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간의 교양 미술 - 그림 보는 의사가 들려주는
박광혁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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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 그림에 눈뜨는 시간

매일매일 순간이동 미술 여행

저자는 스스로를 '진료실과 미술관을 오가며 의학과 미술의 경이로운 만남을 글과 강의로 풀어내는 내과 전문의' 라고 소개한다. <미술관에 간 의학자> 와 <히프크라테스 미술관> 그리고 000에 간 의학자 시리즈를 합쳐놓은 <과학자의 미술관> 은 그러한 자기소개가 적절히 표현된 책이었다. 어쩌다 보니 저자가 진료실과 미술관을 오가며 풀어낸 책을 대부분 읽은 나로서는 이 책의 제목에서 약간 어중간함이 느껴졌다. 의사로서 풀어내는 그림이야기는 의학과 미술의 만남이라는 신선함이 있었지만, 의학과 상관없이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여 수많은 그림을 본 (직업이 의사일뿐인) 사람으로서 쓴 교양서는 좀 다를 테니까.

제목에서 '60일간' 이라고 써놓았듯이 이 책은 하루에 한명씩 60명의 화가를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목차에서 정리해보면 프랑스 16, 이탈리아 4, 영국 4, 독일 6, 네덜란드 7, 아일랜드 1, 벨기에 1, 덴마크 2, 핀란드 2, 노르웨이 1, 스페인 1, 스위스 2, 오스트리아 2, 러시아 5, 미국 6 으로 굉장히 다양한 나라의 화가들이 등장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대부분의 화가들이 근대화가들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고전에 대한 교양보다는 생소한 근대미술과 화가들에 대한 상식을 넓힐 수 있는 책이다. 그러니까... 미술사적인 책은 아니란 소리다.

미술사조나 기법 같은 전문적인 미술이야기도 아니고 화가의 생애를 전기적으로 서술한 것도 아닌 이 책은 화가별로 그림 몇점을 보여주면서 그림에 얽힌 이야기 조금과 화가의 인생사를 조금 엮어서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저자의 앞선 책들이 의사로서 그림에서 의학이야기를 뽑아냈다면 이 책은 의사로서가 아닌 그림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에세이 라고 할 수 있겠다.

상식을 넓혀주는 소소한 재미들은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소녀> 그림 속 책이 당시 엘리트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던 볼테르의 [캉디드]라는 풍자 소설 이라거나, 유명한 브랜드 '시슬리'가 화가 알프레드 시슬레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 부처를 그린 서양화가 르동, 보티첼리는 본명이 아니라 별명인 셈인데 이탈리아어로 '작은 술통'이라는 것, 이 책의 표지그림의 화가이기도 한 레이턴은 영국에서 화가 중 최초로 세습 남작 작위를 받았으나 하루만에 소멸되었다는 일화, 고독한 남자의 뒷모습 그림으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가 히틀러에게 칭송받으며 나치의 프로파간다로 이용됐었다는 것, 서양미술사에 알려진 화가 중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화가인 독일의 에밀 놀데, 동시대인물도 아닌데 데모크리토스와 헤라클레이토스가 함께 그려지고 그시대엔 있지도 않았던 지구본이 함께 그려진 이유, 아일랜드의 국민화가라고 칭송받은 존 레버리, 제너의 종두법 보다 82년 앞서 '인두법'을 알렸던 몬태규 부인 일화 등이 기억에 남는다.

기존 미술 책들에서 여성화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았던 만큼 책속에 여성화가들이 꽤 여럿 등장한 것이 반가웠는데,

마리 가브리엘 카페 와 스승인 아델레이드의 이야기나, 모리조가 로코코 시대의 대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증손녀 라는 것, 초상화 작가로 인정받았던 테레즈 슈바르체, 프랑스 인상주의를 미국에 알린 릴라 캐벗 페리 등 알려지지 않은 여성화가들을 볼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아쉬었던 것은 마리 바시키르체프 의 그림 <회의> 그림이 짤려서 실렸다는 점이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짤린 부분이다. 소년들의 '회의'가 아닌 소녀의 뒷모습... 또한 헬레네 셰르프백 의 그림들도 그녀의 화풍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그림들이 실린 것도 좀 아쉽다. 또한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헬렌:내 영혼의 자화상>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는데 홍보 문구에 '핀란드의 뭉크'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생소할 수 있는 핀란드 여성 화가를 알리기 위해 우리나라 대중에게 익숙한 노르웨이 화가 뭉크를 연결한 듯하네요. (p. 284)' 라는 표현은 개인적으로 정말 많이 아쉽다. 나는 이 영화를 봤다. 굉장히 수작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를 저자가 봤다면 단순히 뭉크가 유명한 화가이기 때문에 헬렌과 연결지은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을 텐데... 싶어서... (유명한 화가는 많다. 헬렌이 '핀란드의 뭉크'인 것은 유명세가 아니라 '화풍' 때문이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므로 오류라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 좀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내용이 있었는데,

'니체, 슈만, 보들레르 등 다수의 역사 속 인물들이 이 병으로 고통받고 죽었으며 (p. 56)' 라는 구절은 다른 책에선 니체의 죽음이 매독에 의한 정신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설'이 있는 내용일 경우 '설'로만 언급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고,

메두사 에 대해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그녀에게 반해 끈질기게 구애했고 결국 둘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아테나 여신이 포세이돈을 이미 사랑하고 있었던 데다 둘의 사랑이 아테나 신전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문제였지요. (p. 132)' 라는 내용은 메두사 신화에 대한 3가지 '설' 중 두가지를 합쳐놓은 내용이라 정리 혹은 구분이 필요해 보인다. (위키백과만 찾아봐도 3가지 '설'이 잘 구분되어 나온다)

다른 책도 아닌 저자 본인의 책에서 다루었던 내용인 만큼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는데

<미술관에 간 의학자> 에선 나폴레옹이 옷 속에 한 손을 집어 넣고 있는 포즈에 대해 명치 부위에 통증이 빈번히 발생해 그곳을 만지는 것이 습관화 된 것이라고 추측된다 했었는데 이 책에선 '흔히 나폴레옹 포즈 라고 알려진 자세입니다. 이 포즈는 고대 그리스의 웅변가 아이스키네스가 유행시켰다는 설이 있습니다.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할 때 손이 보이는 게 매너가 아니라는 인식 때문에 한쪽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는 것인데요, 이후 프랑수아 니벨룽의 <점잖은 품행의 기본>(1737)이라는 책에서도 손이 보이지 않게 코트 안에 넣는 것이 겸손의 상징처럼 소개된 것을 보면 당시 상류층 사람들이 다시 이런 자세를 취하고 다녔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p. 39)' 라고 바뀐 입장에 대해 저자 본인의 앞선 책에 대한 내용을 수정한다거나 언급하지 않은 것이 좀...

본문 자체에서 서로 상충되는 구절이 있기도 했는데,

'동시대 인상파의 아버지로 불렸던 에두아르 마네는 볼롱울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네가 볼롱을 비판했던 기록도 있지요. 그래서인지 사후에 볼롱은 빠르게 잊히고 맙니다. 볼롱은 현재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화가 중에 한 명입니다. (p. 60)' 라는 내용은 마네에게 한 화가를 잊혀지게 할 만큼 엄청난 권위기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마네의 생애 마지막 그림조차 '많은 비평가들은 마네의 자화상뿐만 아니라 초상화에서 인물이 의도적으로 평평하게 묘사되어 있어 입체성이 부족하다고 비난했습니다. (p. 56)'처럼 그림마다 혹평과 비난을 받았던 마네에 대해 앞 챕터에서 쓴 내용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았다.

편집이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도 곳곳에 있었는데 가장 크게는 한 페이지 상에서 수정전 과 수정후 로 보이는 두 문단이 함께 실린 경우였다.

'꽃 시리즈를 창작한 후 4년이 지난 1968년 6월3일, 편집성 조현병응로 피해망상을 품은 여성의 총에 맞아 두 달간 입원하게 됩니다. 응급 수술로 목숨은 건졌지만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였고 몇 차례 추가 수술 후에도 후유증으로 고생하였지요.

꽃 시리즈를 창작한 후 4년이 지나 40세가 되던 1968년 6월 3일, 워홀은 밸러리 솔라나스라는 여성으로부터 총에 맞아 두 달간 입원하게 됩니다. (p. 407)'

무엇보다 어색했던 것은 본문의 마지막 페이지 가 끝나고 바로 색지라는 점이다. 본문이 끝나면 저자의 마무리 말이라던가 참고도서나 혹은 도판 출처 라던가 하다못해 출판사 인쇄일 페이지라도 있는 것이 책이 끝났구나 싶은 기분을 주는데 본문의 마지막 페이지 로 그냥 끝 이라니 책의 편집이 여러모로 아쉽다. 하지만 그림들이 비교적 크게 실린 것들은 좋았다.

재미있게 읽히는 책에 대해서 이런저런 아쉬운 점만 잔뜩 늘어놓아서 저자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미술관에 간 의학자> 나 <히포크라테스 미술관> 을 읽으면서도 아쉬운 부분들이 좀 있었기에 그것들이 보완된 책이 아니라 보완해야 할 점이 더 많은 책을 저자가 펴냈기에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곳곳의 숨은 명화들을 보는 것도 좋고 하루 한편씩 두달간 예술 수다를 읽을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좋고 60명의 화가와 그보다 더 많은 그림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좋지만 저자가 쓴 책이 이 책이 첫 책이 아닌만큼 앞으로의 책은 기초자료가 좀더 탄탄한 책을 써주시면 어떨까 바래본다.

여하튼 쉽게 술술 잘 읽히는 책이었고 다양한 화가들의 그림을 풍부하게 보면서 뜻밖의 신선한 에피소드들을 읽을 수 있어 좋았던 책이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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