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설화
헤르만 궁켈 지음, 진규선 옮김 / 감은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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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랫동안 기다렸던 헤르만 궁켈(Hermann Gunkel, 1862~1932)의 『창세기 설화』가 드디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궁켈의 책이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처음이다). 궁켈이 누구인가? 바로 양식 비평을 주창한 학자가 아니던가? 그는 당시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으로 대표되는 자료 비평을 뛰어넘어, 텍스트 배후에 있는 오랫동안 형성된 구전 전승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그의 고민과 오랜 연구의 결과물이 바로 『창세기 설화』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2. 이 책은 궁켈의 창세기 주석의 서론 부분이다. 100년 전의 창세기 주석 서론이 지금도 적실한가? 이 질문에 대한 시원한 대답이 '역자 서문'에 담겨있다. 친절하게도 궁켈의 입장과 창세기 주석의 학문적 배경 등이 상세히 '역자 서문'에 소개되어 있다. 그전에 '옮긴이의 일러두기'에서 "설화"로 번역된 "자게"(Sage)의 개념을 밝히고 있는데, 이 개념 정의 하나만으로도 이 책의 핵심적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3. 저자는 "설화"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그는 "설화는 '거짓말'이 아니라, 특별한 시의 일종이다. 설화는 민간 구술을 통해 옛적부터 전해 내려 오던 시적인 이야기로서, 과거의 인물이나 사건을 다루는 것이다(29)."라고 주장한다. 이 개념 정리만으로도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에 가까이 간듯하다.


4. 그렇다면 설화와 역사는 어떠한 점에서 구별되는가? 설화는 구전으로 전해졌으며, 역사는 기록물을 목적으로 쓰였다고 궁켈은 주장한다. 또 다른 차이점은 설화와 역사의 활동 영역이다. 역사는 거대한 공적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만, 설화는 민중들의 관심에 연결되어 있다. 즉 설화는 역사성을 지닌 사건들이 핵심이 아니다. 


5. 설화의 특징은 무엇인가? 내용적으로는 현대의 관점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형식적 측면에서 시적 어조를 지닌다. 이러한 운문적 형식은 인간의 여러 감정을 고양시킨다. 저자는 창세기의 양식이 산문과 운문과는 다른 형식임을 주장한다. 또한 민간 구술 전승을 기록하였다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설화는 온 민족의 산물이며, 따라서 "거대 집단의 공유재산"으로 여겨야 함을 역설한다.


6. 구술 전승의 특성으로 인하여 저자는 이스라엘이 '전문적 이야기꾼' 계층이 있었음을 가정한다. 각각의 설화들은 하나의 완성된 전체를 구성한다. 설화 이야기꾼의 이야기에서 등장인물은 최소화되었다. 설화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단순성과 명료성'이다. 이를 통해 청자는 여유롭게 관찰하고 기억할 수 있었다. 등장인물은 화자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의 중요도에 따라 배치되었다. 주변 인물들은 짧게 다루며 중심인물에 대한 묘사 또한 매우 미약하다. 부수적 정보의 묘사에도 인색하다.


7. 설화의 등장인물 묘사는 매우 흥미롭다. 인물의 정신이나 생각에 집중하지 않는다. 주로 객관적인 행위를 통해 인물을 묘사한다. 대화는 부차적으로 행위의 진행에 따라 약간의 도움을 준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매우 과묵해 보인다.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마땅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임에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8. 창세기를 주해하길 원하는 사람들은 설화의 특성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즉 화자의 관심사에 따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희미하고 미약한 정보들과 설명, 대화 틈에서 갑자기 상세하고 분명한 서술이 나타난다면 주의를 기울여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이러한 정보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설교를 구상하는 작업 가운데도 매우 실제적으로 적용 가능하다.


9. 설화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다양한 전승들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그 전승들의 교환과 합병을 통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장시간을 거치며 여러 요인들로 인해 보편적 변화를 경험한다. 궁켈은 각 설화들이 어떻게 종교적이며 도덕적으로 혹은 제의적으로 변화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J, E, D, P 각각의 특성과 이 전승들이 어떻게 수집되고 편집되었는지를 상세한 예시를 통하여 추론한다.  


10. 궁켈의 오래전 이 외침은 여전히 많은 지도자에게 여전히 유효하며 적실하다. 

개신교 교회와 지도자들은 

창세기가 설화로 되어 있다는 지식에 반대하여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스스로를 차단할 것이 아니라, 

이 지식이 없다면 창세기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좋을 것 같다(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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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가 중점적으로 강조하려는 부분이 무엇인지 볼 수 있다. - P111

그는 예술의 가장 흥미롭고 가치있는 대상이 바로 인간의 정신 생활이라는 현대인의 심성을 갖고 있지 않다. - P111

오히려 화자의 어린아이 같은 취향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감각적인 사실에 머무르기를 가장 좋아한다. - P111

단순한 예술가들은 비록 어떻게 사색할지는 몰랐지만 관찰하는 일에는 대가였다. - P111

이와 같이 행위를 통한 인물들을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설화를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탁월한 예술이다. - P111

희미하게 던져지는 특색들 곁에 아주 세부적인 내용들-특히 ‘상세히 서술하는‘ 이야기들-이 나타나곤 할 때, ‘복잡하게 얽힌 내용‘의 인색함은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 P120

축약과 연장에 주의하며 모든 곳에서 화자의 관심사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 것은 주해에 매우 유익하다. - P120

우리가 ‘동화같은 것‘이라 부르는 이러한 특징들에 대해서 고대인들은 아무런 불편함도 갖지 않았다. - P126

민간 이야기의 개연성은 "언제나 행위의 핵심 작용들"만 신경쓴다. - P126

비록 신 개념에 있어서 눈에 띄는 몇몇 차이점들이 이스라엘의 내적 발전으로부터 설명될 수 있을지라도, 그토록 광범위한 다양성은, 오직 설화 소재들이 이스라엘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 외부나 적어도 야훼-신앙 이전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할 때에야 이해될 수 있다. - P152

우리가 최대한 파악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설화 전승에 대한 총제적인 상은 다음과 같이 광범위하게 말할 수 있다. - P159

기원 설화는 사실상 바벨론에 속하며, 조상 설화는 고대 히브리 기원을 갖되 이스라엘의 역사적 시대의 몇몇 보충물을 포괄하며, 요셉 설화의 양상은 이집트를 향한다. - P159

가나안은 기원 설화를 이스라엘에 중개했으나, 조상 설화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 P159

곧, 이스라엘은, 가나안 선조를 취하기에는 너무 자존심이 높았고, 자신들은 가나안과 관련이 없고 가나안의 혈통과도 무관하다는 인식이 분명했다. - P159

이처럼 충실하게 이야기된 설화들도 보편적인 변화를 겪는다. - P168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을 때, 외부 조건이 바뀌었을 때, 혹은 사유가 바뀌었을 때, 즉, 종교, 도덕적 이상, 미적 감각이 달라졌을 때, 민중적인 설화들은 장시간을 동일하게 유지될 수 없다. - P168

천천히 또 머뭇거리면서, 지속적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설화들은 보편적인 변화를 겪는다. - P168

중요한 것은, 설화들이 이 책들로 모이는 방식을 살펴보면, 그것들이 통일된 작품이라거나 혹은 통일된 작품들을 모은 것이 아니라는 것, 즉 이는 한번에 거푸집에 부어 만든 것이나 한 장의 그림이 아닌, 역사의 과정에서 발생한 모음집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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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도 안 되고 말도 안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비상식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신병에 걸렸거나 사회적인 기능을 못하지는 않는다. - P9

대개는 일상생활에서 사리판단 잘하는 보통 이상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인간관계만큼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선택과 행동을 한다. - P9

왜 그럴까? 그것은 ‘관계의 틀‘ 때문이다. 일정한 모양의 빵을 계속 구워내는 빵틀처럼 인간관계에는 틀이 있다. - P9

이 틀로 말미암아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비슷한 관계방식을 되풀이한다. - P9

문제는 그 기본 틀이 어린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 기본틀은 ‘아이-어른‘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어른 어른‘의 관계에는 맞지 않는다. - P9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아이-어른‘의 관계틀을 ‘어른 어른‘의 관계틀로 바꿔야 한다. - P9

하지만 어린 시절에 관계 손상을 겪은 사람들의 기본 틀은 잘 바뀌지 않는다. - P9

해결되지 못한 감정과 신념 그리고 애착 갈망 등이 그 기본 틀을 붙들어매고 있는 데다가, 그 틀 덕택에 어떻게든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P9

바운더리의 핵심 기능은 보호와 교류다. - P11

바운더리에 이상이있는 사람은 ‘나‘와 ‘나 아닌 것‘을 혼동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자기를 보호하지 못하거나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과잉보호를 하는 등 상호교류에서 어려움을 보인다. - P11

그에 비해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진사람은 굳이 거리를 두려고 애쓰지도 않고 자신을 속이거나 희생하며 인간관계를 맺지도 않는다. - P11

이들은 자신을 돌보면서도 친밀해질수 있고,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해로운 것은 내보낼 수 있다. 바운더리의 보호와 교류 기능이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 P11

미숙한 착함에는 의도가 있다. 칭찬이나 인정을 받으려고 하거나, 상대의 호감이나 환심을 사려고 하거나, 친절과 배려의 대가를 바라는 보상심리가 숨어 있다. - P26

우리가 상처받기 쉽다는 말은 거꾸로 우리 자신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쉬운 존재라는 말과 같다. - P34

당신도 얼마든지 상처를 주는 그 누군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P34

이기적이라거나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이타적이기 짝이 없는 사람이거나 공감의 명수여도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 P34

상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전혀 의도하지 않았어도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것이 인간관계의 본질이다. - P34

주위에 보면 자전거를 타거나 걸으면서, 심지어는 지하철 안에서도 남들이 다 듣도록 노래를 크게 트는 이들이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자아중심성의 문제가 심각하다. - P163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낄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는 다른 이들도 좋아할것이라는 엄청난 착각을 한다. 지배형의 특징이다. - P163

이 유형은 역기능적 관계패턴 중에서 ‘자아중심성‘이 가장 심각하다. 늘 자신이 기준이기 때문에 이견이나 갈등이 생기면 기본적으로 자신이 옳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지배형은 나르시시즘과 맞닿아 있다. - P163

사실 모든 인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나르시시스트다. - P163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자기 위주로 바라보고 살아가기에 죽을 때까지 자아중심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 P163

다만 아이일 때는 심하던 자아중심성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완화되어간다. - P163

하지만 자아가 과분화된 아이는 관계형성 능력에 큰 결함을 가지고 어른이 된다. - P163

이들은 반복적인 애착손상으로 말미암아 누군가로 향해야 할 애착욕구가 고스란히 자기 자신을 향한다. - P163

병적인 자기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신만 중요하고 다른 사람은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 - P163

이들은 ‘자기우월감‘과 ‘특권의식‘을 갖고, 스스로를 특별하고 예외적인 존재로 여긴다. - P163

자신이 빠지면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갈수 없고, 남들에게는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 P163

갈등회복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치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야 한다. - P223

상대를 이기는 것보다, 누가 맞고 틀리느냐를 따지기보다 ‘연결‘을 더 중시해야 한다. - P223

갈등회복력이 높은 사람들은 ‘존이구동尊異求同’의 자세가 되어 있다. - P223

존이구동이란 ‘서로 차이를 존중하되 공통점을 찾아 해결책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의미다. 그것이 바로 상생의 자세다. - P223

그에 비해 갈등회복력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든 차이점만 보고 나쁜 점만 발견하려고 한다. - P223

바운더리가 건강한 이들은 서로견해가 다른 사안에 대해 필요 이상 자기 주장을 하지 않는다. - P223

내 생각은 이렇지만 당신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며 상대성을 인정한다. - P223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사실관계와 시시비비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다. - P223

상대와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를 표현하려고 하고 들어주려고 한다. 이 역시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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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
김성우.엄기호 지음 / 따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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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는 소통의 부재를 겪고 있는 듯하다. 소통의 부재는 심각한 갈등을 낳는다. 남녀 갈등, 세대 갈등, 지역 갈등 등이 첨예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대립 양상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우리는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를 통해 유의미한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응용언어학자 김성우와 문화학자 엄기호가 만났다. '리터러시'(Literacy)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가 진행된다. 영상매체가 발달한 현대에 리터러시는 어떻게 재정의되어야 하는가? 리터러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리터러시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대답이다.


먼저 이 책에서의 핵심 개념인 '리터러시'를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리터러시'는 흔히 '문해력'이나 '문식성'이라고 번역된다. 여기서는 전통적으로 문자를 기반으로 한 정보 이해를 뛰어넘는 이미지나 영상의 활용과 능력을 포괄하기에 '리터러시'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시대에 따라 '리터러시'의 개념은 자유자재로 변한다. 그렇기에 단순히 텍스트를 파악하는 능력으로 '리터러시'를 정의하는 것은 과거의 관점, 성인의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최근의 상황에서는 미디어의 다양한 활용이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기성세대가 10대 전후의 학생들을 볼 때 기존의 관점으로 판단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이는 60~70대 노년세대를 바라볼 때도 동일하다. 새로운 소통 수단이 등장한 현재의 관점으로 그 세대를 판단하는 것 또한 공정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문자 텍스트가 아닌 영상 매체를 통해 교양을 쌓고 자신을 성찰한다. 시험이라는 체제 바깥은 매우 극적으로 변화되었다. 그렇기에 입시와 배움의 공정성은 중요하다. 리터러시의 사회적 인프라가 구비되어야 하며, 널리 공유되어야 한다. 텍스트와 영상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들을 포괄하여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정성 있는 리터러시 교육이 일어나야 한다.


'리터러시' 교육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가? 첫째로, 매체를 자유롭게 변환하는 능력과 함께 과학적 지식과 내러티브에 기반한 앎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일어나야 한다. 둘째로, 긴 호흡으로 속도보단 방향을 중시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시간에 대한 감각을 키워주고,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의 반전이 나올 수도 있음을 경험하게 해줘야 한다.


김성우는 마지막으로 이 대담을 요약하며 일곱 가지 키워드로 그동안의 논의를 정리한다. 그것은 여러 미디어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며 성찰하는 '조망', 리터러시가 가장 필요한 영역인 '일상', 양보다는 더 중요한 '반복', 리터러시의 중요한 핵심인 '관계', 책임 있는 '윤리'적 주체로서의 리터러시, 사회 전반의 여러 영역에서 역동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의 '교차', 잊지 않는 힘으로서의 '호흡'이다. 


결국 리터러시를 향상하려는 목적은 '좋은 삶'을 위해서다. '옳음'이라는 이름으로의 또 다른 억압의 방식이 아니다. 모두를 해방하고 자유롭게 하는 바로 그 '좋은 삶'을 위해 리터러시의 향상은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며, 서로에게 응답하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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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말하기와 듣기 능력을 깊고 넓게 키우는 교육을 하기엔 현재 학교 교육의 호흡이 짧아요. - P197

그건 교사들 잘못이라고 보기는 힘들고요. 교육체제의 잘못이죠. - P197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할 수있는 것을 해야겠죠. 영어의 경우라면 조각조각으로 된 독해 문제집 지문이 아니라 완결된 글의 형태로 읽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될 테고요. - P197

사실 교과서의 지문도 내용의 깊이나 길이에 있어서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어요. - P197

문제는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아도 적지 않은 학생들에게 교과서는 ‘시험 대비 독해 지문‘으로 인식된다는점이죠. - P197

자신과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깊이 읽어야 되는 텍스트가 아니라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달달달 외워야 되는 대상이 되는 거예요. - P197

교과서 지문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활용되는 방식이 시험이다 보니 학생들에겐 평가자료가 되는 거죠. - P197

지금의 제도에서는 그런 태도를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진짜로 거기서 시험 문제가 나오니까. 그게 자기 삶에서 중요하니까. - P197

변환 능력을 키워야 하는 영역이 또 하나있어요. 심리학자이자 초기 인지혁명을 이끈 학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제롬 브루너(Jerome Bruner)는 세계를 구성하는 앎의 방식에는 두 가지 모드가 있다고 했어요. - P211

하나는 세계를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분류해서 그들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지식을 갖는다고했을 때의 앎, 분석하고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지식을 이해하고 다루는 법으로서의 앎이에요. - P211

다른 하나는 내러티브적인 앎이에요. 이야기로서의 앎, 스토리를 이해하고, 지어내고, 들려줄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P211

이 두 가지는 상보적이고 서로를 풍성하게 만드는 관계에 있죠. 저는 이 두 가지 방식의 앎이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P211

조금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세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능력과 이야기를 짓는 상상력의 상호교섭이라고 할 수 있겠죠.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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