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3 - 승자의 혼미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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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의 부제는 ’승자의 혼미’다.

작가의 < 로마인 이야기 > 전15권 중 세 번째 책으로 기원전 133년부터 기원전 63년까지의 로마사를 다루었다.


 
작가는 이 시대를 600년 이상 훌륭하게 작동하던 로마의 체제, 즉 로마 공화정이 흔들리는 때로 규정한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도시국가로 탄생한 후 기원전 500년 경에 왕정에서 공화정(과두정치)으로 체제를 변경했다.
그리고 그 공화정 체제는 이후 370년 동안 로마가 소규모 도시국가에서 지중해 연안을 포괄하는 패권국으로 탈바꿈하게 만들었다.
공화정 체제의 3두 마차인 민회와 원로원,집정관은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했고
국내 정치와 외교정책, 국방과 재정/세제 역시 로마가 패권국가로 거듭나게되는 주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로마 공화정 체제는 ’한니발 전쟁(포에니전쟁)’ 직후 급격하게 흔들리게 된다.
그 주요한 원인은 정책입안과 자무늘 주요 역할로 하는 공화정의 핵심 주체인 원로원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서 비롯된다.
로마는 급격하게 지중해 패권국가로 성장하고 인구와 경제력이 증가하면서 국가 내부에 많은 문제점이 발생한다.
빈부격차가 늘어나고 무역이 확대되면서 자작농이 줄어들고 빈농과 무산자와 실업자 계층이 늘어났다.
군대를 제대한 많은 군인들이 농지나 직장을 가지지 못하여 곧바로 실업자가 되었다.
’로마연합’의 일원으로 전쟁 참여와 지원은  늘어났지만 로마 시민권은 이탈리아 반도 내에서 확대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로마 내 귀족계급과 상인계급의 권력과 부는 늘어났지만 평민과 하층민들, ’로마연합’ 동맹국 국민들의
권력과 부는 그 기간 동안 점점 줄어든 것이다.

400년 넘게 변화된 경제,사회 상황에 맞추어 법률과 정책을 제때에 정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공화정의 핵심주체인 원로원은 이러한 체제 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그럼에도 로마에는 시대에 요구에 따라 법률과 정책을 변화시키려는 내부의 시도는 있었다.
기원전 133년~120년 사이에 호민관, 집정관이었던 크라쿠스 형제와 드루수스 등은 평민계층, 하층민, 반도 내 동맹국/자치도시 시민들을 등에 엎고 여러차례 법률과 정책개혁을 시도했다.
하지만, 원로원과 귀족계급은 사사건건 개혁법률과 정책을 반대하고 무산시키면서
’최종권고’와 같은 방식의 무력으로 변화를 저지시켰다.
그 와중에 여러차례 로마 내에서 폭동과 무력충돌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이 죽게된다.
급기야 시민권 확대를 둘러싸고 ’로마연합’ 내의 동맹시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동맹시 전쟁’이 일어나고 이를 계기로 로마가 분열내되면서 내분에 휩싸이기도 했다.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둘 다 장군이었다.
하지만 마리우스는 개혁을 지향한 측이었고 술라는 공화정과 원로원을 지키는 측이었다.
두 사람 모두 공화정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했지만 방향은 달랐고 방법은 같았다.
마리우스와 술라는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살륙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 했다.
특히, 술라는 원로원을 통해 무기한의 ’독재집정관’에 취임하여 수 천명의 로마인을 처형한다.
그리고 그 이전까지의 개혁적인 법률과 정책을 후퇴시키고 원로원과 귀족의 이익을 대변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술라의 회귀체제는 폼페이우스에 의하여 몇 년도 안돼 무너지기 시작한다.
(물론, 이 시기 동안에도 로마는 지중해 패권을 지키기 위하여 여전히 북아프리카, 이베리아반도, 게르만족, 소아시아 등과 수 차례 전쟁을 치르게 된다.)
 
이 시기의 로마를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현대사가 겹쳐진다.
법과 도덕, 정책과 제도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고 그 시대에 맞게 구성되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변하고 사람들이 변하면 그에 맞추어 법과 제도가 바꿔야 하는 것...
하지만, 기존 법과 제도에 의한 기득권층이 먼저 나서서 바꾸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것이고
평민과 하층민의 힘으로 바꾼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착되려면 상당한 기간과 과정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잊어버리고 지키지 못하면 다시 과거로 회귀될 수 있다는 것...
 
** 오늘 인터넷 포탈 야후에서 조금 황당한 기사를 접했다.(뉴시스 9월 23일자)
MB가 22일 수해지역을 방문하면서 피해주민에게 건넸다는 말이,
"마음 편하게 먹어요. 기왕 이렇게 된거니까..."라고.
좋게 생각하면 마음 먹은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언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고
심하게 표현하면 어느 네트즌 말대로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언젠가 아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어서 맘은 편하지가 않다.
3~4개월 전인가...
당시 방송통신위원회가 업무보고를 하면서 인터넷을 통한 재택 근무 시범추진을 이야기했더니

국무회의 중에 MB가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했다는 말...
"그런 것을 연구해 보세요. 재택근무 활성화되면 ’출산율 저하’도 방지할 수 있겠네!!’."
내 참... 국무회의가 ’무한도전’ 프로그램도 아니고...


 

 [ 2010년 9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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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멈춰라! - 자율적 공생을 위한 도구, 이반 일리치 전집 4
이반 일리히 지음, 이한 옮김 / 미토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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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과학과 기술이 만든 문제는 한 단계 심오한 과학과 더 나은 기술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유행처럼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잘못된 관리를 해결하는 법은 더 적극적이고 더 많은 양의 관리라고 여긴다. 이는 마치 오염된 강을 치료하는 길은 더 비싸고 강력한 청정합성세제를 사용하는데 있다고 결론 짓는 것과 같다.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쌓고 더 많은 과학과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현재의 문제를 억누르려고 하는 것은 그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없이 그저 가속페달만 밟으면 모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이 책은 법정스님의 저서 < 내가 사랑하는 책들 >에 소개된 책 50권 중 <소로우의 무소유, 월든>,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 <오래된 미래>, <무탄트 메시지>에 이어 다섯 번째로 읽은 책이다.

저자가 처음 이 책을 발간한 시기는 1973년이다. 아직 소련과 동구권 체제가 무너진 시기도 아니었고 신자유주의가 도래하기도 10년 이상 남아있던 시기에 산업생산양식과 성장의 폐해에 대해 일갈하고 정치적 전환을 주장한 저자는 인류역사의 선각자이자 사상가라 인정받을 만 하다. 특히 학교와 의료, 수송, 에너지에 대한 그의 통찰력 넘치는 분석과 비판은 세대를 뛰어넘는 시기임에도 우리에게 여전히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법정스님께서 추천하셨으리라...
 
먼저, 출판사 서평을 읽어보자...
1949년, 미국의 대통령으로 재선된 트루먼은 취임 연설에서 “미국에는 새로운 정책”이 있다고 선언했다. 이 새로운 정책이란 다름 아닌, 미개발의 나라들에 대해 기술적 & 경제적 원조를 실시하고 투자를 확대한다는 것이었다(여기에는 당연히 한국도 포함).
이 연설에서는 향후 산업생산양식을 이끌어갈 중요한 단어가 사용됐는데, 바로 ‘미개발 국가(under-development country)’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이전에는 백과사전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미개발국가’, ‘근대화’는 금새 경제학과 사회학에서 사용되는 전문용어로 정착됐다. 발전경제학이나 발전사회학이 대학의 정규과목이 된 것도 이 무렵이다.
트루먼의 취임 연설 이후 ‘개발’은 미국과 미국의 원조를 받는 제3세계의 국정지표 그리고 급기야 유엔의 정책이 되었다. 

‘발전’과 ‘성장’은 구래의 지반을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단어가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단어다. 마치 요즘 사용하고 있는 세계화가 그런 것처럼…
더욱 흥미로운 건 소련의 스탈린 역시 비슷한 시기에 자국민들을 ‘개발’의 바다로 노저어 가게 했다는 것이다. ‘개발’ 혹은 ‘성장’은 이때부터 신화가 되어버렸다. 누구도 ‘성장’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러시아의 예에서 보듯이 성장보다는 분배의 정의를 요구하는 자들조차 ‘성장’을 부정하지 못했다. 이처럼 ‘경제발전’에 대한 사고방식에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측면을 찾아볼 수 없다. 자유주의자나 보수주의자, 민족주의자나 파시스트 그리고 나치나 레닌주의자 혹은 스탈린주의자들 역시 ‘성장’이라는 코드를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식대로 ‘성장’은 모든 가치를 뛰어넘는 선(善)인가? 이건 뜬금 없는 질문이 아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장과 분배의 논쟁 역시 ‘성장’이라는 코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정부와 주류경제학자 그리고 재야 간의 대결구도로 형성되었던 성장과 분배의 논쟁은 이제 급기야 제도권 안으로까지 진입했다. 하지만 이 논쟁구도 역시 ‘성장’을 배제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성장’의 가치를 추구하던 세력뿐 아니라 소위 진보진영 역시 ‘진보적 경제발전론’이나 ‘분배를 통한 성장’을 주장하며 ‘성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일리히는 명쾌히 주장한다. “성장을 멈춰라!”
 
40여년 전에 경고했음에도 우리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성장’만을 위해 질주해온 미국과 유럽, 일본과 한국,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대부분의 지구상 국가들에서 지금 나타나는 모습은 어떠한가? 과연 ’학교’가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진정한 ’배움’을 줄 수 있는가? 과연 ’병원’이 우리에게 건강과 치유력을 제공하는가? 과연 자동차와 비행기가 우리에게 시간적, 공간적, 정신적, 육체적 여유와 시간을 제공하는가?
 
저자는 봉건시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교육과 건강, 통행과 에너지라는 미명하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산업생산양식이 ’학교’와 ’병원’과 ’수송’을 상품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교육과 건강, 통행과 에너지를 산업생산양식으로 탈바꿈시켰는지 알려준다.
 
산업생산양식은 ’교육’이라 불리는 상품을 제조해내면서 처음으로 완전히 합리화 되었으며, 교육은 과학적 마술이 창조한 환경에 맞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탄생시키는 연금술적 과정을 추구하게 되었다. ’교육’이라는 상품과 ’학교’라는 제도는 서로를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배움을 학교교육으로 재정의해버린 후 사람들에게 학교를 필수적인 것으로 보이게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가난의 고통에 더하여 교육을 받지 않은 자에 대한 차별까지 겪게 만들었다는 것... 사람들이 지식의 수준을 정의하고 측정하는 학교의 권위를 받아들이게 되면, 사람들은 적절한 건강 수준이나 수송 수준에 대해서도 해당 분야의 제도기관의 권위를 쉽게 더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저자는 의료의 경우, 1913년을 하나의 분수령으로 본다. 그때부터 환자들은 구체적으로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해주는 의대 졸업자를 만날 확률이 반반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의학이 병과 치료를 ’정의’하게 되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의사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기준으로 치료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기를 전후하여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물은 정화되었고 유아 사망율은 낮춰질 수 있었고 쥐를 통제하여 역병을 물리치고 매독균을 현미경으로 보고 살바르산으로 매독을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사망율과 발병율의 눈부신 감소는 위생, 농업시장, 그리고 삶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 변화 덕분에 일어난 것이며, 이들 변화 중 일부는 의학이 발견해낸 사실에 건축토목기사가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생겼다고 말한다. 그러나 의사가 직접 개입하여 나타난 변화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단히 드물다라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치료를 위한 도구가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의료전문가들은 그 도구를 자신들만 독점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에 소요되는 훈련기간은 더욱 길어져만 갔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급기야는 모든 사람들이 의사를 더 의존하게 되었다. 

저자는 의사들에 의해 생긴 질병 중에서 가장 심각한 질병은 바로, 의사들이 환자에게 더 나은 건강을 안겨주는 척하는 허풍이라고 단언한다. 엄청난 돈이 의학적 치료에 의해 생긴, 샐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손해를 메우기 위해서 사용되었고 의료가 병을 고쳐서 얻은 이득은, 의료가 새로이 아프게 만든 사람들의 비용에 비하면 난장이만큼이나 작아보인다고... 물론, 내가 보기에 이런 흐름은 의료 뿐 아니라 교육, 법률, 과학, 건설, 회계 등 과학과 기술을 통해 새롭게 정의된 모든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될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는 내가 지금까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고 접근방식이었다. 우리사회는 저자가 비판하는 산업생산양식과 제도들을 기초로 하여 헌법과 법률, 제도와 정책, 규범과 문화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적지않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산업생산양식의 발전과 장악에 따라 인류가 위협받게 되는 여섯 가지 경로를 규명한다.
1) 과잉성장은 인간이 진화해온 환경의 물리적 기본구조에 대한 권리를 위협한다.
2) 산업화는 공생적인 일을 할 권리를 위협한다.
3)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인간을 과잉 프로그래밍하는 일은 인간의 창조적인 상상력을 죽인다.
4) 새로운 생산성 수준은 참여정치의 권리를 위협한다.
5) 기존의 신화, 도덕, 판단을 참고할 수 있는 권리를 위협한다.
6) 강제적이지만 인공적으로 실현된 만족을 주는 수단이 불러일으키는, 만연된 좌절은 보다 미묘한 위협을 구성한다.
 
그리고 저자는 산업생산양식을 가져온 ’도구’를 재정의하면서 지나치게 효율적인 도구가 물리적 환경과 인간이 맺는 관계를 촉진하는 일에 적용되면 결국 인간과 자연의 균형을 파괴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 파괴의 모습은 ’생태계의 파괴’, ’근본적인 독점’, ’과잉계획’, ’양극화’, ’노후화’, ’좌절’이다. 이 모든 저자의 주장과 예상은 30년이 지난 후 인류에게 본 모습을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어느 날 숲의 나무를 잘라내고 그곳을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흔히 ‘발전’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장소에 전혀 다른 것을 설치하는 것. 그것을 보고 우리는 숲의 ‘발전’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 그는 이 책에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까지 무한 성장하는 산업사회의 생산방식 대신 자율적, 공동적 도구 사용과 인간의 자율적 행위의 상호교환을 중심으로 하는 공생의 사회를 주창하고 있다. 그는 공생공락 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 - 시, 자전거, 도서관 - 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성장에 반대하는 이유는 명쾌하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 최소한도로만 통제하는 도구를 사용하여 가장 자율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질 때 우리는 공생적(Conviviality)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7년 전의 저자의 비판과 대안을 인류사회는 거부하였다. 물론, 역자(이훈)의 말대로 저자가 제시한 세 가지 방안(과학의 탈신화화, 언어의 재발견, 법 절차의 회복)는 실천적이기 보다 상징적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균형’과 ’도구의 한계를 정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생산양식이 인류사회를 지배하게 된 기간은 300년 가까이된다. 그렇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기간 역시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일이 한 걸음씩 이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성장의 한계’나 ’도구의 한계’를 정하는 것이 인류에게 출발점이 될 것이고 새로운 관점과 대안에 대한 계기로 주어질 것이다. 그 ’균형’을 위해서는 아주 자그마한 구멍 만들기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산업생산양식’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근본에서부터 인류사회에 공론화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 책 속의 문장
- 공유된 배움과 개인간의 비판적 상호작용을 높은 수준으로 진작시키려는 사회는 교육산업의 성장에 한계를 설정해야만 한다.(p.09)
- 대단히 현대적이면서도 산업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미래사회에 대한 이론을 정식화하기 위해서는 자연적 규모와 한계르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오직 이 한계 안에서만 기계가 노예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기계 자체가 새로운 노예주가 된다.(p.12)
- 1970년 미국의학협회 총회에서 회장은 신생아의 건강상태가 양호하다고 증명될 때까지는 모든 신생아를 환자로 간주하도록 소아과 의사들에게 권고하였다.(p.22)

- 정보를 저장하고 지식을 쌓아나가고 더 많은 과학을 도입함으로써 현재의 문제를 억누르려는 것은, 궁극적으로 가속화를 통해 위기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다.(p.28)
- ’공생’이라는 단어는 사람들 사이의 그리고 사람과 환경 사이의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상호작용을 뜻한다. 공생이란 개인의 자유가 사람들 간의 상호 의존성으로 실현된 것이며, 그 자체로서 하나의 윤리적 가치이기도 하다.(p.33)
-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현재의 제도를 뒤집어 엎어 산업적 도구를 공생적 도구로 대체하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없다.(p.33)

- 대안적 정치질서는 모든 사람들이 각각 그들 자신의 미래를 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를 가진다. 그러한 정치는 생존, 정의, 그리고 일의 자율성이라는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도구의 사용범위를 제한할 것이다.(p.34)
- 에너지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사람들끼리 의존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만, 사람들 스스로 절제의 즐거움과 검소의 해방감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p.35)

- 나는 ’도구’라는 용어를 드릴, 전화기, 빗자루, 건축자재와 같은 단순한 기재에서부터, 자동차와 발전소같은 거대한 기계, 콘플레이크나 전류와 같은 유형의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과 같은 생산적 기관, 그리고 교육, 건강, 지식, 결정과 같은 무형의 상품을 생산하는 기관까지 포함시키는 넓은 뜻으로 쓴다.(p.45)

- 공생적 사회에 근본이 되는 것은 조작적 제도와 중독적 재화나 서비스를 전부 다 제거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욕구를 생산하고 그 충족을 위해 전문화된 도구와 자아실현 능력을 보충하고 발현시키는 도구 사이에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49)
- 치유될 수 있는 대부분의 질병은 오늘날 평범한 사람들이 처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매우 힘들어한다. 왜냐하면 의료가 지닌 의례가 너무 복잡해서 그 기본적 과정이 단순하다는 사실을 숨기기 때문이다.(p.64)
- 나이별로 학년이 나뉘어진 채 이루어지는, 일생을 결정짓는 특권을 따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강제적인 경쟁은, 평등을 진작시키기는 커녕, 남보다 빨리 시작하거나, 더 건강하거나, 교실 밖의 자원이 더 많은 사람에게만 유리한 결과를 낳을 뿐이다.(p.74)

- ’근본적인 독점’이란, 하나의 브랜드가 지배하는 상태가 아니라 한 가지 유형의 생산물이 지배하는 상태다. 근본적인 독점은 산업생산의 과정이 절실한 필요의 충족에 대한 배타적인 통제를 행사하며 비산업적인 활동을 경쟁에서 축출하는 상태다.(p.90)
- 현대 의료의 근본적인 독점은 아픈 사람이 의사가 처방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한 상태다.(p.91)
- 근본적인 독점은 강제적 소비를 부과함으로써 개인의 자율성을 제약한다.(p.92)

- 보건전문가의 통제 아래 쓰이는 돈이 더 늘어난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환자의 역할, 스스로는 아프다 말다를 결정할 권한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주어지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조작됨을 뜻한다.(p.93)

- 도로, 학교, 병원으로 온통 뒤덮인 사회에서 독점으로부터 보호받는 일은 어렵다. 왜냐하면 이런 사회에서 독립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은 기능이 감퇴되고 단순한 대안마저도 상상력이 미치는 범위 밖에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필요한 행동이 마비되어 왔기 때문이다. 독점이 물리적 세계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상상력과 행동의 범위까지도 결정할 때 독점을 제거하는 것은 힘들다. 근본적인 독점은 일반적으로 너무 늦었을 때 발견된다.(p.96)
- 제어되지 않는 산업화는 가난을 근대화한다. 가난의 수준이 높아지고 부자와 빈자의 간극이 커진다. 이 두 측면은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파괴적인 양극화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p.114)

- 개인은 각자가 소유한 물건의 영수증이 얼마나 철 지난 것인가에 따라 사회적 등급이 매겨진다. ... 경제가 대규모로 생산물을 새로 고안하고 기존 기본 상품 묶음을 노후화시키는 과정 위에 건설된 곳은 어디에서나, 가장 최신의 서비스와 재화에 대한 접근권을 가진 자는 특권층뿐이다. (p.122)
- 재화와 도구를 정기적으로 혁신하게 되면, 무엇이든 새롭기만 하면 더 나은 것이라는 신념을 낳게 된다. 이 신념은 현대 세계관의 핵심적인 부분이 되었다.(p.123)
- 공동체가 과학에 대한 과잉확신을 가질 때, 사람들은 성장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일을 전문가에게 맡겨버린다. ... 그러나, 폐쇄적인 전문가 집단이 전문적 지식을 추구하는 일에 자기제약을 가하리라고 신뢰할 수 없다.(p.142)

- 산업화된 국가의 언어는 창조적인 작업과 인간노동의 결실을 산업의 산출물로 파악한다. 의식의 물질화는 서구 언어에 반영되어 있다. ... 명사로 이루어진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have) 일(work)이라는 식으로 소유권적 표현을 쓴다. ... 그들은 지식, 이동성, 심지어 감성과 건강까지도 획득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일뿐만 아니라 사랑도 가진다.(have sex) p.145 

 [ 2010년 11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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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정치학
앤서니 기든스 지음, 홍욱희 옮김 / 에코리브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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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단의 중심을 자동차 대신 걷기와 대중교통으로 바꾼 지 4개월째다. 작년 말부터 자동차와 대중교통을 번갈아 이용하다가 금년들어 봄이 다가오면서 주로 걷거나 지하철, 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적게는 한 달에 2~3번, 많으면 4~5번 정도 이용한다. 부득이한 경우에 한하여 사용한다. 

자동차를 멀리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내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줄이기’였고 책을 읽을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걷기와 대중교통 이용은 부수적인 장점도 있다. 서울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르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필 수 있게 되었고 하루에 적어도 30분 이상 걸으면서 운동효과도 있다. 기름값을 절약하여 책 값에 보탤 수도 있고...ㅋ 걷기 시작하면서 더불어 생활에도 여러가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먹거리, 입을거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고 책도 가급적 중고책을 주문하려고 한다. 본래 ’미식가’도 아니었지만 ’제 때에 정량만 먹자’를 생활화하고 육식과 과식을 피하려고 한다. 

앞으로 남은 ’생활화’는 적당한 수준의 운동이 될 것이다.

이렇게 생활하게 된 계기는 작년에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관련 책, 그리고 걷기를 비롯한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간 위인들의 책을 읽은 것이었다. 입적하신 법정스님으로부터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고 법정스님이 소개한 여러 위인들,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피에르 라비,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오래된 미래>의 저자), 이반 일리히와 장 지오노(<나무를 심은 사람>의 저자), 사티쉬 쿠마르와 쓰지 신이치(<슬로 라이프>의 저자)의 삶과 철학도 감동적이었다. 내가 그 분들의 삶을 온전히 따라할 수준은 못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실천’해보기로 마음억었다. 

국토해양부 조사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우리나라 승용차 수송분담률은 56.8%로, 2001년(73.5%)에 비해 감소했다. 상대적으로 버스의 수송분담률은 14.1%에서 24.6%로 증가했다. 지하철을 포함한 철도의 수송분담률도 9.8%에서 15.9%로 증가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떨까. 수도권의 경우 2010년 기준으로 대중교통수단 수송분담률은 54.3%였다. 반면 도쿄의 경우에는 이미 1988년에 지하철 수송분담률이 73%에 달했다. 같은 해 뉴욕은 75%, 런던은 70%, 파리는 54%를 기록했다. 수도권의 대중교통수단 수송분담률이 20여년 전 파리와 비슷한 수준인 셈이다. 한국은 ’환경’과 ’생태’를 향해 갈 길이 아주 멀다... 

2009년 12월에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nference of the parties)’가 코펜하겐에서 개최되었다. 그동안 온실가스 감축 노력의 기준이던 2007년의 ‘교토의정서’(2012년 만료)를 대체할 새로운 국제협약을 이 정상회의에서 논의했지만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 저자는 코펜하겐 회의에 영국 정부와 노동당, EU 각국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할 것이다. 
‘교토의정서’는 산업화를 주도해온 선진국(37개국과 EU)에 기후변화의 책임을 묻는 국제협약으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배출량 대비 평균 5.2퍼센트 줄이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이었다. 그런데 ‘교토의정서’는 미국의 비협조로 사실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코펜하겐 정상회의는 그 중요성이 크다.
그런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위원회’(IPCC)는 2001년 보고서에서 기온 상승과 관련해 66퍼센트가 인간의 활동에 기인한다고 했는데, 2007년 보고서에서는 90퍼센트 이상이라고 못 박았다. 기온상승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이 그만큼 시급해졌다는 의미다.
2009년 12월 코펜하겐 회의는 합의도출에 실해하였고 이듬해인 2010년 12월 멕시코 칸쿤회의에서는 최소한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 책은 이번 주 금요일 세미나 교재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국제정치의 흐름과 관계가 어떠한지에 대하여 논의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 * 앤서니 기든스는 누구인가? --------------------------
사회 이론과 계층론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학자이다. 특히 사회 이론 분야에서 유럽의 지적 전통과 현대적 흐름을 반영한 ’사회 구조화 이론’으로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구축했다.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모두 반대하고 ’제3의 길’이라는 새로운 사회발전 모델을 주창했다. 영국 헐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런던정치경제 대학(LSE)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런던정치경제 대학 학장을 지냈으며, 현재 런던정치경제 대학 명예교수이자 영국 상원의원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 [현대 사회학],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이론], [노동의 미래], [제3의 길], [현대성과 자아정체성] [성찰적 근대화], [사회 구성론],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친밀성의 변동], [사회학의 변론] 등이 있다. ----------------------------

저자는 영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상원의원이다. 그는 20세기 말에 영국 노동당이 구좌파식 이념인 ’제1의 길’과 대처 전수상의 대처리즘, 즉 신자유주의 이념인 ’제2의 길’을 뛰어넘어 ’제3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여 유럽 사회 전역에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국내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주변 지인들에게 읽어보라고 소개한 책 중에 저자의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2007)>도 있다. 그 책에서도 저자는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영국 노동당의 적극적인 노력과 EU 중심의 정치학을 강력하게 제시했다. 

지금까지 기후변화협약을 위한 정부간 협의는 EU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저자는 EU가 앞장서서 기후변화를 글로벌 어젠다로 설정하려는 ‘기후변화의 정치학’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는 이제야 세계 모든 국가가 ‘기후변화의 정치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며, 또한 각국이 국내정치의 중심 문제의 하나로 채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저자는 하나의 역설로 이 책을 시작한다. 그것은 "지구온난화로 야기되는 위험은 결코 손에 잡히지 않으며 일상생활에서 거의 감지될 수 없기에 그 잠재력이 제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우리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뿐이다."라는 것이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후변화 문제는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지 못하며 늘 뒷전으로 밀린다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역설을 ’미래 디스카운트(Future Discount)’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역설은 사람들의 행동을 마비시키거나 억제하는 데도 영향을 미치는 중심적인 개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수없이 그 심각성을 듣더라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여기에서 ‘기후변화의 정치학’을 출발시킨다. 

그는 서문에서 자신의 핵심 주제를 요약하여 정치지도자들에게 다음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첫째,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정치적, 경제적 통합을 진작할 것이며 그런 일을 시행하라. 예를 들어 기업인들에게 사전에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관행을 만드는 일이 중요한데 그들이야말로 새로운 환경정책 시행에서 최상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이런 것을 ‘기후변화의 긍정성’이라 함.) 특히 어떤 사안에서 예견되는 리스크가 지극히 추상적이거나 또는 먼 훗날에 가시화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둘째,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가지는 관심을 그들의 일상사와 연관지어 설명하는 일에 집중하고 그런 일상사에 굉장한 문제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라. 예를 들어 일반대중은 기후변화가 야기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경고보다는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운전요령에 대해서 더 잘 반응할 것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정책을 수립하고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단기적인 계획은 물론이고 특히 장기적인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셋째, 지구온난화 문제로 정치적 이득을 취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버려라. 어쩌면 그러고 싶은 유혹이 상당히 클 것이며, 특히 정부나 집권여당이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경우에는 더욱 그러할 수 있다. 만약 가능하다면 기후변화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주요 야당들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때 사회정의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만약 기후변화의 영향에서 사회적 빈곤층을 보호할 수 있는 특별한 대책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기후변화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될 것이다.
넷째, 기후변화 정책은 그 속성이 대단히 복잡하므로 그 각각에 대해서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물론 장기적인 영향들까지를 고려한 정밀한 리스크 평가(risk assessment)를 시행해야 한다. 우리는 재생에너지가 전체 에너지 수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미래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게 전환하는 데는 엄청난 사회적?경제적 영향이 수반될 것이기 때문에 세계의 어떤 나라와도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 세 장에서 국제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적응’의 문제, 기후변화의 문제는 에너지 안보를 제외하고는 논의가 불가능함을 역설한다.
우리 인류는 이미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방출했으므로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성공을 거둔다 해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모면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영향에 더욱 용이하게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어느 날 변화가 발생하여 우리가 그것에 직면했을 때 단지 그것을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최대한 빨리 그런 변화의 도래를 예상하여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바로 ‘적응’임을 역설한다.





 

1장. [기후변화의 위험성]에서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제기하는데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조직은 유엔 산하 IPCC이다. IPCC가 2007년 ’가장 실현성이 높은 시나리오’로 제시한 것은 21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기온이 4도시 이상 상승하고 해수면도 48cm 높아진다. IPCC와 EU는 온실가스 정책의 목표를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을 2도시 이내로 머물게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이산화탄소 농도를 450CO2e 수준으로 묶어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IPCC의 시나리오에 대해 비판하는 회의론자와 강경론자를 모두 소개한다. 회의론자는 IPCC의 수치가 과장되어 있다는 것이고 강경론자는 IPCC의 목표 달성은 이미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 강력한 목표와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모든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감안하면서도 위협을 과장하거나 온실가스 저감에 회의적이기 보다 낙관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주장한다. 기후변화 이외에도 핵무기 확산이나 국제 테러 등 모든 리스크에 대해 균형감각을 잃지 말고 정밀하게 평가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2장. [자원 고갈인가, 자원 감소인가?]에서 저자는 에너지 안보에 대한 리스크를 검토한다.
저자는 ’석유의 역사는 곧 제국주의의 역사’라는 명백한 사실을 강조하면서 ’피크 오일’에 대한 찬반 논의를 소개하고 에너지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힘겨루기와 개발도상국까지 포함된 전세계적인 자원 쟁탈전의 심각성에 대해 우려한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에너지를 둘러싸고 미국, EU,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이 갈등국면에 진입해 있다. 

3장. [녹색운동과 그 이후]에서 저자는 그동안의 녹색운동이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는데 있어 방해만 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단일한 녹색운동’은 없고 다양한 입장과 행동지침이 존재하며, 녹색주의나 녹색운동도 사회주의와 마찬가지로 산업혁명의 산물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녹색운동이 주장하는 참여민주주의만이 유일하게 가치있는 민주주의, 최선의 사회 형태가 분권화된 사회, 비폭력에 대한 맹신, 자연의 신성화, 경제성장에 대한 반대, 사전예방 원칙, 지속가능성, 오염자 부담 원칙 등을 비판하면서 녹색운동이 기후변화를 실질적으로 막아내고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기후변화의 정치학을 위해 필요한 개념들을 정리한다. 그것은 책임국가, 정치적 통합, 경제적 통합, 최우선순위에 놓기, 긍정적인 목표 설정, 정파의 초월, 퍼센트 원칙, 개발 절박성, 과도한 개발, 선제대응이다.

저자가 녹색운동을 비판하는 정도를 넘어 폄하하는 것은 약간 어리둥절한 느낌이다.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감축 문제가 지금처럼 국제정치의 주요 의제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 녹색운동이 기여한 것이 아닌가?(잘은 모르겠지만...^^)
그리고 ’사전예방 원칙’이 과도하게 적용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일면 타당한 점도 있지만, 부작용의 사례로 이라크 침공과 GMO(유전자 조작식품)을 예로 든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논리적인 면보다 감정적인 면이 엿보이는 주장이라는 느낌이다.

4장. [주요 환경 선진국들의 현황]에서 저자는 현재까지 선진국들의 환경과 온실가슴 감축 현황을 평가한다. ’환경성과지수’에서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스위스, 코스타리카가 상위권이고 ’온실가스 감축 부문’에서는 스웨덴, 독일, 아이슬란드, 영국이 상위권이다. 
저자는 상위권 국가들의 과정과 현황을 분석하면서 몇 가지 특징을 제시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기후변화 자체보다 에너지 안보에 집중하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점, 좌파정권일 때 정부의 노력이 더 이루어진다는 점, 탄소세는 긍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 재생에너지가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려면 기술개발에 대한 정부지원이 중요하다는 점, 원자력은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많은 국가에서 에너지 다양화의 한 대안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점, 정부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점, 개발도상국으로의 ’온실가스 배출 이전’이 없었따면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온실가스 감축 방안에 있어 현실론에 근거하여 논의를 진행한다. 물론 기후변화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개혁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존재하는 조직과 기구들을 무시할 수 없으며 또한 민주주의 전통을 중시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국가(state)의 역할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국가의 의미는 다양한 수준의 공권력을 의미하는데, 중앙정부와 지역정부, 지방정부 등을 모두 아우른다. 그리고 지구화 시대에는 그런 공권력이 정치학자들이 이른바 ‘다층적 거버넌스’라 일컫는 다양한 수준에서 발휘되는데 위로는 국제무대에서, 아래로는 지역과 도시와 지방에 이를 수 있음을 역설한다.

5장. [다시 국가 주도의 시대로?]에서 국가가 맡아야 할 중요한 업무들을 제시한다. 그것은 시민들이 미래를 먼저 생각하도록 돕는 것, 현 사회가 직면한 다른 리스크들을 함께 고려하면서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를 다루는 것, 정치적 경제적 통합을 도모하는 것, ’오염자 부담 원칙’을 제도화하도록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 기후변화 대책을 막으려는 산업계의 요구를 물리치는 것, 기후변화 문제를 항상 최우선의 정치 의제로 삼는 것, 저탄소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 적절한 예산 계획을 수립하는 것, 실제로 일어난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대비하는 것, 기후변화 정책의 국지적-지역적-국가적-국제적 측면들을 통합하는 것이다.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가개입과 국가주도의 경제운영에 대한 역사를 검토하면서 종합계획 수립을 주문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대부분 사람들이 기후변화의 원인에 대해 아주 막연하게 알고 있으며 기후변화에 대한 추가 비용에 긍정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개인과 가정의 일상생활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는 행동과 습관이 많음을 지적하면서 이를 위해 규제나 감시가 아닌 인센티브 제공이 중요함을 주장한다.
 
저자는 정치학에서의 ’의제 설정 이론(Agenda-setting Theory)’를 통해 기후변화를 최우선 정치 의제로 삼으려면 지표상의 변화에 대한 기회 포착, 연간 예산 편성, 초당적 협력, 대중들이 직접 경험한 일과의 연계 등을 제시한다.

6장. [기술과 세금제도]에서 저자는 풍력, 파력, 조력, 지열, 바이오연료, 수소에너지, 재생에너지, 탄소저감기술 등 대부분의 새로운 기술들이 모두 적당한 수준까지만 개발된 상태임을 지적한다. 대신 현시점에서 가장 장래성이 있는 기술은 원자력, CCS(청정석탄), 태양에너지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어떤 기술도 비용이 만만치 않음을 지적하면서 기술의 다변화를 추구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또한 새로운 에너지 기술개발을 위해서는 정부의 보조금 지원, 특허에 대한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기후변화의 뉴딜 정책’을 통해 일자리 만들기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탄소세와 탄소시장이 공존하면서도 탄소세를 더 지지한다.

7장. [적응의 정치학]에서 저자는 ‘적응’의 문제,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의 문제는 에너지 안보를 제외하고는 논의가 불가능함을 역설한다. 인류는 이미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방출했으므로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성공을 거둔다 해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모면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영향에 더욱 용이하게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것은 어느 날 변화가 발생하여 우리가 그것에 직면했을 때 단지 그것을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최대한 빨리 그런 변화의 도래를 예상하여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바로 ‘적응’임을 역설한다.

8장. [국제협상, 유럽연합, 그리고 탄소시장]에서 저자는 2007년 발리 회의 이후 진행되는 향후 협상에 대해서 특별한 성공을 기대하지 말것을 주문한다. 그 협상들이 지구온난화 억제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실제로 기후변화협약을 위한 정부간 협의는 2009년 코펜하겐 회의와 2010년 칸쿤 회의에서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저자는 EU 회원국들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 얼마나 성공할지 불확실하며, 현실적으로 기대치에 훨씬 미치지 못할 수도 있음을 감안해야 함을 지적한다. EU의 경우에도 모든 일은 회원국들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탄소시장에 대해 저자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다.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탄소시장이 열리기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9장. [기후변화의 지정학]장에서 저자는 당면한 기후변화의 문제와 에너지 안보 문제가 얼마나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설명한다. 지금까지 정치계와 학계는 이 두 문제를 때때로 별개의 사안으로 간주했고,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를 동시에 다룬 문헌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에너지 안보를 다루는 문헌과 기후변화를 다루는 문헌들 사이에 명백한 불균형이 존재하며, 에너지 안보의 분석에서 그것이 명백하게 증명되듯이 온실가스 감축 문제를 다룰 때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정학적 검토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논의들은 국제협상의 세부 사항에 집중하거나 또는 기후변화로 인한 결과로 빚어질 수 있는 지정학적 분열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는 것. 지금 기후변화를 둘러싼 논의에서 부족한 것은 정치지도자들이 내리는 결정에 지정학적 요소들이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제대로 분석해내는 일이다. 또한 그는 기후변화에 대한 새로운 협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선진국의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세계 최대의 에너지 사용국이자 온실가스 발생국인 미국과 중국의 더욱 적극적인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 속에서 저자는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차원에서, 그리고 국제기구와 국제협상 차원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억제를 위해서 시행할 수 있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 가운데는 신생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절감 기술을 포함하는 과학 기술에서 탄소세로 대표되는 조세제도와 시장의 힘을 최대로 활용하고자 하는 온실가스 거래시장 등 금융과 재정 분야, 
그리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 사이의 협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서 청정개발체제(CDM)에 대한 새로운 제안 등에 이르기까지 현재 논의되고 있는 거의 모든 분야와 대안이 다 포함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 하나만으로도 온실가스 배출 절감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또한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어떻게 그 문제를 협의해 나가며, 새로운 합의를 위해 어떤 단계를 밟아나가야 할지를 충분히 알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기후변화가 정치 의제의 전면에 나타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일 것이다. 이명박정부가 2009년 국제회의에서 ’녹색성장’ 등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약속을 했지만, 실제 현정부가 ’기후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나 전략, 목표나 방법, 의지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실은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아직 한국 정치와 경제적 현실은 기후변화를 걱정할 정도로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국민적인 환경의식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들의 노력이 훨씬 더 배가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책 전체를 관통하면서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대한 깊은 신뢰, 그리고 국가와 정치가에 대한 높은 신뢰를 엿볼 수 있다. 영국이나 유럽의 정치경제 현실과 미국이나 한국의 정치경제 현실이 많이 달라서 그런가? 나는 미국이나 한국의 정치경제 현실을 돌아보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도, 국가와 정치가도 신뢰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현실에서 보여준 모습과 더불어 그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근본적인 동력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의 욕망’을 토대로 굴러가는 자본주의라는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에 제동장치를 달아서 필요할 때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자본과 욕망에 둘러쌓여 있는 정부와 정치가가 본래의 도덕성과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쉽게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기든스의 철학과 정책에 대해 더 알아야 할 것 같고 자본주의, 국가, 정치에 대한 더 많은 경험과 깊은 분석도 필요할테니...

* 책 속의 책 : 마틴 리스 <우리 최후의 세개 In our final century >, 빌 맥과이어 <아마겟돈에서의 생존 >, 앤서니 기든스 <제3의 길>

[ 2011년 6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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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2 - 한니발 전쟁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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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5권 중 두 번째...
2권의 부제는 ’한니발 전쟁’이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264년 ~ 기원전 146년에 해당한다.
(책 읽는 시간은 추석 연휴 2일째 + 3일째 오전까지 소요되었다.)


 
로마는 이 시기에 서구에서 가장 유명한 전쟁 중의 하나인 ’한니발전쟁(포에니전쟁)’을 승리로 거두었다.
’한니발전쟁’의 승리를 통하여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의 지배국가에서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서 지중해 전역에 대한 지배국가로 탄생하게 된다.
여기서 지중해 전역이라 함은,
1. 지중해 서쪽으로는 이베리아도 전역(현재의 스페인과 포루투칼)
2. 지중해 서북부지역(현재의 프랑스 남부)
3. 지중해 동북부지역(현재의 크로아티아와 알바니아 해안가, 그리스전역)
4. 지중해 동부(터키 서부, 시리아, 이라크 서부, 이스라엘)
5. 지중해 남부 전역(튀니지, 알제리와 리비아/이집트 해안가)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제외한 지역에 대한 지배방식을 ’속주’, ’자치국’, 그리고 ’동맹국’으로 나누어 통치,관리했다,
당시 로마 지배지역의 국가와 도시명으로 보면,
1. 속주 : 먼에스파냐, 가까운 에스파냐, 카르타고, 시칠리아섬, 사르데냐섬, 코르시카섬, 갈리아, 일리리아, 마케도니아, 아카디아동맹, 소아시아, 마그네시아
2. 자치국 : 프랑스남부 프로방스, 스파라타, 아테네
3. 동맹국 : 누미디아왕국, 이집트왕국, 비티니아왕국, 폰투스왕국, 아파도키아왕국, 시리아왕국, 크레타왕국, 키프로스왕국, 로도스왕국이 이에 해당한다.
 
어떻게 하여 로마는 약120년 만에 그 거대한 지중해 전역에 대한 패권을 장악했을까?
그것은 외형적으로 크게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로마가 융성하기 시작한 이 시기에 이르러 그 전까지 절대적, 상대적으로 강력했던 국가인 마케도이나왕국과 페르시아왕국이 쇠퇴한 때문이고
또 하나는 당시 지중해 패권국이던 카르타고와 국가의 운명을 건 ’한니발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저자도 그런 이유로 <로마인 이야기> 제2권을 대부분 ’한니발전쟁’에 할애했다.
마케도니아왕국은 알렉산더대왕 사후에 알렉산더의 유언에 따라 몇 개의 지역이 왕국-마케도니아, 아카디아,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으로 분할되어 각자 유지되어 있었다.
 
* 한니발전쟁과 포에니전쟁 : ’한니발전쟁’은 카르타고의 명장의 이름이 ’한니발’이었기 때문에 후세에 붙여진 이름이고 ’포에니전쟁’은 포에니가 라틴어로 페니키아인을 의미하고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인들의 후손이기 때문에 로마인들이 칭한 이름이다.
 
’한니발전쟁’은 세 차례로 나누어 전개되었다.
제1차 전쟁은 기원전 264~241년에 진행되었는데, 어렵지 않게 로마가 승리하였고 로마는 그 대가로 시칠리아섬에 대한 지배권과 이탈리아반도와 그리스 도시국가의 해상통로에 대해 안정을 가져왔다.
제2차 전쟁은 기원전 219~216년에 진행되었고 가장 치열한 전쟁이었으며 로마와 카르타고의 국가운명을 건 한 판 승부였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경로(아프리카 -> 이베리아반도 -> 프랑스 중부 -> 알프스산맥 -> 이탈리아북부)를 거쳐 로마 본토에 진입한 것이다.
한니발은 이베리아반도에서 보병 9만명과 기병 1만2천명을 구성하여 프랑스를 지날 때 보병 5만9천명과 기병 9천명이었으나 로마의 본토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보병 2만2천명과 기병 6천명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한니발은 로마와 속국을 분리시켜 갈리아용병 2만4천명을 추가하였고 로마는 시민병 4만2천명과 동맹국 4만5천명을 동원하였고 이탈리아 반도 중부 평원에서 그 유명한 ’칸나이 전투’를 치르게 된다.
’칸나이 전투’는 한니발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으나, 한니발은 로마를 공략하지 않고 이탈리아 남부로 위회하여 로마의 속주와 자치국을 공략하여 ’로마연합’을 붕괴시키려 했으나 시라쿠사와 타란토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실패했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로마는 새로운 집정권과 장군 크라쿠스, 마르켈루스, 스키피오가 등장하여 한니발을 이탈리아 반도 내에서 고립시키고 카르타고 본국의 지원을 차단하였다.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내에서는 장기전을 치르되, 이베리아 반도의 한니발 후속군대와 카르타고 본국에 대한 전투에서 잇달아 승리하여 결국 한니발은 본국으로 후퇴하였으나,
결국 한니발은 아프리타 북부 자마에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군대에 결정적으로 대패한다.
제3차 전쟁은 기원전 149~146년에 진행되었고 이 전쟁은 전투가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 되버리고 결국 카르타고 왕국은 멸망하여 역사에서 사라진다.


 
로마가 ’한니발전쟁’을 승리로 이끈 근본적, 구조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저자가 주장하는 몇 가지 이유를 정리해 보면,
첫번째는 로마 건국 후 500년 넘게 정착된 정치체제(공화정)에 있었다.
- 특히, 당시의 로마는 원로원과 로마시민, 평민이 똘똘 뭉쳐있었다.
  그만큼 원로원은 정치와 정책제안이라는 제 역할은 다하였고
  집정관, 장군들을 비롯하여 전쟁에서 사망한 원로원 의원이 상당수였다.
두번째는 역시 로마 건국 후 500년 넘게 정착된 외교체제에 있었다.
- 비록 이탈리아 북부의 갈리아인과 시라쿠스 등 일부 속주와 동맹국이 로마를 배신하였으나,
  다른 속주들과 동맹국들은 로마와 함께 군대에 동참하여 전쟁에 참여하였다.
  이들이 없었다면 수 십 만명이 참가한 ’한니발전쟁’에 로마는 제대로 군인을 충원할 수 없었다.
- 특히, 로마가 건국 이래 지속해온 대외 정책, 즉 ’주변국의 로마화’가 핵심...
  로마는 원칙적,기본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후 패배한 민족이나 국가를 멸망시키거나 말살시키지 않고 가급적 상대방의 체제와 종교,문화를 인정하되 세금이나 군대협조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로마의 세력권과 경제력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나머지 요소들은 모두 ’운’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한니발의 실책, 카르타고 본국의 실책, 명장 스키피오의 등장, 그리스 도시국가의 동요 등...
 
저자는 <로마인 이야기> 제1권과 제2권을 통하여 로마가 지중해 패권을 차지하게 된 이유가 결국 공화정과 속주/동맹국 체계 등 로마의 초기 국가체제에 있었음을 이야기하였고
그와 동시에 원로원 등 공화정 자체의 구조적인 약점과 한계도 암시하고 있다.
 
1권과 2권을 통하여 가장 인상깊은 로마의 모습은 ’로마연합’과 ’로마화’에 있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주변국가를 침략하는 대다수의 지배국가들의 승전 원칙은 대부분 ’학살’과 ’노예화’, ’약탈’과 ’점령’이었다.
그리스 문명의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그랬고 이집트와 페르시아가 그랬으며,
중세의 유렵, 십자군전쟁, 이슬람이 그 인간성과 전통(?)을 이었다.
심지어 19세기와 20세기까지 그렇게 지배가 이어졌으며,
아시아지역과 아메리카 지역을 비롯한 지구상 모든 승전국가가 그런 식이었다.
로마는, 인류문명이 아직 제대로 태동하기 전인 기원전에 새로운 체계와 정책을 시도했고
그 결과 1,200년 동안 지중해 인근의 패권국가로 군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우수한 로마의 역사와 전통을 이었다고 자부하는 서구 열강들이 19세기와 20세기에 보여준 수 많은 학살과 노예화, 약탈과 점령을 계속해온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종교와 이념을 무기로 자행된 수 많은 학살과 약탈을...
물론, 한반도도 그런 면에서는 자유롭다고 말 할 수 없다.
21세기에 들어서도 현대식 ’학살’과 ’약탈’이 자행되고 있으니...


그런 면에서 기원전 1세기 경에 카이사르가 한 말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명언이 될 것 같다.
"인간은 보통 자기가 보고 싶은 것, 보이는 것만 본다..."

  

[ 2010년 09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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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자 행성 - 린 마굴리스가 들려주는 공생 진화의 비밀 사이언스 마스터스 15
린 마굴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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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주말에 TV에서 방영되는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을 좋아한다. 요즘은 자주 보지 못하지만, 예전에는 즐겨 시청한, 몇 개 되지 않는 프로그램이었다. ’동물의 왕국’을 좋아했던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자연 그대로의 조건 속에서 조건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인간이 아닌)동물들의 삶과 행동이 편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수 십억 년의 진화를 통해 태어나고 자란 동물로써 조상이 같은 먼 친척에 대한 향수와 친밀감일 수도 있고 동물 수컷의 한 마리로 ’정글의 법칙’과 같은 양육강식의 피비린내 나는 ’먹고 먹히는’ 동물 세계를 내심 즐겼을 수도 있다.


내가 어려서부터 학교와 사회, 방송을 통해 듣고 배운 것 중의 하나가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이었다. ’인간도 동물의 일종’이라는 이야기는 지구상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할 공동 운명체라는 뜻보다도 인간사회도 생존경쟁이 본질이고 따라서 ’약육강식’이 시스템이라는 뜻으로 애기되곤 했다. 결국 21세기 10년이 지난 지금 전세계 대부분의 인류사회에서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이라는 문화와 의식이 지배하고 있다. 그런 개념을 미리 배우고 익힌 사람들이 지배자와 상층에 올라서서 나머지 사람들에게 ’인생은 생존투쟁’이라고 설득하고 주입했을 것이다. 특히 서구사회는 기독교 사상과 진화론이 맞물려 18세기 이후 ’생존경쟁’의 문화가 자리잡았고 자본주의 산업사회는 ’생존경쟁’의 덕을 톡톡히 보면서 성장하였다.

하지만 한국사회에 ’생존경쟁’이 문화와 의식으로 들어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내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한 학교와 방송의 ’의식주입’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올라올 때까지 가정과 사회에서는 ’생존경쟁’이 부분적이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그토록 남과 북, 도시와 농촌, 수도권과 지방, 전라도와 경상도, 남자와 여자, 구세대와 신세대를 대립시키고 갈등을 조장시켰어도 한국 국민들의 공동체 의식과 협조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내 생각에 한국 사회 내부에서 서서히 커가던 ’생존경쟁’이라는 의식이 본격적, 지배적인 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1997년 IMF 사태 이후였다. 물론 시점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경쟁’과 ’대립이 국가와 국가, 국가 내 사회 각 분야, 계층과 계급, 개인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격화시키고 고립화시키고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나는 현대사회에서 ’대립’과 ’경쟁’이라는 개념과 문화를 개인과 사회집단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깊숙하게 각인시킨 요인 중에서 근대과학, 그 중에서도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서 추출된 ’자연선택’, ’자연도태’, ’생존경쟁’, ’약육강식’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그러한 개념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대변하는 개념과 다르던, 그렇지 않던 간에...)


’인간’, ’사람’의 생물학적, 인류학적 학문적 이름(학명)은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배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아니라 그 아종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라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뜻은 말 그대로 ’슬기로운(지혜로운) 사람’이다. 
일반 사람들이 알고 기억하는 ’인류의 진화’의 가장 기본적인 이론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Evolution)’이다. 현재 과학계에서 지배적인 이론이고 전 세계 대부분의 정규 교육과정의 교과서에 실려 있는 ’진화’란, 생물 집단이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변화를 축적하여 개체와 집단의 특성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새로운 종의 탄생을 일으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과학자들은 여러 생물 종 사이에서 발견되는 유사성을 통해 현재 존재하는 모든 생물 종이 진화 과정을 거쳐 먼 과거의 공통 조상, 즉 공통의 유전자 풀로부터 점진적으로 분화되어 왔다고 설명한다. 즉, 진화는 ’세대에서 세대로 유전형질이 전달되는 도중에 일어나는 유전자의 변화가 누적된 결과이다. 유전자는 DNA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전자 변화가 일어나는 요인은 ’자연선택에 의한 돌연변이’와 ’유성생식에 의한 유전자 재조합’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유전자의 전달, 변화, 조합 등을 다루는 학문이 ’유전학(Genetics)’이다. 진화론은 생물학에서 ’유전학’이 분화되도록 만들었다. 
 
’진화론’과 ’유전학’의 주요 개념인 대립과 경쟁에 반기를 들면서 진화이론을 뿌리채부터 흔들고 있는 이론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린 마굴리스’도 새로운 이론을 주장하는 과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녀는 지구상에 최초의 생물체가 탄생한 이후 지금까지 ’진화’를 거쳐 현재의 생물종들이 이어져왔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DNA의 역할이나 돌연변이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녀는 생명체의 탄생과 진화가 ’대립’이나 ’경쟁’이 아니라 ’협조’와 ’공생’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대립’과 ’경쟁’이 지구상 생명체의 존재양식이라는 전제를 근본에서부터 부정하는 이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의미가 크다. 지구 탄생 이래 자연이, 그리고 인류가 ’경쟁’과 ’투쟁’ 속에서 생존해왔고 앞으로도 ’경쟁’과 ’투쟁’만이 생존의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주장하는 수 많은 주장과 이론, 협박과 회유의 근거를 깡그리 부정하고 ’공생’과 ’협조’를 인류사의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단순히 새로운 과학 이론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그녀는 10대 시절부터 ’비주류’였다. 기존의 사고방식, 기존의 학교체계를 부정하고 스스로 학습과 존재방식을 창출하기 위해 홀로 노력하였다. 그러한 그녀의 태도는 과학계에 들어간 이후에도 기존 이론, 기존 문화, 낡은 관념과 싸우면서 시작된다. ’자연선택’이라는 주류 과학계의 이론을 ’회의’하면서 올바른 길을 추구한 것이다. 
 
-------------------- * 린 마굴리스는 누구인가? ---------------------------미국의 생물학자로 메사추세츠 앰허스트대학교의 교수이다. 세포생물학과 미생물 진화에 대한 연구, 지구 시스템 과학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미항공우주국(NASA) 우주과학국의 지구생물학과 화학진화에 관한 상임위원회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NASA의 지구생물학에 관한 실험들을 지도하고 있다. 공생진화론과 같은 충격적인 가설로 생물학계를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지칠 줄 모르는 연구로 19개의 상을 수상했으며 수많은 국제학술 강연, 100종이 넘는 논문과 더불어 1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영국의 대기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에 공헌한 바가 크다. 아들인 도리언 세이건과 함께 책들을 펴냈으며, [진핵세포로의 진화], [공생과 세포진화]등의 저술이 있다. ---------------------------------
 
이 책은 행성의 생명, 행성의 진화, 그리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다룬다.  
 
1. [지구는 공생자 행성]에서 저자는 ’공생’이라는 현상이 지구 전체에, 생명체 전체에 걸쳐 아주 광범위하게 존재함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생물 시간에 배운 ’공생(共生, Symbiosis)’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 악어와 악어새, 상어와 빨판상어, 고래와 따개비 등 우리는 우리의 눈이 쉽게 볼 수 있는 현상만을 알고 있고 기억한다. 그렇지만 ’공생’은 아주 일상적이고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사람의 소화관과 눈썹에는 세균과 동물 공생자들이 우글거리고 있으며, 화분이나 공원에도 드러나지는 않지만 공생자들이 널려 있다. 흔한 잡초인 토끼풀과 갈퀴나물의 뿌리에는 작은 구슬들이 달려 있다. 이 구슬들 안에는 질소가 부족한 토양에도 식물들을 자라엑 해주는 질소 고정균들이 들어 있다. 사람이나 개 등, 포유류의 소화관에 벌레들이 공생하고 있다. 

[ 식물의 뿌리와 균근 ]

[ 소화기관 속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 ]



저자는 생물체들 사이의 ’공생’이라는 생존방식은 현재 뿐 아니라 생명체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왔음을 주장한다. 실제 수 억년 전부터 생존해 온 세균이나 버섯류, 원생동물들 사이의 공생 관계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저자는 그러한 일상적이고 구조적인 생명체 사이의 공생이 생명체의 부분적인 진화와 새로운 종의 탄생을 가져왔음을 설명한다. 장기간 지속적으로 공생관계가 확립됨으로써 새로운 조직, 기관, 생물, 더 나아가 종이 생성되는 것을 진화 용어로 ’공생 발생(Symbiogenesis)’이라고 한다. 
궁극적으로 저자는 세균들이 서로 융합하여 식물과 동물의 조상들을 비롯한 더 큰 세포들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유전자 분석 같은 분자생물학적 기술들은 저자의 세포 공생 이론 중 상당부분이 옳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세균이 식물과 동물의 세포에 들어가서 영구적으로 통합되어 색소체와 미토콘드리아로 변했다. 
[ 말미잘의 공생 ]


2. [정통 견해에 맞서다]에는 저자가 13세부터 기존 관념에 맞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는 만14세에 시카고 대학교의 특수 조기 입학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행운을 얻었고 3년 반만에 학사 학위를 받고 <코스모스>의 저자이자 천제물리학자인 칼 세이건과 결혼했다. 저자는 대학원에 들어간 이후 기성 생물학자, 유전학자, 화학자들이 서로의 연구분야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협력도 없이 관성대로 기존 학문을 이어가고 있는데 반발한다. 그녀는 세포질 유전학, 세균 유전학, 세포학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에 몰두한다. 그녀가 자신의 주요 이론적인 결과물인 ’연속 세포 내 공생 이론’ 논문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학회지들로부터 15회나 거부당했다. 
’연속 세포 내 공생 이론’이란 "식물과 동물 뿐만 아니라 곰팡이와 핵이 있는 세포로 이루어진 모든 생물들의 세포가 서로 다른 종류의 세균들이 특정한 순서로 융합됨으로써 유래했다"는 것이다.
[ 원핵세포와 진핵세포의 비교 ]


3. [개채는 합병에서 태어났다]는 ’연속 세포 내 공생 이론’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여기서 
’연속’이라는 말은 융합이 순서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림처럼 처음에는 ’스피로헤타(스필로플라즈마)’와 ’서모플라즈마’가 융합하여 진핵세포가 되고 여기에 ’파라코쿠스 델로비브리오’가 융합하여 원생생물계를 구성한다. 원생생물계는 ’구형 시아노박테리아(클로록시박테리아)’와 융합하여 식물계를 구성하고 다른 세균들과 융합, 진화 후 동물계와 균계를 구성하게 된다. 


처음에는 황과 열을 좋아하는 발효성 ’고세균(테르모플라스마류, 호열산세균)’이 유영성 세균과 융합했다. 하나가 된 융합체의 두 구성 부분은 함께 핵세포질이 되었다. 이 최초의 헤엄치는 원생생물은 현대의 후손들과 마찬가지로 혐기성(산소를 싫어하는) 생물이었다. 이들은 유기물은 풍부하지만 산소가 희박한 진흙, 모래, 암석틈새, 물웅덩이, 연못에 살았고 체세포 분열을 했다.
유영하는 원생생물은 자유생활을 하는 또 다른 미생물인 산소 호흡하는 세균(프로테오박테리아, 미토콘드리아의 조상)이 융합체에 합쳐졌다. 그리고 더 크고 더 복잡한 세포가 지금으로부터 20억년 전에 생겼다. 산소 호흡을 하는 삼자 복합체(산과 열을 좋아하는 세균 + 헤엄치는 세균 + 산소 호흡하는 세균)는 알갱이 먹이를 삼킬 수 있게 되었다. 산소를 호흡할 수 있으므로 대기에 점점 축적되는 자유 산소에 대처할 수 있게 되었고 엄청나게 증식할 수 있었다.
산소 호흡하는 삼자 복합체는 초록색 광합성 세균(시아노박테리아)을 삼키고 그것을 소화시키는데 실패하면서 이루어졌다. 결국 소화되지 않은 초록색 세균은 살아 남았고, 그것까지 몸에 지닌 융합체는 번성하게 된다. 그 초록색 세균은 엽록체가 되었고 녹조류가 생겼다. 
[ 고세균 ]

[ 스피로헤타 ]

[ 프로테오 박테리아 ]

[시아노 박테리아 ]


4. [생명의 덩굴]에서 저자는 기존의 생명체의 ’계통분류학’의 변경을 시도한다. ’공생발생’을 주장하는 저자로서는 새로운 종의 탄생과 기원이 ’분리’가 아닌 ’융합’이니 당연한 주장일 것이다. 1735년 린네에 의해 시작된 생명체의 분류체계는 처음 ’동물-식물’처럼 단순하게 구분되었고 2004년 기준으로 ’캘비어-스미스’의 ’6계 분류’로 구성되어 있다. ’6계 분류’는 세균 - 원생동물 - 크로미스타 - 균류 - 식물 - 동물로 이루어졌다. 저자는 ’2단 5계 분류체계’를 주장한다. 생물 전체를 크게 원핵생물(세균)과 진핵생물로 구분하고 공생발생을 통해 진화한 진핵생물은 원생생물 - 균류 - 식물 - 동물 체계이다.


5. [세포는 생명 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에는 생명의 기원, 즉 지구 생명체의 모체이자 아주 작은 단위인 세균 세포의 등장을 다룬다. 저자는 "생명이 시작될 때부터, 즉 유전 분자들(RNA 같은)과 그것들을 환경과 격리시키는 기름막의 상호 작용체였다."라고 주장한다. 과학은 실험실에서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을 합성시킬 수 있다. RNA는 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능력과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 때문에, 생명의 역사에서 DNA보다 먼저 나타난 것으로 여겨진다.  


6. [섹스의 진화]에서 저자는 고대의 스피로헤타-고세균 융합에서부터 원생생물의 동족 섭식형 ’원시 짝짓기’까지 분석한 후에 ’성()’도 공생과 마찬가지로 ’융합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융합체로부터 주기적으로 탈출하는 문제이고 하여 성은 주기성을 띤 공생의 아주 특수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7. [초바다의 해변에서]에서는 현재 육지에 사는 생물 종들의 수와 다양성, 그리고 종들의 상호 연결 양상이 생명의 본래 서식지였던 바다의 종들을 훨씬 초월함을 말한다. 육지의 생물량이 바다의 생물량보다 수 백배는 된다는 것이다. 육지 생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곰팡이와 조류, 균류다. 거의 모든 식물의 뿌리에는 균근 곰팡이가 달라붙어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곰팡이의 존재와 역할을 저자는 ’초바다(Hypersea)’라고 표현한다. 


8. [가이아]는 ’생리적으로 조절되는 지구’를 뜻한다. 1970년 초에 제임스 러블록이 제안한 이론이다. ’가이아 이론’은 "행성 생명의 총합인 가이아는 우리가 환경 조절이라고 말하는 일종의 생리현상"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가이아에게 결코 위협이 될 수 없다"(p.211)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공생발생 및 융합 이론과 러블록의 ’가이아’ 이론이 비슷한 지점에 도달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지구는 생명체와 지구가 서로 ’공진화’하기 때문이다. 
 
진화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비주류 이론이지만 과학기술의 발달과 분자생물학 등의 진전으로 저자의 중요한 근거들이 사실로 판명되고 있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생물학자들과 유전학자들이 저자의 이론에 공감을 표시하고 후속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고 한다. 긍정적이고 기대가 되는 현상이다.


저자의 ’공생’ 이론은 서구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특성이 있다. 그것은 서구사회의 역사와 문화, 이념과 철학이 ’이분법’과 ’세분화’에 찌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서구의 철학과 과학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저자는 과학이론으로서 뿐이 아니라 그러한 서구의 관성과 경향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와 같은 새로운 통합과 협동에 대한 학문적 분위기가 서구사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에서 시작하여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중에서도 리 스몰린(Lee Smolin)의 <양자중력의 세 가지 길>과 스티븐 슈나이더(Stephen H. Schneider)의 <실험실 지구>는 ’경쟁’, ’투쟁’이 아닌 ’공생’과 ’협동’, ’통합’의 철학적,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저자는 인간의 관념과 상식에 대해 늘 경계하기를 당부한다. 우리의 상식이나 생각은 사회적, 역사적으로 규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인간의 지적 탐구, 특히 과학적 탐구와 그것을 장려하거나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다양한 입장과 상황을 살펴본다. 과학적 발견들, 특히 기존 사회가 신성시하는 규범을 불편하게 하는 발견들을 제소리를 못내도록 침묵시키려는 음모가 지금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 우리가 사실이나 진리라고 여기는 관념들은 하나로 통합되어 우리의 사고방식을 형성한다. 우리는 보통 그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길들여진 무능력’, ’생각 집합’, ’현실의 사회적 구성물’ 같은 문화적 제약들을 생각해 보라. 매사에 우리의 관점을 결정하는 지배적 억업을 생각해 보라. 그런 것들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며, 과학자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언어, 국가, 지역, 시대는 우리의 인식에 한계를 설정한다. 누구나 다 그렇듯이, 과학자들이 은연 중에 갖고 있는 가정들도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사유를 한정지음으로써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p.14)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경쟁’이나 ’대립’보다 ’공존,공생’과 ’협동,통합’이 더 본질적인 모습이다. 공생과 협동이 중심일 때 인류사회는 질적으로 더 나은 새로운 결과물을 가져오지만, 지금처럼 경쟁이나 대립이 중심일 경우에는 갈등과 반목만 가져올 것이고 결국에는 상호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우리는 ’동물의 왕국’이 보여주지 못하는 더 자세한 현상과 더 거시적인 현상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뇌 속에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심어져 있는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의 논리는 잘못된 자연과학과 ’진화론’에 기인한다. 그리고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의 문화 속에서 이익을 얻는 집단들의 노력 덕분이라 할 수있다. 스스로 깨어나지 못한 채 그 문화에 계속 빨려들어갈 경우 ’소외된 삶’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이다. 

* 책 속의 책 :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윌리암 골딩 <파리대왕>, 앤서니 기든스 <제3의 길>
 
[ 2011년 6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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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1-06-29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사두고 여태껏 읽어보지 못했다는 걸 여기서 확인하게 되는군요.

붉은구름 2011-07-07 13:46   좋아요 0 | URL
^_^ 재미있어요. 한 번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