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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개정판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24년 2월
평점 :
얼마 전 들렀던 책방에서 한 권의 책을 구입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었다. 왜 그날따라 이 책이 눈에 띄었을까. 책 뒷면에는 이 책이 출간되어 삼십 년의 세월이 흘러 드디어 백만 부를 돌파했다고 쓰여있었다. 20세기 한국은 전쟁과 통일, 경제 성장 등 많은 굴곡이 있었기에 이를 대변하는 한 작가를 떠올리기 쉽지 않지만,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고 부르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와 시대의 특수성을 고루 반영한 작품을 고르라면 가장 먼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 교과서에서 배웠던 이 작품이 다시 떠오른 건, 연세대 한국어 학당에서 노조를 설립한 최수근의 『지부장의 수첩』 탓이다. 1978년 '우리는 우리가 받아야 할 최소한도의 대우를 위해 싸워야 돼. 싸움은 언제나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부딪쳐 일어나는 거야.'(p.106)라고 말하는 난쏘공과 2024년 '경력 10년이 되어도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1550만 원 수준의 연봉과 고용 안정성'에 대해 말하는 이의 시대는 오십여 년이 흘렀다.
노비의 후손이었던 난장이는 벽돌 공장 굴뚝에서 달을 따려다 떨어져 죽었다. 아이들만큼은 공부를 시켜 다른 삶을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영희는 아버지의 죽음 뒤 방직공장에 들어가 여공이 되었다. 하루 종일 일을 한 새벽이 되면 쏟아지는 졸음에 바늘에 찔리고 옷핀에 찔렸다. 영희의 딸과 아들은 엄마 시대엔 없던 비정규직과 파견직이 되어 할아버지가 올랐던 굴뚝에 매달려 고공농성을 한다. '책상 앞에 앉아 싼 임금으로 기계를 돌릴 방법만 생각'했던 그때나, 노동시간을 주 69시간까지 늘리는 것이 ‘개혁’이 된 지금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을까? 우리는 너무 바쁘기만 했다. 그동안 바빴던 것은 과연 우리의 가치를 위해서였을까?
그게 모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죄야. 너의 할아버지는 무서운 힘을 마음대로 휘둘렀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의 요구에 따라 일한 적이 이때까지 없었어. 너의 할아버지는 모든 법조항을 무시했어. 강제 근로, 정신. 신체 자유의 구속, 상여금과 급여, 해고, 퇴직금, 최저 임금, 근로 시간, 야간 및 휴일 근로, 유급 휴가 등, 이들 조항을 어긴 부당 노동 행위 외에도 노조 활동 억압, 직장 폐쇄 협박 등 위법 사례를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야. 난장이 아저시의 딸이 읽던 책을 보았어. 지금은 분배할 때가 아니고 축적할 때라고 씌어져 있었어. 그리고, 너의 할아버지는 돌아갔어.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나누어주지? 너의 할아버지가 죽은 난장이 아저씨의 아들딸과 그 어른 동료들에게 주어야 할 것을 다 주지 않았어.
조세희 작가는 자본주의 시대에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면서도 그들의 노동 시간과 임금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 않다. 그는 부패한 기업과 독재 정권에 맞서는 혁명이 아니라 각 개인의 삶에 혁명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지속된 경제성장이 사람들의 내면과 일상을 바꿀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근래에 친구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일 잘하지만 싸가지 없는 사람과 착하지만 일 못하는 사람 중 누가 나은가?' 질문했다. 각자의 사정이 있지만 '일 잘하지만 싸가지 없는 사람'을 택했다. 혹은 '일 잘하는 것이 착한 것'이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출간된 후 백만 부가 판매되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의 몸과 마음은 자본주의에 따라 능력으로 평가되고 자본으로 나뉘는 위계를 선으로 여기는 논리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내가 이 소설을 보며 가장 놀라운 지점이었다.
나는 그날 밤 아버지가 그린 세상을 다시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린 세상에서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 버리고, 바람도 막아 버리고, 전깃줄도 잘라 버리고, 수도선도 끊어 버린다. 아버지는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_p.268
난장이는 '사랑을 강요하는 사회'를 꿈꾸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다. 이 사랑 없는 욕망은 열심히 일한 난장이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다. 한 커뮤니티에서 익명의 사람이 쓴 결혼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재산 정도와 연봉, 차량과 결혼하게 되면 아내에게 줄 생활비를 제시하면서 이 정도면 자신과 결혼할 만 한지 대해 물었고, 댓글에 비난과 조언을 무람없이 달았다. 나는 이 사람의 결혼에 빠져있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사랑하고 그래서 기꺼이 양보해 주고 성장해가는 결혼은 마치 환상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지부장의 수첩』 강연에서 작가는 교섭 당시에 법을 내세우며, 법에서 정한 대로 하겠다는 학교에 답했던 말이 기억에 남았다. "법대로 할 거였으면 고소를 했지, 교섭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법이 아니라 속한 노동자의 인간적인 처우를 위해서 대화를 하자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가 70년대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누군가의 노력으로 많은 노동자의 권리들이 세워졌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 사회에 익숙해서 당연하게 악을 선으로 여기며 돈이 전부가 되어버린 우리들의 마음이다. 뉴스를 볼 때마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수없이 든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이 세상을 바꾸고 우리의 일상을 바꿀 혁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