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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씨 허니컷 구하기
베스 호프먼 지음, 윤미나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최근 창녕에서 잠옷 차림에 성인용 슬리퍼를 신고 도로에서 도망치듯 뛰어가는 아이가 발견되어 경찰에 신고되었다. 이 어린이는 온몸에 멍이 들어 있었고, 머리가 찢어져 피를 흘린 흔적이 있었으며, 손가락은 심하게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 피해 어린이는 2년 전부터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아이의 친모와 의붓아버지는 평소 아이가 밖을 나가지 못하게 동물처럼 쇠사슬 줄로 목을 묶어 자물쇠로 채워 두었고, 집안일을 할 때만 풀어주었다. 발견 당일, 아이는 빌라 4층 높이의 테라스에 묶여 있다가 쇠사슬이 풀린 틈을 타 베란다 난간을 통해 외벽을 넘어 옆집으로 탈출했다. 당시 집안에는 친모와 의붓동생들이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친모는 글루건과 불에 달궈진 쇠젓가락을 이용해 발등과 발바닥을 지져 화상을 입혔고, 쇠막대기로 온몸과 종아리에 멍이 들 만큼 폭행하게 물이 담긴 욕조에 가둬 숨을 못 쉬게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친모는 4년 전부터 조현병 치료를 받아왔으나 지난해부터 치료를 받지 않으면서 증세가 심해져 딸을 학대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 사건을 보며 『씨씨 허니컷 구하기』의 씨씨처럼 이 아이를 구해줄 사람들이 세상에 많기를 바랐다.
"엄마의 행동은 완전히 예측 불가능해서, 학교가 끝난 후 집에 돌아가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때로는 끈적거리는 설익은 쿠키 한 접시가 나를 맞이했고, 때로는 닫힌 방문 틈으로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오기도 했다. 나는 엄마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 동네 다른 엄마들 중 누구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p.17)
씨씨는 엄마가 그릇을 벽에 던질 대마다 책을 한 권씩 읽었다. 그리고 엄마가 한 번 울 때마다 사전 반 쪽을 외웠다. 씨씨는 그렇게 힘든 일상을 버티고 외로움을 잊었다. 엄마는 과거 '비데일리아 양파 여왕'이었던 과거의 영광에 갇혀 지냈고, 우스꽝스러운 파티 드레스를 입고 손을 흔들며 거리를 활보하는 정신 나간 여자로 불렸다. 학교에서 씨씨는 립스틱을 떡칠하고 왕관을 쓰고 다니는 정신병자 엄마를 둔 소녀였고, 시험의 답을 물어볼 때가 아니면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씨씨는 정신증을 앓는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고, 엄마의 상태를 알면서도 무관심한 아빠로 인해 외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빨간 새틴 구두를 길 한가운데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목격자들은 우스꽝스러운 파티 드레스를 입은 엄마가 아이스크림 트럭을 향해 갑자기 뛰어들었다고 했다.
"엄마가 죽었을 때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굳게 닫혀버렸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지만,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부엌 창문으로 투티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내가 이기적이고 보잘것없는 아이라고 느꼈다. 할머니는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많은 것을 내게 주셨는데, 나는 할머니 옆에 가서 앉는 간단한 일도 할 수 없었다." (p.184)
최근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아동학대, 아동방임이 가족 내의 문제만이 아님을 인식하게 되었다. 더구나 아이에게 고문에 가까운 학대를 가하거나, 여행 가방에 감금하여 아이가 사망하는 등 잔혹한 범행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의 부모가 어떠한 처벌을 받게 될지에 주목했고, 왜 아이가 학대를 당하는 동안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었는지, 어떻게 해야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을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른 후, 아동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은 어떻게 지낼까?
"아가. 그래서 그렇게 힘들었던 거니? 엄마의 죽음은 너랑 아무 상관이 없어, 세실리아. 내가 장담할게. 인간의 마음은 놀라운 거란다. 우리가 자신을 보호할 수 없을 때, 마음이 우리를 보호하지. 때때로 우리가 안고 있는 고통이 너무 무거워지거나 깊어지면, 우리는 그 고통에 항복해야 해. 고통이 우리를 쓰러뜨리고 무너뜨리게 내버려두는 거지. 마침내 바닥을 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한동안 평안하게 쉴 수 있단다. 그리고 점점 고통이 줄어들면서 다시 세상에 나갈 수 있는 준비가 되는거야. 그러면 우리는 일어설 수 있어." (p.365)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땅에 묻힐 때에도 씨씨는 울지 않았다. 혼자가 된 씨씨는 남부의 친척 할머니에게 보내진다. 투티 할머니는 혼자나 다름없는 씨씨에게 선뜻 손을 내밀었고, 함께 살게 되어 기쁘다고 말해주었다. 겉으로는 씩씩한 척, 괜찮은 척하지만 사실은 혼자 웅크린 채 떨고 있던 씨씨는 투티 할머니의 무한한 환대에 조금씩 마음이 열리고, 올레타 아주머니의 음식들로 마른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살찌웠다. 투티 할머니는 씨씨가 부모에게 마땅히 받았어야 할 조건 없는 사랑과 지지를 해주었고, 씨씨는 점차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겨낸다.
창녕에서 구조된 아이는 구조된 후 “큰아빠, 큰엄마에게 데려다 달라"라고 말했다. 아이가 언급한 큰아빠는 누구일까? 아이는 2015년부터 2년 동안 위탁 가정에서 보호를 받았는데, 이후 친모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부터 학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이는 지금도 자신을 보호하고 키워주었던 위탁 가정으로 돌아가길 희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 가정에서 다시 아이를 보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이제 이 아이도 씨씨처럼 자신의 과거를 이겨내고 누구보다 밝고 건강하게 살아나가길 바랄 뿐이다. 세상에 나쁜 사람이 한 명 있다면, 좋은 사람은 열 명 있으니까.
“어제 일어난 일에 매달리느라 밝은 내일을 낭비하지 마라.
아가, 다 흘려버리렴. 숨 한 번 크게 쉬고 흘려버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