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
노무현 지음 / 학고재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오마이뉴스 오연호 기자가 발간한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에 이어 노무현 전대통령이 자신의 생애와 대통령의 역정에 대해 직접 초고를 쓴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노무현 전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쓴 글을 토대로 하여 만들어졌다. 준 회고록 성격의 글로써 노 전대통령은 목차를 포함, 대강의 구성까지만 완성하고 서거했다. 최종 수정은 2009년 5월 20일 오후 5시 5분이었다.  그는 왜 2009년에 회고록을 쓰려 했을까? 직접 그의 말을 빌려본다.

"회고록은 한참 후에 쓰려고 했다. 아직 인생을 정리하개에는 너무 이르고,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봉하마을 바꾸기, 시민광장, 정책연구... 그래서 '우공이산'을 표구하여 붙여놓고 이런저런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여러가지 장애가 생겼다.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마침내 피의자가 되었다. 이제는 일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이야기를 쓰는 일뿐인 것 같다. 왜 써야 할까?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뿐이다. 일은 삶 그 자체이다."

그는 2009년 봄 이후 이명박 정권과 검찰의 비열한 정치적이고 비도덕적인 수사방식과 조,중,동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언론의 포퓰리즘적 보도행태로 인하여 자신이 평생 스스로 지켜오던 원칙과 기준, 도덕성과 명예가 무너짐을 느꼈던 것이다. 

책은 제목 그대로 그의 성공과 좌절, 굴곡진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고록 집필을 결심하고 목차를 포함하여 대강의 구성을 직접 작성한 '성공과 좌절'을 비롯하여, 회고록 집필을 결정한 뒤 줄거리를 밝힌 구술 기록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와 '스스로 입지를 해체하는 참담함으로' 등 살아 생전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을 모두 이 책에 담았다. 


제1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01장. [미완의 회고]에는 노 전대통령이 직접 쓴 글과 구술한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다. 왜 갑자기 예정에 없던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는지, 회고록의 주된 내용이 '실패한 이야기'를 쓸 것이라는 것, 자신의 실패가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한 시민들의 실패는 아니라는 것, 자신의 실패를 거울삼아 달라는 것에 대한 소회를 담고 있다.

또한, 자신이 생각해왔던 질문들에 대한 짧은 글이 담겨 있다. 대통령의 과제는 무엇일까? 역사적 과제는 무엇일까? 후보 시절의 약속은 무엇이었을까? 참여정부의 비전과 전략은 무엇이었는가?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퇴임 이후 자신이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했던 주제들도 거론된다.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을 필두로 하여 유럽에서 제시된 '제3의 길', 참여정부 임기 말에 준비했던 '비전 2030' 등이다.

자신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규정하면서 그 원인을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자신의 정치적 소망과 좌절을 언급하면서 "정치하지 마라"와 "이제는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말한다.

02장. [봉하 단상]은 인터넷 공간 [사람사는 세상]의 '봉하 글마당'과 '좋은 자료 모으기 동호회', 그리고 '진보주의 연구모임'에 노 전대통령이 직접 올린 글이 담겨 있다. '봉하 글마당'에서 옮긴 글은 2009년 3월에 작성한 '권용목과 뉴라이트의 민주노총 보고서', '민주주의와 시민의 주권 행사', 그 해 4월 작성한 '춤추는 미사일, 누구를 위한 것일까?', '정치인들은 껍떼기에요.', '언론은 흉기다', ' 제 집 안뜰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이다.

'좋은 자료 모으기 동호회'에서 옮긴 글에는 2009년 3월에 작성한 '수직적 권위주의 권력문화와 전시행정에 관한 사례를 모아봅시다', '민주주의 역량의 부족에 관한 이야기 자료가 있을까요?', 4월 '정책 결정은 누가 하나?', 5월 '작은 정부와 구조조정의 결과에 대하여', '오바마의 진보주의 개혁은 성공할 것인가?' 등이 담겨 있다.

'진보주의 연구모임'에서 옮긴 글에는 2009년 2월에 작성한 '오늘의 좋은 소식 -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정책', 3월 '대북정책의 전략적 판단과 보통 사람들의 상식', '재판에 대한 압력, 언론에 대한 압력', '남북간 군사력 비교에 대하여' 등이 담겨 있다.

제2부. [나의 정치역정과 참여정부 5년]에는 노 전대통령의 육성 기록이 들어 있다. 네 차례의 인터뷰가 들어 있는데, 퇴임 1년을 앞둔 지난 2007년 9월 5일 청와대 상춘재, 9월 16일 상춘재, 10월 20일 청와대 관저 회의실, 2008년 1월 18일 청와대 관저 대식당 등에서 진행되었다. 내용 중 일부가 편집되어 2007년 11월 한국정책방송(KTV)에서 방영했고 2008월에는 '다큐멘터리 5부작, 참여정부 5년의 기록'이라는 제목의 DVD로 제작됐다. 2차 인터뷰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겸해 진행되기도 했다.

01장. [시대는 한 번도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는 노 전대통령의 인생역정과 정치역정에 대해 구술한 내용이다. 가난과 큰 형님, 초등학교 시절 글짓기 반항 사건, 419와 516에 대한 기억, 개발시대 막노동, 사범시험 이야기, 결혼과 판사 생활, 변호사 시절 이야기와 부림사건 변호를 통해 인권변호사로 활약하기 시작한 이야기, 정치에 뛰어든 계기와 3당 합당의 추억, 부산에 대한 기억, 바보 노무현과 노사모에 대한 이야기, 대선 출마 동기와 퇴임 이야기 등이다.

02장. [참여정부 5년을 말하다]는 노 전대통령 재임기간 중의 참여정부 5년에 대해 구술한 내용이다. 여기에는 참여정부에 대한 자신의 평가, 경제부분에서 성장과 복지에 대한 평가, 남북정상회담과 북핵문제, 남북관계, 동북아 평화에 대한 평가, 한미관계와 한미 FTA에 대한 평가, 정치개혁을 위한 노력과 그 좌절 등이 담겨 있다.

03장. [한국 정치에 대한 단상]는 노 전대통령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 정치에 대해 구술한 내용이다. 일개 국회의원이면 국민의 눈높이에 자신의 정치 수준을 맞춰도 되지만 국가적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국민의 눈높이를 넘어 역사의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투명성과 공정성, 원칙적인 법치주의만으로는 어렵고 한 발 더 나아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그러면서 대화하고 타협과 협상을 통해서 결론을 하나로 모아 나가는 통합의 과정이 부드럽게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노 전대통령은 '시민주권시대'와 '시민권력'을 말한다. "만일 정치권력으로 무엇을 하려고 한다면 한 사람의 대통령을 만들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중심이 되는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흐름을 만들어내야 합니다."라고...


시골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란 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정치에 입문, 대통령에 당선된 그의 삶은 '성공'이라고 불려질 것이다. 번듯한 기반 하나 없이 대통령까지 당선되었으니 누가 봐도 '성공'이겠지만, 그는 서거 직전 남긴 회고록을 통해 '실패와 좌절'의 기억만이 남아 있다고 고백한다. 대통령 임기 내내 '경제 파탄, 민생 파탄, 총체적 파탄,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는 사람들과 싸웠고, 임기 후에 측근의 비리로 인해 흠집난 자신의 도덕성에 대해 부끄러운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글을 통해 서거 직전 고통스럽게 고뇌하며 자신의 삶 전체를 성찰한 그의 모습을 아련히 그려볼 수 있다.

이 책 속의 2부의 많은 글은 오현호 기자의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글과 많이 겹친다. 그래서 1부에 들어있는 노 전대통령이 직접 쓴 글이 새롭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의 정서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자리에 올랐음에도 퇴임 후 그는 스스로 자족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보다 더 낮은 자리에서 조국과 국민들에게 부족한 내용과 환경을 찾고 그것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노력했던 사람.. 그가 무엇을 이루었거나 완성했는지가 아니라 퇴임 후의 그 자세와 노력이 현재와 미래의 후손들에게 모범일 것이다.

노 전대통령이 재임 시절의 여러 정치적, 정책적 결정에 대해 스스로 평가내린 것에 대해 모두를 동의하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도 사람인 이상 감정을 가질 수 있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내가 그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의 '평가내용'이 아니라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내놓고 겸허하게 평가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은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후보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퇴임 후 아저씨 노무현을 왜 그토록 수 많은 국민들이 사랑했는지를 보여준다. 권위주의가 권위로 살아온 사람. 허위와 가식이 아니라 진실과 감성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간 사람. 열정과 아픔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사람. 노무현은 정치인과 지도자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질과 태도를 우리에게 제시한 것이다. 

이제는 그가 태어나 자란 봉하마을의 한 곳에 조용히 묻혀 있지만, 그가 남긴 말과 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아직도 이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의 실패와 좌절의 이야기는 남은 자들에게 더 나은 세상, 사람 사는 세상,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 그의 열망을 고스란히 전해줄 것이다. 

그가 세웠던 꿈 '사람 사는 세상'을 국민들은 버릴 수 없다.


* 노 전대통령의 유언 :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 2011년 6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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