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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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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다락방이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의 가장 처음인 다락방, 그 곳에 십년을 숨어 지냈다는 한 고문기술자 이야기가 운명처럼 끌린 모양이다. 나에게도 다락방은 내 기억의 처음인 것 같다. 『생강』에 나오는 다락방처럼 나의 일기장과 사진들을 감추어 둔 곳 비밀스런 장소이기도 했고, 아무도 몰래 할아버지 곰방대를 피워 물어봤던 비밀스런 기억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비밀스러운 장소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사람들은 그를 고문기술자라고 불렀고, 악마라고도 불렀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것을 무기로 삼는 사람, 자신의 세계를 위해 자신의 아버지의 세계를 지켜야만 했던 사람이 다락방을 장악했다.

고문기술자 안은 80년대에나 존재할 법한 인물처럼 느껴진다. 장의사집 둘째 주인이라 불리는 안은 자신의 신념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신념을 무너뜨리는 국가의 충성스러운 종이었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신념은 이웃과 동족을 학대하고 살해하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강력한 도구였다. 그에게 자신의 권위와 사회의 권력에 도전하는 인간들은 모두 개(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런 그가 고문 치사사건으로 도피생활을 하게 되면서 마주하게 되는 불안과 두려움은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애국한 죄밖에 더 있어요? 빨갱이 잡는다고...”, “빨갱이 새끼 뺨 몇 대 때린 것 뿐...”인데 죄가 되겠느냐고 주장하는 그는 자신의 신념이 도덕, 정의에 위배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각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에게 무고하게 폭력을 행사하게 만드는 자신의 그 엉터리 신념을 지키겠다고 미장원 다락방에 은둔하는, 아버지의 세계에서 추방당한 모습은 혐오스럽고,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그것은 소설 속에서만 나오는 모습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자신의 엉터리 신념을 지키겠다고 무고한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해왔던 지난 시대를 통해 권력에서 나오는 엉터리 신념과 자기애에서 나오는 자발적 복종이 아닌 자각을 요구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던 안이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게 되고, 자신의 신념조차 가지지 못했던 어린 선의 모습이 무지에서 성숙으로 나아가는 한 단계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생강처럼 쌉쌀하게... 그러나 희망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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