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패닉 - 코로나19는 세계를 어떻게 뒤흔들었는가 팬데믹 시리즈 1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북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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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병에 관한 뉴스를 볼 때만 해도 우리가 과거에 겪어왔던 메르스 혹은 사스 전염병처럼 혼란은 겪겠지만 곧 일상을 되찾을 것이라 생각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일상의 많은 제한들이 생겨나고,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기약할 수 없는 미래로 미룰 때에도 가을이면, 겨울이 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정부의 수많은 정책과 뉴스에서 말하는 지구적 위기에 대해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제야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이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팬데믹 패닉』에서 그가 주장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지금의 위기를 빠져나올 수 있는 방도는 '공산주의'의 형태라는 것. 그리고 이러한 발언으로 수많은 비웃음을 샀던 것도 사실이다. '공산주의'라고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한국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북한을 떠올릴 것이고, 부조리한 정치 국가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젝이 주장하는 '공산주의'는 이미 고려되고 있고 더러는 일부 시행되기도 한 조치들을 지칭하는 명칭으로서의 공산주의, 이것은 장밋빛 미래를 밝혀줄 비전이 아니라 재난 자본주의의 해독제로 쓰일 '재난 공산주의' 전망에 더 가깝다. 동의할 수 있는가?

"국가가 훨씬 더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아 마스크, 진단키트, 산소호흡기같이 긴급하게 필요한 물품들의 생산을 조정하고, 호텔들과 다른 휴양지들을 고립시키며, 이번에 실직한 모든 사람의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등의 조치를 수행해야 함은 물론, 이 모든 일을 시장 매커니즘을 버려가며 해야한다."(p.128)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개념은 이 책의 저자 지젝이 체감하는 것과 우리가 느끼는 것이 분명 다를 수 있다. 그가 주장하는 공산주의적 형태의 해결책들은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시행되었고, 결과적으로 코로나 감염병 확산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케이스로 꼽고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다소 과도한 면도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와 대비되는 국가들의 대처를 살펴보면, 지젝이 주장하는 대안은 어느 정도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텍사스주 부지사 댄 패트릭은 <폭스 뉴스>에 출연해 자신은 공공보건 조치들이 미국 경제를 망치는 걸 보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전국의 "수많은 조부모들이" 자신과 의견이 같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일터로 돌아갑시다. 일상생활로 돌아갑시다. 바이러스에 휘둘리지 맙시다. 우리 중 일흔이 넘은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서 챙길 것입니다." (p.125)



국민들의 건강과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고 관리하는 의료보험 제도가 모든 국민에게 차별 없이 동일하게 주어지는 한국에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렵지만, 미국과 이탈리아 국가에서는 코로나 감염병으로 노인과 약자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사망하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측량 불가능한 인간 목숨과 미국적(즉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 사이에서 선택하라는 것. 이 선택에서 인간의 삶은 반드시 패배한다. 이것이 과연 유일한 선택지일까? 결국 우리 앞의 선택은 이러한 야만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젝이 코로나 감염병으로 전 지구적 위기 상황에 공산주의가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지금의 대처 경험이 앞으로 기후 위기로 인하여 반복적으로 닥쳐올 감염병과 여러 재난에 대처할 유일한 경험적 배움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백신이 개발되어 지금의 상황이 조금 나아지더라도 그 이후 또다시 우리는 새로운 위기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자연이 바이러스로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 우리 자신이 메시지를 돌려주는 일이란 사실을. '어떤 식으로든 일상과 흡사한 것으로 돌아가겠지만 집단감염 이전의 경험과 동일한 일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삶을 대하는 태도, 다른 생명체들 가운데서 살아가는 존재로서 우리 실존을 대하는 태도 전부를 바꿔야 할 것이다.' (p.100)

우리는 근본적 선택에 직면해 있다. 이 감염병에 진지하게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젝은 야만적으로 이기적인 선택으로 내몰리기 전에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시스템이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도록 조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확산 이후 한국 국민들은 서로의 안전을 위해 어느 정도의 국가적 통제에 동의해왔다. 지젝의 주장에 비추어 본다면, 우리는 이미 재난에 대한 경험을 배워나가고 있다. 무엇이 더 옳은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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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씨 허니컷 구하기
베스 호프먼 지음, 윤미나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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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창녕에서 잠옷 차림에 성인용 슬리퍼를 신고 도로에서 도망치듯 뛰어가는 아이가 발견되어 경찰에 신고되었다. 이 어린이는 온몸에 멍이 들어 있었고, 머리가 찢어져 피를 흘린 흔적이 있었으며, 손가락은 심하게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 피해 어린이는 2년 전부터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아이의 친모와 의붓아버지는 평소 아이가 밖을 나가지 못하게 동물처럼 쇠사슬 줄로 목을 묶어 자물쇠로 채워 두었고, 집안일을 할 때만 풀어주었다. 발견 당일, 아이는 빌라 4층 높이의 테라스에 묶여 있다가 쇠사슬이 풀린 틈을 타 베란다 난간을 통해 외벽을 넘어 옆집으로 탈출했다. 당시 집안에는 친모와 의붓동생들이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친모는 글루건과 불에 달궈진 쇠젓가락을 이용해 발등과 발바닥을 지져 화상을 입혔고, 쇠막대기로 온몸과 종아리에 멍이 들 만큼 폭행하게 물이 담긴 욕조에 가둬 숨을 못 쉬게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친모는 4년 전부터 조현병 치료를 받아왔으나 지난해부터 치료를 받지 않으면서 증세가 심해져 딸을 학대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 사건을 보며 『씨씨 허니컷 구하기』의 씨씨처럼 이 아이를 구해줄 사람들이 세상에 많기를 바랐다.


"엄마의 행동은 완전히 예측 불가능해서, 학교가 끝난 후 집에 돌아가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때로는 끈적거리는 설익은 쿠키 한 접시가 나를 맞이했고, 때로는 닫힌 방문 틈으로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오기도 했다. 나는 엄마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 동네 다른 엄마들 중 누구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p.17)



씨씨는 엄마가 그릇을 벽에 던질 대마다 책을 한 권씩 읽었다. 그리고 엄마가 한 번 울 때마다 사전 반 쪽을 외웠다. 씨씨는 그렇게 힘든 일상을 버티고 외로움을 잊었다. 엄마는 과거 '비데일리아 양파 여왕'이었던 과거의 영광에 갇혀 지냈고, 우스꽝스러운 파티 드레스를 입고 손을 흔들며 거리를 활보하는 정신 나간 여자로 불렸다. 학교에서 씨씨는 립스틱을 떡칠하고 왕관을 쓰고 다니는 정신병자 엄마를 둔 소녀였고, 시험의 답을 물어볼 때가 아니면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씨씨는 정신증을 앓는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고, 엄마의 상태를 알면서도 무관심한 아빠로 인해 외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빨간 새틴 구두를 길 한가운데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목격자들은 우스꽝스러운 파티 드레스를 입은 엄마가 아이스크림 트럭을 향해 갑자기 뛰어들었다고 했다.


"엄마가 죽었을 때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굳게 닫혀버렸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지만,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부엌 창문으로 투티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내가 이기적이고 보잘것없는 아이라고 느꼈다. 할머니는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많은 것을 내게 주셨는데, 나는 할머니 옆에 가서 앉는 간단한 일도 할 수 없었다." (p.184)



최근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아동학대, 아동방임이 가족 내의 문제만이 아님을 인식하게 되었다. 더구나 아이에게 고문에 가까운 학대를 가하거나, 여행 가방에 감금하여 아이가 사망하는 등 잔혹한 범행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의 부모가 어떠한 처벌을 받게 될지에 주목했고, 왜 아이가 학대를 당하는 동안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었는지, 어떻게 해야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을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른 후, 아동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은 어떻게 지낼까?


"아가. 그래서 그렇게 힘들었던 거니? 엄마의 죽음은 너랑 아무 상관이 없어, 세실리아. 내가 장담할게. 인간의 마음은 놀라운 거란다. 우리가 자신을 보호할 수 없을 때, 마음이 우리를 보호하지. 때때로 우리가 안고 있는 고통이 너무 무거워지거나 깊어지면, 우리는 그 고통에 항복해야 해. 고통이 우리를 쓰러뜨리고 무너뜨리게 내버려두는 거지. 마침내 바닥을 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한동안 평안하게 쉴 수 있단다. 그리고 점점 고통이 줄어들면서 다시 세상에 나갈 수 있는 준비가 되는거야. 그러면 우리는 일어설 수 있어." (p.365)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땅에 묻힐 때에도 씨씨는 울지 않았다. 혼자가 된 씨씨는 남부의 친척 할머니에게 보내진다. 투티 할머니는 혼자나 다름없는 씨씨에게 선뜻 손을 내밀었고, 함께 살게 되어 기쁘다고 말해주었다. 겉으로는 씩씩한 척, 괜찮은 척하지만 사실은 혼자 웅크린 채 떨고 있던 씨씨는 투티 할머니의 무한한 환대에 조금씩 마음이 열리고, 올레타 아주머니의 음식들로 마른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살찌웠다. 투티 할머니는 씨씨가 부모에게 마땅히 받았어야 할 조건 없는 사랑과 지지를 해주었고, 씨씨는 점차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겨낸다.


창녕에서 구조된 아이는 구조된 후 “큰아빠, 큰엄마에게 데려다 달라"라고 말했다. 아이가 언급한 큰아빠는 누구일까? 아이는 2015년부터 2년 동안 위탁 가정에서 보호를 받았는데, 이후 친모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부터 학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이는 지금도 자신을 보호하고 키워주었던 위탁 가정으로 돌아가길 희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 가정에서 다시 아이를 보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이제 이 아이도 씨씨처럼 자신의 과거를 이겨내고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살아나가길 바랄 뿐이다. 세상에 나쁜 사람이 한 명 있다면, 좋은 사람은 열 명 있으니까.


“어제 일어난 일에 매달리느라 밝은 내일을 낭비하지 마라.

아가, 다 흘려버리렴. 숨 한 번 크게 쉬고 흘려버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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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이모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1
박민정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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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만 해도 매년 '통일'에 대한 포스터 그리기나 글짓기 대회가 있었다. 그때 우리는 통일이 되면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 믿었고, 가난한 북한의 사람들을 구제해 주고 더 이상 싸우지 않고 더불어 살아갈 한반도를 상상했다. 우리에게 통일은 TV에서 보이던 극적 상봉과 같이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애틋하고 그리운 것, 막연히 더 이상 싸우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성인이 된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통일 대박' 정도의 막연한 이상향처럼 느껴졌다. 그 누구도 통일이 되었을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통일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 가야 할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걸까.


"어린 시절에는 내내, 내가 만약 장편소설을 쓴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클라우스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는 입양된 한국계 독일인이었고 지금은 없어진 동독, DDR에서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내고 통일 후 대학에 임용되었으며 한국인 유학생 출신인 이모를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2년의 시간이 흐른 후 실종되었다." (p.35)


1990년 베를리 장벽이 무너진 즈음, 우정의 이모는 서독의 한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직에 임용된다. 이모는 대학에서 동독의 물리학자 '클라우스'와 결혼하여 살아가던 중, 결혼 2년 만에 아무런 이유 없이 남편 클라우스는 자취를 감춘다. 홀로 남겨진 이모는 남편의 여동생과 오랜 시간 남편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흔적을 찾지만 남편의 실종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찾아내지 못한다. 우정은 어릴 적 한 번 본 이모부 클라우스를 기억하고 언젠가 이모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겠다고 마음먹지만, 등단 후 여러 작품을 발표하는 동안에도 그에 대한 소설은 완성하지 못한다.

"경희는 그 사람을 사랑했고, 그의 신념을 존경했다. 동독 민중에게는 불확실한 동독의 민주사회주의의 미래보다 확실한 서독의 자본주의 미래가 더 구체적이었다고. 그것이 서독의 보수 세력에 귀순하는 일이라는 걸 모른 채. 독일의 통합 과정은 노동에 대한 신보수 및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관철이라는 조건에서 그리고 동독에 대한 서독의 총체적 우위 속에서 진행되는 자본 주도의 통일이었다는 점은 더더욱 파악하지 못했다고." (p.62)


우정은 왜 클라우스의 이야기로 글을 쓰고 싶었을까. 나도 때때로 누군가의 삶을 글로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어릴 때는 우정처럼 나의 가족 중 누군가에 대해 쓰고 싶었다면, 요즘은 뉴스 기사를 보면서 종종 생각을 한다. 최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알려진 전남 영광 모 중학교에서 일어난 성추행 사망 사건을 보며 이 같은 생각을 했다. 그 아이들은 왜 그랬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우정이 클라우스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남북 이데올로기가 정치적 힘을 발휘하던 때에 독일로 유학을 떠나 브레히트를 전공한, 현지에서 결혼했으나 한순간 남편이 사라져버린 자신의 이모가 아니라 한순간 사라져버린 클라우스의 삶과 선택을 이해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나도 그 아이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우린 마치 만국박람회에 전시된 부족(ethno)처럼 벌거벗겨진 채 구경거리가 되어 있는 듯했다. 누구의 침실에나 있는 피임약과 콘돔이, 누구의 욕실에나 있는 면도기와 샤워볼이 왜 전시의 대상이 되어야 하나? 동독의 프로파간다와 동독의 부패와 동독의 실책이 포르노 화보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DDR박물관은 동독인들을 영원히 추방하는 소외의 공간이다." (p.81)


정말 '통일'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당연스럽게 자본주의로의 통일을 상상한다. 당연히 남한의 경제 성장과 자본이 훨씬 높으니까 남한으로의 흡수 통일은 당연하다고. 결국 자본주의로 인하여 북한의 많은 사람은 지금보다 더 나은 교육과 경제적 생활을 누릴 것이라고. 지극히 우리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통일인 것이다. 아마 독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념의 잔재로 괴로워하다 스스로의 존재를 실종시킨 동독 지식인 클라우스와 실종된 남편으로 인하여 삶이 버려진 서독 이모는 남북 데탕트를 앞둔 우리의 미래일지 모른다.

"독일 같은 경우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통일이 왔지만, 계층화 현상이 심화되었고 서독화된 독일에서 동독 출신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심해졌지요. 그런 점에서 통일은 민족 전체의 열망이지만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p.96)


나는 이 작품이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이 통일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얼마나 이해했을까. 클라우스를 사랑했기에 그의 이념까지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던 이모처럼, 독일도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써가는 우정처럼, 동독의 지식인을 이해하기 위해 그를 기다리는 이모처럼 우리도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1990년 통일을 이루었지만, 사실상 여전히 통일이 되지 않은 독일의 사회가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초등학생 때 쓴 통일 포스터와 글짓기만큼 밖에 통일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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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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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때때로 이런 농담을 했다. "세상이 범죄 스릴러인데, 누가 범죄 스릴러 책을 읽으려 들겠어." 그런데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를 보면 마리아나 엔리케스가 느끼는 세상은 '공포'이다. 목이 잘린 시체, 사람의 손톱과 치아가 진열장에 장식된 폐가, 아기만 살해한 연쇄 살인마의 환영, 슬럼가의 오염수 탓에 고양이 코를 가지게 된 아이 등 갖가지 기괴한 소재와 사건들이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상당수가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한때 부유했지만 군사 독재와 경제 불황의 시기를 겪으면서 오갈 곳을 잃은 빈민들이 급증하고, 강도와 살인 등 약자를 향한 폭력이 만연해진 아르헨티나 사회는 우리 모두가 지닌 사회적 문제들을 직시하게 한다. 진짜 공포가 무엇인지.


마리오와 동거하던 아파트에서 그녀가 들것에 실려 나왔다. 그녀는 몸의 70퍼센트에 화상을 입었다. 싸움을 벌이던 중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그가 그녀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다. 지하철 여인과 마찬가지로 마리오도 침대에 누워 있던 그녀의 몸 위로 알코올 한 병을 다 부어버렸다. 그런 다음 성냥을 그어 그녀의 벌거벗은 몸에 불을 붙였다. 그녀의 몸에서 벌겋게 타오르던 불길을 몇 분간 지켜보던 그는 마침내 이불로 그녀를 덮었다. 지하철 여인의 남편처럼 그도 그녀가 자기 몸에 불을 붙인 거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중


2011년 아르헨티나에서 한 남성 의사가 병적인 질투심으로 대학생이었던 열한 살 연하의 여자친구의 몸에 알코올을 붓고 불을 지른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이 소설에서는 남자들이 여자들의 몸에 불을 지르는 일이 끊이지 않자, 많은 여자들은 '불타는 여성들'이라는 조직을 형성해 스스로 불길에 몸을 던지는 분신 의식을 거행한다. "앞으로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남자들은 습관적으로 그런 짓을 저지르게 될 겁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나처럼 되고 말 거예요. 목숨을 건진다면 말이죠. 그렇게 되면 꽤나 멋있지 않을까요? 새로운 시대의 아름다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p.331) 작가는 만연한 여성 혐오 범죄에 더욱 극악한 방식으로 대응함으로써 사회에 만연한 여성들의 공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드디어 속보가 올라왔다.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는 살갗이 벗겨진 채 뼈가 훤히 드러났지만, 머리카락은 그 주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아이의 눈꺼풀은 실로 꿔매져 있었고, 혀는 심하게 깨물린 상태였다고 경찰은 전했습니다.' 게다가 시신에서 고문을 당한 흔적이 다수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상체가 온통 담뱃불로 지진 자국으로 뒤덮여 있다는 것이다. 현장 조사한 검시관들의 1차 보고서에 따르면, 성폭행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는 가운데, 범행 시간은 새벽 2시경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 「더러운 아이」 중


창밖 거리에는 임신을 한 채 마약에 취해있는 엄마와 아이가 길거리에 매트리스 하나만 깔아놓은 채 살고 있다. 다섯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는 학교에도 가지 않고, 하루 종일 지하철 승객들에게 엑스페디토 성인 판화를 주면서 돈을 구걸한다. 어느 날, 늦은 밤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며 문을 두드린 더러운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아이는 해골 성상 제단이 있는 건너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얼마 뒤, 인근 주차장에서 목이 잘린 한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고, 나죽은 아이가 더러운 아이일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내가 왜 아이를 데리고 있지 않았던 걸까? 그 불쌍한 것을 엄마에게서 떼어낼 방법을 왜 생각하지 않았던 거지? 아니면 왜 아이를 씻겨주지도 못했던 걸까?"


이 이야기들이 가장 무서운 이유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접수된 데이트 폭력 2만 건, 담뱃불로 손등 지지고 테이블로 머리를 가격해도 벌금형이 그쳤던 사건들. 부모에 의해 쇠사슬에 묶인 채 갇혀있다 탈출한 창녕의 아이와 7시간 넘게 여행 가방에 갇혀 숨진 천안의 아이. 호러 소설보다 끔찍한 현실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잃은 것들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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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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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7월 초, 성추행으로 고소당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후 피해자를 향해 비난이 쏟아졌다. 참혹하고 지겨운 패턴.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사람들은 그의 자살이 "진실이 규명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든 죽음"으로 느꼈고, "왜 결국 죄책감은 피해자의 몫인가" 분개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선으로부터,』의 이 문구를 공유하며 성폭력 피해 경험을 풀어놓기도 하고, 고발자와 연대한다는 메시지나 해시태그를 남기기도 했다.


『시선으로부터,』의 주인공 심시선은 천재 화가 마티아스 마우어의 도움으로 학업의 기회를 얻었지만 그의 폭력과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마티아스를 떠난다. 그러자 마티아스는 보란 듯이 자살을 택하고, 사람들은 시선을 재능 있는 화가를 파멸하게 한 마녀라며 비난한다. 심시선의 손녀 화수 역시 협력업체 사장이 대기업의 갑질을 못 견디고 던진 염산병에 맞아 트라우마를 겪는다. 협력업체 사장은 화수가 소송을 시작하려 할 때쯤 자살했고, 명백한 가해자임에도 동정을 받는다. 손녀는 비슷한 일을 겪었던 할머니를 떠올린다. "죗값을 치르지 않고 도망쳤다. 그건 도망이었다."


2018년에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 유튜버가 스튜디오 비공개 촬영회에서 강제적인 촬영과 사진 유포, 성추행 등의 피해를 폭로했다. 그러자 피해자의 이름이 포르노 사이트의 검색어 1위를 차지했고, 포털 사이트에서는 피해 촬영물을 공유해달라는 댓글이 달렸다. 그 후 피해자가 고소한 비공개 촬영회 스튜디오 관계자 중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람들은 피해자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목숨을 끊었겠어.'


"화수와 동료들을 경악하게 한 것은, 사람들이 가해자인 기민철에게 이입했다는 점이었다. 얼마나 억울하면 그랬겠느냐고, 대기업 놈들은 몹쓸 놈들이라고, 중소기업 하는 사람들은 살지를 못하겠다고, 나라가 약자의 편이 아니니까, 잘 풀려봐야 상대는 가벼운 벌금을 내고 모른 척할 테니까 그랬을 거라고."


보통 내 또래의 친구들은 결혼을 해도 자녀를 낳지 않는 경우들이 많다. 이에 대해 언론에서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고되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며 그럴듯한 분석을 내놓았고 국가에서는 이를 보조하기 위해 지원금을 내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녀를 낳기 꺼려 하는 이유는 복합적이겠지만, 나는 내 아이를 이 세상에 내놓을 자신이 없다. 네가 살아갈 세상이 너무도 아름답다고, 그래서 태어난 것이 엄청난 축복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왜 아이를 갖지 않느냐는 말에 화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염산을 던지는 세계에 살러 오라고 할 수 없어요. 도저히.”


"그래도 요즘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걸 모조리 경제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공기가 따가워서 낳지 못하는 거야. 자기가 당했던 일을 자기 자식이 당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가 없어서. 혼자서는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아니까.” (…) 뉴스는 화수에게 와 독하게 고이곤 했다. 일곱 살짜리가 공원 화장실에서 강간당하고, 스물한 살짜리가 그저 이별을 원했단 이유로 목이 졸렸다.?


『시선으로부터,』는 이처럼 일상 속에서의 폭력과 억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위로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시선의 시대에는 대다수가 이러한 폭력에 대해 저항하지 못했다. 시선과 같은 어른들이 폭력과 억압을 거부하고 저항하며 조금씩 변화해왔다. "가스라이팅, 그루밍 뭐 그런 것들. 구구절절 설명이 따라붙지 않게 딱 정의된 개념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시작선이 다르잖아.”


몇 년 사이에도 사람들의 인식에 큰 변화가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여전한 법 제도와 고정관념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귀요미송을 작곡한 단디는 자고 있던 지인의 여동생을 성폭행했지만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석방되었고, 외주 스태프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된 강지환 또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하면 나 또한 고통받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법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점점 더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며 서로 연대해가고 있다는 것, 그렇게 세상을 바꿔 나갈 의지가 있다는 것뿐. 우리는 시선과 같이 본보기가 되어줄 어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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