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다른 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9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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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난 후에도 잠시 멍하니 있었다.

뭔가 완결되지 않은 느낌에 약간은 찝찝해하며, 또 약간은 의아해하며, 또 약간은 궁금해하며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지 또 한참을 생각했다.

책 속에서는 2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홀수 챕터(1, 3, 5)에서는 아내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짝수 챕터(2, 4, 6)에서는 직업이 작가인 남편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 두 화자는 소설의 시작으로선 아무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각자 다른 남편과 아내가 있다는 의미다.

아내...

남편의 건망증이 심해지고 있던 즈음, 남편은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무언가를 찾는데 그게 집에 없다며 걱정하고 있었다.

남편이 찾던 것은 개. 그러나 정작 그들의 집에서 개를 키운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남편은 개를 찾기 위한 전단지까지 만들어 그녀에게 주면서 개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그녀는 남편을 위해 전단지 속 사진과 비슷한 개를 사기로 한다.

그리고 그 날 남편과 연락이 되지 않아 회사로 연락을 했던 그녀는 남편이 그 회사의 직원이 아니라는 말을 듣게 된다.

남편에게 그것에 대해 따지자, 남편은 그녀에게 말한다.

"제발 그만 좀 해. 당신은 지금 아파. 아픈 사람이야. 치료가 필요해. 나도 좀 생각해 달라고.자꾸 이러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너무 지친단 말이야.

당신이 무얼 기억하든 그런 사람은 없어. 연구실 같은 건 없어. 당신이 기억하는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그냥 그것 모두 다 이 소설일 뿐이잖아. 내가 아니라, 그냥 당신이 그렇다고 믿는 이야기들일 뿐이라고."

- p. 70

나는 오래전 그이가 보았다던 그 고래에 대해서만 생각하려 했습니다. 그게 어쩐지 나를 조금은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었거든요.

그러니까 그날 내가 본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거기에 무엇이 있었든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우리가 그렇게 믿기로 했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가 되었던 것만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그런 게 아닐까. 내 남편을 믿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요. 그게 오직 나 한 사람분이라는 것도 의심할 수 없을 만큼 분명했습니다.

남편(작가)...

연애 시절, 어려웠던 내 사정을 안타깝게 여기며 배려했던 아내 미양은 조금 달라진 듯 하다.

어느사이엔가 그와 미양과의 사이는 조금 변했다. 다투면서 "당신이 사람을 가장 질리게 하는 점이 뭔 줄 알아?"라고 하거나, 그의 말을 귀찮아 한다.

친하게 지냈던 선배 부부의 새 집을 다녀온 후 미양은 그 집의 가구들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유럽풍 수입 가구점을 다녀오던 길에 미양은 인터넷에서 찾은 게시글을 보여주며 말한다.

"이것 좀 봐. 누가 당신을 찾고 있는데?"

그러고 보면 그는 유독 닮았다는 사람이 많았다. 자신이 가지도 않은 제주도에서 그를 봤다던 지인도 있었고, 출퇴근 지하철이나 번화가 편의점, 혹은 식당에서 자신을 봤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 P. 57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실은, 당신이 모르는 비밀이 있어.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그건 실수였지. 당신에게는 말해줘야 할 것 같았어...

내가 말하면, 그게 무엇이 됐든 미양은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 미양은 나를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그런 일을 저지를 만큼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세상 누구보다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양은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지금 내 감정이 진짜라는 걸, 내 사랑에 하나도 거짓이 없다는 걸, 미양은 그걸 어떻게 아는 걸까.

"지금 내가 진짜 나라는 걸 당신이 어떻게 알 수 있지?"

이렇게 각자의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두 화자가 만나는 시점이 발생한다.

어느 날 서점에 간 남자(작가)는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는 여자(화자인 아내)와 마주치고, 그녀로부터 그녀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 P. 113

그런데요, 안치소에 누워 있는 그이의 얼굴이 무척 낯설더라구요.

그건 진짜 내 남편이 아니었어요. 맹세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의 얼굴이었다고요. 더구나 그이가 발견된 곳도 어딘가 이상했어요.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고, 미래를 계획하던 그이는 지금 어디 있는 걸까요?

소설가인 남자는 급작스런 그녀의 연락을 받고 그녀의 집으로 간다. 그리고 무언가 더 진행되어야 할 것 같은데, 좀 더 설명을 해 줘야 할 것 같은 상태에서 소설은 이미 마지막 장이었다.

소설 속 그녀(화자인 아내)가 남편에 대해 말하는 모든 것들, 남편이 소설가를 닮았다는 그런 것들까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 걸까?

남자(작가)는 아내인 미양에게 무슨 말을 하고픈 걸까? 미양은 어째서 그 곳에 있는 거지?

남자를 목격했다던 그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누구를 본 것일까? 남자는... 누구인 거지?

아, 여전히 모르겠다. 짧은 페이지 속 담긴 내용은 너무도 커서 내 속에 담기지가 않는다.

다시 읽으면서 남자를, 여자를, 미양을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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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 - 혼자 있는 시간의 그림 읽기
이동섭 지음 / 홍익출판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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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림과 관련된 책을 자주 읽은 듯 하다.

그리고 이 책, <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 역시 제목에 '그림'이 들어가 있어 어떤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런데 왠걸... 이 책은 기존에 읽었던 다른 책들처럼 미술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책이 아니었다.

작가는 미술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비춰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위로하고 그렇게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마음을 느낀다.

그렇게 책 속에는 작가가 전해주는 위로와 힘이 되는 문장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위로가 되어 준 그림도 소개해 준다.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문장들이 마음에 남았다.

마음이 놀랐을 때에도 진통제를 먹으면 고통이 덜어진다라는 말은 처음 알게 되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마음을 다친 이들을 몸을 다친 사람처럼 가볍게 보지 말고 돌봐야 한다는 부분도 크게 공감되었다.

아스파라거스와 관련된 마네와 친구의 일화에도 가슴이 따뜻하게 데워졌다. 그림이 마음에 든다며 원래 약속한 돈보다 그림값을 더 쳐 준 친구의 마음도, 고맙다며 아스파라거스 한 개가 놓인 그림을 더 그려 친구에게 보낸 마네의 마음도 훈훈했다.

어쩌면 나중에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그림을 어딘가에서 보게 된다면, 이 일화를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행복한 웃음을 짓게 되지 않을까.

- p. 96

사막의 아름다움은 모래언덕과 하늘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기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사막 어딘가에 있을 오아시스가 사막을 아름답게 만든 것이다.

어른이 어른다울 수 있는 것은 분명 그 안에 어린이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어른도, 아주 오랫동안 아이였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라고 불릴 만한 나이가 되면서 삶에 대한 걱정이나 긴장감은 더 커진 듯하다. 뭔가 여유있는 멋진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지금도 나는 나이만 먹고 겉만 늙어버린 느낌이다. 여전히 어렸을 때처럼 사람과의 관계가 어렵고, 무슨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마다 큰 고민과 더 큰 걱정에 휩싸인다.

그래서였을까, "모든 어른도, 아주 오랫동안 아이였다"라는 구절이 가슴에 깊이 박혔다.

- p. 128

나는 '저 사람이 나를 책임져 줄 사람인가?'만 생각했는데, 그를 알게 된 후에는 내가 저 사람의 비빌 언덕이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자연스럽게 결혼이 이뤄졌다.

책 속에는 "식상하지만 의외로 위로가 되어주는 말"이라고 작가가 전해주는 '많이 들어본 듯 하지만 큰 공감이 가는' 문장들이 나온다.

정말로 의외로 위로가 되어 주었지만, 여러 문장 중에서 위 문장을 굳이 이 곳에 적은 것은 내 옆에 늘 있어주는 남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도 그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싶다고 자연스레 마음이 들었다.

결혼에 대한 고민이 있는 사람이라면,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할 내용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아, 만두 맛있니?"ㅋㅋㅋㅋ

그림 뒤의 일화도, 그림 자체에 대한 상상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며 일상에 대한 지혜와 위로를 건네오는 작가의 문장 모두 좋았다.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여지는 그런 새벽에 작가의 문장 하나 혹은 그림 한 점 뒤적여보며 조급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자. 그리고 오롯이 혼자가 된 그 시간을 여유롭게 즐거이 즐겨보자.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스르륵 잠이 들게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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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도 근육이 붙나 봐요
AM327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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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초반에 처음 요가학원의 문을 열었던 기억이 나요.

그 때는 젊은 혈기(?)에 과격하고 땀이 많이 나는 운동을 선호했어요. 그런데 요가는 그 당시의 제가 느끼기에는 너무 정적이었고, 요가 1시간 후에도 몸에 전혀 땀이 나지 않았죠.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흐른 지난 달, 참으로 오랜만에 집 근처 체육관에서 요가 수업을 신청했어요. 아, 땀은 비오듯 흐르고 온 몸이 삐그덕거리기 시작했어요.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몸이 굳을 수록 요가는 점점 어려운 운동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어요.

그런데 여기 요가를 소재로 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을 만났어요.

책 속에는 요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작가가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내용이 더 많았답니다. 요가를 통해 몸 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근육이 붙었다는 작가의 요가 사랑, 요가 life를 들여다 봅니다.

작가는 뭘 해야 한다거나 뭔가가 되어야만 하는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해요. 내가 나인 채로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우린 충분히 박수받을 인생을 살고 있는 거라고요.

사실 우리 어릴 때부터 너무 열심히 살아왔잖아요. 미래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현재의 기쁨과 행복,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들은 잠시 뒤로 미루면서 지내왔잖아요. 오늘의 순간순간을 느끼고 온전히 나인 채로 살아가는 것, 그런 것이 박수받을 인생인 거겠죠?

 

작가가 전해주는 '삶의 태도' 부분도 참 좋았답니다.

매일 바쁘게 열심히 살다보면 주변의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잖아요. 가볍게 강변을 걸으면서 푸른 구름이 반갑고 강물에 반짝이는 햇살이 새삼스럽고 고꾸라진 나무에서 피어난 매화도 볼 수 있었죠.

- p. 137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방향은 맞게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한 치 앞에 연연하기보다 매일매일 건강한 선택을 하기로 한다.

맑은 정신과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잔잔한 흐름을 따라 가다보면 어딘가에 도달하겠지.

분홍빛에만 도취되어 살지 않기를.

회색빛이어도 좋으니 나의 선택에 늘 후회없기를.

달기만한 인생을 바라지 말고 가끔 볼 수 있는 하늘의 맑음에도 감탄하며 살기를.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문득 멈춰섰을 때,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계속 이렇게 달려가는 것이 맞는 일인지 고민이 들기도 할 거에요.

하지만 작가의 문장처럼 분홍빛에만 도취되지도 말고, 회색빛에 불만을 품거나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꾸준히 내가 정한 목표를 향해서 한발씩 다가가는 것. 그것만 생각해요.

오늘의 내 행복한 순간순간을 모아 그 길로 다가가는 것만 생각해요.

책 속의 작가의 문장과 편안한 그림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그리고 책의 많은 장면에서 요가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구요.

"호흡과 함께 점점 더 뻗어나가는 몸을 느껴요."

참, 저는 요가 학원에서 해 오던 동작들의 의미는 모른 채 그저 그 동작 하나하나를 어떻게든 더 잘하려고만 노력했던 것 같아요. 책에서 동작의 의미와 자세한 자세를 알려줘서 혼자서 요가를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 책을 통해 요가도 up, 내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것도 up!!

내 몸이 유연해지는 만큼, 내 마음은 단단해지는 마법의 문장들을 만나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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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미술관 - 나만의 감각으로 명작과 마주하는 시간
오시안 워드 지음, 이선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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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어렵게 느껴지는 미술, 그러나 그냥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 간단히 생각해 버리면 고전 미술 작품들은 그 자체로도 정말 감탄을 자아낸다. 그림의 작풍이나 작가가 어떤 의도로 그림을 그렸는지 등을 굳이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나 같은 미술 문외한들에게는 작품 자체로도 너무도 훌륭해서 그저 입을 벌리고 멍하게 바라보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좀 더 작품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다라는 열망으로 오디오 가이드를 열심히 들으면서도, 그림 밑의 제목과 짧은 설명을 급히 읽으며 작품 자체를 다 이해했다는 듯이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고전 미술 작품을 어렵게 느끼고 심한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지난 시간을 완전히 뛰어넘지는 못해도, 적어도 작가들과 우리 사이의 거리는 좁히고 싶다."라고 언급한다.

- p. 12

조심스럽게 다가서거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할 수도 있고, 은밀하게 바라보면서 밀고 당기는 시간을 가져야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예술작품 감상은 둘이 추는 춤과 비슷하다.

둘의 관계가 완전히 형성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보자마자 첫눈에 반하는 그림도 있는 반면 시간을 두고 작품 안에 숨어 있는 의미와 아름다움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작품도 있다. 이렇게 작품과 관계를 맺고 교류하다 보면 서로의 위치와 역할이 바뀌어서 작품이 우리의 생각 혹은 삶 자체를 반영할 수도 있다.

저자는 고전 미술을 독창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방법으로, 'TABULA RASA 타불라 라사'를 제시한다.

Time 시간, Association 관계, Background 배경, Understand 이해하기, Look Again 다시 보기, Assess 평가하기의 단계를 거치고 나면 다음 단계인 Rhythm 리듬, Allegory 비유, Structure 구도, Atmosphere 분위기를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큐레이터, 미술 평론가로 활동하는 미술 전문가인 저자가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상세하고 색달라서 그가 설명해 주는 그림 읽기는 재미있었다.

먼저 책 표지는 장 앙투안 바토의 그림인 <피에로> 속의 피에로의 모습(p. 219)이다. 비록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묘한 분장의 피에로는 아니지만 말이다.

만약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봤다면, 그림과 작가의 이름, 제목을 보고는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먼 훗날 이 그림을 볼 때 나는, 어쩐지 외롭고 불안해 보이는 어릿광대의 얼굴이 보일 것이다. 또, 작가인 바토가 짧은 생애를 비극적으로 끝내기 직전에 이 그림을 그렸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다시 이 피에로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볼 지도 모를 일이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마라의 죽음>도 그저 그림만 봤다면 그냥 지나쳤을 지도 모른다.(p. 28)

마라라는 인물이 죽었나 보다, 과거에 그가 중요한 인물이었나 보다 정도의 생각을 했겠지.

하지만 책을 통해 자크 루이 다비드가 프랑스 혁명 후에 혁명 정부의 선전 업무를 했고, 민중의 친구인 '장 폴 마라'의 초상화를 그리며 그의 죽음을 순교처럼 표현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림을 다시 보면, 그림 속의 인물은 목욕을 하던 중인 듯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있고, 양손에는 편지와 펜이 쥐어져 있다. 그리고 그의 표정은 죽어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듯이 평온하고 부드러워 보인다.

아르테미지아 젠틸레스키의 그림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도 저자의 설명과 함께 보니 새롭게 다가왔다. (p. 124)

그림을 그린 작가와 매치하지는 못하지만 이 그림을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나는데, 아마 잔인한 그림이다라는 정도로 넘겼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오늘 책을 통해 그림 속 목을 베는 여성의 얼굴에 작가 자신을 그렸다는 것, 작가가 실제로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동료 화가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의 유죄 판결을 받기 위해 험난한 법적 투쟁을 했기에 유디트의 복수에 공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일반적인 성역할을 뒤집음으로써 남자 위주의 미술사에도 복수했다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이 외에도 많은 미술 작품에 대해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저자가 제시한 '타불라 라사'를 온전히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몰랐던 작품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원래 알고 있던 작품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한 번의 읽기로 저자가 제시한 미술보는 방법을 체득하기는 어려웠지만, 차후에 미술관을 가기 전에 다시 일독을 하고 싶다. 그리고 미술관에서 직접 작품을 앞에 두고 나만의 감각으로 그것들을 대면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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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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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른다.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의 이름이나 작품은 들어보거나 본 적이 있지만, 제대로 그림을 보는 법에 대해서는 완전 무지하다.

유명 화가들의 전시회가 열리면 늘상 그 곳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성향이나 전시회를 준비한 큐레이터의 의도는 전혀 알지 못한 채, 눈으로는 그림과 제목을 지긋하게 바라보면서 귀로는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조금 더 작품에 다가가도록 노력 비슷한 것을 할 뿐이다.

그래서 미술과 관련한 책들은 어렵게 느껴졌다. 특히 맨부커상 수상 작가인 줄리언 반스가 쓴 '지적인' 미술 에세이라고 하니 더 겁이 날 수 밖에...

이 책은 1989년부터 2013년에 걸쳐 영국의 미술 전문잡지인 <현대 화가>를 비롯한 여러 잡지에 실린 에세이를 모은 것이라고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책 속으로 들어가 본다.

작가는 미술에 관한 16명의 화가를 포함한 17개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맨 처음 제리코와 그의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을 설명할 때 작가의 문장은 마치 소설 같다. 메두사호의 생존자들에 대한 그 그림을 이야기하기 위해 사건에 대해 말하는 문장은 한 편의 소설을 보는 것 같이 긴박한 당시의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의 미술적 상상도 여과없이 드러난다. 그는 그림에서 제리코가 그린 것과 그리지 않은 것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언급하며, 왜 화가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하여도 여러 생각들을 펼쳐낸다.

- p. 51, 제리코

우리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는 그 모습, 때로 실수하기도 하는 그 동작을 기억해야 한다.

그 8개월의 최종 결과물을 보고나면, 그 진행 과정을 알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어렵다.

그렇게 걸작을 본 뒤 거슬러 올라가며 폐기된 발상을, 목표에 가까운 성과를 접하게 된다.

그 폐기된 발상들이 제리코에게는 흥분과 기대감의 산물이었다.

그는 우리가 처음부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마지막에 가서야 보았다.

우리에게 그 결말은 필연적이지만, 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작가는 들라크루아, 쿠르베, 마네, 팡탱, 세잔, 드가, 르동, 보나르, 뷔야르, 발로통, 브라크, 마그리트, 올든버그, 프로이트, 호지킨에 대하여, 그리고 그들의 작품들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조금 전 제리코에 대한 이야기는 그 시작이 마치 소설같다고 말을 했는데, 다른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또 나름의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은, 팡탱-라투르'식탁 모서리' 중에서 랭보의 모습이다. 작가는 '식탁 모서리', '들라크루아에게 바치는 경의', '바티뇰의 화실', '피아노를 에워싸고' 등 팡탱이 그린 군상화를 모두 소개한다. 그러면서 그림 속의 인물들에 대해, 또 어떤 일로 인해 어떤 그림에는 누군가가 빠졌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쩌면 그림만을 대했다면, '그림에 누가 있네'라든가, 그도 아니라면 '사진을 찍은 것처럼 여러 사람을 그렸네'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작가 역시 "마찬가지로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팡탱의 군상화를 보는 이들 중 하잘것없는 사람들에게서 유명한 사람들에게로 바삐 눈길을 옮기다 말고 거기서 미술적인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p. 140)"고 말한다.

작가는 팡탱의 그림을 설명하는 마지막으로 '뒤부르 가족'이라는 그림을 설명한다. 팡탱이 그의 아내, 처제, 장인과 장모가 그린 이 그림을 보고, 작가는 '처가를 묘사한 것 중 가장 우울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이 아닌가 싶다.(p. 154)'라고 표현한다.

(이런 작가의 위트가 군데군데 있어 이 또한 이 책을 읽는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겠다^^)

- p. 154, 팡탱-라투르

팡탱에게 돈을 벌어다준(또한 명성을 가져다준) 꽃 그림 같은 정물화들은 그가 본래부터 잘 알고 있던 모든 활기와 생기와 색을 드러내는 반면, 초상화들이 정물화처럼 기괴하고 장례식 같아 보이는 것이야말로 그의 대단한 재능에서 비롯한 불가사의가 아닐까.

나열한 화가들의 이름을 보면 익숙한 이름보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이 더 많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화가들을 알게 되는것도 즐거웠고, 같은 직종(?)인 화가들끼리의 얽힌 뒷이야기를 읽는 것도 재미있었다.

아, 몰랐던 뒷이야기를 읽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책 전체를 온전히 재미있고 쉽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다 알 수는 없다며 마음을 비우고 읽으니 그림의 재능 외에는 보통 사람과 같거나 어쩌면 보통 사람보다 못난 인성을 가진 이도 많아 보여 그들의 뒷이야기가 더 재미있게 느껴진 것이지. 군데군데 숨어 있는 작가의 위트있는 문장도 한 몫했고^^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내가 미술에 한 걸음 다가섰다라고는 감히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어렵고 어렵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예술작품이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라면, 조금 더 그것들에 가까이 가보려는 노력을 해 보고 싶다.

한참 멀었지만, 그림을 보면서 그림 자체뿐만 아니라 그림의 전후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안목과 여유를 가지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부지런히 전시회로 달려 가야지.

- p. 346, 이것은 예술인가?

그.예술적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사실상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물건이고, 이에 대한 우리의 살아 있는 반응이다.

평가 기준은 간단하다. 그것이 우리 눈의 관심을 끄는가? 두뇌를 흥분시키는가? 정신을 자극하여 사색으로 이끄는가? 가슴에 감동을 주는가?

-

예술이 주는 지속적인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의외의 각도에서 접근하여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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