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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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텐더 오가와는 뒤통수에 큰 통증을 느끼면서 의식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고장 난 엘리베이터 바닥에 누워있음을 깨닫습니다. 눈앞에는 일면식도 없는 세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에 따르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엘리베이터가 멈췄으며 외부와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만취한 알바생을 데려다주고 나오다가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만 오가와는 사고 직전 아내로부터 출산 진통이 시작됐다는 연락을 받은 터라 더욱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하지만 빈집털이라는 중년남자, 묘한 분위기를 발산하는 또래 남자, 그리고 자살하기 위해 이 아파트에 왔다는 젊은 여자 등 함께 갇힌 세 사람에게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정전이 찾아오고 그때부터 오가와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악몽의 엘리베이터’(2006)2009년에 한국에 소개된 작품으로 기노시타 한타의 데뷔작이자 악몽 시리즈의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악몽 시리즈는 일본에서 2016년까지 모두 10편이 출간됐지만 아쉽게도 한국에는 이 작품과 악몽의 관람차’(2008) 등 두 편밖에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워낙 오래 전에 읽어서 자세한 줄거리는 잊었어도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숨에, 그것도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는 건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10여년 만에 다시 읽으면서 예상대로 그때와 거의 비슷한 흥분과 스릴감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나도 반가웠지만, 동시에 기노시타 한타의 작품이 한국에 좀더 많이 소개되지 못한 점은 그 이상으로 아쉽게 다가왔습니다.

 

자신이 의식을 잃은 순간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오가와로서는 엘리베이터에 갇힌 상황 자체도 놀랍고 당혹스럽지만, 이 상황에 걸맞지 않는 태도와 행동을 보이는 세 사람의 남녀 때문에 큰 혼란에 빠집니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채 아침을 맞이해도 문제될 것 없다는 태연함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소개를 하자는 둥 끝말잇기 게임을 하자는 둥 도무지 지금 상황을 걱정하는 티라곤 조금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쟁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오가와는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합니다. 그런데 비밀 한가지씩을 털어놓자는 진실게임이 시작되면서 오가와는 또 다른 당혹감에 사로잡힙니다. 그때 갑작스런 정전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분위기가 급변하고, 오가와에겐 새로운 공포가 찾아들기 시작합니다.

 

정전 직전까지의 긴박하면서도 미묘한 상황을 다룬 첫 번째 챕터가 끝나자마자 이야기는 변주를 거듭하면서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럭비공마냥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가 하면, 이제 좀 쉬어가려나 싶으면 새로운 사건이 연이어 터지거나 예측 못한 반전이 일어나곤 합니다. 하지만 크든 작든 전부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라 인물에 대해서도, 사건에 대해서도 더는 언급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밀실살인사건이라는 미스터리 코드에 코믹 서스펜스 스릴러 서사까지 믹스된 독특한 작품으로 오락성에 관한 한 만점을 주고도 남을 만큼 매력이 철철 넘친다는 점만은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습니다. 기노시타 한타의 이런 매력은 오사카 관람차에서 벌어진 기괴한 인질극을 그린 악몽의 관람차3인조 은행강도의 위험천만한 행각을 그린 삼분의 일’(‘분수 시리즈중 한 편)에서도 만끽할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라면 꼭 찾아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반면, 가장 최근(2019)에 소개된 ‘GPS 시리즈’(‘키노시타 한타로 검색해야 됩니다)는 첫 편을 읽다가 중도 포기할 정도로 저와는 잘 맞지 않아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원서를 읽을 능력만 된다면 반드시 찾아 읽고 싶은 한국 미출간작들이 꽤 많은데 기노시타 한타의 작품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 ‘악몽 시리즈분수 시리즈가 한국에 다시 소개될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언젠가 기노시타 한타의 끝내주는 엔터테인먼트 미스터리 스릴러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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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모두 살인자다
벤저민 스티븐슨 지음, 이수이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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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휴양원에서 열리는 가족모임에 참석할 것을 통보받은 어니스트 커닝햄(이하 어니)의 심경은 복잡해집니다. 단순한 가족모임이 아니라 살인죄로 3년을 복역하고 출소하는 형 마이클을 맞이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3년 전 어니는 마이클을 경찰에 고발한 것은 물론 법정에서도 그의 죄를 증언했고, 그 일로 인해 가족들과 갈라선 채 살아왔습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휴양원에 도착한 뒤 가족들의 냉대 속에 하룻밤을 보낸 어니는 곧 재회할 형 때문에 더욱 곤혹스러워지는데, 그때 휴양원 인근에서 시신이 발견되면서 가족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더 큰 문제는 경찰이 휴양원에 막 도착한 마이클을 다짜고짜 용의자로 체포한 일입니다. 이후 거센 눈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휴양원에선 연이어 끔찍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살인자다라는 제목은 얼핏 블랙코미디 같은 인상을 풍기지만 실은 지독한 사실을 적시하는 제목입니다. 35년 전 어니와 마이클의 아버지가 경찰을 살해하고 사살 당한 일을 시작으로 현재 휴양원에서 벌어진 사건들까지 포함하면 이 제목은 조금의 과장도 없는 100% 팩트이기 때문입니다.

 

증오, 질투, 연민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커닝햄 일가의 비극적인 가족사에 기괴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 미스터리가 접목된 독특한 작품입니다. 어니를 비롯하여 새아버지와 어머니와 의붓동생, 고모 부부, 형수와 아내 등 마이클을 맞이하기 위해 휴양원에 모인 커닝햄 가족은 서로를 향해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분위기를 내뿜습니다. 그런 와중에 마이클이 출소하는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그 수법이 최근 화제가 된 블랙 텅 연쇄살인과 동일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커닝햄 가족은 자신들을 향한 정체불명의 악의에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연이어 참극이 벌어지는 가운데 커닝햄 가족은 35년 전 시작된 비극에서부터 3년 전 마이클이 일으킨 살인사건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과거를 되짚으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과의 연관성을 찾아내려 합니다.

 

제목만큼 눈길을 끄는 건 1인칭 화자인 어니가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입니다. 소설은 모든 사건이 종료된 뒤 범죄소설 애호가이자 작법서 작가인 어니가 휴양원에서 벌어진 일들과 커닝햄 가족의 비극을 회고하듯 기록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중간중간 독자에게 알림같은 문장들이 툭툭 튀어나와 픽션에 몰입해있던 독자를 놀라게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또 사람이 죽기까지 이제 87쪽 남았다.”라든가 “121쪽 뒤에야 내가 나체인 상태에서 그녀와 입을 맞붙인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처럼 마치 낭독회 도중 청자에게 말을 거는 듯한 상황들이 수시로 등장합니다. 또 첫 페이지부터 추리소설가이자 신부였던 로널드 녹스가 1929년에 발표한 탐정소설 십계명을 거론하며 자신이 이 십계명에 충실하게 기록을 남기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충실히 실천하고 있음을 독자들에게 종종 알려주기도 합니다. 비극의 무게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서술방식이지만 무척 흥미롭게 읽힌 게 사실입니다.

 

여러 인물이 얽힌 가족사에다 35년 전 어니와 마이클의 아버지가 일으킨 사건, 3년 전 마이클의 살인, 그리고 현재 휴양원의 사건까지 섞여 있어서 구도 자체가 꽤 복잡한 작품입니다. 메모가 필요할 정도는 아니지만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큰 그림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점이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기도 한데, 너무 많은 인물과 너무 많은 사건이 동원된 탓인지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가 꼬인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 꼬인 지점을 풀기 위해 자꾸만 덧칠을 하거나 무리수를 두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화자인 어니가 한순간에 모든 걸 깨닫는 비약을 통해 갑작스런 결론을 내리는 장면 역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는데, 어디에서 그 모든 깨달음을 얻은 건지 통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독특한 소재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에다 낯설지만 재미있는 서술방식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중반까지의 빠르고 팽팽했던 미스터리가 너무나도 복잡한 설계도 때문에 후반까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래선지 (출간된 지 얼마 안 돼서 인터넷에 올라온 서평이 별로 없지만) 다른 독자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읽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크게 호불호가 갈릴 작품은 아니지만 제가 못 알아본 미덕이 있을지도 모르니 다른 분들의 서평을 꼭 찾아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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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청소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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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집이나 시신이 발견된 집 등 사건 사고가 발생한 집을 청소하는 일을 가리키는 특수청소는 소설이나 영상물의 소재로 여러 차례 활용될 정도로 독특하고 사연 많은 직업입니다. 특히 살인사건이나 고독사 등 죽음이 남긴 흔적들을 청소해야 할 경우 단순히 쓰레기를 버리고 먼지를 털어내고 바닥을 닦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이 남긴 체액과 시취는 물론이거니와 죽은 자의 마지막 감정들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표 이오키베 와타루와 두 직원 시라이 히로시, 아키히로 가스미 등 세 명뿐이지만 특수청소업체 엔드 클리너는 나름 빠른 성장세를 달리는 중입니다. 그만큼 특수청소가 필요한 케이스들이 급증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전직 경시청 수사1과 형사인 대표 이오키베는 의뢰인은 물론 망자에게도 예의를 갖추는 배려심 깊은 태도로 일하면서도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현장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예리하게 포착해곤 합니다. 구직난에 시달리다가 어쩔 수 없이 엔드 클리너에 들어왔지만 1년 넘게 일하며 믿음직한 청소부가 된 히로시와 역시 비슷한 사정으로 입사한 신참 직원 가스미는 높은 기본급과 보너스 때문에 고된 일을 겨우 참아내긴 하지만 현장에 출동했을 때는 사명감 이상의 자세로 특수청소를 수행하는 인물들입니다.

 

모두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각각 가스미, 이오키베, 히로시가 돌아가며 한 챕터씩 주인공을 맡고 있습니다. 네 편 모두 고독사 혹은 사망 후 오랜 시간이 지나 발견된 시신을 다루고 있는데,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답게 네 편 모두 크고 작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어서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엔드 클리너의 멤버들은 고인이 남긴 유품이나 흔적을 통해 죽음 이면의 일들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거나 위화감을 느끼곤 합니다. 바닥에 적힌 저주 섞인 문구,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유품, 기구한 사연이 담긴 데모 음원, 비밀금고에 보관된 두 통의 유언장 등이 그것인데, 그것들을 접한 멤버들은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진지한 태도로 미스터리를 풀고자 노력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고인을 애도하고 그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길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무당이 악령을 퇴치하고 승려가 망자의 넋을 달랜다면, 멤버들은 악취와 함께 고인의 갖가지 감정이 서린 집을 정화한다고 할까요?

 

수록작에 따라 사건성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고 미스터리가 더 강조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사연 많은 죽음을 수습하는 특수청소의 특별함과 멤버들의 사명감입니다. 더불어 마지막 장면에서 반전과 함께 맛볼 수 있는 애틋한 여운 역시 이 작품의 장점이자 미덕입니다.

나카야마 시치리가 엔드 클리너의 다음 이야기를 계속 집필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두어 편 정도 시리즈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직 경시청 수사1과 형사인 대표 이오키베의 과거도 궁금하고, 신참인 가스미가 성장하는 모습도 더 지켜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물론 특수청소 이면의 특별하고 애틋한 사연들을 좀더 읽고 싶은 게 가장 큰 이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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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의 살인
모모노 자파 지음, 김영주 옮김 / 모모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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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우주항공사가 기획한 1인당 3,000만 엔의 초저가 우주여행에 여섯 명의 고객이 참가합니다. 나이도, 직업도, 성별도 제각각인 그들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행운을 차지했는데 그중엔 무료초대권에 당첨된 여고생도 포함돼있습니다. 베테랑 기장인 이토의 지휘 하에 부기장 겸 가이드를 맡은 하세 호마레는 우주로의 첫 비행에 마음이 들뜹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무사히 도착한 우주호텔 스타더스트에서 그는 최악의 악몽과 마주합니다. 무중력상태인 창고에서 목을 맨 채 숨진 사체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자살, 살인, 사고 등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가운데 여행을 계속 할 것인지 지구로 돌아갈 것인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스타더스트에선 우연이나 사고로 볼 수 없는 일들이 잇따라 벌어집니다.

 

우주라는 공간이나 SF물과 친하진 않지만 밀실상태의 우주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 미스터리라는 출판사 소개글에는 눈길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폭설에 갇힌 산장이나 태풍으로 고립된 섬과 달리 우주는 그 자체가 특별한 밀실이라 더 흥미로웠고, 특히 무중력 상태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목을 맨 사체라는 설정도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창고에서 발견된 기이한 사체 외에도 모든 사람들을 공포에 휩싸이게 만드는 불길한 일들이 잇따라 벌어집니다. 스포일러 때문에 그 일들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우주라는 공간에서 겪을 법한 온갖 극한상황을 떠올려보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쉽게 연상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일들이 자연재해나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가 악의를 품고 고의적으로 벌인 일이란 점입니다. 또한 창고에서 발견된 사체 외에도 명백히 인명을 노리는 범인의 행각은 스타더스트에 머무는 사람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이나 독자 서평에는 스타더스트에서 벌어진 일들이 꽤 상세하게 공개돼있는데 가급적이면 소개글 첫 머리 정도만 참고할 것을 권합니다.)

 

미스터리를 푸는 역할은 부기장인 하세가 맡고, 당찬 돌직구 여고생 사나다가 하세의 조수 혹은 조력자로 활약합니다. 하세는 초반부터 난감한 벽에 부딪힙니다. 누군가를 죽이는 게 범인의 목적이라면 지구가 훨씬 편했을 텐데 왜 하필 우주에서 이런 일들을 벌이는 것인지, 또 이 우주여행이 1만 명의 지원자 가운데 단 5명만 추첨을 통해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범인이 사전에 희생자를 정하고 범행을 계획하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 등 범인의 의도와 계획 자체가 조금도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중반부 정도까지는 누가?’보다 ?’가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미스터리 못잖게 작가가 힘을 준 부분은 스타더스트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과 사연들입니다. 지구평면론을 주장하는 괴짜부터 우주장()을 치른 가족들의 기일에 우주에 오고 싶었다는 사연남, 소식이 끊긴 친구에게 우주에서의 라이브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소녀, 갑자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다가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는 사람 등 적잖은 돈을 내고라도 우주에 꼭 오고 싶었던 다양한 사연들이 그려집니다. 때론 그런 이야기를 할 분위기가 아닌 상황에서도 개개인의 사연이 소개되곤 해서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이 대목은 작가의 절대 포기 못할 고집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우주에 관한 방대한 지식과 자료조사 덕분에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영상물을 보듯 마지막 장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독자에 따라 반응이 제각각일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에 밝혀진 범인의 정체와 의도 역시 우주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에 잘 어울리게 설정됐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작가가 나름 쉽고 친절하게 묘사하려고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문과생이라서 이과 미스터리에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보니 일부 과학적 장치에 관한 묘사에서는 역시나 장벽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한 작가의 데뷔작 노호잔몽’(중국 송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무술 고수가 밀실살인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이야기)이 무척 궁금해졌는데 별에서의 살인이 호응을 얻는다면 이 작품 역시 머잖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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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번째 밀실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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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의 신진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밀실 미스터리의 거장 마카베 세이치가 매년 자신의 별장에서 개최하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동갑 친구인 범죄사회학 교수 히무라 히데오를 데려갑니다. 추리소설가, 편집자, 가족 등 여러 사람이 모인 가운데 열린 파티는 사소한 충돌과 뜻밖의 발표 등 몇몇 해프닝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별일 없이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아침, 마카베 세이치는 자신이 평생을 바쳤던 밀실 트릭의 희생자가 돼버립니다. 누구도 드나들 수 없는 완벽한 밀실에서 벽난로에 상반신을 집어넣은 채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현경까지 출동한 상황에서 히무라와 아리스는 밀실 트릭을 깨고 진범을 특정하려 하지만 예상외의 난관들이 등장하면서 오리무중에 빠지고 맙니다.

 

2020년에 읽은 자물쇠 잠긴 남자이후 4년 만에 다시 만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가 아리스 시리즈입니다. ‘자물쇠 잠긴 남자는 일본에서 2015년에 발표된 이 시리즈의 27(자선단편집을 제외하면 24)인데, ‘46번째 밀실은 그로부터 무려 23년 전인 1992년에 발표된 시리즈 첫 편입니다.

오랫동안 책장에 방치한 책들을 구하는 게 올해 독서목표 중 하나인데, ‘46번째 밀실4년 만에 읽게 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인데다 작가 아리스 시리즈의 첫 편이라 나름 의미 있는 구하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다소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범죄사회학 교수 히무라 히데오가 셜록 홈즈를 닮았다면, 아직 신진 작가의 티를 못 벗은 털털한 성격의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왓슨의 캐릭터와 닮은 인물입니다. 히무라의 경우 이미 경찰의 사건 수사에 여러 번 협력했을 정도로 현장에 익숙하지만 아리스는 이번 사건을 통해 처음으로 실제살인사건과 마주칩니다. 히무라가 뭔가 알고 있으면서도 독자에게 절대 공개하지 않는 불친절한 명탐정 스타일이라면, 아리스는 자신이 알아내고 추리한 것을 일일이 독자와 히무라에게 설파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재미있는 건 아리스의 이런 역할이 실은 독자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란 점입니다. 즉 아리스의 말만 듣고 따라가다가는 작가의 의도대로 엉뚱한 곳에 헤매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무래도 시리즈 첫 편이다 보니 두 주인공에 대한 소개가 여러 번 언급되는데, 꽤 흥미로운 조합이라 그런 대목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밀실 미스터리의 대가가 더 이상 밀실 미스터리를 쓰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직후 완벽한 밀실에서 살해당한 사건, 굳이 밀실이 필요하지 않았는데도 범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시간과 공을 들여 애써 밀실을 만든 이유, 일반인에게는 쉽지 않은 밀실 트릭을 구사할 수 있기에 용의선상에 오른 여러 명의 추리소설가와 편집자 등 초반부터 독자의 눈길을 끄는 설정이 한꺼번에 쏟아집니다. 거기에다 별장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미묘하게 갈등을 벌이거나 노골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는 등 예상치 못한 관계를 보여주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 그런 관계들이 살인사건과 어떻게 이어질지 무척 궁금하게 만듭니다.

 

다만 이야기의 규모나 미스터리의 심도로 볼 때 중편 정도에 어울린다는 인상이 강해서인지 마지막에 히무라와 아리스가 진실을 밝히는 대목에서 큰 반전이나 충격을 맛보기 어려운 점이 아쉬웠습니다. 페이지는 금세 휙휙 넘어가지만 거듭 뒤바뀌는 용의자라든가 별장의 사람들을 더욱 큰 공포로 몰아넣는 사건이라든가 소소하더라도 연이어 일어나는 반전 등 독자를 유인하는 장치들이 부족해보인 게 사실입니다. 범행수법은 밀실 트릭의 맛을 만끽할 수 있게 해줬지만 히무라와 아리스가 범인을 특정하게 된 결정적인 단서는 너무 단순해보였고 범인의 동기 역시 기대했던 것보다는 약했습니다. 좀더 세고 독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탓에 아쉬움이 더 컸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4년 전 자물쇠 잠긴 남자에게 야박한 평점을 주며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저와는 잘 안 맞는 작가라고 단언했던 걸 보면 이 아쉬움은 이미 예정됐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직 제 책장에 방치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으로 작가 아리스 시리즈’ 8편인 주홍색 연구학생 아리스 시리즈’ 3편인 쌍두의 악마가 있습니다. 저와 잘 안 맞긴 해도 언젠가는 두 편 모두 꼭 읽을 생각입니다. 바람이라면 한 편이라도 제 취향을 만족시켜 줄 수 있었으면 하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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