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특별한정판, 양장)
한강 지음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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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정대는 동호와 함께 시위대의 행진 도중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져 죽게 되고, 정대의 누나 정미 역시 행방불명된다.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동호는 죄책감에 상무관에 남아 시신을 관리하다 죽음을 맞게 되고,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며 노조활동을 하다 상무관에 합류한 선주는 경찰에 연행된 후 끔찍한 고문으로 하혈이 멈추지 않았고 모두를 피해 숨어살게 되었다. 상무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대학생 김진수는 연행된 후 모나미 볼펜 고문, 성기 고문 등을 받으며 끔찍한 수감생활을 했고, 출소 후 트라우마로 자살하고 만다. 이들을 파괴한 잔인성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러진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 (…)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 『소년이 온다』 중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독일이나 일본 제국주의 군경이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보며 많은 이들은 의문을 가졌다. 나치는 순수 아리안 혈통 백인 주류와 다르다는 이유로 유대인, 성소수자, 정신질환 병력자 등 총 600만 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을 학살했다. 그리고 이를 실행했던 사람들은 사이코패스나 이상성격자가 아닌 그저 평범한 이웃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이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한나 아렌트는 전쟁 재판을 참관하며 연구한 끝에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고 말했다.


한강 작가는 엄혹한 분위기 속에서도 어린 그들까지 거리로 이끌었던 강렬한 힘은 '깨끗한 양심' 하나였다고, 그래서 『소년이 온다』를 통해 잔혹하고 처참했던 당시의 순간들보다 그 깨끗함에 집중해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따뜻했던 봄날의 오월을 지나 그 여름을 건너가지 못했던, 그 깨끗한 양심을 나는 '인간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죽을 수도 있지만 살 수도 있다는 생각, 어쩌면 도청을 지킬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평생 동안 부끄러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낙관에 몸을 실었'(p.113)는지 모르겠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내가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했다. 동호처럼 내 친구가 눈앞에서 총알에 맞아 쓰러졌다면, 내 가족이, 내 이웃이 누군가의 폭력에 죽어간다면 나는 도망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나 또한 마지막까지 상무관에 남아있었다 하더라도 계엄군을 향해 총을 쏘지 못했을 것이고, 숨죽이고 숨어있었다고 하더라도 끝내 외면했다는 치욕을 떨쳐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강 작가는 이 작품을 쓰면서 인간에 대해 '이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끝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나 또한 그랬다. 왜 그토록 무고한 자들을 위해 잔혹했고, 왜 죽을 것을 알았으면서도 나서야 했을까. 이 모두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소년이 온다』 중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우리가 지닌 인간성은 무엇이기에 누군가는 사람을 죽이고, 누군가는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양심을 지켰을까.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인간다운 것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내가 믿고 있는 '인간성'이라는 것이, 사실은 인간의 한쪽 면만을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선택이 아닐까? 권력에 복종한 것도, 양심에 따라 행동한 것도.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믿고 있는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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