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똘스또이 / 열린책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을 이제서야 읽어본다.
읽어보지 않은 나조차도 제목만 아는 작품들이 몇 있지만, 우선은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를 통해 <이반 일리치의 죽음>으로 그의 작품을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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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성공한 판사이자 세련된 교양인이었던 이반 일리치 골로빈의 사망 소식으로 시작된다.
그의 죽음을 전해 듣고도 동료 판사들은(심지어 가까이 지냈다는 사람들조차) 애통해하는 마음보다는, 이 죽음이 자신과 지인들의 인사이동이나 승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생각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이반 일리치와 친하게 지냈다는 뾰뜨르 이바노비치는 그의 추도식에도 원치 않게 참석하고는 끝나자마자 곧바로 카드 게임을 하기 위해 지인의 집으로 달려간다.
이제 마흔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반 일리치의 삶이 이야기된다.
가정과 동료들에게 따뜻한 온정을 베푸는 훌륭한 판사를 생각하던 나는 그의 삶을 보고는 조금 놀랐다.
그는 일을 할 때는 신중하고 사무적이고 엄격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사교적 모임에서는 재기발랄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만난 귀족 아가씨인 현재의 부인을 만나 결혼에 이르렀지만, 결혼 생활은 그의 생각과는 달랐다.
아내가 임신하면서부터 질투를 하고 바가지를 긁는 등 자신의 생각하던 모습과 다른 태도를 보이자, 이반 일리치는 결혼 생활에서도 자신만의 일정한 입장을 정립하고 그것대로 살았다. (한마디로 이기적으로 살았다는 말이군...)
그는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이내 원하는 연봉의 자리를 구하게 되고 다시 순조롭고 행복한 생활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는 새집에서 커튼을 달다가 의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당시에는 큰 아픔이 없어 크게 개의치 않다가 점점 그 통증이 심해졌지만 의사들조차 그에 대한 확실한 병명을 내놓지 못한다.
그렇게 그는 점점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마주하고, 죽음에 직면해 있는 자신의 모습과는 달리 생기있고 멀쩡히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분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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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알 수 없는 병을 얻고 죽음의 고통을 직면하면서도 자신의 이런 상황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왜 가족들조차 자신의 병과 죽음을 제대로 보려하지 않고 거짓말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깨닫게 된다.
행복했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자신이 행복했던 시절은 아주 오래전 어렸을 때였던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는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아왔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가족들에게서 그대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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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눈 앞에 있을 때, 우린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까?
나 역시도 이반 일리치처럼 살고 싶다고, 행복하고 아프지 않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기도하고 기도할 것 같다.
그러면서 좋았던, 행복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삶에의 의지를 다시금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돌아본 내 삶이 그리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면...
아... 생각만으로도 너무 슬플 것 같다.
죽음이 임박한 그 고통스러운 순간에, 그 고통을 희석시켜 줄 행복한 순간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삶이 너무 슬플 것만 같다.
이 소설은 톨스토이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한다.
이반 일리치를 통해 죽음의 공포,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고통과 절규가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가볍게 중편소설로 시작해 본 톨스토이의 작품,
시간이 허락한다면, 또 나의 의지가 허락한다면 톨스토이의 위대한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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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똑같은 삶. 살면 살수록 생명이 사라져 가는 삶.
그래, 나는 산에 올라가고 있다고 상상했지.
하지만 일정한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던 거야.
그래, 그랬었던 거야.
분명 사람들 눈에 나는 올라가고 있었어.
하지만 정확하게 그만큼씩 삶은 내 발아래서 멀어져 가고 있었던 거야...
그래, 다 끝났어. 죽는 것만 남았어. _ 105쪽
그는 하인에 이어 아내와 딸, 그리고 의사가 차례로 보여준 행동과 말은 모두 간밤에 그가 깨달은 무서인 진실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그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았고, 자기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보았다.
그리하여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가 <그게 아닌 것>이었다는 사실을, 모든 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가져 버리는 거대하고 무서운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_ 1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