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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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로 번역되어 출간된 줄리언 반스의 마지막 소설 원제가 Departure(s)라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다. ‘떠남’ 혹은 ‘작별’을 복수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유작으로 처음 읽은 셈인데, 그의 농담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는 책이 스무 권 이상 남아 있음에도 그의 마지막이 먼저 닿았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졌다.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지만, 그의 떠남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렇게 그는 “나와 당신의 마지막 대화가 될 것”이라며 자신의 방식대로 문학적 부고를 남기고 Departure했다. 노년의 소설가가 떠났다가 돌아오는 여정이 아니라, 먼저 도착한 뒤 다음 기착지를 모른 채 떠나는 생에 대해 그는 무엇을 남겼을까.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에서도 그는 평생 천착해 온 ‘기억의 불확실성’을 다시 탐구한다.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두 친구, 스티븐과 진은 20대에 만나 헤어진 뒤 60대에 이르러 재회하지만 결국 또 한 번 파국을 맞는다. 이들이 비어 있는 시간 동안 서로를 그리워했음에도, 다시 헤어진 이유를 하나의 사건이나 감정으로 환원하기는 어렵다. 서로의 삶에서 비어 있었던 시간 속에서 각자가 선택해 온 기억은 두 사람을 어긋나게 만든다. 이들은 재회 후에도 “중간에 낀 시기에 관해 말하지 않”(146쪽)는다. 각자 다른 자리에서 불러낸 기억은 결국 이들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고, 같은 과거를 공유했던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기억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반스는 초반부에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유명한 일화를 불러온다. 마르셀은 어머니가 건넨 홍차에 마들렌을 살짝 적셔 입에 넣는 순간, 까맣게 잊고 있던 옛 기억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기억은 한 소년이 유년기를 지나 사랑을 알게 되고 삶의 진실에 조금 더 가까워지게 하는 통로로 작용한다. 프루스트의 화자에게 이러한 기억이 잃어버린 시간에 다시 닿게 하는 장치라면, 반스는 그 기억이 진실이기보다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서사에 가깝다고 여긴다. 그는 이전에 출간한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에서도 마찬가지로 기억의 한계와 역사의 왜곡에 대해 이야기했듯, 기록조차 완전한 기억을 보증하지 못한다고 말하며 “당신은 그런 기록이 좀먹은 오래전 기억보다 신뢰할 만할 것이라고 가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확신하지 않는다.”(48쪽)라고 고백한다. “우리가 관습적으로 기억이라고 여기는 것은 평생에 걸쳐 자주 또는 가끔 떠오르면서 말로 옮길 때마다 조금씩 변형을 일으켜 마침내 우리가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는 형태로 굳는 것이기 때문이다.”(22쪽)


이 소설은 형식적인 면에서도 흥미로운데, 픽션과 논픽션, 자서전이 합쳐진 하이브리드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화자는 노년의 소설가인 ‘나’로 등장하는데, 독자는 그가 줄리언 반스 자신임을 자연스럽게 짐작하게 된다. ‘나’는 완치 불가능하지만 관리 가능한 혈액암을 앓고 있으며, 반스 역시 몇 해 전 희소 혈액암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이것이 분명히 나의 마지막 책이 될 것이다. 나는 공식적으로 떠나고, 이 책은 나와 당신의 마지막 대화가 될 것이다. 뭔가를 쓰던 중간에 중단되지는 않는다는 것, 이런 식으로 죽음에 선택권을 넘겨주지 않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하며 ‘교수대 유머’로 작별 인사를 건넨다. 우주가 자기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자신 역시 그 우주의 작용 속에서 싸움을 이어 가는 중이며, 언젠가 자신이 죽으면 암도 함께 사라질 것이니 결국 무승부로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설 연휴는 줄리언 반스와 함께해서 기뻤다. 어느 나라의 어딘지 모르는 어느 소도시의 따뜻한 어느 날, 한 카페 실외석에 나란히 앉아 우리 앞을 지나가는 다양하고 많은 삶의 표정들을 지켜보았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의 엘리자베스 핀치를 만났고, 역사에 기독교의 배신자로 기록된 율리아누스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속 노년의 소설가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역사도 의심하게 하는 흥미로운 엘리자베스 핀치와 비슷한 면도 많은 것 같다. 그가 이미 떠난 후에 그를 알게 되었지만, 나는 남아서 계속 구경하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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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그리고 기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엄청나게 투입되는 ‘사실들‘을 정신이 저장할 때 무엇이 잊히는지 보여주려는 것이다. - P99

많은 사람이 그렇게 느낀다. 강력한 반대 증거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공정하다고, 또는 공정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 뒤에, 어쩌면 우리의 현재 이해를 넘어선 어떤 근본적 수준에서는 공정성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가의 믿음이 대비책으로 자리잡기도 한다. - P199

T.S 엘리엇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관해 아는 것은 오직 우리가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 대한 우리의 기억일 뿐이라고 썼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과 함께 있지 않을 때 그들은 변한다고. 아무리 가까운 친구나 애인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기억과 감정과 특질을 간직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 P202

우리는 가고, 우리는 도착하고, 우리는 귀환에 나서고, 다시 집에 다다른다. 우리는 그런 타성을 가지고 산다. 하지만 그런 궤도는 더 크고 더 모순된 구조 안에 놓여 있다. 우리 삶에서는 도착이 먼저 오고 떠남은 마지막에 온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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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눈
김숨 지음 / 민음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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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작가님 신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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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빨강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편혜영 지음 / 창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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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드디어 C국에 입국했다.

방역 회사에서 약품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그는 C국의 본사로 파견근무 발령을 받고 떠난다. C국에 도착하자 검역관은 차례로 체온을 측정했다. 검역이 까다로워진 것은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경로가 밝혀지지 않은 감염병은 병독력이 높지만 치사율은 높지 않다고 했다. 배정받은 숙소는 Y시 제4구로 과거 대량의 산업폐기물을 매립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거주민들이 이탈하였고 쓰레기 더미와 부랑민이 가득한 지역이었다. 그는 지친 몸으로 숙소에 도착하지만 이내 트렁크를 통째로 잃어버리고, 그 탓에 본사 인사담당자인 '몰'과도 연락이 닿지 않게 된다. 연락을 기다리던 중 본국의 두고 온 개가 생각나 출국 전날 함께 술을 마셨던 전처와 재혼했다가 다시 이혼한 동창생 유진에게 연락을 해서 개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다음날 유진은 그의 집을 찾았다가 난자당한 개와 칼에 찔려죽은 전처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말을 전한다. 이때 초인종이 울리고 어안렌즈를 살피니 방역복을 입은 세 명의 남자가 문을 가로막듯 둥글게 서 있었다. 그는 현관문 대신 베란다 문을 열고 쓰레기 더미 위로 몸을 던졌다. 


전처에 관한 소식은 국내 거의 모든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다. 유진의 말대로 그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받고 있었다. 전처의 시신이 그의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사건 직후 그가 해외로 도피했다는 점이 의혹을 부추겼다. 그의 아파트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칼이 발견되었는데, 그의 집에 남아 있는 다른 칼과 같은 브랜드 제품이고 칼날에 전처의 혈흔이 남아 있다는 점도 증거로 제시되었다. _p.106


“쥐 때문이야.”

아무리 방역회사라지만 경영인 연수를 겸하는 파견을 보내면서 지사장은 '쥐' 때문이라고 말했다. C국에 오게 된 것, 쓰레기 더미로 투신한 것, 공원에서 부랑 생활을 이어간 것, 하수도로 떠밀린 것은 모두 쥐 한마리로부터 비롯되었다. 애초에 그를 선발한 지사장 눈에 든 것도 쥐를 잡은 일 때문이었다. "몰의 일은 인사업무다 보니 비밀리에 진행되는 게 많았어요. 사무실이 워낙 커서 업무상 공통점이 없으면 말 한 마디 건네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돌이키기 위해 본사의 인사담당자 몰에게 계속해서 연락을 시도하지만 누구도 그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해도 일은 계속 쌓입니다. 도대체 언제 끝이 날지 몰라요. 쌓인 서류를 보면 한숨만 나오고요. 아무리 전염병이 돌아도 감염되어서 아프거나 죽어나가도 일을 해야 하는 건 변함없습니다. 병에 걸리지 않는 게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병에 걸려서 일을 망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합니다. _p.202


『재와 빨강』은 여기저기 검역 안내문과 전염병 예방수칙이 붙은 공항에서 시작된다. 전신 방역복 차림의 검역관이 승객들의 체온을 재고, 고열의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억류 조치하고 출입을 통제했다. 이 상황은 어쩐지 낯설지 않다. 몇 년 전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가 겪었던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2010년에 쓰여졌다. 이 소설이 출간되고 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 팬데믹은 가상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사건이 되었다. 삶을 폐허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안다. 전염병과 위생 상태, 끊임없이 출몰하는 쥐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시간을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을 망가뜨렸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나중에 사원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그는 낯선 자신의 모습에 흠칫 놀랐다. 흉기라고는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원숭이를 죽일 작정으로 나뭇가지로 찔러댄 일이며 그러느라 자신이 상하는 것을 기꺼이 감내한 일, 오로지 분을 삭히려고 혼자만의 의심을 기정사실화하여 아내를 비하하고 기력이 남아 있었더라면 아내를 때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를 두고두고 부끄럽게 했다. _p.165


후배는 매번 일을 하다 말고 전화 부스로 달려가는 그에게 후배는 공중전화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 별명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순전히 발음의 유사성으로 공중을 허공의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자신은 허공에 뜬 존재나 다름없으므로 썩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_p.235


지난 펜데믹으로 우리가 잃었던 것은 '유대'였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가 아니라 '육체적 거리'가 멀어졌어야 했는데 처음 겪은 재난에 서로 허둥대며 많은 것을 잃고 말았다. 감염자에 대한 비난과 혐오, 무자비하게 공개되던 신원과 동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영세한 사업자들은 부도를 맞이했고 많은 사람들은 직장을 잃었다. 누군가를 만나서 소통한다는 것은 위험을 뜻했으니까. 그래서 편혜영 작가가 『재와 빨강』을 통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무엇이 인간성을 망치는 것인지, 무엇이 우리의 삶을 폐허로 만드는지에 대해서. 사실은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폭력, 누군가에 대한 무관심이, 그리고 사람을 고유하게 보지 않고 자본의 도구로만 보는 이 사회가 진짜 재난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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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개정판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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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들렀던 책방에서 한 권의 책을 구입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었다. 왜 그날따라 이 책이 눈에 띄었을까. 책 뒷면에는 이 책이 출간되어 삼십 년의 세월이 흘러 드디어 백만 부를 돌파했다고 쓰여있었다. 20세기 한국은 전쟁과 통일, 경제 성장 등 많은 굴곡이 있었기에 이를 대변하는 한 작가를 떠올리기 쉽지 않지만,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고 부르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와 시대의 특수성을 고루 반영한 작품을 고르라면 가장 먼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 교과서에서 배웠던 이 작품이 다시 떠오른 건, 연세대 한국어 학당에서 노조를 설립한 최수근의 『지부장의 수첩』 탓이다. 1978년 '우리는 우리가 받아야 할 최소한도의 대우를 위해 싸워야 돼. 싸움은 언제나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부딪쳐 일어나는 거야.'(p.106)라고 말하는 난쏘공과 2024년 '경력 10년이 되어도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1550만 원 수준의 연봉과 고용 안정성'에 대해 말하는 이의 시대는 오십여 년이 흘렀다.


노비의 후손이었던 난장이는 벽돌 공장 굴뚝에서 달을 따려다 떨어져 죽었다. 아이들만큼은 공부를 시켜 다른 삶을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영희는 아버지의 죽음 뒤 방직공장에 들어가 여공이 되었다. 하루 종일 일을 한 새벽이 되면 쏟아지는 졸음에 바늘에 찔리고 옷핀에 찔렸다. 영희의 딸과 아들은 엄마 시대엔 없던 비정규직과 파견직이 되어 할아버지가 올랐던 굴뚝에 매달려 고공농성을 한다. '책상 앞에 앉아 싼 임금으로 기계를 돌릴 방법만 생각'했던 그때나, 노동시간을 주 69시간까지 늘리는 것이 ‘개혁’이 된 지금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을까? 우리는 너무 바쁘기만 했다. 그동안 바빴던 것은 과연 우리의 가치를 위해서였을까?


그게 모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죄야. 너의 할아버지는 무서운 힘을 마음대로 휘둘렀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의 요구에 따라 일한 적이 이때까지 없었어. 너의 할아버지는 모든 법조항을 무시했어. 강제 근로, 정신. 신체 자유의 구속, 상여금과 급여, 해고, 퇴직금, 최저 임금, 근로 시간, 야간 및 휴일 근로, 유급 휴가 등, 이들 조항을 어긴 부당 노동 행위 외에도 노조 활동 억압, 직장 폐쇄 협박 등 위법 사례를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야. 난장이 아저시의 딸이 읽던 책을 보았어. 지금은 분배할 때가 아니고 축적할 때라고 씌어져 있었어. 그리고, 너의 할아버지는 돌아갔어.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나누어주지? 너의 할아버지가 죽은 난장이 아저씨의 아들딸과 그 어른 동료들에게 주어야 할 것을 다 주지 않았어. 


조세희 작가는 자본주의 시대에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면서도 그들의 노동 시간과 임금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 않다. 그는 부패한 기업과 독재 정권에 맞서는 혁명이 아니라 각 개인의 삶에 혁명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지속된 경제성장이 사람들의 내면과 일상을 바꿀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근래에 친구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일 잘하지만 싸가지 없는 사람과 착하지만 일 못하는 사람 중 누가 나은가?' 질문했다. 각자의 사정이 있지만 '일 잘하지만 싸가지 없는 사람'을 택했다. 혹은 '일 잘하는 것이 착한 것'이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출간된 후 백만 부가 판매되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의 몸과 마음은 자본주의에 따라 능력으로 평가되고 자본으로 나뉘는 위계를 선으로 여기는 논리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내가 이 소설을 보며 가장 놀라운 지점이었다.


나는 그날 밤 아버지가 그린 세상을 다시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린 세상에서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 버리고, 바람도 막아 버리고, 전깃줄도 잘라 버리고, 수도선도 끊어 버린다. 아버지는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_p.268


난장이는 '사랑을 강요하는 사회'를 꿈꾸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다. 이 사랑 없는 욕망은 열심히 일한 난장이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다. 한 커뮤니티에서 익명의 사람이 쓴 결혼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재산 정도와 연봉, 차량과 결혼하게 되면 아내에게 줄 생활비를 제시하면서 이 정도면 자신과 결혼할 만 한지 대해 물었고, 댓글에 비난과 조언을 무람없이 달았다. 나는 이 사람의 결혼에 빠져있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사랑하고 그래서 기꺼이 양보해 주고 성장해가는 결혼은 마치 환상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지부장의 수첩』 강연에서 작가는 교섭 당시에 법을 내세우며, 법에서 정한 대로 하겠다는 학교에 답했던 말이 기억에 남았다. "법대로 할 거였으면 고소를 했지, 교섭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법이 아니라 속한 노동자의 인간적인 처우를 위해서 대화를 하자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가 70년대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누군가의 노력으로 많은 노동자의 권리들이 세워졌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 사회에 익숙해서 당연하게 악을 선으로 여기며 돈이 전부가 되어버린 우리들의 마음이다. 뉴스를 볼 때마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수없이 든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이 세상을 바꾸고 우리의 일상을 바꿀 혁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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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콰마린
백가흠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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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청계천에서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잘린 왼쪽 손이 발견됐다."

발견된 손은 어던 문양을 만들고자 한 듯 괴상하게 꺾였고, 손톱은 아콰마린 색으로 칠해져있었다.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된 '미스터리 사건 전담반 (미담반)'은 이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부터 추적한다. 부자연스럽게 구부려진 손가락은 무엇을 뜻하는지, 잘린 게 아니라 살아있는 상태에서 손목을 스스로 절단했을 가능성과 여성이 아닌 남성의 손목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자 대구 수성못에서 잘린 양 발이 발견된다.

“당연히 만난 적 있지. 여러 번 만났어. 그런데 아마 넌 기억하지 못할 거야. 왜냐하면 나는 곳곳에 있거든. 나와 같은 사람 말이야. 너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들 말이야.”

2021년 11월, 전두환은 끝내 사과 한 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지나 노년이 되어서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당시 시민들에게 가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비난하며 발포 명령은 하지 않았다고 끝까지 주장했다.  군사독재 시절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친 이근안 씨는 과거 인터뷰에서 “간첩 잡은 애국자인데 정치형태가 바뀌니까 내가 역적이 되고 이 멍에를 고스란히 지고 살아가고 있다”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 밖에도 국가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람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대표적으로 진범이 나타났는데도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무시했던 '삼례 나라슈퍼 살인사건'이나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피해자들은 경찰의 무자비한 폭행과 고민을 견디지 못해 자백한 허위 진술로 수십 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시간이 흘러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을 통해 당시 수사 관계자들을 찾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진실을 밝히고 사과할 용기가 없는 것일까. 용서하고자 하는 사람은 있으나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없다.

지난 세월이 한순간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나갔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는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무엇부터 바로 잡아야만 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 혼란으로 그는 수십 년을 망설이고 있었다. 어떤 일에건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이런 날이 도래한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_p.241

누군가의 악의적인 마음과 범죄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다면 그 무엇으로도 용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처에서 치유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죄를 지은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고, 끝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정의 구현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일본의 편에 서서 국민들을 고통에 빠트렸던 친일파도, 독재 정권 시절 무고한 사람들에게 총칼을 겨누며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감금하였던 역사도, 하물며 피해자에게 단 한마디 사과도 없이 판사에게 올린 수십 장의 사과문으로 감형이 되는 이 시대에 정의를 말할 수 있을까?

자세히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후회와 반성, 참회의 과정 같은 거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손을 자른 이유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반장님도 해보세요. 잘라내보면 그 후회나 반성의 존재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없애보면 있었던 게 드러나지요.

과거 형사였고 사건 조작에 가담했던 정훈석은 자신의 팔을 스스로 잘라낸다. 80년대 공안 검사이자 정치인이었던 김성도는 진실을 인정하고 참회하고 반성하는 것을 거부하며 자신만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양 발을 서슴없이 자른다. 소설에서 손과 발을 잘라내는 행위는 하나의 소설적 형식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확실하게 끊어내는 것을 표현한다. 우리가 부여한 공권력이 정의를 실현하지 못할 때 반드시 그 슬픔과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왜 나였을까'라며 존재하지 않는 답을 찾는 자들이 남게 된다. 왜 유독 우리 사회에는 실현되지 못하고 망각된 정의와 슬픔이 이리도 많이 존재할까? 왜 누구도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지 않을까. 대체 누구에 의해 망각되고, 누구에 의해 용서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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