

책은 제목 그대로 그의 성공과 좌절, 굴곡진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고록 집필을 결심하고 목차를 포함하여 대강의 구성을 직접 작성한 '성공과 좌절'을 비롯하여, 회고록 집필을 결정한 뒤 줄거리를 밝힌 구술 기록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와 '스스로 입지를 해체하는 참담함으로' 등 살아 생전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을 모두 이 책에 담았다. 


제1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01장. [미완의 회고]에는 노 전대통령이 직접 쓴 글과 구술한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다. 왜 갑자기 예정에 없던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는지, 회고록의 주된 내용이 '실패한 이야기'를 쓸 것이라는 것, 자신의 실패가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한 시민들의 실패는 아니라는 것, 자신의 실패를 거울삼아 달라는 것에 대한 소회를 담고 있다.

또한, 자신이 생각해왔던 질문들에 대한 짧은 글이 담겨 있다. 대통령의 과제는 무엇일까? 역사적 과제는 무엇일까? 후보 시절의 약속은 무엇이었을까? 참여정부의 비전과 전략은 무엇이었는가?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퇴임 이후 자신이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했던 주제들도 거론된다.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을 필두로 하여 유럽에서 제시된 '제3의 길', 참여정부 임기 말에 준비했던 '비전 2030' 등이다.

자신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규정하면서 그 원인을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자신의 정치적 소망과 좌절을 언급하면서 "정치하지 마라"와 "이제는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말한다.

02장. [봉하 단상]은 인터넷 공간 [사람사는 세상]의 '봉하 글마당'과 '좋은 자료 모으기 동호회', 그리고 '진보주의 연구모임'에 노 전대통령이 직접 올린 글이 담겨 있다. '봉하 글마당'에서 옮긴 글은 2009년 3월에 작성한 '권용목과 뉴라이트의 민주노총 보고서', '민주주의와 시민의 주권 행사', 그 해 4월 작성한 '춤추는 미사일, 누구를 위한 것일까?', '정치인들은 껍떼기에요.', '언론은 흉기다', ' 제 집 안뜰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이다.

'좋은 자료 모으기 동호회'에서 옮긴 글에는 2009년 3월에 작성한 '수직적 권위주의 권력문화와 전시행정에 관한 사례를 모아봅시다', '민주주의 역량의 부족에 관한 이야기 자료가 있을까요?', 4월 '정책 결정은 누가 하나?', 5월 '작은 정부와 구조조정의 결과에 대하여', '오바마의 진보주의 개혁은 성공할 것인가?' 등이 담겨 있다.

'진보주의 연구모임'에서 옮긴 글에는 2009년 2월에 작성한 '오늘의 좋은 소식 -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정책', 3월 '대북정책의 전략적 판단과 보통 사람들의 상식', '재판에 대한 압력, 언론에 대한 압력', '남북간 군사력 비교에 대하여' 등이 담겨 있다.

제2부. [나의 정치역정과 참여정부 5년]에는 노 전대통령의 육성 기록이 들어 있다. 네 차례의 인터뷰가 들어 있는데, 퇴임 1년을 앞둔 지난 2007년 9월 5일 청와대 상춘재, 9월 16일 상춘재, 10월 20일 청와대 관저 회의실, 2008년 1월 18일 청와대 관저 대식당 등에서 진행되었다. 내용 중 일부가 편집되어 2007년 11월 한국정책방송(KTV)에서 방영했고 2008월에는 '다큐멘터리 5부작, 참여정부 5년의 기록'이라는 제목의 DVD로 제작됐다. 2차 인터뷰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겸해 진행되기도 했다.

01장. [시대는 한 번도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는 노 전대통령의 인생역정과 정치역정에 대해 구술한 내용이다. 가난과 큰 형님, 초등학교 시절 글짓기 반항 사건, 419와 516에 대한 기억, 개발시대 막노동, 사범시험 이야기, 결혼과 판사 생활, 변호사 시절 이야기와 부림사건 변호를 통해 인권변호사로 활약하기 시작한 이야기, 정치에 뛰어든 계기와 3당 합당의 추억, 부산에 대한 기억, 바보 노무현과 노사모에 대한 이야기, 대선 출마 동기와 퇴임 이야기 등이다.

02장. [참여정부 5년을 말하다]는 노 전대통령 재임기간 중의 참여정부 5년에 대해 구술한 내용이다. 여기에는 참여정부에 대한 자신의 평가, 경제부분에서 성장과 복지에 대한 평가, 남북정상회담과 북핵문제, 남북관계, 동북아 평화에 대한 평가, 한미관계와 한미 FTA에 대한 평가, 정치개혁을 위한 노력과 그 좌절 등이 담겨 있다.

03장. [한국 정치에 대한 단상]는 노 전대통령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 정치에 대해 구술한 내용이다. 일개 국회의원이면 국민의 눈높이에 자신의 정치 수준을 맞춰도 되지만 국가적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국민의 눈높이를 넘어 역사의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투명성과 공정성, 원칙적인 법치주의만으로는 어렵고 한 발 더 나아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그러면서 대화하고 타협과 협상을 통해서 결론을 하나로 모아 나가는 통합의 과정이 부드럽게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노 전대통령은 '시민주권시대'와 '시민권력'을 말한다. "만일 정치권력으로 무엇을 하려고 한다면 한 사람의 대통령을 만들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중심이 되는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흐름을 만들어내야 합니다."라고...


시골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란 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정치에 입문, 대통령에 당선된 그의 삶은 '성공'이라고 불려질 것이다. 번듯한 기반 하나 없이 대통령까지 당선되었으니 누가 봐도 '성공'이겠지만, 그는 서거 직전 남긴 회고록을 통해 '실패와 좌절'의 기억만이 남아 있다고 고백한다. 대통령 임기 내내 '경제 파탄, 민생 파탄, 총체적 파탄,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는 사람들과 싸웠고, 임기 후에 측근의 비리로 인해 흠집난 자신의 도덕성에 대해 부끄러운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글을 통해 서거 직전 고통스럽게 고뇌하며 자신의 삶 전체를 성찰한 그의 모습을 아련히 그려볼 수 있다.

이 책 속의 2부의 많은 글은 오현호 기자의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글과 많이 겹친다. 그래서 1부에 들어있는 노 전대통령이 직접 쓴 글이 새롭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의 정서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자리에 올랐음에도 퇴임 후 그는 스스로 자족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보다 더 낮은 자리에서 조국과 국민들에게 부족한 내용과 환경을 찾고 그것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노력했던 사람.. 그가 무엇을 이루었거나 완성했는지가 아니라 퇴임 후의 그 자세와 노력이 현재와 미래의 후손들에게 모범일 것이다.

노 전대통령이 재임 시절의 여러 정치적, 정책적 결정에 대해 스스로 평가내린 것에 대해 모두를 동의하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도 사람인 이상 감정을 가질 수 있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내가 그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의 '평가내용'이 아니라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내놓고 겸허하게 평가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은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후보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퇴임 후 아저씨 노무현을 왜 그토록 수 많은 국민들이 사랑했는지를 보여준다. 권위주의가 권위로 살아온 사람. 허위와 가식이 아니라 진실과 감성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간 사람. 열정과 아픔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사람. 노무현은 정치인과 지도자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질과 태도를 우리에게 제시한 것이다. 

이제는 그가 태어나 자란 봉하마을의 한 곳에 조용히 묻혀 있지만, 그가 남긴 말과 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아직도 이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의 실패와 좌절의 이야기는 남은 자들에게 더 나은 세상, 사람 사는 세상,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 그의 열망을 고스란히 전해줄 것이다. 

그가 세웠던 꿈 '사람 사는 세상'을 국민들은 버릴 수 없다.


* 노 전대통령의 유언 :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 2011년 6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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