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의 살인
모모노 자파 지음, 김영주 옮김 / 모모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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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우주항공사가 기획한 1인당 3,000만 엔의 초저가 우주여행에 여섯 명의 고객이 참가합니다. 나이도, 직업도, 성별도 제각각인 그들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행운을 차지했는데 그중엔 무료초대권에 당첨된 여고생도 포함돼있습니다. 베테랑 기장인 이토의 지휘 하에 부기장 겸 가이드를 맡은 하세 호마레는 우주로의 첫 비행에 마음이 들뜹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무사히 도착한 우주호텔 스타더스트에서 그는 최악의 악몽과 마주합니다. 무중력상태인 창고에서 목을 맨 채 숨진 사체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자살, 살인, 사고 등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가운데 여행을 계속 할 것인지 지구로 돌아갈 것인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스타더스트에선 우연이나 사고로 볼 수 없는 일들이 잇따라 벌어집니다.

 

우주라는 공간이나 SF물과 친하진 않지만 밀실상태의 우주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 미스터리라는 출판사 소개글에는 눈길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폭설에 갇힌 산장이나 태풍으로 고립된 섬과 달리 우주는 그 자체가 특별한 밀실이라 더 흥미로웠고, 특히 무중력 상태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목을 맨 사체라는 설정도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창고에서 발견된 기이한 사체 외에도 모든 사람들을 공포에 휩싸이게 만드는 불길한 일들이 잇따라 벌어집니다. 스포일러 때문에 그 일들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우주라는 공간에서 겪을 법한 온갖 극한상황을 떠올려보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쉽게 연상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일들이 자연재해나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가 악의를 품고 고의적으로 벌인 일이란 점입니다. 또한 창고에서 발견된 사체 외에도 명백히 인명을 노리는 범인의 행각은 스타더스트에 머무는 사람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이나 독자 서평에는 스타더스트에서 벌어진 일들이 꽤 상세하게 공개돼있는데 가급적이면 소개글 첫 머리 정도만 참고할 것을 권합니다.)

 

미스터리를 푸는 역할은 부기장인 하세가 맡고, 당찬 돌직구 여고생 사나다가 하세의 조수 혹은 조력자로 활약합니다. 하세는 초반부터 난감한 벽에 부딪힙니다. 누군가를 죽이는 게 범인의 목적이라면 지구가 훨씬 편했을 텐데 왜 하필 우주에서 이런 일들을 벌이는 것인지, 또 이 우주여행이 1만 명의 지원자 가운데 단 5명만 추첨을 통해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범인이 사전에 희생자를 정하고 범행을 계획하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 등 범인의 의도와 계획 자체가 조금도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중반부 정도까지는 누가?’보다 ?’가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미스터리 못잖게 작가가 힘을 준 부분은 스타더스트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과 사연들입니다. 지구평면론을 주장하는 괴짜부터 우주장()을 치른 가족들의 기일에 우주에 오고 싶었다는 사연남, 소식이 끊긴 친구에게 우주에서의 라이브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소녀, 갑자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다가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는 사람 등 적잖은 돈을 내고라도 우주에 꼭 오고 싶었던 다양한 사연들이 그려집니다. 때론 그런 이야기를 할 분위기가 아닌 상황에서도 개개인의 사연이 소개되곤 해서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이 대목은 작가의 절대 포기 못할 고집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우주에 관한 방대한 지식과 자료조사 덕분에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영상물을 보듯 마지막 장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독자에 따라 반응이 제각각일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에 밝혀진 범인의 정체와 의도 역시 우주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에 잘 어울리게 설정됐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작가가 나름 쉽고 친절하게 묘사하려고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문과생이라서 이과 미스터리에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보니 일부 과학적 장치에 관한 묘사에서는 역시나 장벽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한 작가의 데뷔작 노호잔몽’(중국 송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무술 고수가 밀실살인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이야기)이 무척 궁금해졌는데 별에서의 살인이 호응을 얻는다면 이 작품 역시 머잖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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