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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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사정으로 회사를 떠나게 되어 감사했던 마음을 전하고자 인사드립니다."


지난주 삼성전자 직원 A 씨의 '고별사'로 추정되는 글이 화제가 됐다. 2억 원으로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해 400억 원을 넘게 벌면서 샐러리맨 생활을 청산했다고 알려지면서다. 요즘 20-30대 직장인 중에서 주식이나 비트코인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 현시대를 반영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 중 하나라면, 장류 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만큼 우리 세대를 충실하게 반영한 작품은 없을 것이다.


나도 몇 달 전부터 주식을 다시 시작했다. 없어도 되는 정도의 금액만 투자하려고 했는데, 조금씩 호가로 주문해둔 것들이 체결되다 보니 어느덧 제법 큰 액수를 투자하게 되었다. 내 노동으로 벌 수 있는 소득은 예측 가능하기에, 나에게는 그 외 불로소득이 필요했다. 비트코인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만큼은 바라지도 않았다. 다음 이사를 할 때 보증금으로 묶어둘 수 있는 돈이 조금 더 모이기를, 갑자기 엄마가 아프셔도 융통할 수 있는 여유 자금이 있기를, 가끔 기분 전환 삼아 나를 위한 선물 하나쯤 구입할 수 있는 정도를 원했다. 마흔이 넘어서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생각을 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나도 딱 그 정도를 가지고 싶었다. 그러면 어쩌다가 들어온 이 지긋지긋한 회사를 그만두고 조금, 아주 조금 쉬면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러면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었다. 평생 놀고먹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욕심은 아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년만 쉬면서 다른 진로를 모색해보고 싶었다. 딱 1년만…… 그렇게 하려면 정말로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다. 아, 그렇다면 욕심이 맞을지도 모른다. (p.249)


『달까지 가자』는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 서로를 '동기'라고 생각하는 스낵 팀의 다해, 구매팀 은상 언니, 회계팀 지송이 겪는 일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들이 “금세 친해질 수 있었던 건 암묵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p.103) 샤워하면 물이 침대까지 흘러가는 문턱 없는 원룸에서 살면서 부엌과 침실이 조금은 멀어지길 바라는 소박한 소망을 품는 처지, 자기 인생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하루하루가 벅차기만 한 사람들이기에 더욱 끈끈하고 각별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은상은 가상화폐의 한 종류인 이더리움에 투자해 큰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우리 같은 애들’한테는 큰돈을 벌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며 이더리움 투자에 함께하자고 설득한다. “가상화폐는 손에 쥘 수도 없다. 코드로만 존재한다. 만약 이걸 다시 되팔 수 없다면 나는 허공에 전 재산을 날려버리는 꼴이 될 것이다. 제로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p.89) 과연 이들은 ‘일확천금’의 미래가 있는 ‘달’까지 갈 수 있을까?


​내심 그런 걱정도 했다. 이런 이야기, 그러니까…… 분수에 맞지 않는 걸 욕망하고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대게 욕심 부리다가 큰코다치고 괘씸죄로 천벌을 받으면서 끝나버리고 마니까. 이욕을 추종한 죄, 주제넘게 재물을 탐한 죄, 분별없이 반짝거리고 빛나는 것들을 좇은 죄. (p.329)



나도 모르게 이 이야기의 끝은 비트코인으로 일확천금을 노렸으나, 이를 이루지 못하고 성실하게 살기를 결심하는 결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더리움의 그래프가 상승할 때마다, 더 급격하게 추락하게 될 수익률에 마음을 졸였다. 왜 나도 모르게 그런 결말을 예측했을까? 하지만 은상은 33억 정도, 다해와 지송은 3억 정도의 수익을 기록할 때쯤 빠져나왔다. 자신의 전 재산과 퇴직금을 모두 투자한 결과 치고도 꽤 많은 돈을 번 셈이다. 문득 부러웠다. 그리고 내 안에도 일확천금의 욕망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나에게 3억 정도의 수익이 생긴다면? 내 인생을 가늠해보았을 때 믿을 수 없이 놀라운 행운이지만, 내 삶이 달라질 것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다음 이사는 전셋집을 구해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나중에 퇴사를 하고나면 나는 무얼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 정도. 그 이상은 감히 꿈도 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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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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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미래, AF(Artificial Friend)라 불리는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 아이들의 친구로 생산되어 팔리기 시작한다. 태양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B2 3세대 AF 중 유난히 인간을 열심히 관찰하고 그들의 감정과 소통을 익히는 데 관심이 많은 소녀 AF 클라라는 AF 매장 진열대에서 자신을 데려갈 아이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기다린다. 어느 날 클라라에게 다가온 조시는 클라라에게 곧 데려가겠다고 약속하고, 클라라는 그날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우리와 같이 있던 소년 AF 렉스가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가 어디에 있든 해는 우리한테 올 수 있다고 했다. 렉스가 마룻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해의 무늬야. 걱정되면 저걸 만져 봐. 그러면 다시 튼튼해질 거야.” _p.12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아이들의 지능을 '향상'시킬 수 있었는데, 부모들은 유전자 변형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의 자녀를 사회의 주류 계급에 속하게 하기 위해 아이들을 향상시키고 싶어 했다. 이 때문에 조시는 건강이 좋지 못했고, 언니를 잃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지능이 향상된 아이들이 속한 사회와 딥러닝이 가능한 AF 클라라를 통해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을 고유하게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너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니? 신체 기간을 말하는 건 아냐. 시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이야. 인간의 마음.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해?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 _p.320


사람의 감정과 소통까지 익힐 수 있는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까?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은 인간에게 특별한 영혼이 있다고 믿고 싶어 했고, 이것이 우리가 동물이나 로봇과는 다른 무언가라고 여겨왔다. 그래서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 등장하더라도 반드시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것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기질과 성향, 선호가 매우 특별하며 개성 있다고 여기지만, 과학 기술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단번에 나를 파악하고 나의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의 행동과 말투, 기억을 모두 지닌 인공지능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사람을 대신하여 인공지능을 사랑하고 가족으로 여길 수 있을까? (답은 모두에게 다를 수 있다.)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카팔디 씨가 틀렸고 제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결정한 대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_p.442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조시만의 고유한 것은 무엇일까? 조시와 조시의 주변 사람들을 오랫동안 관찰한 클라라는 그 고유함이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다고 말한다. 결국 조시를 위험에 빠트렸지만, 조시를 더 좋은 세상에 살게 하고 싶었던 엄마의 선택, '각자 세상에 나가서 서로 안 만나고 산다 해도 어떤 부분은,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늘 같이 있을 거'(p.422)라 말하는 닉의 마음, 그리고 '해가 조시에게 특별한 도움을 주기만 한다면 더 내줄 수도, 전부 다 내놓을 수도 있다'(p.396)고 해에게 특별한 도움을 구하는 클라라의 헌신까지. 클라라의 말처럼 나를 고유하게 하는 것은 내 안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와 마음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 그들로 인해 나는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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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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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사람들은 인류를 끊임없이 괴롭혀 온 범죄의 원인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는 타고난 악의 씨를 가지고 태어난 것일까, 어떤 특수한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과거 사람들은 범죄성이 유전적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범죄 유전자를 찾아내고 싶어 했고, 열성인자를 지닌 범죄자들을 격리하고 그들이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함으로 사회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다. 범죄자는 진화가 덜 된 종족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그들은 이성보다 감정과 본능이 앞서기 때문에 범죄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며, 나아가 그들의 얼굴에 유전적 특징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범죄 심리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자라온 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믿고 싶어 했다. 보다 안전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우리는 범죄자와 다르다고 믿고 싶은 것일까, 범죄는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저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쨌든 이러한 믿음으로 인해 많은 범죄자들은 재판장에서 자신의 가난했던 환경과 부모님의 이혼, 아내의 외도 등을 이유로 자신이 범죄자가 되었노라고 주장하며 선처를 받기도 한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연구에 의하면 범죄성은 유전적 특이성에 환경적 결핍이 더해져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같은 환경에 있다고 해서 모두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으니까. 분명 유전적 요인(유전자 혹은 환경 등)도 작용하지만 결국 마지막 방아쇠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은 다른 추리 소설처럼 '범인이 누구인가' 혹은 '왜 살인을 저질렀는가'라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상한 소리가 나서 잠에서 깼어요. 무서운 아저씨가 우리 집에 왔어요. 아줌마 목을 막 조르면서 죽이려고 했어요. 아줌마가 죽을까 봐 겁이 났어요. 그래서, 내가 아저씨를 칼로 찔렀어요." (p.86) 서미애 작가의 전작 『잘 자요 엄마』에서, 하영이 집에 침입한 연쇄살인범 이병도를 칼로 찌른 사건이 벌어지고 5년이 지난 열여섯의 하영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후 하영은 지속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으며 그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여전히 분절된 기억과 서먹한 가족 관계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하영이의 내면은 어떻게 성장했을까.


"당신 때문이잖아. 당신이 임신을 해서 여기로 이사 온 거 아냐. 나는 당신을 위해서 다 버리고 왔는데, 당신은 날 비난하는 거야? 당신을 더 배려했다는 이유로? 왜 이렇게 이기적으로 변했지? 난 적어도 당신이 나한테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왜 이사를 했는데, 신중하지 못했다고? 난 당신과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뿐이야!" _p.160


이 작품에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두 인물에게도 두드러진 '자기중심성'을 드러낸다. 실제로 많은 범죄자들이 '성폭행을 하려고 했는데 반항해서 죽였어요.',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에게 화가 나서 살해했어요.'라며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한다. 자신이 성폭행을 하려고 한 것은, 결혼 생활 내내 폭력을 휘두른 것은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모든 것을 상대 탓으로 돌리고 자기 맘대로 되지 않은 환경에 분노한다. 극단적인 예로, 리얼돌이 상용화되면 자연스럽게 욕구 해소가 되어 성폭력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범죄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성범죄의 핵심은 '성적 욕구'가 아니라,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라고. 그것은 인형으로 충족될 수 없는 삐뚤어진 욕망인 것이다.

 

하영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절대로 지금과 같은 아빠는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하영은 유리와 달리 탈출에 성공했다. 어쩌면 그건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 선생은 친구를 걱정해 달려와주었고 하영을 위해 손을 내밀고 기다려주었다. 하영은 아빠 대신 선경을 선택했다. 이제 선경이 자신의 가족이 될 것이다. _p.368

 


사람들이 말하는 범죄자의 요건으로 본다면, 하영은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가 지닌 유전자가, 그가 자라온 환경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하영은 어떤 선택을 할까.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악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그것은 하영의 선택으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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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호오포노포노
요시모토 바나나.타이라 아이린 지음, 김난주 옮김 / 판미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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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는 한 인터뷰에서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을 하나 둘 터득해 가는 과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자신의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대표작 「키친」의 주인공 미카게는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를 잃지만, 자신의 슬픔을 어찌하지 못하고 심각한 공황 상태에 빠져있고, 그의 남자 친구 유이치는 살해된 어머니의 죽음 앞에 세상과 멀어지려 한다. 『안녕, 시모키타자와』의 요시에와 엄마는 알지 못하는 어떤 여자와 숲속에서 동반 자살해버린 아빠의 죽음으로 인하여, 『새들』에서는 각자의 엄마를 자살로 잃은 두 주인공이 살아갈 이유를 스스로 묻고 찾아나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시모토 바나나를 치유의 작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호오포노포노'는 하와이 말로 '잘못을 고친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불균형을 바로잡아 원래의 완벽한 균형을 되찾는, 하와이에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문제해결법이죠. 주된 실천법은, 우리에게 쌓인 기억을 소거, 즉 '정화'하는 것이죠. (p.22)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호오포노포노는 내면에 쌓인 기억을 ‘정화’하여 삶의 균형을 잡아가는 마음의 훈련이다. '호오포노포노'에 관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 출간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쩌면 이것이 작가 내면과 작품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연관 지어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을 떠올려보면, 자신을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신비한 힘과 기운을 느끼며 부서진 삶의 균형을 맞춰나가는데 과거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 『사우스 포인트의 연인』와 에세이 『꿈꾸는 하와이』를 발표했던 작가는 이 무렵 하와이에서 호오포노포노를 접하지 않았을까.

 

힘들고 괴로워도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고,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노이즈를 줄여서 최대한 자기의 본디 모습으로 성장해 가는 것. 그건 자기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를 좋게 하려는 본능의 작용이 그렇기에 필요한 일이에요. 지구나 우주, 환경, 세계, 그런 것들을 위해, 가령 한 사람이 참되 자기로 돌아가면, 주위에도 선한 영향을 미치죠. 그런 모든 것을 책임감 있게 행하는 것이 '진정한 자기를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p.163)


나는 서른이 넘을 때까지 나 자신을 잘 몰랐다. 나는 순간순간의 기분에 민감한 사람이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감정 표현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은 불편한 감정을 스스로 회피하는 편에 가까웠다. 되도록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고, 그러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내가 회피해왔던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고여있던 감정들을 속수무책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된 것 같았고, 그제서야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난 오늘 무엇이 즐거웠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건 무엇이지?

 


호오포노포노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내면아이인 '우니히피리'를 돌보고, 또 대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최근 주변 사람들로부터 마음공부를 하기 위해 일기를 쓰거나 명상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결국 같은 노력이 아닐까, 우리가 외면해 온 내면이 결국 우리 삶의 균형을 깨트리게 되고 우리는 스스로 회복하기 위해 자신을 돌보며 균형을 잡아가려고 노력하는 과정들. 그리고 이 과정을 지나면 우리는 조금 더 어른이 되겠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진짜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와 슬픔을 극복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아니,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삶의 고통은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지. 이 짧은 리뷰로 호오포노포노를 자세히 소개할 수 없기에 자신의 삶에 균형이 깨어져 혼란스러운 사람이 있다면, 요시모토 바나나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가 위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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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주택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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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아이들을 '휴거지(휴먼시아 거지)', 빌라에 사는 아이들을 '빌거지(빌라 거지)'로 불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른들은 이러한 기사를 보며 혀를 끌끌 차지만, 아이들이 부모의 경제력을 기준으로 서로 계급을 나누고 상대를 멸시하는 행동과 태도는 어른들에게 배웠음이 틀림없다. 작년 성북구 보문동 ‘보문파크뷰자이’의 경우 일반가구가 사는 동과 임대가구가 사는 동 사이에 출입문 없는 높은 벽을 설치함으로써 임대가구 주민들이 다른 동으로 이동할 수 없도록 만들었고, 온라인 카페에는 아이들 사이에서 자녀가 임대 아파트 아이로 오해받아 따돌림을 당할까 걱정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빌라촌 애들이 관리가 잘 안되는 건 사실이잖아요. 부모 입장에서 솔직히 말해서, 빌라촌 애들과 어울리는 게 걱정됩니다. (p.27)

 


어릴 적 엄마의 몸이 좋지 않아 외할아버지에게 맡겨진 수림이는 얼떨결에 할아버지와 순례 주택에서 순례씨 손에 큰다. 평생 때를 밀어 재산을 일군 세신사 순례 씨는 일명 ‘때탑’ 순례 주택의 건물주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라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 하는 괴짜이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월세를 받지 않고, 이웃들을 너그럽게 품으며 스스로를 성찰할 줄 아는 유일한 어른이기도 하다.


수림의 아빠는 대학 시간 강사로 대학원 후배인 엄마와 서른 살에 결혼했다. 집은 장인에게 얹혀사는 것으로, 부족한 돈은 부모형제에게 받아쓰는 것으로 생계를 해결했다. "전임교수 될 때까지만 도와주세요." 아빠는 어른들에게 그렇게 부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십오 년째 전임교수가 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지만 누구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엄마, '전임교수'가 될 때까지만 도와달라며 15년째 얹혀사는 아빠, 갓 드라이클리닝한 옷에서 나는 냄새가 가장 좋다는 고등학생 언니. 이들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알게 된 빚더미에 평소 업신여기며 무시하던 빌라촌 순례 주택으로 이사 오게 된다.


"이 동네 오니까 왜 이렇게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 솔직히 말해서, 순례 주택에서 정상 가족은 302호랑 우리 집 밖에 없잖아."
나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엄마가 함부로 그어대는 '정상'이 나는 정말 싫다. (167)

 

 

『순례 주택』은 우리가 지닌 삐뚤어진 욕망과 사회를 드러낸다. 그러나 작가는 그들을 지적하기보다는 순례 씨와 그 주택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 속 순례 주택과 원더 그랜디움으로 나뉘는 세상은 제힘으로 성실하게 사는 것보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아파트를 선망하고, 출신 대학으로 상대의 지적 수준과 연봉을 평가하고, 빚으로 주식을 투자하며 일확천금을 바라는 지금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생각과 태도가 고스란히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스며들었다.


우리의 욕망으로 빚어진 수림의 가족은 학벌, 학번, 아파트가 세상의 잣대지만 평생 독립하지 못한 덜 자란 어른이다. 그들에게 순례 주택은 자신들이 지닌 옳고 그름의 경계, 공간, 학벌, 숫자 그 경계를 넘어 남을 배려하고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가치를 알아가는 공간이다. 어른 아이가 많은 요즘 우리에게는 순례 씨 같은 어른과 이웃들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순례씨, 있잖아. 나는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꼭 태어난 게 기쁜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 (p.226) 

 

더 나은 성적, 더 나은 대학, 더 나은 취업을 위해 평생을 경쟁해왔던 우리에게 차별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이겨야만 했고, 보다 나은 내가 되어야 했으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 어떤 사람이 되라고 말하면 좋을까? 나는 내 조카의 눈을 보고 어떤 사람이 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순례 주택』에서 그 말을 찾았다. 태어난 것이 기쁜 사람. 사람으로 사는 게 고마운 사람이면 좋겠다. 설령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해도, 대기업에 입사하지 못해도,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제힘으로 살아보려는 진짜 어른이 되어, 태어난 게 기쁜 사람으로 살면 좋겠다. 어쩌면 우리의 혐오와 불행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한 지도 모른다. 당신도 태어난 것만으로 기쁜 사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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