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일 때도 괜찮은 사람
권미선 지음 / 허밍버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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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네이버를 검색하다 책을 구입하곤 한다. 내가 모르는 것은 책 어딘가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학생 때는 학업에 관한 책들, 전공 도서들이었다면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는 취업이나 마케팅에 관한 책을 구입하기도 했고, 조금 지난 후에는 사회생활, 인간관계에 관한 책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때때로는 이런 단어를 검색해보기도 한다. '나를 모르겠을 때', '잘 살고 있는 걸까', '괜찮은 사람'. 이런 단어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수많은 블로그와 책들이 나에게 뚜렷한 정답을 주지 못할 거란 것을 알면서도 조금은 위로를 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하지만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들은

언제나 너무 늦게 도착했고 왔다가 금방 사라졌으며

어떤 것들은 오지 않았고 끝내 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기대한 생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생은 내게 약속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나를 배신하고 돌아선 사람처럼 생을 흘겨 보았다.(p.46)

오래전 방송에서 배우 박신양은 자신의 유학 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다. 러시아에 연기를 배우러 갔을 때, 돈도 없고 연기도 늘지 않아 삶이 불행하다고 느꼈을 때 스승은 박신양에게 러시아 시집 한 권을 주었다고 한다. 그 시집 안에 있던 러시아 시 중 한 구절에는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였다. 나는 그 방송을 보고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힘들지 않아야 행복한 인생'이라고 규정지어놓고 내 삶을 판단한다. 그 방송 마지막에 박신양은 '나의 힘든 시간을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인생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나는 나의 힘든 시간들을 사랑하고 있을까.


「나를 더 많이 미워하는 걸 그만두게 될 때,

내가 나에게 마음을 내어 주고

같이 가자며 한 발 옮겨 자리를 만들어 줄 때,

생은 견딜 만해지고 나는 내가 괜찮아질 것이다.」 (p.22)


여전히 내 마음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지금의 감정을, 속상함을, 복잡함을. 때때로 여전히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 되묻는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괜찮다고 우기고 있는 게 아닐까 내 마음을 의심하기도 한다. 어릴 때는 스스로 마음속에 담아두기에는 벅차서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말들을 고이 적어 라디오 사연으로 남겼다. 독서실에서 몰래 라디오를 들으며 내 사연이 읽힐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았다. 라디오 DJ의 조언이 특별했던 건 아니었는데, 어쩐지 '나도 그런 적 있다'라는 말이 깊은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때로는 스스로 답을 알면서도 잘 하고 있다는, 누구나 그렇다는 말 한마디를 찾아 다니게 된다. 어쩐지 알 것 같은 대답이지만 그럼에도 그 말들을 찾아다니게 될 때 위안이 되는 책이 될 것 같다.


그 누구보다, 자신에게 괜찮은 사람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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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익스체인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2
최정화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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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짱개'라는 말을 대학생 때 처음 들었다. 자장면을 배달시키자고 말할 때 종종 친구들이 '짱개 시키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줄곧 그 말이 불편했다. 이 말이 비하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도 익숙하게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싫었다. 티브이 방송을 통해 접하게 되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임금 체불, 국제결혼을 빙자한 인신매매, 아이들이 쉽게 내뱉는 다문화 아이들을 향한 차별이 너무도 불편하다.


최정화의 『메모리 익스체인지』에는 주인공 니키는 더이상 살 수 없는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이주한다. '화성이 지구인들에게 입국을 허가해준 것은 지구인들만큼 싼 값에 노동을 제공하는 종족이 드물었기 때문(p.9)이다. 화성에 도착한 니키는 화성인에게 주어지는 아이디얼 카드가 없기 때문에 공항에서부터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그들이 화성에 적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제 사정이 어려운 화성인의 아이디얼 카드를 사는 것으로 이는 단순 신분증 거래가 아닌, 화성인과 이주민 간의 기억 자체를 교환하는 ‘메모리 익스체인지'를 뜻한다. 인종 차별을 넘어서 행성 차별(?)을 당하는 것이다.


"화성은 지구인들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친절은커녕 같은 생명체로서의 최소한의 존중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은 우리가 옆에 서 있거나 지나가는 것조차 거슬려 했다. 단지 곁을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욕설이나 폭행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같은 생명체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였다." (p.10)


엄마는 대화 도중 함께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한다. 그들은 대다수 베트남이나 중국 등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엄마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우리보다 더 많은 노동을 하고, 더 힘든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때론 급여 인상 문제로 갈등이 빚어지면, 그들의 요구가 은혜를 모르는 행동처럼 반응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엄마만 그럴까?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동일하게 반응할 것이다. 나는 그 생각의 근원이 그들을 '우리와 같은 생명체'로 보지 않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을 되살려낸 뒤, 수용소 사람들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건 기억 속에서 각기 개인이 다른 것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우리들은 제각기 달리 생겼는데도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고, 같은 반응을 보였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오류였고, 감시와 치료의 대상이었다." (p.70)


이 작품에는 "사람들이 널 어떻게 대하든 간에, 넌 자유롭고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야."는 말이 수차례 등장한다. 그리고 우린 이런 말을 좋아한다. 나 자신을 귀하고 가치있게 여기는 말, 하지만 이 말은 '나'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자유롭고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듯 그 누구도 그렇다는 뜻이다. 외국인 노동자도, 국제 결혼한 며느리도, 화성으로 이주한 니키도.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대하고 있을까?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차별에 대한 전복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내가 철저히 존중받지 못할 때를 통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 밖에 없게 되었을 때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들을 던져준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비하하는 것은 그로인해 느끼는 상대적 권력이 스스로를 가치있게 만든다고 여기는 탓이 아닐까? 사람을 진짜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삼촌은 '의미'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그는 이 세상이 의미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그 의미들을 발견하는 게 자신의 인생이라고 했다. 하지만 의미를 찾는 건 삼촌의 삶이고, 내 인생의 목적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네 인생말이야." (p.33)

 

조금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들로 삶이 채워지면 좋겠다. 우리가 지닌 자유의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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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종말 - 개정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영호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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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리프킨은 25년 전 『노동의 종말』을 펴내면서 "우리는 지금 세계 시장과 생산 자동화라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그 길이 안전한 천국으로 인도할 것인지 또는 무서운 지옥으로 우리를 이끌 것인지는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어떤 '노동의 시대'를 견디고 있을까?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첫 구직활동을 하던 십여 년 전에도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역대 최고 실업율'이라는 기사가 매번 눈에 띄었고, 취업이 어렵다며 하소연하는 소리가 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은 직장을 얻었고, 자신이 원하는 직장에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더욱 상황이 좋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누구나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취업난과 더불어 그나마 채용하는 곳은 경력직을 원하거나 계약직과 같은 단기직 뿐이다. 25년 전 제러미 리프킨의 주장처럼, 인간을 위해 구축된 편리한 기계와 시스템들이 결국 노동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노동이 부재한 사회 속에서의 개인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것이

아마도 다가오는 시대의 근본적인 이슈일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쓰인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다시 읽는 이유는 아마도 실제 기계가 어떻게 탄생을 했고, 기계로 인해 인간이 어떻게 일자리를 잃어왔는지를 살펴봄으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일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간의 노동을 지키기 위해 기계와 겨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노동의 영역을 발견하는 것이다.


인간과 기계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나는 '배려'라고 부를 수 있는 수많은 감정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에게는 자발적으로 노인과 아동 등 약자를 돌보는 선의가 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사려 깊게 들어주거나, 즐겁게 해주고자 하는 감정이 존재한다. 아무리 발전된 사회 속에서 첨단화된 기계들이 우리를 편안하게 해줄지라도 결국 인간의 외로움이나 소속감과 같은 감정의 영역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 밖에 없다.


제러미 리프킨도 이 부분을 강조한다. 기계화로 노동 시간은 점점 단축될 것이고,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여가 시간에는 레저와 자원봉사, 공동체 서비스에 참여하기를 권유한다. 이러한 영역은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돕고 공동체 의식을 곤고히 하는 것을 통하여 '기계화' 시대에 인간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베푸는 행위(자원봉사)에 대하여 국가에서는 '세제 감면'을 해줌으로 수익이 창출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얻게 함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역할에 집중하도록 권하는 것이다.


기계화로 노동의 자리는 사라져가는데, 인간의 평균 수명은 길어져 생애 동안 노동을 해야 할 시간은 늘어났다. 지금까지 나의 직업을 고려할 때는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 (실패했지만..) 보다 오래 좋은 보수를 받는 일을 골랐다면, 훗날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게 될 때는 인간으로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려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과는 다른 인간으로서의 역할과 새로운 노동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테니까.


인류는 '노동의 종말'을 오래전부터 예견했지만 그 노동의 종말이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노동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노동의 종말』은 여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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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그린 뉴딜 - 2028년 화석연료 문명의 종말, 그리고 지구 생명체를 구하기 위한 대담한 경제 계획
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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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죽어가고 있어요. 생태계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멸종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전부 돈과 끝없는 경제 성장의 신화에 대한 것 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이번에 출간된 제러미 리프킨의 『글로벌 그린 뉴딜』 마케팅을 준비하면 처음으로 그레타 툰베리의 유엔 연설 영상을 보게 되었다. 스웨덴의 16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지난 9월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세계 정상급 수장들에게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다음 세대에 책임을 떠넘긴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단 3분짜리 짧은 연설은 '기후 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던 나에게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사실 나는 '이제 봄, 가을이 사라졌네.' 혹은 '겨울이 너무 따뜻하잖아.' 정도의 인식만 있었을 뿐 현재 지구가 직면한 기후 변화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알지 못했다. 지구의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도가 올라갔고, 앞으로 0.5도가 더 올라가면 지구 생명체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니. 현재와 같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26년, 당장 8년 후부터 극단적 폭염과 물·식량 부족을 겪게 된다고 한다. 근래 호주와 캘리포니아, 아마존의 대형 산불을 비롯해 자연재해가 빈번해진 것 또한 지구온난화에 기인한 것으로 인류가 지금까지 자연을 제멋대로 이용하고 파괴해 온 대가가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3차 산업혁명』, 『한계비용 제로 사회』 등을 통해 미래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해 제러미 리프킨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에너지 혁명 '그린 뉴딜 계획'을 전 세계에 제안했다. 지구온난화 가스 배출에 가장 책임이 있는 ‘4개 주요 부문’이 화석연료 문명에서 분리되어 그린뉴딜의 신흥 재생에너지와 결합하는 것. 이미 경제의 주요 부문들이 빠르게 화석연료에서 이탈해 대체 에너지로 갈아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새로운 사업 기회와 고용 또한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국가에서 리프킨의 '그린 뉴딜 계획'을 받아들여 정책들을 세워가고 있다.


경제 부흥기였던 1995년에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을 통해 21세기 초에 맞이할 '고용 없는 성장'을 예견했다. 마찬가지로 현재 그가 예견한 '기후 변화'에 따른 미래는 지금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질지 몰라도 곧 우리가 맞이할 미래의 모습일지 모른다. 당장 우리 눈앞에는 경제 성장, 취업난과 같은 문제들이 놓여 있다. 뉴스에는 여전히 경제 성장과 사회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기후 변화에 대한 위기 의식이나 정책 수립 촉구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진짜 본질적인 것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더 이상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의 이익만 바라보고 다음 세대에 책임을 떠넘겨서도 안된다. 실제적인 정책의 일환인 '그린 뉴딜'같은 급진적 생태 전환 플랜이 국내에도 마련되어야 우리도 살고 지구도 살 수 있다.


2010년 개봉했던 영화 '더 로드'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흙먼지가 시야를 가리고 곳곳에 번지는 불로 인해 잿빛으로 뒤덮여가는 허공을 바라보던 장면. 문득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과 제러미 리프킨의 『글로벌 그린 뉴딜』을 읽고 나니 내가 목격할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우리는 바뀌어야 한다. 지금의 삶의 태도 전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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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삶
정소현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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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죽는 순간을 상상해보곤 한다. 아마도 암으로 인해 치료를 받다가 병사하거나 혹은 사고로 인해 갑작스럽게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이제 노병으로 자연사하는 경우는 축복에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면 병으로 사망하는 것과 사고로 사망하는 것, 무엇이 더 고통스러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시쳇말로 소행성이라도 날아와 한순간에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예부터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다고 하는데, 나는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훨씬 두렵게 느껴지곤 한다.


표제작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의 윤승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점잖았던 아버지가 전혀 다른 사람이 돼버려 정신병원에 묶인채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합법적 안락사를 요청했고, 스쿨버스 전복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자신의 아이에게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의사 표시가 불가능해진 아버지와 아이의 생사를 결정했다는 자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괴로워하지만, 알츠 하이머를 앓았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자신의 마지막 모습은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하고 싶어 ‘치매안락사 보험’에 가입한다. 일단 치매 판정이 내려지면 계약을 파기할 수 없다. 윤승은 산부인과 병원장으로 하루하루 쉴틈없이 바쁜 일상을 보냈고, 가족을 모두 잃은 후에는 과로와 고독만이 형벌처럼 무겁게 삶을 짓눌렀다. "저는 노인이 되고서야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바보입니다. 그게 보험 덕택인지, 늙으면 다 그렇게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오래오래 살아 이 행복을 누릴 거예요." (p.13)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던 젊은 시절의 윤승은 노년이 되어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을 통한 서비스로 매일 건강식과 운동 트레이닝, 각종 모임을 주선받으며 사소한 일상들에 행복을 경험한다. 그러나 윤승에게는 죽음이 다가온다. "어떤 말씀을 하셔도 아무 효력이 없어요. 진짜 할머니의 의지가 아니니까요. 할머니의 경우 증상만으로도 확실한 상태라 아까 받은 뇌 검사는 절차상 필요했을 뿐이에요. 이제 '품위 있는 삶' 특약이 적용됩니다. 치매 안락사 특약이지요. 중증 치매로 넘어가고 인격을 상실하면 시행됩니다." (p.31)


상조회사 광고들은 말한다. '자식에게 폐 끼치기 싫으시죠? 당신의 장례를 책임져 줄 상조 보험에 가입하세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은 부모들은 이 광고를 보고 보험에 가입한다. 실제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이 있다면 어떨까? 어쩌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원할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연명 치료'를 거부한다는 서약을 미리 준비해놓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어떠한 질병으로 나의 생명력은 끝을 다해가는데 잠시라도 삶을 연장시키기 위한 연명 치료는 원하지 않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락사'는 자연스러운 죽음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치매나 뇌사 같은 불행이 나에게 닥친다면 누군가 내 생의 마침표를 찍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한다. "사람이 늙어서 생기는 증상들이 죽어 마땅한 이유가 되는 걸까요? 마지막인지 몰랐던 하준이의 인사가 기억납니다. 할머니, 꼭 끝까지 사셔야 해요. 몸이 아파도, 정신이 아파도 그것도 할머니니까 포기하지 마세요."(p.34)


사람의 생명만큼은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죽음 앞에 선 내 모습을 떠올리면 윤리적, 종교적, 도덕적 이념보다 이기적인 생각들이 들기도 한다. "살아보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알고 그랬겠어. 모르니까 무서웠던 거지. 그 알지도 못하는 것 때문에 도대체 난 인생을 얼마나 허비한 거냐."(p.45)


태어난 나와 죽을 나, 사이에 있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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