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랑질 페이퍼이니, 너그러운 양해 바랍니다.
2005년쯤, 제가 여기다 맨날 "잘리면 어쩌냐"고 하소연했던 거,
초창기 알라딘 주민들은 아실 겁니다.
늘 논문점수를 걱정하면서 정작 논문은 한편도 안쓰던 그 시절엔
잘리면 뭘 하고 살까 싶어서 구인광고를 유심히 들여다본 적도 많았습니다.
바른 말 잘하는 제 친구는 "내가 교수 될 수 있을까?"란 말에
"내가 보기엔 어려울 것 같아"라며 단호하게 말했죠.
그런 제가 드디어 정교수 발령을 받았습니다!
짜잔...
2032년 2월까지 정년을 보장한대요.
어젯밤 이 메일을 보고 너무 좋아서,
방에서 막 소리질렀어요.
남들은 다 되는 건데 유난히 좋아한 이유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밑바닥에서 헤매다 겨우 뭍으로 올라온 탓입니다.
계속 그렇게 갔다면 얼마 못가서 잘렸을텐데,
북쪽에서 귀인을 만나는 등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지요.
그러니 제가 오늘의 자리에 올라선 건, 80% 정도가 운입니다.
시대가 가져다 준 행운도 있었어요.
제가 헤매던 그 시절엔 논문점수의 기준이 그렇게 높지 않았고,
미달된 자에게도 1년간 유예기간을 줬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전보다 채워야 할 점수가 몇 배 늘었고
유예기간이 없어져 점수가 안되면 바로 잘려요.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학교를 나간 분도 계십니다.
제 옆방에 있던 분이 그렇게 나가게 됐을 때,
어찌나 모골이 송연하던지요.
제가 지금 신임교수로 발령을 받았다면 아마 오래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아내가 묻습니다.
이제 일 안해도 안잘리는데 놀 거냐고요.
놀기는요.
연구하고 논문쓰는 재미를 이제 막 깨달아 가고 있는데,
놀면 되겠어요.
야구선수가 야구를 잘해야 인정을 받듯이,
학자는 역시 논문으로 말하는 거라는 걸 최근 몇년간 알게 됐답니다.
그래도.... 그전보단 책을 좀 더 많이 읽고,
알라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따지고보면 오늘의 영광은 제 하소연을 들어주고 격려해준 여러분들 덕분이니깐요.
사족: 저랑 같은 해에 태어난 분 중 김두식 교수님이라고 계십니다.
위와 같은 훌륭한 책을 쓰신 분인데요
이분이 제 페이퍼를 보고 "나도 업적 없어서 잘릴 걱정을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 이분한테 동병상련 같은 걸 느꼈고
이분 책도 죄다 사다보는 등 팬심을 키우기 시작했지요.
그런데...법학전문대학원이 등장하면서 김두식 교수님은 경북대로 옮기셨고
그러면서 바로 정년보장을 받는 정교수가 되셨어요.
동병상련의 마음은 배신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혼자만 그럴 수가 있냐, 치사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지요.
아마 그날 김두식 교수님 귀가 좀 가려우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저도 정교수가 됐으니, 모든 걸 다 잊어야겠지요^^
만나본 적은 없지만, 친하게 지냈음 좋겠네요. 정교수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