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에 흠뻑 빠져있다.
남들은 원작이 더 훌륭하네, 이런 소리를 하지만,
난 드라마가 훨씬, 훨씬 더 재밌다.
원작에선 극적인 드라마가 드물었던 반면
드라마에서는 각 캐릭터간의 갈등과 극적인 사건이 연속으로 벌어진 탓이다.
특히 회사돈을 횡령하는 걸로 나온 박과장 역의 김희원은
2차원적인 웹툰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악마의 카리스마를 뿜어냈고,
웹툰에선 인간인가 싶게 그려놓은 주인공 오과장은
이성민이라는 연기파 배우 덕분에 살아 숨쉬는 캐릭터로 부활했다.
웹툰에서는 그런 생각을 안했는데,
드라마로 보니 내게 저런 상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아무튼 박과장이 맹활약한 9-10화를 보고 난 뒤
5만9천원에 구입한 미생의 해당 부분을 잽싸게 읽어봤다 (웹툰도 봤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 결과 웹툰의 대사 하나하나가 모조리 드라마에 반영됐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다른 구석도 있겠지만 스토리의 큰 줄기는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어,
"원작과 달라요"라고 불멘소리를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게 이해가 안될 지경.
속단일지도 모르지만 원작이 재밌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엔
'난 원작을 다 봤어'라는 자부심과
그걸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들어있는 게 아닐까 싶다.
오늘 아침, 아침드라마 청담동 스캔들을 봤다.
어김없이 출생의 비밀이 나오고, 착해빠진 주인공은 악녀와 남자 하나를 두고 다투고 있다.
이전에 본 왔다 장보리도 그랬고, 모두다 김치도, 그 전에 본 <나만의 당신>에도 모조리
출생의 비밀과 러브라인이 등장한다.
미생을 보다가 그런 흔해빠진 드라마를 보니 미생이 새삼 소중해진다.
만일 미생이 공중파에서 제작됐다면
장그래와 안영이는 러브라인을 형성하고,
전무 아들인 장백기가 안영이를 호시탐탐 노리는데
알고보니 장그래가 사장 아들이었다, 뭐 이런 식의 스토리가 전개됐으리라.
사람들이 이런 러브라인에 얼마나 데었는지
유치원 선생이 장그래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그것도 아주 잠깐-회차에서는
"왜 갑자기 러브라인이냐" 이딴 식의 불만을 표출해 냈다.
거듭 말하지만 미생의 성공요인은
케이블에서 만들어서 시청률에 대한 압박을 덜 받는다는 데 있는 듯하다.
이름값보다는 연기력을 앞세운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 있었고
-김대리 역의 배우는 도대체 어디 숨어 있다가 나온 거야?-
충분한 시간을 두고 드라마를 찍는 게 가능했던 것도 케이블 덕분이 아니겠는가?
5%를 넘나드는 시청률에 기뻐하다가도
몇 번 보다가 때려치운 <가족끼리 왜그래>가 20%를 넘는 시청률로 1위를 하고 있는 걸 보면,
미생이 그 가치에 비해 대접을 너무 박하게 받는구나는 싶어 안타깝다.
미생이 다 끝나고 난 5주 후에는 도대체 뭘 기다리며 한주 한주를 살아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