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 러너'를 처음 본 건 영화관에서였다. 친구들과 함께 시내 영화관으로 무슨 영화를 볼지 고르다가, 이 영화가 재미있어서 보여서 무턱대고 보게 되었다. 예고편도 보지 않고, '미로를 달리는 사람들'이라는 제목만으로 내용을 추론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 아이들은 어떤 게임에 참여해서, 한 명씩 한 명씩 미로 속의 난관 속에 죽어가고, 주인공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만 살아남아 목표를 이루는 영화구나." 한 마디로, '메이즈 러너'는 단순한 할리우드 오락영화로 본 것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내 예상과 다르게 영화가 진행되었다. 할리우드 영화가 어쩔 수 없이 가지는 '진부한 요소(이른바 클리셰)'가 종종 보였지만, 결코 평범한 오락영화로 보이지 않았다. 미로는 게임이 아니라 시험이었다. 한 명씩 한 명씩 죽는 게 아니라 무리를 지어 움직인다. 남아 있으려 하는 무리, 떠나려는 무리. 글레이드, 미로, 그리버 등이 주는 함축적 의미는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매력적인 배우들 때문에, 그들이 죽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고, 적어도 1편에서는 그랬다. 또 볼 수 있다는 것, 그들이 이 재앙을 끝낸다는 희망 때문에 2, 3편은 꼭 볼 것이다........

 

 그러고 나서, 최근에 『메이즈 러너』를 구매해서 읽어본 결과, 영화와 책 모두 대만족이었다. 각자 매력을 담고 있었다. 책에서만 담을 수 있는 내용을, 영화가 적절히 편집하고 창조해서 어느 매체로 읽든 이 매력적인 스토리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다음 페이지가 기대되는 소설을 만났다.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영화와 책 모두 '토머스'를 중심으로 그를 따라가는 시점을 사용해서 스릴이 넘쳤다. 생각해 보라. 토머스 없이 진행되는 장면은 책에서 단 하나도 없었다(에필로그 제외). 영화도 거의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연들은 하나같이 빛이 났다. 또, 죽는 이들도 똑같이 죽어서 다음 편에도 비슷한 현상을 겪을 것 같다.

 사실 『메이즈 러너』는 영상화하기 아주 좋은 소재를 지니고 있다. 괴수(그리버), 미로, 재앙, 글레이드(책에서는 공터라고 부른다)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웨스 볼은 그것을 스크린에 멋지게 구현해내었다. 영화와 책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바로 '탈출구'인데, 개인적으로 책이 더 마음에 든다. 책에 묘사된 '절벽'은 내가 예전에 즐겨했던 게임, '마인크래프트'의 베드락 아래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절벽의 묘사를 표현하면, 대략 이 정도?) 출처: 구글 이미지

 

 결론은, 책이든 영화든 어느 것을 보든 큰 즐거움을 맛볼 것이고, 나아가 이 이야기를 하나의 상징으로 본다면 많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다음 편을 정말 읽고 싶지만, 영화를 위해 나도 참는다.

 

 (메이즈 러너처럼 책이 기대되는 작품은 '에메랄드 아틀라스' 시리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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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강철군화』로 이 작가를 처음 만나는 것은 위험하다. '잭 런던은 사회주의자야'라는 한 마디로 이 미국의 숨겨진 문호를 판단하기란 힘든 일이다. 『야성의 부름』을 비롯한 그의 다른 작품을 만나야, 역자도 '모순 투성이'라고 인정하는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잭 런던의 삶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그의 작품이 다른 고전들보다 특별히 뛰어나다고 평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가 『강철군화』에서 보여준 통찰력은 한 세기 그 이상이다. 그가 예견한 현실이 21세기 대한민국에 다른 모습으로, 그러나 같은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에, 그저 경의감을 품을 수밖에 없다.......

 

 감히, 이 소설에 대한 리뷰는 올릴 자신이 없으니, '밑줄긋기'를 통해 이 소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어떤 소설은 직접 읽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주제는, '이 힘든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유'이다.

이 원고가 특별히 가치 있는 것은 그 끔찍한 시대의 `느낌`을 1912년에서 1932년 사이 그 격한 시대를 산 사람들의 심리를 이보다 생생하게 그려낸 글을 우리는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그들의 실수와 무지, 의심과 공포와 오해, 도덕적 망상, 격렬한 열정, 상상하기 힘든 야비함과 이기심을 말이다. (10쪽)

여러분은 현실의 단단한 땅을 떠나 비행선에 말(言)을 태우고 공중에 떠 있습니다. 제발 땅으로 내려와 여러분이 말하는 철학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말해주십시오. (25쪽)

그들은 무자비한 산업기계에 매여 살아요. 그것의 비애와 비극은 그들이 마음의 끈에 매여 산다는 겁니다. 아이들은 그들이 본능적으로 보호하려고 드는 어린 생명이죠. 이런 본능은 그들이 가진 그 어떤 윤리보다 강해요. 내 아버지만 해도! 내 아버지는 나의 입과 내 형들과 누나들의 입에 빵을 넣어주기 위해 거짓말, 도둑질, 온갖 치욕스런 짓을 했어요. 아버지는 산업기계의 노예였고, 그게 아버지의 삶을 짓밟았고, 끝내는 일만 하다 죽게 만들었어요. (70쪽)

한 사람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대우를 받고 있는데도 사회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제 갈 길만 가고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터무니없는 대우를 받고 있는 건 아닐까? (75쪽)

세계 역사상 지금처럼 격렬하게 변화한 때가 없습니다. 산업계의 빠른 변화가 종교, 정치, 사회 구조에도 빠른 변화를 일으키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무시무시한 변혁이 사회의 신경조직과 구조에서 일어나고 있스니다. (…) 제 말은 거대하고 위협적인 어떤 그림자가 지금 이 땅 전역에 드리우기 시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원하신다면 그것을 과두제의 그림자라고 부르지요. (119쪽)

당신은 편집자들을 잊고 있군요. 그들은 자신들이 유지하는 방침의 대가로 봉급을 받아요. 그들의 방침은 기존 체제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것은 결코 싣지 않는다는 거죠. 주교님의 발언은 기존 체제의 도덕성을 강력하게 공격한 거였어요. 그건 이단이죠. 그런 이단적인 발언을 더 못하게 하려고 그분을 연단에서 끌어냈어요. 신문들은 그분의 이단을 침묵의 망각 속으로 일소할 거예요. 미국의 언론이요? 미국의 언론은 자본가계급에 기대어 살을 찌우는 기생충들이에요. 언론의 기능은 여론을 조작해 기존 체제에 봉사하는 것이고, 그 봉사를 썩 잘해내고 있죠. (131쪽)

지금은 더 많은 걸 깨달았네. 그 모든 감자와 빵, 버터, 고기가 내 것이었지만, 내가 그것들을 얻기 위해 일한 적은 없다는 걸 말이지. 그러자 모든 게 명확해지더군. 다른 누군가가 일해서 만든 것을 내가 빼앗았다는 사실을. 가난한 사람들 사이로 내려오니 그렇게 빼앗긴 사람들, 빼앗겼기 때문에 굶주리고 비참하게 사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더군. (215쪽)

그 문제에 있어서는, 혁명의 힘 역시 이 무시무시한 20년 내내 다름 아닌 정의감에서 나왔다. 그것 말고는 우리의 희생과 순교를 설명할 수 없다. 바로 그 이유로 루돌프 멘델홀이 사회주의를 위해 영혼을 불태우다 생의 마지막 밤을 자신의 멋진 백조 노래와 함께 마감했다. 바로 그 이유로 헐버트가 마지막까지 동지들을 배신하기를 거부하다가 고문에 못 이겨 죽어갔다. 바로 그 이유로 안나 로일스턴이 모성의 축복을 거부했다. 바로 그 이유로 존 칼슨이 글렌엘런 은신처에서 무보수로 충직하게 일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 천재 바보 막론하고 어떤 인간을 혁명 동지들 속으로 밀어넣은 원동력은 정의를 향한 위대하고 지조 있는 갈망에서 나온다. (313~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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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보게 될 J.K. 롤링. 난 해리포터 시리즈를 한 글자도 읽지 않았으니 오히려 그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리라.

 

 

 

 

 

 

 

 

 

 

 

 

 

 모두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이다. 『강철 무지개』는 내가 좋아하는 시 중 하나인 '절정(이육사)'의 한 구절에서 따와서 더욱 기쁘다. 그리고 『나쁜 봄』은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문학적 시도가 대단했다. '것'을 배제하다니, 직접 느껴보지 않으면 안된다.

 

 

  카렐 차페크에 대한 관심은 높은데 정작 그의 작품을 하나도 읽어보지 못했다. 잭 런던처럼, 그는 나에게 찾아와 나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문학, 작가라는 나의 숙명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들... 소중하다. 담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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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내가 산 『돈키호테』 완역본은 동서문화사 것이다.

 

 이 번역본을 읽고 『돈키호테』에 대한 리뷰를 쓴 적이 있다. (주소 http://blog.aladin.co.kr/755125167/4440346)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내용은 이해가 되었지만 번역 자체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고, 아무리 그림이 있다 해도 책의 디자인은 나를 사로잡지 못했다. 

 

 

 

 

 

 

 

 

그래서 그 동안 나를 사로잡은 『돈키호테』 완역본은 아래의 시공사 판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 번역본은 작품의 1부만 번역한 것이었더라.

 

 

 

 

 

 

 

 

 

 

 

 

 

 이리하여 나는 『돈키호테』를 제대로, 다시 만나고 싶어졌고, 나의 욕망을 채워 줄 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신문을 통해 『돈키호테』를 다시 만날 기회를 얻었다. 역자인 안영옥 선생님을 인터뷰한 기사였는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1252126535&code=960205), 기사를 보다 보니 정말 구미가 당겼다. 『돈키호테』가 매혹적으로 변신하여 다시 만나기를 기다릴 것이다. 당장 지금은 아니더라도, 기억을 위해 이 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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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기 위해 글쓰지도, 글쓰기 위해 살지도 마라. 그 안에는 무언가가 다른 하나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데, 그것은 지극히 불합리하다. 결국 삶을 글과 동일시하고, 글과 삶을 동일시하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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