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
구본준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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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기자였던 구본준의 또 다른 건축 책이다. 그는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그가 쓴 다른 책인 두 남자의 집짓기를 내가 봤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상기했다. 그는 2014년 이탈리아 출장 중 돌연사했다. 아직 40대의 젊은 나이였다. 최근 건축책은 유현준의 책을 주로 보고 있지만 과거엔 구본준이 있었던 셈이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더 좋은 책을 많이 냈을 것이 확실해 아쉽다. 한국의 미 특강을 쓴 오주석, 역사를 쓴 남경태 작가도 구본준 만큼은 아니지만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같은 이유로 무척 아쉬운 분들이다.

 이 책은 2013년에 발간한 책으로 사실상 그의 유작이다. 다른 건축책들과는 좀 다르게 한국의 건축에 집중하고 있어서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시기는 근대와 과거, 현대를 모두 아우른다. 

 책의 서두를 장식한 것은 이진아 기념 도서관이다. 이진아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자수성가한 아버지가 무척 사랑한 딸이었다. 그 딸은 2003년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딸을 무척 사랑했던 아버지는 세상에 그녀를 남기고 싶었고 그런 그가 건축비를 대고 지자체가 토지를 대어 완성한 것이 이진아기념도서관이다. 이 건물은 건축 자체가 뜻 깊은 시도이기도 했고 서대문 형무소의 벽돌을 활용하여 의자를 만든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서울엔 많은 종교 건축물이 있다. 명동 성당, 불교 조계사, 천도교 중앙대성당, 개신교의 정동교회와 경동교회,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이 그렇다. 이중 서울 대성당은 고딕 양식이 아닌 로마네스크 형식인데도 한국적 양식을 많이 적용해 더욱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대개 교회 건물은 고딕 양식으로 지으며 이는 신에 가까워지고 싶은 인간의 마음이다. 하지만 서울 대성당은 그렇지 않다. 여기엔 건축가의 뜻이 담겼다. 건축가는 1914년 성공회의 트롤로프 주교였다. 그는 건축가 아서딕슨에 서한을 보내 종교 건축물은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설득한다. 수개월의 뱃길로 조선에 도착한 아서딕슨은 한국의 건축물과 가옥을 살핀다. 그리고 고딕을 포기한다. 그래서 서울 대성당은 기와 같은 지붕에 한옥의 창호 같은 창문, 오방색의 스테인글라스를 갖게 된다. 이런 현지 전략으로 서울 대성당은 다른 근대 건물들과는 다르게 한옥들과 같이 있어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1990년대초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성노예 사건이 폭로되었다. 이어서 1992년부터 일본대사관에서 일본군 성노예 사건에 항의하는 수요시위가 시작된다. 2000년대 들어 어느 새 고령화한 피해자들이 사망하기 시작하면서 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처음엔 독립공원 내에 부지를 마련하려 했으나 늘 그렇듯 몇몇 보수단체의 반대로 위치가 마포구 성미산으로 옮겨진다. 국회와 정부가 마련한 돈은 겨우 5억이었기에 민간시민과 일본의 시민들이 돈을 모아 자산 20억이 만들어진다. 마포의 100평짜리 단독주택 구매에만 17억이 쓰이고 건축가는 고작 3억으로 건축을 해낸다. 바깥은 높은 벽을 세워 작은 건물을 크게 보이게 하였고, 할머니들의 얼굴과 손바닥 부조도 눈에 띈다. 집의 습하고 어두운 지하실은 할머니들이 끌려가 생활하던 공간처럼 꾸며졌다. 박물관은 전쟁에 끌려간 할머니들의 삶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형태로 완공되었다.

 조선은 유교 건물을 많이 지었다. 향교는 공립유학 교육기관이고 서원은 사립교육기관이다. 향교는 대개 고을의 중앙에 위치했는데 지금도 오랜 도시 지역의 중앙엔 교동이 있다. 바로 향교가 있던 마을이란 뜻이다. 서원은 풍수가 좋은 곳에 그리고 지역의 특성과 모시는 사람, 건축주의 특성이 반영되어 개성이 넘친다. 

 서원은 공통적으로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학생을 가르쳤기에 은행나무가 반드시 존재하고 교수 및 기숙사와 배향장소가 있다. 도동서원은 김굉필을 모시는 서원이다. 김굉필은 나도 처음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지 않으나 조선 사림들에겐 정신적으로 큰 울림을 준 사람이다. 젊은 시절을 탕아로 보내다 늦은 나이에 김종직을 만나 수학하여 40이 되어서야 입직한다. 당시 양반들은 부모가 죽으면 3년상을 치뤘는데 대부분 돈을 주고 사람을 썼고 자신은 제사만 지내는 정도였다. 하지만 김굉필은 부, 모, 계모까지 총 9년 상을 스스로 해낸 사람이다. 워낙 강직해 연산 때 파직되고 사사되었다. 중종때 복귀되었는데 그의 강직함이 워낙 대단해 동방 5현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1번인데 동방오현은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이다. 도동서원은 이런 김굉필을 기리는 서원이기에 많은 건축비를 확보할 수 있었고 그래서 돌을 활용한 재미난 장식들이 많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호주의 대표적 건물이다. 국가의 이미지를 이 정도로 잘 드러낸 건물도 많지 않은데 호주 정부는 이를 계획하고 설계를 공모한다. 당선자는 당시 39세로 덴마크의 신예 이외른 우촌이었다. 조개 껍데기를 연상시키는 여러 구조체를 설계한 그의 건물은 매우 혁신적이었다. 건물은 정면이 따로 없었고 구조에도 구분이 없었다. 포개지는 거대한 고깔은 그 자체로 벽이자 지붕이자 관문이었다. 

 모든 게 좋았지만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호주 정부는 2년 정도의 건축 기간에 350만 달러의 예산을 예상했다. 하지만 해안가이다 보니 지반 문제가 발생했고 당시 낮은 건축 수준으로 인해 실현 가능한 재료와 구조의 변경 및 설계 등으로 실제 건축 기간은 10년 이상에 예산은 총 5700만 달러가 들었다. 호주 정부와 건축가의 갈등은 심해졌고 자신의 이상이 현실에 밀리는 느낌을 받은 우촌은 그대로 귀향해버린다. 호주정부는 자국의 건축가들을 이용해 현실적인 작업을 벌려 오페라 하우스를 마무리한다. 우촌은 개관식에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먼 훗날에야 오페라 하우스를 다시 방문한다.

 조선의 5개 궁궐 중 창덕궁은 후원이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창덕궁의 후원은 우리 전통처럼 자연스러움이 그 특징이다. 창덕궁의 또 다른 특징은 정자가 많다는 것이다. 가장 화려한 정자는 부용정으로 열십자 지붕에 한 차례 각을 더 따낸 정자로 정조가 애용했다. 관람정은 전국에서 유일한 부채꼴 모양의 지붕을 가진 정자고 승재정은 작은 공예품 같이 아름다운 정자로 보통 사방이 트인 다른 정자와 달리 창호가 있고, 툇마루도 있다. 아마 겨울에도 애용한 것이 아닐지. 존덕정은 디자인이 독특한데 지붕이 2겹이고 한 모서리에 가는 기둥이 3개씩 붙어 있다. 청의정은 농업국가인 조선을 상징하는 것으로 정자의 지붕이 초가다. 왕은 농사의 신인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제사를 선농단에서 올렸고 친경했다. 그리고 매년 청의정의 초가 지붕을 교체했다. 선농단 제사 후 제물로 사용한 소를 잡아 탕을 끓여 주변 60세 이상 백성에게 대접했는데 이것이 설렁탕의 시초란 이야기가 있다. 

 강릉에 가본 사람은 선교장을 한 번 정도를 들어봤을 것이다. 선교장은 집의 이름으로 현존하는 조선건물 중 가장 크다. 보통 양반의 집엔 당이나 각이 붙는데 선교장은 워낙 커서 장이 붙은 것이다. 선교장은 강릉에 위치하는데 그것이 더 대단하다. 강원 지역은 농경지가 척박하고 좁기 때문이다. 선교장 가문의 땅은 주문진에서 삼척에 이를 정도로 대단했다고 한다. 선교장 가문의 시작은 권씨부인이다. 본래 충주로 시집갔었는데 남편이 죽고 전처의 장자가 모든 가산을 상속하자 자신의 아이와 강릉으로 돌아와 염전 사업을 해서 자수성가한다. 그들은 개척된 땅은 비과세하는 법을 이용해 강원도의 척박한 땅을 농지로 바꾸며 땅을 늘려갔다. 

 선교장은 한양의 유력가와 통혼하여 세력을 유지했고, 문화적 후원과 교류도 자주해서 정치감각과 문화감각을 유지했다. 김정희나 여운형도 방문했다. 조선시대 양반에게 관동팔경과 금강산은 주요 관광지였는데 선교장은 그 초입으로 같이 방문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었다. 선교장은 손님대접에 상당한 신경을 썼는데 소반만 300개를 대접하고 손님이 떠날때는 옷도 지어 선물했다. 사랑채는 큰 사랑채, 중간 사랑채, 아랫사랑채로 나눠 손님의 학문적 수준과 지위에 따라 위에서 아래 순으로 배치했다.

 선교장은 처음부터 큰 건물이 아니라 대를 이어가며 꾸준히 증축하여 매번 당주의 취향과 철학이 반영되어 건축물이 다양하다. 선교장의 6대 이근우는 1908년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 잡고자 인재 양성을 위해 동진학교를 설립했다. 교사로 여운형과 이시형을 초빙할 정도였고 학생에게 숙식과 학비를 제공했으나 일제에 의해 3년만에 폐교 된다.

 이근우는 일제 때 중추원 참의를 지내기도 했으나 뒤로는 비밀리에 독립자금을 댔다. 선교장은 해 방 후 토지개혁으로 땅을 강제 매각당하고 지가 증권을 얻었으나 산업자본으로 전환에 실패하여 과거의 위상을 잃는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이후에도 가문에서는 강릉시장과 은행장, 대학 부총장이 연이어 배출되었고 선교장의 유명한 열화당의 이름을 딴 출판사 열화당도 설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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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교육과정과 수업 디자인 - 2022 개정 교육과정 기반
유영식 지음 / 테크빌교육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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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상반기 2022 개정교육과정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은 그간의 시대 변화를 반영하면서도 2015개정 교육과정을 부드럽게 계승한 느낌이다. 시대는 인공지능과 기술적 변화, 기후 재난 등이 일어났고 이에 따라 학습자 중심의 교육과 이를 위한 학교, 교사 자율성이 더욱 중요해졌다. 

 책 2022개정교육과정과 수업 디자인은 이런 2022 개정교육과정에 대한 친절한 대중해설서 성격이다. 물론 가장 인상적인 학교자율시간에 많은 초점을 두었다. 

 2022 개정교육과정은 미래 교육의 실현을 위해 만든 교육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학생맞춤형, 학습자 주도 교육이 중요해졌고, 이를 위해 만든 장치가 고교 학점제와 학교자율시간, 깊이 있는 학습이다. 학교는 이제 초중학교에서는 학교자율시간으로 학습자가 원하고 그들이 주도하며 교사와 지역에 맞는 학습 설계가 가능해졌고 고교에서는 고교학점제로 학습자가 자신의 진로에 맞는 경로 이수가 가능하다. 

 2022 개정교육과정의 주요 변화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인간상에서 자기주도적 인간, 창의적 인간, 교양 있는 인간, 더불어 사는 인간을 제시했다. 2015와 거의 동일하나 자주적인 사람이 자기주도적 인간으로 바뀌었는데 아무래도 학습자 중심을 초점에 두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역량은 6가지가 같이 제시되었으며 의사소통 역량이 협력적 소통 역량으로 바뀌었다. 미래 사회에서 단지 의사소통이 아니라 타인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기에 이를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기초 소양이 등장했다. 민주시민의 최소 소양으로 기존 3Rs을 강조했다면 이번엔 이를 언어 소양, 수리 소양, 디지털 소양으로 다시 제시했다. 언어 소양과 수리 소양은 기존의 3Rs라면 여기에 디지털 소양이 추가된 셈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초등학교의 경우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는 입학초기 적응활동이 68시간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는 통합교과의 학교 단원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34시간으로 줄였고, 나머지 34시간은 한글 교육강화차원에서 국어과로 옮겨졌다. 세월호 사건 이후 도입한 안전한 생활 64시간은 바른생활 16시간, 슬기로운 생활 16시간, 즐거운 생활 32시간을 교과에 분산되었다. 또한 초등저학년이 신체활동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즐거운 생활에서 신체활동 관련 시수를 기존 80시간에서 128시간으로 증가시켰다. 

 중학교는 자유학년을 자유학기로 줄이고 차시는 102시간으로 편성하였으며 스포츠클럽을 연간 34-68시간에서 연간 34시간으로 축소했다. 고등학교는 기존의 204단위 이수제를 192학점의 학점제로 개편하였다. 1학점은 50분 기준 16회로 편성했다. 

 초중고에서 공통적으로 진로 연계 교육이 도입되었다. 초등은 중학교의 자유학기제에 대해서 중학교는 고등학교의 고교 학점제, 고등학교는 대학교와 사회진출과 관련한 진로교육을 하게 된다. 창의적 체험활동대 개편되었는데 기존의 자율, 동아리, 진로, 봉사의 4영역이 자치자율, 학생중심 동아리, 진로로 개편되었다. 봉사활동은 학생중심 동아리 영역에 포함되었다. 인공지능 소프트 웨어 교육도 강화하여 초등은 기존 17차시에서 34시간이 되었고 중학교는 68시간 고등학교는 이와 관련한 진로 및 융합 교육선택과목을 신설하였다.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는 교과군별(음미체 교과 제외) 20% 범위 내에서 시수를 증감하여 편성 운영할 수 있었다. 2022 개정교육과정은 이것을 창의적 체험활동까지 넓혀 교과군과 창체를 포함하여 20% 시수 증감 편성이 가능해졌다. 사실상 교과의 수업 시수를 줄이고 창체를 확장할 수 있어 학교와 지역에 맞는 고유의 교육 재량권이 넓어졌다. 

 2022 개정교육과정 각론의 개발 방향은 다음과 같다. 우선 역량 함양을 위한 깊이 있는 학습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삶과 연계한 학습을 강조하고, 교과간 연계 및 통합을 지향했다. 그리고 학습에 대한 성찰을 강조한다. 내용체계표는 기존에 지식과 기능만 제시되었지만 2022는 지식과 이해, 과정과 기능, 가치와 태도로 분화하여 제시되었다.  

 2022 개정교육과정의 성취기준도 변화했다. 우선 성취기준은 교과학습을 통해 도달해야 하는 결과 혹은 도달점의 성격으로 제시해 일종의 평가준거 기능을 하게 하였다. 또한 내용 체계표와의 정합성을 강화했다. 역량 구현에 적합한 방식으로 진술하였다. 또한 교수학습과 평가의 자율권을 확대 보장하는 방향으로 진술했다. 즉, 성취기준상 구체적 활동을 제시하기 보단 도달점 위주로 진술하여 그 과정에 자율권을 부여한 것이다. 

 학교자율시간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백미다. 이는 초등 3-6학년, 중학교 1-3학년에서 편성해야 하고 교과가 16+1주로 편성되어 뒷 부분의 1주 분량의 차시가 학교자율시간 시수가 된다. 초등같은 경우 3-4학년은 최대 58시간, 5-6학년은 64시간이 된다. 교과별 학교 자율시간 수는 교과의 편제 시수를 17로 나누면 된다. 

 학교자율시간 같은 것은 기존 시도 교육과정에 이미 등장하였다. 경기도의 학교자율과정, 전북의 학교교과목, 충북의 자율탐구과정, 충남의 학교자율특색과정, 인천의 학교자율교육과정 들이 그렇다. 이들은 거의 최대 20%의 교과시수를 활용가능하게 하여 연간 100시간 가까운 시간을 보장했기에 2022개정교육과정의 학교자율시간은 오히려 시수면에서 축소된 감이 없지 않다. 

 학교자율시간은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 교육과정 분권화와 자율화, 교사의 자율성과 주도성을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강조되는 경우 교사에게 업무적 과부하가 일어나거나 시수를 감축하는 만큼 기존 교과교육의 부실화 그리고 지역별 학교별 교육과정 편차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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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역사 - 외환위기부터 인플레이션의 부활까지 경제위기의 생성과 소멸
오건영 지음, 안병현 그림 / 페이지2(page2)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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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세계 경제는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었다. 2차 대전의 사실상 원인이 된 대공황과 70년대 케인즈 주의를 끝장내고 신자유주의 열풍과 스태그플래이션을 불러온 오일쇼크, 20세기 후반의 동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미국을 부도 위기로 몰아 넣고 신자유주의에 경종을 울린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위기 등이 그런 것들이다.

 책 위기의 역사에서는 이 중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불어넣은 외환위기와 2000년의 닷컴 버블 위기, 2008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불러온 금융위기, 2020 코로나로 인한 위기를 다뤘다. 이 책의 장점은 매우 상세하고 분석적이면서도 책을 재밌고 쉽게 썼다는 점이다. 당시의 경제 기사들도 많이 다뤘는데 기사를 보니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 사회의 현실이 지금도 그대로 이어져 무척 현장감이 느껴졌다. 마치 당시 상황에 있었던 느낌이랄까. 


1. 1998년 외환위기

 한국 경제는 사실상 이시기를 전후하여 극명하게 구분된다. 이전엔 고도 성장기로 연간 10%에 가까운 고도성장을 누렸고 완전고용 상태에 가까웠으며 거의 모든 직원이 신분 안정을 누렸다. 회사는 직원을 과도한 노동시간으로 착취하긴 했지만 임금은 민주화 이후 꾸준히 상승했고, 어지간한 일로 직원을 해고하지 않았다. 때문에 당시만 해도 공무원은 크게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놀랍게도 양자의 정년까지의 고용안정성은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산층이 매우 두터웠고, 빈부격차도 적은 시기였다.

 하지만 외환위기 모든게 바뀐다. 한국은 이후 성장률이 절대 5%를 거의 넘지 못했고, 일반 기업의 직업 안정성은 크게 낮아졌으며, 취업을 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보수차이가 매우 커졌다. 빈부격차가 매우 커졌고, 취업자체도 매우 어려워졌다. 부동산 가격 등 자산가격이 폭등하였다. 집과 직장을 모두 갖기가 어려우리 결혼율과 출산율이 모두 급격히 낮아졌다. 

 이렇게 한국 사회를 극명하게 바꾸어 놓은 외환위기는 왜 일어났을까. 이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한 결과였다. 대외적으론 일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고현상을 지속했다. 반면 국내 경기는 나날이 침체되어 높은 화폐가치를 이용해 해외 투자가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다 1994년 고베대지진이 일어났는데 엄청난 재앙으로 인해 일본의 보험사들은 갑작스레 거액의 보상액을 지불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해외 자산을 대거 매각하게 된다. 즉, 외화를 엔화로 바꾸어 보상하게 되니 안그래도 강력한 엔화가 초강세를 띠게 된다. 일본은 G7에 요청해 이번엔 역 플라자 합의로 엔화 약세 전환 협정을 맺는다. 이에 한국 기업들은 10년 간의 엔고 마감으로 갑작스러운 수출경쟁력 감소로 위기를 겪게 되고 수입 적자도 심화한다.

 또한 반도체 경기도 크게 후퇴한다. 95년 윈도우 출시로 세계 컴퓨터 시장은 호황을 맞는다. 또한 앞으로는 컴퓨터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추정되어 수요는 순간적으로 폭증하는데 이게 문제가 된다. 컴퓨터에는 당연히 반도체가 필요하기에 당시 최신 버전인 16mb 반도체의 가격도 크게 올랐다. 하지만 96년 후반부터 컴퓨터 시장은 급격히 얼어 붙게 되고 반도체 수요도 급감하여 올랐던 가격은 평소의 1/4수준으로 추락한다. 한국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반도체가 주요 외환벌이 수단이었기에 수출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리고 한국은 1996년 OECD에 가입한다. 한국은 이전까지 외국 자본의 국내 투자를 크게 제한하고 있었고 환율도 고정환율로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OECD가입으로 점차적으로 자본 시장을 개방하게 되었고 이는 당시의 세계화 열풍과도 관련한다. 한국은 당시 고금리 상황이었는데 한국의 종합금융사들은 이를 이용해 해외의 달러자산을 저이자로 빌린 후 이를 국내에 융통하여 이자 장사를 하고 있었다. 다만 이득을 더 크게 하기 위해 달러는 저금리 단기로 빌리고 국내엔 장기로 이를 융통했다.

 이 세 가지 요인이 한 순간 폭발했다. 동남아사이 국가에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외국 투자자들은 아직 선진국이 아닌 개도국이었던 한국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된다. 외국자본이 이탈하자 한국은 외환보유고로 방어에 나서나 당시 보유액은 300억 달러에 불과했다. 더구나 반도체 경기 악화로 외화가 들어올 길은 없어 적자가 심화하고 있었고 대출상환 압박에 급박했던 종금사들은 돈을 장기로 빌려주고 달러로 갚아야 했기에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외환위기에 이른 것이다. 

 외환위기로 자금을 빌려준 IMF는 한국에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해외 자본 이탈 방지를 위한 고금리를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중산층이 붕괴되고 자산가격이 해외에 헐값에 넘어가는 고통을 겪는다. 


2. 2000년 초 닷컴 버블위기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남미와 러시아로 위기가 이어진다. 세계적 실물 경기 둔화로 원자재와 유가가 크게 떨어졌고, 아시아 국가들은 통화가 가치가 하락했다. 그러다 보니 남미와 러시아 및 다른 신흥국들의 수출경쟁력도 하락해 이들이 위기를 겪게된다. 여기에 일본도 침체였고 아직 약했던 중국 역시 대규모 부실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세계 경기를 부양해야 할 필요성을 느긴 미국 연준은 금리를 인하하게 된다. 당시 미국은 경제상태고 90년대 내내 이어진 호황으로 괜찮았지만 그럼에도 금리를 인하한 것이다. 

 그 결과 미국 증시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주가가 상승했고 미국 경제는 디지털 경제의 등장과 더불어 신경제란 용어가 생겨난다. 신경제에 대한 과도한 착각으로 주가는 급등했고, 자산이 상승했다고 착각한 사람들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물가가 상승한다. 미연준은 상승하는 물가를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닷컴 버블 붕괴의 시초가 된다. 

 닷컴 버블의 붕괴는 초기엔 IT기업의 주가만 폭락시켰지만 이어져서 실물경기도 둔화시킨다. 다른 기업들의 주가도 몇 년간의 시간차를 두고 크게 하락한 것이다. 미 연준은 이에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다시금 인하하지만 이런 불황은 오래도록 이어진다. 코로나 이전까지 세계 경제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저성장 저물가 기조를 오래도록 이어왔는데 이것의 시초가 된게 닷컴 버블 붕괴다. 


3. 2008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로 인한 금융위기

 닷컴 버블 이후 미국 주식 시장은 10년간의 하향기를 걷는다. 반면 부동산 시장은 같은 기간 견고히 안정적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여기에 오랜 불황으로 세계적으로 믿을 만한 투자처가 사라진다. 즉, AAA짜리 안전적인 회사채가 크게 부족해진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흔들리고 도산한 결과였다. 이 두 가지는 맞물려 미국을 부도 위기로 몰아넣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촉발하게 된다.

 미국 부동산 시장은 주식시장과 별로도 2000년대 들어 안정적인 상승을 이어갔다. 이는 주식시장의 붕괴와 관련한다. 주식시장이 믿음을 주지 못하자 부동산으로 투자자금이 몰린 것이다. 더군다나 이 시장은 오랜 기간 견고했기에 부동산 시장이 상당히 안전하고 꾸준히 우상향한다는 믿음이 비교적 장기간 형성되었다. 또한 닷컴 위기 이후 달러가 약세화하고 미 금리가 낮아졌는데 이로 인해 국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중국이 세계 공장으로 발돋움하며 더욱 올랐다. 신흥국들이 돈을 크게 번 상황에서 이 투자자금은 미국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갔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동자금을 흡수할 우량 등급의 회사채가 사라졌다. 투자자금은 갈 곳을 잃은 상황이었는데 이 물꼬를 스티브 글래스법의 해체가 열어준다. 스티브 글래스 법은 대공황기에 생겨난 법으로 상업은행의 방만한 투자를 크게 제한한 법이었다. 당시 대공황의 악화에 상업은행들의 무분별한 투자와 방만한 경영이 한몫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90년대 말부터 금융경제가 강조되며 미국은 상업은행들의 발이 묶인 방면 유럽은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었기에 이와 같은 흐름이 스티브 글래스 법의 해체를 가져왔다. 

 법이 해체되자 미국 상업은행들은 이전의 방만한 경영을 시작한다. 미국 은행들은 부동산 시장이 견고하다는 믿음하에 직업, 일자리가 없는 이른바 서브 프라임 계층에게까지 주택담보대출을 시작한다. 조건도 매우 너그러워 원금 상황 없이 장기간 이자만 내는 형태였다. 그리고 일부 투자기관들은 파생상품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은행이 갖고 있는 주택담보대출 수백건들을 하나로 묶어 MBS라는 채권을 만든 것이다. 은행들은 이 MBS를 투자기관에 팔아 생겨난 여분의 금액으로 또 다시 주택담보대출을 실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대출로 투자기관은 또 다시 MBS를 만들어 팔았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투자기관들은 이 MBS조차도 모아서 CDO채권을 생성했다. 이 채권은 MBS중 연체율이 극히 낮은 우량의 담보대출은 모은 것으로 이것이 트리플 A 등급의 채권이 되어 세계적 유동자금을 흡수했다. 여기에 더 나아가 CDO채권에 보증을 서주고 낮은 수수료를 받는 CDS도 만들어냈다. 모두 얽히고 섥혔고 복잡하고 안전하게 만들었지만 근원은 주택담보대출에 있었고 이는 주택 자산가격의 꾸준한 상승과 주택담보채무자들의 이자지급능력에 매달리는 구조였다. 그리고 이것이 흔들리자 모든 것이 한방에 무너져내렸다.

 미연준은 늘 그렇듯 주택시장이 과열되자 금리를 인상하기에 이른다. 주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자신의 자산 가격이 폭등하면 소득이 향상되었다는 착각에 이르러 소비를 증진한다. 때문에 경기가 과열되고 인플레가 발생하는 것이다. 금리를 인상하자 주택담보대출자들의 연체율이 급증했고, 신용이 낮은 계급부터 자산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그리고 이들이 주택을 내놓자 집 가격이 폭락한다. 즉, 은행이 잡고 있던 담보물과 이자 모두가 무너진 것이다. 

 은행들은 평소 서로를 신뢰하고 믿기에 쉽게 상호 대출을 해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발생하면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대출이 이뤄지지 않고 위기 은행을 도와줄 곳이 없어 자금이 막힌다. 그러면 소문이 나 뱅크런이 발생하고 은행이 도산한다. 전반에 퍼진 급격한 신용경색은 자금의 흐름을 정체시켜 결국 실물경제를 악화시켜 문제가 더욱 심해진다. 

 미국의 신용위기는 세계로 퍼졌다. 미국은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금리를 낮춰 유동성을 공급했으며 달러가 약세로 돌아섰다. 한국도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과거 외환위기읙 경험으로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비축하고 있었고, 수출도 비교적 견조했다. 여기에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체결로 위험요소가 별로 없었다. 


4. 2020코로나 위기와 40년만의 인플레이션

 코로나 이전 세계 경제는 물가가 적정하고 경기가 좋은 편이었다. 이에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성장에 초점을 두어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경제활동에 급작스레 중단되자 생산활동이 멎고 고용이 줄고 소득이 낮아져 수요와 공급이 모두 줄어들게 되었다. 여러 경제위기의 누적으로 기업과 가계는 모두 부채가 많은 상황이었기에 무척 경제가 악화되었다.

 타개책은 대규모 양적완화였다. 2008년 미국은 7000억 달러를 양적완화했지만 이번엔 무려 5조달러 규모였다. 지난 2년간 30년어치의 돈이 풀렸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 셈이다.(아직 그돈이 묶인 미 증시와 세계 부동산 시장은 거품이 여전히 잔뜩끼어있다는 셈이다) 특히, 이번엔 고용을 전진시킬수가 없어 과거와 다르게 개인에 직접 현금을 지원했다. 그 효과는 막대하여 급격히 수요가 자극되어 경기가 폭발한다. 기업 실적은 크게 개선되었고 주식도 폭등했다.

 위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세계적 지원으로 수요가 팽창하고 달러는 유동성이 폭발해 크게 약세화한다. 원자재 가격은 폭등했고 제조업체의 생산이 증가해 원자재 가격이 더욱 상승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더욱 폭등한다. 러시아는 세계적 석유, 천연가스 및 원자재의 공급처이고 우크라이나는 밀의 공급처이기 때문이다. 공급측에서의 공급 부족과 수요측의 수요 폭발이 겹치자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번엔 미 연준의 대처가 사태를 키운다. 코로나를 잠재우는데 빠르게 움직였던 연준은 워낙 인플레이션이 오랜만에 일어나서인지 움직임이 늦었다.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발생한지 1년이 되어서야 사태가 일시적인 것이 아님을 인지하고 뒤늦게 금리를 인상한다. 미국은 뒤늦은 대체로 1년이란 기간동안 거의 5%에 가깝게 금리를 인상했다. 이런 금리인상은 80년대의 대규모 긴축 이후는 없었던 일로 오랫동안 풀린 자금으로 부채와 저금리에 익숙해있던 가계와 기업에 큰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물론 이는 거품을 빼는 과정으로 돈잔치에 익숙해진 가계와 기업이 마땅히 감수해야할 부분일 수도 있다. 경제는 결국 실물경기과 가까워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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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LOW(더 플로) - 시대의 운명을 내다본 사람이 부를 거머쥔다
안유화 지음 / 경이로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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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중 전쟁이 가속화하는 느낌이다. 마치 냉전 때처럼 한미일의 연합은 이번 정권 들어 굳건해지고 있고 그 반작용으로 와해되었던 북중러 관계도 다시 복원되는 느낌이다. 우리는 이번에 일종의 선택을 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한국의 새 정권은 미중 전쟁의 갈등 속에서 한미일 연합으로의 길을 선택했다. 여기엔 한국 보수 정권이 오랜 기간 미일에 의존하며 기득권을 챙겨왔던 것에 대한 향수와 심리적 편안함과 관성 그리고 미중 전쟁 속에 어느 정도 선택을 강요당하는 입장에서 기술력이 강한 미국 쪽을 선택했다는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은 과거 보수정권도 선택의 기로에서 실리를 챙기는 묘한 입장을 고수했었다는 점을 강조하긴 하지만 과거 정권은 미국으로부터 지금 정도의 압박을 받지 않았었다는 점도 고려해야한다. 물론 현 정권을 옹호하고 싶진 않다. 지난 분기 현대차가 러시아에서 판매한 자동차가 4000여대에서 고작 6대로 줄었다니 말 다하지 않았을까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는 책들도 대개 정말 실리적 입장을 취하거나 향후 우리의 4차산업혁명에서의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을 공고히 해야한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많다. 사실 전제부터가 대부분 미국이 이긴다고 보는 것인데 이번에 본 책 '플로'는 다소 친중적 성향이 있는 책이란 점에서 독특하다. 저자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부를 얻고 싶으면 자본이 몰리는 미래 유망한 산업에 투자를 해야하며, 미중전쟁에서 중국이 이길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단 중국의 문제점부터 짚는다. 중국은 현재 경제 규모 2위의 국가지만 빈부격차가 매우크고, 국민들의 자산이 부동산에 몰빵 되어 있으며, 지방 정부를 포함하여 부채가 매우 크고 고령화 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중국이 빈부격차가 큰 이유는 공공기관의 정경유착으로 산업화 과정에서 공공기관 종사자와 그 관련자가 막대한 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또한 경제 분야에서 독점이 일어났고, 자산 가격의 거품이 매우 심해 도시에 먼저 살았거나 돈이 많았던 자들이 부동산을 선점해 큰 이득을 보게 되었다. 중국의 지니계수는 이미 0.7로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다.

 중국은 대부분의 가계 자산이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다. 중국은 가계 소비율이 39%에 불과한데 인도가 60%, 베트남이 68%인 것과 비교해도 매우 초라하다. 이는 빈부격차가 심해 상당한 인구가 소비여력이 없다는 측면도 있지만 자산의 상당부분이 부동산에 묻혀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은 1978년부터 2018년까지 개혁개방을 통해 GDP는 150배가 상승했지만 통화량은 무려 1500배가 증가했다. 경제성장도 엄청났지만 통화량은 그를 훨씬 상회하기에 당연히 자산가격이 폭등했다. 2018년 중국의 부동산은 가계자산의 77.7%를 차지해 35%정도인 미국의 두 배가 넘는다. 중국인이 부동산에 자산을 거의 투자한 이유는 주식, 선물시장 등 다양한 금융상품의 수익성에 대한 불안과 은행에 대한 불신, 그리고 부동산 불패신화때문이다. 놀랍게도 중국은 부동산 세 조차 없어 자산급등에 대한 재분배 효과조차 없다. 또한 부동산이 너무 수익성이 좋다보니 주요 기업들조차 부동산에 투자해 경제발전과 순환이 저해되고 있다.

 중국은 지방정부의 부채가 매우 심각하다. 이는 중국의 경제 발전 방식 때문인데 저자는 케인즈식 방식으로 이를 파악한다. 중국은 개혁개방 초기 기술력은 부족한데 사회주의식으로 공장은 많아 공장가동률이 매우 낮았다. 지방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방에 각종 인프라 사업을 마구 잡이러 벌려놓았는데 그렇게 해서 공장가동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만들어 성장률을 높였다. 하지만 이런 인프라는 대개 공공시설로 수익성이 거의 없다. 그리고 지방정부가 사업을 벌이지 않으면 공장은 다시 멈춰 성장이 멈춘다. 그래서 지방정부는 지방채를 마구 잡이로 발행해 부채를 대규모로 쌓아놓으며 성장을 지속했다. 또한 개혁개방기 중국 정부는 주요 성의 고위 간부의 평가기준은 각 성의 경제성장으로 설정했다. 때문에 지방정부의 고위 관료들은 승진과 직위 유지를 위해 이런 방식을 지속했다. 시진핑이 집권하고서야 이런 흐름이 다소 멈췄는데 그동안 해놓은 짓이 있어 부채가 엄청나다.

 이런 중국의 장점에도 저자는 중국이 앞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우선 미중전쟁이 과거 미소전쟁같은 냉전이 아닌 양국간 경제적 관계를 지속하는 양전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미중은 지난 40년간 서로 협력하며 세계경제에서 발생한 부가가치의 80%를 양국이 차지했다. 오랜 기간 미국은 중국의 물건을 빚을 내어가며 구입했고 중국은 미국의 채권을 구입하고 달러를 비축해 이런 미국에 돈을 공급했다. 또한 월가 역시 중국에 막대한 투자가 들어가 있다. 세계 공급망 사슬도 복잡히 얽혀있다. 때문에 현재 겉으로 으르렁 거리는 것과 달리 미국이나 일본은 한국과 달리 중국과 경제적 협력도 지속하려는 면이 있다. 또한 미국은 베트남이나 인도등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려고 하지만 저자는 인도와 중국은 문화적이나 정치체제 측면, 그리고 경제적 취약성으로 중국이나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발전의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 또한 앞으로 4차산업혁명으로 로봇이 본격 도입되면 한국, 대만, 중국처럼 저임금 양질의 가성비 노동력을 바탕으로 자본을 벌고 기술을 축적해 선진사회로 진입하는 길이 사실상 끊길 것으로 파악한다. 

 중국의 또 다른 가능성은 기술력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미국이 4차 산업혁명에서의 기술에서 중국을 압도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저자는 중국의 학문 수준과 과학기술수준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기술 부분에서 디커플링을 시도하더라도 데이터와 인공지능, 2차전지등 주요 부분에서 중국이 뒤쳐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부분은 특별히 언급이 없는데 이 부분은 확신이 없는 것 같다.

 또한 저자는 중국의 자본시장의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즉, 과감히 중국 증시에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우선 중국의 증시가 그 경제규모에 비해 매우 작다는 점이다. 언급한 것처럼 중국인들의 자금은 대부분 부동산에 몰려있는데 현재 중국정부가 그것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자본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고 한다. 미국의 증시가 꾸준히 우상향 한 것은 미국경제의 강함도 있지만 전세계의 돈이 몰리고, 무엇보다도 미국 근로자들의 노후자금이 중시에 꾸준히 투입된다는 점이 한 몫을 한다. 중국 역시 가까운 시일내에 그렇게 될 것이고 외국 자본의 진입도 점차 자유롭게 하고 있어서 중국의 증시가 가까운 미래에 크게 상승할 것이란게 저자의 생각이다.

 미중 전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건 현재의 한국 정부는 이렇다할 것도 얻어내지 못한 체로 너무 쉽게 자신의 패를 드러내고 베팅을 했다는 측면이 강하다. 저자의 생각처럼 중국이 잘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을 쉽게 저버리기도 어렵다. 어찌되었든 두번째로 경제규모가 큰 나라이며, 군사력도 강하고 무엇보다는 이나라는 우리의 지척에 위치한다. 그래서 더욱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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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우 : 시간의 물리학 - 지금이란 무엇이고 시간은 왜 흐르는가
리처드 뮬러 지음, 장종훈.강형구 옮김, 이해심 감수 / 바다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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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에는 열역학 1법칙과 2법칙이 있다. 1법칙은 모든 에너지와 물질의 총량이 보존된다는 것이다. 빅뱅 이후 아주 작은 곳에 있던 물질과 에너지는 그 형태와 흩어짐은 매우 달라졌지만 그 양은 우주 공간이 아무리 넓어졌어도 같다. 그래서 우주는 공간이 커질수록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제 2법칙은 엔트로피 법칙으로 우주는 엔트로피가 최대로 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엔트로피는 확률상 가장 높은 상태로 가장 무질서한 상태다. 방의 한 공간에 좁은 공간에 뭉쳐 있던 연기가 시간이 지나면 방 전체로 번지는 원리다. 그래서 우주는 빅뱅 이전 매우 좁은 곳에 매우 높은 엔트로피로 뭉쳐있던 물질과 에너지가 빅뱅으로 공간이 무한히 펼쳐지며 엔트로피가 급격히 낮아지게 되었다. 우주의 역사는 어찌 보면 다시 예전처럼 엔트로피를 최대로 높여나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는데 그래서 몇몇 과학자들은 그렇게 되면 다시 폭발적으로 공간이 늘어나는 빅뱅이 무한 반복되는게 우주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우주는 공간도 에너지도 물질도 분명하지만 인간이 살면서 분명히 느끼는 시간이 불분명하다. 많은 물리 법칙들은 시간이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있음을 허용하나 시간은 선형적으로 항상 앞으로만 간다. 어쩌면 시간이란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냥 엔트로피가 커져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환경의 변화를 인간처럼 진화 과정에서 감각이 생겨난 생물체는 시간처럼 감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즉, 시간은 있는게 아니라 생명체가 주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발명해낸건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생명이 아닌 우주의 물질들은 당연히 시간이란 걸 인지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런 빛도 들지 않는 즉, 환경의 변화 감지가 차단된 곳에 생물이 들어가면 시간 감각이 사라지게 된다. 

 책, 시간의 물리학에서는 시간에 대해 다소 독특한 주장을 펼치는데 저자인 리처드 뮬러는 시간이 공간처럼 우주의 탄생과 동시에 생겨난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시간이 생성된다는 주장하는데 빅뱅으로 공간이 무한히 팽창한 것으로 시간도 같이 팽창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주의 탄생과 동시에 공간과 더불어 시간도 생성 된 것이고 그렇기에 우주의 모든 만물이 시간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해진다. 우주는 지금도 상당히 빠르게 팽창하고 있기에 지금도 시간이 생성되고 있으며 매순간 팽창하여 생성된 시간이 지금을 구성한다. 그렇게 지금이 켜켜이 쌓여 과거를 구성하고 우주가 계속 팽창하는한 미래도 오기에 우주의 만물은 시간을 앞으로 향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며 우주가 다시 축소되어 시간이 거꾸로 가는 길도 없기에 역행도 없게 된다. 

 하지만 몇 가지 의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우주가 팽창을 멈추게 된다면 시간의 생성도 사라지게 되는데 그러면 우주는 어떻게 될까. 우주가 팽창을 멈추어도 엔트로피의 증가는 상당히 오랜 기간 계속될텐데 의문이다. 그리고 팽창이 멈춘다고 해서 우리의 변화, 노화나 자연의 변화가 멈출지도 의문이다. 또한, 우주는 팽창이 가속화 하고 있다. 그럼 시간의 생성도 가속화한다는 것인데 우리는 여전히 1초를 예전처럼 같이 1초로 여긴다. 이게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우주 전체의 시간이 동시에 같은 비율로 빨라진다면 실제로는 과거의 1초와 지금의 1초는 다르지만 우리는 그걸 같다고 인식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느렸다가 갑자기 같은 비율로 빨라진다면 여전히 우리는 서로의 속도가 같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은 사실 어려운 면이 많고 좀 종교적이거나 신비주의적인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에 대해 새로운 하나의 해석을 접한 것에 만족한다. 그런 측면에선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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