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 영혼의 거울 - 개정판 다빈치 art 6
프란시스코 데 고야 지음, 이은희.최지영 옮김 / 다빈치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공부모임에서 세미나 교재로 이 책과 새러 시먼스의 [고야]를 선정했다는 연락을 받고 처음에는 의아했다. 일단 '프란시스코 데 고야'라는 미술가의 이름을 들었던 기억도 없었고  지난 세미나 교재였던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크키의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에 이어 두 번 연속 미술 관련 책으로 세미나를 한 것도 공부모임에서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100회 넘도록 인문, 사회, 정치, 경제 분야 세미나에 치중했기 때문에 최근에 그러한 경향에서 벗어나 예술분야를 연속해서 공부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다빈치 출판사의 기획에 따라 미술가들에 대해 연속으로 도서를 출판한 시리즈 도서 중 하나다. 2001년 처음 출간했다가 올해 개정판을 내놓은 것이다. 나는 미술분야에 문외한이라 잘 몰랐지만,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는 스페인(에스파니야)에서 가장 위대한 미술가로 칭송받는 3~4명 중의 한 사람이고 세계 미술가와 관련 학자들로부터 '근대미술의 창시자'로 인정받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스페인이라는 국가는 '정열'을 쉽게 떠올린다. 이 책을 통해 그러한 스페인의 감성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지...
 
저자 최지영과 이은희는 정열적인 에스파냐인 고야의 삶과 예술을 들여다보기 위해 책 속에는 그의 유화, 드로잉, 판화 대표 작품들을 모으고 가장 친한 친구와 이십 년 넘게 주고받은 편지글이 들어 있다. 특히 60여 점에 이르는 유화 작품들은 연대순으로 정리되어 화풍의 변화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리고 세련된 에칭과 에퀴틴트 판화 작품들로 인간 본성의 추악함과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꿰뚫어보는 판화집 [카프리초스(Los Caprichos)]의 전편 80개 작품을 고야가 직접 쓴 해설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 * 고야는 누구인가? ---------------------
18-19세기 초, 전통과 혁신, 발전과 퇴보, 전쟁의 참상 등으로 혼란스럽던 에스파냐에서 화가 고야는 인간의 본성, 특히 광기와 야수성에 집중하고 희비극과 부조리로 가득한 인간의 삶을 관찰하여 화폭에 옮겼다. 그가 궁정 화가로 활동하면서 그려낸 많은 초상화와 인물화, 종교화 등에서는 고루한 전통적 표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와 인물에 대한 탁월한 심리 묘사가 훌륭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능숙한 에칭 기법으로 제작한 판화 작품집에서는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인간 사회라면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인간의 허위의식과 폭력성을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우의적으로 비판하고 고발했다. 인생의 절정기에 찾아온 병으로 청력을 상실했지만, 이후 내면의 고통이 더해진 고야의 작품들은 원숙미와 심오함이 한층 강화되었다. 현대 미술에 한 걸음 다가간 화가로 평가받는 고야는 인상주의 화가들을 비롯한 후대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
 

 

<자화상>                                                               <말년의 고야와 의사>

 
책은 1장. [고야, 영혼의 거울]과 2장. [카프리초스]로 나누어져 있다. 마지막 부분에는 [카프리초스]에 대해 20세기 영국 출신 작가인 올더스 헉슬리가 설명하고 평가한 글이 들어 있다. 
 
1장의 전반부에는 고야의 생애 기간 동안의 유럽과 스페인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을 묘사한다. 정치가와 일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예술가들 역시 생존 당시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과 의식, 문화에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18~19세기 초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다. 15~16세기 강력한 함대와 식민지 개?으로 유럽의 강대국이었던 스페인은 17세기부터 몰락하기 시작했다. 18세기와 19세기는 그러한 스페인이 유럽 사회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처음 스페인 미술계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던 고야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미술 교육과 훈련을 받은 후 돌아와 아카데미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30대 후반부터 궁정 화가가 된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는 왕과 귀족들의 초상화와 종교화를 그리면서 명성을 얻은 한편, 끊임없이 전통에 도전하고 혁신을 꿈꾸며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자 했다.
 

 

 

 
< 처음 인정받기 시작한 '성 요셉의 죽음'>         < 고야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18세기 후반, 후기 로코코 시대 스페인은 대내외적으로 불안정했다. 왕족과 귀족, 성직자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 지배 계층은 사치와 허영, 탐욕과 부정부패에 깊이 물들어 있었으며, 전 유럽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나폴레옹군은 코밑까지 진격하여 위협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오랜 정체기가 막을 내리고 변화와 발전을 향한 진통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때 고야는 궁정 화가로서 지배 계급의 비위를 맞추는 한편 구태의연한 전통적 표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기를 들었다. 당시 그가 그린 초상화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주문자의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켜주면서 내면을 관찰하고 심리를 표현하는 데 있어 자신의 개성을 담뿍 담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카를로스 4세 가족 >

  

<프란시스코 바예우>                    <알바 공작부인>                       <마르틴 사파테르>

 

< '벌거벗은 마야' 와 '옷을 입은 마하' >

 
그러나 이들 근엄한 초상화와 더불어 에스파냐 민중의 삶을 밝고 화사한 색채로 표현하던 고야의 화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밤낮 없는 노력으로 비로소 인정받아 성공 가도를 내달리던 사십 대 중반에 청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세계로 점점 파고들던 고야의 눈앞에 프랑스군의 침략 아래 신음하는 민중의 고통과 두려움, 참혹한 현실이 펼쳐졌다. 그의 화폭은 인간의 광기와 야수성이 지배하는 악몽 같은 풍경으로 변해갔으며 음울한 색채와 휘두르는 듯한 붓 터치로 폭발할 지경이었다.
 

 

<정신병자 수용소>                                     <도자기 파는 여인>

 

 

 

<엘 마라가토의 무기를 빼앗는 살디비아 신부>   <거인>

 

 
 

1장의 후반부에는 고야가  자신의 가족보다 더 각별히 여긴 친구 마르틴 사파테르(Martin Zapater)와 이십 년 넘게 주고받은 편지글을 수록했다. 친구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전하는 편지에는 고야의 가족 관계와 그들을 부양해야 하는 생활, 경제적인 상황, 사냥과 초콜릿에 몰두하는 취미 생활, 왕족이나 귀족들과의 관계, 작품 제작에 대한 어려움,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 등이 함께 나타나 있다. 허물없는 친구에게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는 이 편지들은 후대에 작성된 그 어떤 해설보다도 고야 자신을 드러내준다.

2부에서는 세련된 에칭과 애쿼틴트 판화 작품들로 인간 본성의 추악함과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꿰뚫어보는 판화집 [카프리초스Los Caprichos]의 전편 80작품을 고야가 직접 쓴 해설과 함께 소개한다. 인간 정신의 어두운 측면과 삶의 다양한 양상을 관찰하여 제작한 이들 작품에서는 꿈과 환상적 요소에 사회와 인간에 대한 비판을 버무리고 헌신해야 하는 가혹한 현실에 도피적인 요소를 뒤섞어 놓았다. 날카로움과 부드러움, 빛과 어둠을 적절하게 대비시키는 능숙한 판화 기법으로 인간과 인간이 처한 현실에 대해 매섭고도 씁쓸하게 논평하는 이 판화집으로 고야는 에스파냐를 넘어 프랑스와 영국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뒤러와 렘브란트의 계보를 잇는 위대한 화가이면서 판화가인 예술가의 계보에 자리하게 되었다.

 

 

  

<사형수>                             <이빨을 찾아서>    <여자들은 제일 먼저 청혼하는 남자에게 '예'라고 답한다>


고야의 작품들에 가득한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붓 터치, 솔직하며 때로는 고뇌의 찬 감정을 전달하는 그의 글보다 고야를 더 잘 말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여러 참고 문헌에서 발췌한 고야와 그의 작품에 대한 해설을 첨가하여 좀 더 이해를 돕고자 했다. 이 한 권의 작품집으로 고야의 모든 것을 담아내기란 가당치 않다. 그러나 당대 낭만주의 미술가들이 열광하고 이후 인상주의 미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고야의 삶과 예술에 대한 열정, 그리고 그의 작품들에 감동하고, 그가 비판하고 풍자하며 혹독하게 그려낸 18세기 말~19세기 초의 세계가 지금의 우리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느끼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고야의 작품 중에서 몇 개는 앞으로도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특히, 1808년 프랑스군의 침공에 맞서 싸우다 붙잡혀 총살당하는 장면을 표현한 <1808년 5월 3일>과 동판화집 [카프리초스] 속의 <이성의 꿈은 괴물을 낳는다>와 <힘껏 불어라>의 경우가 그렇다.
작품 <1808년 5월 3일>는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1867)>과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게르니카(1937)>, <조선에서의 학살(1951)>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놀랍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피카소와 마네의 학살 그림 밖에 알고 있었다.

고야의 동판화집 [카프리초스]는 80여 점의 그림 모두 놀랍고 충격적이다. 특히 19세기 초에 미신과 우화, 인간의 악마성을 판화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놀라울 뿐이고 특히 <이성의 꿈은 괴물을 낳는다>와 <힘껏 불어라>는 강인한 인상으로 남았다.
 <이성의 꿈은 괴물을 낳는다>

 
사실 이 책 속에는 고야 생전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자세하고 폭 넓은 이야기가 들어 있지는 않다. 그리고 고야 이전의 유럽과 스페인의 문화나 미술계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도 별로 없다. 그래서 주로 저자들이 설명하는 대로 고야의 생애와 미술과의 만남, 작품 세계, 작품의 의미 등에 대한 저자의 주장과 의견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기본적인 고야의 작품활동과 미술계에서의 위치, 궁정화가로의 등극과 작품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취득할 수 있었다. 
 
저자들의 고야에 대한 평가는 너무 상식적이지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다.
1771년 고야가 스페인 아카데미아 디 발레 아르티의 입학심사에서 2등을 했는데, 저자들은 아카데미가 고야의 작품을 호평하는 기록('고야가 주제에 더 충실하고 색채 사용에 있어 자연색에 좀 더 유의했더라면 1등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을 "아직 무명의 청년 화가에 불과한 고야가 당시에 이미 전통에 맞서는 반항아였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p.14)라고 분석한다. 문제는 고야가 아직 스페인 미술계에 발을 들인지 얼마 되지 않아 아카데미의 주제에 충실하고자 했지만 주제 파악을 못하거나 실력 부족으로 색채 사용에 실수했을 수도 있음을 간과한 평가라 할 수 있다. 저자들은 고야의 18세기 말~19세기 초 작품세계를 수 십 년 전부터 맹아가 싹튼 것이라는 치우친 결론을 내린 것이지 않나 싶다.
저자들은 고야가 '유약한 성격으로 실패나 빈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대결에서 타협하는 자세를 취하곤 했다'라고 분석하면서도 아카데미와 왕실에 제출한 그림을 두고 "고야는 공식적인 견해와 늘 대립했는데 그 이유는 항상 똑같았다. 그는 작품이 구도, 주제, 전반적인 구상을 당시의 취향에 따라서 설정하려 했지만 터져 나오는 자신의 개성을 억누를 수 없었다."(p.16)라면서 약간 상반된 의견을 피력한다. 그렇지만, 평생에 걸쳐 성공과 안락한 생활과 높은 공식 지위를 원했던 고야의 생애를 고려해보면 그가 공개적으로 공식적인 견해와 대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평생 절친한 친구였던 사파테르와 주고받은 편지를 보더라도 고야는 궁정 화가로서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책 속에서는 친구 사파테르와의 편지글 속에 들어있는 애정강도가 높은 글의 표현을 통해 사파테르와 고야가 '동성애' 관계였다는 분위기를 내보이는데 실제 그 때 당시 스페인이나 유렵에서 절친한 친구들의 편지글 형식이 어떠했는지를 잘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쉽게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고야는 후대에게도 높이 평가받았고 '천재' 중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는 예술가로서는 몇 가지 점에서 특이하다.
그것은 궁정화가로서 왕실과 귀족 등 지배층, 기득권층에게서 평생동안 인정받으면서도(심지어 19세기에 스페인을 점령한 프랑스 지배자들로부터도 인정받았음) 개인적으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탐구하면서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점과 두 번에 걸쳐 죽음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병에 걸리고 나서도 회복하여 성공과 창조의 열정을 지속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천재들은 고흐나 모짜르트, 베토벤처럼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또 열학한 조건에서 예술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보통의 예술가들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깊이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야는 평범한 환경에서 자랐고 아주 성공적인 직업과  삶의 조건을 영위했음에도 후대의 미술가들에게 인정받는 정도의 예술성을 창조했던 것이다. 물론, 40대 초와 말년에 고야에게 찾아온 청력 상실과 죽음에의 공포 이후 고야의 예술성이 높아지고 자신과 인간 내면의 세계를 탐구했다는 정황을 볼 때 고야 역시 '예술가의 창조성의 원천'이라는 큰 환경적 범주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지만...
 
[ 2011년 7월 15일 ]



<1808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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