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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돗개 보리 ㅣ 알이알이 창작그림책 15
김훈 글, 서영아 그림 / 현북스 / 2015년 10월
평점 :
얼마 전 현북스 출판사에서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을 그림책으로 만났었죠.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조금 미안한 이야기였던 거 같아요.
이번엔 김훈 동화 <진돗개 보리>를 그림책으로 만났어요.
그림은 한편의 수채화를 보는 것처럼 잔잔하네요.
내 이름은 보리,
진돗개 수놈이야.
태어나 보니 나는 개였어.
이 세상의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이 모두 놀이터였고 또 학교였어.
이제 나는 개로 태어난 기쁨과 자랑과 슬픔을 말하려고 해.
태어나 보니 개였다라는 말조차 가볍게 다가오지 않네요.
이 세상의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이 모두 놀이터였고, 학교였던 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던 때가 있었죠..
지금은 자연이 놀이터고 학교였던 때는 그저 추억이 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보리가 전해주는 기쁨과 자랑 그리고 슬픔은 무엇일까요?
자연이 선생님이고, 스스로 배워야 하는 공부를 잘 해내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신바람이라고 해요.
진돗개 이야기인데,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비단 저 뿐이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들도 신바람이 나야 공부를 잘 해 낼 수 있는 거죠.
할머니의 부름으로 처음 사람 냄새를 맡았는데, 놀랍고도 기쁜 냄새였다고 해요.
부드러운 아기의 입술이 혓바닥에 닿는 느낌이 너무 행복해서, 자꾸만 아기를 핥고 아기 냄새를 맡은 이후로도 신발에서 나는 사람 냄새, 빨래에서 나는 햇볕 냄새, 보리 냄새 등으로 인해 설레고 들떴던 진돗개 보리..
아마 진돗개 보리의 기쁨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보리가 조금 더 컸을 때, 고향 마을에 댐을 만들어서 물에 잠겼어요.
전에 댐으로 인해 고향을 잃은 이들의 모습을 얼핏 텔레비전을 통해 본 기억이 떠올랐어요.
엄마와 형제들은ㄴ 팔려 갔고, 중개가 된 보리는 처음으로 사람의 냄새를 맡았던 아기의 집으로 보내졌다고 해요.
고향을 떠나야 하고, 엄마와 다른 형제들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아파오더라고요.
온 동네를 누비며 구석구석의 생김새와 냄새를 맡으며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가는 보리.
그림만으로도 보리가 동네를 얼마나 구석구석 누비고 다니는지 알 수 있네요.
새 주인님과 사는 행복이나
옛 주인님과 헤어진 슬픔이나
모두가 개의 일생이지.
그걸 알면서 나는 어른 개가 되었어.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옛 사람과 헤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추억도 만들고, 행복도 만들고...
누군가는 새롭게 태어나고, 누군가는 사라지고..
그런 일생을 알아가면서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진돗개 보리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