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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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부터 시작된 공부모임이 지난 5월 말에 100회를 맞이했다. 참으로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공부모임의 역사를 이어나간 것이다. 나는 작년 11월부터 참석하여 초창기 참석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뜻 깊은 100회를 축하해주었다.
 
100회 기념으로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어 [내 인생의 책]을 발표하기로 했다. 나는 이 책 <아리랑>과 황석영씨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그리고 <민중과 지식인>을 선택했다. 세 권 모두 대학 1학년 시절에 읽은 것이다. 이 세 권 이외에도 내 인생에 커다란 깨달음과 소중한 지혜를 안겨다 준 책은 많았다. 굳이 꼽아 보자면, 소설 책으로는 조정래씨의 <태백산맥>과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에세이로는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인문사회과학으로는 이반 일리히의 <성장을 멈춰라>, 자연과학으로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경제학으로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 등이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게 뇌리에 박힌 책은 위 세 권을 필적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세 권의 책은 세상에 대해 아무런 앎이나 지혜를 배우지 못하고 대학에 갓 입학한 나를 이끌어 주었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헤매고 있는 나에게 문자로서 방향을 보여주었다. 내가 그 세 권을 읽고 책 속의 지혜와 철학에 따라 그 이후의 인생을 제대로 살았다고 자부하지는 못한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어느 누구와도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저 가끔씩 가슴으로 느끼고자 노력하고 세상을 알려고 노력하고 아는 만큼 실천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한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국가나 사회에, 주변에 크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온 과정에는 알게 모르게 세 권의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청년의 고뇌와 투쟁을 통해 조선인 혁명가로 거듭난 김산(본명 장지락)의 삶을 벽안의 젊은 여성작가 님 웨일즈가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은 그 시대를 철저하게 호흡해 간 지식인의 생생한 전기이자 숨 가쁜 동아시아 역사의 기록이고 증언이며 역사가 명하는 바에 따라 불화살같이 살아간 한 조선인 독립혁명가의 피어린 발자취이다.
 
내가 읽었던 1985년 당시에 이 책은 ’금서’였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대학생 및 일반인들을 진실과 진리로 안내할 수 있는 대부분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였다. 당시에는 ’금서’ 뿐 아니라 ’금지곡’도 있었고 ’상영금지 영화’도 있었다. 그만큼 사상과 학문의 자유, 진리와 학습의 자유가 박탈되어 있었고 더불어 집회, 시위, 결사, 언론의 자유 등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수 많은 ’금지사항’들이 군화발로 버젓이 강요되었다. 한국에 처음 이 책을 소개한 사람이 고 리영희 교수였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리영희 교수님의 발자취가 한국의 현대사에 깊숙이 남아있음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 김산은 누구인가? ---------------------------
본명은 장지락(張志樂). 평북 용천 출생. 일본, 만주, 상하이, 베이징, 광둥, 옌안 등을 누비며 중국 공산혁명을 통한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신흥무관학교를 최연소로 졸업한 뒤 상하이로 가 이동휘, 안창호 등의 영향을 받았다. 1924년 고려공산당 베이징지부를 설립하고 1925년 중국대혁명에 참가하였다. 1930년과 1933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1937년 중국의 옌안에서 님 웨일즈와 만나게 되었고 님 웨일즈는 이 만남의 성과를 담아 1941년 미국 뉴욕에서 『아리랑의 노래(Song of Ariran)』를 출간했다. 1938년 중국공산당 사회부장 캉성(강생康生)에 의해 ‘일제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됐으나 1983년 중국 공산당은 김산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하고 명예와 당원 자격을 회복시키는 복권을 결의하였다. ---------------------------------------
 

-------------- 님 웨일즈는 누구인가?----------------------------
본명은 헬렌 포스터 스노우. 신문기자이자 시인이며 계보학자로 활동했다. <중국의 붉은 별>을 써낸 에드가 스노우와 결혼하기도 했다. 님 웨일즈라는 필명으로 여러 권의 저서를 내었으며, 오랜 기간을 격변하는 아시아에서 보내면서 중국과 한국에 관한 많은 집필을 하였다. 마오쩌둥에 대한 저술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에드가 스노우를 만나 결혼한 후 남편과 함께 1930∼40년대 중국을 누비며 모택동의 대장정에 참가하였다. 그는 이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두번 오르기도 했다. 저서로는 ’Inside Red China’, ’The Chinese Labor Movement’, ’Red Dust’, ’Sketches and Autobiographies of the Old Guard’ 등이 있다. ------------------------------


 
책은 소설의 형식과 자서전의 형식으로 저술되어 있다.
[서장]에는 님 웨일즈가 처음 김산을 만나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장면을 회상하는 것이다
1. [회상]에는 김산이 자신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돌아보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조선인으로서 자신이 다른 동포들과 함께 아리랑 고개를 몇 고개나 넘었고 앞으로도 넘을 것임을 다짐한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싸움하는 소리 뿐이다. 투쟁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다. 그 밖의 것은 모두 내 세계에서는 하나도 의미가 없다. 바로 그 투쟁의 대립물 속에 나와 인간생활의 일치가, 나와 인간 역사의 통일이 존재하는 것이다."(p.49)
2. [조국에서의 어린 시절]에는 김산이 평안북도 용천에서 9남매 중에서 셋 째로 태어나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 큰 형과 작은 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3. [독립선언]에는 어린 김산의 눈으로 본 3.1운동의 구체적인 모습과 개인적인 평가를 담고 있다.
4. [동경유학 시절]에는 3.1 운동 이후 일본 동경으로 넘어가 고학하면서 대학에 다니는 과정을 이야기 한다. 룸펜인텔리겐차의 생활과 학생운동, 1923년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에서 겪은 이야기이다.
5. [압록강을 건너서]에는 만주에서 조선 민족주의자의 군관학교에 가기위해 걸었던 700리의 도보여행, 만주 합니하의 조선 독립군 군관학교 생활을 이야기한다.
6. [상해, 망명자의 어머니]에는 1920년 상해에 도착한 이후 공부하면서 이동휘 장군, 안창호, 이광수를 만나 함께 활동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산은 여기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세 명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한다. 가장 큰 영향은 금강산 승려 출신의 공산주의자인 김충창, 두 번째는 안창호 선생, 세 번째는 해륙풍 소비에트 지도자 팽배이다.
7.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에서 김산은 무정부주의자 그룹에 가입하여 활약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8. [걸출한 테러리스트 : 김약산과 오성륜]에서 김산은 조선인 테러리스트인 김약산(김원봉)과 오성륜과 사귀고 함께 지낸 과정을 이야기한다.
9. [결코 결혼하지 않으리라]에서 김산은 여성과 혁명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논리를 이야기한다. 김산은 이에 대하여 안창호와 톨스토이에게서 영향을 받았음을 말한다.
10. [톨스토이에서 마르크스로]에서 김산은 1921년 이후 자신이 북경에 도착한 후 마르크스주의 문헌을 읽기 시작했고 1923년 경에는 공산주의 운동만이 조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하고도 진정한 희망이라고 단정한다. 김산을 공산주의자로 만든 사람은 김충창이었고 톨스토이의 글과 사상은 김산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11. [중국 대혁명에 참가하여]에는 1924년 손문의 지도 아래 중국혁명이 일어나 좌익으로 급선회한 해였다. 중국대혁명은 1925년 광동에서 일어났고 1927년까지 김산을 비롯한 조선인 테러리스트 800명이 참가하였다.
12. [광동꼬뮨]에는 1927년 12월 10일 김산을 비롯한 20명의 조선인과 엽정 등 중국공산주의자들이 광동을 공격, 점령하여 소비에트 정부를 구성한다. 하지만, 광동꼬뮨은 준비부족과 전략전술의 실패로 인하여 3일 천하로 막을 내린다. 김산은 꼬뮨의 시작부터 백색테러까지의 과정을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13. [해륙풍에서의 삶과 죽음]에는 김산이 광동꼬뮨 실패 이후 혁명 잔존세력과 해륙풍을 거쳐 홍콩으로 탈출하면서 중국 국민당 및 군벌과 싸우는 과정이 묘사된다. 이 과정에서 김산은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었고 건강히 급속도로 약화되었다.
14. [상해에서의 재회]에는 김산이 홍콩에서 상해로 건넌간 뒤 김충창, 오성륜과 재회하고 1929년 북경으로 떠나기까지의 이야기다.
15. [위험한 생각]에는 북경으로 돌아온 김산이 북경 공산당 비서가 된 이후 중국인 아가씨(유령)의 애정 공세에 쩔쩔매는 과정을 담고 있다.
16. [다시 만주로]에는 김산이 중국공산당과 조선공산당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중국공산당에 의해 만주로 파견되어 활동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7. [위대한 첫사랑]에는 1930년 김산이 만주에서 북경으로 돌아온 후 유령의 애정을 받아들여 공식적으로 사귀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의 차이점을 해소하지 못하고 포기한다.
18. [아리랑 고개를 넘다]에는 1930년 11월 북경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고 취조받고 석방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섯 차례의 물고문에도 변절하지 않은 김산은 마침내 석방된 후 고향으로 돌아간다.
19. [당내투쟁과 개인적 투쟁]에는 김산이 북경으로 돌아간 1931년 6월 이후 중국 공산당에 의해 의심받고 스파이로 재판을 받고 혐의가 풀리는 과정을 담고 있다. 김산은 그 이후 인민전선을 내용으로 하는 노선투쟁을 전개한다.
20. [살인... 자살.... 절망]에는 중국 국민당과 군벌에 의해 북경 공산당이 와해되는 가운데 김산이 결핵에 걸리고 좌절한 가운데 과거에 자신을 스파이로 고발한 한씨를 죽이려다고 포기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자살을 시도하고 실패한 후 천천히 의지와 기력을 회복한다. 이 때 김산은 괴테, 테니슨, 키츠, 잭 런던, 업톤 싱클레어, 발자크 등의 책을 섭렵한다.
21. [다시 대중운동으로]에는 1932년 이후 보정부의 제2사범학교에서의 강의와 조직화 등 대중운동으로 복귀한 이후 활동을 담고 있다. 1933년 이후 국민당과 군벌의 토벌에 의해 중국 공산당은 와해의 위기에 빠진다. 
22. [다시 일본에 잡히다] 김산은 1933년 4월 두 번째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조선으로 송환되어 가혹한 수사를 받았지만 김산은 다시 재판에서 무혐의로 풀려난다.
23. [두 여인] 석방 이후 김산은 함께 체포되었던 중국인 여인이 김산에게 애정공세를 퍼부은 끝에 둘은 결혼한다. 그 후에 김산은 다른 활동가 여인과 잠시 동안 3각 관계에 빠지기도 한다.
24. [항일전선] 1935년 상해에서 조선의 제반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조선혁명의 지도자들이 모인다.  1935년 중국공산당 주도로 홍군과 중화소비에트가 국민당과 항일연합전선을 제창하자 조선 혁명가들 역시 중국민중과 협력하기 위해 조선인들의 민족전선-저선민족해방동행과 조선민족연합전선-을 결성한다.
25. [해배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자만이...] 김산은 1936년 8월 조선민족해방동맹과 조선공산당에 의하여 서북에 있는 중화소비에트 지구에 파견될 대표로 선출되어 연안에 도착한다. 김산은 다시 결핵이 발병한 상태였다. 

 

김산은 책의 말미에 작가의 글을 빌려 자신의 세계관을 말한다. "역사의 의지를 알 사람은 누구인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폭력을 뒤엎지 않으면 안되는 피억압자 뿐이다. 패배 속에서도 좌저하지 않는 사람, 일체의 새로운 세계를 최후의 전투에서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 뿐이다. ...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뿐이다. 민중과의 계급관계를 유지하는 것. 왜냐하면 민중의 의지는 역사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 진정한 지도력은 날카로운 귀와 신중한 입을 필요로 한다. .... 소수는 보호되어야 한다. 소수는 변혁의 최소 도구요, 다수의 자식이며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숨통을 막는 것은 단지 괴물을 키우는 것일 뿐이다. ... 주어진 다수의 투표는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나 그 다수가 올바른가 올바르지 않은가는 그와는 별개의 문제다. ...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즉 변증법적인 것이지 기계적인 것이 아니다. ... 다년간의 마음의 고통과 눈물을 통하여 ’오류’가 필수적이며 따라서 선이라는 것을 배웠다. 오류는 인간 발전의 통합적인 일부분이며, 사회변화 과정의 통합적인 일부부인 것이다. ... 자유를 위하여 그리고 자기들이 믿고 있는 것을 위하여 싸우다 의식적으로 죽는 것은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영광이요 장렬함인 것이다. ... 스스로 믿고 있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싸우다 죽는 것은 행복한 죽음인 것이다.... 내 청년시절의 친구나 동지들은 거의 모두가 죽어버렸다. 민족주의자, 기독교신자,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공산주의자 등 수백 명에 이른다... 그들은 눈앞의 승리를 보는데는 실패했지만 역사는 그들을 승리자로 만든다."(p.296)

작가는 한국 내 어느 역사가도, 후손도 밝히지 못한 조선 혁명가 중 한 사람을 발굴하여 전세계에 소개했다. 그럼에도 한국정부는 독립군이자 혁명가였던 김산을 예우하지 못하고 있따. 이런 외국인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젖어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일제 강점기에 조선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 많은 독립군과 혁명가들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껏해야 김구와 김규식 등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공개적이고 공격적인 노선으로 삼지 않은 일부 임시정부 요인들만 다루고 있을 뿐이다. 5,000년 간 이어온 조선의 역사가 단절된 것이다. 민족과 역사 앞에 그깟 이념과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란 말인가? 서구와 미국,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이념을 초월하여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을 발굴하여 후손들에게 역사교육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을 따라 배우지는 못하더라도...
 
작가는 김산을 ’참된 도덕’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김산은 거짓과 허위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고 거짓말 같은 것은 아예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작가가 접한 김산은 진리를 추구하는 순례자였고 시대가ㅏ 낳은 하나의 순교자였다. 다행이 김산은 1980년대에 중국공산당으로부터 1960년에 받은 ’수정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스파이의 누명을 벗었다. 김산이 문화대혁명 시기에 강생에 의해 비밀처형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작가에게 있어 끔찍한 잔악행위이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었다. 
 
작가에게 있어 당시 33세였던 김산은 일본의 억압 아래 있던 동시대 한국인들에게는 영명한 지도자요 사상가였으며, 뜨거운 영혼과 가슴을 소유한 순수한 인도주의자요 더 없이 존귀하고 고귀한 인물이었다. 김산의 삶과 역정은 작가를 통해 전 세계에 조선인(한국인)의 위대함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김산이라는 역사적 존재는 처음 나에게 ’영웅’으로 다가왔다. 그는 바다 건너 핏줄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현실적이지 못한 외국의 영웅도 아니고 수 백년, 수 천년 전의 신화에 쌓인 ’을지문덕’도 아니었다. 고작 50년 전에 한반도에서 태어나 일제의 강점에서 조국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봉건과 압제의 사슬에서 민중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다 바친 선배였던 것이다. 20세기 후반은 일제시대가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에는 여전히 외국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고 외국군을 한국정부가 제어하지 못하고 외국의 경제에 국내경제가 종속되어 있는 현실, 군사정권이 헌법상의 국민의 권리를, 타고난 사람의 권리와 행복을 짓누르고 억압하는 현실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이 책과 김산의 생애를 받아들였다. 우리가 김산처럼 혁명활동을 펼쳐나가지 못할지라도 그 분의 의지와 노력, 그 분의 철학과 열정을 최대한 본받자고 다짐했던 것이다.
 
<아리랑>은 그래도 하루하루 학생운동이 힘들었던 1980년대 중반에 열혈청년학생들이 추위와 배고픔, 억압과 울분, 최루탄과 경찰폭력에 대항하여 굳은 의지를 불태울 수 있도록 하는 산 교과서에 다름 없었다. 물론 교과서만큼 당시 학생들이 실천하고 성과를 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록 우리가 당시 김산의 말과 행동을 제대로 따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따르려는 노력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된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뒤늦게나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싶다. 우리만이라도 그 분을 기억하면서....
 
[ 2011년 6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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