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미술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신화 뒤집기, 개정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 현실문화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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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내일 진행될 공부모임의 교재이다. 지난 번 공부모임에 참석하지 못해 어떤 배경과 이유에서 이 책을 교재로 결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보통 인문사회과학 도서가 교재였기에 ’미술’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는 신선하다. 더군다나 이번 공부모임에는 공부모임 참가자인 어떤 분이 미술과 관련한 연극도 관람하게 된다. 연극 제목은 <드로잉 쇼 히어로>이고 [명보아트홀]에서 내일 함께 관람할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내일 다른 저녁 약속이 있기 때문에 참석할 수가 없다. 쩝...
 
이번 연극 관람건도 그렇지만 나에게 있어 미술이나 예술분야는 쉽게 이야기하면 ’서로 운이 따르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주변에 미술이나 예술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기도 했고 가까운 사람 중에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도 없었을 뿐더러 가끔 접한 미술과 예술에 친밀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미술이나 예술을 가까이 해보려고 노력을 한 것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전체 미술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미술과의 인연은 끝났다. 대학의 전공이 ’건축학’이었지만, 1학년 건축도학 수업은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투시도와 조감도를 그리는 것이 건축 디자인에서 어떤 부분을 배울 수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교수들이 가르쳐 주지도 않았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 나에게 있어 ’건축’이란 ’내 스스로 내가 살고 지낼 집을 짓는다’라는 수준에 불과했다. 대학 입학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내가 살 집을 내가 지을 수 있는 것은 건축 설계 능력이 아니라 경제력을 통해 가능하다’라는 아주 단순한 진실을 깨닫고 나서 철없던 내 생각을 비웃었다.
스케치 실력이 좋은 대학 동기들이나 대학 동아리의 탈반이나 미술,음악 계통 동아리의 활동을 가끔 바라보면서 간혹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내가 미술이나 예술에 자질과 흥미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에 불과했다.
지난 겨울에 런던에 갔을 때, 영국의 현대미술관이나 국립박물관, 웨스트민스터 사원, 오래된 성당을 주로 구경하고 다녔지만 ’새로움’이나 ’신선함’ 이외에 여전히 미술적 감흥이나 감동은 받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미술이나 예술이란 타고난 자질이 있어야만 반드시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주변의 환경과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면 누구나 접할 수 있고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감성과 열정을 다듬고 키우는 것에도 미술과 예술은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경제활동에서 벗어날 정도로 나이가 들게 되면, 책이나 여행 이외에 스스로의 삶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쓸만한 활동으로 미술이나 예술은 꽤 좋아 보인다.
지금이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도 늦은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이제라도 내가 미술이나 예술 분야에 관심과 흥미를 느끼고 도전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20대 이후 계속 드는 고민이고 평생 동안 따라다닐 숙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에 나는 ’미술’에 대한 정의나 개념, 역사나 구성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가끔 미술과 예술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몰랐다. 이 책은 그런 나에게 첫 번째 안내서 역할을 해주었다.
미술이 무엇인지, 언제부터 미술이 있었는지, 미술의 역사는 어땠는지, 누가 미술의 주체인지에 대해... 
 
이 책의 기본 아이디어들은 저자가 1985년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에서 졸업반이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동시대 미술, 문화, 비판이론’이란 강의를 하며 만들어졌다. 저자는 "미술과 근대적 주체 개념은 물론 문화에 대한 고루한 편견과 신화를 효과적으로 해체시키는, 그리고 학생들이 비교적 세련된 관점으로 전공 분야에 접근하는 것을 도와주는 예비강좌들을 마련했고 강의를 정리해 책으로 출판"(p.xi)한 것이다.
 
----------------------- *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크키는 누구? -------------------------
미술사가로서 미국 렌셀러 폴리테크닉 대학 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의 전자예술사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The Power of Display: A History of Exhibition Installations at the Museum of Modern Art》(1998), 《Dennis Adams: The Architecture of Amnesia》(1990) 등이 있으며, 주로 근현대 미술과 문화에 관한 탁월한 저술가로 정평이 나 있다. ---------------------------------
 
저자는 ’미술, 문화, 비판이론’을 10개의 챕터로서 책으로 구성했다.
1. 미술이란 무엇인가 : 우리가 지금까지 미술에 대해 알고 있었던 오래된 편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2. 미술과 근대적 주체 : 근대를 거쳐오면서 한 개인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미술에 대한 개념도 등장하기 시작했음을 밝히고 있다.
3. ’예술’이라는 용어 / 4. 미학 : 예술의 이론 : ’예술’과 ’미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배경에 대해 서술한다.
5. 미술창작이라는 특권 : 예술이라는 분야가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었으며 여성 작가들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소외되어 왔음을 밝히고 있다.
6. 아카데미 / 7. 박물관 : ’아카데미’와 ’박물관’의 등장과 역사, 그리고 예술에 끼친 영향에 대해 언급한다.
8. 미술사와 모더니즘
9. 아방가르드와 대중문화
10. 오늘날의 미술과 문화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장-앙투안 와토의 [키테라섬의 순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과 이집트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까지, 전세계의 사람들 대부분이 훌륭한 미술(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해 온 것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모든 작품들이 ’미술이 아니(었)다!’라고 선언한다. 
<아담의 창조>

 <모나리자>

<키테라섬의 순례>

<밀로의 비너스>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 * 역자 박이소는 누구인가? -----------------------------
홍익대학교와 미국 프랫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미국에서 ‘박모’라는 이름으로 33회의 크고 작은 전시에 참여했으며, 대안공간인 ‘마이너 인저리 Minor Injury’를 운영하기도 했다. 1994년 귀국해 SADI 교수를 역임했으며, 1997년 광주비엔날레와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2004년 부산비엔날레 참여작가로 활동했다. 2001년에는 대안공간 ‘풀’ 개인전과 2002년 에르메스상 수상기념전 등을 가졌다. 국내외에서 한창 주목을 받고 있던 2004년에 작고했다. 번역서로는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외에 《문화연구와 문화이론》(존 스토리 지음, 현실문화연구, 1999)이 있다. -------------------------
 
저자는 책의 첫 쪽부터 도발적인 선언을 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 뿐만 아니라 베르사유 궁전, 니이케상, 중국의 봉헌 그림 등의 사진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며 이 모든 작품들이 정작 ’미술이 아니다’라고 한다. 지금까지 독자들이 갖고 있었던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드리면서 저자의 생각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이란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하면서 위에 나열한 작품들은 오늘날 문화에 의해 ’차용’되어 미술로 변형된 것이라 이야기한다.

’미술’은 근대, 특히 지난 200년간의 발명품이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이 생산한 뛰어난 건물들과 물품들은 우리의 문화에 의해 ’차용’되어 미술로 변형된 것이다. 우리가 아는 미술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나타난 현상으로, 미술관에 전시되고, 박물관에 보존되며, 수집가들이 구매하고, 대중매체 내에서 복제되는 그 무엇을 말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다양한 제도들에 의해 형성되고 정의된다. 제도는 사물들에 그 경계와 관행을 설정해 준다. 이는 액자틀이 그 안에 있는 것을 회화로 보이게 만들고, 좌대가 그 위에 있는 것을 조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과 같다."(p.28)
예를들어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는 미술로 창작된 것이 아니었다. 이 이미지는 단지 로마 교황의 권위와 성스런 의식을 위한 시각적인 은유였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로서 이 프레스코화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미술은 아니(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 또한 마찬가지다. 이 5인치짜리 인물상에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그리하여 이 상을 미술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모두 현대에 와서의 일이다. 이 비너스상은 제작될 당시 단지 일상용품이었을 것이다. 이 조각상을 예술작품이라 부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인들의 속단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1913년 마르셀 뒤샹이 만든 작품 ’기성품’은 이러한 미술 자체에 대한 반성과 그 토대에 대한 공격에서 발생한 반미학적 경향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니이케 상>

<중국 고대 봉헌 그림>

<베르사이유 궁전>

- 마르셀 뒤샹 <기성품>


뒤샹, 피카소, 몬드리안, 폴록, 그리고 워홀 등 저자는 근대 이후의 작품들을 ’미술’이라 정의한다.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가 예술에 대한 영감을 바탕으로 스스로 창조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미술’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미술의 개념은 개인이 자신의 인간성을 인식해 가는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된 후 생겨났다. 즉 미술은 유럽에서 군주제의 해체와 동시에 그 존재를 드러냈다는 말이다. 이로서 미술은 교회(종교)나 왕권(정치)의 권위를 위해 봉사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직 작가 자신이 스스로 얻은 영감에 의해 자유롭게 창작할 뿐이다. 이렇게 창작된 작품들은 ’자유시장’ 내에서 전시, 교환됨으로써 그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미술에 대한 저자의 해박하고 예리한 지적과 통찰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작품을 보는 새롭고 혁신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어떻게 보면 지루할 수 있는, 미술의 역사를 거쳐간 여러 사조들 - 초현실주의, 인상주의, 추상파, 표현주의, 입체파, 아방가르드, 미래파, 다다이스트 등 - 에 대해 쉽고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미술에 대한 초보적인 교재로서도 충분할 것 같다.
그리고 저자가 해석하는 미술과 미술이론은 물론 문화연구와 인문학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또다른 통찰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저자는 책 속의 곳곳에서 ’제도화된 시각’으로서의 미술이 간직하고 있는 숨은 이야기들 아주 재미있게 들려준다. 이 숨은 이야기들은 오늘날 대중매체와 대중문화를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따라서 저자를 통해서도 이반 일리히의 ’가치의 제도화’에 대한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학교 없는 사회>) 근대의 산업사회 생산양식은 미술과 예술에 대해서도 ’아름다움’이란 가치를 ’미술가’와 ’예술가’, 그리고 화랑, 경매, 미술관, 음악당 등으로 제도화시킨 것이다. 마치 미술관에 자주가서 그림을 보고 음악당에 가서 클래식을 들으면 ’아름다움’을 느낀 것처럼... 
 
* 책 속의 문장
- 우리가 아는 미술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나타난 현상으로, 미술관에 전시되고 박물관에 보존되며 수집가들이 구매하고 대중매체 내에서 복제되는 그 무엇을 말한다. 미술가가 미술작품을 창조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는 아무런 소용이나 가치가 없다. 그러나 이 미술작품들은 미술의 여러 제도들(화랑이나 미술사, 미술출판, 박물관 등) 내로 순환하면서 비로서 현대세계의 다른 어느 것보다도 상대적으로 깊은 의미와 중요성을 획득하고 그 가치가 증폭된다.(p.28)
 
- 오늘날 서구의 미술관은 텔레비전 방송국이나 대기업, 신문사 등 대중매체에서 후원, 선전하는 대규모 인기 전시회 장소로 변모하고, 회화 도록, 티셔츠, 텔레비전 쇼 등으로 포장되어 팔린다. 구내서점, 레스토랑, 카페 등 관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필수적이 되었고, 한 코너에서는 기념품, 포스터, 장신구 등을 판매하는 상업 활동까지 벌어진다. 미술관 방문은 오늘날의 대표적인 여가 활동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서구의 대도시에서는 미술관이 국제적 관광자원으로, 지역경제에 큰 구실을 하고 있다. 미술관의 이념적 폐허화를 주장하는 시각이 많음에도, 또 한편으로는 더 많은 미술관이 지어지고 있는 현상은 그것이 국가와 대기업의 문화주의 및 대중매체와 결합해 과거의 조건에서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음을 말한다.(p.173)
 
- 어떤 의미에서 피카소는 좁게는 창작에 대한 미술가의 권력이라는 신화를,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현대 남성과 세상의 관계에 대한 신화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술가의 창작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피카소와 브라크, 뒤샹은 서구문화에서 의미와 가치들이 창조되는 방식을 탐구해 자신들과, 작품, 그리고 세계에 대해 보다 많은 지식과 권력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다.(p.225)
 
* 책 속의  책 : 존 버거 <보는 방법 / 어떻게 볼 것인가> 
 
[ 2011년 6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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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경제학
도모노 노리오 지음, 이명희 옮김 / 지형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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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프라인 독서모임에 참여한 후 첫 번째로 읽은 것이다.
 
’행동경제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을 때는 무척이나 낯설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행동경제학’의 정의는,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는지, 그 결과로 어떠한 사회 현상이 발생하는지 고찰하는 학문"이다.
이는 경제학 분야의 주류인 고전경제학의 대전제인 ’호모이코노미쿠스(Homo-economicus)를 부정하면서 시작한다.
’호모이코노미쿠스’는 극히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며 오로지 사익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특성을 말한다.
여기서 ’합리성’이란 자신의 기호가 명확하고 모순이 없으며, 항상 변하지 않고 그 기호를 토대로 자신의 효용이 가장 커질 수 있는 선택대안만을 선택한다는 성질을 의미한다.
 
이 고전경제학의 전제와 방법론은 18세기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경제학’과 ’고전이론’을 창시한 이래,
인구폭발과 지구멸망의 예언자 맬서스의 <인구론>, 자유무역론의 창시자 데이비드 리카아도의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원론>과 한계적 시야를 일깨운 알프레드 마셜의 <경제원론>,
제도학파를 이끈 베블런과 갤브레이스의 <유한계급론>과 <경제학과 공공목적>,
정부개입과 재정정책의 선구자이자 풍류도락가 케인스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통화주의자이자 자유시장주의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자본주의와 자유>와 <선택의 자유>,
공공선택학파 제임스 뷰캐넌의 <동의의 계산법>과 합리적 기대이론가이자 자유시장주의자 로버트 루카스의 <합리적 기대와 계량경제학의 실제> 등을 통해 21세기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고전경제학은 학문분야 뿐 아니라 서구세계의 정치계와 재계까지 장악하여 오늘날의 전지구적인 경제체제를 형성한 것이다.
또한, 1990년대 초반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50년 넘게 경쟁하던 사회주의 경제학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더 이상 지구상에 고전경제학의 지위를 넘볼 수 있는 경제사상은 없게 되었다. 
 
하지만, 300년 가까이 인류의 경제사상을 장악한 고전경제학의 근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전경제학은 새로운 도전자나 경제사상이 아니라 스스로에 의하여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연하게도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거두가 무너진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자유시장, 수요와 공급, 통화주의, 정부개입, 국제무역의 무한질주는 급기야 아시아와 남미 등에서 경제체제를 무너뜨렸으며,
2007~2008년에는 고전경제학의 최첨단 주자인 미국경제가 뿌리째부터 흔들린 이후 현재까지 국제경제의 불안정성과 회복이 불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행동경제학’은 이러한 위기를의 근원적인 전제인 ’호모이코노미쿠스’를 부정한다.
저자는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허버트 사이먼,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다니엘 커너먼, 트버스키 교수 등의 최신이론을 소개하면서 고전경제학을 공격한다.
먼저, 저자는 인간의 ’합리성’이 결코 완전하지 않다는, 인간은 태생적, 통계적으로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여러가지 실험 결과를 통해 보여준다.
그 실험들은 ’몬티 홀 딜레마’, ’감염 확률 테스트’, ’4장의 카드문제’, ’미인 투표 게임’, ’최종 제안 게임’, ’지네게임’, ’죄수의 딜레마’ 등으로 독자들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주변에 대해 테스트를 하면서 보통의 인간이 ’합리적이지 않음’을 깨닫도록 해준다.
임의적으로 규정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실제적인 실험을 통하여 결과가 나타나는 심리학 이론을 경제학의 전제와 방법론에 적용하여 새로운 경제학 즉, ’실제 인간의 행동’을 근거로 하는 경제학을 논의하려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의 이론 전제에는 익숙하지 않은 심리학, 경제학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여 책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안겨준다.
행동경제학자들은 ’프로스펙트 이론’, ’휴리스틱(huristic)’, ’바이어스(Bias)’, ’이중 프로세스 이론’, ’앨즈버그 패러독스’, ’손실 회피성’, ’프레이밍 효과’, ’화폐 착각’, ’멘털 어카운팅(mental accounting)’, ’매몰원가 효과’, ’사회적 선호’ 등 수 많은 개념과 이론, 실험과 결과들을 통해 ’행동경제학’의 기본구조와 전제를 마련하고자 한다.
’행동경제학’에는 심리학과 경제학 일반론 뿐 아니라 진화생물학, 사회심리학, 생태학, 뇌과학까지 적용하는 종합학문이라고 불릴 정도로 종합적이다.
이 책의 목차만 살펴보아도 얼마나 많은 개념과 실험이 동원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제1장 경제학과 심리학의 만남―행동경제학의 탄생
경제적 인간·신과 같은 인물 |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 합리적이며 이기적인 경제인 | 경제적 인간의 조건 | 경제적 인간 가설에 대한 옹호론 | 행동경제학이란? | 경제학과 심리학은 하나였다 | 재주꾼 허버트 사이먼 | 인지심리학의 탄생 | 행동경제학의 성립 | 실험경제학과의 차이 | 제2단계의 행동경제학
제2장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으로 행동한다―합리적 결정의 어려움
몬티 홀(Monty Hall) 딜레마 | 확률 이해의 어려움 | 사람은 베이스 룰에 따를까? | 논리적 추론 | 미인투표 게임 | 최종제안 게임 | 게임 이론과 합리성 | 죄수의 딜레마 | 사람은 합리적인가? | 인간의 대단한 능력
제3장 휴리스틱과 바이어스―‘직감’의 기능
휴리스틱(heuristic)이란 무엇인가 | 이용가능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 | 이미지화 용이성(Ease of Imaginablilty) | 사후판단 편향(Hindsight bias) | 대표성 함정(representativeness heuritics) | 도박사의 오류(Gambler? Fallacy) | 평균으로의 회귀(Regression to the Mean, Regression Effect) | 기저율을 무시한 믿음(Neglect of base Rate) | 기준점 효과와 조정(Anchoring and Adjustment) | 전문가도 유혹당한다 | 신속하고 간결한 휴리스틱 | 공중 플라이볼을 위한 휴리스틱 | 2개의 정보처리 프로세스 | 직감이 힘이 된다 | 린다 문제 | 여러 가지 휴리스틱 | 로봇 프레임 문제 | 인간도 프레임 문제로 고뇌한다
제4장 프로스펙트 이론(1) 이론―리스크 상황 하에서의 판단
변화의 감각 | 가치함수 | 준거점(reference point) 의존성 | 민감도(敏感度) 체감성(遞減性) | 리스크에 대한 태도 | 손실회피성 | 가치함수의 수치 예 | 확률가중함수 | 확률가중함수의 예시 | 확실성 효과 | 리스크 성향의 4가지 패턴 | 편집 프로세스와 결합 프로세스 | 엘즈버그(Ellsberg) 패러독스
제5장 프로스펙트 이론(2) 응용―‘소유하고 있는 물건’에 구속됨
준거점 의존성·손실회피성과 무차별곡선 | 보유효과와 현상유지 바이어스 | 수취와 지불의 차 | 시장에서의 보유효과 | 현상유지 바이어스 | 공정(公正)을 둘러싸고 | 공정성이란 무엇인가 | 분배의 공정성(公正性)
제6장 프레이밍(framing) 효과와 선호의 성향―선호는 변하기 십상이다
프레이밍 효과란 | 정책과 프레이밍 효과 | 초깃값 효과 | 화폐착각 | 심적 회계(mental accounting) | 매몰원가(sunk cost) 효과 |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 | 선호는 상황에 따라 변한다 | 중간대안(compromising alternative)이 선택된다 | 이유 있는 선택 | 스토리가 있으면 선택된다 | 선택대안은 많을수록 좋을까? | 만족화와 최대화 인간
제7장 근시안적인 마음―시간선호
다른 시점 간의 선택 | 이자율과 할인율 | 왜 미래의 이익을 할인할까? | 지수형(指數型) 할인 | 쌍곡형 할인 | 2가지 형식의 할인 | 할인율은 측정 가능한가? | 마이너스 할인율 | ‘점점 좋아짐’을 선호한다 | 유사성에 의한 선택과 할인 | 시간에 관한 프레이밍 효과 | 역전되는 선호 | 시간해석이론 | 시간해석의 원인 | 희망과 실현가능성 ...
 
’행동경제학’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행동경제학’이 주류의 공격과 편향을 벗어나 진정으로 인간의 본성과 행태를 밑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경제학을 탄생하여 21세기 인류의 행복증진에 이바지 할지, 아니면 고전경제학의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면서 주류경제학에 편입되어 ’황금만능주의’에 기여할 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무래도 노벨상위원회가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에게 경제학상을 수여한 것이 전자보다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들도록 한다.
 
그래도 이 책을 참 재미있게 읽었다.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 간략하게 공부한 바 있던 ’개념과 허구적인 이론만 있는 딱딱한 경제학’이 아니라 실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분석,적용하여 새롭게 경제이론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시도가 신선한 흥미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책 속에 담겨있는 각종 실험들을 나 스스로 적용해본 결과와 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적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대한 생각은 흥미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행동경제학자들이 새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기대될 정도로...
 
조금 아쉬운 것은 대부분의 실험과 테스트가 학생들과 연구원들에게 한정되어 있고 서구문화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어 서구문화와 전혀 다른 태생의 동양문화권의 사람들은 어떤 실험결과가 나타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
작년에 읽었던 <생각의 지도>에서 동양과 서양사람들의 사고와 판단에 적지않은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 2010년 11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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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중동 이야기 - 세계 3대 종교 발상지 중동의 역사를 읽는다 지도로 보는 시리즈
고야마 시게키 지음, 박소영 옮김 / 이다미디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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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오프라인 독서모임에 참여한 후 <행동경제학>에 이어 두 번째 토론 대상이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1999, 김영사)>를 2008년 10월에 읽고 서평을 쓴 적이 있다.
당시 나는 <문명의 충돌>을 읽으면서 저자의 출간의도와 책 속의 주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는데, 고야마 시게키는 새뮤얼 헌팅턴이 유대인 학자인 ’버나드 루이스’의 영향을 받아 "중동 및 이슬람권을 폭력적인 세력으로 묘사했다"라고 지적한다.
당시 나 역시 깊숙하게 고민하지 않은 채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새뮤얼 헌팅턴의 그런 관점이나 주장에 대해 그다지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던 것 같다.
역시 하나의 대상이나 입장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을 들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의 출간 동기 자체는 긍정적이다.
저자는 20세기 중반 이후 어떠한 이유와 의도 때문을 떠나서 중동이 지구의 ’화약고’가 되어있고 그것의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종교라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
하지만, 중동은 세계적인 종교 중의 3개 -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가 탄생한 곳이고 저자가 분석한 바로는 3개의 종교의 출발점이 같기 때문에 ’분쟁’이 아닌 ’평화’와 ’화합’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역사적 토대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이 책에서 다루려고 했다.
인류 최초,최대의 문명 중에서 2가지가 발생한 중동에서 발현한 3개 종교는 중동 지역 내 문명 교류의 산물이고 유럽의 십자군 전쟁이 있기 전까지 이들 종교는 형제의 종교였다는 것...
중동분쟁은 3개 종교를 ’도그마’처럼 신봉하는 종교근본주의자들과 석유를 손에 넣으려는 자본가들, 분쟁상황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주범일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와 사람들, 끊이지 않는 전쟁과 테러 뉴스들, 석유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자원전쟁 등등. 여기에 중동을 상징하는 이슬람교를 추가하면 중동 지역의 그림이 대강 완성된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들로만 중동을 이해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아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이자 교차지인 중동을 몇 개의 퍼즐 조각으로 짜 맞추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이 이슬람교로만 중동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편향적일 뿐 아니라 정확하지도 않다.
이 책은 중동을 서방 문명과 대립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중동이 이슬람권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세계 3대 유일신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발상지다.
3대 종교의 성지도 모두 똑같이 예루살렘이고, 유일신 하느님을 믿는다.
3대 종교는 원래부터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뿌리가 같은 형제 종교인 셈이다.
저자는 기독교와 이슬람으로 대별되는 2개의 문명이 서로 충돌하는 관계가 아니라 공존하는 하나의 문명이라고 말한다.
인류 최초 그리고 최대 문명의 발상지인 중동에서 발현한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중동 지역 내 문명 교류의 산물이다.

이 책은 세계 3대 종교의 역사를 토대로 중동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간다. 세 종교가 어떠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발생했는지, 또 지역 내 문명이 교류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서방 문명의 기원과 최근의 대립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역사적 근거들을 제시한다.
이집트 파라오의 유적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골격이 되는 신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창조론, 천당과 지옥, 최후의 심판 등이 개념은 5,000년 전부터 새겨진 이집트 유적의 벽화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집트의 오리시스신, 이시스신, 호러스신은 기독교의 삼위일체론과 거의 같고 호러스신은 동정녀 이시스로부터 태어나 이집트 최고의 신으로 부상하는데 이는 예수의 탄생과 흡사하다.
메소포타미아의 조로아스터교는 기독교 사상 중의 하나인 메시아 사상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이슬람교와 유대교, 기독교는 모두 아브라함을 인정하면서 아브라함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30여 년간 중동에서 생활하였기에 자신이 경험한 역사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3대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비롯해 우르에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으로 향하는 아브라함 일행의 여정, 출애굽의 무대인 이집트의 나일 델타와 왕가의 계곡, 모세가 십계를 받은 시나이 산, 지중해를 지배하던 로마 제국 시절의 예수 탄생지와 예수가 일행을 향해 예루살렘의 붕괴를 예언했다는 올리브 산, 마호메트가 탄생한 이슬람교의 성지 메카 일대 등을 구약성서, 4대 복음서, 코란을 통하여 말해준다.
종교와 역사를 넘나들며 중동의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능력은 오랜 세월에 걸친 현지 체험과 종교적 선입관 없이 중동을 이해하려는 노력 덕분일 것이다.
종교는 인류 문명의 역사와 함께 할 뿐 아니라 그 뿌리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를 인간 정신의 최상위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도 인간 생활의 모든 것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객관적 비교가 가능했던 부분이 있다.
저자가 간략하게나마 설명하기는 했지만, 로마공화국이 지중해 패권을 차지한 주요 원인이었던 로마 군대와 인프라, 속주의 자치권 인정, 종교의 자유, 법과 제도 등이 로마가 강력하기 이전에 이미 중동의 바빌로니아왕국과 페르시아 왕국에서도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느꼈던 로마인의 ’위대함’에 대한 인식의 수정&정정을 가져왔으며, 이는 서구인들이 19세기 이후 전세계에 정보와 이데올로기를 직접,간접적으로 강제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서구인들 상당수의 유전자와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그리스,로마의 ’선구자적’ 유산이 인류의 역사에서는 ’One of them’일 뿐, 서구 이외의 지역에서도 서구와 동등이상의 수준의 문명과 역사와 전통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에게 조금 아쉬운 것은 학자와 기자 출신이면서도 종교에 대한 주요 인물과 사건에 대해 냉정하게 ’객관성’과 ’사실성’의 잣대를 들이대지 못한 것이다.
특히, 아브라함이나 모세, 예수, 출애굽이나 ’바빌론 유수’ 등에 대해 설명하면서 "역사적인 사실이나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로 일단락시키지 못하고 ’정황’을 운운하며 종교인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어차피 종교란 ’과학적 검증’과 상관없이 ’경전’과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고 인정하는 상태인데...
 
 
[ 목차 ]
제1장 구약성서와 유대교 이야기
1. 아브라함의 시대
2. 가나안에 정착한 아브라함의 후예
3. 모세와 출애굽
4. 십계와 시나이 산 






제2장 고대 오리엔트 국가의 흥망
1. 바빌론 유수와 페르시아의 출현
2.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
3.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
4.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
5.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제3장 역사 속의 기독교 이야기
1. 나바테아 왕국과 헤롯 왕
2. 예수의 탄생과 세례자 요한
3. 예수의 가르침
4. 아! 예루살렘이여
5. 중동의 고대 유적 







4장 마호메트와 이슬람 국가의 등장

1. 페르시아의 흥망과 아랍의 출현
2. 마호메트와 이슬람교의 탄생
3. 이슬람교의 확립 






[ 2010년 11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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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근본주의와 종교분쟁
빌프리트 뢰리히 지음, 이혁배 옮김 / 바이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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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프라인 독서모임에 참여한 후 <행동경제학>에 이어 두 번째 교재인 <지도로 보는 중동이야기>와 함께 다룬 보조교재였다.
독서 모임에 맞추어 읽지는 못했지만, 종교근본주의와 종교분쟁에 대한 내용이 궁금하여 나중에 구해서 읽었다.

기원 후부터 지금까지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전쟁들의 원인은 상당수가 종교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팔레스타인 분쟁,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영유권 분쟁, 스리랑카의 내전 등은 모두 종교 근본주의를 내세우는 집단 간에 벌어지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아무리 ’복수’나 ’대테러전쟁’이라고 주장할 지라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 또한 종교 전쟁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이후에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종교분쟁이나 테러를 통해 인간이 종교를 오용하고, 정치화시키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2001년 9·11테러(자작극 논란에도 불구하고..),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폭발 테러, 러시아의 베슬란 학교 인질극, 2005년 런던 지하철 폭발 테러 등은 정치화된 종교권력이 광신적 테러리즘의 형태로 표현된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1099년 7월 15일, 십자군 1차 원정에서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비기독교인 학살 ]

[ 성 바르톨로뮤 대학살 ]

[ 911 테러 ]

[ 마드리드 폭탄 테러 ]

[ 러시아 베슬란 학교 인질극 ]

[ 2005년 런던 지하철 폭발 테러 ]


종교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저자는 이러한 종교를 정치화시키고 종교전쟁을 불러일으키는 현상들을 ‘종교 근본주의’라고 정의하고 이 근본주의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대다수의 전쟁들은 대부분 인간의 욕심에 의해 생긴다. 
하지만 그 표면적 이유에는 항상 종교적 이념의 대립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근거로 종교의 무용론과 폐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종교의 근본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화, 권력화가 되어가는 종교, 즉 종교 근본주의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접어들었던 시대에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 사람들의 현실과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나누고 그어버린 조치들이 씨앗이 된 것이다.


저자는 세계 5대 종교인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의 근본주의와 각 종교 간의 분쟁 원인을 살펴보고 세계의 평화 정착을 위한 해결방안으로 종교 간의 대화를 제시하려 한다. 
각각의 종교에서 배타적으로 바라보는 타종교에 대한 관점이 아니라 세계적 시각에서 종교를 바라보고, 각 종교들이 근본주의화 되는 과정을 짚어간다.
물론, 저자의 결론은 종교 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인류 공멸의 위험으로까지 치닫는 현 상황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종교의 포기가 아니라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한 상호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종교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각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한 상호이해를 제시한다. 
종교들이 지닌 일치점과 차이점을 지적함으로써 종교 간의 대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정치화된 종교들은 세계정치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었으며, 오늘날의 세계는 테러리즘으로까지 발전한 정치화된 종교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종교들은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가치적 합의를 이루어야 하며 이를 위해 상호 대화를 통해 그 합의를 이끌어내어야 한다.
이것은 비단 각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단지 배타적 신앙을 가진 종교에 대한 비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가진 진정한 의미를 함께 나누고, 타종교와 교류를 나눌 수 있도록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종교와 근본주의에 대한 통찰은 기존의 종교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극복하고, 앞으로 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며, 종교 근본주의의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는 데 일조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애초에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하여 발간한 의도는 ’종교간의 대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발간 의도는 그다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에서 ’이론적 기초’를 발견할 수 없다. 각 종교의 교리와 해석, 종교지도자들의 움직임과 해석은 일반적인 개론 수준 정도에 불과해 보인다.
각 종교의 교리를 파고들어 종교가 화합하고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 ’이론적 기초’를 마련해 보겠다는 것 자체가 순진한 발상일 수 있다.
이 책은 ’정언 명령’과 그에 대한 약간의 해설 수준이라 평가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각 종교들이, 특히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와 힌두교 등이 종교 근본주의에서 벗어나고 종교전쟁을 일으키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 역시 아직 뚜렷한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검토 가능한 사례를 언급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유럽의 30년 전쟁과 십자군 전쟁과 르네상스 시대의 도래에 대한 분석이다.
유럽의 중세시대는 종교가 모든 권력과 문화를 장악하였고 그 결과 종교를 내건 수 많은 전쟁이 일어났다.(종교전쟁의 이면에 숨어있는 정치적, 경제적 이유와 함께...)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고 그 결과는 당시의 일반 백성들이 중세를 장악하던 종교권력과 문화를 거부하고 ’인간성’을 중심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르네상스 시대를 연 것이라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역시 20세기 서유럽, 일본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종교 현실이다.
20세기 서유럽과 일본에 카톨릭과 기독교가 제대로 사람들 속에 파고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빵’과 ’희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아시아(특히, 한국)와 아프리카에는 왜 점점 종교가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가?

그 역시 반대로 ’빵’과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종교분쟁과 종교근본주의의 위협에서 한국은 안전지대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 역시 종교 근본주의와 종교분쟁의 불씨가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MB정권이 들어서면서 개신교 일부의 근본주의에 타종교에 대한 폭력, 종교의 정치화가 대중들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있다.
21세기 한국의 개신교는 종교라기 보다 정치경제집단으로 보인다.
종교든, 정치든 인류가 모여살 수 있는 이유는 ’상대방 존재에 대한 인정’에서 출발한다.

종교가 무엇이든, 철학이 무엇이든 자연과 인류에 대한 사랑과 평화가 없는 것은 인류에게도, 자연에게도, 심지어 그들의 신에게도 용서받지 못한다.
어떠한 이유라 하더라도 이제 더 이상은 종교의 이름을 내건 폭력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 책 속의 문장

- 1917년 12월 예루살렘에 대한 영국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영국은 1917년 ’벨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승인했다. 이후 시위와 테러, 맞테러, 보복이 진행되었다.
- 1993년 9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 간의 상호 인준이 이루어졌다. 같은 해 오슬로협정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구성에 합의하여 1996년 2월에 아라파트가 대통령직에 오른다.
- 2003년 12월 제네바 협정에서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주권국가 수립, 1967년 설정된 경계의 회복,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이스라엘인 퇴거, 난민 문제 해결 등에 대해 합의했다.
- 칼뱅의 <기독교 강요>에 따르면 국가는 하느님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칼뱅에게 국가는 인간의 죄로 인해 성립된 것이며, 인간들 사이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조건이 된다.
-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청교도적 종교성으로부터 현대 자본주의의 형성에 기여하 특수한 합리적 생활방식이 도출되었음을 지적했다.
- ’사도 베드로로부터 직위를 물려받은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교회의 가장 높은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교리는 로마 카톨릭교에서 가장 중심적인 교리 중 하나다.
- 미국의 외교정책이 미국에 대한 종교전쟁을 수행한다고 믿는 중동의 광신자들과의 무력 대결에 관심을 갖는 정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미국인들의 가치와 이념을 정립하는 과정에 보수적인 개신교 지도자들이 그만큼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월터 미드, <권력, 테러, 평화 그리고 전쟁>) p.110
- 소승불교의 핵심적 가르침은 추구해야 할 목적으로서의 해탈, 해탈에 도달하게 하는 수단, 해탈에 도달해야 하는 이유로 구성되어 있다. p.193
- 이슬람교가 유대교 및 그리스도교와 연결된다는 것은 쿠란(코란)이 아브라함과 아담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p.217

[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 ]



[ 보스니아 내전 ]


[ 소말리아 내전 ]


[ 코소보 분쟁, 미국과 서구의 인종청소 방조 ]


[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공 ]


[ 이라크 전쟁 ]


[ 카슈미르 분쟁 ]



[ 2010년 11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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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은 무너졌다
자크 사피르 지음, 박수현 옮김, 김병권 한국판 보론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오프라인 독서모임에 참여한 후 <행동경제학>과 <지도로 보는 중동이야기>에 이어 세 번재 교재다.
이번 공부모임에는 이 책의 저자인 자크 사피르의 문하생으로 연구를 하다 귀국한 LG경제연구소 유승경 연구원이 함께 할 예정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했다는 말이 계속 뇌리에 남았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 보이는 것만 본다..."
최근에 인터파크 블로거의 리뷰 제목도 비슷한 것이었다.
"인생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이 책 역시 내가 보고 듣고 읽는 세상의 변화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준다.
나 역시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의도와 흐름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다.
특히 국제정세에 대해서는 서구언론과 국내언론이 보도하는 것을 기초로 생각하는 것 이상을 노력해보지 않았다.
 
1991년 이라크가 쿠웨이트와 전쟁을 벌이고 이에 대응하여 미국이 ’사막의 폭풍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그 해에 나는 구파발에서 송추로 가는 도로 중간의 노고산 아래에서 일병 계급장을 달고 방위로 근무 중이었다.
TV에서 보여주는 그 전쟁은 말 그대로 ’게임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1997년1998년. 아시아에 금융위기가 도래하여 환율이 치솟고 김대중 전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내고 전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을 벌인다고 전국이 들썩였을 때...
나는 근무하던 설계회사가 구조조정을 선언하였고 별다른 고민 없이 다른 설계회사로 옮겼다.
금융위기에 함께 휩쓸린 아시아의 다른 국가, 러시아, 그리고 남미 국가들의 소식을 접했을 때 특별한 생각이나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19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에도, 1999년 동유럽에서 코소보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도 초기에 미국을 중심으로 나토가 공습을 벌이고 평화유지군을 파견할 때에도 ’남의 나라’ 소식으로 치부했다.
1998년 11월 나는 다니던 설계회사를 그만두고 부동산 회사로 옮겼을 뿐이다.
2001년 9월 뉴욕 무역센타에 비행기가 충돌하여 무너져 내릴 때, 나는 잠시 회사를 쉬면서 차를 가지고 홀로 여러도시를 다니면서 친구들을 만나면서 여행을 즐기고 있던 중이었다.
당시, 나는 언론에 보도되는 이야기만 들어서는 그런 방식으로, 그런 시간에 대형빌딩이 산산이 무너져 내린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소위 ’911 테러’는 미국 국내의 ’자작극’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2001년 10월 미국이 알카에다의 지취자인 빈 라덴이 숨어있다는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고 2003년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할 때에도 미국의 ’신보수주의(네오콘)’가 극에 달했다고 성토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난 이 책을 통해 지난 20년 간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현재 어떤 상태인지에 대한 나름의 통찰을 얻었고 남은 21세기에 국제정세와 한반도 정세에 어떤 시나리오가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1991년부터 2008년까지의 국제정세의 본질적인 흐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무너지게 된 배경과 그 의미를 모색하면서, 다가오는 다극화 세계와 국민국가의 부활, 새로운 21세기를 살아가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의 주장의 요지는,
1. 20세기에서 21세기로의 전환은 1991년부터 시작되었다.
2. 1991년~1997년까지만 해도 ’극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이 21세기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3. 하지만 1998년~2003년 사이에 미국은 ’극초강대국’은 커녕 세계전체에 대한 ’일국지배’의 자리도 무너졌다.
4.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1997~1998 금융위기와 2007~2008 금융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몰락했다.
5. 이제 21세기는 다극적 세계질서와 국민국가의 부상 속에서 혼돈이 이어질 것이다.
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가치는 직접적으로 도전받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 모델에 대한 반대가 점점 더 격렬해 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저자는 1991년부터 2007년까지 주요한 세계사적 사건을 분석하면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거를 제시한다.
[미국의 GDP 대비 가계대출]
  

저자의 주장의 핵심을 인정하게 되면,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의 운명은 가장 최고 수준의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한반도는 북한의 핵문제를 중심으로 여전히 갈등과 반목이 이어지고 있고 이에 대한 한국 내부의 의견과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또한, 한국 군대의 작전권은 미군에게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북한-중국-러시아 대 한국-미국-일본이 대립하고 있고,
미국와 중국, 미국과 러시아, 중국과 일본은 여러가지 문제에서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미국은 위기에 처한 지배력을 회복하기 위해, 일본은 재무장을 위해 한반도의 위기를 능히 이용할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1991년부터 2008년까지 지구상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1991년 소련의 해체와 쿠웨이트 전쟁은 20세기 종말을 알리는 일대 사건이었다.
이런 점에서 다가올 21세기는 군사력, 경제력 모두에서 초강대국인 미국이 지배하는 세기가 될 듯싶었다.
그러나 ’미국의 세기’는 1997년과 2003년 사이 갑자기 소멸하고 말았다.
이는 1997∼1998년 국제금융 위기 시 미국이 보여준 위기 대처 능력의 부재와 이에 따른 각국의 새로운 경제 전략들의 등장, 그리고 이 틈을 틈타 러시아가 다시 국제무대에 얼굴을 강력히 내밀었기 때문이다.
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 모델을 버리기 시작했고, 극동아시아는 중국이 안보의 중심 국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맞서 미국은 자국의 헤게모니를 힘으로 복원하고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정치적·군사적 대재앙을 일으켰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피해자였던 미국은 오늘날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진 가혹 행위의 이미지에 맞닥뜨려야 했다.
결국 21세기 문턱에 들어서자마자 미국은 곧바로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21세기가 시작되던 2001년 9월 11일.
이 끔찍한 테러를 두고 한편에서 미국의 몰락을 예상했다고 대부분 이야기하지만 저자는 "할리우드 대작 ’재난 영화’의 미학 코드에 부합할 정도로 압도적이기 때문에 외양만 보는 우를 범한다"며 "21세기가 시작되기 전인 1997년부터 미국의 몰락은 시작되었다"고 단언한다.
바로 1997∼1999년 국제금융 위기를 일컫는 것이다. 

이 금융 위기는 미국이 주도하고 많은 국가들에게 강요했던 신자유식 금융 시스템이다.
이 시기 금융 위기는 현재의 IMF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고, 오늘날 미국 경제의 심각한 위기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1990년대와 21세기 초 경험했던 미국의 경제 성장은 유례없는 소득 불평등과 더 많은 인구가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미국 주택담보 대출 시스템 위기는 어떻게 보면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구조적 문제는 더욱 심각해 ’서브프라임’ 위기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될 듯싶다. 

이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중국은 책임 있는 정책을 통해 극동 지방의 안정성을 상당 부분 보장했고, 미국의 걸프전으로 인한 군사적 위협은 중국을 국제무대로 나서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사실 중국은 미국과의 직접적 갈등을 회피하고자 했으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안전한 자원 수급이 필요하게 돼 어쩔 수 없이 미국의 대외 정책과 맞붙게 되었다.
중국은 걸프전을 미국의 석유 자원 통제로 간주하고 중국에 대한 잠재적 협박 수단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해석했다. 
이후 중국의 수단 정권과 미얀마 군사 정권을 지지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쉽게 분석할 수 있다. 

[중국의 GDP 성장율]
 

1997∼1999년 금융 위기 때 러시아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정도로 은행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 위기는 러시아의 종말을 의미하기는커녕 쇄신의 신호였다.
1990년대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 테제와 점차 결별하고 산업 정책 중심의 국가 프로젝트를 통해 재건에 박차를 가했고, 결국 경제가 성장세로 돌아서면서 10년의 불황을 극복하게 된다.
1998년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정부의 최초 조치들을 계기로 실현된 사회적 쇄신과, 푸틴 정권의 개입주의 정책, 구조조정 등으로 명실상부하게 러시아는 강대국의 면모를 점차 회복하게 된다.
집권 초기 푸틴은 대테러 전쟁을 다자주의적 시각에서 수행하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한편, 러시아가 그동안의 고립을 벗어나고자 미국의 9.11 테러에 대한 대응을 곧바로 지지한 바 있다.
푸틴은 두 가지를 계산했다. 미국의 지도층이 오랫동안 용인해주고 있던 광신적 이슬람 운동과 단절하게 만드는 것과 미국의 정당한 군사 보복이 다자주의적 틀에서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러시아가 내민 손을 거절했다.
이후 러시아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구축하고 있는 반대 동맹처럼 ’거부의 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2006년 중-러 합동 군사 훈련에서 보여지듯 상하이 협력기구는 미국이 후원하는 기구들에 대응한 아시아의 공식적 전략적 협력 기구로 급부상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과 더불어 세계 각국들의 경제 전략도 대부분 수정하게 되는데, 특히 통상 분야에서는 좀더 공격적인 정책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공격적인 통상 정책은 세계 경제를 전반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었다.
이와 더불어 신자유주의 담론이 갑작스럽게 신뢰를 잃어버리는가 하면, 국가 경제 정책, 산업 정책, 국제금융 플로우 규제, 보호무역주의 같은 개념들이 점차 정당성을 회복하게 된다. 금융 위기가 초래한 결과였다. 
[러시아의 GDP 추이와 경제성장 요인]



또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은 미국이 비교적 가깝다고 생각했던 국가들마저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전략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이제 두려움으로 점철되었고 우리가 신보수주의자, 네오콘이라 일컫는 자들의 집권을 돕게 된다.
이들의 정책은 일련의 이데올로기적 생략을 통해 구축된 정책으로 진정한 극초강대국의 권력을 구성하는 것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예에서 보듯 미국은 신군사주의 전략에 입각한 군사적 대재앙의 폭풍으로 밀려들어가 반죽음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미국의 몰락은 국제 관계가 재편성되고 새로운 국가들이 완전한 행위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진다.
경제적 지배력과 정치적 지배력 사이의 관계가 핵심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책은 다극적 세계 질서에, 국민 국가의 부상으로부터 프랑스가 새로운 21세기에 있어 주체로 나설 것을 촉구하지만 우리에게 역시 똑같이 해당되는 문제로 사회 정책, 경제 정책, 군사 정책의 글로벌 전략을 마련하라고 촉구한다.
더불어 이런 전략의 핵심 요소들을 전진시킬 수 있는 국제적 동맹을 사고하라고 당부한다.

이 책의 한국판 보론을 쓴 김병권 새사연 연구센터장은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 한국이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MB노믹스의 실패를 예견한다.
이는 미국과 유럽은 경제 위기를 맞이해 정부 개입과 규제 강화, 재정 지출 확대를 꾀하고 있으나 MB는 반대로 규제 완화, 감세, 민영화, 개발주의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MB정권 탄생의 신화가 된 ’경제 살리기’는 이미 ’경제 확실히 죽이기’로 180도 회전하여 현재 마구 진행 중이다.
(사실, 한국판 보론 내용은 책의 주제와 동떨어져 ’왜 들어가 있을까?’는 궁금증만 남는다. 차라리 한반도의 정세와 MB의 외교를 평가하는 것이 필요한데...)

[ 2011년 11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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