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우선한다 -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
셰리 버먼 지음, 김유진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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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음 주 공부모임 교재이며, 지난 달 초에 세미나를 했던 박상훈 저 <정치의 발견>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도 읽고 싶었다. 유럽의 현재 정치관계와 구조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과거 역사적으로도 독특한 과정을 겪었고 18세기 이후 300년 넘도록 전세계에 걸쳐 정치,경제,사상적인 토대를 지배하고 있다. 어찌 보면 서구보다 우월한 것 같은 동아시아의 정치사상적인 흐름마저 20세기를 거치면서 주도권을 서구 정치사상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20세기 내내 내부적인 실험을 거듭하여 21세기의 지배적인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과는 또 다른 정치사사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유럽사회 전반에 흐르는 '복지국가'의 모습은 한국을 비롯한 중진국이나 후발 개발도상국의 지식인이나 민중들에게 '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인류역사가 21세기의 나머지 90년을 어떻게 진행될 지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공부해보고 싶은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나는 20세기 초반 유럽의 모습을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유럽에서 직접 공부하거나 유럽 관련 전공자가 아닌 보통의 한국 사람들 역시 대부분 나와 비슷할 것이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들 역시 마르크스나 엥겔스,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 등 당시 대학가에서 유행하던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관련 서적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것이 전부일 것이다.
 
저자는 유럽의 20세기 정치사상적인 전개과정, 특히 유럽의 20세기 전반부와 후반부가 상당히 다른 모습에 대한 일반적인 담론에 대해 문제제기하기 위하여 글을 쓰고 책으로 발간하였다. '일반적인 담론'이라 함은 통상적으로 20세기, 특히 20세기 상반기의 유럽이 자유주의가 파시즘과 나치즘,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투쟁에서 승리했다는 관점과 자유주의가 사회주의자 및 자본주의와 투쟁에서 승리했다는 관점을 말한다. 그리하여 20세기 후반에 최종적으로 민주주의적 자본주의가 지구상의 사회를 조직하는 최상의 방식임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담론(또는 통념)은 미국과 영국의 대부분의 학자들, 그리고 일반적인 학자들 사시에서 주류적인 시각이고 이론이다. 당연하게도 한국 역시 주류 이론 역시 그러한 시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담론 내지 통념이 '부분적인 진실'일 뿐이라고 정정한다. "왜냐하면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하나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며, '중요한 하나의 문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불화를 겪어 왔다는 사실"을 의미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불화와 대립에 대한 언급은 마르크스주의자들 뿐 아니라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인 존 스튜어트 밀, 알렉시스 토크빌,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의 의견도 일치한다.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무식하고 가난한 대중에 의한 전제정치와 계급 입법으로 귀결될 것"임이 분명했다. 따라서 저자가 판단하건대, 유럽의 20세기 전반부와 후반부가 그토록 다른 모습을 띤 이유에 대한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서로 적대적이었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 과정이 너무도 확고하게 진행되어 "이제 인류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그리고 사회적 안정과 진보를 위해 당연히 필요한 공통의 전제조건"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유럽에서 20세기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과 공존의 과정을 다루면서 사회민주주의가 궁극적인 정치사상적인 대안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음을 입증하려 한다. 저자는 책 서두에서 "20세기의 승리자는 자유주의나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이"라고 먼저 결론을 내린다.
 
제1장. [서론] 18세기 들어 태동하기 시작한 자본주의는 20세기 초가 되자 유럽 전역으로 확장됨과 동시에 전반적으로 확장되었다. 자본주의는 개인들에게 자신의 지위와 생활을 주로 특정 집단 혹은 공동체에 의해 규정되던 세상을 종말을 의미했고 개개인의 정체성과 생계를 시장에서의 지위에 의존하는 체제로 이행하게 만들었고 공동체도 붕괴되었다. 따라서 근대화가 파괴한 사회적 통합을 정치적 수단들을 통해 재창조해 내느 것은 근대사회가 직면한 주요 도전 과제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유럽 사회는 1920~30년대 들어 경제적 붕괴와 사회적 대혼란을 겪으면서 대중은 근대 자본주의가 제공할 수 없는 안정과 공동체, 그리고 사회적 보호를 다시 요구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가 대중들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면서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나치즘), 그리고 혁명적 사회주의는 그러한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무대 위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라는 해결책은 민주주의의 희생과 인권 유린을 동반했고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등장한 것이 사회민주주의였다. 자유주의와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경제 중심주의와 수동성을 거부하면서, 그리고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의 폭력성을 회피하면서, 사회민주주의는 저치의 우선성과 공동체주의에 대한 믿음 위에 세워졌으며, 사회주주의의 비마르크스주의적 비전을 나타냈다.
 
제2장. [배경과 기반]에서 저자는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배경과 기반을 탐구한다. 19세기가 마감될 무렵, 정통 마르크주의에 대한 불만의 증가, 그로 인해 열린 정치 공간, 그리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일어난 수정주의 운동의 움직임을 상세하게 다룬다.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와 카우키에 의해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적이고 과학적인 부분을 강조하면서 경제적 힘의 우선성과 계급투쟁의 불가피성에 기반하는 교리를 창조했다. 마르크스주의에게 국가나 정치는 '하부구조'에 의존하는 '상부구조'의 하나로써 사회주의로의 이행과 함께 사라지는 운명일 뿐이었다.(마찬가지로 고전적 자유주의자들 역시 국가나 정치는 '시장경제'의 보조물에 불과했다.) 자본주의 내부 모순의 격화가 결국 체제를 끝장낼 것이라는 과도한 교리는 사회주의 지식인들과 활동가들에게 오직 수동적인 대응만을 주문할 뿐이었다.
 
19세기 후반 베른슈타인이 역사 유물론을 포기하고 대중 정치활동을 주장하면서 제기한 '점진적 사회주의'는 엥겔스, 카우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레닌 등으로부터 '수정주의'라고 비난하였다. 마르크수주의자들은 '사회주의는 경제 발전과 계급투쟁의 불가피한 결과인가, 아니면 민주적 정치 활동과 계급 교차적 협력의 귀결인가?'에 대해 뜨겁게 논쟁을 벌였고 교리와 원칙은 주류 자리를 지켰다.
 
제3장. [성숙해진 민주적 수정주의]에서 저자는 어떻게, 왜 민주적 수정주의가 1차 세계대전 이전 시기 서유럽에서 퍼져 나갔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개별 사회주의 정당들과 국제 사회주의 운동, 더 넓게는 유럽 정치 전반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자 정당, 그리고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은 의회에서 많은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고 의석을 차지하기도 하였지만 원칙을 강조하면서 계급투쟁과 관련한 국가와 의회의 역할, 정부에 대한 참여, 농민 등 노동계급 이외의 계층에 대한 협력, 민주주의, 민족 문제, 부르조아 정당과의 협력 등에 대해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 그에 따라 제1차 세계대전을 향해 가던 시기 동안,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공식적 이데올로기로 남아있었음에도 점점 더 포위 공격을 받았다. 베른슈타인, 조레스, 투라티, 오토 바우어, 칼 레너 등을 중심으로 많은 사회주의자들을 민주적 수정주의로 나아가도록 만들었다.
 
세4장. [혁명적 수정주의, 그리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합]에서 저자는 정치적 담장의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이는 러시아 혁명을 필두로 하는 혁명적 수정주의의 출현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어떻게 그리고 왜 유럽의 우익 인사들이 비마르크스주의적, 민족적 사회주의를 선동하기 시작했는지를 추적한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러시아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데 경제보다는 정치의 우선성을 강조하였고 민주적 수단이 아니라 혁명적 엘리트들의 정치,군사적 노력을 통해 강제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하여 유럽 사회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조루즈 소렐은 '파국을 위한 폭력투쟁의 필요성'이라는 혁명적 수정주의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 전파하였고 이탈리아의 풋내기 무솔로니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편 사회적 통합과 공동체주의를 주장한 민족주의자들은 비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자들과 공통점을 찾아낸다.
 
제5장. [수정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로]에서 저자는 1차 세계대전과 그 결과에 대해 다룬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새로운 정치 지형이 어떻게 미누적 수정주의자들을 완숙한 사회민주주의자로 변화시키는 데 이바지했는지를 보여준다.
 
제1차 세계대전은, 사회주의 정당들이 각 정부의 전쟁을 지지하고 참여하면서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두 기둥인 계급투쟁과 역사 유물론을 처참하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전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사회주의 정당은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점하였음에도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교리와 원칙에 발목이 잡혀 민중들의 욕구를 실현시키지 못했다. 그 사이 민주적 수정주의자들은 정치의 우선성과 공동체주의, 계급 교차적 협력, 민주주의아 민족주의적 과제를 받아들이면서 변화를 꾀한다. 한편, 그 사회주의 정당과 마르크스주의 정당들이 혼란스러운 틈을 이용하여 독일에서는 민족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가, 이탈리아에서는 민족파시스트당이 권력을 차지하게 된다.
 
제6장. [권좌에 오른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에서 저자는 비슷한 요인들이 어떻게 혁명적 수정주의자들을 파시시트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의식있는 민족주의자들을 민족사회주의자로 변화시키는 데 일조했는지 살펴본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현존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 계급 갈등과 사회적 분열의 종식, 사회보장과 경제부흥, 계급 포용과 국민적 정당 구성을 중심에 세워 독일 민중과 이탈리아 민중으로부터 폭발적인 지지와 인기를 얻었다. 민중들은 대신 정통 마르크스주의, 복수 정당체계, 인권, 민주주의, 자유 등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6장은 사회적 양극화와 사회통합의 붕괴라는 현실에서 기존 정치세력이 대안을 민중에게 제시하지 못할 경우 파시즘과 대중독재가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10년 간의 진보세력의 실패가 이명박 독재정권의 등장을 가져왔고 그 결과는 앞으로도 언제든지 그런 가능성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제7장. [스웨덴에서만 가능했던 이유]에서 저자는 모범 사례로 스웨덴을 심층적으로 들여다 본다. 이를 통해 스웨덴에서 사회민주주의적 헤게모니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곳의 사회주의 정당이 사회민주주의적 원리들로 일찍이 전향했다는 점, 그리고 그에 상응해 민족주의적 우파의 의제와 표현들을 선별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낼 줄 아는 능력을 지녔다는 점에 있음을 보여준다.
 
1~6장과 7장은 1980년대 후반 소련과 동구권의 해체와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이라는 현실 앞에서 이념과 비전의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의 진보정당과 세력들이 고민할 지점일 것이다. 특히 21세기 한국 정치사상의 흐름과 2011~2012년 주요 선거에서 진보정당과 세력들이 한국 대중의 요구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수렴해야만이 지지받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제8장. [전후 시대]에서 저자는 20세기 후반 전후 유럽의 안정이 갖는 의미와 본지를 재평가한다. 사회민주주의가 어떻게 그리고 왜 지난 4반세기 동안 자신의 길을 읽어버리기 시작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1950년대 이후 유럽 각국은 마르크스주의 정당 및 사회주의 정당이 정치의 주도권을 잡고 국가의 권력을 이용해 자유주의적 시장 경제에 개입하여 통제하고 사회복지를 주요 정책으로 삼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회복하고 사회 전체의 통합과 공동체를 이루어낸 것이다. 그럼에도 유럽 각국의 사회민주당은 자신들의 옛 강령과 주장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한 채 현실에 화해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들의 혼란스러운 태도와 정책는 20세기 후반 그동안 자신들의 주요 지지층이었던 청년과 빈곤층, 실업자, 소외된 사람들의 지지를 상실했다.
 
제9장. [결론]에서 저자는 다양한 학술 문헌과 현재의 정치 현실에 대해 이 책의 중심 주장이 지니고 있는 함의를 강조한다. 또한 사회민주주의 이야기는 단순히 옛 이야기를 흥미 차원에서 풀어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그것을 제대로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산업화된 민주주의 국가 뿐 아니라 발전의 도상에 있는 세계 여러 나라들 모두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전제 조건임을 주장한다.
 
저자는 사회민주주의를 고유의 색깔을 지닌 이데올로기이자 운동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민주주의적 원리와 정책은 전 유럽에 걸쳐 폭 넓게 받아들여졌으며 유럽이 자랑하는 전후 안정의 토대가 되었다. 특히 정치의 우선성과  공동체주의는 자본주의의 가혹한 영향으로부터 개인과 공동체를 보호하는 정책들로, 그리고 사회적 연대와 안정에 대한 새로운 강조로 이어졌다. 달리 말해 전후 질서는 20세기 초반에 걸쳐 국가 - 시장 - 사회 간에 존재해 왔던 관계를 크게 변화시켰던 것이다.(p.298)" 그리고 사회민주주의가 민족사회주의나 파시즘과 추구하는 바가 일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정적인 특징은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과 '정치적 가능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고 설명한다.
 
 
소련 체제의 해체로 인하여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험이 실패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 가운데 어느 누구 하나 미래의 새로운 이념과 비전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새로운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나에게 막연하게 인식되어 왔던 '사회민주주의'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 나 스스로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 어느 누구도 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보통은 사회주의를 막연하게 '사회주의 + 민주주의'로 인식해 왔는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런 단순한 공식이 실제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핵심적인 개념일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어차피 21세기 자본주의는 엄밀한 의미에서 '본래의 의미의 자본주의'는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역시 성립 불가능한 개념이다. 어떻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합쳐질 수 있나? 
 
또한, 이 책은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의 변화과정에 대해 짧지만 효과적인 공부가 되었다. 대학 시절 단순하게 마르크스 요약 전집, 러시아 혁명사나 유럽 혁명사, 파리 꼬뮌, 로자 룩셈부르크 등을 읽은 정도에 불과했다. 유럽 전역에서 벌어지고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황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세계적인 노력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내게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자신감을 가져도 될 것 같다. 제프 엘리의 <The LEFT>를 읽고 싶었는데 그동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제는 읽을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사회주의에 대한 수용이 상당히 왜곡된 편이다. 일제 강점 이후 러시아와 일본 유학생들을 통해 전달, 수입된 사회주의는 일제에 의한 조선의 멸망으로 이념과 비전을 상실한 한국민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였을 것이다. 반일 민족해방투쟁의 중심 세력이 사회주의자들이었음은 한국 뿐 아니라 중국이나 베트남, 중남미 아메리카,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 사회주의로서의 레닌주의, 스탈린주의는 한국 사회주의자들에게 왜곡되고 편협되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 사회주의 혁명과 북한의 존재는 또 다른 유형으로 다가왔다. 아무튼, 한국에서는 냉전체제와 남북 분단, 군사독재 등으로 인하여 유럽과 달리 사회주의가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논의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를 유력한 대안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개적이고 광범위하게 정치계와 학계, 시민단체에서 논의할 수 없는 현실은 한국사회에게는 또 다른 질곡이다.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의 탈을 쓰고 파괴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한국사회는 사회주의 및 사회민주주의의에 대해서도 성숙한 논의와 토론이 필요하다. 진보정당과 진보적인 의식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한 사회민주주의의 특징, 즉 정치의 우선성과 공동체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과 정치적 가능성에 대한 학고한 믿음은 굳이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가 중심적인 테제나 목표가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사회 전반에 당장 필요한 것들이다. 한국에는 현재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회민주주의적 특징이 미약하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전사회적인 거부감, 각종 공동체의 붕괴, 정치적 가능성에 대한 불신과 부정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굳이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세 가지에 대한 전 사회적인 논의와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한국과 스웨덴, 핀란드, 독일, 프랑스는 다르다. 한국에 맞는, 한국의 역사에, 한국의 현실에, 한국민의 정서와 요구에 맞는 한국식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을 찾아가야 한다.
 
* 책 속의 책 : 칼 마르크스 <자본론>, <공산당 선언>,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 책 속의 문장 :
-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곤란을 겪기 시작했다. 우선 마르크스의 수많은 예언들이 실현되지 않았다. 19세기 말이 되자 기나긴 불황 이후 유럽 자본주의는 새로운 활기를 얻었고, 부르주아국가들은 중요한 정치?경제?사회적 개혁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 19세기 후반 무렵, 마르크스의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던 정당들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중요한 정치 행위자가 되어 있었지만, 정치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해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제공해 줄 수 있는 전략은 그 어떤 것도 없었다. …… 20세기로 들어설 무렵, 많은 좌파들은 난처한 딜레마에 직면했다. 즉 마르크스주의적 기획을 탄생시킨 가장 큰 동기였던 경제적 부정의와 사회적 분열은 그대로였지만 자본주의는 여전히 번성했다.
 
- 물론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화염 속에서 몰락했다. 반면 사회민주주의는 바로 그 이후부터 가장 큰 성공 시대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은 전후의 안정the postwar settlement을 자유주의의 승리로 해석해 왔다. 비록 그것이 다소 순화된 형태의 자유주의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1945년 이후 유럽이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민주주의와 훨씬 관련이 깊다. 전후의 합의는 국가-시장-사회 간 관계의 극적인 변화를 기반으로 한다. 규제되지 않는 시장은 이제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사회적 이익은 이제 사적私的 특권보다 당연히 우선시되었다. 그리고 국가는 '공동의' 또는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경제와 사회에 간섭할 권력(아니, 의무)을 지닌 것으로 이해되었다. 달리 말해 1945년 이후 사람들은 국가를 사회의 보호자로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경제적 우선순위는 종종 사회적 우선순위보다 뒷자리로 밀려났다. 그 결과 오랫동안 공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것들, 즉 잘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적 안정성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졌다. 이 새로운 체제의 기초가 전통적 자유주의나 마르크스주의 교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만한 근거는 거의 없었다. 새로운 체제가 정말로 닮았던 것은 1920년대부터 1940년대에 걸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옹호했던, 그리고 (그보다는 덜하지만) 파시스트들과 민족사회주의자들이 옹호했던 원칙과 정책이었다.
 
[ 2011년 5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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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경남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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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서평의 제목을 '사랑은 두뇌를 키운다'에서 '작지만 소중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해주다'로 변경했다.
어제(7일) 저녁 독서모임에서 이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 내가 책에서 얻은 것을 그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책 값은 무지 비쌌지만 그나마 리프틴은 내가, 그리고 우리가 행하거나 느끼는 소소한 것들에 대해 합리적, 이데올로기적, 공감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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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프라인 독서모임에 참여한 후 <행동경제학>, <지도로 보는 중동이야기>, <제국은 무너졌다>에 이어 네 번째이자 올해 마지막 교재다.
독서모임 교재라는 부담감을 크게 느끼지 않고 일주일 정도 만에 완독했다.
(아마, 저자가 전에 발간한 책 대부분을 읽었기 때문에 책장을 넘기기 수월했으리라...)
 
이 책에서 저자는 인류의 공감적 특성이 진화해 온 과정을 들여다보고, 역사적으로 공감이 우리의 여정을 어떻게  꾸려왔으며 앞으로 우리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 살펴봄으로써 인류문명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틀을 제시하려고 한다.
 
몇 개 단락으로 요약하면,
1. 인간이라는 종의 본성은, 서구의 역사에서 종교를 비롯한 인문사회과학이 정의해온 ’물질’, ’타락’, ’탐욕’, ’경쟁’, ’이기심’과 ’공격성’이 아니라 ’이해’, ’공감’, ’협력’과 ’이타성’이며,
2. 인류의 역사가 진보, 발전하는 과정은 엔트로피가 증가함과 동시에 ’공감’이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고(신화적 의식 -> 신학적 의식 -> 이데올로기적 의식 -> 심리학적 의식)
3. 21세기에는 3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공감의 시대’로 전환하면서 등장하는 새로운 의식은 에너지 민주화와 분산 자본주의, 생물권 정치 등의로 모든 생활 방식과 경제 기반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발간한 모든 책 - <노동의 종말>, <육식의 종말>, <소유의 종말>, <수소혁명>, <유러피안 드림> -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저자는 15년 동안 인류사회의 주요한 환경과 정세, 흐름을 고찰한 후 ’공감’을 자신의 결론으로 내린 셈이다.
이 책이 전세계의 과학자들과 인문학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으면 아마도 20세기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이어 현대 인류사에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21세기 세계적인 내노라하는 학자들 중에서 아마 손꼽히는 공부량을 자랑할 것이다.
저자는 ’공감의 시대’를 풀어내기 위해 생물학과 인식과학, 두뇌과학에 이르는 자연과학과 더불어 아동발달학과 사회심리학, 철학과 종교학, 문학 등의 인문학, 그리고 경제사와 경제사상까지 학문 분야 대부분을 거론하고 있다.
토머스 홉스, 존 로크, 제러미 벤담, 프로이트, 윌리엄 페어베언, 하인츠 코후트, 도널드 위니콧, 에리히 프롬, 루소, 괴테, 마르크스와 엥겔스, 도프토예프스키, 제인 오스틴, 석가모니에 공자까지...
인류의 고전과 지성을 모두 망라한다. 

우선, 저자의 관점과 제안에 ’공감’하게 된다.
지구에서 인류가 탄생한 이후 수 천년 동안 이어져온 ’동종상란의 비극’과 17~18세기 이후 산업사회에 들어서면부터 시작된 생물종에 대한 무차별한 살상에 대해 극복할 수 있는 철학적 기초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리스 철학 이후 서구 지성사와 사상사에 꾸준히 이어져 온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서구의 학자가 부정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또한 서구사회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분석적’인 문제해결 방식, ’A 아니면 B’식의 극단적 사고방식, ’피아’를 가르는 대결의식을 지양하고 관계론적 관점에서 개인과 집단을 생각하는 것에 크게 기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자의 담론이 전세계인들에게 ’공감’을 얻으려면 ’공감’에 대한 좀 더 분명한 정의와 개념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저자는 책 속에서 ’공감’이나 ’공감의식’에 대해 엄밀하게 정의하지 못한다. 
여러 학자들의 개념에 대해 소개하다가 ’우애적 유대감’, ’동료의식, ’애정’, ’친밀함’, ’애착’ 등 ’공감’의 성격이나 특성으로 대신할 뿐이다.
’공감’에 대한 여러 정의와 의견은,
- E. B 티치너 :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의 정서적 상태로 들어가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느끼는 것
- 마틴 L. 호프먼 : 자신의 상황보다 다른 사람의 상황에 더 잘 맞는다고 느끼게 만드는 심리적 과정의 엮임.
-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삶의 일부가 되어 의미 있는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심리적 수단
저자가 단어를 ’언어학’적이거나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하지 않기 때문에 책을 모두 읽은 후에도 ’공감’이나 ’공감의식’이 구체적인 정의나 개념보다 상식적인 느낌 수준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저자는 ’공감’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가는데 있어 ’공감’에 내재되어 있는 본질적 속성, 즉 ’상대적이고 상호적이고 관계적인’ 사고방식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이 그의 한계일 수 있다.
단순하게 정리하면, 저자는 인류사상사에서 인간의 본성이 지금껏 ’악하다’라고 정의,전제하고 문제를 다루어 왔는데 이제 보니 ’선하다’고 정의,전제하고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800쪽에 걸쳐 설명하고 정리한 내용을 다르게 해석하여 접근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은 원래 ’백지’ 상태이거나 ’혼합’ 상태인데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회를 이루고 관계를 맺는 가운데 ’악’한 쪽이나 ’선’한 쪽이 더 주요한 측면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즉, ’선과 악’, ’경쟁과 협력’, ’사익과 공익’, ’개인성과 집단성’, ’이기심과 이타심’, ’공격성과 평화본능’이 인간 본성의 동전의 양면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동양적 철학과 사고방식이고 21세기에 인류가 ’공감’해야 할 사상적 조류이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모든 저서와 주장에 줄곧 ’자본주의 경제방식’을 당연하고 필연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실제로 ’자본주의 체계’만으로는 인류에게 주어진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를 전면적으로 폐기할 수는 없을지라도 ’피에르 라비’식, 그리고 ’라다크’식의 공생과 생명중심의 소규모 자립경제가 지구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자리잡는 것이 ’자본주의’를 분산시키고 정화시키고 미래지향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 본문 주요 문장
- 애정의 변수로서 양육의 일차적 기능은 아기와 엄마의 빈번하고도 친밀한 신체 접촉을 보장해주는 기능이다. 사람이 젖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p.28 해리 할로)
- 내가 나 자신에 관해 알아낸 것이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너에게서 나의 일부를 확인하고 너는 내 안에서 너의 일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p.55, 찬궉번)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가부장적 심리학이어서 여성의 본성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고, 실제로도 그 자신이 그렇게 고백했으며, 이런 이유로 그는 엄마와 아기의 관계의 진정한 의미, 즉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p.67, 애슐리 몬태규)
- 아이가 한 인간으로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그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느낄 대, 아이는 성숙을 멈추고 비정상적인 관계를 만들면서 강박관념, 편집증, 히스테리, 공포 등의 병리적 증상을 보인다. 이런 모든 행동은 버림받았다는 느낌에서 나온다. (p.73, 윌리엄 페어베언)
- 아기는 엄마의 뱃속에서 만들어지지만, 하나의 개인은 관계를 통해 만들어진다.... 즉, 개인이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개인을 만든다.(p.77, 도널드 위니콧)
- 인간의 아이나 동물 새끼들은 유별날 정도로 호기심이 많고 묻기 좋아한다. 그래서 보통 애착 대상에서 자주 떨어지려 한다. 이런 의미에서 탐구적 행동은 애착행동과 정반대이다. 건강한 개인이라면 보통 이 두 가지 행동이 번갈아 나타난다. (p.90, 존 보울비)
- 적응을 잘하고 신뢰를 주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가 되려면 안전한 느낌을 갖고 독립심을 갖추고 다른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공감해주는 감성이 서툰 부모는 결코 그런 아이를 만들 수 없다. 일관된 부모상이 없는 아이는 시작부터 의미있는 사회관계를 수립할 수 없다.(p.91)

- 타자가 타석에서 삼진아웃을 당해서 답답해하는 모습을 볼 때, 뇌의 ’거울뉴런’은 그 타자의 스트레스를 시뮬레이션한다. 관중은 저절로 타자와 공감한다. 관중은 타자가 느끼는 것을 그대로 느끼기 때문에 그 기분을 알 수 있다. (p.104, 마르코 야코보니)
- 유아발달의 각 단계에서 보다 복잡한 몸짓을 활용하는 의사소통의 유형은 거울 뉴런을 자극하고 보다 정교한 공진회로를 만들어 가장 복잡한 형태의 공감적 커뮤니케이션, 즉 언어를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다시 말해 언어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p.128)
- 우리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의 전체로 작동하는 생화확적 신경 규제 회로라는 복잡한 편성체계이다. 결국, 정신 현상은 일정한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유기체의 상호작용이라는 맥락에서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p.184)
- 자유는 인생의 충만한 잠재력을 최대화할 수 있는 것이고 충만한 삶이란 우정과 애정과 소속감의 삶이며, 보다 깊고 보다 의미 있는 개인적 경험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 가능성을 찾는 삶이다. 공감적 기회를 보장해 주고 격려하는 사회에서 양육되고 성장할 때 인간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p.197)
- 확장된 공감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평등한 위치에 올려놓는 유일한 인간적 표현이다. 다른 사람과 공감할 때 구별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고군분투를 자신의 것처럼 동일시하는 바로 그런 행동이 평등 의식의 궁극적 표현이다.(p.201)
- 공감의식은 존재와 당위의 간극을 극복한다. 공감적 행동은 실체적이고 경외감으로 차 있으며 이성에 호소한다. 공감 의식은 설명적이면서도 동시에 규정적이다. 실제의 모습과 마땅히 그래야 하는 모습 사이에 어떤 구분이 없다. 그 둘은 하나이고 같은 것이다. (p.221)

- (문자 이전의 선사시대) 구두문화의 생활은 공개적이어서 사생활은 별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공감적 표현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친밀함이란 개념을 사실상 존재할 수 없었다. (p.256)
- 문자언어는 일반적으로 수십만 개의 어휘를 갖는 것이 보통이다. 그만큼 문자언어는 느낌이나 마음 상태나 관계 등을 포함하여 현실의 모든 면을 묘사하는 용어를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제공한다. 문자언어는 거대한 은유와 용어의 도서관이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을 설명하고 다른 사람의 느낌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p.257)
- 커뮤니케이션이 개성화되고 표현적이 될수록 공감도 더욱 확장되고 보편화되기 때문에, 공감적 감수성의 진화과정에서 문자 문화의 탄생은 하나의 분수령이 된다.(p.259)
- 공감의 물결이 처음 태동한 것은 수메르,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등 문명의 탄생이라는 산고가 초래한 인간의 깊은 고통 속에서였다. (p.266)
- 관개문명(이집트,바빌로니아,인더스,황하등)의 흥망성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몰락을 설명할 수 있는 많은 해석이 가능하지만, 무엇보다 토양의 염분과 퇴적 작용의 변화에서 비롯된 엔트로피 수치의 증가를 가장 유력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p.276)
- 그리스도 이야기는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감정적인 평등의 스토리이다.(p.292)
- 르네상스 시대의 부모들은 아이를 티없이 맑고 순수하고 죄가 없는 존재로 보았다. 반면에 프로테스탄트 부모들이 보여 준 새로운 차원의 야만성은 당시의 혼란스러운 사회적 분위기에도 많은 원인이 있다.... 그들은 아이들을 집안에 들어앉은 악의 대행자라고 경계하며 심지어는 미워하기까지 한다. (p.358 로렌스 스톤)
- 민족국가는 결함도 많았지만 공감의 감수성을 크게 확장할 수 있는 온실이 된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p.376)
- 사해동포주의적인 세계관과 보편적 공감의 감수성을 누구보다 더 치열하게 몸으로 직접 구현한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괴테를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 200여 년전에 괴테가 가졌던 세계관과 자연과 인간 의식의 궤적에 대한 견해는 21세기의 매우 국제화된 세상을 사는 요즘의 밀레니엄 세대의 견해와 비교해도 스케일과 깊이에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p.385)
- 돈키호테는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테마를 보편적으로 표현해 낸 최초의 설화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돈키호테>는 하나의 문학 장르로서의 ’소설’을 만들어 냈다. (p.391)

- 기독교 신앙이 초월성으로 향하는 길목을 열여주고 이성이 계몽철학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면, 낭만주의자들에게는 상상력이 그 역할을 맡았다.(p.427)
- 낭만주의자들의 여정은 인간 본성의 뿌리를 찾는 여정이었다. 그들은 그런 본성의 핵심으로 존재의 감정을 생각했고 그 감정을 모든 생명과 연결되고 단합된 느낌으로 정의했다. 그들이 찾아낸 것은 ’공감 충동’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오류는 그런 충동이 문명과 거리를 둘수록 더 잘 보존되리라고 믿은 점이었다. (p.456)
- 1848년 3월 혁명은 유럽사회에서 유일한 대륙적 규모의 혁명이었다. 혁명은 짧은 수명과 함께 실패로 끝났지만, 이후의 반세기 동안 유럽과 세계 대부분의 생활상을 산업적 방식에 어울리도록 재편하게 될 새로운 정치적 담론과 행동 강령을 세웠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었다.(p.459)
- 석유로 가동하는 내연기관과 함께 전기가 발명되면서 새로운 에너지-커뮤니케이션 체계가 탄생했고 인간의 인식이 또 한 번 비약하는 순간이었다. 세계는 바야흐로 ’심리학적 의식의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다.(p.462)
- 상업적 교환은 사회적 신뢰를 먼저 세워 주는 공감의 확장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상업적 교환의 공리적이고 도구적이고 착취적인 본성은 바로 그것의 작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자본을 고갈시킬 수 있고 또 실제로도 고갈시킨다. 글로벌 경제가 붕괴된 직후에 지금 미국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p.541)

-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대통령 후보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1위는 ’공감’이었다.(p.558)
- 일부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 최소 수준의 경제적 요건 이상으로 부의 추구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p.621)
- 서열을 하찮게 여기고 네트워킹 방식으로 사람이나 세상과 관계를 맺고 협력이 체질화되어 있고 자율과 배척보다는 접속과 포함에 관심이 있고 인간의 다양성에 감수성이 강한 밀레니엄 세대는 역사상 가장 공감적인 세대가 될 확률이 크다. 분산적이고 협동적이고 비위계적인 사회가 곧 공감 사회이다. (p.674)
- 삶의 질을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두 가지 차원에서 협력적 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는 민간 차원의 공동체 참여이고 또 하나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도록 개인의 세금을 공적 창의력과 서비스를 추진하는데 투입하겠다는 의지이다.(p.680)
- 인터넷은 개인에게 ’진정한 자아’를 연기할 기회를 주어 연극적 의식에 참여할 수 있는 가상의 무대를 제공한다. 현실적인 자아나 이상적인 자아를 연기하는 것처럼 진정한 자아를 연기하는 것은 하나의 역할이자 평생의 역할이다. (p.718)
- 생물과 지구화학 내용물과 주기 사이의 꾸준한 상호작용과 피드백은 통합 체계로 작용하면서 지구의 기후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여 생명을 보존해 준다.(p.739) 

[ 2010년 12월 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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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한담 법정 스님 전집 5
법정 지음 / 샘터사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산방한담(山房閑談)]. 말 그대로 산 속에 있는 방 속에서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다는 의미다.
 
<아름다운 마무리>에 이어 법정스님의 두 번째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서점에 나온 스님의 책 중에서 초창기에 발간된 책이다.
스님은 1970년대 후반 조계산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佛日庵)이란 암자를 지어 홀로 20년을 정진하셨는데 이 책은 불일암에서 썼던 글들을 모아 발간한 책이다.
특히, 1978년 ~1983년까지 신문과 잡지의 고정칼럼에 내보냈던 글을 주로 모았다.
1983년 5월에 초판을 발행하였는데, 2001년 20여년 만에 개정판을 내신 것이다.
(그 당시는 스님이 말하시는대로 "암울했던 시절"이었고 "우리가 숨도 크게 쉬지 못하면서 겪어온" 시대였다.)
 
이 책에는 자연 속의 산천초목과 작은 동물들, 흐르는 물과 자갈을 벗으로 삼아 그들로부터 하나하나 배우는 스님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리고 불교의 경전 속에 들어있는 석가모니의 말씀과 그리슈나무르티 등의 성인들의 글과 말을 빌려 지구상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신다.
스님은 불교 경전이 어떻다고 교리가 어떠하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이 이승의 고통에서 헤어나고 성불하기 위해 ’출가’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땅의 사람들, 민중들, 백성들, 민족들이 처해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려 하지 않는다.
그 말씀의 방향이 도를 이야기하거나 부처를 이야기하거나 종교를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방향잃은 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종교인이 취해야 할 태도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한다.
삶의 구석구석, 생활 한가지씩, 마음가짐 하나하나, 정책과 제도 하나하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고 노력하고 변화시키려 하는지 이야기하실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30년 전에 하신 이야기임에도 문장 한 줄, 글 한 묶움이 묵직한 바위처럼 내 마음 속에 깊숙히 자리잡는다.
나의 생각과 태도, 관점과 방식, 노력과 행동에 채찍질이 느껴진다.
’자기다운 얼굴을 가꾸어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자기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자기 얼굴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을 가리켜 ’이력서’라고 한다고...
’뒷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그리고 뒷모습을 볼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한다’
그 이유는 앞모습은 허상이고 뒷모습이야말로 실상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수행은 없는 것을 보태는 일이 아니고 텅 비우는 노력이다.’
그 이유는 텅 비우기만 하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두루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으뜸가는 수행’이라고...
 
스님은 고전과 경전, 훌륭한 문학과 예술이 왜 인류에게 중요한 것이고 어떻게 현대 인류의 삶에 방향을 제시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한국의 학살’,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의 ’七不衰法(일곱 가지 쇠망하지 않는 가르침)’, 마하마트 간디의 자서전, 원오(圓梧) 극근(克勤)의 어록 ’생야전기현(生也全機現), 사야전기현(死也全機現)’, [선종사(禪宗史)], [육조단경(六祖壇經)], [광장], 사마천의 [사기(史記)], 크리슈나무르티의 [삶의 진실에 대하여], [삼국유사], [법구경(法句經)], [숫타니파타], 토머스 머튼 신부의 [관상 기도]와 [칠층산(七層山)], [일야현자경(一夜賢者經)], 서산대사 휴정의 [선가귀감(禪家龜鑑)], [장로게(長老偈)], [四分律(사분율)], [천수경], [금강경], [열반경], 장승업의 ’고사세동도(高士洗棟圖)’, 빅터 프랭클의 [인간의 의미 탐구], 버스카글리아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생야전기현(生也全機現), 사야전기현(死也全機現) : 삶에 철저할 때는 털끝만치도 죽음 같은 걸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죽음에 당해서는 조금도 생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된다.
 
대장경 중 < 일야현자경(一夜賢者經) >

과거를 따라가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
한번 지나가버린 것은 버려진 것
또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현재의 일을
이모저모로 자세히 살펴
흔들리거나 움직임 없이
그것을 잘 알고 익히라. 

오늘 할 일을 부지런히 행하라.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 수 있으랴
진실로 저 염라왕의 무리들과
싸움이 없는 날 없거늘
밤낮으로 게으름을 모르고
이같이 부지런히 정진하는 사람
그를 일러 참으로 일야현자
고요한 분 성자라 한다. 

지나가버린 것을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는 것을 동경하지 않으며
현재에 충실히 살고 있을때,
그 안색은 생기에 넘쳐 맑아진다.
오지 않은 것을 탐내어 구하고 

지나간 과거사를 슬퍼할 때
어리석은 사람은 그 때문에
꺾인 갈대처럼 시든다. 
 
책 속에 [옛 절을 찾아서]란 챕터를 보면 8개의 절에 대한 사연과 설명이 나타난다.
송광사, 해인사, 통도사, 운문사, 쌍계사, 화엄사, 대흥사, 직지사...
나도 건축과라는 대학 전공 출신이라고 20년 전쯤에 ’사찰기행’ 모임에 참석하여 여러 절을 둘러보았다.
대학에 재입학하여 건축계획과 설계, 고건축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내 나름대로 책도 좀 읽어보고 두서없이 수 십, 수 백장의 사진도 찍어대던 때였다.
운문사와 화엄사는 그 때 돌아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이 이야기하는 그런 절의 이력이나 구체적인 경험이 없었고 ’관광’처럼 스쳐 지나갔기에 내 뇌와 가슴 속에는 그다지 남아있지 않다.
최근 올 겨울이 지나고 나면 선배와 함께 다시 그 절을 찾아 우리의 기억과 깨달음을 얻어보기로 했다.

스님 말씀이 "제정신을 차리고 살려면 무엇보다도 정신을 집중하고 몰입하는 일이 필요하다. 구개신기산(口開神氣散) 설동시비생(舌動是非生), 입을 열면 신기로운 기운이 흩어지고 혀를 함부로 놀리면 시비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올 한 해 내가 명심하고자 하는 문구다.
 
* 책 속의 문장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람을 대하거나 사물을 보고 인식하는 것은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알아버린 대상에서는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기 어렵다.
아무개 하면 자신의 인식 속에 들어아 이미 굳어버린 그렇고 그런 존재로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건 얼마나 그릇된 오해인가..
사람이나 사물은 끝없이 형성되고 변모하는 것인데.... .(p.17)

집에서 몸만 빠져나온 것을 가리켜 출가라고 할 수는 없다.
온갖 집착과 모순과 갈등과 타성의 집에서도 미련없이 빈손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p.66)  

佛, 法, 僧울 삼보(三寶)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삼보 사찰이 있는데 통도사와 해인사와 송광사를 가리킨다.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불보사찰이라 하고,
해인사에는 부처님의 설법을 판각한 대장경판이 봉안되어 있어 법보사찰이라 하며,
송광사는 부처님의 추가제자인 고승 대덕이 가장 많이 배출 되었다고 해서 승보사찰이라고 부르게 된것이다.(p.80)
중생이 어려운 재난을 당해 갖은 핍박을 당할지라도 관세음보살의 묘지력이 세상의 고통을 구한다.
묘지력이란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지혜와 사랑이다.
그러면, 관세음보살이란 누구인가?
지혜와 사랑을 구현하고 있는 현장의 사람, 바로 그들이다. (p.87)
 
현대의 우리들에겐 자기 언어가 없다.
날마다 우리들 귓가에 대고 호소하고 설득하는 정치인이나 경제인 또는 연예인들이 뱉어버린 말을 걸르지도 않고 그대로 입에 담고 있다.
이 일 저 일에 팔리면서 쫓기느라 자기 나름대로 생각할 여유가 없다.
자기 사유(思惟)를 거치지 않으니 자기 언어를 지닐 수 없게 된 것이다.
정신을 집중하려면 우선 불필요한 말을 안 해야 한다.
’구개신기산(口開神氣散) 설동시비생(舌動是非生)’, 입을 열면 신기로운 기운이 흩어지고 혀를 함부로 놀리면 시비를 일으킨다. (p.129)
 
에리히 프롬 왈 "생활궤도가 불쾌하고 음울한 자들, 육신은 살아 있으나 정신은 죽어있는 자들,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껄이고 있는 자들, 생각하지도 않고 상투적인 의견을 주장하고 있는 자들은 나쁜 친구이고 피해야 한다."
타인이 아니라 내 자신 속에 이런 요소가 있다면 나 또한 나쁜 친구다. (p.131)
 
일을 할 바에야 유쾌하게 하자. 그래야 능률도 오르고 피로도 덜하고 살아있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중략)
일이 즐거우면 인생은 낙원이요, 일이 의무일 때 인생은 지옥이다.(중략)
진실한 내가 움직이고 있을 때는, ’나’를 잊어야 한다. 즉, 무아의 경지요, 창조적인 망각의 상태다.(중략)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일에 구애받지 안는 무애의 경지. 이런 때 일에나 삶에 그릇된 실수란 있을 수 없다.(p.135)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장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p.143)
 
사람은 순간순간 목숨을 소모하면서 살아간다. 기분 나쁜 표현이지만, 묘지나 화장터 쪽에서 보면 순간순간 죽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순간순간 사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일을 할 줄 알아야 하듯이 쉬고 놀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들이 여가를 어떻게 보내느냐는 문제는 곧 삶의 질을 결정 짓는다.(중략)
우리가 못사는 것은 경제적인 빈곤에만 그 원인이 있지 않다. 살 줄을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p.149)
 
[금강경] 중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은 모두가 허망한 것.
그러니 제상과 비상, 즉 현상과 본질을 함께 볼 수 있다면 비로소 우주의 실상을 바로 보게 될 거라는 뜻이다.
표현을 달리하면,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바로 인식하려면 드러난 단면만 보지 말고 그 배후까지도 함께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p.272)
 
사람을 본질적으로 감화시키는 것은 그럴듯한 말에 있지 않고 몸소 움직여 보이는 행동에 있다.
좋은 말을 한다는 것과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p.283)
 
일장일단. 무슨 일에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고, 선이 있으면 그 그늘에 악도 있게 마련이다.
흔히 우리들은 좋은 쪽만 취하고 좋지 않은 쪽은 모른 체하거나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고 이기적이다.
대가 없이 거저 받아 쓸 수 있는 게 어디 있단 말인가.
그건 작건 간에 값을 치르지 않고 공짜로 지하거나 누릴 수는 없다. (p.288)
 
길을 떠나는 것은 새삼스레 구경거리를 찾아서가 아니다.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관계의 울타리에서 떠나봄으로써 자신의 실체를 보다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낯선 고장의 인정이나 풍물을 통해 가려진 내면의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p.291)

텅 빈 속에서.. 
우리는 한평생을 두고 수많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 계절이 내린 고마운 뜻을 몇번이나 우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수 있었던가. 
어디 계절만이겠는가.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날에 대해서 또는 순간순간에 대해서 그 의미를 
몇 번이나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돌아오는 봄과 여름과 가을, 겨울을 우리는 기약할수 없다. (p.337)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그가 하는 행위에 의해 인간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비인간으로 타락할 수도 있다.
오로지 인간다운 행위에 의해서 거듭거듭 인간으로 형성되어 간다.
그러면 인간다운 행위는 무엇일까? 우선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타인과 함께 나누어 가져야 ’이웃’이 될 수 있고, 인간적인 관계가 이루어진다.
사람은 독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관계를 통해서만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들의 삶이 곧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관계에 의존해서 존재하고 우리들의 관계는 인간을 심화시킨다. (p.343) 

 [ 2010년 1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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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영국사 - 아서 왕에서 엘리자베스 2세까지 이야기 역사 9
김현수 지음 / 청아출판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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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떤 의도와 성격을 가지고 영국에서 민주주의가 만들어졌는가?
 
저자는 대학 강단에서 ’영국사’란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고 했다.
저자가 학생들에게 ’영국사’를 이야기할 때 강조하는 바가 "민주주의의 시작이 영국이기에 민주주의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영국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있다"는 것...
현재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자신들의 국가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경제방식이나 종교, 언어, 문화를 떠나서 인류에게 ’최고의 가치’로 자리잡은 셈이다.
일반적으로 학계나, 정치계, 언론계 등 대부분의 주류 세력에서 "최초로 민주주의를 도입한 나라가 영국"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저자는 ’어떤 의도와 성격을 가지고 처음 민주주의가 만들어졌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인류가 향후 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관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에 저자는 유물과 기록이 남아있는 선사시대부터 영국의 역사를 설명해 나간다.
특히 저자는 이 책에서 영국의 왕들을 중심으로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서술하면서 영국사를 펼쳐나간다.
영국 선주민의 흔적인 스톤헨지, 최초의 기록상 영국으로 들어온 켈트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비롯한 로마의 집정관 및 황제들의 브리튼 원정과 속주화, 초기 기독교의 전래, 로마군의 철수와 게르만의 침입과 정착, 데인족의 출현과 잉글랜드 왕국 수립, 브리튼을 정복한 노르망디공 정복자 윌리엄, 플랜태저넷 왕조, 랭커스터가, 요크가, 튜더 왕조, 엘리자베스 1세, 올리버 크롬웰과 청교도 혁명, 스튜어트 왕조, 하노버 왕조, 빅토리아 여왕, 윈저 왕조, 마지막 여왕인 현재의 엘리자베스 2세까지...  

- 정복자 윌리엄 : 노르망디 공국의 윌리엄이 브리튼을 정복한 후 브리튼은 섬나라 문화의 틀을 벗어나 ’유럽대륙을 품은 섬나라’로 미래의 영국 역사의 첫 장을 열게 된다.
- 헨리 1세 : 잉글랜드와 노르망디를 통합하고 왕국의 행정체계를 제대로 잡아나갔고 순회법정제도를 통해 국가사회의 틀을 정착시켰다.
- 헨리 2세 : 잉글랜드 최초의 왕조인 플랜태저넷 왕조를 세웠다.
- 사자심 리처드 1세 : 아버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왕관을 썼으나 무모한 십자군 전쟁 도중 귀환하다가 오스트리아에 볼모로 붙잡히기도 했다. 
- 존 왕 : 아버지를 배신하고 왕위에 올랐으나 프랑스 필립 2세와 전쟁으로 상당한 영토를 잃었고 계속되는 실정 끝에 귀족들의 요구에 순응하여 ’마그나카르타(대헌장)’을 승인했다.
- 에드워드 1세 : ’모범의회’를 소집했고 봉건적 계급질서 내에서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법령을 제정했다. 이 과정에서 잉글랜드의 관습법을 명확히 규정하여 ’잉글랜드의 유스티니아누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 에드워드 3세 : 어머니가 아버지를 탄핵하여 왕위에 오른 그는 프랑스 왕실의 적통이 끊긴 것을 빌미로 삼아 외척 혈통인 자신이 프랑스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백년전쟁’을 일으켰다.
- 헨리 6세 : 강보에 쌓인 왕은 샤를 7세와 전쟁을 끝으로 ’백년전쟁’이 끝나고 그 결과 칼레를 제외한 프랑스 영토는 모두 빼앗겼다. 이후 귀족들간의 ’장미전쟁’이 일어나면서 포로로 잡힌 후 살해당한다.
- 요크 왕조 에드워드 4세 : ’장미전쟁’의 승리로 왕위에 올랐고 그의 아들 에드워드 5세는 정치적 제물이 되었다.
- 리처드 3세 :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그는 ’장미전쟁’의 대미를 장식하며 헨리 튜더와 전투 중 사망한다.
- 튜더 왕조를 연 헨리 7세는 여러 반란과 내분을 진압하면서 왕국을 안정화시켰다.
- 영국형 종교개혁을 실시한 헨리 8세 : 그는 원래 독실한 카톨릭교도였으나, 왕비가 후세를 낳지 못하자 합법적으로 왕비와 이혼하기 위하여 영국국교회(성공회)를 만들어내고 수도회의 재산을 몰수했다.
- 영국국교회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에드워드 6세,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에 이르러서였다.
- 엘리자베스 1세는 종교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고 당대의 최강국인 스페인을 물리치면서 대영 제국의 기초를 닦아 놓았다.
- 엘리자베스 1세 사후 ’왕권신수설’을 신봉한 제임스 6세부터 찰스 1세, 클롬웰의 청교도 혁명, 왕정복고를 통한 찰스 2세와 제임스 2세를 거치면서 윌리엄 3세 때 ’권리장전’으로 시민권과 타협하는 새로운 정치체제가 열린다.
- 조지 1세로 시작한 하노버 왕조는 부의 축적이 정치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정책을 폈으며, 그 결실은 빅토리아 여왕 통치기에 대영 제국의 번영을 가져왔다.
-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면서 대영 제국의 위상은 점차 스러지게 되었다. 

현재 영국 왕실의 존재는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로 설명할 수 있다.
 
서기 1042년 잉글랜드 지역의 ’참회와 에드워드’로 탄생한 왕정은 오늘날 엘리자베스 2세에 이르기까지 약 1,000년이 채 되지 않고 명목상 왕이 아닌 통치자로서의 왕정은 ’명예혁명’이 일어난 1688년까지 약640년 정도가 된다.
그 사이 영국의 왕정은 프랑스, 덴마크, 노르웨이, 스코틀랜드, 스페인, 독일의 왕족까지 이어지는 아주 복잡한 핏줄이 얽혀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왕족과 귀족이 얽히고 설켜 서로 협잡하고 배신하고 죽고 죽이는 ’피의 왕위 계승’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저자의 영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니 영국의 입헌군주제, 영국식 민주주의, 영국식 의회제도는 영국민중들이 피흘려 이룩한 결실이 아니라 왕과 귀족, 자산가들의 대립과 타협의 산물이라는 측면이 더 강하다고 판단된다.
영국이 1688년 이래 지금까지 ’영국식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엘리자베스 1세부터 시작하여 빅토리아 여왕 이후까지 지속된 ’최초의 산업혁명’과 ’해가 지지 않는 제국주의’를 통한 경제수준으로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 ’영국식 민주주의’의 진정성은 영국의 경제수준이 현재보다 더 떨어진 이후에 검증될 것이라 전망해 본다.
 
이 책은 왕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영국사를 재미있게 보여주어 아주 유익했다.
다만, 각각의 이야기의 배경과 정치경제적, 그리로 사회문화적인 의의와 연관성을 분석해주지 않아 ’중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를 읽는 느낌이었다.
이 책이면 세계사 시험에 좋은 성적은 올릴 것 같은...ㅋ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개인적으로 영국에 가야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과거에 업무차, 또는 여행차 외국에 갔을 때마다 매번 미리 준비하지 못한 채 현지에 도착하여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돌아오기만 했다.
이번에는 나름대로 현지에 대해 미리 알고 가고자 하는 마음에서 책을 몇 권 준비해서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왕 가는 김에, 내가 살아 생전에 언제 다시 그 나라를 갈 수 있을까 생각하니 의욕도 조금 생긴 것 같다.
미리 공부하는 것도 단순히 여행이나 관광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특징과 이슈들을 알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늘 관심이 가는 분야, 즉 주택정책이나 복지정책, 문화 등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가고자 한다.
 
이 책은 그런 목적으로 읽은 첫 번째 책이다.
특별히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책을 누구에게 소개받지 못해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구입한 책이다. 

[ 2011년 12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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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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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 준 책...
 
이 책은 지난 7월에 법정스님의 저서 < 내가 사랑하는 책들 >에 소개된 책 50권 중 <소로우의 무소유 월든>,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 <오래된 미래>, <무탄트 메시지>, <성장을 멈춰라>에 이어 여섯 번째로 읽은 책이다.(과선배가 선물해 준 책...^^) 
 
2002년 프랑스 파리의 서점가에서는 독특한 책 한 권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던 정신과 의사가 행복의 참된 의미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는 소설로,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파리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였다.
늘 불안한 심리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어떤 심리학적 설명보다 한 편의 이야기가 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환자들을 진료하며 얻은 경험과 생각들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결과는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수많은 프랑스 독자들이 를로르의 소설에 매료당했고,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등 12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각 나라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물질적인 풍요에서 정신적인 만족이 행복의 일반적인 기준이 되어가는 시대에 이 책은 현대인의 복잡한 심리의 핵심을 짚어내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 줄거리 -
’꾸뻬’라는 이름의 한 정신과 의사가 있었다.
그는 파리 중심가 한복판에 진료실을 갖고 있었고,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쓰고 다니는 원형의 작은 안경은 그를 매우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했으며, 무엇인가에 심사숙고할 때마다 습관처럼 만지작거리는 짧은 콧수염은 은근한 신뢰감을 심어주었다.
세상 어느 곳보다 풍요로우면서 정신과 의사가 가장 많은 이 도시에서 그는 의사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으며, 능력과 미모를 겸비한 애인도 있었다.
그의 진료실은 언제나 상담을 원하는 이들로 넘쳐났다.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친절하면서도 자극적이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를 찾는 여자,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주장하는 남자, 사랑의 상처를 입어 더 이상 미래를 내다볼 수 없게 된 점성가…….
어느 날 ’꾸뻬’ 씨는 자신 역시 행복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마음의 병을 안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어떤 치료로도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꾸뻬’ 씨는 진료실 문을 닫고 전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지 알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환자들을 치료할 행복의 비밀을 찾아서....
 
주인공이 여행 중에 배운 행복에 대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행복의 첫 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2.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4.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5.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다.
6.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7.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8. 불행은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9.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10.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11.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12. 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더욱 어렵다.
13.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14. 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15.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16. 행복은 살아 있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것이다.
17.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18. 태양과 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
19.
20.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21.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
22. 여성은 남성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더 배려할 줄 안다.
23.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저자가 ’행복’에 대해 특별한 학문적인 접근이 아니라 일상적인 사람들의 삶과 고민, 자신의 관점에서 느끼는 바를 정리하였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쉽게 공감이 가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중심이 없이 나열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누군가 ’행복’하기를 원할 때, 다양한 방식과 방법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최대의 장점이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2011년 12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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