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 Art & Ideas 3
새러 시먼스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아트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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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야, 영혼의 거울]과 함께 지난 화요일 공부모임 세미나 교재였다. [고야, 영혼의 거울]에서 흐릿하게 보였던 고야의 생애와 화풍, 시대의식과 근대 미술계에 대한 영향을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고야, 영혼의 거울]은 고야의 그림과 동판화를 중심으로 고야의 미술가로서의 삶과 작품활동을 설명하였고 평생의 절친한 친구인 ’마르틴 사파테르’와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고야가 매 시기마다 어떤 생각을 하고 고민을 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이 책은 고야의 작품과 증거 자료를 토대로 추론할 수 있는 ’고야의 인간성’에 대해 탐구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고야의 드로잉, 유화, 프레스코, 태피스트리, 판화 등을 에스파냐의 미술 전통이라는 맥락 속에서 파악하며 고야가 유럽 전역에 미친 엄청난 영향과 20세기 미술에서 고야가 갖는 의미를 추적하면서 가장 최근의 연구성과와 새로 발견된 이 복잡미묘한 예술가의 다양한 초상화들도 소개한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실로 다양한 삶을 살았다. 그런 만큼 그에게는 다양한 수식과 평가가 주어졌다.
‘근대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젖힌’ 위대한 예술가, 이것은 앙드레 말로가 [토성, 운명, 예술, 그리고 고야]에서 한 말이다. 고전주의를 주류로 삼았던 예술이 고야라는 커다란 걸림돌을 만나면서 그 흐름이 바뀌었음을 뜻한다. 저자는 "고야를 거치면서 고전주의적 조화가 파탄에 이르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고야가 17~18세기의 현실 속에서 통찰한 ‘근대’는 차라리 지옥과 천국이 공존하는 카오스였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어둠. 그곳, 이성과 합리성의 이면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인간의 광기와 야수성이었다. 민중은 세계 질서를 앞세운 나폴레옹의 야욕 아래서 신음하고 있었고, 이를 바라보는 귀머거리 고야에게 세상은 온통 소리 없는 절규였다. 유럽의 중심부가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을 때, 변방의 깨어 있는 예술가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 질서 속의 혼돈이었던 것이다. 궁정화가의 지위에까지 올랐던 고야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창작 활동이 결국은 가장 사적이고 음울하고 불가사의한 ‘검은 그림’ 연작으로 마무리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래 그림은 ’검은 그림’ 연작 시리즈)
 



 
 
-------------- * 새러 시먼스는 누구인가? --------------
영국 애식스 대학 미술학과의 전임강사이며, 에스파냐 낭만주의 미술에 대한 국제적인 권위자이다. 저서로는 [고야: 후원자를 찾아서]와 [플랙스먼과 유럽, 윤곽 일러스트레이션과 그 영향]등이 있다.  


이 책은 모두 9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불확실한 출발]에서는 스페인 아라곤과 마드리드, 이탈리아 로마에서의 그림 수업을 받던 시절의 고야를 다룬다. 젊은 시절 고야는 화가로서 출발했지만 스페인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고야는 아카데미에서 2회 연속 낙선한 후, 25세가 된 1770년 당시 여느 미술 지망생들처럼 미술과 예술의 본고향이자, 르네상스와 고전주의의 본고장인 로마로 홀로 건너갔다. 거기에서 고야는 대가들의 예술작품과 고전주의의 현장을 직접 접하고 그림 수업을 받으면서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고 연구하고 연습하였다.

2장. [궁정생활과 궁정예술]에서 고야는 부르봉 왕실의 후원을 받기 시작하고 궁정에서 태피스트리 밑그림을 그리는 업무에 종사하면서 미술가로서의 본격적인 공식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시작한다. 고야는 로마에서 돌아온 후 고향 사라고사로 돌아와서 ’엘 필라르 성당’의 프레스코화 ’코레토’를 그렸고(1771년) 스페인 왕가와 미술계에서 촉망받던 ’프란시스코 바예우’의 동생 ’호세파 바예우’와 결혼한다(1773년). 결혼 후 1775년 고향을 떠나 마드리드로 상경하였고 그 해에 ’산타 바르바라’의 왕립 태피스트리 공장에 취직하여 멩스와 바예우의 감독을 받았다. 그는 1780년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아래)>를 제출하여 왕립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된다.

마드리드에 온 처음 몇년 동안 피나는 노력과 인상적인 초기 태피스트리 밑그림은 고야의 잠재적 예술성을 보여주었다. 1780년에는 이미 화려한 옷과 보석을 구입하고 사냥에 몰두하면서 유복한 화가로 성공적인 인생을 기대할 수 있었다. 고야는 귀족 후원자도 만나게 되면서 개인적인 그림을 그릴 여유도 일부 확보했다. 왕가와 후원자의 초상화를 그리면서도 고야는 또 한편으로는 신중하고 내성적이고 회의적인 사람이 되어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고귀한 계층과 비천한 계층을 양쪽 다 냉철하고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고야는 이후 몇 년간 굴욕과 실패, 고난과 질병에 직면하게 된다.

3장. [오만하고 까다로운 사내]에서는 에술적 영감에 사로잡힌 고야와 교회의 비난에 시달리는 고야를 다룬다. 고야는 1774년 첫 아이를 시작으로 모두 일곱 명의 아이를 가졌는데 여섯 아이가 일찍 죽었다. 자식들의 비극적인 죽음과 직업적 야망을 성취하려는 노력이 작품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고야의 그림은 계속 사실주의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 때 고야는 <이탈리아 화첩>에서 옛 거장들이 폭력성과 추악함을 걸작으로 변형시킨 방법을 시험적으로 탐구했다. 그리고 공적 야심과는 별도로, <교수형 당한 남자(아래)> 등 고야의 작품은 대체로 범죄와 폭력에 대한 병적인 흥미를 드러낸다. 그리고 동판화에 대해 꾸준히 실험하고 작품을 만들었다.

1780년부터 시작한 사라고사 ’엘 필라르 대성당’의 예배당의 재장식을 맡은 프란시스코 바예우의 조수로 참여한 고야는 그 해에 바예우와 그림의 주제와 색채, 방식으로 갈등이 벌어진다. <순교자들의 여왕, 성모 마리아>



4장. [숭고한 초상화가]에서는 고야의 개인 후원자와 고야가 그들을 위해 그린 초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남긴 후원자의 초상화로는 <플로리다블랑카 백작의 초상>, <돈 안드레스 델 페랄>, <호베야노스 초상>, <후안 멜렌데스 발데스>, <마누엘 고도이의 초상>, <프란시스코 카바루스>, <돈 루이스 데 부르봉 왕자의 가족>, <오수나 공작 가족>, <베나벤테 공작부인의 초상>, <폰테스 후작부인>, <알바 공작부인>, <돈 세바스티안 마르티네스>, <마르틴 사파테르>, <마누엘 오소리오 만리케 데 수니가>, <카를로스 4세의 초상>, <마리아 루시아의 초상>, <주세페 바레티> 등이 있다.
고야는 그림 그리는 생애 동안 처음부터 꾸준히 자화상을 그려 남겨놓았는데, 후원자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자신의 자화상을 작품 속에 포함시켰다. 고야는 이런 대담한 실험 때문에 오늘날에도 아낌없는 찬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고야의 자화상과 초상화에는 그 시대 문화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요소들과 더불어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암시하는 단서를 삽입했다. 
 
5장. [질병과 광기와 마녀]에서는 1790년대 고야의 생애와 작품을 다룬다. 유럽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전파되고 이어진 독재와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유럽 사회 전역은 혼란에 빠졌다. 이 시기에 이르자 고야에게는 사회 현실에 대한 지적 이해와 궁정화가로서의 공적 의무가 충돌했고(사라테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그런 혼돈과 욕망이 드러난다.) 그의 주제는 전보다 훨씬 뚜렷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여름>, <겨울>, <성 이시드로의 목장>, <작은 거인들>, <정신병자 수용소>
고야는 1793년 큰 병에 걸렸고 그 결과 청력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신체적인 조건에 따라 더욱 자신의 그림에 몰입했고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주제에 파고들었다. 
그는 1798년 ’마녀를 주제로 한 그림 여섯 점’을 완성했는데 여기서 그는 문학적, 사회적 풍자, 그리고 정치적인 풍자를 담아냈다. 그리고 연이어 1799년 80점의 판화로 이루어진 동판화집 [변덕 - 카프리초스 Los Caprichos]을 발간했다. [변덕]은 고야가 처음으로 내놓은 독립적이고 원숙한 걸작으로 평가된다. 그는 직업화가로 살아온 30년 동안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것들을 모두 재검토한다. 교회, 국가, 궁정, 법률, 의술, 예술, 과학, 거리, 시골생활, 철학, 빈민, 부자, 환자, 젊은이, 늙은이, 결혼 등은 악습과 부도덕과 허영심이 뒤죽박죽된 혼란 상태가 하나의 거대한 테두리 안에 통합된다. 작품의 대개 염세적이고 냉소적이고 고야가 사용한 기법은 복잡하고 최신식이었다. 

6장. [사면초가에 빠진 군주제]에서는 18세기 초의 정치적 불안과 그 속에서 예술적 성취를 위해 분투한 고야의 모습을 다룬다. 1799년부터 1808년까지 11년 동안 스페인의 정세는 폭발 직전이었고 결국 1808년 참혹한 전쟁과 경제 파탄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 그는 ’산 안토니오 데 라 플로리다 교회’의 천장화를 그렸고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공식 초상화로 꼽히는 두 점(다비드의 <나폴레옹 황제 부부의 대관식>과 <카를로스 4세 가족의 집단 초상화>) 중 하나를 그렸다. 그리고 고야는 1800년 미술 애호가들에게 고야를 기억하도록 각인시킨 ’마하’ 두 점을 그렸다.  
19세기 초에 고야의 미학적 관심을 지배한 것은 부정적 가치와 대조법이었다. 고야가 외부 주문을 받지 않고 개인적으로 그린 작품에서 원시적인 사람과 광기에 더욱 몰두했다. <희생자를 잡아먹고 있는 식인종>
 

7장. [전쟁의 참화]에서는 고야가 ’사회적 문제에 대한 증인으로서의 화가’로 인정받은 그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1808년 5월 2일 프랑스 기병대가 민중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마드리드에 진입했고 스페인군은 교외로 빠져나가 이를 방관하였다. 다음 날인 5월 3일 프랑스군은 봉기를 진압한 후 봉기 참여자들을 공개 처형했고 고야는 후일 <5월 2일>과 <5월 3일>을 통해 민중들의 봉기와 프랑스군의 학살을 그림으로 남겼고 82점의 판화로 구성된 동판화집 <전쟁의 참화>를 통해 
전쟁기간 동안 시골의 참상과 민중들의 영웅적 행위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전쟁을 다큐멘터리식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고야는 프랑스군이 스페인을 점령하여 통치하기 시작한 후 식민지 통치자로부터 주문을 받아 많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전쟁 기간 동안 자유주의 헌법 제정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었으나  결국 전쟁이 끝난 후 다시 권력을 장악한 왕족과 종교세력은 반동적인 숙청을 실시하였고 종교재판소는 고야의 ’마하’ 시리즈 두 점과 마누엘 고도이가 소장하고 있던 그림도 몰수되었다. 

8장. [여파]에서는 전쟁 이후 고야의 작품활동과 공직생활에서 은퇴하는 과정을 다루었다. 1808년 전쟁 후 전쟁 이후에도 고야는 여전히 주요한 궁정화가로 남았고 동시에 과거로 회구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그림으로 남겼다. <정어리 매장>, <종교재판소 광경 (아래)> 

그는 판화집을 연이어 제작했는데 1816년 석판화집 [어리석음]을, 1815년에는 동판화집 [투우집]을 발간했다. [투우집]은 작품의 시점이 극적이고 각도가 넓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리석음]은 [변덕]보다 난해하고 [전쟁의 참화]보다 추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래는 ’어리석음’의 판화작품들)
 


고야는 1819년 공직에서 벗어나고 마드리드를 떠났고 시골 별장에서 지내던 중 두 번째 중병에 걸렸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고야는 1820년부터 시골 별장의 벽면에 ’검은 그림’ 연작 시리즈를 벽화로 그렸다. ’검은 그림’ 시리즈는 이해하기가 어렵고 고야가 병적인 몽상가였다는 느낌을 준다. 
1824년 고야는 복고된 왕정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건너가 세밀화, 석판화, 유화, 자화상 등 마지막 작품활동을 했다.  
 
9장. [후세의 찬사] 1828년에 고야는 죽었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 영향력은 계속 높아졌다. 고야의 유족이 소장한 컬렉션이 팔리고 판화가 복간되어 널리 유포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이유를 "고야의 예술은 세상의 온갖 가혹한 현실을 반영했다. 그가 사후에 얻은 국제적 명성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그런 역할이었다. 하지만 그가 창안한 예술적 기교의 다른 측면들도 화가와 수집가들의 의식 속에 스며들었다. 대형 재난과 인간의 허약함을 물감과 초크와 잉크로 분석한 그의 작품은 존재의 혼란에 사로잡힌 인물을 보여주었고, 밑바닥 사회의 타락한 영혼들과 추방자들, 상궤를 벗어난 도착적인 행동에 지배되는 사람들을 묘사한 것도 후세의 작가와 화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p.318)고 설명한다.

고야의 작품은 후세의 대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 <감옥에 갇힌 여자>의 불안과 공포는 들라크루아의 <변덕>과 뭉크의 <사춘기>에 옮겨졌다. 프랑스 화가 오딜롱 르동은 석판화 연작에 [고야에게 바친다]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마네가 파리꼬뮨시 총살을 다룬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을 그릴 때, 피카소가 1951년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릴 때 고야의 <5월 3일>을 상기시켰다. 벨라스케스는 고야의 <교수형을 당한 남자>을 다시 그렸고 파블로 피카소는 <눈먼 남자>를 통해 고야를 재해석했다.폴 세잔은 고야이 초상을 모사하였고 살바도르 달리는 <삶은 강남콩이 있는 부드러운 구조>를 통해 스페인 내란을 환기시켰고 제이크 채프먼은 <시체에 이 무슨 만용인가>를 통해 고야의 판화집 [전쟁의 참화]를 재확인시켜 주었다.
이런 식으로 고야의 예술은 ’보편적 고통에 대한 영원한 깨달음’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살아남아 있다. 앙드레 말로는 [토성, 운명, 예술, 그리고 고야]에서 고야를 ’근대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젖힌 위대한 예술가’로 칭한다. 고전주의를 주류로 삼았던 18세기 말 ~ 19세기 초의 예술이 고야라는 커다란 걸림돌을 만나면서 그 흐름을 바꾸었다는 뜻이고 고전주의가 미와 예술의 결합을 추구했으나, 고야는 오히려 그 둘의 결별을 꾀했다는 것이다.
고야는 이성과 합리성으로 상징되는 ’근대’의 이면에 인간의 광기와 야수성을 간파하고 폭로했다. 유럽의 중심부가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새로운 시대를 추구하고 있을 때, 변방의 깨어 있는 예술가의 눈에 포착된 것은 그 속에 감추어진 ’혼돈’이었다.
 
 
고야도 천재일까? 공부모임 세미나가 한창 진행 중에 참석자 한 사람이 발언하던 중 ’고야가 천재’였다고 표현할 때, 내 머리 속에는 반 고흐와 함께 ’고야가 천재였나?’라는 생각과 ’도대체 천재가 뭐지?’라는 의문점이 들었다. 반 고흐가 동생과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발간한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어보면, 고흐가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작품 대상을 연구, 분석하고 자신이 원하는 물감과 색을 만들기 위해 실험을 거듭하고 스케치를 여러번, 기초 붓칠과 완성 붓칠을 계속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 고흐가 원하는 작품 하나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은 몇 개월, 어떤 것은 1년 가까운 시간이 훌쩍 지나가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흐도 그렇고 고야도 그렇고 그들이 그림을 배우고 나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여 스스로 만족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오랜 기간 훈련과 실수가 반복된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즉, 고야와 고흐가 천재라면, 그 천재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천재적 자질이 태어나면서부터 또는 어느 날 갑자기 몸 속에서 나타나는 것도 아닌 것이다. 끝없는 자기 성찰과 대상에 대한 연구,분석 스케치와 물감과 구도와 색채와 색칠과 주제에 대한 수 백, 수 천번의 연습을 거쳐 완성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작품 수는 의외로 많다. 고야는 77세에 사망했고 첫 작품을 그린 1771년부터 1828년까지 57년 동안 판화집을 포함하여 164점의 작품을 남겼다. 1년에 3점 꼴로 작품을 완성한 셈이다. 역시 일반인들로부터 ’대가’ 또는 ’천재’라고 인정받는 빈센트 반 고흐는 48년을 살았고 고야보다 더 적은 기간 작품활동을 했지만 스케치 포함하여 무려 264점의 작품을 남겼다. 또한 파블로 피카소는 93을 살았고 그림 13,400점과 700여점의 조각을 남겼다. 이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아직은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고야에 대해 많은 것을 새롭게 알았고 그가 후대의 화가들에게 끼친 영향도 느꼈다. 저자가 고야를 ’근대 미술의 창시자’라고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근대 미술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미술’은 나에게 어려운 분야다. 미술가들이 어려서든, 나이가 들어서든 미술에 뛰어드는 동기나 미술을 통해 실현 또는 창조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아직도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래도 <5월 3일>이나 <한국에서의 학살>, [전쟁의 참화]와 같은 그림과 판화가 당시의 사람들에게, 동류 화가들에게, 후대의 사람들에게 예술에 있어서도, 삶에 있어서도, 세계관이나 사회의식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안다. 나 역시 강렬한 그림 하나로부터 내 생각과 생활, 태도에 영향을 받은 적이 여러번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화, 음악, 만화, 소설, 시 등 예술이나 문학과 관련된 인간의 창작물, 결과물들은 일상적으로, 또 가끔 폭발적으로 인간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인 것이다. 콘텐츠 장사나 광고처럼 돈 벌이로도 전락하기도 하고...
  
 
[ 2011년 7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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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영혼의 거울 - 개정판 다빈치 art 6
프란시스코 데 고야 지음, 이은희.최지영 옮김 / 다빈치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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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모임에서 세미나 교재로 이 책과 새러 시먼스의 [고야]를 선정했다는 연락을 받고 처음에는 의아했다. 일단 '프란시스코 데 고야'라는 미술가의 이름을 들었던 기억도 없었고  지난 세미나 교재였던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크키의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에 이어 두 번 연속 미술 관련 책으로 세미나를 한 것도 공부모임에서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100회 넘도록 인문, 사회, 정치, 경제 분야 세미나에 치중했기 때문에 최근에 그러한 경향에서 벗어나 예술분야를 연속해서 공부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다빈치 출판사의 기획에 따라 미술가들에 대해 연속으로 도서를 출판한 시리즈 도서 중 하나다. 2001년 처음 출간했다가 올해 개정판을 내놓은 것이다. 나는 미술분야에 문외한이라 잘 몰랐지만,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는 스페인(에스파니야)에서 가장 위대한 미술가로 칭송받는 3~4명 중의 한 사람이고 세계 미술가와 관련 학자들로부터 '근대미술의 창시자'로 인정받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스페인이라는 국가는 '정열'을 쉽게 떠올린다. 이 책을 통해 그러한 스페인의 감성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지...
 
저자 최지영과 이은희는 정열적인 에스파냐인 고야의 삶과 예술을 들여다보기 위해 책 속에는 그의 유화, 드로잉, 판화 대표 작품들을 모으고 가장 친한 친구와 이십 년 넘게 주고받은 편지글이 들어 있다. 특히 60여 점에 이르는 유화 작품들은 연대순으로 정리되어 화풍의 변화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리고 세련된 에칭과 에퀴틴트 판화 작품들로 인간 본성의 추악함과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꿰뚫어보는 판화집 [카프리초스(Los Caprichos)]의 전편 80개 작품을 고야가 직접 쓴 해설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 * 고야는 누구인가? ---------------------
18-19세기 초, 전통과 혁신, 발전과 퇴보, 전쟁의 참상 등으로 혼란스럽던 에스파냐에서 화가 고야는 인간의 본성, 특히 광기와 야수성에 집중하고 희비극과 부조리로 가득한 인간의 삶을 관찰하여 화폭에 옮겼다. 그가 궁정 화가로 활동하면서 그려낸 많은 초상화와 인물화, 종교화 등에서는 고루한 전통적 표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와 인물에 대한 탁월한 심리 묘사가 훌륭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능숙한 에칭 기법으로 제작한 판화 작품집에서는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인간 사회라면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인간의 허위의식과 폭력성을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우의적으로 비판하고 고발했다. 인생의 절정기에 찾아온 병으로 청력을 상실했지만, 이후 내면의 고통이 더해진 고야의 작품들은 원숙미와 심오함이 한층 강화되었다. 현대 미술에 한 걸음 다가간 화가로 평가받는 고야는 인상주의 화가들을 비롯한 후대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
 

 

<자화상>                                                               <말년의 고야와 의사>

 
책은 1장. [고야, 영혼의 거울]과 2장. [카프리초스]로 나누어져 있다. 마지막 부분에는 [카프리초스]에 대해 20세기 영국 출신 작가인 올더스 헉슬리가 설명하고 평가한 글이 들어 있다. 
 
1장의 전반부에는 고야의 생애 기간 동안의 유럽과 스페인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을 묘사한다. 정치가와 일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예술가들 역시 생존 당시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과 의식, 문화에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18~19세기 초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다. 15~16세기 강력한 함대와 식민지 개?으로 유럽의 강대국이었던 스페인은 17세기부터 몰락하기 시작했다. 18세기와 19세기는 그러한 스페인이 유럽 사회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처음 스페인 미술계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던 고야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미술 교육과 훈련을 받은 후 돌아와 아카데미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30대 후반부터 궁정 화가가 된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는 왕과 귀족들의 초상화와 종교화를 그리면서 명성을 얻은 한편, 끊임없이 전통에 도전하고 혁신을 꿈꾸며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자 했다.
 

 

 

 
< 처음 인정받기 시작한 '성 요셉의 죽음'>         < 고야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18세기 후반, 후기 로코코 시대 스페인은 대내외적으로 불안정했다. 왕족과 귀족, 성직자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 지배 계층은 사치와 허영, 탐욕과 부정부패에 깊이 물들어 있었으며, 전 유럽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나폴레옹군은 코밑까지 진격하여 위협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오랜 정체기가 막을 내리고 변화와 발전을 향한 진통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때 고야는 궁정 화가로서 지배 계급의 비위를 맞추는 한편 구태의연한 전통적 표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기를 들었다. 당시 그가 그린 초상화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주문자의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켜주면서 내면을 관찰하고 심리를 표현하는 데 있어 자신의 개성을 담뿍 담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카를로스 4세 가족 >

  

<프란시스코 바예우>                    <알바 공작부인>                       <마르틴 사파테르>

 

< '벌거벗은 마야' 와 '옷을 입은 마하' >

 
그러나 이들 근엄한 초상화와 더불어 에스파냐 민중의 삶을 밝고 화사한 색채로 표현하던 고야의 화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밤낮 없는 노력으로 비로소 인정받아 성공 가도를 내달리던 사십 대 중반에 청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세계로 점점 파고들던 고야의 눈앞에 프랑스군의 침략 아래 신음하는 민중의 고통과 두려움, 참혹한 현실이 펼쳐졌다. 그의 화폭은 인간의 광기와 야수성이 지배하는 악몽 같은 풍경으로 변해갔으며 음울한 색채와 휘두르는 듯한 붓 터치로 폭발할 지경이었다.
 

 

<정신병자 수용소>                                     <도자기 파는 여인>

 

 

 

<엘 마라가토의 무기를 빼앗는 살디비아 신부>   <거인>

 

 
 

1장의 후반부에는 고야가  자신의 가족보다 더 각별히 여긴 친구 마르틴 사파테르(Martin Zapater)와 이십 년 넘게 주고받은 편지글을 수록했다. 친구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전하는 편지에는 고야의 가족 관계와 그들을 부양해야 하는 생활, 경제적인 상황, 사냥과 초콜릿에 몰두하는 취미 생활, 왕족이나 귀족들과의 관계, 작품 제작에 대한 어려움,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 등이 함께 나타나 있다. 허물없는 친구에게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는 이 편지들은 후대에 작성된 그 어떤 해설보다도 고야 자신을 드러내준다.

2부에서는 세련된 에칭과 애쿼틴트 판화 작품들로 인간 본성의 추악함과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꿰뚫어보는 판화집 [카프리초스Los Caprichos]의 전편 80작품을 고야가 직접 쓴 해설과 함께 소개한다. 인간 정신의 어두운 측면과 삶의 다양한 양상을 관찰하여 제작한 이들 작품에서는 꿈과 환상적 요소에 사회와 인간에 대한 비판을 버무리고 헌신해야 하는 가혹한 현실에 도피적인 요소를 뒤섞어 놓았다. 날카로움과 부드러움, 빛과 어둠을 적절하게 대비시키는 능숙한 판화 기법으로 인간과 인간이 처한 현실에 대해 매섭고도 씁쓸하게 논평하는 이 판화집으로 고야는 에스파냐를 넘어 프랑스와 영국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뒤러와 렘브란트의 계보를 잇는 위대한 화가이면서 판화가인 예술가의 계보에 자리하게 되었다.

 

 

  

<사형수>                             <이빨을 찾아서>    <여자들은 제일 먼저 청혼하는 남자에게 '예'라고 답한다>


고야의 작품들에 가득한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붓 터치, 솔직하며 때로는 고뇌의 찬 감정을 전달하는 그의 글보다 고야를 더 잘 말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여러 참고 문헌에서 발췌한 고야와 그의 작품에 대한 해설을 첨가하여 좀 더 이해를 돕고자 했다. 이 한 권의 작품집으로 고야의 모든 것을 담아내기란 가당치 않다. 그러나 당대 낭만주의 미술가들이 열광하고 이후 인상주의 미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고야의 삶과 예술에 대한 열정, 그리고 그의 작품들에 감동하고, 그가 비판하고 풍자하며 혹독하게 그려낸 18세기 말~19세기 초의 세계가 지금의 우리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느끼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고야의 작품 중에서 몇 개는 앞으로도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특히, 1808년 프랑스군의 침공에 맞서 싸우다 붙잡혀 총살당하는 장면을 표현한 <1808년 5월 3일>과 동판화집 [카프리초스] 속의 <이성의 꿈은 괴물을 낳는다>와 <힘껏 불어라>의 경우가 그렇다.
작품 <1808년 5월 3일>는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1867)>과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게르니카(1937)>, <조선에서의 학살(1951)>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놀랍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피카소와 마네의 학살 그림 밖에 알고 있었다.

고야의 동판화집 [카프리초스]는 80여 점의 그림 모두 놀랍고 충격적이다. 특히 19세기 초에 미신과 우화, 인간의 악마성을 판화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놀라울 뿐이고 특히 <이성의 꿈은 괴물을 낳는다>와 <힘껏 불어라>는 강인한 인상으로 남았다.
 <이성의 꿈은 괴물을 낳는다>

 
사실 이 책 속에는 고야 생전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자세하고 폭 넓은 이야기가 들어 있지는 않다. 그리고 고야 이전의 유럽과 스페인의 문화나 미술계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도 별로 없다. 그래서 주로 저자들이 설명하는 대로 고야의 생애와 미술과의 만남, 작품 세계, 작품의 의미 등에 대한 저자의 주장과 의견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기본적인 고야의 작품활동과 미술계에서의 위치, 궁정화가로의 등극과 작품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취득할 수 있었다. 
 
저자들의 고야에 대한 평가는 너무 상식적이지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다.
1771년 고야가 스페인 아카데미아 디 발레 아르티의 입학심사에서 2등을 했는데, 저자들은 아카데미가 고야의 작품을 호평하는 기록('고야가 주제에 더 충실하고 색채 사용에 있어 자연색에 좀 더 유의했더라면 1등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을 "아직 무명의 청년 화가에 불과한 고야가 당시에 이미 전통에 맞서는 반항아였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p.14)라고 분석한다. 문제는 고야가 아직 스페인 미술계에 발을 들인지 얼마 되지 않아 아카데미의 주제에 충실하고자 했지만 주제 파악을 못하거나 실력 부족으로 색채 사용에 실수했을 수도 있음을 간과한 평가라 할 수 있다. 저자들은 고야의 18세기 말~19세기 초 작품세계를 수 십 년 전부터 맹아가 싹튼 것이라는 치우친 결론을 내린 것이지 않나 싶다.
저자들은 고야가 '유약한 성격으로 실패나 빈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대결에서 타협하는 자세를 취하곤 했다'라고 분석하면서도 아카데미와 왕실에 제출한 그림을 두고 "고야는 공식적인 견해와 늘 대립했는데 그 이유는 항상 똑같았다. 그는 작품이 구도, 주제, 전반적인 구상을 당시의 취향에 따라서 설정하려 했지만 터져 나오는 자신의 개성을 억누를 수 없었다."(p.16)라면서 약간 상반된 의견을 피력한다. 그렇지만, 평생에 걸쳐 성공과 안락한 생활과 높은 공식 지위를 원했던 고야의 생애를 고려해보면 그가 공개적으로 공식적인 견해와 대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평생 절친한 친구였던 사파테르와 주고받은 편지를 보더라도 고야는 궁정 화가로서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책 속에서는 친구 사파테르와의 편지글 속에 들어있는 애정강도가 높은 글의 표현을 통해 사파테르와 고야가 '동성애' 관계였다는 분위기를 내보이는데 실제 그 때 당시 스페인이나 유렵에서 절친한 친구들의 편지글 형식이 어떠했는지를 잘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쉽게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고야는 후대에게도 높이 평가받았고 '천재' 중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는 예술가로서는 몇 가지 점에서 특이하다.
그것은 궁정화가로서 왕실과 귀족 등 지배층, 기득권층에게서 평생동안 인정받으면서도(심지어 19세기에 스페인을 점령한 프랑스 지배자들로부터도 인정받았음) 개인적으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탐구하면서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점과 두 번에 걸쳐 죽음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병에 걸리고 나서도 회복하여 성공과 창조의 열정을 지속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천재들은 고흐나 모짜르트, 베토벤처럼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또 열학한 조건에서 예술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보통의 예술가들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깊이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야는 평범한 환경에서 자랐고 아주 성공적인 직업과  삶의 조건을 영위했음에도 후대의 미술가들에게 인정받는 정도의 예술성을 창조했던 것이다. 물론, 40대 초와 말년에 고야에게 찾아온 청력 상실과 죽음에의 공포 이후 고야의 예술성이 높아지고 자신과 인간 내면의 세계를 탐구했다는 정황을 볼 때 고야 역시 '예술가의 창조성의 원천'이라는 큰 환경적 범주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지만...
 
[ 2011년 7월 15일 ]



<1808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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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국제자원 쟁탈전 - 에너지의 새로운 지정학
Michael T. Klare 지음, 이춘근 옮김 / 한국해양전략연구소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지난 화요일 공보모임에서 교재로 삼아 세미나를 진행한 책이다.
이전 세미나에서 앤서니 기든스의 <기후변화의 정치학>을 공부한 후, 21세기 인류에게 닥친 에너지 문제와 에너지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노력과 갈등, 위협과 대안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다.
 
서울 주유소 대부분의 휘발류 1리터 가격이 2,000원대를 기록한지 한참 되었다. 물가인상과 고유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정부에서 정유사들을 압박하여 유가를 내리려다 실패한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생색내기’에 치우친 정부 관료들의 모습에 헛웃음도 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에너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실행하지 못하는 정부의 한심한 모습에 우울한 기분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사회문제화되지 않았고 정책의 우선순위에도 오르지 않았지만, 에너지 문제는 20세기 후반기부터 전세계 각국의 초미의 관심사이자 각국의 정책에서 최우선 순위라 할 수 있다. 중동 분쟁,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란에 대한 봉쇄, 아프리카 다루프루 사태, 중국과 일본의 동지나해 영유권 분쟁, 미국과 중국의 갈등, 중동 민주화 투쟁에 대한 서구국가들의 상이한 대처 등 현재 많은 세계의 갈등과 분쟁의 이면에 에너지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이 책의 주제는 지구상 주요 국가들이 현재의 석유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석유 및 천연가스는 물론 광물자원들을 획득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그러한 노력들이 지구상에 어떠한 불안정과 분쟁을 야기하고 있는지, 그리고 세계의 안정과 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는 ’자원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 * 마이클 클레어는 누구인가? ----------------------------
미국의 안보전문가이자 군사전문가이다. 1963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석사, 박사(68년) 학위를 받고, 워싱턴에서 1977년부터 1984년까지 워싱턴 D.C의 정책연구소에서 군사와 비무장에 관해 연구하였으며, 1985년부터 PAWSS(Peace and World Security Studies)의 책임자이다. ------------------------
 
저자는 책을 9개의 장으로 나누어 에너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2005년 ’유노컬 사건’을 통해 석유 및 에너지 자원 구입문제는 이미 순수한 상업 거래의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유노컬 사건’이란 중국의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Limited)가 115년 역사의 미국 석유회사인 유노컬을 185억달러에 인수하려하자 CNOOC보다 적은 입찰가를 제시한 미국의 세브론사의 치밀한 공작과 미국 내 정치권과 언론 등이 나서서 이 문제를 ’국가 안보’ 문제로 이슈화시켰다. 20세기 하반기부터 미국이 전세계에 퍼뜨리기 시작한 ’자유무역’의 원칙은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 결국 CNOOC는 유노컬 인수를 포기하였다. 일부 분석가들은 ’유노컬 사건’이 미국과 중국 관계의 분기점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1장 [달라진 세상]에서 저자는 20세기 후반 냉전시대가 종료한 이후 에너지 문제가 각국의 정책에서 최우선 순위로 올라서면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질서가 ’신국제 에너지 질서(New International Energy Order)’로 재편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새로운 국제 에너지 질서에서 국가들은 이제 군사력이 아니라 에너지가 있는 나라와 부족한 나라로 구분되고 에너지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로 재편되게 된다.
민간 석유회사들이 전세계 석유 생산량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 석유회사들이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극복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 지도자들은 에너지 획득 문제를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에너지 민족주의’ 또는 ’자원 민족주의’로 정의될 수도 있다.



제2장 [늘어나는 석유 수요량, 줄어드는 석유 부존량]에서 저자는 ’석유 정점(Peak Oil)’을 둘러싼 여러가지 주장과 의견을 소개하면서 21세기 내에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량이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석유와 천연가스 뿐 아니라 석탄, 우라늄, 구리, 보크사이트, 백금 등 산업생산에 필요한 대부분의 광물자원 역시 뒤이어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저자는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광물의 생산량 감소에 따라 에너지 문제가 정부의 우선순위가 되고 ’비경제적인 자원’의 활용이 늘어남으로써 지구 기후변화 문제가 정책의 순위에서 밀려남과 동시에 더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됨으로써 지구와 인간의 환경이 지금보다 더 열악해질 수 있음을 우려한다.
 
3장에서 7장까지는 에너지 문제를 둘러싼 주요 국가들의 모습과 카스피해, 아프리카, 중동지역의 에너지 갈등 문제를 설명한다.
제3장 [친디아의 도전]에서는 20세기 중반 이후 중국과 인도의 산업화 과정과 폭발적인 성장, 그에 따른 엄청난 자원 사용문제를 이야기한다. 중국과 인도의 엄청난 산업 성장은 블랙홀처럼 전세계의 에너지 자원을 소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중국과 인도 정부는 전세계에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으로 자원보유 국가들과 협력과 개입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그러한 노력은 미국과 러시아, 유럽과 일본 등 기존 경제강국과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게 된다.

제4장 [러시아 에너지의 파괴력]에서는 1990년대 초 소련 제국의 멸망 이후 러시아의 정치경제 흐름을 살펴본 후 푸틴 대통령이 어떻게 러시아의 정치경제 권력을 장악했는지, 국영 에너지기업인 가즈프롬 회사를 발전시켰는지 설명한다. 푸틴과 가즈프롬은 러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러시아의 대외적 국력과 강제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가즈프롬을 통해 시베리아 석유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경쟁, 해외 민간기업의 배제와 통제하는 모습을 통해, 그리고 카스피해의 자원개발과 관리를 둘러싼 러시아 정부와 가즈프롬의 공격적이 행보를 통해 드러난다.


제5장 [고갈되는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 카스피해 주변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그루지아, 아르제바이잔, 키르키즈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에는 소련이 방치한 자원이 상당량 존재한다. 저자는 카스피해의 자원을 둘러싼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 유럽국가들의 경쟁적인 모습을 이야기한다.
미국은 소련 제국 멸망 후 1970년대부터 정치군사적인 이유로 카스피해 지역에 접근하기 시작했으나 1990년대 이후부터는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아르제바이잔, 그루지아, 키르키즈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키르키즈탄과 우즈베키스탄(일시적)에는 미국 군사기지가 있다.
러시아는 자원이 부족한 국가는 아니지만, 정치군사적인 이유와 더불어 카스피해 지역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과거 소련 영토인 카스피해 지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과거 소련 영토 내의 국가들과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를 구성하여 카스피해 국가들을 관리하고 있다.
중국은 1996년 테러 방지와 안보협력을 위해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키즈단, 타지키스탄과 함께 ’상하이 기구’를 설립하여 협력하기 시작했다.(나중에 우즈베키스탄 참여) 이를 통해 중국은 카스피해에서 자원을 개발하고 획득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석유 수립의 중가는 더 강력한 독재정권과 일치하며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부를 엘리트들에게 일정부분 나누어줌으로써 통치자의 능력을 강화하는 한편 경제 및 정치 개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은 지연되고 있다"고 말한다. 석유로 인한 부가 소수에게 집중됨으로써 부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대중들의 욕구 불만과 분리주의는 개별국가와 지역의 불안정을 촉발시키게 되고 불안정은 외부세력의 개입을 초래할 수 있다. 



제6장 [아프리카의 사활적 자원을 향한 지구의 총공격]은 아프리카 자원의 특성과 ’아직도 유럽의 사냥터인 아프리카의 현실’을 이야기한 후, 20세기 후반 이후 자원을 목표로 하는 미국의 진출과 중국의 적극적인 공략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프리카 자원국가들의 모습은 ’자원의 저주’를 받은 카스피해 지역의 국가들과 비슷하거나 더 열악한 상황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자원을 둘러싼 갈등과 불안정성은 카스피해 지역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7장 [미국의 호수를 향한 공격] 중동의 ’페르시아만’은 1950년대 이후 ’미국의 호수’라고 불리운다. 그만큼 석유자원을 중심으로하는 중동지역에 대한 대한 미국의 경제,군사적인 지배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냉정이 해체된 이후 중동지역의 자원을 둘러싼 새로운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중동 산유국들은 국내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외교,군사,자원 거래에서 미국 의존도로부터 벗어나고 있으며 이에 발맞추어 러시아와 중국, 유럽과 일본, 인도 등의 공략이 진행되고 있다. 



제8장 [문턱을 넘다]에서 저자는 자원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경쟁과 갈등이 결국 ’위험한 선’을 넘어서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양상이 더욱 노골화될 것을 우려한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은 중동, 카스피해, 아프리카의 자원을 지배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무기를 공급하고 있고 필요한 경우 ’함포외교’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유라시아 지역에서는 ’상하이 기구’를 중심으로하는 중국과 러시아 대 미국과 일본이 등 과거의 냉전을 방불케하는 새로운 ’블럭’을 형성되고 있다. 
자원 경쟁을 위한 에너지 민족주의와 블록 형성이 지정학적 충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경고한다.

제9장 [재앙을 피하기 위한 방안들]에서 저자는 21세기에 자원 갈등으로 인한 세계적인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이 두 국가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고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으며 ’G2’라 불리울 정도로 서로 무시할 수 없는 국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과 일본이 에너지를 둘러싼 갈등과 분쟁을 확산시키지 않도록 하는 협력과 협조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동시에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개발하고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도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개인적으로는 산업적인 생산방식과 ’성장’, 그리고 ’경쟁’만을 고집하는 현대의 국가사회시스템으로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경쟁’이 아닌 ’협력’과 ’공생’을 통해 미래 재앙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고 개인과 집단, 사회와 인류의 ’성숙’과 ’행복’을 이루어낼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 거의 대부분의 인류가 산업 생산양식과 성장, 경쟁을 ’종교’처럼 받들고 피튀기는 경쟁을 계속하는 상황에서는 현실적인 상황에 맞추어 문제에 접근할 수 밖에 없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저자는 에너지의 고갈 문제, 에너지를 둘러싼 지정학적인 갈등, 그리고 현실적인 분쟁들과 미래의 재앙의 위협에 대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저자의 구체적인 사례 제시와 원인분석을 통해 20세기 후반부터 지구상의 각종 사건을 둘러싼 내면적인 요인들 중에서 에너지를 이유로 한 ’국가안보’가 가장 크게 부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막연하게 미래가 희망적이라고 제시하지도 않았고 또 무조건 절망적이라고 포기하지도 않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위협과 재앙으로부터 가장 크게 고통받게 되는 사람들은 결국 약소국의 민중들이고 지구상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임을 확신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차갑고 논리에만 충실한 이론가이자 따뜻한 마음을 지닌 지식인임을 느낄 수 있었다.
 
책 속에서 거론되는 세계적인 ’자원쟁탈전’은 분명 심각한 재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미 인류는 자원과 시장을 둘러싸고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치루었고 그로 인해 수 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국가  뿐 아니라 승리한 국가도 수 십년간 그 고통을 치유한 바 있다. 세계대전에서 가장 큰 이익을 냈고 피해가 적은 집단은 바로 자본가 세력과 관료들이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은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에게 치명적인 파괴와 인명피해를 가져다 주었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일본 제국주의로 인한 피해가 국가와 사회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강대국들이 침을 흘릴 수준의 자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에는 강대국들의 자원쟁탈전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강대국들은 겉으로는 자유와 평화, 인권과 민주주의를 외칠 뿐 자원을 가져가기 위해 자원보유국 정부가 군사정권이든, 독재정부든, 자국의 국민들을 학살하든, 인권을 탄압하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자원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그런 독재정부를 지원하고 학살과 탄압을 요구하기도 한다.
가슴아픈 일이고 분노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고통받고 굶주리는 약소국 민중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가 않고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한 ’미국과 중국의 협력’에 대해서는 다소 비관적이다. 소위 선진산업국가 중에서 가장 국가이기주의가 극성이고 약소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그리고 일당독재를 통해 13억 인구를 통치하면서 ’국가의 부’를 하루빨리 증대시켜야 하는 중국 역시 중화민족주의가 거세다. 두 국가 모두 이성이나 인류 전체 차원에서 에너지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내가 판단컨대, 미국과 중국은 국민들의 이해와 요구가 올바로 수렴되고 집행되는 체제가 아니다. 미국은 자본과 기득권에 둘러쌓인 정부이고 중국은 일당독재 국가다. 중국 뿐 아니라 미국 역시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는 아니다. 일본과 인도, 러시아도 마찬가지... 그런 면에서 서유럽과 북유럽 정부체제는 민주주의 면에서는 다소 진보적인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유럽의 역할에 좀 더 기대하는 편이다.(하지만, 국가를 통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국가 이외의 정치세력에 대해서는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 21세기 들어 서구 국가들에서 관료와 자본의 힘은 커지고 정당의 힘은 약화되고 있다. 정당은 보통 자본과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정당과 민중과 진보,민주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나누어져 있다. 대신 NGO와 같은 시민단체들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세계 각국의 진보적,민주적 정당들과 시민세력의 공동대응이 불가피해지는 구조가 될 것을 예고하는지도 모르겠다.
 
[ 2011년 7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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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 - 구술로 풀어 쓴 한국전쟁과 전후 사회
이임하 지음 / 책과함께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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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전쟁에 대한 단상 두 가지...
한국전쟁에 참여한 백선엽이라는 사람을 이데올로기로 미화시키고 있는 관제 언론의 작태와 아직도 남아있는 거리의 사진전...
 
일제시대 일본군으로 복무하면서 독립군을 탄압,살해하고 조선민족을 억압하는데 앞장선 일찍 ’청산’해야 할 백선엽이 21세기에 들어서도 한국군의 ’위대한’ 장교로 ’미화’되는 것을 보면 한국현대사가 얼마나 왜곡되고 정의롭지 않았는지 알 수 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 ’친일부일 반역자에 대한 국민적 규명’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런 인간들이 이 땅에서 떵떵거리는 것을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얼마나 한국현대사를 비틀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한다.
 
지난 주 광화문 근처를 지나는 길에 동아일보사 앞에 00단체 이름으로 625 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끌려갔다는 내용과 함께 각종 사진을 전시해 놓은 것을 보았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두 세대 가까이 지났음에도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는 전쟁의 상흔과 이데올로기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올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1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한국전쟁에 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여러 종류의 영화와 방송 프로그램, 소설과 연구서적도 출판되었다. 하지만 기존에 상영되거나 출간된 콘텐츠들은 한국전쟁의 기원, 발발, 전개과정, 휴전 등 전쟁의 과정과 성격을 정치사적으로 다룬 것이 대부분이었다. 전쟁 종사자나 군경, 유엔 참전군인, 피난민, 피학살자의 이야기를 다룬 책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그 연구 대상은 개인적 경험이 대부분이었거나 국가 또는 남성이었다. 그동안의 연구는 ‘그들만의 한국전쟁’만을 다룬 셈이며, 한국전쟁의 전체상을 그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특히, 정부기관이나 연구소, 주류학자나 방송영상 관계자들이 다룬 대상은 고위 장교나 간부급 경찰, 반공반북 단체 간부나 어용 지식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연구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실제 전쟁터에서 참혹한 전투를 치른 사병, 하사관들, 경찰들이고 절차도 동의도 없이 국가폭력과 우익폭력에 끌려간 국민방위군, 학도병, 민간인, 마지막으로 이데올로기에 의한 피학살자, 행방불명자, 납북자들이다. 한국전쟁 후 60년 넘게 국가와 사회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만 할 뿐, 밑바닥에서 전쟁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낸 그들을 구체적으로 기억하지도 않았고 위로하지도 보듬지도 배려하지도 않아왔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그들의 아내가 어떤 대우를 받았을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더군다나 한국전쟁 전후의 한국사회는 아직도 여성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제도와 관행, 문화가 엄존했기 때문에 그녀들은 이중, 삼중으로 고통받았을 것이다.

* 국방부 정훈국 전사편찬위원회, 2009년 자료 인용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전쟁미망인’은 연구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한국전쟁의 과정에서 탄생한 전쟁미망인은 ‘국가적 차원의 전쟁’이 ‘개인의 일상’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낼 뿐 아니라, 전쟁 후 국가가 어떻게 개인에게 전쟁의 책임을 전가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전쟁미망인 연구는 기존 한국전쟁사의 비어 있는 반쪽을 채워줌으로써 한국전쟁의 전체상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전쟁미망인의 전쟁 경험이나 전후의 삶을 남긴 기록은 거의 없다. 정부와 언론의 자료, 전쟁 주체들의 회고록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전쟁 발발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기본적인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인터뷰를 통해 전쟁미망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그 구술 내용을 토대로 그들의 삶을 복원하고 분석했다. 그 대상은 전쟁미망인(군경미망인·피학살자미망인·상이군인미망인)과 그 자녀 45명이다(인권 보호 차원에서 책에 실린 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이들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또는 자신의 어머니)이 전쟁과 전후(戰後)를 어떻게 살았는지를 있는 그대로 증언한다. 전쟁 당시 남편을 잃게 된 경위, 피난 과정, 전후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 가장이 되어 사회로 진출한 정황, 국가의 전쟁미망인 서열화 정책 등이 그들의 입을 통해 서술된다. 저자가 사용한 ‘구술사’ 방법론은 주류가 아닌 소수자의 시선을 중시하고 행위자를 중심으로 역사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최근 역사학 연구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전쟁미망인이라는 주제가 ‘구술사 방법론’과 결합됨으로써, 그동안 문헌 사료에 갇혀 있었던 한국현대사의 폭과 깊이를 더욱 넓고 깊게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 동아일보 및 서울신문 각 1950년 10월 7일, 11월 28일 

이 책은 오늘(28일) 공부모임의 교재다. 저자인 이임하씨가 직접 세미나에 참가하여 참석자들과 이야기하는 기회도 마련되어 있다. 저자가 구술자들과 나누었지만, 책 속에 담아내지 못한 많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약속 때문에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해 못내 아쉽다.

저자 이임하는 ‘한국현대사와 여성’이라는 주제에 10년 넘게 천착해온 역사학자이다.
박사논문 [1950년대 여성의 삶과 사회적 담론](2002)을 통해 1950년대 한국전쟁과 여성, 여성의 경제활동과 지위 변화, 성 담론 등 그동안 한국현대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문제를 제기했다. 저자는 2006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기초연구과제로 한성대학교 [전쟁과평화연구소]에서 ‘한국에서의 전쟁경험과 생활세계 연구’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서 ‘전쟁미망인’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전쟁미망인(과 그 가족) 45명의 구술과 5년여에 걸친 각고의 연구 끝에 이 책을 완성했다.
저자는 전쟁미망인 연구를 통해, ‘끝나지 않은 전쟁’에 대해 들려준다. ‘가족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국가) 폭력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작동되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전쟁의 고통에서 살아왔는지,’ ‘그 고통을 말하지 못하고 왜 침묵해야 했는지,’ ‘전쟁이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등등, 이들의 이야기는 국가의 공식 기억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쟁 동안 그리고 전쟁 뒤에도 지속된 한국전쟁의 숨겨진 역사를 들려줄 것이다.  
 
------------------- * 저자 이임하는 누구인가? ----------------------------
965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났다. 덕성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0년대 여성의 삶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한국전쟁 연구의 변두리에 머물렀던 ‘전쟁미망인’의 존재에 주목했고, 5년여의 연구와 전쟁미망인 45명의 구술 자료를 토대로 이 책을 집필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계집은 어떻게 여성이 되었나][여성, 전쟁을 넘어 일어서다][한국 여성사 편지]가 있으며 [동아시아와 근대, 여성의 발견][일상사로 보는 한국근현대사][1970년대 민중운동 연구][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죽엄으로써 나라를 지키자] 등의 집필에 참여했다. 그 밖에 [한국전쟁 전후 동원행정의 반민중성] [1950년대 여성교육에서의 성차별과 현모양처 이데올로기] [해방 뒤 국가건설과 여성노동] [‘전쟁미망인’의 전쟁경험과 생계활동], [상이군인들의 한국전쟁 기억] [한국전쟁기 유엔민간원조사령부의 인구조사와 통제] 등의 논문이 있다. ------------------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전쟁미망인’을 주제로 설정한 배경을 설명하고 구술사 방법으로 이 연구를 진행했음을 강조한다. 1950년대에 정부의 통계와 언론의 보도를 통해 50만명에 달하던 ’전쟁미망인’의 수는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군사정권의 조작과 정책을 통해 1963년 27,000명으로 축소되었다. 마찬가지로 상이군인 수도 축소하였다.  "이는 여성이 입은 피해와 국가의 책임을 최소화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려는 의도 아래 이루어졌다. 이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성들의 힘을 분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역사적 주체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았다."

* 보건사회부 1954/1957/1959년, 육군본부 1955년, 대한군경원호회 1960년 자료

’구술사 방법’은 그동안 정부와 학계가 방치하여 자료와 정보가 전무한 경우에 적절한 연구방법이 되며 소수자와 약자층에 대한 연구로 중요한 방법이다. "구술은 주류가 아닌 소수자의 시선을 중시하기, 행위자 중심의 역사 구성, 남성 중심의 역사에 대항하기, 기억 저편에 있는 민중의 기억 읽기, 경험에 내재된 권력 읽기" 등을 제기한다고 구술자 연구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1부. [전쟁과 집 밖 세상]에서 저자는 전쟁미망인의 전쟁 경험을 군경미망인, 피학살자미망인, 상이군인미망인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고(또는 보도연맹 등에 의해 남편 끌려가는 것을 지켜보고), 남편의 전사 소식(학살 소식)을 접하면서 ‘전쟁미망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글 속에서 국민방위군에 참여했던 미망인들은 모두 남편이 스스로 자원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군대, 경찰의 폭력과 강제로 끌려간 것임을 말한다. 이를 통해 상당수의 남자들이 타의로(국민방위군 자격으로) 전쟁에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처음부터 국민방위군은 동원 대상자를 적으로부터 격리시킨다는,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동원 대상자를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한 상태에서 조직되었다."면서 이승만의 연설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국민방위군은 당시 무리한 징집과 지휘부의 부정부패로 말미암아 상당수가 행방불명 또는 굶어 죽거나 얼어죽었고 영양실조에 걸려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해체되었다. 

* 여기서 저자는 전쟁의 원인을 다루지 않았듯이 정부, 군대, 경찰, 우익폭력자들의 ’국민보도연맹’이나 민간인 학살의 원인에 대해 다루지 않고 있다. 추정컨대, 당시 정부관료와 군인, 경찰력의 80% 이상을 점유하던 일제 앞잡이들(우익폭력단의 경우 99%)은 북한에서 일제 앞잡이에 대해 철저하게 처단한 것을 알고서 법절차와 제도를 무시하고 사적으로 좌익성향, 가능성이 있는 사람, 개인적인 원한을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것으로 보인다.

2부. [낯선 세상에서 생존하는 길]에서 구술자들은 남편들이 전쟁터에 나간 후, 혼자 집안을 책임져야 했던 전쟁미망인에게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말한다 . 그들은 농업 노동과 가사 노동을 병행해야 했고, 행상과 좌판은 물론이고 공장노동에 종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미망인은 남성의 역할을 대신함으로써 ‘남성은 바깥일 하고 여성은 살림과 육아를 맡는’ 기존 시스템을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깨뜨린 장본인이기도 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구술에 참여한 전쟁미망인들은 대개 한국전쟁 당시 임신한 몸이였거나 아이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은 여성도 많았다. 그들이 전쟁에서 겪어야 했던 이중, 삼중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3부. [가부장과 ‘아직 죽지 아니한 아내’] 남편이 부재한 집에서 젊은 전쟁미망인은 시부모와 어린 아이들을 보호하고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시부모는 전쟁미망인의 일상을 통제하고 감시했고, 전쟁미망인은 가족관계 안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었다. 전쟁미망인에게 남편의 집은 억압의 장소였다. 일상의 감시와 통제는 ‘며느리 만들기’의 하나이다. ‘며느리 만들기’는 가족단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전쟁 피해를 ‘전쟁미망인’에게 책임지우는 방책의 하나였다.

4부. [여성 가장과 새로운 공간의 창출] 전쟁미망인들은 어떻게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었고 전략들을 세웠는가? 군경미망인에게 분가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피학살자미망인에게 분가는 세상 밖으로 내몰리는 경험이기도 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처지에서 여성 가장으로 어떻게 자신들의 공간과 전략을 만들었을까?
전쟁미망인들은 법과 제도, 문화에 의하여 가족과 남편의 재산에 대한 상속권이나 관리권을 친척들에게 빼앗겼다. 그리고 그나마 쥐꼬리만큼 나오는 정부의 원호자금 역시 상당기간 동안 시부모나 시댁 식구들에게 갈취당하였다.

5부. [봉쇄된 균열]
한국전쟁으로 기존의 가치는 모두 중심을 잃어버렸다.
한국전쟁 종전 직후부터 대부분의 정권, 특히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권에게 현충일은 전쟁 피해자에게 살길을 마련해주고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이 아니라 ’군사주의’와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런 점에서는 한국전쟁의 사후처리를 담당하는 국가보훈처와 그 담당 공무원들, 관변단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가는 ‘질서’를 유지해야 했고 해결책은 희생양을 찾는 일이었으며, 그 희생양은 주로 여성이었다. "국가는 전쟁미망인의 목소리를 침묵으로 가두었고, 자신의 전쟁 책임을 일상에서 감추어버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에필로그 : 전쟁과 트라우마] 전쟁미망인들은 한결 같이 "전쟁은 없어야 돼"라고 말한다. 저자는 전쟁미망인 연구를 통해, 한국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들의 상처가 치유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 여성들의 성 차별은 21세기인 지금도 사회 곳곳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남아있다. 가족법과 상속법 등 제도적인 평등조치는 일부 이루어져 있지만, 저자가 말하는 ’아내 만들기’와 ’며느리 만들기’는 많은 가족에서 잔존해 있다. 여성의 가치와 여성의 가사노동은 아직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가사노동과 보육 역시 국가,사회적으로 올바르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국가와 사회가 더 바꾸고 노력해야 하는 문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다.
이는 여성 스스로도 깨닫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고 여성 뿐 아니라 남성, 시민단체, 정치세력 역시 생활 하나하나에서부터 변해야 하고 노력해야만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을 치른 생존자들은 대부분 지금 70대 이상의 노인들이다. 그들은 어떤 이유와 경험을 통해서든 한국전쟁의 상처를 온몸으로 겪었고 그 피해가 몸과 마음에 남아 있다. 그들은 90% 이상이 피해자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60년 동안 생활과 의식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왔고 그들에게 ’전쟁이라는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다. 그들의 트라우마는 그들의 가족에게, 아들딸에게 여러가지 방식으로 전달되었고 따라서 우리 역시 그 영향을 그동안 받아왔고 지금도 받고 있을 것이다.
국가와 사회는 그들의 상처를 위로해야 하고 보듬어야 한다. 아무리 늦었더라도 그들에게 보상해 주어야 하고 한국전쟁 동안, 그리고 그 이후 국가와 사회가 그들을 보살피지 않은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남은 여생 동안이라도 한국이라는 국가,사회 공동체에 몸 담았던 인생을 보람있게 기억할 것이고 피해의식과 죄의식에서 벗어날 것이고 후손들에게 공동체의 중요함을 이야기할 것이고 자기 세대들끼리, 후배 세대들과 화해하고 어울릴 것이다.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적당한 때일 수 있다’라는 말을 이제라도 떠올리면서...
 
전쟁피해자 뿐 아니라 한국현대사는 어떤 측면에서 돌아보아도 왜곡과 부정의 연속이다. 일제의 잔재는 청산되지 않았고 독립투사들은 배제, 탄압되었다. 정치, 경제, 사회, 학문, 사법, 행정,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친일 매국노들이 수 십년 간 한국의 모든 기득권과 원력을 행사하였다. 역사는 그들을 단죄하지 못했고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지도 못했다. 봉건제도는 기형적으로 미군정과 식민지식 한국사회에 잔존했다. 한국 현대사는 ’부정과 부패’의 역사가 되었고 지금도 정치, 경제, 사회, 사법, 언론, 학계 등에 뿌리깊게 박혀있다. 기득권 세력은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은 그러한 왜곡된 제도와 질서를 더욱 나쁜 방향으로 몰고 갔고 민중들은 한동안 이에 대항하지 못했다. 그들은 군사적인 폭력을 기반으로 기득권을 유지하였고 국가의 권력과 부를 일부가 나누어 강탈해왔다.
다행히 1987년에 민중들이 주축이 되어 기득권에 항거했고 그 과정을 통해 최소한의 정치적,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루어냈다. 정치적, 사회적 민주화를 이루어내기 시작하면서 경제 민주화도 조금씩 확대되어 갔다.
하지만, IMF는 경제 민주화의 진전을 가로막았고 민주개혁을 표방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국내외의 자본세력과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침탈을 방어해내지 못해다. 그 결과 어렵게 확보한 정치적,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지금 위협받고 있고 경제 민주화는 후퇴하고 있다.
 
우리는 한국이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지켜야 하고 정치경제적 민주화를 진전시켜야 한다. 그와 동시에 왜곡된 한국현대사 역시 하나씩 바로 잡아야 한다. 물론 그것은 ’보복’과 ’처단’이 목표가 아니라 ’진실’과 ’정의’와 ’사과’와 ’화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지난 현대사를 바로 잡지 않으면 여기 저기 숨어있던 ’부정과 부패’가 지금보다 더 기승을 부릴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기억하고 되새기고 노력하고 바로잡지 못할 경우, 역사는 후퇴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준다.
 
 
* 책 속의 문장 :
- 한국전쟁 기념사는 대개 ‘북의 침략’은 자유를 위협하는 행위이므로 세계가 ‘침략자를 분쇄’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당면한 과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한국전쟁 기념사는 매년 이러한 형식을 취했는데 ‘국군 장병’과 ‘유엔군’을 추모하는 것 이외에 어디에도 전쟁을 겪은 ‘국가’로서의 전쟁 피해자와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다. 전쟁 피해자와 희생자들의 이야기는 전쟁의 원인뿐 아니라 전쟁의 과정과 끝나지 않은 전쟁에 대해 들려준다. ‘가족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국가) 폭력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작동되었는지,’ ‘전쟁 뒤에도 폭력은 어떻게 재생산되었는지,’ …… ‘전쟁이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 이들의 이야기는 국가의 공식 기억인 ‘원인과 그에 대한 책임’이라는 구도와 다르게, 전쟁 동안 그리고 전쟁 뒤에도 끝나지 않았던 한국전쟁의 잊힌 역사를 들려줄 것이다. (p.19~20)

- “쏙 빠져나가면 될 텐데 …… 그 바보 같은 놈이 따라갔다” 곽희숙의 남편은 “군인 끌려 나갈 적에”도 “소 끌고 가서 일하고 온 사람을” 갑자기 영장이 나왔다며 “저녁에” 데리고 나갔다. 곽희숙은 다섯 살, 세 살, 백일 지난 아이들이 있었고 매일 벌어 생계를 유지해야 했음에도 그런 개인(가족)의 생계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 국가는 동원으로 인한 생활고로 가족이 해체될 위기에 있는데도 그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우리 친정아버지가 만날 …… ‘그 바보 같은 놈이지. 여― 여이― 문전(처갓집 앞)을 지내야 하는 놈이, 우리 처갓집에 잠깐 들어다보고 올 꼬마 이카고 쏙 빠져나가면 될 텐데 …… 그 바보 같은 놈이 따라갔다’고 …… 시골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배운 것도 없고 골짜기에서 살아놔 노니 그리 그리 …···” 되었다고 이경순은 말한다. (p. 47~48)

- 임신 3개월이었던 구영선은 남편이 소집되어 나간 뒤 집이 통영이었기 때문에 트럭을 타고 마산으로 갔다. 임신 초기라 먹지도 못하고 토해냈다. 굶주리면서 임신 내내 전쟁터를 돌아다녀야 했다. 자신을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표현할 정도로 의식이 없는 몸 상태로 지냈다. 만삭인 채 통영 시댁으로 갔을 때, 본인을 향해 겨눈 총도 ‘아― 튀어나오는 건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감각이 둔해지고 의식이 없었다. 이 과정을 박수영은 “아이고― 배는 불러가지고 30리를 걸어가는데 요기만 조만치만 가도 오줌이 마렵고, 어휴― ‘여기서 차라리 내 죽었으면 좋겠다’고 그랬어요. ‘죽으면 너[희]들도 편하고 나도 편하겠다’”라며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숙자도 만삭이어서 출산일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피난을 갔는데도 피난 가지 않았다. (p.62~63)

- “음흉하기가 짝이 없다” 이들의 결혼은 대개 남편의 상이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정상호는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가 친구 사이라 “서로들 약주를 좋아하다 보니께 ‘네 딸 나 다구?’ ‘사위 삼자’”면서 결혼에 이르렀다. 그이는 시집에 와서 아랫목에 누워 있는 남편을 보고 나서 ‘속아서’ 결혼했음을 알았다. 정끝남도 형제들 가운데 막내로 올케 친정어머니의 소개로 결혼했는데 남편의 상이를 모른 채 결혼하고 나서는 1년 동안은 무서워서 말도 못 건넸다고 한다. 이성원은 자신의 경우에는 일제 강점기 때 정신대에 동원시키지 않기 위해 결혼했던 것처럼 피난 때문에 결혼을 서둘렀다고 했다. 서둘러서 간 곳은 ‘경상’이라고 듣던 것과는 달리 방에 누워 있는 신세였다. 이를 두고 이성원은 “음흉하기가 짝이 없다”고 표현했고, 시댁 쪽은 상이 등급이 결혼에 지장을 줄 거라고 염려해 상이 등급도 내려놓았다고 했다. (p.121)

- 먼저, 전쟁미망인은 노동을 통해 근대의 기획, 곧 공사 영역의 분리와 사적 영역에서의 현모양처라는 틀을 깨뜨렸다. 공사 영역의 분리는 근대의 기획 가운데 성별 그리고 노동시장을 조직하는 중심 논리이다. 남성은 노동시장에 나가 노동자이자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 부양을 책임지는 존재임에 반해 여성은 가정에 남아 어머니나 주부로서 남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존재로 여겼다. …… 그런데 이 논리는 전쟁미망인에게 적용될 수 없었다. …… 전쟁미망인들은 쟁기질만 못했을 뿐 모든 농업 노동을 혼자서 해왔다. …… 이처럼 농업 노동에서 차지하는 남녀의 역할은 한국전쟁 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것을 가속화시킨 장본인은 전쟁미망인이었다.(p.172)

- 상이군인의 몸은 결혼한 여성들에게 전달되었고, 그들은 생계 활동을 하면서 남편의 몸을 돌보아야 했다. 육체적 고통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정신적 타격은 오랫동안 남아 있게 마련이다. 전쟁미망인은 분가를 통해 시가의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누워 있을지라도 ‘가부장’인 남편이 존재했고, 남편의 의심과 언어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언어폭력은 상대방에 대한 무시와 멸시를 동반했고, 그 폭력에 노출되었던 당사자는 자존감을 상실했다. (p.208)

- 성장하면서 학살당한 아버지를 기다린 시간은, 성인이 된 뒤에는 짐이 되어 앞길을 막는 작용을 했다. “우선 내가 받은 건 그런 스트레스. 그래 크게 요약을 하면 첫 번째 내 연좌제 했던 이런 것에서 오는 경제적인 어려움, 두 번째 그 산소 없을 때 자식들에 대한 저기, 또 그 아버지 없이 자란 저기 평판. 이런 거를 그냥 말로는 쉽게 표현하는데 이것을 살아오면서 피부로 느낀 사람은 엄청난 그 저기가 오는 거여. 그래 제가 우리 자식들한테는 후회 없이 할려고 노력을 했어요.”(이성모) 그는 연좌제로 인해 사회생활에서 좌절을 겪었다. (p.269~270)

- 유럽 여러 나라들이 전쟁 피해자로 군경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은 것에 비해, 우리나라의 원호법은 군경, 군속과 민간인을 구별했고 전쟁 피해자인 민간인은 이 범주에서 제외시켰다. 또한 연금을 비롯한 보상을 받는 대상자 면에서도 군경미망인뿐 아니라 군경과 군속의 인원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소수의 군경미망인만 전쟁미망인으로 인정하고 그 외 다수의 전쟁미망인은 전쟁 피해자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전쟁 피해자를 수적으로 줄이는 방식은 전쟁미망인뿐 아니라 상이군인에도 적용되었다. (p.368)
 
[ 2011년 6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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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정치학
앤서니 기든스 지음, 홍욱희 옮김 / 에코리브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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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단의 중심을 자동차 대신 걷기와 대중교통으로 바꾼 지 4개월째다. 작년 말부터 자동차와 대중교통을 번갈아 이용하다가 금년들어 봄이 다가오면서 주로 걷거나 지하철, 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적게는 한 달에 2~3번, 많으면 4~5번 정도 이용한다. 부득이한 경우에 한하여 사용한다. 

자동차를 멀리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내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줄이기’였고 책을 읽을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걷기와 대중교통 이용은 부수적인 장점도 있다. 서울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르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필 수 있게 되었고 하루에 적어도 30분 이상 걸으면서 운동효과도 있다. 기름값을 절약하여 책 값에 보탤 수도 있고...ㅋ 걷기 시작하면서 더불어 생활에도 여러가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먹거리, 입을거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고 책도 가급적 중고책을 주문하려고 한다. 본래 ’미식가’도 아니었지만 ’제 때에 정량만 먹자’를 생활화하고 육식과 과식을 피하려고 한다. 

앞으로 남은 ’생활화’는 적당한 수준의 운동이 될 것이다.

이렇게 생활하게 된 계기는 작년에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관련 책, 그리고 걷기를 비롯한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간 위인들의 책을 읽은 것이었다. 입적하신 법정스님으로부터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고 법정스님이 소개한 여러 위인들,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피에르 라비,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오래된 미래>의 저자), 이반 일리히와 장 지오노(<나무를 심은 사람>의 저자), 사티쉬 쿠마르와 쓰지 신이치(<슬로 라이프>의 저자)의 삶과 철학도 감동적이었다. 내가 그 분들의 삶을 온전히 따라할 수준은 못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실천’해보기로 마음억었다. 

국토해양부 조사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우리나라 승용차 수송분담률은 56.8%로, 2001년(73.5%)에 비해 감소했다. 상대적으로 버스의 수송분담률은 14.1%에서 24.6%로 증가했다. 지하철을 포함한 철도의 수송분담률도 9.8%에서 15.9%로 증가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떨까. 수도권의 경우 2010년 기준으로 대중교통수단 수송분담률은 54.3%였다. 반면 도쿄의 경우에는 이미 1988년에 지하철 수송분담률이 73%에 달했다. 같은 해 뉴욕은 75%, 런던은 70%, 파리는 54%를 기록했다. 수도권의 대중교통수단 수송분담률이 20여년 전 파리와 비슷한 수준인 셈이다. 한국은 ’환경’과 ’생태’를 향해 갈 길이 아주 멀다... 

2009년 12월에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nference of the parties)’가 코펜하겐에서 개최되었다. 그동안 온실가스 감축 노력의 기준이던 2007년의 ‘교토의정서’(2012년 만료)를 대체할 새로운 국제협약을 이 정상회의에서 논의했지만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 저자는 코펜하겐 회의에 영국 정부와 노동당, EU 각국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할 것이다. 
‘교토의정서’는 산업화를 주도해온 선진국(37개국과 EU)에 기후변화의 책임을 묻는 국제협약으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배출량 대비 평균 5.2퍼센트 줄이는 것이 그 주요 내용이었다. 그런데 ‘교토의정서’는 미국의 비협조로 사실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코펜하겐 정상회의는 그 중요성이 크다.
그런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위원회’(IPCC)는 2001년 보고서에서 기온 상승과 관련해 66퍼센트가 인간의 활동에 기인한다고 했는데, 2007년 보고서에서는 90퍼센트 이상이라고 못 박았다. 기온상승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이 그만큼 시급해졌다는 의미다.
2009년 12월 코펜하겐 회의는 합의도출에 실해하였고 이듬해인 2010년 12월 멕시코 칸쿤회의에서는 최소한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 책은 이번 주 금요일 세미나 교재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국제정치의 흐름과 관계가 어떠한지에 대하여 논의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 * 앤서니 기든스는 누구인가? --------------------------
사회 이론과 계층론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학자이다. 특히 사회 이론 분야에서 유럽의 지적 전통과 현대적 흐름을 반영한 ’사회 구조화 이론’으로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구축했다.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모두 반대하고 ’제3의 길’이라는 새로운 사회발전 모델을 주창했다. 영국 헐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런던정치경제 대학(LSE)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런던정치경제 대학 학장을 지냈으며, 현재 런던정치경제 대학 명예교수이자 영국 상원의원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 [현대 사회학],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이론], [노동의 미래], [제3의 길], [현대성과 자아정체성] [성찰적 근대화], [사회 구성론],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친밀성의 변동], [사회학의 변론] 등이 있다. ----------------------------

저자는 영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상원의원이다. 그는 20세기 말에 영국 노동당이 구좌파식 이념인 ’제1의 길’과 대처 전수상의 대처리즘, 즉 신자유주의 이념인 ’제2의 길’을 뛰어넘어 ’제3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여 유럽 사회 전역에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국내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주변 지인들에게 읽어보라고 소개한 책 중에 저자의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2007)>도 있다. 그 책에서도 저자는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영국 노동당의 적극적인 노력과 EU 중심의 정치학을 강력하게 제시했다. 

지금까지 기후변화협약을 위한 정부간 협의는 EU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저자는 EU가 앞장서서 기후변화를 글로벌 어젠다로 설정하려는 ‘기후변화의 정치학’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는 이제야 세계 모든 국가가 ‘기후변화의 정치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며, 또한 각국이 국내정치의 중심 문제의 하나로 채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저자는 하나의 역설로 이 책을 시작한다. 그것은 "지구온난화로 야기되는 위험은 결코 손에 잡히지 않으며 일상생활에서 거의 감지될 수 없기에 그 잠재력이 제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우리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뿐이다."라는 것이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후변화 문제는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지 못하며 늘 뒷전으로 밀린다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역설을 ’미래 디스카운트(Future Discount)’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역설은 사람들의 행동을 마비시키거나 억제하는 데도 영향을 미치는 중심적인 개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수없이 그 심각성을 듣더라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여기에서 ‘기후변화의 정치학’을 출발시킨다. 

그는 서문에서 자신의 핵심 주제를 요약하여 정치지도자들에게 다음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첫째,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정치적, 경제적 통합을 진작할 것이며 그런 일을 시행하라. 예를 들어 기업인들에게 사전에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관행을 만드는 일이 중요한데 그들이야말로 새로운 환경정책 시행에서 최상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이런 것을 ‘기후변화의 긍정성’이라 함.) 특히 어떤 사안에서 예견되는 리스크가 지극히 추상적이거나 또는 먼 훗날에 가시화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둘째,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가지는 관심을 그들의 일상사와 연관지어 설명하는 일에 집중하고 그런 일상사에 굉장한 문제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라. 예를 들어 일반대중은 기후변화가 야기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경고보다는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운전요령에 대해서 더 잘 반응할 것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정책을 수립하고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단기적인 계획은 물론이고 특히 장기적인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셋째, 지구온난화 문제로 정치적 이득을 취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버려라. 어쩌면 그러고 싶은 유혹이 상당히 클 것이며, 특히 정부나 집권여당이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경우에는 더욱 그러할 수 있다. 만약 가능하다면 기후변화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주요 야당들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때 사회정의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만약 기후변화의 영향에서 사회적 빈곤층을 보호할 수 있는 특별한 대책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기후변화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될 것이다.
넷째, 기후변화 정책은 그 속성이 대단히 복잡하므로 그 각각에 대해서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물론 장기적인 영향들까지를 고려한 정밀한 리스크 평가(risk assessment)를 시행해야 한다. 우리는 재생에너지가 전체 에너지 수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미래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게 전환하는 데는 엄청난 사회적?경제적 영향이 수반될 것이기 때문에 세계의 어떤 나라와도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 세 장에서 국제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적응’의 문제, 기후변화의 문제는 에너지 안보를 제외하고는 논의가 불가능함을 역설한다.
우리 인류는 이미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방출했으므로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성공을 거둔다 해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모면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영향에 더욱 용이하게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어느 날 변화가 발생하여 우리가 그것에 직면했을 때 단지 그것을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최대한 빨리 그런 변화의 도래를 예상하여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바로 ‘적응’임을 역설한다.





 

1장. [기후변화의 위험성]에서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제기하는데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조직은 유엔 산하 IPCC이다. IPCC가 2007년 ’가장 실현성이 높은 시나리오’로 제시한 것은 21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기온이 4도시 이상 상승하고 해수면도 48cm 높아진다. IPCC와 EU는 온실가스 정책의 목표를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을 2도시 이내로 머물게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이산화탄소 농도를 450CO2e 수준으로 묶어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IPCC의 시나리오에 대해 비판하는 회의론자와 강경론자를 모두 소개한다. 회의론자는 IPCC의 수치가 과장되어 있다는 것이고 강경론자는 IPCC의 목표 달성은 이미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 강력한 목표와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모든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감안하면서도 위협을 과장하거나 온실가스 저감에 회의적이기 보다 낙관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주장한다. 기후변화 이외에도 핵무기 확산이나 국제 테러 등 모든 리스크에 대해 균형감각을 잃지 말고 정밀하게 평가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2장. [자원 고갈인가, 자원 감소인가?]에서 저자는 에너지 안보에 대한 리스크를 검토한다.
저자는 ’석유의 역사는 곧 제국주의의 역사’라는 명백한 사실을 강조하면서 ’피크 오일’에 대한 찬반 논의를 소개하고 에너지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힘겨루기와 개발도상국까지 포함된 전세계적인 자원 쟁탈전의 심각성에 대해 우려한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에너지를 둘러싸고 미국, EU,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이 갈등국면에 진입해 있다. 

3장. [녹색운동과 그 이후]에서 저자는 그동안의 녹색운동이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는데 있어 방해만 되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단일한 녹색운동’은 없고 다양한 입장과 행동지침이 존재하며, 녹색주의나 녹색운동도 사회주의와 마찬가지로 산업혁명의 산물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녹색운동이 주장하는 참여민주주의만이 유일하게 가치있는 민주주의, 최선의 사회 형태가 분권화된 사회, 비폭력에 대한 맹신, 자연의 신성화, 경제성장에 대한 반대, 사전예방 원칙, 지속가능성, 오염자 부담 원칙 등을 비판하면서 녹색운동이 기후변화를 실질적으로 막아내고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기후변화의 정치학을 위해 필요한 개념들을 정리한다. 그것은 책임국가, 정치적 통합, 경제적 통합, 최우선순위에 놓기, 긍정적인 목표 설정, 정파의 초월, 퍼센트 원칙, 개발 절박성, 과도한 개발, 선제대응이다.

저자가 녹색운동을 비판하는 정도를 넘어 폄하하는 것은 약간 어리둥절한 느낌이다.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감축 문제가 지금처럼 국제정치의 주요 의제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 녹색운동이 기여한 것이 아닌가?(잘은 모르겠지만...^^)
그리고 ’사전예방 원칙’이 과도하게 적용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일면 타당한 점도 있지만, 부작용의 사례로 이라크 침공과 GMO(유전자 조작식품)을 예로 든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논리적인 면보다 감정적인 면이 엿보이는 주장이라는 느낌이다.

4장. [주요 환경 선진국들의 현황]에서 저자는 현재까지 선진국들의 환경과 온실가슴 감축 현황을 평가한다. ’환경성과지수’에서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스위스, 코스타리카가 상위권이고 ’온실가스 감축 부문’에서는 스웨덴, 독일, 아이슬란드, 영국이 상위권이다. 
저자는 상위권 국가들의 과정과 현황을 분석하면서 몇 가지 특징을 제시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기후변화 자체보다 에너지 안보에 집중하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점, 좌파정권일 때 정부의 노력이 더 이루어진다는 점, 탄소세는 긍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 재생에너지가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려면 기술개발에 대한 정부지원이 중요하다는 점, 원자력은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많은 국가에서 에너지 다양화의 한 대안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점, 정부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점, 개발도상국으로의 ’온실가스 배출 이전’이 없었따면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온실가스 감축 방안에 있어 현실론에 근거하여 논의를 진행한다. 물론 기후변화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개혁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존재하는 조직과 기구들을 무시할 수 없으며 또한 민주주의 전통을 중시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국가(state)의 역할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국가의 의미는 다양한 수준의 공권력을 의미하는데, 중앙정부와 지역정부, 지방정부 등을 모두 아우른다. 그리고 지구화 시대에는 그런 공권력이 정치학자들이 이른바 ‘다층적 거버넌스’라 일컫는 다양한 수준에서 발휘되는데 위로는 국제무대에서, 아래로는 지역과 도시와 지방에 이를 수 있음을 역설한다.

5장. [다시 국가 주도의 시대로?]에서 국가가 맡아야 할 중요한 업무들을 제시한다. 그것은 시민들이 미래를 먼저 생각하도록 돕는 것, 현 사회가 직면한 다른 리스크들을 함께 고려하면서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를 다루는 것, 정치적 경제적 통합을 도모하는 것, ’오염자 부담 원칙’을 제도화하도록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 기후변화 대책을 막으려는 산업계의 요구를 물리치는 것, 기후변화 문제를 항상 최우선의 정치 의제로 삼는 것, 저탄소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 적절한 예산 계획을 수립하는 것, 실제로 일어난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대비하는 것, 기후변화 정책의 국지적-지역적-국가적-국제적 측면들을 통합하는 것이다.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가개입과 국가주도의 경제운영에 대한 역사를 검토하면서 종합계획 수립을 주문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대부분 사람들이 기후변화의 원인에 대해 아주 막연하게 알고 있으며 기후변화에 대한 추가 비용에 긍정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개인과 가정의 일상생활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는 행동과 습관이 많음을 지적하면서 이를 위해 규제나 감시가 아닌 인센티브 제공이 중요함을 주장한다.
 
저자는 정치학에서의 ’의제 설정 이론(Agenda-setting Theory)’를 통해 기후변화를 최우선 정치 의제로 삼으려면 지표상의 변화에 대한 기회 포착, 연간 예산 편성, 초당적 협력, 대중들이 직접 경험한 일과의 연계 등을 제시한다.

6장. [기술과 세금제도]에서 저자는 풍력, 파력, 조력, 지열, 바이오연료, 수소에너지, 재생에너지, 탄소저감기술 등 대부분의 새로운 기술들이 모두 적당한 수준까지만 개발된 상태임을 지적한다. 대신 현시점에서 가장 장래성이 있는 기술은 원자력, CCS(청정석탄), 태양에너지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어떤 기술도 비용이 만만치 않음을 지적하면서 기술의 다변화를 추구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또한 새로운 에너지 기술개발을 위해서는 정부의 보조금 지원, 특허에 대한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기후변화의 뉴딜 정책’을 통해 일자리 만들기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탄소세와 탄소시장이 공존하면서도 탄소세를 더 지지한다.

7장. [적응의 정치학]에서 저자는 ‘적응’의 문제,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의 문제는 에너지 안보를 제외하고는 논의가 불가능함을 역설한다. 인류는 이미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방출했으므로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성공을 거둔다 해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모면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영향에 더욱 용이하게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것은 어느 날 변화가 발생하여 우리가 그것에 직면했을 때 단지 그것을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최대한 빨리 그런 변화의 도래를 예상하여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바로 ‘적응’임을 역설한다.

8장. [국제협상, 유럽연합, 그리고 탄소시장]에서 저자는 2007년 발리 회의 이후 진행되는 향후 협상에 대해서 특별한 성공을 기대하지 말것을 주문한다. 그 협상들이 지구온난화 억제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실제로 기후변화협약을 위한 정부간 협의는 2009년 코펜하겐 회의와 2010년 칸쿤 회의에서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저자는 EU 회원국들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 얼마나 성공할지 불확실하며, 현실적으로 기대치에 훨씬 미치지 못할 수도 있음을 감안해야 함을 지적한다. EU의 경우에도 모든 일은 회원국들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탄소시장에 대해 저자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다.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탄소시장이 열리기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9장. [기후변화의 지정학]장에서 저자는 당면한 기후변화의 문제와 에너지 안보 문제가 얼마나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설명한다. 지금까지 정치계와 학계는 이 두 문제를 때때로 별개의 사안으로 간주했고,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를 동시에 다룬 문헌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에너지 안보를 다루는 문헌과 기후변화를 다루는 문헌들 사이에 명백한 불균형이 존재하며, 에너지 안보의 분석에서 그것이 명백하게 증명되듯이 온실가스 감축 문제를 다룰 때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정학적 검토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논의들은 국제협상의 세부 사항에 집중하거나 또는 기후변화로 인한 결과로 빚어질 수 있는 지정학적 분열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는 것. 지금 기후변화를 둘러싼 논의에서 부족한 것은 정치지도자들이 내리는 결정에 지정학적 요소들이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제대로 분석해내는 일이다. 또한 그는 기후변화에 대한 새로운 협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선진국의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세계 최대의 에너지 사용국이자 온실가스 발생국인 미국과 중국의 더욱 적극적인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 속에서 저자는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차원에서, 그리고 국제기구와 국제협상 차원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억제를 위해서 시행할 수 있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 가운데는 신생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절감 기술을 포함하는 과학 기술에서 탄소세로 대표되는 조세제도와 시장의 힘을 최대로 활용하고자 하는 온실가스 거래시장 등 금융과 재정 분야, 
그리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 사이의 협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서 청정개발체제(CDM)에 대한 새로운 제안 등에 이르기까지 현재 논의되고 있는 거의 모든 분야와 대안이 다 포함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 하나만으로도 온실가스 배출 절감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또한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어떻게 그 문제를 협의해 나가며, 새로운 합의를 위해 어떤 단계를 밟아나가야 할지를 충분히 알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기후변화가 정치 의제의 전면에 나타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일 것이다. 이명박정부가 2009년 국제회의에서 ’녹색성장’ 등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약속을 했지만, 실제 현정부가 ’기후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나 전략, 목표나 방법, 의지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실은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아직 한국 정치와 경제적 현실은 기후변화를 걱정할 정도로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국민적인 환경의식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들의 노력이 훨씬 더 배가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책 전체를 관통하면서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대한 깊은 신뢰, 그리고 국가와 정치가에 대한 높은 신뢰를 엿볼 수 있다. 영국이나 유럽의 정치경제 현실과 미국이나 한국의 정치경제 현실이 많이 달라서 그런가? 나는 미국이나 한국의 정치경제 현실을 돌아보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도, 국가와 정치가도 신뢰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현실에서 보여준 모습과 더불어 그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근본적인 동력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의 욕망’을 토대로 굴러가는 자본주의라는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에 제동장치를 달아서 필요할 때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자본과 욕망에 둘러쌓여 있는 정부와 정치가가 본래의 도덕성과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쉽게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기든스의 철학과 정책에 대해 더 알아야 할 것 같고 자본주의, 국가, 정치에 대한 더 많은 경험과 깊은 분석도 필요할테니...

* 책 속의 책 : 마틴 리스 <우리 최후의 세개 In our final century >, 빌 맥과이어 <아마겟돈에서의 생존 >, 앤서니 기든스 <제3의 길>

[ 2011년 6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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