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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바 서리 소동
이미정 지음, 양세근 그림 / 소담주니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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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나고 자랐기에 서리를 해 본 적이 없다. 반면,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남편은 서리에 대한 경험이 있었다. 지금이야 힘들게 가꾼 농작물에 대한 절도죄가 성립하지만, 그 당시는 서리를 해도 동네 사람들인지라 서로 얼굴 붉히기 보다 어렸을 때 으레 하는 짓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검게 그을린 피부를 자랑하며 교실에 등장한 민재는 의기양양하게 자신이 시골에서 겪은 수박 서리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머리보다 큰 수박을 들고뛰었는데 잡히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친구들은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나도 그런 용기가 있다는 승부욕이 일어난다. 4인방인 태민(나)과 윤호, 준서, 마루는 민재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의 용기를 시험하고 싶어진다. 도시인지라 주변에 서리할 곳이 마땅치 않던 차에 무지개 슈퍼에서 수박바를 서리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4인방. 제비뽑기로 첫 타자를 선택한다. 내심 자신이 걸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던 중 제일 약하다 생각했던 친구 준서가 1번 타자로 뽑히게 된다. 당연히 실패할 거란 예상(그럼 모두 안 해도 되니까)과 달리 준서는 한 번에 성공하게 된다. 결국 4명 모두 성공을 하지만, 그날 이후부터 친구들은 무지개 슈퍼에 가기를 꺼려 하게 된다. 결국 네 친구 모두 무지개 슈퍼 주인 할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어서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아이들은 저마다의 지혜를 짜내기 시작한다. 본인들이 서리한 아이스크림을 사다 넣는 방법, 몰래 현금을 두고 나오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들이 나왔지만 어느 하나 실행이 쉽지 않았다. 혹시나 주인 할아버지가 혼을 내거나 부모님께 이야기를 하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슈퍼 주위를 살피게 되는 4인방. 어느 날, 가게에 이상한 기운이 포착되었다. 손님들이 슈퍼에 들어갔다가 그냥 나오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슈퍼를 지켜보고 있었던 아이들이기에 할아버지가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용기를 내서 슈퍼에 들어가는 아이들은 창고 한 편에 쓰러져있는 주인 할아버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야기의 결론은 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그대로였다. 물론 그 안에 숨은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잘못을 하고도 죄책감조차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책 속의 아이들은 잘못을 한 그날 이후부터 불안해하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잘못을 하고 그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 역시 용기가 필요하다. 아니 잘못을 했을 때 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아이와 함께 읽으며 진정한 용기에 대해, 함께 사는 사회에서의 배려 그리고 잘못된 생각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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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사과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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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큼 내용도 신선했다. 첫 장면은 토마토에 대한 역사 속 토마토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등장한다. 최음제로 사용된 맨드레이크와 닮았다는 이유로 토마토를 먹으면 늑대로 변한다는 말도 안 되는 악명을 씌웠다고 한다. 현재는 건강식품으로 알려진 토마토의 웃픈 과거라 할 수 있겠다.

탈북인이자 소설가인 주인공 표기(키즈). 남한으로 넘어와서 소설을 쓰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저조하다 못해 출판사에 작품을 기고하지만 퇴짜를 맞기 일쑤다. 그런 그가 이번에 쓰고 있는 작품은 흡혈귀 샐러리맨의 이야기다. 우연히 SNS를 통해 알게 된 알즈라는 여인과 원나잇을 즐기게 된 키즈. 문제는 그날의 기억이 흐릿하다는 것이다. 물고 뜯은 기억은 있지만, 함께 밤을 보낸 기억은 없으니 말이다.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1년 만에 재회한 알즈는 그에 대한 상당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키즈가 쓰고 있는 소설에 관한 이야기까지 말이다. 도대체 어디서 정보가 샌 것일까 싶을 정도다. 그런 키즈에게 알즈는 한 가지 제안을 한다. 피 맛보기 밴드에 관심이 있냐는 말이었다. 키즈는 사실 소설을 쓰면서 자꾸 막혔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이 경험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리얼한 표현을 할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 속에 있었다. 그의 고민을 어떻게 알았는지, 알즈는 표기를 늑대의 사과라는 카페에 초대한다. 표기는 키즈라는 닉네임을 갖게 된다. 섹티가 아닌 피티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 속에서 청일점이 된 키즈는 그렇게 흡혈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늑대의 사과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우선 키즈는 피 맛을 알고 싶었다. 샐러리맨이 본 피 맛 말이다. 첫 타자는 바로 알즈였다. 그들은 서로의 몸 여기저기를 깨물며 피 맛을 본다. 알즈의 피 맛은 상큼했다. 그렇게 카페의 회원들과 피티를 즐기기 위해 약속을 잡는 키즈. 그러던 중 탈북인 친구 남조의 동생 남애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는 표기. 남조가 여중생을 성폭행하고 사라져서 경찰이 찾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남조의 이야기를 접한 후, 키즈는 샐러리맨이 여중생의 가슴을 물었다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지만 이번에도 막히고 만다. 카페 회원 중 중학생이 있다는 소식에 그녀를 만나는 키즈. 그리고 소설이 다음 내용을 쓰기 시작한다. 그뿐만 아니라 샐러리맨의 연애와 사랑, 주식 투자 실패 등의 감정을 느끼고 싶었던 키즈는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 또한 같은 경험을 하기 시작하는데...

물론 리얼한 체험을 글로 옮겨서 더 실제적인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키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글쎄... 꼭 경험을 해봐야만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그렇다면 살인에 관한 작품을 준비하는 작가는 실제 살인을 경험해야 한다는 걸까? 하는 생각에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렸다. 작품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체제와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가 키즈와 남조를 그런 식으로 몰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또한 해보았다. 적나라한 용어들이 실제로 등장하고, 카페 회원들 간의 카톡과 같은 대화 내용 중 다양한 이모티콘들이 등장하는 것조차 구체적으로 적혀있어서 그런지 더 실제적이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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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여름이 닿을 때
봄비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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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콩닥콩닥 풋풋한 설렘과 조마조마하는 마음 그리고 눈물이 핑 도는 사랑을 모두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이 얼마 만에 느끼는 연애의 설렘인가? 나는 이런 사랑을 못해본지라, 읽으면서 부럽기도 하고 또 책을 통해 이렇게나마 간접 경험을 했으니 그게 어딘가... 싶기도 하다.

대학 시간강사 백여름은 겨울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다. 오늘은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 태형과 웨딩드레스를 보러 가기로 한 날이다. 열렬히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조건이 맞는 그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여름. 다음 학기부터 여름과 전공이 겹치는 교수가 임용되었기에 더 이상의 강의 자리를 없다. 늦을까 봐 종종걸음을 치는 중, 태형으로부터 일이 늦어져서 함께 드레스를 보러 못 가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리액션이 서툰 그와 같이 보는 것보다 차라리 혼자 보는 게 낫겠다는 마음을 먹고 내려가던 중, 환한 불빛과 함께 머리의 뜨거움을 느낀다. 그리고 깨어난 곳은 카페다. 그날 그녀는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BCD 카페로 이동한다. 탄생(Birth)과 죽음(Dead) 사이의 그 무엇은 과연 선택(Choice)일까, 기회(Chance)일까? 저승으로 이동하기 전 1년간의 삶의 시간이 허락된다고 한다. 자신의 삶에서 다시 살아보고 싶던 그 1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여름은 23살 그 여름을 선택한다. 여름의 첫사랑이었던 유현을 만났던 그때로 말이다.

과거 유현과의 기억은 이렇다. 여름이 선택한 그날은 MT를 위해 혜지와 함께 답사를 가기로 한 날이었다. 생리통으로 몸이 불편했던 혜지 때문에 혼자 길을 나선 여름은 바로 앞에서 버스를 놓친다. 잠시 후 한 남자가 여름에게 말을 걸어온다. 알고 보니 1년 선배인 약학과 학생이었다. 그날 하루를 함께 보낸 후, 그들은 서로 아는 사이가 된다.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유현이 싫지 않았지만, 여름은 1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 선우가 있었다. 학과 선배인 그는 예의 바르고 그녀를 많이 아껴주는 사람이었지만, 그에게 사랑의 감정이 있진 않았다. 하지만 유현은 달랐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여름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취업 준비로 힘든 선우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유현과 선우 사이에서 갈팡질팡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유현을 밀어내는 여름. 하지만 잊을 수 없었다. 취업 합격 발표를 들은 날, 여름은 선우에게 이별을 선언한다. 그리고 유현을 만나러 가지만, 유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가 들은 얘기는 같은 학과 친구와 함께 유학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렇게 유현과의 인연은 끊어진다.

어차피 죽은 것. 여름은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하기로 한다. 유현과의 관계를 다시 바로잡기 위해서다. 그리고 답사 날로 돌아간다. 유현을 다시 만나게 되고, 유현과 시간을 보낸다. 이미 마음을 정한 여름은 선우에게 헤어지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유현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로 한다. 근데, 왜일까? 유현이 자꾸 여름을 피한다. 유현과 함께 듣기로 한 심리학 수업에서 한 학생이 유현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여름이 보기에도 너무 매력적인 그녀. 심리학과 학생인 가을이었다. 여름을 불안해진다. 가을에게 유현을 빼앗길까 봐... 함께 MT를 가기로 한 날 아침, 교수들의 불참으로 여름의 철학과와 유현의 약학과가 조인을 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날, 유현의 마음을 듣게 되는데...

콩닥콩닥 연애의 기쁨을 알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여름에게는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는데, 유현은 그것을 모르는 거 같아서 내가 더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드러나는 그녀와 그의 이야기. 책의 대부분은 여름의 관점에서 쓰인 이야기다.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되는 유현의 이야기가 너무 가슴 아팠다. 예상치 못한 반전 앞에서, 두 마음이 공존했다. 첫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름과 유현의 사랑이 더 가슴에 와닿았던 걸까? 아름다운 첫사랑의 기억을 색다른 소재를 통해 만날 수 있어서 흥미롭고 설레는 시간이었다.

내 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에 수동적으로 움직이던 여름에게 선물처럼 주어지는 1년. 그렇기에 더 소중했던 그 시간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채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언젠가를 위해 아껴두기 보다 오늘을 위해 과감히 행동해 보자. 오늘은 오늘 일뿐이고, 다시 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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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실시 일상신비 사건집 허실시 사건집
범유진 외 지음 / 고블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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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입에 붙지 않고 특이했다. 사람 이름인가? 싶었는데 지역 이름이었다. 이 책은 5편의 허실시라는 지역 안에서 이루어진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난 특이한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소설이다. 같은 지역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5명의 작가가 자신만의 색으로 만들어내서 더 특별했던 시간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표지를 보면 작품 속 배경이 고스란히 표지 속에 드러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안다정이 일하고 있는 빵집 허실당, 허실당 위에 있는 두리 음악학원, 기차길 역시 사건의 배경이 된 곳이다.

첫 번째 등장한 이야기부터 상당히 흥미로웠다. 단 맛을 즐기는 안다정. 단 맛에만 반응하는 그녀는 세상에서 단 맛을 가장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은 초콜릿과 빵이다. 우연한 계기로 제빵의 길로 들어선 그녀는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일을 하다가 퇴사한다. 기계에 손을 다친 후, 어떤 빵을 먹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 동창이었던 김성진이 기억난 다정은 허실시로 내려온다. 그리고 성진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허실당에 들러 초콜릿 케이크를 먹게 된다. 그토록 그리웠던 단 맛이 입안 가득 느껴진 다정은 허실당 한 편에 붙어있는 채용공고를 보고 다시금 제빵사가 된다. 허실당에는 김명장이라고 불리는 제빵사가 있는데, 그는 손도 빠르고 타고난 실력으로 신제품도 잘 만들어낸다. 막내인 다정 혼자 하기 힘든 일들을 도와주는 김명장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다정. 어느 날, 허실당으로 영업 제휴를 위해 프랜차이즈 기업의 팀장이 내려온다. 이야기를 하던 중, 음료를 먹고 팀장이 쓰러진다. 그날 음료는 가지고 온 사람은 바로 김명장. 알아본 바에 의하면, 카페 직원이 내린 커피를 두고 김명장이 손수 에이드를 만들어서 가지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연 이 모든 게 김명장의 짓일까? 허실당의 사장은 과거 다정이 아들 성진의 사건을 해결해 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정에게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라는 미션을 주는데... 다정은 이번에도 사건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사진 동아리인 난사는 신입회원이 들어오지 않는 스러져 가는 동아리다. 인원이 적다 보니 동아리 방조차 배정받지 못한 난사는 부장이던 도운의 죽음 이후 몇 명 안되던 부원이 나가서 문 닫기 직전이다. 얼마 전 발을 헛디뎌 육교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크게 다친 은서는 동기인 해빈이 병원으로 찾아오자 한 가지 부탁을 한다. 동아리 선배이자 은서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도운의 마지막을 찍은 사진을 2년 만에 발견한 것이다. 사진이 흔들려서 정확한 모습은 모르지만, 선배의 석연치 않은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고 싶다. 은서를 좋아하는 동기 해빈은 결국 은서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는데...

그 밖에도 피아노 학원의 아이들의 신발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며칠 후 다시 돌아오는 일로 두리 음악 학원은 어려움을 겪는다. 혹시 왕따를 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학부모들의 우려 섞인 항의 전화가 계속 걸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한 학생이 학원을 그만두게 되고, 원장은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알바인 동희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역시 일상 속 이야기인지라, 소소한 추리와 그에 따른 결말 또한 극단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각 사건의 주인공과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들이 다 다르지만, 허실시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여기저기 겹쳐지는 지역이 또 다른 흥미를 자아낸다.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지만, 진실 안에 속 이야기가 사건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우리의 일상

또한 그렇지 않은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이 끝까지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또한 작품 중간중간에 허실시의 향토연구가라는 진설주옹이 여기저기 은근슬쩍 등장한다. 도대체 이 사람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건지 궁금하지만 끝까지 뭔가 또렷한 역할을 하지 않아서 더 의미심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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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클래식 라이브러리 8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순배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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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제목만 낯이 익다. 무슨 뜻인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보기만 한 제목의 뜻 또한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도리언 그레이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렇다면 초상은 뭘까? 초상 하니 죽음과 관련된 단어가 떠올랐는데, 초상화였을 줄이야...! 제목은 결국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라는 뜻이다.

화가인 바질 홀워드의 작품을 마주한 친구 헨리 워턴 경(해리)은 바질이 자신의 작품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사실에 의아하다. 이유를 묻는 해리에게 자신의 본 모습이 그림 속에 여실히 드러나 있어서라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진짜 이유를 묻는다. 그러면서 알게 된 인물이 도리언 그레이다. 도리언 그레이에 대한 찬사를 들은 해리는 그가 궁금해진다. 만나게 해달라고 바질에게 이야기하지만, 해리가 어떤 인물인 지 아는 바질은 거부한다. 그에게 나쁜 물을 들일 걸 우려해서였다. 하지만 둘의 대화 중 도리언 그레이가 도착한다. 어쩔 수 없이 해리를 만나게 되는 도리언 그레이. 바질의 우려대로 해리에게 빠져들고 마는 도리언 그레이. 그렇게 백지처럼 순수했던 도리언 그레이는 해리를 통해 나쁜 물이 들기 시작한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는 완벽했다. 보고만 있어도 젊음이 생생하게 보이는 그림이었다. 바질 뿐 아니라 도리언 그레이 조차 그림에 빠져들었다. 해리를 통해 삶의 쾌락을 맛보게 된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그림 이면에 담긴 젊음이라는 감정을 오롯이 느낀다. 아니 그것은 어느 순간 집착에 가깝게 변한다. 그림은 멈춰있지만, 노화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괴로움을 넘어 끔찍함을 느끼는 도리언 그레이. 자신과 그림이 바뀌길 염원한다. 그림과 같은 변하지 않는 젊음이 자신에게 영원하길 바라는 그의 바람은 과연 이루어질까?

도리언 그레이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삶의 쾌락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백지와 같은, 생생한 젊음을 가졌던 그가 쾌락을 맛보고 그에 집착하게 되면서 극단적인 모습이 하나 둘 드러나게 된다. 노화는 추하다는 생각을 비롯하여 동성애, 현대로 보자면 악플로 볼 수 있는 표현들, 사랑보다는 조건이나 형식에 맞춰진 결혼, 자살과 협박, 살인... 그랬기에 이 책의 본래 표현들은 삭제되어 출판되었다고 하는데, 이 책에는 원문의 실제 표현을 그대로 실었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책과 비교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쾌락의 이면을 맛본다고 누구나 도리언 그레이처럼 바뀌지는 않는다. 자신의 모습의 심취한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나르키소스를 떠올리게도 한다. 내면이 아닌 외면에 심취하여 그를 지키기 위한 모습들이 극단적으로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도리언 그레이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거부하기 어려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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