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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엄마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5
강진아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평점 :
초등학교 4학년, 학교에서 첫 수련회를 가던 날이 기억난다. 수련회는 공식적인 첫 외박이었고, 늦은 밤까지 친구들과 놀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설레있었다. 떠나기 전날, 아빠는 든든하게 용돈을 챙겨주었고, 엄마와 마트를 돌며 좋아하는 과자와 젤리를 가득 구입했다. 그리고 새벽부터 분주하게 김밥을 싸서 가방에 담으며 잊은 물건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주셨다.
몇 주 전부터 설레며 기대했던 마음과 달리, 나는 학교로 발걸음을 떼자마자 울고 말았다. 그 당시 나는 스스로 꽤 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학교를 향해 걸어갔지만, 엄마는 내가 학교에 다다르는 길목까지 지켜보며 한 번씩 돌아보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왜 그랬을까, 사실 나는 문을 나서며 '이게 엄마와 마지막 순간이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마지막이면 어쩌지. 문득 든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출발하는 좌석 버스 안에서도 전혀 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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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말기입니다. 외과에서 말 안 했나요? 뼈 전이가 심해서 방사선 치료를 먼저 하시는 게 좋습니다." (p.73)
『오늘의 엄마』는 3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애인을 잃은 정아에게 엄마의 암 진단 소식이 날아든다. 아직 연인의 죽음조차 이겨내지 못한 정아는 이제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엄마와 마주해야 한다. 똑부러지고 야무진 언니 정미와 세상일에 늦되고 어색한 정아, 엄마가 곧 곁에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지만 여전히 내 생일을 잊고 언니와 비교하며 자신을 걱정하는 엄마의 말에 서운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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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은 기억도 못 하면서 절은 왜 하라는 거야? 갑자기 억울해진 정아는 분명한 적의를 담아 엄마를 쏘아보며 방으로 올라와 버렸다. 자신의 유치한 행동에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솟구치는 서러움을 어쩌지 못하겠다. 엄마가 자신만 미워한다, 라는 이상한 논리까지 가져다가 한참을 이불 속에서 꿈틀거리다 보니 놀랍게도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깼다. 도우미 아줌마의 부축을 받고 엄마가 들어오고 있다.
"고마워요, 아가 자나 보네요."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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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엄마는 '어린이날'이니까 피자를 사주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매번 그랬다. 나는 피자를 싫어하는데 매번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어느 날은 카레를 한 솥 가득 만들고는 '네가 좋아하는 카레 만들었어'라고 말한다. 나는 카레를 싫어하는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자꾸만 잊어버리는 게 서운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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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어떻게 딸이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싫어하는 음식이 뭔지도 모를 수 있어?" 참, 그런데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몇 개나 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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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야 정아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한다. 엄마 배 속에서 그 불편한 마음을 어찌어찌 전달받아 현재의 자신이 된 것이다. 원래 그런 줄 알았던 자신의 취향에 근거가 있음을 알게 되자, 엄마에게 자신을 하나라도 더 묻고 싶다. 왜 특정한 시간, 4시 44분이나 11시 11분에 급격히 즐거워지는 것인지, 왜 까만색을 좋아하는 것인지, 엄마라면 '그냥'인 줄 알았던 것들의 이유를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다.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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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출할 때 '누구'를 만나는지, '몇 시'에 들어오는지 묻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뭐 별 특별한 것도 없지만,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보고하고 통제되는 느낌이 싫었다. '난 그냥 친구를 만나고 들어가고 싶을 때 들어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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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저녁, 돌아오지 않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 먹을건데 언제쯤 들어와?", "엄마 태백산이야!"
"말도 없이, 갑자기?" 나는 엄마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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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엄마』의 정아처럼 엄마의 암 진단 소식을 듣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엄마가 없는 순간이 절대 없을 것처럼 살아간다. 사소한 것에 서운해서 너무나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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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은 사람, 있어요?”
엄마는 여전히 바닥을 내려다보고만 있다. 정아는 귀를 열고 엄마의 대답을 기다린다. 머뭇거리며 뜸을 들이던 엄마가 천천히 입을 연다.
“엄마요.”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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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엄마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