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왜 사라졌는가 - 도시 멸망 탐사 르포르타주
애널리 뉴위츠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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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소멸의 미스테리를 풀어내려면

어떻게 번성하고 유지되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얼마전 도시의 역사로 세계사를 엮어내는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었다. 그 세계사 속 도시들은 과거의 영광을 잃은 도시도 있었고 꾸준히 발달중인 도시도 있었으며 새롭게 부흥하는 도시들도 있었다. 도시의 역사를 보는 것으로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였기에 도시멸망에 대한 이 책에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 속 그 도시들은 왜 사라졌을까?

하지만 이 책은 사라진 도시에 대해 세계사적으로 살펴보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의 원제는 FOUR LOST CITIES 이고 그 사라진 4개의 도시는 차탈회윅, 폼페이, 앙코르, 카호키아 이다. 이 책은 그러니까 이 4개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4개의 도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라고나 할까.

'사라진 도시'는 서방의 판타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표현이다. 발견되지 않은 엄청난 세계, 아쿠아맨이 거대한 해마와 어울려 다닌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사라진 도시를 믿고 싶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현실도피적인 이야기에 대한 애호는 아니다. 우리는 세계 대부분의 주민이 도시에 사는 시대에 살고 있고, 기후 위기나 빈곤 같은 풀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다. 현대의 대도시는 결코 영원히 유지될 수 없고, 역사적 증거는 지난 8000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도시를 선택하고 버려왔음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인간이 소멸될 수밖에 없는 곳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사라진 도시라는 신화는 사람들이 자기네 문명을 파괴했다는 현실에 눈감게 만든다. 이 책은 바로 그 현실에 관한 것이다. (p. 13) -프롤로그 中-

'사라진 도시' 에 대한 판타지는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인디아나존스 같은 영화에서 처럼 보물을 가득 품고 미지의 장소에서 신비롭게 나타나는 그런 도시는 사라진 도시여야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앙코르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애당초 앙코르를 사라진 도시로 자리매김한 것은 미디어가 조작한 것이엇다. 모든 증거는 그 반대였다. (p. 13)' 고 말한다. 앙코르는 사라진 적이 없었다고 이 도시엔 과거부터 현재까지 늘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그런데 어쩌다 '사라진 도시'가 되어버린 것일까? 그 해답은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다보면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에 나타났던 도시 폐기 가운데 가장 극적인 네 개의 사례를 탐구하고자 한다. 이 책에 나오는 도시들은 모두 저마다의 종말을 맞았지만, 공통된 실패 요인을 갖고 있다. (p. 13)' 이 4개의 도시들은 모두 우리에게 '사라진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이 도시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라진 것과 용도폐기는 분명 다른 의미이므로.

나는 모든 도시의 죽음은, 우리가 언제나 그 종말을 개별적으로 보기 때문에 미스터리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극적인 소멸의 순간에만 집중하고, 그 오랜 생존의 역사를 잊는다. 사람들이 도시를 유지하는 방법에 관해 수많은 결정을 내리면서 보낸 수백 년의 세월을, 우리가 사람들이 도시인으로 살았던 특별한 방식을 이해해야만 그들이 왜 자기네 도시를 죽게 만드는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 21) 도시 생활의 운명은 인류의 운명에 매여 있다. 우리가 21세기에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한다면 우리 지구 전체의 모습을 바꾸어놓을 어떤 유해한 도시 생활이 확산할 위험성이 있다. (중략) 도시의 시대가 이런 식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차탈회윅, 폼페이, 앙코르, 카호키아는 사라지기 전에 번성하는 문명의 중심지였다. 그들의 어두운 매리는 결코 미리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중략) 결국 우리는 우리의 잘못으로부터 가장 좋은 방법을 배운다. (p. 23)

'우리는 우리의 잘못으로부터 가장 좋은 방법을 배운다'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알아야 하고 읽어야 한다. 우리가 역사 속에 사라졌다고 멸망했다고 묻어둔 도시들을 다시 들춰봐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현재 도시에서 대부분의 삶이 이루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고 이러한 도시 생활이 지구환경을 망치고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도시생활을 멈출수가 끊을수가 없다. 그러나 계속 이런식이면 도시의 죽음이 앞당겨지리라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뿐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니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잘못으로부터!

결국 길들임이란 자연을 배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여과 과정에 가깝다. 어떤 생명체는 받아들이고 다른 것은 차단한다. 길들여진 동물·식물·사람은 집 안에 들어와 살지만 야성은 벽에 갇힌 상태다. 차탈회윅의 도시 디자인은 길들여진 생활에 불편하게 적응하고 있는 사회를 반영한다. 그 사람들은 자기네의 야생의 과거에 매달려 있다. 그것이 그들에게 힘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억제되기를 원했다. 조금 거리를 두고서 말이다. 이 고대 도시 사람들이 조금 거리를 두길 원했던 것이 또 있었다. 바로 이웃들이다. (p. 43) 인간은 우리가 상시적으로 집에서 살기 시작하기 훨씬 이전에 집을 지을 기술적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것이 기술적 혁신 때문은 아니었던 듯하다. 실제로는 거꾸로였을 것이다. 사회가 점차 복잡해지면서 우리에게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보다 영구적인 대상이 필요했다. (p. 46)

'괴베클리 테페 사람들은 황야에서 새로운 사회를 강화하려고 애쓴 반면, 차탈회윅 사람들은 수천 개에 달하는 '자신감 있는 기성사회'의 일부였다. 괴베클리 테페의 거대한 야생 동물 조각품과 색칠한 두개골의 공개 전시는 차탈회윅의 사람들 집 내부에 작은 규모로 존재한다. 차탈회윅에서 이것들은 화덕 및 집과 관련된 사적이고 가정적인 물건이 됐다. 이는 차탈회윅 사람들이 더 이상 어떤 단일 장소와의 일체감을 형성할 긴급한 필요가 없어졌다는 징표일 수 있다. (p. 49)' 괴베클리 테페는 농업혁명을 거스르는 대표적인 유적이고 차탈회윅은 공동생활보다 사생활이 강조된 대표적인 유적이라고 볼 수 있다. 둘다 기존의 역사적 '혁명'들에 대해 다른 논리를 요구하는 유적들이다. 8천여년전의 고대인들이라고 해서 석기시대인들이라고 해서 우가우가 하는 침팬지친구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지금의 형상을 갖추고 생활을 영위해온 것은 서기부터 시작되는 고작 2천년이 아니다. 훨씬 그 이전부터 지금과 거의 흡사한 모습으로 살아왔음을 알아야 고대시대에 대한 거리감을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농업혁명이나 도구혁명 같은 기술적인 면에서만 인류역사를 이해하는 것도 곤란하다. 종교가 먼저인지 정착생활이 먼저인지 확신하는 것도 곤란하다. 역사는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하고 유적들은 갈수록 더욱 새로운 진실들을 알려주고 있다. 그 새로운 증거들은 '다산의 여신을 숭배하는 모계사회' 도 잘못된 해석이라고 반박한다.

차탈회윅이 여신을 숭배하는 모계사회가 아니었다면 그 여성 조각상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차탈회윅 일대에서 출토된 소조각상을 연구한 스탠퍼드대학 고고학 교수 린 메스켈은, 멜라트와 그 시대 사람들이 이를 잘못 해석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이 유적지를 전체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맥락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25년에 걸친 지속적인 발굴에서 얻은 자료들 덕분에 이 여성 조각상들은 보다 복잡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음이 밝혀졌다. (p. 64)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차탈회윅으로 모여든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전문화의 편익일 것이다. (p. 72) 역사관은 또한 알지 못하거나 그곳에 없는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한 추상적 관념을 나타냈다. (중략) 이는 유목민 사회에서 공동체라는 것이 모두의 얼굴을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한다고 생각했을 사람들에게는 철학적인 도약이었다. (p. 75) 도잇에 우리는 차탈회윅 바깥에는 도시인이 거의 없던 시대에 도시생활이 얼마나 이상했을지를 인식해야 한다. (중략) 결국 그들이 견뎌내지 못한 마지막 난관은 서로에게 대처하는 문제였다. (p. 76)' 차탈회윅 사람들이 남긴 유적을 통해 그들의 생활모습을 구체적으로 점검해보고 추론해보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그들은 당대에 일종의 실험적인 시도들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 실험과 도전들이 거대한 도시를 일구어냈고 발전시켰으며 문제점을 깨닫게 했다. '호더는 오늘날 고고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을 되풀이한다. '사라진 도시'나 '문명붕괴'같은 용어는 이런 경우에 사용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도시가 변화를 겪었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중략) 도시들은 오랜 시간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가 갑자기 사라져 아무것도 남지 않은 정적인 존재가 아니다. 도시는 어떤 시기에라도 여러 사회 집단의 복합체다. 그 집단들은 도시 생활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볼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 집단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며, 그들의 세계관을 반영해 도시의 물리적·상징적 구조를 변화시킨다. 더 이상 함께 살기를 바라지 않는 순간까지 말이다. 그러나 차탈회윅에서 그 일이 일어난 순간에조차도 도시를 '잃어버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 79)' 세계사의 발견들에 대해 우리는 서양인들의 지식에 기대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우리도 발견한 역사로 배운다. 하지만 그들이 몰랐다고 해서 거기에 살았던 사람들이 없어져서야 되겠는가. 도시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저 변화한 것일뿐이었다. 현재의 모습과 너무나 다르다고 해서 그 중간 과정을 스킵하고 과거의 그 도시는 사라졌었으나 현대에 발견되었다 라고 해서는 안될 것 같다. '차탈회윅이 명백한 도시와 초기 형태의 도시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 있기는 했지만, 이 도시의 폐기는 도시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에 부합한다. (p. 94)' 도시의 사라짐과 재발견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왜 당시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차탈회윅의 흥망성쇠를 상상하며 역사를 맥락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나는 네로가 좋아요!"

나는 너무도 놀라서 커피를 엎질렀지만 메모를 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던 휴대용 컴퓨터는 가까스로 피했다. (p. 118)

"그는 실제로 여성들에게 좋은 일을 했어요"

(중략) 네로는 그의 치세 동안 연극에 돈을 쏟아부었고, 순회공연 수요는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휴즈는 설명했다. 가장 의도하지 않앗던 결과로서 '네로 치하에서 극장이 개방되고 더 많은 여성들이 공연 무대에 참여'했다고 휴즈는 말했다. 여성들의 공연이 흔해졌지만, 여성들은 제작자와 후원자로서 연극 산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p. 119)

폼페이는 화산폭발로 사라진 도시로 대부분 기억되고 있다. 폼페이가 화산폭발로 더이상 사람이 살수 없게 된 것은 맞지만 폼페이 사람들의 삶까지 멈춘 것은 아니었다. 폼페이 사람들의 생활은 당대의 로마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새롭게 보여주고 있었다. '식민 역사로 인해 폼페이는 다多언어 사회가 됐다. (p. 106)' 다문화 사회였던 폼페이에서는 해방노예와 여성들의 재산축적이 가능했고 상업의 발달로 계층분화가 뚜렷해지고 있었다. 화산폭발이 갑작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지진으로 여러번 위험이 경고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왜일까? 차탈회윅 연구에서 중요한 것이 맥락이었다면 폼페이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데이터고고학이었다. 폼페이에 남겨진 수많은 흔적들은 데이터화 되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연구자들이 200여년 동안 폼페이를 발굴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르티스와 아마란투스가 살던 세계에 대해서는 최근까지도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해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그것은 데이터고고학이 우리에게 상류층 이외 사람들의 삶을 탐구할 새로운 도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가 역사를 연구하는 방식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20세기 사람들이 폼페이를 소중하게 여기고 추가 발굴을 위해 거듭 이곳을 찾았지만, 그 문화에는 그들이 잊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 (중략) 그들의 기독교적 가치관을 벗어던지고 로마인들의 눈으로 이 인공물들을 바라보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p. 155)

'도시는 집의 집합체라기보다는 화려하고 복잡한 공적 공간이었다. (p. 158) 아무도 폼페이를 버리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다. 그곳이 불더미에 묻힌 것은 거의 견딜 수 없는 상실로 느껴졌다. 그리고 많은 생존자들은 서둘러 다른 도시들에서 자기네의 삶을 재건하고 그들이 잃어버린 공적 공간의 새로운 변형을 건설하는데 헌신했다. (p. 159)' 폼페이라는 물적 공간은 화산재속에 묻혔지만 사람들은 폼페이에서의 삶의 방식을 다른 곳에서 새롭게 일구어 나갔다. 그렇다면 폼페이라는 도시는 사라졌다고 봐야할까? 아닐까? 폼페이 라는 도시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공적 공간' 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이 공적 공간에 대한 개념은 차탈회윅 사람들과 무척 달랐다.

로마문명과 달리 크메르 전통은 사라지거나 소멸한 것이 아니다. 앙코르에서 꽃핀 문화는 오늘날까지 캄보디아인들의 삶에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계속 영향을 미친다. (p. 181) 유럽 고고학자들이 처음 앙코르에 갔을 때 그들은 서방 방식의 도시 발전을 찾도록 길들여져 있었고, 이에 따라 이 도시에 있던 거의 대부분의 집은 그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앙코르와트와 아옼르톰의 석조 탑으로 직행해 이들 사원 단지가 담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라고 잘못 이해했다. 넓게 확산된 도시 안의 담으로 둘러싸인 구내였는데 말이다. 그들은 한때 꽉 들어찼던 주거 구역들과 저수지, 농경지들이 주변 넓은 땅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지만 전혀 보지 못했다. (p. 188) 이 도시는 심지어 15세기 초 왕실이 이곳을 떠난 뒤에도 비어 있던 적이 없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략) 무오의 기록은 수리야바르만이 옛 앙코르를 몽땅 서바라이 밑에 묻어 말소한 것만큼이나 대담하고 오래간 역사 변개행위였다. (p. 229)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4개의 도시중 가장 개탄스러웠던 것이 앙코르 였다. 서양인들은 앙코르를 발견했다고 떠들썩하게 요란을 떨었으나 크메르인들은 내내 앙코르에서 살고 있었다. 일종의 식민사관 혹은 제국주의적 사관으로 보여지는 이러한 역사 변개행위는 사실 앙코르에서 뿐만이 아니라 서양이 아닌 많은 지역에서 일어났다. '늘 그렇듯이 진실은 전설보다 더 기묘하고 더 복잡하다. (p. 230)' 그 진실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밝혀지기를 바랄뿐이다. 캄보디아 앙코르에서 나온 고고지지학적 증거는 15세기의 붕괴가 대재앙이라기보다는 점진적인 쇠락이었음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중요했던 것은 '정치' 였다.

17세기에 유럽인들이 일리노이를 탐험할 때 이 도시는 수백년 동안 버려져 있었다. 당시 이 지역에는 카호키아족이 살고 있었다. 일리노이연맹에 속하는 한 부족이다. 유럽인들은 이 부족 이름을 따서 이 고대 도시를 부르기로 했다. 카호키아족 스스로는 이 도시를 건설했다고 주장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하여 카호키아라는 이름이 고착됐다. (중략) 카호키아인들에게 도시의 폐기는 실패나 손실이 아니었고, 오히려 예측된 도시 생명 주기의 일부였다. (p. 260)

4개의 도시중 생소했던 유일한 도시가 바로 카호키아 였다. 그 넓고 풍요로운 땅 아메리카 대륙에 인류의 역사가 없었을리 없건만 인도가 아닌 대륙에 인디언이라 이름붙인 원주민들의 역사에 대해 그동안 너무 몰랐다. 지금의 미국 땅에도 당연히 고대유적 거대유적이 있.었.다. 미시시피강 유역의 고대인들은 또다른 도시생활을 만들어 살았었었다.

이 책에서 본 다른 모든 도시들도 그렇지만, 카호키아도 고정돼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유적은 수백 년에 걸쳐 몇 개의 시기를 거치며 역동적으로 변화한 문화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이 오늘날 많은 고고학자들이 문명은 '붕괴'국면과 대비할 수 있는 '고전기' 내지 '절정기' 가 있다는 생각에 의문을 표시하는 이유다. 붕괴 관념은 사라진 도시가 유럽 고고학자들에 의해 기적적으로 '발견'됐다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의 식민지 시대 전통과 같은 발상이다. 이런 전통에 따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회가 유럽 문명들이 밟은 길을 그대로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커지고, 더 계층적이며, 더 공업화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회는 '미개발'사회로 부르고, 확장을 멈춘 도시는 문화가 붕괴한 실패자로 낙인찍는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증거와 부합하지 않는다. (p. 293)

'1970년대에는 이미 고고학자들과 도시사학자들이 도시 문명에 정해진 발전 패턴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를 많이 축적하고 있었다. 많은 도시들은(앙코르와 카호키아도 여기에 포함된다) 비시장 원리에 따라 조직됐다. (p. 293) 한 도시의 주민이 작은 마을들로 쪼개지더라도 그것이 실패는 아니다. 그것은 변화일 뿐이고, 흔히 정상적인 생존 전략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 도시의 문화는 조상들을 이어받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전통 속에서 생명을 이어간다. (중략) 도시를 버리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정치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p. 294)' 저자는 기존 학자들의 환경결정론적 도시붕괴론에 대해 반박한다. 중요한 것은 공적 공간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회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라면서 모든 도시는 건축술을 이용해 공적 영역을 만들어내느 실험이라고 표현한다. 붕괴나 멸망 보다는 변화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모든 도시는 집중과 분산 사이를 끊임없이 순환할 것이다. (p. 297)' 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라진 도시'는 하나도 없는 셈이다.

차탈회윅, 폼페이, 앙코르, 카호키아 같은 곳들의 극적인 도시사를 되돌아보면 수백 년에 걸쳐 나타난 확장과 폐기의 패턴을 볼 수 있다. (p. 319) 도시의 인구 감소가 그 원인과 결과는 다르지만 모두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인간이 만든 거대한 기반시설을 관리하는 골치 아픈 문제로 인해 촉발된 것이었다. 인간 자체를 관리하는 일은 더욱 큰 문제였다. (p. 320) 그렇긴 하지만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도시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역사 속의 증거는 많다. (p. 321) 도시에 살던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도시가 사라진 적은 없었다. 도시는 우리의 상상 속에, 우리 공적인 땅 위에 계속 살아 있다. (중략) 천 년이 지나도 우리는 여전히 도시 실험에 매진하고 있을 것이다. (p. 325) -에필로그 中-

저자는 고고학자나 역사학자는 아니었지만 글쟁이답게 가독성 높은 르포르타주를 써냈다. 소설을 읽듯 4개 도시생활을 가상으로 체험하고 나면 역사를 읽은 줄 몰랐는데 역사를 읽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역사는 가르쳐준다. 사라진 도시를 통해, 도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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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 탐정이 된 의사, 역사 속 천재들을 진찰하다
이지환 지음 / 부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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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과 추리의 눈으로 바라본 뜻밖의 인물사

셜록처럼 치밀하고 세익스피어처럼 유려하게

역사를 읽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재미있는 건 아무래도 소설적 구성을 곁들인 인물사일 것같다. 저자는 정형외과 의사이지만 어려서부터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았다고 한다. 본업인 의학이 대중에게 보다 더 친근해질수 있도록 다양한 학문과 접목하기 위해 노력중인데 이 책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 중 하나라고 한다.

의학은 한 편의 추리다. 의사는 통증이라는 사건을 안긴 가해자 질병을 탐정처럼 수색해 나간다. (p. 6) 사실, 모든 의사는 홈스의 후배다.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은 의사였고 그가 취직한 병원은 한산했다. 덕분에 부업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중략) 코넌 도일은 스승 조지프 벨 박사를 떠올렸다. 박사는 의미 없어 보이는 사건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동료들이 진단을 내리지 못해 쩔쩔맬 때 박사는 어김없이 등장해 질병을 밝혀냈다. (p. 7) -들어가는 말 中-

읽고 보니 정말 그렇다. 의학은 한 편의 추리다. 여러가지 증상을 통해 병명을 유추해나가는 과정은 흡사 범인을 색출하는 추리의 과정과 비슷해보인다. 게다가 아서 코난 도일에게 영감을 준 조지프 벨 박사의 일화를 읽고보니 셜록 홈스가 따로 없다. 저자또한 셜록 홈스가 된 것 마냥 질병을 추적해 나간다. 환자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다방면의 위인들이다. 위인들이 앓았던 질병을 추리해나가는 과정은 역사를 읽듯 사건을 해결하듯 흥미진진해서 독자도 탐정이 된 듯 술술 읽게 된다. 추리의 시작은 항상 질문이다.

세종은 왜 운동을 싫어했을까?

가우디는 왜 해골집을 지었을까?

도스토엡스키는 어쩌다 도박꾼이 되었을까?

모차르트의 사인이 정말 질투일까?

로트레크는 왜 난쟁이로 태어났을까?

니체는 어쩌다 정신병원에 입원했을까?

모네가 말면에 그린 그림이 추상화처럼 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프리다는 왜 자신을 붉은 과일로 표현했을까?

퀴리는 방사능의 위험을 몰랐을까?

말리는 왜 자신의 피부암을 방치했을까?

질문을 던지고 나면 정말로 궁금해진다. 알고 있었던 것들도 질문에 의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네 이상하네 왜그랬지 하면서.

질문에 대해 저자는 단번에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추리라는 것이 이런저런 단서들로 몇번의 시행착오 끝에 얻어지는 결론이듯이 위인들의 질병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다른 가설들을 먼저 알려준다. 그러한 미끼들은 질문에 대한 확신을 더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세종의 유일한 약점이라면 운동을 꺼렸다는 점, 하나다. (중략) 사람들은 세종을 '고기를 좋아하지만 운동은 하지 않아 결국 비만한 몸을 갖게 된 왕'이라고 생각한다. 세종은 완벽주의자다. 관심을 갖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그런 세종이 단순히 '하기 싫어서' 운동을 피했을까? (p. 16)

도스토옙스키는 방탕한 노름꾼과는 다르다. 그는 뱀장어 일당에게 조종당한 가여운 먹잇감이었다. (p. 67) 그는 자신의 이중성에 괴로했다. (중략) 초대받지 못한 전기 뱀장어는 도스토엡스키의 뇌 어디에 자리를 잡고 있을까. (p. 68)

모차르트의 죽음에 대한 보고는 상당히 과장됐다. 누구도 모차르트를 살해하지 않았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독살하지 않았고 프란츠는 악의로 장송곡을 의뢰하지 않았다. 죄 없는 이를 희생시키는 거짓 시나리오는 폐기하자. 이제, 진범을 찾을 시간이다. (p. 96)

주로 질병을 추적하는 과정이지만 때론 뜻밖의 상식을 때론 의외로 멋진 문장을 만나는 재미도 있었다.

몽마르트는 '순교자의 산'이라는 뜻이다. 가난한 이화 쫓겨난 예술가는 순교자의 산에서 삶을 이어 갔다. 이들을 먹여 살릴 상권은 술집과 사창가뿐이었다. 세탁업을 하던 어머니는 빨간 속옷을 입고 술집에서 캉캉 춤을 췄고, 교회를 다니던 방앗간 주인은 헌금을 낼 돈으로 풍차를 개조해 카바레를 열었다. 순교자의 산은 어느덧 성공한 파리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놀러 와 욕망을 분출하는 하수구로 변모했다. (p. 139)

니체는 소년 시절 신을 떠난 모양새로 바그너를 등진다. 어려운 결정을 내린 니체는 육체의 약화까지 감내해야 했다. (중략) 니체는 교수직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난다. (p. 149) 이무렵 니체의 글은 사뭇 따뜻해진다. 신과 예술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은 통증과 함께 인간계로 내려왔다. (중략) 니체는 인간을 때리는 신의 채찍을 뺏으며 너무나 인간적인 선언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영리한 동물이 아니다. 전통적인 도덕을 위해 가축처럼 스스로 훈육할 필요가 없다." (p. 150) 매독이 니체의 뇌를 손상시켜 정신병이 발생했다는 그의 주장은 '나는 뇌신경 학파다'라는 맥락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p. 154)

빅뱅 이론은 '우주가 거대한 폭발 뒤에 팽창했다니. 마치 덩치 큰Big 근육질 스트리퍼가 생일 파티에 빵Bang 하고 깜짝 등장하는 것과 비슷하군요" 라며 비꼰 말에서 따왔다. (p. 167)

실험을 시작하고 꼬박 4년 만인 1902년, 부부는 염화라듐 0.1그램을 추출한다. 이만큼을 얻기 위해 8톤의 역청 우라늄과 400톤 이상의 물이 필요했다. (p. 243)

1900년대 의사들은 치료 허무주의에 빠져 있었다. 선배들 덕분에 감염병이 세균 때문이고 류머티즘 질환이 면역 체계 문제라는 건 알았다. (중략) 그렇지만 알면 뭐하나? 환자를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외과 의사들은 차가운 칼을 쥐고 암 덩어리를 적출이라도 할 수 이싿. 하지만 내과 의사는 감염병 환자에게 '당신의 병은 결핵입니다' 라고 진단하고, 환자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물으면, 앵무새처럼 '좋은 공기를 쐬고 식사를 챙겨 드세요'정도의 말밖에 못했다. 허무할 따름이다. (p. 247)

책속에는 참고 그림이나 사진이 종종 등장하는데 212p의 <디에고와 프리다>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프리다의 유명세만큼 프리다의 자화상 그림은 여러점 본 적 있다. 사진도 몇 장 봤던 것 같다. 하지만 자화상 속의 프리다는 너무 참혹하거나 너무 거대했고 사진은 환자의 모습인 것 뿐이었다. 그런데 이 책속에 나온 사진은 프리다의 풋풋하면서 강인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대한 덩치의 디에고 옆에 너무나 여리여리한 체구로 앉아 있는 프리다가 너무 예뻐서 슬펐다.

우리는 초등학교 졸업, 대학교 입학, 결혼, 출산과 같은 굵직한 이벤트가 모여 삶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큰 사건을 와 닿게 하는 것은 사소함이 아닐까. 삶이란 뭉뚝한 사건의 분탕질 속에 부지런히 적응한 사소함일지 모른다. '삶도 사소함에 깃든다'

이 책은 천재들의 사소함에 주목했고, 사소함을 관찰해 병을 진단해 냈다. 왜 세종은 운동을 기피했으며 말리는 죽을 때까지 암을 방치했는지, 모두 사소함에 주목한 질문들이다. 우리는 손톱같은 사소함을 관찰했기에 그들의 숨겨진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진단은 사소함에 주목하는 시선이다. 이 시선에는 원인을 밝히겠다는 철저함과 환자를 대하는 따듯함이 함께한다. (p. 284) -나가는 말 中-

저자는 '의사는 손톱을 기르지 않는다' 고 말한다. 수술을 하려면 손톱이 짧아야 하기에 이삼일에 한번은 손톱을 깎는다고 한다. 이런 섬세함이 습관이 된 의사는 환자의 사소함을 놓치지 않고 병을 진단해내는가 보다. 의사들에 대한 기억이 별로 좋은 게 없었는데 저자와 같은 마인드의 의사라면 신뢰가 절로 우러날것 같다. '얼핏 고루하고 빡빡할 것 같은 의학은 사실 이렇게나 역동적인 학문이다. 관심이 생기는가? 그렇다면 이 책은 충분히 성공했다. (p. 286)' 라는 저자의 소박한 바람은 책을 읽는 내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역사를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의학으로 마무리된, 여러모로 유용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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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간의 교양 미술 - 그림 보는 의사가 들려주는
박광혁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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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화가들과 그림을 볼 수 있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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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간의 교양 미술 - 그림 보는 의사가 들려주는
박광혁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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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 그림에 눈뜨는 시간

매일매일 순간이동 미술 여행

저자는 스스로를 '진료실과 미술관을 오가며 의학과 미술의 경이로운 만남을 글과 강의로 풀어내는 내과 전문의' 라고 소개한다. <미술관에 간 의학자> 와 <히프크라테스 미술관> 그리고 000에 간 의학자 시리즈를 합쳐놓은 <과학자의 미술관> 은 그러한 자기소개가 적절히 표현된 책이었다. 어쩌다 보니 저자가 진료실과 미술관을 오가며 풀어낸 책을 대부분 읽은 나로서는 이 책의 제목에서 약간 어중간함이 느껴졌다. 의사로서 풀어내는 그림이야기는 의학과 미술의 만남이라는 신선함이 있었지만, 의학과 상관없이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여 수많은 그림을 본 (직업이 의사일뿐인) 사람으로서 쓴 교양서는 좀 다를 테니까.

제목에서 '60일간' 이라고 써놓았듯이 이 책은 하루에 한명씩 60명의 화가를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목차에서 정리해보면 프랑스 16, 이탈리아 4, 영국 4, 독일 6, 네덜란드 7, 아일랜드 1, 벨기에 1, 덴마크 2, 핀란드 2, 노르웨이 1, 스페인 1, 스위스 2, 오스트리아 2, 러시아 5, 미국 6 으로 굉장히 다양한 나라의 화가들이 등장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대부분의 화가들이 근대화가들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고전에 대한 교양보다는 생소한 근대미술과 화가들에 대한 상식을 넓힐 수 있는 책이다. 그러니까... 미술사적인 책은 아니란 소리다.

미술사조나 기법 같은 전문적인 미술이야기도 아니고 화가의 생애를 전기적으로 서술한 것도 아닌 이 책은 화가별로 그림 몇점을 보여주면서 그림에 얽힌 이야기 조금과 화가의 인생사를 조금 엮어서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저자의 앞선 책들이 의사로서 그림에서 의학이야기를 뽑아냈다면 이 책은 의사로서가 아닌 그림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에세이 라고 할 수 있겠다.

상식을 넓혀주는 소소한 재미들은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소녀> 그림 속 책이 당시 엘리트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던 볼테르의 [캉디드]라는 풍자 소설 이라거나, 유명한 브랜드 '시슬리'가 화가 알프레드 시슬레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 부처를 그린 서양화가 르동, 보티첼리는 본명이 아니라 별명인 셈인데 이탈리아어로 '작은 술통'이라는 것, 이 책의 표지그림의 화가이기도 한 레이턴은 영국에서 화가 중 최초로 세습 남작 작위를 받았으나 하루만에 소멸되었다는 일화, 고독한 남자의 뒷모습 그림으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가 히틀러에게 칭송받으며 나치의 프로파간다로 이용됐었다는 것, 서양미술사에 알려진 화가 중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화가인 독일의 에밀 놀데, 동시대인물도 아닌데 데모크리토스와 헤라클레이토스가 함께 그려지고 그시대엔 있지도 않았던 지구본이 함께 그려진 이유, 아일랜드의 국민화가라고 칭송받은 존 레버리, 제너의 종두법 보다 82년 앞서 '인두법'을 알렸던 몬태규 부인 일화 등이 기억에 남는다.

기존 미술 책들에서 여성화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았던 만큼 책속에 여성화가들이 꽤 여럿 등장한 것이 반가웠는데,

마리 가브리엘 카페 와 스승인 아델레이드의 이야기나, 모리조가 로코코 시대의 대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증손녀 라는 것, 초상화 작가로 인정받았던 테레즈 슈바르체, 프랑스 인상주의를 미국에 알린 릴라 캐벗 페리 등 알려지지 않은 여성화가들을 볼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아쉬었던 것은 마리 바시키르체프 의 그림 <회의> 그림이 짤려서 실렸다는 점이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짤린 부분이다. 소년들의 '회의'가 아닌 소녀의 뒷모습... 또한 헬레네 셰르프백 의 그림들도 그녀의 화풍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그림들이 실린 것도 좀 아쉽다. 또한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헬렌:내 영혼의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는데 홍보 문구에 '핀란드의 뭉크'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생소할 수 있는 핀란드 여성 화가를 알리기 위해 우리나라 대중에게 익숙한 노르웨이 화가 뭉크를 연결한 듯하네요. (p. 284)' 라는 표현은 개인적으로 정말 많이 아쉽다. 나는 이 영화를 봤다. 굉장히 수작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를 저자가 봤다면 단순히 뭉크가 유명한 화가이기 때문에 헬렌과 연결지은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을 텐데... 싶어서... (유명한 화가는 많다. 헬렌이 '핀란드의 뭉크'인 것은 유명세가 아니라 '화풍' 때문이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므로 오류라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 좀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내용이 있었는데,

'니체, 슈만, 보들레르 등 다수의 역사 속 인물들이 이 병으로 고통받고 죽었으며 (p. 56)' 라는 구절은 다른 책에선 니체의 죽음이 매독에 의한 정신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설'이 있는 내용일 경우 '설'로만 언급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고,

메두사 에 대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그녀에게 반해 끈질기게 구애했고 결국 둘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아테나 여신이 포세이돈을 이미 사랑하고 있었던 데다 둘의 사랑이 아테나 신전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문제였지요. (p. 132)' 라는 내용은 메두사 신화에 대한 3가지 '설' 중 두가지를 합쳐놓은 내용이라 정리 혹은 구분이 필요해 보인다. (위키백과만 찾아봐도 3가지 '설'이 잘 구분되어 나온다)

다른 책도 아닌 저자 본인의 책에서 다루었던 내용인 만큼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는데

<미술관에 간 의학자> 에선 나폴레옹이 옷 속에 한 손을 집어 넣고 있는 포즈에 대해 명치 부위에 통증이 빈번히 발생해 그곳을 만지는 것이 습관화 된 것이라고 추측된다 했었는데 이 책에선 '흔히 나폴레옹 포즈 라고 알려진 자세입니다. 이 포즈는 고대 그리스의 웅변가 아이스키네스가 유행시켰다는 설이 있습니다.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할 때 손이 보이는 게 매너가 아니라는 인식 때문에 한쪽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는 것인데요, 이후 프랑수아 니벨룽의 <점잖은 품행의 기본>(1737)이라는 책에서도 손이 보이지 않게 코트 안에 넣는 것이 겸손의 상징처럼 소개된 것을 보면 당시 상류층 사람들이 다시 이런 자세를 취하고 다녔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p. 39)' 라고 바뀐 입장에 대해 저자 본인의 앞선 책에 대한 내용을 수정한다거나 언급하지 않은 것이 좀...

본문 자체에서 서로 상충되는 구절이 있기도 했는데,

'동시대 인상파의 아버지로 불렸던 에두아르 마네는 볼롱울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네가 볼롱을 비판했던 기록도 있지요. 그래서인지 사후에 볼롱은 빠르게 잊히고 맙니다. 볼롱은 현재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화가 중에 한 명입니다. (p. 60)' 라는 내용은 마네에게 한 화가를 잊혀지게 할 만큼 엄청난 권위기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마네의 생애 마지막 그림조차 '많은 비평가들은 마네의 자화상뿐만 아니라 초상화에서 인물이 의도적으로 평평하게 묘사되어 있어 입체성이 부족하다고 비난했습니다. (p. 56)'처럼 그림마다 혹평과 비난을 받았던 마네에 대해 앞 챕터에서 쓴 내용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았다.

편집이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도 곳곳에 있었는데 가장 크게는 한 페이지 상에서 수정전 과 수정후 로 보이는 두 문단이 함께 실린 경우였다.

'꽃 시리즈를 창작한 후 4년이 지난 1968년 6월3일, 편집성 조현병응로 피해망상을 품은 여성의 총에 맞아 두 달간 입원하게 됩니다. 응급 수술로 목숨은 건졌지만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였고 몇 차례 추가 수술 후에도 후유증으로 고생하였지요.

꽃 시리즈를 창작한 후 4년이 지나 40세가 되던 1968년 6월 3일, 워홀은 밸러리 솔라나스라는 여성으로부터 총에 맞아 두 달간 입원하게 됩니다. (p. 407)'

무엇보다 어색했던 것은 본문의 마지막 페이지 가 끝나고 바로 색지라는 점이다. 본문이 끝나면 저자의 마무리 말이라던가 참고도서나 혹은 도판 출처 라던가 하다못해 출판사 인쇄일 페이지라도 있는 것이 책이 끝났구나 싶은 기분을 주는데 본문의 마지막 페이지 로 그냥 끝 이라니 책의 편집이 여러모로 아쉽다. 하지만 그림들이 비교적 크게 실린 것들은 좋았다.

재미있게 읽히는 책에 대해서 이런저런 아쉬운 점만 잔뜩 늘어놓아서 저자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미술관에 간 의학자> 나 <히포크라테스 미술관> 을 읽으면서도 아쉬운 부분들이 좀 있었기에 그것들이 보완된 책이 아니라 보완해야 할 점이 더 많은 책을 저자가 펴냈기에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곳곳의 숨은 명화들을 보는 것도 좋고 하루 한편씩 두달간 예술 수다를 읽을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좋고 60명의 화가와 그보다 더 많은 그림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좋지만 저자가 쓴 책이 이 책이 첫 책이 아닌만큼 앞으로의 책은 기초자료가 좀더 탄탄한 책을 써주시면 어떨까 바래본다.

여하튼 쉽게 술술 잘 읽히는 책이었고 다양한 화가들의 그림을 풍부하게 보면서 뜻밖의 신선한 에피소드들을 읽을 수 있어 좋았던 책이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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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 알고 보면 가깝고, 가까울수록 즐거운 그림 속 철학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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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가깝고, 가까울수록 즐거운 그림 속 철학 이야기

미술도 처음, 철학도 처음이라면

그림 앞에서 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생각

정치철학을 박사과정까지 공부하고 철학과 육아를 버무린 책을 쓰며 독일 맥주가 삶의 원동력이라는 저자의 두번째 책인 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미술관에 놀러다니며 느꼈던 것들과 그동안 저자가 학교에서 배우며 공부했던 것들을 엮어서 한껏 잘 차려놓은 잔치상 같은 책이다. 뷔페처럼 골라 먹어도(읽어도)되고 한식처럼 하나씩 맛봐도(읽어도)되지만 나는 (요새 내게 너무 필요한) 주안상을 받은 듯 술처럼 마시고 안주처럼 먹었다(읽었다).

앞으로 이어질 여러 편의 글은 이렇게 조금은 난해할 수 있는 철학적 개념을 좀 더 쉽게 머릿소에서 재생시킬 수 있는 스위치 같은 예술 작품을 골라서, 눈으로 보면서 생각해보는 놀이입니다. 즉 미술에 철학을 올려놓고 싸 먹는 쌈이 될 겁니다. 맛있었으면 좋겠는데 맛이 없을까 봐 걱정입니다. (p. 8) 이 책은 사실 학생 때부터 가장 쓰고 싶었던 것으로, 마음속에 아주 오래 묵혀뒀던 아이디어들입니다. 미술도 철학도 어렵다고 생각해서 살짝 도망치고 싶은 분들께 수줍게 권하고 싶습니다. 저도 노는 겁니다. 같이 놀아요. (p. 9) - 들어가는 말 中 -

13편의 글 속에 그 배가 넘는 철학개념들이 있고 또 그 배가 넘는 그림들이 등장한다. 때로는 철학적 개념이지만 때로는 현실이나 삶 그 자체이기도 했다. 철학자의 책도 어렵고 미술가의 책도 어렵지만 그 둘이 중간 어딘가에서 만난 이 책은 미술사적이지 않고 피상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철학도 미술도 다 구체적이라 좋았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올해 내게 가장 큰 인상을 남겨주었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라는 그림으로 시작해서 더 좋았다. 그런데 이 그림이 니체 철학과 연결될 줄이야 ㅎㅎㅎ

통상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 즉 신에게 가 닿으려고 간절히 염원하는 인간과 그를 부드럽게 포용하는 신의 모습이 아니다. 아무리 보아도 유유자적한 쪽은 아담이고 의지와 열망이 강하게 느껴지는 쪽은 신이다. (중략) 미켈란젤로는 신과 그가 창조한 첫번째 인간이 만나는 순간을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p. 19)

그 유명한 그림 <천지창조> 이고 특별전까지 가서 유심히 봤던 그림이었기에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신과 인간의 손가락만 클로즈업 해서 보여졌을때 어느쪽이 신이고 어느쪽이 인간이었더라 라는 방향을 생각하기에 앞서 손가락의 모양만으로는 직감적으로 무심한듯 내민 손이 신이고 손가락 하나라도 길게 뻗어 닿으려 애쓰는 손이 인간의 손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두번 본것도 아닌 이 그림에 대해 이렇게 또한번 놀라게 될 줄이야!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무지와 신의 열망을 니체가 철학으로 풀어냈을 줄이야.

니체는 허무주의로 알려져 있지만 인간 삶의 험함을 가차 없이 폭로한 데서 허무주의라는 이름을 얻은 것을 뿐, 그 허무를 껴안고 계속 전진할 것을 주문하기 때문에 사실 허무주의를 한 차원 뛰어넘는 인물이다. 허무주의자가 아니고 허무주의를 극복하자는 사람이다. 그의 철학은 본질적으로 염세의 철학이 아니라 긍정의 철학이다. (p. 27)

철학을 공부한 적도 없고 철학에 대해 아는 것도 없지만 들은 소리로는 철학책을 읽을 대 니체의 책을 가장 나중에 읽으라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니체의 철학은 다른 철학들이 애써 쌓아놓은 공든 탑을 허물어버릴 만큼 강력한 염세적 허무주의를 깨닫게 하는 철학이라고 들었었기에 어쩌다 가끔 철학대중서를 읽을 때도 니체의 책은 조심스레 건너뛰곤 했었다. 그러다 올해 어쩌다보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읽게됐는데 다 읽고 나서 허무하긴 했지만 '허무주의'가 느껴지진 않았다.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우화처럼 쓰인 이 책은 내게 약간은 구도자의 책처럼 읽혔고 약간은 열렬한 사상가의 책처럼 읽혔다. 그 에너지가 넘쳐나서 전혀 허무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원래 니체 철학이 염세의 철학이 아니라 긍정의 철학이었구나...wow

군자불기는 동양철학의 고전인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말로,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라는 간단한 해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p. 40) 군자불기는 막스 베버가 말한 '영혼 없는 전문가'와도 맥이 닿는 말이다. 군자가 도구나 부품 같은 존재가 아니라 막힌 곳 없이 두루두루 통하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말은, 곧 영혼 없는 전문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p. 43) 쓰임새와 크기가 정해진 것은 군자가 아니다. 안팎을 구분하는 단단한 경계가 있고 한정된 양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군자가 아니다. 하지만 리카 반도의 작품 속 메이슨 자를 보면서 나는 군자가 이 유리병 같은 사람이면 어떨까 생각한다. (p. 46)

동서양의 철학을 넘나들고 동서양의 그림을 넘나드는 이 책은 그 다양한 폭 만큼 생각의 넓이도 넓었기에 가끔 검색찬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하지만 내가 검색한 것은 '군자불기'라는 논어의 구절도 아니고 '영혼 없는 전문가' 라는 막스 베버의 철학도 아니었다. 내가 검색한 것은 '메이슨 자' 였다. 메이슨 자가 뭐지??;;; 익숙한 유리병이었지만 메이슨 자라고 하니 생소했다. 아직은 철학도 그림도 내게 이 메이슨 자 같은 것이라서 그러려나...

책가도는 책가, 즉 서가를 그린 그림이고 책거리는 서가가 있든 없든 책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이다. (p. 55) 책거리는 가장 한국적인 정물로 통한다. 외국 명화들 속에도 책이 더러 등장하지만, 우리처럼 책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모습을 그려 약2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왕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즐겼던 나라는 없는 듯하다. 그만큼 우리는 책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온 사람들이다. (p. 59) 책거리에 담긴 사물들을 보며 떠오르는 개념은 가치 다원주의다. (p. 66)

나는 책가도도 책거리도 좋다. 외국의 호기심캐비닛이나 장식장을 그린 그림들도 보기 좋지만 병풍 가득 책만 그려져 있어도 잡동사니 속에 책이 쌓여있어도 나는 책이 많은 그림이 좋다. 저자의 말마따나 우리나라가 이토록 책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온 사람들인데 출판시장이 힘들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여하튼 이렇게 애정어린 책과 함께 풀어지는 철학개념은 책장이 술술 넘어가듯 쏙쏙 이해가 된다. 철학을 공부하게 하는 책이 아니라 철학을 그림처럼 음미하게 하는 책이다.

나에게 '사과 하면 홉스'인 것은 단지 내가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배울 때 자연상태의 개념을 사과로 배웠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그렇게 파악한 개념들을, 사과를 그린 작품 두 점을 보며 풀어보겠다. (p. 75)

국가의 형성이나 사회계약 관련한 것을 공부할때 중고등학교 교과서엔 홉스, 로크, 루소 3명이 비교대조 설명된다. 저자도 이 3명을 통해 그 개념들을 설명하는데 저자가 보여준 그림을 본 순간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아~ 자연상태의 차이~가 아~ 하고. ㅎㅎ 그리고 홉스와 로크에 비해 좀더 상세히 설명되는 루소의 사상을 깨닫게 하는 파울 클레의 그림엔 실소를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들이 무슨 이유로 모여 살게 되는지에 더 관심이 있었던 홉스와 로크에 반해, 루소는 인간이 모여 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더 관심이 있었다. (p. 96) 홉스와 로크는 공통적으로 인간이 사회계약을 통해 보다 더 나은, 진보된 상태로 나아간다고 믿었다. 하지만 루소는 정반대로 인간들이 맺는 사회계약은 스스로 노예가 되겠다는 서명에 불과한, 더 나빠지는 상태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p. 101) 다시 새로운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 루소의 답이다. (p. 102)

인간들이 모여살아야 서로에게 더 유익하다는 것을 전제하는 홉스와 로크는 왜 모여살게 되었는가 라는 기초적 자연상태에 질문을 던지지만 인간들이 모여살아야 한다는 것이 기본인 루소에게는 어떻게 모여살아야 좋을까 라는 삶의 형태에 질문을 던진다. 기원을 올라가는 철학도 이상향을 추구하는 철학도 다 철학답지만 그 뜬구름 같은 철학을 그림을 봄으로써 현재에 시선을 둘 수 있었다. 읽을수록 참 묘한 조합이다 싶으면서도 신선했다.

미래주의 미학은 결국 이탈리아 파시즘과 결합하게 된다. 과거를 증오하고 미래를 사랑하자는 파괴적인 생각은 결국 미술의 영역에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옳고 그름의 구분'을 예술에 덧대고자 했다. (p. 122) 아름다움의 영역에도 옳지 못한 것, 청산해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 그렇게 힘과 속도와 기계를 찬양했던 미래주의는 결국 '약하고 부드러운 것에 대한 구토와 혐오'라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가던 파시즘과 악수를 나누게 된다. (p. 123)

형이상학적 철학을 구체적 그림으로 느끼게 되기도 하지만, 미학이 너무 정치성을 띠게 될때 그 미학은 결국 미학이 아니게 된다. '우리는 어떤 정치적 메시지가 문화의 탈을 쓰고 들어올 때를 특히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그림을 보면서도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 한다. (p. 125)' 철학과 그림이 이래서 조화로울 수 있었나 보다. 둘다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

저자는 오만원권의 뒤에 있는 그림 '월매도'와 '풍죽도' 에 대해서 여백을 없애고 달을 내려뜨린 그 합성그림에 대해서 '우리는 그렇게 달이 추락한 그림이 든 지폐로 오늘도 기술을 사고 여유를 팔고 유행을 먹고 낭만을 마신다. (p. 129)' 며 씁쓸해한다. 나는 이렇게 일상속 그림에 대해서까진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림은 미술관이나 책을 통해 보는 것이지 일상 곳곳의 사물에 혹은 다른 곳에 그려진 것을 보면서 '그림'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림이 이렇듯 일상 가까이 여기저기에 들어와 있듯이 철학도 우리의 생활 곳곳에 들어와 있는게 아닐까.

학문의 승리를 그리랬더니 승리는 무슨, 주제 파악을 잘하자는 그림을 그려 온 클림트를 보고 아마 교수들은 <철학>에 등장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머리를 싸맸을 것 같다. (중략) 교수들은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해 학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클림트를 비판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보다 학문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클림트였다. 학문이 보일 수 있는 위선이라든가, 학문이 가지는 명확한 한계까지 덤덤이 포괄한 그림들이었던 것이다. 인간을 겸허하게 만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진토록 하는 그림들이다. 대학이 무조건적으로 학문을 찬양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p. 139)

오스트리아 빈 대학 천장에 배치할 그림 3점을 클림트에게 요청했었다고 한다. 주제는 철학, 의학, 법학 3가지. 그런데 클림트가 가져온 결과물은 엄청난 반대에 부딪혀 결국 당시에 걸리지 못했고 분개한 클림트는 받은 돈을 돌려주고 그림을 찾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클림트의 명성이 높아지자 세계대전 당시 화재를 당한 이 그림의 스케치와 사진을 통해 복원한 그림은 지금 흑백복사본으로 제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클림트의 화려한 색감은 볼수 없지만 그림의 내용은 분명 클림트가 학문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는 듯 보였다. 클림트의 화려함만 알았던 내게 클림트의 깊이를 알게 해준 저자는 아렌트와 동시대 철학자였던 주디스 슈클라 라는 뛰어난 여성철학자도 소개해주었다. 슈클라는 그 유명한 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에 맞장을 떴던 여성 철학자였다.

이런 슈클라의 주장은 앞서 본 클림트의 천장화 시리즈와 매력적인 접점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클림트의 그림들을 보면서 슈클라의 '공포(로부터)의 자유쥬의'를 떠올렸다. 우리가 자유의 개념을 이해하고 증진시키려면 자유 그 자체보다는 공포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자, 슈클라의 그 유명한 논문 제목이다. 자유를 위해서는 공포에 시선을 두어야 하듯 철학은 모호함을 통해, 의학은 죽음을 통해, 법과 정의는 죄와 불의를 통해 그 본질이 더 잘 드러나는 법이다. (p. 147)

이 책은 읽다보면 은근히 다음 주제로 물흐르듯 연결되는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그러니 '정의'에 대해 논하고 난 후에 정의의 여신 에 대해 이야기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의의 여신상 이야기는 당연히 '정의'에 대한 철학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무연수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칼은 아무리 보아도 양날이 아닌 외날인데, 고전미를 부각하려는 취지에서 전통적 냄새가 물씬 나는 도검을 선택하다 보니 그 안에 들어 있어야 할 소중한 알맹이를 놓치게 된 것 같아 아쉽다. (p. 165)' 라는 문장에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정의와 양날의 칼에 대한 연결과 설명은 이해하지만 우리나라에 세워진 정의의 여신상이 반드시 양날의 칼을 쥐고 있어야 하는걸까? 양날의 칼은 위험성을 경고하지만 외검은 칼날로 한번에 베지 않고 칼등으로 한번 더 기회를 주는 온건함이 있다고 볼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영화에서였더라... 사극이었는데 두 원수가 격렬하게 칼부림을 하다가 한명이 칼날로 이기려는 순간 적의 목에 닿은 것은 칼날이 아니라 칼등이었고 두 원수는 대를 이어온 살육을 멈추게 됐었다. 그 이후로 칼에는 칼날만 있는 것보다 칼등도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꽤 괜찮은 것이었구나 라는 나름의 깨달음을 간직하게 됐다. 그러니 다른나라도 아니고 우리나라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에는 서양의 시퍼런 양날의 검이 아니라 칼등과 칼날이 함께 있는 외검을 쥐고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클레가 남긴 말 중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라는 말이 철학과 클레 작품들 사이의 매력적인 관계를 드러내는 정수라고 생각한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 주변에, 우리 생각 속에 존재하는 관념들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 이런 클레의 예술관은 바로 내가 쓰고 있는 이 책의 의도를 관통하기도 한다. 관념을 눈에 보이게 하는 작품들, 사람들에게 물음표를 띄우고 사유하게 만드는 작품들. 그래서 나는 클레가 그렇게 좋았던 것 같다. (p. 195)

그래서 이 책속에 클레의 그림이 자주 등장했었나 보다. 저자가 가장 좋아한다는 화가 파울 클레의 그림을 나는 그동안 자주 보진 못했지만 저자의 철학들과 함께 읽다보니 그 매력이 배가되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파울 클레의 그림들을 좀 잔뜩 봐야 겠다. 책으로나마 ^^;;;

골방에 갇혀 쉴 새 없이 수많은 매듭을 짓다 보면 눈이 혹사당하기 일쑤였고, 카펫을 완성하고 나면 아이들은 대체로 시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우표만 한 면적에 백 개의 매듭이 들어갔으니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은 꽤 선호되는 직종이었는데, 몸이 부서지고 착취당해도 나와 내 가족이 평생 먹고살 만한 돈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시력을 잃어가며 말랑말랑한 손가락을 놀렸을 태피스트리 짜는 소녀들. (p. 261)

그림보다 더 그림같은 태피스트리를 보며 그저 감탄스럽곤 했다. 어떻게 저렇게 실로 그림보다 더 정교한 그림을 짜낼 수가 있는지 신기해하면서도 그 안에 숨은 노고는 미처 몰랐다. 그저 당시 여성들의 손재주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느다란 실로 매듭을 지어 만드는 태피스트리는 어른의 손이 아닌 어린 소녀들의 작은 손들이 그 노동이 들어가 있었다. 설국열차의 제일 앞칸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나부터도 미술작품을 볼 때만큼은 그저 이런저런 생각 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감각을 즐기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대체로 감탄할 준비를 하고 간다는 바로 그 지점이 우리의 눈을 가릴 수 있다. (중략) 우리가 다소 무방비적으로 감상하러 가는 작품들 안에 제법 그늘이 많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즐기는 편이 나와 그 작품 간의 좀 더 입체적인 만남이 아닐까. (p. 271)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던가 나는 그저 내눈에 이쁘고 내마음에 흡족한 것만 보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림은 그저 휴식처 같은 의미였다. 보기에 불편한 그림은 굳이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림도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철학이 던지는 질문이 모호할때 그림은 구체적으로 깨닫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으로 경험한 바, 보고싶지 않은 그림을 보며 애써 덮어두었던 생각들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예쁜 그림은 그나름대로 예쁘지 않은 그림도 그나름대로 다 누군가 봐주길 기다렸겠구나 싶었다.

이토록 건강하게 빛나는 아이들, 하루하루 온몸으로 삶의 찬가를 부르는 아이들에게 주목한 철학자가 있다. 두텁게 드리워졌던 근대의 커튼을 열어젖혀 현대라는 무대에 조명을 비추기 시작한 인물, 바로 니체다. 가끔 생각한다. 계몽과 진보라는 시대정신이 우산처럼 씌워져 있던 근대는 어쩐지 부모 같고, 그게 싫다고 우산을 팽개치고 뛰쳐나간 현대는 알록달록한 아이들 같다고. (p. 280)

니체의 인간형은 뭔가 일반 대중과는 다른 사람,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 무리에게서 떨어져 홀로 고독하게 살아가는 수행자 같은 느낌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오해다. 위버멘쉬는 누구보다 다른 이들과 함께 가는 인간형이다. (p. 284)

어떻게 보면 이 책은 니체로 시작해서 니체로 끝나는 책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알려주는 '니체'는 천진한 아이 같다. 사실 니체도 자신의 철학에서 궁극적으로 아이의 모습을 추구했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인간의 정신이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널리 알려진 '낙타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의 비유다. (p. 282) 비록 파도에 허물어지더라도 끊임없이 모래성을 쌓으며 즐거워하는 아이, 생을 온몸으로 감각하며 늘 긍정적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아이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의 전형이다. (p. 283)' 미술과 가볍게 조우하는 철학책인줄 알았더니 이렇게 니체를 가볍게 만나게 될 줄이야. ㅎㅎ

이 책에 추천사를 쓴 정여울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그림을 사랑함으로써 철학을 더더욱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고 했고 김만권 정치철학자는 '마음이 고플 때 그의 책을 펼치면 식탁이 된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철학이 만든 온갖 맛있는 지식과 곳곳에 스며든 온기를 만날 수 잇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저자가 맥주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런지 종종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게 만든 이 책은 내게 일종의 술상이었다. 얼큰달큰 술술 넘어가서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마시던 술처럼 그림에 취하고 철학에 취해서 술술 넘겨 읽다보니 어느새 다 읽어버린, 그런 책이었다.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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